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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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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일+

단군의

병진님께서 20116271054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단군일지 300 + 14]

스산하게 느껴지는 바람소리 사이로 밤새도록 내린 빗소리가 나를 유혹한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을 걸었다기 보다는 명령했다. '너는 걸어야 사는 사람이다. 밖으로 나가 걸어야 한다'

빗속을 걸어야 하는데 복장이 문제였다. 비오는 새벽이라 춥다는 생각이 나를 먼저 지배했고, 비를 굳이 맞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우선순위가 무얼까를 고민 했지만 복장이 문제가 아니라, 빗속을 걷는게 우선이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 항상 들고 다니던 우산을 펴고 집을 나섰다. 자고 일어난 그 복장 그대로, 짧지만 매일 깎여 나가는 수염과 한 자세로 자고 일어나 눌려버린 머리 그대로....

1년 반을 살았지만,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숲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숲은 아니지만, 블루와 그린의 조합인 배경색..... 우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 다다르자, 비가 바람과 섞여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도망치듯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와, 읽다가 내팽개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관문을 지나간걸까? 귀신에 홀린듯한 짧은 걸음에 대한 이미지가 이제서야 살아났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었다. 쌩뚱맞게 왜 그 길을 걸었을까? 숲도 아닌데 숲속을 한참 걷고 온 기분은 무엇일까? 한 시의 지체도 없이 가출하듯 뛰어나간 건 무엇일까?

영웅의 여정을 한 바퀴 돌고 일상으로 돌아온것도 아닌데 기분이 묘하다. 오랜 심연을 끝내고 돌파가 시작되는걸까? 잃어버린 내 길을 다시 걸어가라는 입문제의일까? 실제로 연어가 회귀하듯 돌아오라는 제의를 받은 건 사실이다. 마음에 없었는데, 제의를 받고 망설이는 걸 보니 무언가를 뜻하기는 하는 것 같다.

내 지식의 한계가 한숨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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