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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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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ANNE님께서 2012211058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 419일차 1월 31 일 화요일 ] 오지 체험

 

외출하기 힘든 날이었다. 주최측이 아닌 단순한 참가자였으면 못간다하고 말았을 날이었지만, 애절한 신랑의 눈동자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비커밍 마이셀프 프로그램 페르소나 워크샵이 있는 날, 눈이 펑펑내리고 온 천지에 눈이 쌓여있다. 아파 누워있는 사람은 아픈 것이고 눈와서 이쁜건 이쁜터라, 뭐 그리고 심드렁하다고 해서 아픈 게 낫는 것도 아니라서 여유시간을 쪼개가며 셀카놀이를 즐겼다. 동생에게 보내주니, 그리 잘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나이까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다소 쿨한 반응에 킬킬거리며 웃었다. 동생과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유쾌하고 즐겁다. 단지 문자라도 그렇다. 어릴 땐 옆에 동생 앉혀놓고 이야기 들어가면서 교복 다려줬던 기억난다. 동생은 그런 시다생활?^^이 힘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내가 교복을 다려주니까, 다림질 이외의 자질구레한 모든 것은 지가 하는게 맞는거지, 암~~ ㅋㅋ

 

 

워크숍이 끝나고 돌아오는길, 압권이었다. 가능하면 집에 일찍 가고 싶었다. 집이 가까우니 마음도 급해지고 약도 사가지고 온 터라. 정자역에 내려 우리집을 외치면 택시들이 원래 좋아라하는데(집이 쫌 멀어서 그런듯함) 오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택시도 사람을 고른다. 도로는 온통 내린 눈으로 빙판이고 질척거리고 거의 차들이 설설 긴다. 순간적으로 정자역에서는 갈 수 없겠다싶어서 오리역으로 이동 마을버스를 타야겠다고 작정한다. 오리역, 기다려도 기다려도 마을 버스가 오지 않는다. 한 번도 출발시각이 늦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30분 기다리다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이미 두 번의 시간에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는 것, 이미 11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또 순간적 판단, 집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서 내려 걸어야 겠다.

 

그래서 구성 이마트 앞까지 버스로 이동, 모진 각오를^^ 하고 내려 토끼굴을 지나 눈밭을 휘적휘적 걸어서 집으로 갔다. 춥지는 않았는데 발이 시렸다. 상태가 어떤가 싶기도 하고, 혹시나해서 집에 전화한 번 던졌더니 아픈 몸을 이끌고 데리러 나왔다. 괜히 전화했다. 그냥 가도 되는데.

 

산 밑, 공기 좋고 경치좋고 조용하고 무엇하나 내 맘에 들지 않는게 없는 집이다. 그러나 딱 하나, 눈이 오면 완전 꽝이다. 지난 겨울에도 내차는 미끌어져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정문 아래 세워놓고 언덕길을 걸어올라갔었다. 새삼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알게 된 밤이었다.

 

하긴, 세상에 좋은 것만 취하고 살 수는 없는 일, 누리는 게 있다면 당연 양보해야 하는 게 있는 법. 그래도 한 밤중 눈길을 걸어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름 신선했다. 이런 날이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반달 뜬 밤 눈길을 걸어 걸어 집을 향해 걸어보겠는가? 나름 축복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튿날이 출근일이 아니었으면 마냥 즐겼을텐데, 다음날이 출근이라는 어김없는 사실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그래도 나름의 정취와 기억이 오래 남을 그런 밤이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으니까.

집에 오니 딴 세상, 너무 따뜻했다. 추워도 향해 갈 수 있는 집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새삼 행복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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