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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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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ANNE님께서 2012260841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 424일차 2월 5 일 일요일 ] 일하면서 놀기

 

선곡해둔 음악을 틀고 헤드폰을 낀다. 일초도 되지 않아 눈물이 핑 돈다. 내 몸 가득 울려퍼져나가는 밝은 기운에 전율이 인다. 이런 마음 이런 기분으로 산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종일 듣고 앉아있어도 좋겠다 할만큼 마음이 이완된다. 마치 가치없는 그 어떤 생각들을 내 마음과 몸에서 몰아내어 스스로를 정화하고 싶은 양, 있는대로 볼륨을 올리고 귀청이 찢어지라 듣는다. 가히 전투적이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근사한 집을 짓게 된다면 음향시설이 끝내주는, 또한 방음시설이 끝내주는 시설을 만들어 그 속에서 있는대로 음악을 틀어두고 때때로 듣고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던 것 같다. 음악이나 자연만큼 큰 위안을 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일의 시작과 끝을 많이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어떤 때 시작이 되고 어떤 때 마무리가 되는 것일까?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이 저 혼자 흘러가 때가되면 각자의 길을 열어보이는 것 같다. 물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이긴 하지만, 일은 사람을 포함한 전체에 흐름을 타고 춤을 추듯 그렇게 흘러흘러 제 갈길을 열어간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2년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께서 그만두시게 되어 어제 오늘 집안 일을 해봤다. 정말 얼마만에 해보는 청소인지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 오시던 아주머니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 주말이기도 하고, 또한 돈이란 것이 많은 것을 가능케하는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 집안 일을 했다면 일년에 한 번 근사한 여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2주 밀린 일을 하는 것이 버거웠다. 아주머니께서 어지간히 해주셨다는 것은 알면서도, 했다하면 한 꼼꼼하게 해대는 성격인지라 은근히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쉽게 지쳤다. 이 차에 스스로 함 해볼까하는 마음도 생긴다. 일주일에 한 번만 일을 하는 거지. 해보니 좋다. 원래가 무심하게 육체적인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게 버릇이 되어있으니 자신에 대해 이리저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예전부터 들인 습관이긴 한데, 쓰잘데기 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생각정리하느라 시간보내지 않을 수 있어서 일석이조이다. 매일하는 운전과 육체적인 일, 생각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라 마음에 드는 일이다.

 

나에 대해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각자가 어떤 색깔을 띄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일을 마치고 정리하며 앉는 시간, 그 모든 것 순리대로. 내 역량이 닿는 것 까지만 하기로 한다. 공부든 직업이든 창조놀이이든 상담이든 그리고 집안일이든........ 그 모든 것에 대해 내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으로 성큼성큼 걷기로 한다.  세상에 나는 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 위에 그 어떤 것도 사람도 두지말며 나 아래에 그 어떤 것도 사람도 두지 않는다. 내가 해 줄수 있는 것도 없고 그들이 해줄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또한 내 옷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기로 한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고, 그들의 힘으로 스스로 커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오만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나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방법이다. 나는 단지 나이다.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거나 무너뜨릴 수 없고, 그 어떤 것에 흔들리더라도 원래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종일 일을 해서 그런지 낮에 잠깐 소파에 누워서 잤나보다. 깨고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이런 두퉁도 또한 오랫만이다. 나 같다. 한 번씩 이런 통증을 느낄 때마다 약 한 알이 주는 효과가 신기했었는데, 오늘 그 한 알을 먹어봐야 겠다, 여전히 그렇게 유효한지.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것들도 많고 알수록 신기한 것들도 많다.

 

온 종일 일하면서 집도 나도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새로 태어나듯 나의 힘으로 이 세상에 우뚝 서리라 짧게 마음먹는 저녁이다. 너무 춥고 떨리는 것을보니 감기인가보다. 볼륨을 낮춰 전투적으로 맞서보던 나를 달랜다.

 

2월이 시작되었다. 2월과 3월이 너무 중요하다. 잘 보내고 싶다. 내게 맞는 패턴을 찾아 거기에 빨리 적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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