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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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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ANNE님께서 2012292158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 428일차 2월 9일 목요일 ] 마무리 그리고 시작

 

2월 학기말, 부산하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계절. 그러나 요즘은 살 만하다 4교시를 마치면 아이들로부터 놓여나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어 너무 좋다. 아이들이 가고나면 그 때서야 한 숨 돌리고 밀린 일들을 후닥닥 해치우기 시작한다. 5612인성교육 자료라는, 경기도교육청 개발 자료 필요성 부분 원고를 다시 수정해서 송부하고나니 제법 속이 시원하다. 이제 한가지 해치웠다. 끝이 나지 않을 일 같더니 시간가니 끝이 난다.

 

점심 먹자마자 학부형님께서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오셨다. 1년간 너무 감사드린다고 한다. 네 네 하고 인사하면서 밝게 웃으면서도 더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한 녀석에게 맘이 쓰인다. 한 번은 꼭 뵙고 싶었던 부모님이기도 하다. 잘 웃을 줄 몰랐던 녀석을 활짝 더 많이 웃게하지 못하고 학년을 마치게 되어서 너무 마음이 아픈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집에서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낫다. 아기였을 때부터 그랬다고, 타고난 품성이 그렇다고,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과 꼭 같다고 말씀하시긴 해도, 그래도 나는 아이가 더 밝고 활짝 웃으며 밝은 빛 같은 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원한다. 아이가 가고나서, 자세한 부분 고민하고 계시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기 전에 활짝, 방법을 알겠다며 문을 나서시는 부모님을 뵈면서, 그래도 이렇게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그런 조언이라도 드릴 수 있는 자신이 새삼 고맙고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어머니와의 사이에 문제가 확실히 있어보이는 녀석이었으니, 어머니께서 연습하신대로만 하신다면 훨씬 나을 것이다.

 

어제는 또 다른 녀석의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학년 마치고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참 밝고 쾌활한 녀석, 어딜가든 잘 지낼 것이다. 더구나 1학년때 살던 일산, 일가 친적이 모두 다 있는 곳으로 간다하니 그나마 참 안심이 된다. 걱정하시는 것 몇가지에 대한 답을 드리고, 한참 화두인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대처 방안까지....... 말씀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니, 세상이 무섭고 그 속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이 안타깝다. 

 

인간미라고는 없고 잔인한 아이들 세계의 일면을 보게 될 때, 어른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인간성이라는 것을 빼버리면 된다. 측은지심이라는 것도 빼버리면 되고, 공감 내지 배려라는 덕목도 빼고 도덕성이라는 것도 빼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고 세상이 그려질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는 스스로 목숨을 앗으면서까지 영원한 행복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물론 아이들이 있는 그 속에는 아기자기한 그들만의 문화와 세상이 기다리지만, 때때로 소름끼치는 일면을 보게된다. 어떨 땐 차라리 그것을 느끼지 못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지 모른다. 가르침이 사라져서 그렇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기위해서는 어쩌면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일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길러내는지도.

 

오랜 세월동안 나를, 자식을 관찰하고 많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라는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그런 부모가 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성장해나가야 되는지 절감하게 된다. 성숙한 성인이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으실으실한 몸을 이끌고 나오다가 내 투정을 전문으로 받아주는 선생님과 칼국수를 먹으러갔다. 좋은 사람, 역시 힘나게 해주는 사람이다. 헤어지며 힘이 은근히 솟아오른다. 그도 참 많이 컸다. 대견스럽다. 내가 그에게 힘이되었고 그가 나에게 힘이되기도 했다.

 

돌아오며 가족들에게 빠짐없이 전화를 한다. 천안, 용인, 중국, 포항, 그리고 먼 곳에서 나를 그리워 할 사람과 동생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나에게 있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그들이 진심으로 가까이 있어 좋기보다는 단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보기도 한다. 함께 여기에 있어 참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내게 주어졌으므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그런 태도로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태도를 본다면, 그리 마음먹지 않았다 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내가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는 하는걸까?

내 마음이 따스하기는 한 걸까?

나는 안다. 나는 대체로 차가운 사람이다.

누구를 만나도 그렇게 말한다. 스스로 너무 잘 알아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가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올 일년이 너무나 즐거웠다는 아이들, 학교를 올 해 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다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학부모님들의 피드백을 듣는 순간만큼은 참 행복해진다. 아이처럼 즐거워진다. 나도 뭔가 잘하는 게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만큼만 성숙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철저하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살았거나 그만큼 순수했거나.......

이제 담임은 더는 없을 것이다.

 

자기 전에 사례기록 적어도 6개는 정리하고, 학교 상담실 계획 짜 봐야 한다. 자격증 서류는 언제 만들라고, 아직 손도 못대보고 있다. 중요한 것 부터 먼저 해야한다. 내년엔 꿈꿔오던대로 함 해보자, 과연 이게 학교에서 가능할지.

공개적으로 쪽팔리거나 아님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되거나,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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