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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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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ANNE님께서 20122122123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 430일차 2월 11일 토요일 ] 되돌아보기

 

토요일 아침 10시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여러번 미룬 약속이라 약간 부아가 치밀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이란 참 모를 일 투성이라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낀 터라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 단지 상황에 연루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또한 이 또한 경험이리라 생각하고 간다.

 

 아이 독서실 태워다주고 돌아와 사례정리를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하던 거라 맥을 끊기 싫어 하다 쉬다 하다 쉬다 했다. 2003년 사례부터 현재까지 죄다 간단하게라도 정리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 땐 플로피 디스켓을 썼던 터라 자료가 몽땅 없다. 그 사례들이 이렇게까지 나에게 중요할 줄 알았더라면, 내가 조금만 컴퓨터다루는 기술이 있었더라면 그 많은 자료들을 그렇게 못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사례집을 만들어 둔 게 있어서 일일이 보면서 정리했다. 종일 했는데 15개를 하니 질렸다.

 

되돌아보는 과정이 힘이 들었다. 내가 진행했던 상담 사례들의 기록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자원봉사라고는 하지만, 그 시절 그렇게밖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고, 실망스럽고, 미안하고, 또 죄스럽고...... 그랬다. 그 내담자들, 복지관 공부방 아이들, 쉼터의 아이들 그리고 건강가정지원센터의 가족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고 염려스럽고, 괜한 상상에 마음이 저려온다.

 

지금 상담을 한다해도 더 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그래도 나잇값은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가당찮은 자만도 해 본다. 물론 나 이외의 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기쁘고 마음 좋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나로서는 그 이상 기쁜 일이 없겠지만, 나와 마주 않았던 그 애처로운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눈물부터 핑 돈다. 팍팍한 현실에서 각자의 자리를 제발 찾아 살고 있기만을 바란다. 제발 나보다 더 좋고 훌륭한 사람들 만나서 그들의 앞날이 어둠 속이 아니라 밝은 빛 속에서 빛나게 되기를 아무 신에게나 기도하고 싶다.

 

오랫동안 매우 강력한 치료효과에 매료되어 공부하고 임상실천을 해 왔던 치료법이 별도의 학회로 만들어지면서, 이 접근법을 이용해서 실천해 온 실천가들을 대상으로 자격증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학회에서 요구하는 제법 까다로운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주섬주섬 모아보니 1급을 신청하고도 남을 만큼의 점수나 경력이 된다. 그러고보니 참 오랫동안 해왔다. 나로서는 거저 주워먹기나 마찬가지인데, 이게 없는 사람들은 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길에 들어선 지 15년은 된 지라 교육받고 연수받고 수퍼바이저로부터 지도감독 받는 시간이 채워졌을 뿐, 그냥 주어지다 시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보니 꽤 오래되었구나 싶다. 새삼 지난 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야말로 풋풋해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내담자를 만났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 사례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요즘말로 정말 오그라들 것 같은 케이스도 있다. 좀 더 잘하지 싶고, 정말 저 케이스는 어려웠다는 내담자부터, 내가 정말 자랑스러웠던 내담자들까지, 그리고 그들이 사는 형편이 너무 가슴아파서 지금도 눈물이 나는 내담자들....... 그들 덕택에 저런 시간이 쌓인 것이리라. 고마운 사람들이고 잊지못할 사람들이다. 

 

정리하면서 현재의 나를 본다. 어디로 가려는지 무엇을 향해가려는지....... 그리고  순간순간 흔들리는 내 마음을 굳건하게 붇잡고 갈만큼 여전히 나는 그렇게 강건한지. 내게 온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여전히 유효한 계절을 보내는 중인지.......

 

북한산 둘레길에 간 지인 성희 호금은 돌아가면서 내게 문자질을 해댔다. 아니 중계방송을 했다. 내가 엄청 좋아할 산나물들과 산사춘을 사진으로다가 찍어서 들입다 보내면서 약을 올린다. 귀여운 것들, 그렇게라도 없는 나를 생각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렇게 사심없는 그런 마음, 나는 본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나는 그럴 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 누가 그 자리에 없는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줄 것인가 말이다. 사람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는 글에 있고 가르침에 있고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 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배어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매일 알람을 설정해놓고 전화를 하는 나를 한 번 돌아본다. 아이들 저녁시간에 한 번씩, 잠자기 전에 한 번, 병원계신 엄마에게 퇴근하며 한 번, 신랑에게 한 번....... 이렇게 알람이 울지 않으면 내 머리속에 식구조차 살지 않으니, 난 때때로 너무 삭막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알람이 우는 시간 만큼은 나에게 식구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전혀 안그랬다는 듯이, 항상 그래왔다는 듯 세상에서 나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다루듯 대하는 나. 하긴 실제로 그렇기는 하지만, 집을 떠나면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전화 안하는 것 보다는 알람이라도 설정해놓고 매일 규칙적으로 생각한다는 게 어디냐며 이유있는 자뻑을 해본다. 어쩔 것이냐, 나는 그런 걸, 뭐....... 언젠가 내 마음에도 따듯한 바람만이 그득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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