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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님께서 2012511714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2012 0501 화요일  [ 현재 ]

 

방금 전 운동회가 끝났다. 온 종일 운동장에서는 쾅쾅 거리는 음악소리와 꺅꺅대는 아이들의 함성이 오르고, 바람은 살랑살랑, 하늘엔 만국기가 펄럭거린다. 땡볕에 죙일 아이들 데리고 서 있으면 날리는 먼지에 뜨거운 열기에 소리없이 질러대며 진정시켜야 하는 아이들에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죙일 전담실에 앉아서 일만했다. 학급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물론 내가 맡은 역할이 있었지만 우연찮게 내 도움이 필요없는 경우가 발생해주어, 이토록 한가하게 종일 컴퓨터를 마주하고 밀린 일들을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라 규정지을 때는 이 일을 하는 내가 지겨우리만치 비루한 느낌이 드는 자신이 되지만, 그러나 한편 진짜로 끝이 없느냐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다. 분명 매 번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wee class를 설치한다고 할 때 아무런 망설임없이 선뜻 선택하긴 했지만, 어떻게보면 거기엔 남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함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여서 그랬을까? 지금와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런 계산이 없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남들은 이미 계산 끝나 그 일이 어떻게 펼쳐질 지 너무나 잘 아는데, 나는 언제나 그 점을 잘 보지 못하기에 겁없이 덤벼드는 것 같다. 내 생각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다소 힘은 들겠지만 그 또한 함 해보면 나름 의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본다면 내 신변상의 여러가지를 고려해볼 때 이 학교에 남아있는것은 정말 바보같은 행동인 것이고, 나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 점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찌 알겠는가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우리가 또 만들어 가는 길이라는 짜릿함이 있는 것이고 말이다. 어찌되든 내가 선생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올 해는 맨땅에 헤딩 함 해봤다는 건 남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났다. 창조라는 것은 이토록 많은 시간을 요하고, 한꺼번에 만들어지는 것은 없으며, 어떤 것이든 시간 속에 무르익어야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또 그 속에 녹아나는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보태어져야 그럴듯한 한가지가 탄생할 수 있는지도 배우고 있다.

 

맡은 수업에, 업무가 과중한 것 같지만 이제와서 결코 불만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응분의 댓가를 치르면서 건너뛰면 되는 것이고,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또 그만큼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학교일이 해도 해도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고 끝이 나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 탈진해가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끌려내려갈 수는 없다. 목표로 정한 결과를 얻기위해 견뎌내야 하는 거친 과정이 존재함을 알아가는 중이고, 어쩌면 쉽게 만들 수 있으리라 여겼던 내 가볍고 성급한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과정이리라. 또 나의 그러한 익지않은 마음을 흔들어 일깨워주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와 머리를 어루만지는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요즘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인내심을 훈련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고있는 일의 성격이나 범위가 이동을 하고 있다. 그토록 벗어나려 애썼던 부분에 힘이 실리고 있어서 조금은 낯 선 감정으로 지켜보게 된다.

 

내가 만든 배가 어떤 승객을 실을 배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어떤 종착지에 다다르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는 곳이 매우 안전하고 승객들에게 유익한 곳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힘껏 노젓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어떤 풍랑을 만날지 승객이 오르기나 할지 혹은 어딘가에 정박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래도 이 과정은 지나가고 있고 분명 배울만한 그 무엇인가는 존재한다. 지치고 힘들것이지만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게 될 것임도 안다.

 

나에게 있어 많은 것이 현재잰행형이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버릴지 생각하게되는 요즘이다. 담는다고 담기고 버린다고 버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쳐내야 할 것들은 쳐내야 남아있는 것들에 보다 집중하게 될 것 같다. 왜냐면 그렇게 분산된 일들을 처리하고 정리해나갈 만큼의 집중력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어느새 왔는지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 노안의 반열에 오른 내 자랑스런 눈, 그것만큼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너무나 자주 확인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해야할 일들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맹렬한 속도로 일을 치러내고있다. 기한으로 정한 시간이되면 그 일이 끝나있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어서 속 시원하고 뿌듯했던 하루였다.

 

전부 퇴근한다. 나는 지금부터 좀 놀아본다. 다행히 차는 안빼고 올라와도 된다.

차분히 앉아서 현재진행형인 나를 좀 들여다보고 버릴 것들을 버리는 작업, 머리에서 비우고 마음에서 잘라내는 작업을 자꾸자꾸 해야겠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담기엔 용량부족이다.

 

핵심적인 것들만 남기고 마음을 비우고 버려나가도록 한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누구에도, 그 어떤 일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한다.

일을 하되, 진정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나를 풀어두려 한다.

 

특정한 하나에 얽매여 소리 높이지 않고, 혼자 불러 낸 내 생각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러저러한 세속적 판단에도 얽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마땅한 일을 할 것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와 가치로운 일만은 성실하게 책임있게 지켜나가리라.

 

인간으로서의 예우를 다 하기위해 내가 살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사는 성심은 보이는 것, 그것이 이땅의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같기 때문이다.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넘어서는 마음을 향해 덩실덩실 춤추듯 걸어갈 것이다.

 

현재, 오후 다섯 시,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내 마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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