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300일+

단군의

이국향님께서 201210192127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 2012 10월 20일 금요일]

 

 

세계 전역의 신화와 민화는, 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제 이득으로 취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래란 생과 사의 부단한 연속만은 아니다. 개인이 가진 현재의 이상과, 미덕과, 목적의 체계가 어떻든 이득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이고 또 보장되어 있다. 미노스 왕은, 그가 속한 사회의 신의 의지에 복종한다는 의미로 희생을 드려야 하는 신의 수소를 사유물로 취했다. 그는, 자기 상상력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앞세웠다. 때문에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생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실패했고, 우리가 보았듯이 엄청난 불운을 겪어야 했다. 신성이 그 자신의 적이 된 것이다.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82쪽에서 인용

 

새벽 독서시간, 이 구절을 읽다가 거의 놀라 자빠질 뻔 했다. 타인의 경우엔 어떤지 몰라도 나의 경우엔 몹시 충격적인 내용이라서 그런 것 같다.

 

미래란,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규정지어놓은 것 자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어디까지나 내게 있어 미래간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그려지는 것이라 생각했지, 누구든 그에게 지워진 일정량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으로써 현재는 곧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질료인 동시에 나는 미래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더구나 당연하다고 여겼다.

 

나의 의지와 반하는 사회적 요구가 분명히 있었지만 난 최소한으로만, 나를 흔들지 않을 정도로만 응했고 이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다. 왜냐면 더욱 본연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내 본성대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본성은 그런 역할에 응하는 그런 나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나 이외의 그 어떤 사람이 되는 것도 거부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으로 살고 있다 적어도 이 구절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랬기 때문에 현재 약간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위의 구절 중에서도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곳은 마지막 구절이다.

 

"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



내가 그려갈 그 모든 것은 내 안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지, 내 안에 나 이외의 본래부터의 신성 즉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인 그런 힘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종교나 영성의 영역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캠벨이 말하는 이 부분은 그런 종교적인 의미의 신을 이르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 이르고 있는 우주 본래의 어떤 힘, 즉 신의 의지가 있어 이 힘이 내가 갇힌 틀을 벗어나고 작은 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을 통해 더 내 본연의 내가 되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미래를 만들어 낼 그 모든 힘은 나에게서 나오고 그렇기 때문에 한편 모든 책임도 나에게 있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쉽게 지치고 또 회의하게 되고 망설이게 되고 의심하게 되고 뒷걸음질 치게 되고.... 그야말로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것은 "나"라고 생각했지, 그런 내가 더 잘 갈 수 있도록 내 안의 어떤 신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는 것, 즉 내가 나 만의 몸이 아니라, 속한 사회가 부여한 특정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어떤 일을 하고 또 그렇지 않고는 순수한 내 의지였던 것이지, 내 안에 깃든 우주의 커다란 힘이 함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우주적인 질서나 힘이 온 세상에 미친다고는 여겼지만, 내 안에도 있어 내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부분이다. 그리하여 내가 나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했지 내 안에 깃든 신의 의지, 즉 나의 자기중심적인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그런 신으로서의 나 자신은 믿지도 않았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내 안의 신의 의지를 무시하고 오직 개인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이들었고 막막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는 그 모든 것에 의해 내 미래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들 미래 그림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기에. 견디지 못해 취한 조치는 하나하나 타협하면서 내려놓은 것이었다. 그 과정, 버려나가는 그 과정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대신 이후에는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더 강해지기는 커녕 내 모습도 함께 잃어나가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드는 경우도 생긴 것이다. 캠벨이 말한 것이 아마도 이 부분이 아닐까 한다.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한다고 한 부분.

 

여기서의 괴물은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자신이 일그러지는 것, 자신이 보기에 끔찍하게 생각되는 것, 차마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힘든 심적 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괴물이 뜻하는 바 일 터. 나의 경우엔 견디지 못해 스스로와 타협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더 생기를 잃어가게 된 것, 그 것이 아닐까 싶다. 의지가 있고 하고싶은 일이 있고 보람을 느끼고..... 이렇게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그런 감각들로부터 점점 무뎌지게 된 것, 겉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가장 잘 보게 된 그 마음. 그게 아마도 괴물로 만든 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만약, 내 안에 스스로를 돕게 되어있는 그런 신의 의지가 있고, 이 것이 부단히 나를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있게 될까?

 

이는 내게 곧 또 하나의 도전을 하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내게 지워진 일정량의 역할이 있다는 것, 내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감당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부분이 이해되는 것 같다. 내 선택과 나의 의지가 아니어도 때때로 주어진,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마도 나는 이 즈음 조금 더 이타적이 되고, 더 나를 믿고, 내 속의 또 하나의 신의 힘을 믿게 될 것 같다. 그럼으로써 좀 더 이해심이 생기고, 이 우주에서 내게 지워진 역할을 찾는데 흔쾌히 투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의 힘 만이 아니라,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신의 의지가 내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되기를 바란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