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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님께서 20121191939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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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휴직에 들어갔으니 출근없는 날이 2달을 넘겼다. 휴직을 위해 바빴고 어수선했던 기억도 이제 저 편으로 사라지고 없으며, 자주 인사나누던 사람들 동료들, 그리고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의 나의 부재로 인함인지 우리는 서로는 잊는다.

 

이렇게 그 장소를 떠나면 애틋함도 그리움도 이렇게 밟히지 않을 곳이어서였는지 나는 문득 학교를 잠시 쉬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짧은 고민도 없이 그리하였다.  이상한 것은 학교를 떠난 순간 어떻게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학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내 일상이 들어찰 수 있는지 모르겠다. 완벽한 적응력의 완벽한 형태를 보는 것 같다.

 

학교에 있는 동안, 그 자리에 있는 동안 있는 힘을 다 해 일했고, 아이들을 생각하고, 사랑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시간, 몸 따지지 않고 일을 만들어 추진하기도 했고, 시간 짬짬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그리했다. 아마도, 미련남지 않을만큼,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만큼 했기때문에 아쉬움도 적은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 장소에 있을 동안 좋은 사람들이, 이렇게 멀리 있으니 전혀 가깝지 않은 것은 그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쩌면 나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안되는 일에 매달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 말이다. 마음에 찜찜한 구석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 수업마치고 남은 시간 짬짬이 만났던 두 녀석은 궁금하다. 참 문제가 심각해서 담임도, 상담교사도 어쩌지 못해 결국 만나게 됐었는데.... 있는 동안 놀라울 정도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줬던 학생 둘이 그 이후로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지 그 것은 정말 궁금하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서 떠나 있는 몸이니, 그건 남겨진 이들의 몫으로 둬야 한다. 내가 전격 개입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미안한 일이지만 간절한 바램과 믿음 이외에 내가 줄 수 있는 일들은 없다. 그 일에 어찌 대응할지 이야기를 해 두었으니, 또 이전에도 잘 한 적이 있으니 잘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필요했다면, 꼭 나여야 했다면 어떻게든 연락이 왔겠지...하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올 해 처음으로, 그것도 학교에서, 내가 생각하는 능력이나 하는 일의 중요성에 동의하고 기꺼이 지켜보는 상사들도 만났고, 자신있게 추천했던 프로젝트에도 재밌게 참여했다. 그래 그런 것은 정말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내가 선생이 아니라 이런 일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만큼 재밌었고, 시간가는 줄 몰랐다. 책을 만드는 일과 도움이 필요한 교사들에 대한 컨설팅이었다.

 

책은, 명목상으로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책이지만, 사실은 학생들과 이야기 할 때 어떤 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실전 지침서였다. 학생이 내 앞에 있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상담하는 장면을 가정해서 만든 대본형태의 지침서이기 때문에 상황별로 교사가 핸드북형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내용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학생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또한 문제를 해결하고 장차 학생이 가진 그런 면을 줄여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많은 토론과 또 분야별 작업, 초 중 고에서 모인 제 각각 전문가라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그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꽤 흥미롭게 전개되었고 물론 나 역시 어렵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내 전문 분야라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즐겼다. 

 

교사 컨설팅은, 아마도 올 해 1학기 동안 학교에서 했던 일 가운데 가장 신났던 일이었다. 휴직하고 있는 지금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것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이 일은 나와 잘 어울렸고 재밌었고 또한 피드백도 좋았다. 어찌보면 교사에 대한 상담 컨설팅은 이미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아름아름 하고있었던 일이고 또 하고 싶었으며, 학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학생을 위해서도 교사를 위해서도 그리고 넓게보면 학교를 위해서도 그랬다.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거나 혹은 다루는 방식에 있어 미숙하거나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배우고 익혀 하루라도 빨리 보다 나아져야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컨설팅을 신청하신 선생님들은 상당히 개방적인 생각이 있는 분들이고, 또한 받아들이는 부분이나,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되는 면에 있어서도 빠르고, 또 흔쾌히,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런 선생님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를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고, 또 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 또 자신의 낡은 인식의 틀을 그렇게 쉽게 깨부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 그리고 더 밝은 마음과 더 넉넉한 그릇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젊은 선생님들을 보는 것이 기뻤다. 학교를 잠시 떠나 있는 지금, 그들을 만나지는 않지만, 휴직할 줄 모르고 가끔 걸려오는 전화를 통해 이 또한 살아있는 기쁨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좋은 제품을 써보고 소개하듯이 아름아름.... 좀 귀여웠지만 참 즐겁고 고마운 경험이었다.

 

 아마도 내가 학교에 복귀하게 된다면, 이 일만은 절대로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이다. 교사들을 살려 아이들을 살리고, 또 그아이들 뒤에 있는 가족이 밝게 살아갈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많게끔 만드는 일, 그 것이 내가 꿈꾸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가족치료 전문가로서, 15년 넘게 상담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훈련하고 실천해 온 임상실천가로서, 그리고 내 일터가 다른 곳이 아니라 학교인, 23년차가 넘어가는 교사로서, 내가 꿈꾸었던 일이기도 하다.

 

교사를 움직여야 학교가 바뀔거라는 것은 어찌보면 교사를 쥐어짜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그들만한 역량을 갖춘 사람들도 잘 없다. 그들이 가진 역량을 보지 못하고, 대개는 이슈화되는 사건의 백그라운드로서의 교사들을 부정적으로 추측하는 일이 잦은 시대에 살다보니 우리 스스로 교사에 대한 위상을 깎아내려놓고, 그 사람에게 아이들 맡겨 둔 채 안절부절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엄청 파워풀한 가용자원을 거의 폐기해대듯 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참 어리석은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이 그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자신의 정체성에 의심하는 만큼, 아이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사그라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할텐데도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밝고 또한 타인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신뢰하기 쉽다. 학교라고 다를 것 같지 않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나는 지금껏 그리 믿어왔다. 여전히 교사만큼 학교를 변화시키기에 강력하고 적합한 사람들은 없다고 말이다.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천지가 개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 있는 개개 교사들의 인식이 점진적으로 변화해간다면 우리의 교육도 아니 아이들이 행복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난 세상이 얼마든지 행복한 세상이 되는 일이 가능한 일이고, 설사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악화시키거나 제자리걸음없이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실하게 믿는다.

 

한 학기 동안 교사 대상 상담 컨설팅을 하면서(아, 이것은 물론 안양 과천 교육청에서 교사지원 컨설팅 단을 만들어 인력풀을 구축해두고, 교육청 소속의 모든 교사들이 필요한 경우 이들과 접촉해 자신이 필요한 도움을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해 둔 장치이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분야가 있고 나의 경우엔, 상담관련 일에 대해 컨설팅을 했던 것이다.) 교사들이 가지고 오는 이야기는, 모두 다 자기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고, 또 자기 반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난감한 문제이다.

 

그 문제는 학생으로 국한된 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그런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고, 대부분 학생의 부모와 가족의 상황 속에서 발생된 것이며, 그렇게 잉태한 여러 요소들은 학생이 하루의 대부분을 생활하는 학교라는 장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교사들은 생각보다 잘 안다. 소위 문제 학생 뒤에 문제 학부모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본능적으로 인간에 대한 촉이 발달해있는 선생님도 있지만, 그러나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경우 아이 뒤에 있는 그림자로서의 학부모를 알고 아이를 이해하며, 더구나 그 아이나 학부모에게 실지로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숙한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어찌 알겠는가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배운 적도 없는데.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 연락이 오는 것이고, 그럴 기회라도 마련되어 있고 또 더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면, 안봐도 그림이지 않겠는가?

 

약속을 하고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온 학생의 사례를 듣고 이야기를 하면, 정말 우리들은 진도가 너무 잘 나갔다. 아이의 행동 뒤에 숨은 부모의 언행 그리고 더 나아가 역기능적인 가족의 모습과 패턴, 특히나 학생의 부모 서로간의 갈등 등에 대해서는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다음 번에 올 때 그 학생의 변화를 이야기의 서두로 꺼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학생을 보는 눈이 변하고, 아이를 한 번 더 이해하게 되면 문제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가여운 모습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아이들과 교사를 그렇게 쉴새없이 자극해도, 덜 열받고 덜 속상하고 덜 감정이 들끓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떠나 교사를 본다. 학교를 생각하면 가정 먼저 아이들이 떠올라야 하는데, 나는 아이들보다 어쩌면 그 속에 있는 선생님들이 먼저 떠오른다. 직장에서 만나지만 각자가 개별적 공간과 환경을 만들면서 개성있는 교육을 실천해나가는 그 능력자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강력한 자원이자 중요한 사람이며, 정말 잘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

 

각기 다른 개성으로 모여들어 각기 다른 에너지로 동일한 방향을 향해 함께 가는 사람들, 그들 역시 칭찬 한 마디에 힘나는 인간이므로, 정말이지 너무나도 격려와 칭찬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므로, 우리의 미소 어린 인정과 존중 그리고 신뢰가 거창한  사회변혁의 핵심인재가 될 거라는 내 생각은 결코 억지가 아닐 것이다. 진실한 믿음인 것이다.

 

멀리 있는 내 동료들을 생각한다. 전혀, 그들이 눈 앞에서 사라진 나를 생각지 않을 그들을 생각하고,  나를 한 번도 기억해내지 않았을 그들을 오늘 멀리서 떠올려본다. 함께 있으며 목소리 높이지 않았으니 내 생각을 알지 못했을 그들을 생각한다. 우연처럼 인연처험 한 직장에 머무르다, 가야 할 때가 되면 제 각각의 길로 들어서는 낯선 사람들로서의 그들을 생각하고, 그래도 그 속에서 인연을 만들어가며 오래오래 서로 좋은 친구로 남아가는 그들을 생각한다.

 

온 천지 단풍나무가 벌겋게 물들어 내리고, 짙어가는 가을에 못견딘 느티나무 잎의 속절없는 낙하를 보며, 그래도 천천히 그들이 일구어 갈 좋은 세상을 생각한다. 그들은 존중받아 마땅한 참 중요한 사람들이다.

 

 http://blog.naver.com/albert38/6017530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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