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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님께서 201211111805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2012 11 11 일요일, 방콕 여행기 2, 카오산 로드를 찾아

 

억지로 잠든 탓인지 불현듯 잠이깬다. 벌떡 일어나 창밖을 보니 어젯밤 깜깜한 어둠에 묻혀있던 광경이 불쑥 튀어나와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나쁘지 않다. 내다보니 저기 강도 보인다. 그러고보니 이 호텔 이름에 그리하여 강변이란 말이 붙은 것인가 보다. 후다닥 일어나 주섬주섬 챙겨입고 카메라만 가지고 나갔다. 아직 해가 비추지 않은 시간, 조용하고 조금은 어둡다.

 

다시 올라와 씻고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평상시라면 아침을 먹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여행길에 오르면 꼭 아침을 먹게 된다. 그저 한 잔의 다방커피면 오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마련인데, 차려놓고 먹으라하니 먹게된다. 식당의 광경도 어젯밤 늦게 도착해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갈 때의 광경과 매우 달리 참 아름답고 세련된 풍경이 펼쳐진다. 이 호텔 나름 괜찮구나 싶다. 식당 저 건너 창으로 그대로 강과 연결이 되어 정원에서도 식사가 가능하다. 친구들이나 식구들과 함께 왔다면, 저기에서 아침을 먹어도 좋겠다 싶다.

 

올라와 잠시 얼쩡거리며 쉬다가 본격적으로 차비를 하고 내려갔다.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란 생각에 등에 진 배낭에는 혹시 필요하면 쓸 수 있는 이러저러한 것들, 작은 가방엔 꼭 필요한 여권이나 현금 그리고 카메랄 챙겼다. 모자와 썬글라스도 썼다. 하지만, 이 차림은, 만약 그 더운 날 혼자 한 낮에 돌아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차림이다. 그나마 반바지에 샌들이라도 신었으니 망정이지, 죽을 뻔했다. 결국 등에 진 배낭은 전혀 필요치 않았으며, 모자나 썬글라스 두 개 중 하나만 써야 했었다. 모르겠다 난 배를 타고 가면서 수없이 후회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꿈에나 그리던 카오산로드를 찾아가기 위해 나선 길, 하긴 어찌보면 이번 방콕 여행은 카오산로드를 가기위해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9월부터 휴직을 앞두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번에 혼자 나서 본 여행은 여러가지로 개인적인 의미가 있었다. 특히나 카오산로드가 내게 상징하는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에 어떤 의무나 숙명?처럼 꼭 거길 가야겠다 싶었다.

 

호텔에서 내려와 일단 안내원에게 카오산 로드를 갈 거라 물었더니, 책자는 있었지만 무턱대고 택시를 타기보단 철처하게 걷고 묻고 하기로 했다. 호텔을 빙 돌면 배 타는 곳이 있단다. 오예~ ! '배만 타면 타 프라아빗 선착장에 내리면 된다' 고 생각해 얼씨구나 하고 나서는데, 100미터도 못가 푹푹찌는 이 날씨에 굳이 걸어야 할까? 하는 의심이 쉴새없이 올라왔다. 200미터도 안가 벌써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더구나 설명하던 것보다는 길이 꽤 헷갈리기도 하도.... 결국 어딘지 모르겠다.

 

길을 모르면 무조건 학생을 잡고 물었다. 너무 고마운 여학생은 설명하다가 자기를 따라오라더니 골목이 보이는 곳까지 날 데려다 준다. 복받을 거다 그 학생 정말로. 살았다 싶어 찾아갔더니, 문이 닫혀있다. 보아하니 아직 승선하지 않는 것 같다. 표를 샀다. 그러나 뭐라고 쏼라대는데, 건너편을 자꾸 섬긴다. 내가 온 곳이 익스프레스를 타는 역이 아닌 모양이었다. 얼결에 따라 타고, 앞에 앉은 예쁘고 부티나는 귀족적인 여학생한테 물으니(방콕에서 그런 학생 첨 봤음) 그 학생은 배에서 내려서 저쪽을 가르친다. 난감하다. 그래도 아줌마가 태워준 걸 보면 이 배를 타도 되는 것이겠거니... 뭐 어찌 되겠거니....하는 마음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번엔 다른 여학생 한테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정말 너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결국 내가 자신을 따라 내리면 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 한다. 바로 건너편에 배가 댔다. 내려서 따라 가니, 안내원에게 까지 날 데리고 가서 설명해준다. 아마도 배를 갈아타는 것 같다. 그리고 익스프레스 보트를 탔다. 여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보트에 있는데, 돈을 또 내는것인지 안내도 되는 것인지...막 헷갈리고 한 참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온갖 기억들이 뒤죽박죽되어 잊어버리기까지 했다. 내가 가려는 곳은 싸판탁신 역이었는데, 그 곳으로 가기위해서는 이렇게 보트를 타고 건너편에 가야했던 것이었다. 여튼,

 

드디어 목적지, 책에서 읽은대로라면 타 프라아팃 역에 내려서 카오산 로드는 약 10분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였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없다. 큰 길을 따라 걸어도 도대체가 카오산로드로 들어가는 간판이 없다. 아마도 내가 놓쳤던 모양이다. 큰 길을 따라가다보면 나오겠지 싶어 걷다보니 나오긴 한다, 그 길을 따라 걷고 또 걷고... 그 때가 대강 한 시는 된 시각이었으니, 방콕의 여름, 한 낮 땡볕을 정처없이 걸었다. 짊어진 배낭은 내 등을 푹푹 삶고 있고, 길은 보이지를 않고....와~~ 도대체 내가 여기 와서 뭐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수도없이 들지만, 그런 회의와는 별도로 어디로 가야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안되겠다 싶어 무조건 물었다. 그랬더니 알려준다. 바로 눈 앞에 있다. 파랑색 현수막이 있는 곳이 카오산 로드 입구였다. 결국 나중에 알고보니, 질러들어오는 길을 놓치고 완전 타원형으로 크게 한바퀴 돌면서 걸었던 것이었다. 진짜 엉터리 같은 나에게 약이 올랐다. 바보같았다.

 

하여튼, 약 300미터 정도 되는 길 양쪽에 늘어선 온갖 가게와 여행사.... 그러나 이렇게 나름 생고생하며 찾아오기까지 상상했던 바에 비하면 카오산로드의 그 시간은 너무 한산하고 텅텅 비어있다. 하긴 대낮인데.... 뜨거워서 누군들 다니기나 하겠나 싶다. 왕복을 해봐도 별게 없다. 배낭여행자들이 이 곳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끝냈다고 했는데, 뭐가 이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양쪽 길을 다 훑은 셈인데, 그 길을 보면서 생각에 빠진다. 이제 내가 배낭여행자의 눈을 가지지는 않았나보다. 타투, 현란한 무늬의 티셔츠와 싸 보이는 모자와 바지 그리고 기념품들.... 우리나라의 이태원의 한 골목을 옮겨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큰 기대를 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미 이들이 흥겨워할 수 있는 그런 공기를 함께 숨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싶다. 왜냐면 내가 거기서 살 수 있는 물건, 아니면 탐나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념이다 싶어 오고가기를 여러번 하면서, 마그네틱을 두어개 샀다. 방콕을 상징하는 것들로 샀다. 이 만하면 여길 왔다간 기억은 하겠거니 하고 말았다.

 

책에 의하면 여기서는 꼭 길거리에 앉아서 팟타이를 먹어봐야 할 것 같았는데, 햇빛 쨍쨍 내리쬐는 시간, 길가에 앉아 먹지는 못할 것 같았다. 우선 노점상들이 눈에 띄지를 앉는다. 너무 이른 시간인 것이다. 카오산의 시간은 아직 기상 시간으로는 이른 듯했다. 뜨거워 죽을 것 같다 들어가 앉을 곳을 찾았다. 가장 시원한 곳... 몇 곳을 지나갔지만 결국 내가 간 곳은 맥도날드.... 였다. 거기만이 내가 시원함을 확신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맥도날드냐 ...내심 한심하긴 하였으나 우선은 사람이 살고 볼 일이었다. 더워 죽을 것 같았다. 음식을 시켜 먹고 정말 오랫동안 쉬었다. 어느 정도 몸을 식히고 다시 나가 한바퀴를 돌았다. 사람들이 조금 보이기 시작하고 더러더러 길가에 앉아 팟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도 돌아선다. 얼른 돌아가서 씻고 쉬고 싶다. 늙었다 이제.

 

돌아가는 길은 아까에 비해 훨씬 마음이 가볍다. 적어도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는 안다. 익스프레스 보트를 타고 가서, 다를 보트로 갈아타고 건너편에 내려서 호텔까지 걸어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경험하고 않고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불안함도 없고 이제 느긋함조차 느낀다.

 

걸어오면서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를 궁리한다. 사람이란게 이렇게도 단순해질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기서는 머리에 생각나는 복잡함 같은 게 없다. 그저 모르는 길을 물어 무사히 찾아가는 일에 집중하고, 배를 타고, 길을 걷고, 또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사 먹고 더우면 씻고 피곤하면 자고...

 

터벅걸음 뒤 저 앞에 나타나는 호텔이 우리 집이라도 된 마냥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일단은 올라가 씻었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활활 타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차갑게 식혀내려야 했다. 너무나 안락한 공간, 호텔 방에 들어오니 천국같다. 세상에 날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뜨거움이 사라지니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또 호기심이 발동한다. 오면서 본 길거리에 다시 나가봐야 겠다고 마음먹는다. 육교 건너에 시장이 있다. 육교를 넘어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고 뭐라도 좀 사야겠다 싶다. 야채말이 같은 것을 파는 아줌마에게 한 팩을 사고, 시장으로 걸어들어가 할아버지에게 과일을 종류대로 좀 샀다. 그리고.... 생각같아서는 그 시장골목을 다 누빌 것 같은 기세로 들어왔지만, 양쪽으로 펼쳐진 가게들을 조금 지나치면서는 그냥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 시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전통 재래시장 쯤 되어보였다. 그러니 완전히 그들에 입맛에 맞는 현지인들을 위한 온갖 음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내 눈에는 도저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음식들도 보이고, 또....

 

약간 비위가 약한 점이 내 단점인데, 확실히 그걸 자극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들이 너무 활기차게 다니는 그 길을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서 활보할 생각이 없어 돌아왔다. 육교건너 호텔 앞에서 할아버지 한테 팟타이를 사가지고 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산 뒤 털레털레 돌아왔다.

 

오늘 혼자 놀이의 진수도 맛보았고 고생도 어느정도 했으니 내일은 태국의 관광지도 함 가봐야 겠다 싶다. 로비에 들어서니 단기의 패키지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아서 내일은 종일 투어를 신청했다. 그리고 야간에 타이 맛사지도 예약해놨다. 자고로 내일은 바쁘게 움직이리라.

 

야채말이는 소스맛 때문에 하나도 넘기지 못했고, 너무 단 맛에 기겁했지만 그래도 팟타이는 맥주 안주 삼아 먹었다. 맥주 냄새를 풍기며, 썰렁거리며 맛사지를 받으러 내려갔다. 건장한 아저씨가 온 몸을 맛사지 해주었다. 실내가 아니라 실외였는데, 이런 맛사지 장소는 처음이었다.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바람이 휘휘불고, 강을 거슬러 오르내리는 배들이 내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와 간간이 '마담~ 마담~'하는 아저씨의 부름을 들으며, 참 인상적인 밤이 지나간다 싶었다. 내일은 종일 투어다. 새벽 일찍 나서야 한다. 내일은 머리 쓰지 않아도 된다. 너무 피곤해 돌아와 누운지 채 5분되 되지않아 잠들었다.

 

그립다. 그랬던 날.

 

http://blog.naver.com/albert38/6017545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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