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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님께서 201211301418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2012 1130 < 방콕 원데이 투어 >

 

이른 아침을 먹고 후닥닥뛰어 내려갔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외국인 커플과 가이드가 기다린다. 난 우리 호텔에서 차가 출발하는 줄 알았더니 어디론가 갈 모양이다. 택시를 타고 내려 이른 아침 방콕 어딘가의 좁디 좁은 시장골목을 돌고 돌아 또 어딘가에 도착하고보니 선착장이다. 어제와는 다른 곳이다. 배를 타고 내려 걸어가니 근처 큰 호텔, 로비에서 약 한시간 반은 기다린 듯하다. 일행이 있어 돌아올 때 함께오면 되겠다 싶었더니, 웬걸? 그들은 사파리 투어를 간다며 가버리고 달랑 나만 남는다. 이런~~~! 그러면 돌아올 때 오늘도 혼자서 찾아 돌아와야 한다.

 

다행히 날 데리러 오는 투어 가이드가 올 때까지 호텔 직원이 기다리다 인계해주었다. 출근시간의 트래픽이 장난아니라더니, 진짜 오래 걸렸다. 덕분에 친해지긴 했다만, 로비의 그 많던 사람들이 제각기 길을 모두 떠난 뒤 거의 맨 꼴치로 날 태울 차가 도착했다. 기다리던 그 호텔은 온통 한국인 단체관광객 천지였다. 내내 영어만 듣다가 간만에 귀가 확트이는 말을 듣고 한국이름을 읽으니 진짜 신기했다. 내가 머물던 호텔에선 한 명도 못만났는데,여긴 엄청 많다.

 

기다리다 지쳐갈 때쯤 날 데리러 온 작은 버스를 만났다. 여행지 호텔 같은 곳에 보면 현지 투어를 신청할 수 있는 데스크가 있는데, 오늘은 원데이 투어를 신청해 종일 방콕 시내 주요 관광지를 가기로 한 것이다. 어제는 혼자 카오산 로드를 다녀왔으니 오늘은 좀 편하게 다닐 필요가 있다 싶었다. 또 다소 외롭기도 했다. 그래서 신청했더니, 소형승합차에 올랐는데, 아~ 진짜, 재미있었다. 인도인들, 미국인들, 프랑스, 일본인, 중국인, 아랍인, 영국인, 독일인.... 진짜 웃기기도 하고 또 나름 신선하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전부 커플로 왔다. 나만 딱 혼자 왔다. 그러나 뭐 어떠랴, 누가 뭐라든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 싶다.

 

빅 부다라는 곳을 거쳐, 아주 큰 불상이 누워있는 왓포 사원을 거쳐 마블템플을 갔다. 우리나라의 사찰들에 갔을 때와 달리 뭔가 좀 이질적인 느낌이 난다 싶었는데, 당연한 것이 우선 너무 화려하고 울긋불긋한 사찰의 외관에서 먼저 그 차이가 난다. 소박한 우리네 사찰과 비교해보면, 거의 자연에 묻히다시피 했던 우리나라 절의 모습들과 달리 여기의 사찰이나 불상들은 정말 화려하고 현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네들에게는 이 모습이 지극히 편안하지 않겠나 싶다, 내게는 너무 감정이입 안되는 모양새일지라도 말이다. 그러고보면 문화차이라는 것은 정말 크다 싶다.

 

가는 곳마다 거의 비슷했지만, 마블 템플 주변에 조성되어있던 시장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반인들의 생활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거나 아니면 길을 잃을 것에 대한 걱정만 조금 덜 했더라면 현지인들 틈에 섞여 훨씬 더 좋은 시간이 되었을텐데 아쉽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기다리다보면 시간이 다 갈 것만 같아 음식을 사 먹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긴 했지만, 지나는 곳마다 퍼져나오는 그 무엇인지도 모르는 냄새들이 한껏 식욕을 자극했다. 돌아서는 내내 아쉬웠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치였다. 그래도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정말 좋았다. 외국 여행 갔을 때 시장구경을 하는 건 정말 좋다. 어디를 가든 시장 구경은 정말 재미있다.

 

오전투어로 세 곳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뿔뿔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 진짜 재밌는 시스템이었는데, 그러고보니 그 승합차에서 나와 어떤 인디언 커플만 오후투어까지 하는 모양이었다. 난 전부다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재밌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면 오후투어를 나선 어느 승합차가 또 날 태우러 올 모양이었다. 어떤 호텔에서 기다리면서 식사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맛없는 식사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가이드가 나타나고 승합차에 오른다. 역시나 이 승합차 역시 온통 다국적 사람들에 커플 일색이다. 내 옆에 정말 이쁜 인도 여자애(청소년)가 있어 말을 붙였더니, 그는 부모님과 함께 왔고 부모님은 저 앞에 앉아있고 그녀는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런말 저런말 해가며 옆자리 인도인들과도 조금 말을 텄다, 그래도 한 번 가 봤다고 할 말이 있어서 다행이다 말하며. 그러나 그들은 인도인들이긴 해도 모두 UAE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인도에서 이 정도의 여행을 올 정도면 꽤 살겠구나 속으로 가늠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왕궁에 입장하는데는 복장 규정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우리 눈으로 조금 야하다 하는 복장은 입장이 안된다. 당연히 반바지, 민소매는 안된다. 이 날 아침 반바지를 입었다가 괜히 급하게 바지로 갈아입는바람에 하루 종일 정말 어글리한 복장으로 다녔던 게 기억난다. 그래도 쫌 폼나게 다녔어야 하는데, 그 더운 날 반바지를 입었어야 했었는데, 책에보니 입장불가라고 되어 있어서.... 맞긴 맞다. 입장이 안된다. 그래서 그 앞에서 두르는 긴 천을 따로 사거나 빌리거나 등등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아침부터 죙일 긴바지 입고 땀 뻘뻘 흘리고 다닌걸 생각하면서 은근히 부아가 났다.

 

다 왔다는 말에 차에서 내렸는데, 내 옆에 있던 그 소녀가 걸음을 잘 걷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소아마비인 듯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뒷쪽에 있던 나는, 또 말이라도 나눈 나는 갈수가 없었고 갈 마음도 없었다. 천천히 그녀가 걷는 속도로 입장했다. 이 소녀때문에 속도에서 차이가 나는 바람에 가이드가 애를 먹었다. 어쨌거나 입장하고, 대강 설명해주고, 모이는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고 각자가 자유시간을 가졌다.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 카메라 밧데리가 죽어버렸다. 그리고 분명히 충전된 밧데리를 가지고 왔는데, 가방 속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사진찍는 것을 포기했는데, 가이드는 혼자온 나를 위해 또 다른 혼자온 여행객에게 서로 사진을 좀 찍어주라는 친절한 멘트까지 남겼다. 나 참, 가이드는 저렇게 하는거구나...싶다. 그는 아니나 다를까 사진 찍어주기를 원하느냐 물어온다. 난 밧데리가 없어 괜찮다고 했다.

 

어슬렁거리며 한바퀴 돌아오니 사람들이 그 소녀가 모여있는 곳에 있다. 가이드, 그 소녀, 그리고 중국인 부부, 또 아까 그 혼자온 아저씨. 소녀의 부모는 어디론가 가고 가이드가 소녀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나를 불렀다. 어차피 한바퀴 돌아보았고, 너무 뜨거워 돌아다니기도 힘든 날, 얼른 그늘 속으로 숨어들었다. 온통 땀투성이에 얼굴은 벌겋게 익어버렸다. 잠깐의 노출에도 그렇다. 덥다. 두런거리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정말 웃기게 돌아간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영어로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중국인 부부가 전혀 영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웃기게도 아까의 그 아저씨,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아주 친한 친구가 된 그의 이름 LEE가 중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영어는 그가 중국어로 통역해서 그 부부와 이야기를 하고, 그 부부의 이야기를 또 알려주고.... 하여튼 웃기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와중에 그 소녀와 중국인 부부 그리고 LEE 이렇게 다섯명이랑 가이드는 천천히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 서로들 많이 친해졌다. 소녀의 걸음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느리게 걸을 수 밖에 없었고 또 그러한 결정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소녀의 부모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함께 찍기도 하면서.... 여행이란 이런 만남이 있어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내내 즐거웠다. 리는 굉장히 특별한 친구였다. 서로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음에도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친구다. 젠틀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뭐 하여튼.... 지금껏 한국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좋은 점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이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게 나와 완전 판박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 것이 리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흔한 일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개인적 특성인 것 같아보였다. 어쨌든, 그렇게 멋진 사람들을 친구로 갖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가장 값진 선물이기도 했다.

 

중국인 부부는 다음날 또 다시 우연히 아주 여러번 만나게 되었는데, 어제의 인연이 있어서 그랬는지 정말 반갑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리가 빠진 우리들의 만남이 어떠했을지는 보는 사람이 짐작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한국말로, 그들은 중국말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스춰로 해결하고..... 마지막엔 액션으로 그렇게 서로 좋은 친구들이 되고 주소를 주고받고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미소와 말투 그리고 몸짓으로 가능한 대화를 우리는 했다. 중국인 부부 중의 아저씨는 또 그동안 보지 못한 중국인이었다. 부인은 참 여성스럽고 착했다. 말이 안되어 그냥 한국말로 하고 끌다시피하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또 고마워하면서 사진찍자 하시고....여행, 여행.... 그래 우리는 이 맛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만난 이들과 친구가 되어 또 함께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고, 또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서로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알 수 없는 인연이지만 그래도 함께 했던 인연에 가슴이 뿌듯하다. 오늘은 호텔 앞에서 꼬치와 맥주 그리고 팟타이를 사들고 들어왔다. 승합차 아저씨가 호텔까지 태워주려했지만 정말 정말 살인적인 교통체증에 내가 선착장에 내려주고 돌아가시라 했다. 그게 그 아저씨에게도 나은 결정같아 보였다. 내가 묵은 호텔은 너무 멀었다.

 

다음날 돌아가야 한다. 아쉬운 밤이었다.

 

http://blog.naver.com/albert38/60176598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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