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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님께서 2007531003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안녕하세요, 경미님. 오늘자 메일 제목이 꼭 스팸메일 같다고 딸애가 놀렸는데, 유심히 읽어주어서 고마워요. 정말 여러 모로 저와 비슷한 면이 많은 분 같군요. 무심히 상담란을 클릭했다가 깜짝 놀랐어요. ^^


어머니의 삶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여자의 삶을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수퍼우먼을 강요하는 맞벌이 주부이든,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가정으로 세계가 좁혀지는 전업주부이든, 현대여성이 수용하기에는 불합리한 점이 많으니까요.


독립적인 직업관이나, 자기관리 면에서 똑소리 나는 분이라고 느껴지네요. 또 사랑을 제외한 여타 사회생활에서는 적극적으로 잘 해 나가고 계시다구요. 단 사랑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문제의식이 없지는 않으셨네요. 제 메일이 그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걸 보면요.


일단 우리가 거부하는 것은, 나름대로 편견에 찬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외로움이 싫어서, 혹은 사회가 규정해놓은 연령개념대로 박자 맞추려고, ‘자기’를 없애고 맹목적으로 종속적으로 사랑에 매달리는 행태가 싫은 거였지요. 사람과 사람의 중심이 만나는, 그 부주의한 황홀의 상태를 거부할 일은 없다고 봐요. ^^


중산층의 삶을 거부한 제 경우에는 농사꾼과의 결혼을 택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났었지요. 작가 김형경의 경우에는, 사랑의 완성이 불가능한 아버지 연배의 사람만을 골라서 사랑하는 것이었다네요. 20년의 결혼생활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제 결혼이 측은지심과 관계치의 융합이 가져온 ‘거대한 오류’였구나 하는 생각이구요. 김형경은 자신의 반생이 길고긴 우울증이었다고 합니다. -김형경의 ‘천 개의 공감’ 꼭 읽어보세요.


경미님이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 얘기를 했습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생각은 오직 사랑과 관계 안에서만 수정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쪼록 독립이라는 이름아래, 경미씨의 젊음을 냉동고 안에 쳐박아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에 대한 많은 오해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가령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은 신경증끼리의 만남이라고 합니다. 아니면 당사자들이 얼마나 외로웠는지의 반증이기도 하구요. 그런 만남은 젊은 시절에 한 번 해봤으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선택하는 유형에 대해서도 연구해보면 참 재미있을 것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나의 기질이 상대방을 부른다고 하네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의존적인 사람은 강압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고, 가학적인 사람은 피학적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거지요.


제가 경미님보다 훨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완전한 해답을 드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단지 기질이 비슷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한다면, 사랑을 거부한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미국 민주주의”에서 ‘조상을 잊고 동료를 무시함으로써 개인을 영원히 홀로 남겨두어 결국 자기 마음의 고독 속에 가둬버리게 될 것이며... 독자적인 삶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그것은 죽음보다 더 나쁜 삶이며...’ 라고 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망연자실하는 때가 옵니다. 저역시 누구를 무시한 적은 없었지요. 단 무심했습니다 ‘독자적이라는 미명아래 죽음보다 더 나쁜 삶’이라는 귀절이 뒷덜미를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살아온 날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돌이켜보면, 놀랍게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있던 때였습니다. 상대방의 언어와 몸짓이 내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와, 온 우주가 그 사람 하나로 압축 혹은 확장되는 경험,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 그 감정을 거부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또 경미님이 사랑을 거부하는 데에는 독립적인 기질 이외에도 무언가 심층적인 요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요인을 곰곰이 분석해보시되, 사랑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일단 마음 문부터 열어놓기를 권합니다. 독립성과 사랑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것같아요. 가벼운 일치감으로부터, ‘있어주어서 고마운’ 사람을 만나기까지, 두루두루 관계맺기 훈련을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사랑을 제대로만 해내면 지성, 감성, 정신의 영역에서 ‘대박’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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