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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

2단계,

두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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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6일 05시 30분 등록

<가을 새벽, 나를 잊는 시간들…>

 

배경 스토리

2008년까지 내 삶의 키워드는 삭막함과 공허,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방황의 끝에서, 그 해 11월 처음 산사수행이란 걸 시작했고, 그래서였는지 지인을 통해 우연히 연구소 꿈벗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2월 꿈벗을 다녀와 2009 1월부터 평생 처음 를 마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운명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늘도 내가 불쌍하셨던걸까..

연구원에 합격하였다. 세상에 태어나 내 힘으로 이룬 일 중 가장 사랑스러운 성취였다.

 

그리고 작년 한 해. 참으로 모질게 내 안을 헤집고 다녔다.

연구원 시작 후 한 달 만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 미치도록 빠져들고 싶었다. 미치도록 내 안을 파고 들어가, 거기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스스로 느끼고 발견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했고, 난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을 선택했다.

 

아팠다. 내 안을 파고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힘든 일은 늘 외부로만 원인을 돌렸던 수많은 일들이 결국 다 나에 의한, 내 안에 원인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통곡을 할 만큼 서러웠던 시간들도 내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난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혼란하기도 하고.

미칠 것처럼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사부님께서 찰스 핸디와 함께 변화 사상가로서 꼭 접해봐야 할 또 하나의 저자로 꼽는 윌리엄 브리지스는
내면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현실에서의 삶을 변환시킬 수 없다라고 말한다.

 

죽음 편지를 쓸 때 내 안에서 가장 강렬하게 터져 나온 말은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았던 지난 날이 못 견디게 후회될 뿐입니다
였다.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렇게 폭풍처럼 2009년을 보냈다.

그러니까 2009년 내 삶의 키워드는 처절함을 동반한 자아찾기혹은 내면탐험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자아를 찾고, “천복을 찾으면, 내 일상이 그 순간부터 변할까..?

그런 기적은 없다. 반대로 어쩌면 그 때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아찾기혹은 천복찾기가 철저히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작업이라면,
천복수련은 철저히 현실적이고 실행적인 일이다.
드디어 하루 2시간씩 일상에서 수련을 행할 때가 온 것이다.

 

그 시작으로 2010년 초 연구소 웹진인 “Change 2010”을 기획했다. 글쟁이와 함께 꿈꾸는 문화기획자로서의 첫 걸음을 세상에 떼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그 순간 세상 경계를 뛰어넘으라던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작년 가을, 연구원을 통해 처음 만난 니체는 내게 두려움 없이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일깨워주었다.

 

웹진 기획단계부터 단군 200일차 진행까지 나는 끊임없이 저 만치 앞에서 세상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추듯 걸어가며 나를 쏘아보는 니체를 보았다. 광채나는 그 눈빛은 내게 묻고 있었다.
그대, 아직도 세상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그리고 지난 9 3.

그 날은 또 하나의 끝이요 시작이었다.

 

단군 100일차가 막을 내리고, 200일차가 조용히 장막을 올리던 그 날.

가을 여정을 출발하기에 앞서

우주의 한 줄기 바람을 타고 내 앞에 떨어진 단어는 세상 끌어안기였다.

 

   내 삶이 그렇게 흐른다..

   삭막하고 공허했던 삶이, 자아를 찾아 천복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매이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두려움에 떨며 세상 장벽을 뛰어넘자,
이제 뛰어넘은 그 세상을 끌어안으라 한다..

   그러면 슬픔도 서러움도 전부 잔잔한 기쁨이 되어 조용히 흐를 것이라고

 

인간은 우주의 인드라망 속에서 얼키고 설킨 보석 같은 존재들이므로,
서로서로의 상호 관계 속에서만 그 빛을 발하는 존재
라는 카프라의 말이 귓가에서 멤돈다..

 

어쩌면 내 삶은 2008 11월 첫 산사수행을 시작하면서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하며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그 순환궤도에 흐름을 맞춰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2010년 이 가을, 이제 난 자아를 내려 놓고 싶다.

엄격히 말하면, 자아 속의 에고를 버리고 싶다.

 

지난 100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겨우 새벽기상을 습관화들인 정도라고나 할까

 

가을과 겨울. 깊어지는 계절과 함께 나도 깊어지고 싶다.

단 하나의 수련만을 목표로 삼고, 서서히 그러나 깊이 빠져들고 싶다. 나를 잊을 때까지..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깊이, 아주 깊이 침잠하고 싶다.

나를 내려 놓을 수 있는 그 경계까지.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나를 잊을 수 있는 그 경계까지 말이다..

 

지난 9 3, 단군 1 100일 파티에서 스승님은 이런 말씀을 주셨다:

한 사람의 삶 속에는 전 인류의 삶이 축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 그래서 한 사람이 차곡차곡 자신의 삶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눌려있던 파일들이 혹은 책장이 화르륵 펼쳐지듯이 삶이 펼쳐지는 그런 순간이 오지. 마치 온 우주가 힘을 다해 그대들을 돕는 것과 같은 그런 순간 말이야. 그러니까 그대들도 새벽 수련을 통해 살면서 꼭 한 번 그런 경험을 해보기를 바래.. 그대들이 삶이 활짝 펼쳐지는 그런 순간 말이야.”

 

그 순간 내 눈앞에는 꼭 눌려있던 파일이 혹은 책장이 화르륵 펼쳐지면서 그 사이를 꽃잎과 나비들이 날아 오르는 장면들이 보였다. 왜 그런 장면이 문득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색 가득한 형형색색의 꽃잎들과 나비들이 눈 앞에 가득 펼쳐졌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언젠가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삶들도 그렇게 피어오르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이 가을.

작년 연구원에 이어 또 한번 미친다..

내 안으로, 열정을 다해. 그러나 끈기 있게..

 

작년엔 나를 찾기 위해서였다면, 이 가을엔 나를 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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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별 샤먼의 200일차 출사표>

 

1.       새벽 시간과 새벽 활동

A.       새벽 시간: 5~8

B.        새벽 활동

                        i.              나의 개인 의례: 108

                      ii.              새벽 수련: 읽고, 사유하고 글쓰기

2.       전체적인 목표

A.       나 그리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100일을 위해, 108배로 하루 시작하기

B.        진행 중인 공저 완료 & 기획 중인 단독집필 초고 완료

C.        100일차에 진행하였던 Book review 이어가기

3.       중간 목표

A.       진행 중인 공저 초고 완료: 9 20

B.        진행 중인 공저 집필 완료: 10 20

C.        단독집필 초고 완료: 12 14

4.       목표 달성 과정에서 직면할 난관과 극복 방안

A.       난관

                        i.              올빼미 체질: 밤 모임이 있어 늦게 귀가하면 가뜩이나 늦었는데, 오히려 기왕 늦은 거하면서 그 때부터 새벽까지 올빼미 활동을 즐긴다. 모순이자, 사이클이 깨지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ii.              기획 일과의 혼용: 새벽에 내 자신을 위한 수련보다는 다른 급한 일들을 한 적이 많다.

B.        극복 방안

                        i.              올빼미 체질: 늦게 귀가해도 컴퓨터 자체를 켜지 않는다. 바로 잠자리에 든다.

                      ii.              기획 일과의 혼용: 새벽은 오로지 수련 시간이다. 글쓰기나 기획 모두, 내실을 기하지 않으면 금방 바닥이 드러나는 일들이다. 새벽에는 오로지 내실을 기하는 일에만 집중하자.

5.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내 삶에서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 묘사

A.       108배로 하루 시작하기: 하루를 108배로 시작하는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개인의례다. 100일차에도 시도했었는데, 매일 이어가지는 못했었다. 1년에 4, 3 4일 산사수행이 크게 나를 잡아주는 수행이라면, 그 중간 날들은 매일 아침 108배 기도로 수행의 힘을 이어가고 싶다. 오고가는 우리들의 관계가 늘 기도 안에 머무른다면, 우린 아마 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리라 믿는다..

B.        내면 쌓기: 연구원을 통해 자아천복을 찾았다. 올 해 그 길을 열심히 달려가며 외향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자칫 기본쌓기 혹은 내면쌓기에 소홀해질 수 있다. 아주 경계해야 할 부분인데, 단군의 후예 새벽 수련을 통해 꾸준히 나 자신을 글쟁이로서, 기획자로서 연마하고 또 연마하고 싶다. 200일차 100일을 또 수련에 집중한다면, 나만의 세상을 위한 기틀이 조금쯤은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6.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에게 줄 보상

A.       기도가 습관화되어 우주의 뜻을 헤아리며 살 수 있다면, 기도 안에서 우리들의 삶이 존재한다면, 내면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삶의 기틀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어떤 보상이 필요할까..

B.        그래도 인간적인 즐거움을 하나쯤 기대해본다면, 12월 중순 200일차를 끝낸 뒤 마음 맞는 지인들과 그 때쯤이면 혼란하고 들뜬 도시를 벗어나 어딘가로 조용히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C.        개인적으로는, 가을과 겨울 200일차 수련을 충실히 한다면 12월에 얼마나 뿌듯할까.. 상상만 해도 즐겁다.. 아마 한 해를 조용히 정리하고 2011년을 맞이하기가 편안할 것 같다.

7.       샤먼으로서의 희망 사항: 단군 200일차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한 지렛대를 기획할 수 있기를 하늘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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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운명에 순응한다는 것이

삶에 무기력하게 대처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벗어나려 발버둥쳐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옥죄어 오는 거대함 앞에서 늘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이젠 운명에 순응한다는 것은

가장 자기다움을 찾아, 그 길을 걷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꿈을 누리기 위해선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주의적이 되어야 함도 깨달았습니다.

 

미래를 꽃 피우기 위해선

과거를 토양 삼아

오늘 하루를 최대한 즐겨야 함도 배웠습니다.

 

이제 저는 제 삶의 주파수를 우주의 근본에 맞추고

바로 그 곳, 제 생명이 잉태되고 제 영혼이 시작된 바로 그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를 찾아 저를 내려놓고

자아를 살리기 위해 에고를 버리겠습니다. 저를 잊어보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몫의 삶

제 운명임을 이제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큰 가르침 주심을 감사드리며

이제, 이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겠습니다..

IP *.118.58.122

댓글 315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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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요한
2010.09.06 09:09:28 *.90.31.75

수희향님의 출사표를 통해 또 다른 수희향님의 모습을 봅니다.
앞으로 100일동안 큰 정진 있으시기를...
수희향님의 가을이 그 어느해 가을보다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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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10:16:13 *.118.58.122
감사합니다^^
요한님도 행복으로 물든 2010년 가을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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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09:28:50 *.93.45.6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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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10:16:36 *.118.58.122
ㅎㅎ 선배. 감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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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10:20:46 *.118.58.122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1>

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올렸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100일을 위하여..

결국 첫날 새벽수련은 하지 못했다.
출석부에서 다시 만난 1기 분들이 너무 반가워 인사드리고
단군 2기분들 출석부에도 쫌 기웃거리고 하느라.
그래서 즐겁고 행복했다.

비록 오늘 하루 나를 위한 수련을 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모두 오늘처럼 가을 100일을 늘 꾸준히 걸어갈 수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되어 이 가을에는 외롭지도 춥지도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아름다운 100일 새벽의 첫 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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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07:50:57 *.12.196.170
어제는 단군 1기-200일차 킥오프 모임이 있었다.
사실 킥 오프는 100일 여정 전에 행하는 것이 맞는데
8월 31일이 완주하고 9월 3일 100일 파티를 하다보니 도저히 짬이 나질 않았다.

200일차 참여자 분들 20명 중에서 14명이 함께 한 킥 오프 모임.

좋다..라는 표현이 충분한가..?
뭐가 좋은걸까..?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런 걸 느낄 때가 있다.
난 분명 A라고 말했는데, 상대는 C 혹은 F 심지어 XYZ로 받아들이는 경우 말이다.
말문이 턱 막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하면 그다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주는 경우도 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의 느낌을 이해해주는 경우라고 할까..

말과 느낌이 통하는 관계..
사람들은 온 종일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고 관계를 주고 받지만
그 많은 만남 속에서 과연 진정으로 말과 느낌이 통하는 관계는 얼마나 되는지..

말과 느낌이 통한다는 건 말이다.
마음이 맞는다 혹은 교감한다는 의미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어제와 같은 만남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 말이다.

마음을 모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서로를 응원하며 한 덩어리가 되어 서서히 거대한 흐름을 만든다는 느낌.
그러면서도 개인의 인격이나 개성은 존중되는 시간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마음 편히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만남이었다.
특정 프로젝트의 킥 오프라기보다는
그냥 편안한 느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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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05:23:40 *.161.173.71
(수희향)님.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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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06:52:04 *.12.196.170
같은 부족으로 만난 킥오프 모임 좋았습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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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6:24:46 *.124.233.1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 오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요?
누님의 주파수에 제 맞아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명을 한 것 같습니다.

누님 덕분에 단군을 알게 되어 단군 프로젝트의 최고의 수혜자가 되어
또 다시 새로운 100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많이 배울께요, 많이 많이 알려주세요. ^^

누님 걸은 발자취 따라 저는 저를 찾아 떠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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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7:39:34 *.12.196.244
경인씨가 처음 단군 프로젝트 지원할 때 "언행일치"하겠다고 했어요.
그 때, 간결하게 각 질문당 한줄짜리 답변을 했는데, 그게 결코 성의없다거나 하는 느낌이 아니고
어쩐지 이분 차분하면서도 내면이 단단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경인씨 같은 분이 단군의 후예에 참여하고 있는 건, 단군 프로젝트가 복이 많은거죠..^^

언행일치..
세상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일들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성실한 모범'이 되겠다는 그 약속 꾸준히 지켜주어 고마워요.

그런데 경인씨.. 경인씨나 나나 마니 진지해요.. 사실 때론 이렇게까지 성실할 필요 없는데도 말이죠..
무슨 뜻인지 경인씨는 알거라 생각해요.. 이제 2백일차가 되었으니 차차 이야기 나누어보도록 해요.

10월 꿈벗에 함께 갈지도 모르겠네요.. 연구원 지원..
아마 경인씨와의 인연은 2010년이 시작이라 믿어요..

공명... 소중한 인연, 오래 가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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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6:52:40 *.12.196.244

<먼별 샤먼의 단군 일지 102>

Book review 65-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62쪽까지 읽기 완료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란 편리한 것 같다.

이사와 수행 그리고 단군 1기 100일차가 끝나고 2기 시작하고 등의 분주한 날들로 인해
책과 글에서 손을 뗀지 꽤 오래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시작한 오늘, 바로 글을 쓰지 못하고 책부터 집어드는 걸 보면
확실히 나는 쓰기보다는 읽기를 더 좋아하나보다.

이번이 몇 번째의 리뷰인가 싶어 100일차 단군일지를 뒤적여보니
65번째의 리뷰이고 8월 17일에서 수련이 멈췄다
(이후, 이사하고 수행다녀오고 그리고 단군 1기 200일차와 2기 모집하면서...).

중간에 "하프 타임의 고수들"이란 책을 짬짬이 읽긴 했으나
단군일지에 올리지 못했으니, 그냥 데미안을 Book 65로 간다.
역시 T형 인간 맞나? 왜 이런걸 읊조리고 있을까..ㅋ

# 테마 1: 밝음과 어둠

"나는 때로 아주 기꺼이 그 금지된 세계에 살기까지 했다. 그리고 때로 밝은 세계로의 귀환은- 설사 아무리 그것이 필요한 일이고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덜 아름다운 것으로, 더 권태롭고 황막한 것으로의 귀환인 것 같았다 (9쪽).

도교 사상에도 나오고, 캠벨의 신화 체계에도 나오듯이 우주는 두 개의 세상, 밝음과 어두움 두 세계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대극을 이루는 것, 즉 그 둘을 하나로 합하여, 양극을 뛰어넘거나 혹은 감싸안거나.

싱클레어는 앞 부분에서 이 세상에는 선함이 속해 있는 밝은 세상이 존재하지만, 그리고 사람들 누구나 그 세계에 속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지만, 때론 반대 세상인 어둠의 세계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을 은밀히 즐긴다고 한다.

왜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디오니소스적인 욕망추구, 즉 쾌락에의 추구가 떠오른다.
불가에서 말하기를 인간은 태어날 때 오욕, 다섯 가지 욕망을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육신이 추구하는 세 가지 욕망인 식욕, 성욕 그리고 수면욕
(잠자고 싶은 욕구도 욕망의 범주에 집어 넣는 걸 처음 접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훗날, 참선이나 명상의 도가 깊은 수행자들은 수면 시간이나 심지어 수면 상태에서 무의식 세계까지 조정하여 의식 세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과
육신의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추구하는 성공과 부에 대한 정신적 욕망. 해서, 오욕이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인간들은 정신적 욕구를 추구하는 삶은 사회적으로 밝음에 분류하고, 육체적 욕구를 추구하는 삶은 어둠의 세계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나? 사회적으로 공부 잘하고 성공 가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어둠의 자식이라고는 칭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신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이들이 꺽이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전세계 모든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중년의 위기"이다. 아무리 사회에서 밝음으로 분류한다해도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던 이들에게는 정신적으로 한번은 꺽이는 시기가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그런 이들이 그럼 어떤 반응들을 일으킬까? 대개 많은 이들이 이번엔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술, 도박, 마약, 섹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정신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육체를 쾌락 상태에 노출하는 자기방어적 표현이 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밝음과 어둠의 개념,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헤세는 거기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밝은 세계로의 귀한은... 더 권태롭고 황막한 것으로의 귀환인 것 같았다." 

정신적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왜 권태롭고 황막한 것으로 표현했을까? 
아니 인간은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 가도를 추구하며 살면서 왜 그 삶을 지루해하고 견디기 어려워하는 걸까? 
결국 인간도 동물 중의 하나로  육체적 쾌락이 더 짜릿하니까?  
그렇다면 육체적 쾌락만으로 매일의 삶이 희열에 차고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하는데 별반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밝음과 어두움.
여기에 숨겨진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올해 꿈벗 봄소풍에서 사부님께선 "밝음 경영"에 대해 말씀하셨다.
진정한 자기경영 혹은 변화경영은 내 삶에 밝음을 조금씩 더 확장하는 것이라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지니고 태어났으나 그 녀석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결코 일생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사람들은 편한 말로 사회에 의해 휘둘린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회적으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규범에 나의 욕망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 그 사슬을 끊겠다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사회는 일생을 가도 단 한번도 그렇게 권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말이다.
밝음을 확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사 욕망에 속아서는 안될 일이다.

진정한 내가, 결과와는 아무 상관없이, 단지 하늘이 내게 주신 달란트 바로 그 부분을 내 삶에서 서서히 키워나갈 때 그 때 비로소 권태나 일상의 지겨움 혹은 공허함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꿈을 생각해보라 하면 "천직"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니다.
천직은 천복이 밥벌이화가 된 상태로서, 천직을 가지려면 우선 천복을 먼저 구해야 한다.

어디서?
내 안에서.

답은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윌리엄 브리지스나 캠벨같은 저명한 학자와 저자들이 그렇게도 내면이 변하지 않고는 삶이 변할 수 없다 반복하고 또 반복했음이다.

천복을 추구하다 보면 성공과 부가 어느 정도 따라 오게 마련이다.
그 정도가 어느 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이 일로, 그저 먹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으면 족하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나의 천복일까?

내가 이 분야에서 반드시 일인자가 되어 정상에 서겠다는 결의부터 불태우는 그 일이
과연 나의 천복이 될 수 있을까?

때가 되면 하늘에선 대지가 필요한 만큼의 꽃비를 내리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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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8:03:34 *.12.196.244

#테마 2: 내게로 가는 길

"크로머에의 예속을 나는 새로운 예속으로 바꿔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맹목적인 마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옛적의 사랑스러웠던 '밝은 세계'의 예속을 택했던 것이다. .... 만일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데미안을 의지하고 그에게 나를 맡기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61쪽)."

"아, 오늘에서야 나는 그것을 알았다.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61쪽)."

헤세는 밝음과 어두움 그 어떤 세계에 속함도 결국 자신에게로의 길이 아니면 예속일 뿐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
그는 작품에서 융의 무의식 세계와 동양 사상을 많이 다룬 작가로도 유명하다.
"데미안"을 읽고는 "싯다르타"도 언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풀어낸 동양사상은 어떠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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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8:37:27 *.118.58.128



# 영화이야기 5- 미하라 미츠히로 감독의 2008년 작품, <행복의 향기>

상해에서 조금 더 들어간 도시 소흥 출신의 요리사 왕씨는 호텔 요리사.
그러나 상사와 다툼을 벌이고 일본인의 도움을 받아 작은 바닷가 마을에 "소상해반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빼어난 요리솜씨는 일급 백화점에서 입점 스카우트를 벌이게 만들지만
왕씨는 요리란 요리사의 영혼이 담긴 작품이므로 손님과 교감할 수 있는 작은 가게를 고집한다.

그런 왕씨를 백화점에 입점시키라는 특명을 받은 다카코는
처음에는 일로 찾아왔지만 점차 그의 요리에 끌어가 거의 매일 소상해반점을 찾게 되는데..

다음 이야기는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왕씨가 쓰러지고 다카고가 그의 제자가 되고.. 등 스토리 라인은 특이할 것 없는 영화이다.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여기에까지 기록하게 만드는 점은 무엇일까.
아마 그건 다카코가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왕씨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바로 그 순간 때문일 것 같다.

말하자면 다카코가 자신의 천복을 찾아 길을 떠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텐데
영화에서는 이 때의 계기를 돌아가신 다카코의 아버지가 요리사였음을 내세우고 있다.
즉, 다카코의 핏줄에는 이미 요리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눈이 오는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딸 하나를 키우는 다카코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문도 열어주지 않는 완고한 왕씨의 허름한 가게 앞에서 눈을 맞으며 90도 각도로 깍듯이 절을 한다.

스승께 예를 갖추어 절하며 받아달라고 인사하는 장면인데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하다.
바로 그녀의 간절함때문이리라..

사부님께서 언젠가 책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어떤 책인지, 어떤 말씀이었는지는 정확치 않다).
"어릴 때는 선인과 악인이 구분되는 줄 알았는데, 크면서 한 사람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함을 깨닫고 삶이 시시해졌다. ... 그런 내가 결국 사람들을 만나면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책 속에 있었고 영화 속에 있었고 예술 작품 속에 있었다.."

그런 것 같다.
오늘 나와 미소짓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영원히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건 분명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사람에의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말이다.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일 수 밖에 없음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일일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관계란 어쩌면 썰물과 밀물같은 거 아닐까.
때론 한 걸음 더 가까이, 때론 저만치 멀리..
그러나 결국 바다라는 거대한 우주를 벗어나진 않으며..

그래서 나 역시도 마음 따듯한 영화를 즐겨보는 것 같다.
결국 그 영화를 만든 감독도 배우들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걸테니까.
그들 역시 사람에의 희망을 버리지 말자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

"행복의 향기"
대작이나 꼭 봐야 하는 명작은 결코 아니지만
마음이 조금 지쳐 있을 때 보면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이다.
주제와 더불어 눈까지 즐거워지는 화면 가득한 요리도 마음을 푸군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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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2010.09.08 01:03:32 *.92.202.144
상해에서 조금 더 들어간 도시 소흥(샤오싱)은 루쉰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행복한 향기>라 기회가 되면 보고싶네요.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수희향님이 생각날거 같네요.
단군이가 저에게 생각지 못했던 여러 선물을 주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우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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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05:54:13 *.12.196.34
와.. 그런가요..?
그곳이 루쉰의 고향인줄은 몰랐어요. 재미있는 우연인데요..^^
영화속에서 주인공 왕씨가 그런 말을 해요. "소흥은 쪽빛 바다를 지닌 아름다운 물의 도시지.."라고요.
그런 곳에서 루쉰이 태어난 거군요..

우리별이라.. 문득 외국어 가족분들이 떠오르네요..
저야말로 그런 예쁜 이름까지 붙여주시고.. 넘치는 애정과 선물 받고 있어요...
지금도 그 날 밤 외국어 가족분들이랑 명희님 모습이 눈에 선해요..

명희님, 잘 지내세요. 건강히 잘 지내시다 시절인연 닿은 어느날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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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05:46:38 *.12.196.169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3>

#데미안의 밝음과 어둠의 세계 이어서...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밝은 세계가 더 이상 내가 추구해야 하고 달려야 하는 길이 아닌
또 다른 예속의 세계임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인과 아벨에서 선인과 악인을 뒤집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헤세는 말한다.

사부님의 생각을 빌려오자면 "밝음을 재정의"하는 것, 이 될 것 같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밝음 경영이 결코 세상 기준에서 말하는 성공가도를 질주하라는 의미가 아님은 누구나 알 것 이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스스로의 삶 속에 확장하라는 말씀.

내가 주인되어, 내 밝은 세계를 새로이 정의내리고 그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가는 삶.

말은 쉬우나 현실에서 실행하긴 결코 쉽지 않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선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에.
특히 초반, 나의 세계가 엉성하고 보잘 것 없을 때 사람들은 심한 심리적 자책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러했고, 아직까지도 어떤 부분은 여전히 발목을 잡기도 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직장을 그만두고 가장 힘들었던 느낌은 든든한 명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어딜가든, 누굴 만나던 나에 대해 긴 설명하지 않고 그저 한 장의 명함을 내밀면 그 명함이 알아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던 사회적 편리함, 예속감 그리고 또..

하루 두 시간씩 십년.
아마 그 십년 세월은 참으로 질곡의 시간들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루 두 시간씩 수련만을 한다고 해서 십 일년차가 되는 해부터 나의 삶이 180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십 년 세월을 걸어가며,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의 귀로에서 고민하고 갈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이란 늘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나의 세상에 돌을 하나 쌓았다고, 세상에서 쥐고 있던 돌 하나를 내려놓는 정량적 삶이 전개되지는 않으리니
무게추가 이리 기울고 저리 기움에 따라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은 어느 시점까지는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복에서 천직으로의 변화.
한 개인이 하루 두 시간씩 십년을 투자하면 저절로 가능한 일일까?
현실적으로 어떤 부분이 해결되야만 가능한 일일까..?

2백일차, 샤먼으로서의 나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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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18:23:44 *.12.196.169

Book review 65-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120쪽까지 읽기 완료

"나를 흥미롭게 해주는 것은 단지 나 자신에게로 도달하기 위하여 내 평생에 내가 떼어놓았던 발걸음뿐이다 (63)."
: 사유하는 사람치고 자기 내면 탐구의 여정을 거치지 않은 이가 있을까.. 어디까지 도달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작한다는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부모님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자기의 일을 처리하고 자기의 길을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64)."
: 내가 처음 부모님들도 체제에 순종하였을 뿐, 그로 인해 나로부터 원망을 받을 이유까지는 없다는 점을 처음 깨달은 것이 바로 니체의 초인 사상을 읽고.. 그 전까지는 내가 늘 목표를 지향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 부모님으로부터의 영향이라 탓하며, 나에 대한 당신들의 사랑은 늘 과소평가하였던 것 같다.. 여러모로 어리석은 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곤란을 속속들이 맛보는 법이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자기 삶의 요구가 주위 세계와의 극심한 싸움에 빠지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혹독한 싸움을 통해 얻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인생에 있어서의 중요한 지점인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숙명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평생에 단 한 번밖에는 경험할 수 없다. 그리고 매우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이 암초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고, 꿈 중에서도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실락원의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것이다 (65)."
: 한 번쯤은 죽음편지를 써 보는 것이 좋은 이유. 1차 세미나가 부족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어주면 좋으련만..

"나는 틀림없이 이것저것을 상상할 수도 있고 무조건 북극에 가고 싶다든가 하는 따위의 일을 공상해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소원이 나 자신의 내부에 깃들고 정말로 나의 존재가 완전히 그것에 의해 충만되어 있을 때에만 나는 그것을 실행할 수가 있고, 충분하고 강력하게 의욕할 수도 있는 거란 말야. 그러한 경우에 너의 내부에 의해서 명령 받는 바를 시험해 보려고 하기가 무섭게 그것은 잘될 것이고, 너의 의지를 좋은 말을 다루듯 구사할 수 있단 말이거든 (76쪽)."
: 시크릿의 "끌어당기는 힘"의 가장 잘못된 점은, 마치 우리들의 모든 욕망이 끌어당기기만 하면 이뤄질 것 처럼 독자들을 미스-리딩하였다는 점. 오류를 넘어서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고 현혹하는 방식이다.

원을 세우고, 그것을 간절히 바라면 염력에 의해 이룰 수 있으나 정말이지 조심해야 할 것은 그 (발)원이 결코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 충족시키기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

"사람이란 마치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거든 (87쪽)."

"신이 우리를 고독하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길을 많고도 많다. 이러한 길을 신은 그 때 나와 함께 갔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에 대한 향수의 시초였으며 그 각성이었다 (102쪽)."
:그렇지.. 그 지독하게 고통스럽던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내 방황이 시작되지 않았을 거고, 방황하지 않았다면 결코 수행이나 연구소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으리니... 세상 고통도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동전의 양면일 수 밖에 없음이겠지...

"지금의 이 '밝은 세계'는 어느 정도 나 자신의 창조물이었다. 그것은 어머니한테나, 책임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거나 기어 들어가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책임감과 자기 절제를 지닌, 순전히 나 자신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고 요구된 봉사였던 것이다 (107쪽)."
: 예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밝음 경영"이 바로 이 경우. 그러나 중요한 건, 자기 선택에는 자기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 진정한 자유란 쾌락의 극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아 두려움없는 상태라고 그리스인 조르바,즉 카잔차키스는 말한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서 나온 이름이니라 (데미안 속 노발리스 책 인용구)." 그것을 나는 그제서야 이해했던 것이다 (112쪽)
: 노스님의 법문 중에 이런 말씀이 계셨다. "인연이 어디서부터 생겨날꼬?" "......" "바로 마음자리입니다. 내 마음에 따라, 내 인연이 생겨나고, 내 인연이 내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운명은 여러분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진리는 동서고금 늘 단순하게 통하는 법.

"네 내부에 있는, 너의 생명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이미 그걸 알고 있거든. 우리 내부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지극히 유익한 일이야 (115~6쪽)."
:불가에서의 참자아, 니체의 초인, 캠벨의 천복, 융의 무의식 등등 수많은 깨달은 분들이 하고 계시는 말씀..
'나마스떼'라는 인사말도 참 마음에 든다.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인사드립니다.."
그래, 에고가 아닌 그 녀석이 세상 밝은 햇살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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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11:41:14 *.118.58.128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4>

Book reveiw 65-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145쪽까지 읽기 완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부분을 읽었다.
데미안의 정점 부분이라고나 할까.

데미안을 처음 읽은 것이 중학교 때였다. 청소년 문학 어쩌고를 통해 읽었는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다음이 20대 언제였던 것 같은데 역시나 이해불능. 조금 먼가 감을 잡을수도 있었을터인데 내용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이제야 비로소 헤세를 이해하게 되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122쪽)."
: 데미안을 읽지 않아도 한번은 들었을 법한 데미안 최고의 문장. 포인트는 과연 "아프락사스"가 무엇이냐이다..

"... 아프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뜻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대략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 과업을 지닌 일종의 신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24쪽)."
: 결국 알에서 깨어나와 이루어야 할 궁극의 목표는 대극의 합일이라..

"사랑은 그 양쪽 다였다. 양쪽 다였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천사인 모습인 동시에 악마였고, 남성과 여성이 하나가 된 것이며, 인간과 동물, 최고의 선이자 극단의 악이었다 (127쪽)."
:헤세의 사랑에의 정의. 사랑.. 내겐 여전히 어려운 그 무언가..

"우리는 우리 개인의 한계를 언제나 너무 좁게 그어대고 있어!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개성적인 것이라고 구별하고 다른 것과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만을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이 세계의 온갖 재고품으로 구성되어 있지. .... 우리는 우리의 영혼 속에 이제까지 인간의 영혼 속에 살았던 온갖 것들을 다 지니고 있다고 (142쪽).'
: 122쪽 문장이 데이안 중 최고로 유명한 문장이라면, 이 문장은 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장.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풍성한 영혼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경이롭지 않나.. 그러나 우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느끼지 못한다. 싱클레어가 그런 것 처럼..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 개인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내부에 온갖 것이 다 완비되어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요?" (142쪽)

"... 그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그는 한 그루 나무이거나 돌이며, 기껏해야 짐승에 불과하지. 그러나 이 인식의 최초의 불꽃이 번쩍 빛나기만 하면 그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거야 (143쪽)."
:"선의 황금시대"에서 스즈키 선사는 "깨달음"은 한 순간에 번쩍! 하고 다가온다고 말한다. 바람이 촛불을 끄는 바로 그 한순간일 수도 있고, 참선에 든 찰나일 수도 있고..

사부님께서 연구원 제자들에게 올 초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사람이냐? 아니냐?"라고 묻겠다고 하셨다. 사람의 기준은 다름아닌 "책을 썼는지 못 썼는지.."

혹자는 말하기를 변경영 연구원들은 책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강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스승님께선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냥 농담으로 혹은 강도를 높여 압박하기 위해 그런 말씀을 할 분이 아니시다. 그건 아마도, 책을 쓰기 위해선 (특히나 스승은 언제나 또 하나의 쓰레기를 양산하지 말고, 판매부수와 상관없이 일단 나로부터의 출발은 타인의 삶에 단 한줄기라도 필요한 혹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이어야 함을 누차 강조하고 계신다), 특히나 스승이 말씀하시는 책을 쓰기 위해선 "내 안의 나를 깨닫지 못하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안의 깊은 영혼, 거기 존재하는 또 하나의 존재"를 인식할 때 우린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걸어들어가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 나머지 삶을 살 수 있기에..

"너는 인간이냐, 아니냐..?"거기에 담긴 철학적 물음에 과연 난 어찌 대답할 수 있을런지..


"우리의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그 대화가 나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나 아주 놀랄 만한 것을 가져다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모든 대화는, 심지어는 가장 평범한 것까지도 나의 내부의 똑같은 지점을 살며시 그러나 끊임없이 망치로 두드리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들은 나의 형성을 도와주고 내가 허물을 벗고 알의 껍데기를 깨뜨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매번의 대화에서 머리를 조금씩 더 높이, 그리고 조금씩 더 자유롭게 쳐들어 마침내 나의 황금빛 새는 그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산산이 부수어진 껍데기 밖의 세계로 내밀었던 것이다 (143쪽)."
: 멘토에 대해 이보다 더 아름다고, 이보다 더 정밀한 묘사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한 가지. 이 문장을 읽으며 한편 지난 얼마간의 내 고민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사부님 말씀처럼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깨닫는 건 힘빠지는 일이다.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친구이지 않을수도 있고, 오늘 그토록 미운 적이 내일은 내 동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건 어딘지 재미없다. 역시 인간사는 니편 내편을 확실히 가를 때가 더 살 맛 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최근의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관계자체의 변화"였던 것 같다. 결국 같은 맥락일수도 있는데, 그래도 인간관계가 유기체적으로 상황에 따라 늘 변한다는 사실은 역시나 숨쉬기 어려울만큼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위 문장을 읽으며 두 가지로 생각이 자연스레 정리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는, 관계 역시 필요 상황에 맞춰 언제나 적절하다는 사실이다.

내 희망대로 흐르지 않는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아파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상황에선 그런 관계가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로 인해 나는 또 살아야 할 몫을 살았던 것이고.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내 삶도 흘러, 지금 오늘 이 시간엔 2010년 가을에 필요한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정리는 멘토란 모든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우"라는 말의 의미가 깊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사부님께 가장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지만, 오고가며 만나는 수없는 인연들 속에서도 분명 늘 깨달음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난 어딘가 허전하다. 진정 영원한 관계는 존재할 수 없는건지..

"자네를 날게 한 비약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의 특전이지. 그것은 모든 힘의 근원과 연관된 감정인데, 그럴 때에는 누구나 곧 불안하게 되는 법이라네. 대단히 위험하니까! 그러므로 대개의 사람들은 아주 흔쾌히 날기를 단념하고 법의 규정을 따라 보도를 걸어가는 편을 택하는 것이지. 그렇지만... 자네는 점차로 스스로 그것을 제어하게 되고 자신을 휩쓸어가는 보편적인 위대한 힘에 대하여 하나의 섬세하고 갸날픈 자기 자신의 힘이, 즉 하나의 기관이, 하나의 키가 맞서게 된다는 신기한 일을 발견하게 된 거지 (144쪽)."

"나는 나의 내부에 진화 초기의 기능이 깃들어 있음을 이상스러운 전율과 더불어 느꼈다 (145쪽)."

: 그렇다.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존재이다. 노스님 말씀처럼 거대한 운명의 흐름 속에서도, 흐름의 방향성을 통제할 힘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헤세는 이러한 힘을 "사랑의 힘과 창조력"에 근한다고 한다..

"... 그 본질은 영원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혼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사랑의 힘과 창조력으로 우리에게 느껴지기도 한다 (141쪽)."

데미안.
많은 아름다움을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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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20:18:36 *.118.58.128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읽기 완료

"...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는 대개 그의 형상 속에서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내부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니까 (152)."
: 그랬던가..! 알지 못했었으나, 진정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때때로 나는 그가 귀찮아져서 위압적으로 쫓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역시 내게 보내진 사람이고, 내가 그에게 준 것이 배가 되어 그로부터 내 마음 속에 되돌아오며, 그 역시 나에게는 한 사람의 지도자이거나 하나의 길임을 나는 느꼈다 (165~6쪽)."
:사랑과 기쁨을 통해서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야뉴스적 세상 모습일 뿐..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싸움도 없었다. 불화나 우정의 청산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다만 악의 없는 단 한 마디의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순간, 우리 사이의 환상은 알록달록한 파편으로 산산조각이 났던 것이다 (167쪽)."
: 관계가 끝이 날 때는 사실 내적으로 시작된다. 마침표란 어느 날 우연히 찍는 것 같지만, 기실 오래 전부터 이미 내면은 갈라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표면적인 헤어짐은 어쩌면 최종적인 확인 절차였을지도..

"그들은 한 사람의 인간을 죽이기 위해 몇 그램의 화약이 필요한가는 정확히 알고 있지만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법도 알지 못하고, 한 시간 동안이라도 만족해 있을 수 있는 방법도 전혀 모르거든 (183)."
: 인간 삶의 허망함이란..

"나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나는 단지 완전한 고독을 맛본 인간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협동 사회를 알게 되었다. 다시는 결코 행복한 사람들의 식탁이나 흥겨워하는 사람들의 축제에 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협동체를 보더라도 결코 부러움이나 향수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차음 나는 '표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의 비밀과 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표지를 지니고 있는 우리는... 각성한 자 혹은 각성하고 있는 자들이다 (195쪽)." 고독. 내면 탐구에 이르는 길..

"그 도약의 순간 그는 번개처럼 생각했다. 정말 되지도 않을 일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바닷가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뛰어올랐던 그 찰나에 굳고 확실하게 그 일의 성취를 믿는 정신력만 가졌던들 그는 하늘로 날아올라가서 별과 하나가 되었을 터였다 (201쪽)."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되는 거에요. ... 또한 요구해도 안 되지요. 사랑은 자기의 내부에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힘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끌어당기에 되는 거지요 (201쪽)."

"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소산은 내면의 발산이며, 새로이 태어날 수 있기 위해 미쳐 날뛰고 죽이고 파괴하고 죽어버리려고 하는 내부에서 분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한 마리의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이었다. 그 알은 이 세계였고 따라서 이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219쪽)."
: 대단한 헤세. 이 세계조차도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로 파악하고 전쟁을 이렇게 묘사하다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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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20:43:52 *.118.58.128

# 데미안을 읽고...

200일차를 "데미안"과 시작하게 된 건 행운이자 의미이다.
새로운 시간을 어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의미.

예전의 나는, 책 읽기와 같은 일상의 일에서도 늘 계획 세우기를 좋아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1번에서 몇 십번까지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만들어 놓고 그 순서를 꼭 지켜가며 읽고는 했다.

요즘의 나는 "우연한 흐름"을 상당히 즐긴다.
한 권의 책 읽기를 끝내고 나면, 다음 책이 슬며시 다가온다. 마치 "다음은 나야"라고 미소짓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젠 그 "우연한 인연에의 유희"가 즐겁다.

작년에 캠벨과 니체 그리고 카프라가 최고의 작가였다면
지금까지의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작가들은 카잔차키스와 헤세이다.

헤세는 니체와 융 그리고 동양사상의 혼합물이라 표현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데미안 한 권 안에 그가 품고 있는 세계는 넓고 깊다. 코엘류보다 훨씬 깊고 치열하다.
세월의 깊이가 묵직하게 더해진 고전의 품위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 본연의 철학적 고민은 결코 변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고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덮은 지금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편안함"이다.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눈을 뜨게 됨으로 인해 정말 많이 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2008년까지의 관계, 2009년의 관계, 2010년 상반기의 관계,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의 관계
이 모든 관계들이 시시각각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존재한다.
마치 일련의 점들처럼 그렇게 말이다..

그럼 그 점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주는 접착제는 무엇이 될까..?
모든 관계가 늘 딱딱 끊어져서는 안될터이니 말이다.

결국 답은 사부님의 칼럼 속에 있었다.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하며 자신의 꿈을 쫓는 사람. 그러면서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사부님께서는 이 말씀을 "좋은 놈 고르는 방법"에서 주셨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비단 배우자 고르는 방법에만 적용될까..?
세상 모든 관계 속에서, 혈연이라는 이미 선택의 범주를 벗어난 기타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생각한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연인이던 동지던 오래도록 함께 가는 이들은 결국 이와 같은 내적 공통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겐 우리들만의 "창조적 소수"를 일구는데 가장 기본적인 단초가 될 것 같다..

작년부터 새로운 삶으로의 여정을 떠났다.
관계란 오늘 한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다고 아파할 일도,
오늘 한 순간을 함께 했다고 영원을 속단할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 좀 알 것 같다.
아니 이제 좀 편히 받아들 일 수 있을 것 같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쌓여지는 함께 하는 시간들.
헤세의 표현을 빌자면 같은 표지를 지니고, 동일한 세계에 사는 시간들이 될터이지..
그 시간들이 결국 인연을 만들고 운명을 형성할지니..
그저 오늘 하루는, 오늘 내게 주어진 인연들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면 그걸로 충분히 벅찬 하루일진데..

데미안.
슬며시 다가와 진정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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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11:48:06 *.12.196.170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5>

200일차 시작한지 5일째. 아직까지는 새벽 108배를 잘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새벽 기상을 못할지도 모른다.
전날 정말 늦게 자는 어느 날, 내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로서도 알 수 없으니..
그럴 땐 말이다. 늦게라도 하자.
늦었다 건너 뛰지 말고, 언제 기상하더라고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는게다
(죽어도 100일내내 새벽기상을 하겠다고 결심하진 않는군. 샤먼이 이래도 되나 ㅋㅋㅋ).

100일 기도 드리고 싶다..
지난 100일.
매일 새벽 기상에 성공하지 못했고 매일 새벽 수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중한 100일이었다.

그 100일이 쌓인 뒤 시작하는 200일차여서 그런지
지난 100일차를 시작할 때보다는 여러가지가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만큼 이번 100일은 더욱 소중히 100일 기도를 드리고 싶다.
지금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겠지만,
우리 모두의 새벽 맑은 공기 속에 실어 아주 미세한 떨림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그럼...이쯤에서락도 200일차는 매일 새벽 기상하겠다고 결심 쪼가 해 보던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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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12:02:48 *.12.196.170

# 내가 읽고 있는 책들..

저 위의 글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올해 내가 최고의 작가로 꼽는 카잔차키스나 헤세 모두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니체와 동양사상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에 심취한 서구 작가들).

작년에 연구소 커리큘럼을 따라 태어나 처음으로 인문학의 기본 책들을 읽었다.
갈구하던 분야여서 그런지 깊이 받아들였고 조금이라도 내 안의 나와 만날 수 있게 해주려 노력했다.

올해는 반대로 풀어주고 있다.
우연히 만나 흘러가는데로의 유희를 즐기고 있다.
죠셉 캠벨의 신의 가면으로 시작하여 현재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젠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인다. 내가, 무엇에 그리고 누구에게 관심을 두는지가..

난 무엇보다 캠벨이나 카프라 혹은 호킨스 등의 인간 원형적인 부분을 다루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아직까지 정통 불교 서적이나 과학적 측면에서 다룬 심리학 서적보단, 좀 더 자연그래로의 원형을 다룬 서적에 손이 간다).

다음으로 랭보나 달리 등과 같은 천재들의 이야기.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뛰어넘었는지가 또 다른 관심사다.
끝으로, 카잔차키스나 헤세 등과 같이 동양 사상에 조예가 깊은 서구 문학 작가들의 작품
(신기한건, 이들 모두 니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 하긴, 작가들치고 니체에 뿌리를 두지 않은 자 몇이나 될까 싶긴 하다..).

무튼, 아주 희미하게나마 내 세계가 보일듯도 하다.
문화예술분야를 사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동양사상에 (결국은 자아성찰이 되겠지) 선을 닿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현재 내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자기 자신을 고집스럽게 파고든 천재들의 이야기던지.

아마도 내 안의 나가 무언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려는 첫 걸음을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다.

지금부터 내가 어떤 삶을 빚어나갈지는 정말 알 수 없지만
예전보단 스스로의 삶이 설레인다.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며시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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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1 06:46:41 *.12.196.38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6>

#죽음 편지를 앞에 두고..

언젠가 융은 자신의 거실 책상이 반으로 쩍 갈라지는 느낌과 함께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융이 얻은 깨달음이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의 깊이나 정도에 감히 비교할 순 없지만
살면서 왜 내가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몰랐을까?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같은데, 그저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문득..

죽음편지를 앞에 두고 난 불현듯 깨달았다. 더 이상은 회한은 없음을..
연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죽음편지를 행할 때 난 정말이지 목놓아 울었다.
내향적인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발표 때까지 두 가지 버전을 준비했었지만)
캄캄한 실내 어둑한 조명 아래 저 만치서 사부님의 모습이 뿌옇게 보였다. 이미 내 눈에선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기에..

그 때 난 알았다. 아.. 이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번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처음이지 마지막 기회임을..

회한.
온통 회한뿐이었다.
일도 관계도 그래서 내 온 삶은 회한으로 가득 차 캄캄한 절벽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도저히 그대로는 죽음이란 경계를 넘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젠 정말이지 많이 홀가분해졌다.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다고나 할까..
일이란 건 참 별거 아니다. 아니, 이렇게도 가벼울 수 있음에 내 자신도 놀랍다.

난 일적으로 아직 성공을 거둔 것도 돈을 번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는 추구함이 없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내 안에 깊게 빠져들어 나의 천복 속에서 충분히 행복했다..

그랬구나.. 이렇게 살고 싶어 그 긴 세월을 그토록 모질게 헤메며 돌아왔구나..
가여운 내 시간들이여..

지금부터 내게 열리는 길들은 혹은 주어지는 일들은
그냥 내가 이 길에 접어드니까 저절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뿐
그 어느 것도 내가 주장하거나 고집부리지 않는다.

다만 관계는 아직 좀 슬프다..
지나간 시간들이나
그 연장선상인 오늘까지도 관계는 좀 에린 듯 슬프다..
기도하면 조금 더 따스한 기운이 퍼져 나가지 않을까..

죽음 앞에서 삶은 소박해지는 것 같다.
그다지 많은 걸 바라지 않게 된다.

나 역시도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의 밥벌이만 해결되면 그만이다.

소박한 하루 세 끼 밥상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데
때로 우리들은 진수성찬을 위해 심지어 밥이 놓이는 밥상까지도 최고급으로 소유하기위해
하나 밖에 없는 내 자신을 던지고는 한다..

그보단 소박한 밥상 주변에 누구와 둘러 앉아 얼마나 따스하게 마음나누며 사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천복의 길을 쫓아 사는 건 이래서 삶을 변화시키는 것 같다.
뒤틀렸던 지난 내 삶의 주파수가 천복에 맞춰지니
나머지 불필요했던 일들이 하나씩 둘씩 거기에 맞춰 서서히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그에 따라 오고 가는 인연들도
함께 하는 시간들도 조금씩 더 진정성을 쌓아가는 것 같다..

계절은 가을을 향해 다가가며
서늘함을 내보이는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리지만
나는 좋은 이들과 따듯한 모닥불 피워 놓고 밤새 이야기 할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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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1 22:44:00 *.12.196.182
#단군 1기 200일차- 1차 세미나를 마치고..

두 번째로 죽음편지를 대하지 않았다면 자칫 가벼이 지나쳤을 깨달음 하나.
천복과 천직의 차이.

천복은 아무런 보상없이, 아무런 결과없이
그 자체로 나를 다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천복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뭐라하던 그 자체로 행복한 그 무엇말이다.

천복이 밥벌이화된 것이 천직인데
진정한 천복이라면 수련을 거듭할수록
천직에의 길이 조금씩, 저절로 열리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천직이란 것이 세상부귀영화를 한 순간에 누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천복을 행함에 있어 적어도 그 일을 수련하는 동안만이라도
세상 근심이 사라지고, 오로지 거기에 빠져들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에 따라 천복의 발견 단계를 건너 뛰고 천직을 찾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안타깝지만, 이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천직을 누리고 싶다면 천복을 찾아야 하고
천복을 찾고 싶다면 자아를 찾아야 한다.

제 아무리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방법론을 이야기한다해도
결코 비껴갈 수 없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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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미나 끝나고 뒤풀이를 하였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웃은 날 같다. 누구누구들 덕분에 ㅋㅋㅋ

단군 1기, 200일차 천복 부족원들.
정말이지 천복에의 여정에 참 고마운 인연들이 아닐 수 없다..
인연 자체만으로도 감사한데, 웃껴까지 주시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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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06:08:06 *.123.145.12
잠시나마 무거운 책을 책상앞에 내려놓으시고 웃으시는 모습이 참보기 좋았습니다. 다시금 각자의 시간으로 다들 귀환했지만 웃음의 시간 또한 소중한 기억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한자락을 차지하겠지요. 선배와 책은 개인의 인식수준의 변화와 확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일진데 이번 모임을 통해서 두가지를 한꺼번에 다 얻는 행복함을 느낍니다. 역시나 개인의 길을 세우고 만들어나가는 고독한 여정속에서 선배의 길과 지나온 흔적을 더듬어 볼수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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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11:52:48 *.12.196.75
제가 내향성이 강해서 친해지기까지는 조금 진지합니다^^::::
그러나 진지함은 저란 사람의 한 부분이고, 다른 엉뚱한 부분들도 많습니다
(가령... 무거운 책뿐만 아니라 만화책도 좋아한다거나 하는 점이요 ㅋㅋㅋ).

어제 세미나에서 글고 뒤풀이에서 한규님과 조금 더 친해지게 되어 좋았습니다^^
어제처럼 순수하게 웃음을 나눈 시간은 즐거운 접착제로 오래 함께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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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08:19:15 *.201.121.157
은미님과 함께 많이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저 역시 그런 웃음에 기뻐했습니다.

단군 5기에 합류하고자 뇌물용 선물박스 하나 두고 갑니다.
(넣어두세요~~ 넣어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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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11:56:36 *.12.196.75
사실 제가 웃음이 없는 사람은 아닌데, 프로젝트 성격상 그 동안은 심하게 진지 모드였나봅니다.
반성하겠습니다 ㅋㅋㅋ

그 전까지는 저희 집에는 그림자도 안 보이시더니만
어제 이후로 바로 선물? 뇌물?을 주시다니 ㅋㅋㅋㅋㅋ

덕분에 어젠 정~~~말 유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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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19:56:51 *.12.196.233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7>

영화이야기 6-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 (2009년 프랑스 영화)



소년원을 전전하던 코르시카와 아랍계 혼혈인 주인공 말리크가 
19살 때 프랑스 감독에 수감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프랑스 영화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메드가 예언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이탈리아계 코르시아인들과 아랍계들이 권력 다툼을 벌이는 프랑스 감옥을 빌어
백지 상태의 한 인간의 성장 과정과 자기 삶에서 어떻게 주체성을 찾아가는지에 대해 풀고 있다.

천애고애에다 글도 모르는 19살 주인공 말리크.
거의 백지 상태나 다름없는 그를 감옥 안에서의 세력들이 가만둘리 없다.

자신이 살기 위해 억지로 반은 동족이나 다름없는 아랍계 범죄자를 살해하고
그 댓가로 코르시카계 폭력배의 조직으로 들어가 보호 아닌 보호를 받으며
주체성을 뺏긴 대신 감옥 안이지만 편안한 생활을 보장받는 생활이 시작된다.

흥미로운 건, 이 다음부터의 전개되는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이다:
하나는 하수인으로서 삶 Vs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조금씩 구축해나가는 삶

문맹이었던 그가 충실한 하수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감옥 안에서지만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움을 그에게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그가 살해한 아랍인, 레예브.

그래서였을까? 살해 이후 레예브는 종종 혼령으로 말리크 앞에 나타나 앞날에 대한 예시를 해주곤 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메드에게 그러했듯이.

지식을 습득하는 한편, 말리크는 서서히 감옥 안의 세계 즉 세상이 돌아가는 권력의 이치에 눈을 뜨게 되며
빠른 속도로 강자의 법칙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코르시카계 두목이 시킨 출소 전 마지막 지령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반쪽 고향인 아랍계로 돌아가는 기회로 만들어
코르시카계 두목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이 과정에서 배신의 댓가로 감옥 내에서도 형편이 가장 끔찍한 독방에 40일 낮밤을 감금된다.
그렇다. 모함메드가 광야에서 영혼의 정화기간을 가졌다고 하는 40일이다.

출소 날.
19살 백지 상태와도 같았던 소년 말리크는
아랍계 조직의 거물이 되어 감옥을 나와 세상으로 걸어들어간다.

통상적인 사회적 선과 악이라는 시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화이다.
그 개념자체를 내려 놓고, 감독의 말처럼 "남성의 원형"만을 탐구하며 봐야 하는 영화.

인터뷰에서 감독은 "남성의 원형"을 가장 잘 표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부단한 자기성장을 통하여 촘촘히 짜여진 조직과 룰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말리크.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 (그래서 영화 제목이) 바로 "예언자"이다.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 이름하여 예언자.

예전같으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봐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지루해했을 남자들의 감옥 세계.
이젠 남자들의 세계라기보다는 지난 수억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인간 원형에 대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사부님도 "원형으로의 회귀"를 논하고 계신걸까..
그래서 그 어느 제자도 통제하거나 깨우침을 알려주시기보단 스스로 깨치기를 기다리시는걸까..
그래서 게리 해멀의 경영모델을 최고로 꼽으시는거겠지..

창조적 소수 모델을 만들고 있는 사자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간다.

창조적 소수.
개인의 삶이 극대화되면서 함께 모여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관계 모델.

말리크가 남성의 원형이었다면, 창조적 소수에서 여성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걸까..?
영화 전체가 컬러판 누아르 영화같았다던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문득문득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장면들 중에서도
주인공 말리크가 발을 담그고 하염없이 바라보던 고요한 바다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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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3 08:04:45 *.12.196.28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8>

Book review 66- 데이비드 호킨스의 "나의 눈"

"의식 혁명"에 이어 두 번째 접하는 호킨스의 책.

의식혁명은 내게 그야말로 의식 세계에 대한 또 하나의 놀라움을 안겨준 책이었다.
영성가 호킨스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에너지 레벨에 따라 분류하여 설명해주고 있는데
내가 가장 놀랐던건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의식 레벨이 200이 넘어서야 한다는 점.
그런데 이 분기점을 넘기 위해선 다름아닌 "용기"가 필요하다는 포인트에서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의식수준 200이 안되는 경우, 우리가 흔히 예측할 수 있는 분노, 자책감, 후회, 경쟁심 등의 의식들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성숙한 인간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단계가 다름아닌 "자존심"이란 부분에선 거의 털썩 주저앉다 시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자존감과 자만심을 어느 정도 착각한체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었기에..

그렇기에 그 무거운 세상 치장들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안고서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성숙한 의식의 인간이 되려면 에고를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니.. 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놀랐던 것이 500이란 경계점.
500을 넘어가면 어느 정도 통찰, 즉 깨달음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들중 많은 사람들이 이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

즉, 영혼의 성장에 있어 지성 혹은 이성은 통찰을 앞설 수 없다는 점이다.
철학자들 중 유일하게 이 수준을 넘어서는 사람이 소크라테스 정도이고 심리학자 중에선 무의식 세계를 다룬 융.
그 외에는 500이 넘어가는 세계에선 거의 현자들의 출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랑 혹은 기쁨 등의 의식 수준이 500을 넘어간다.
하지만 이 역시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사랑 혹은 기쁨의 수준과는 다른 세계.
쾌락적 기쁨이 아닌, 고요하고 잔잔한 희열에 가까운 세계라고나 할까..
사랑도 감성적 유희가 아니라 배려와 포용이 담긴 그런 사랑이고..

경전처럼 무슨무슨 가르침에 대해 설파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내 나름 보이지 않는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머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1차 세미나에서 승완 선배가 말한 것처럼, 우리들의 천복은 의식 수준 540 (기쁨 레벨)을 지향하기를 바란다.
만약 우리가 행하고 있는 새벽수련이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혹은 사회적 필요에 의한 행위라면
의식수준 200 아래의 일을 행하는 일이기에 그 일 자체로 나의 에너지가 확장되거나 희열을 느끼기 보다는
매일 새벽이 의무감 혹은 책임감만을 느낄테니 말이다.

무튼 그리하여 나의 경우, 공저 집필을 시작하였으나 아직은 진도가 느리고 밀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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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3 08:14:58 *.12.196.28
# "나의 눈" 프롤로그 중 무찔러들어오는 글귀들:

"우리는 <창조>가 자체의 내적이고 신적인 지시 혹은 의도들을 이행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의도를 운명이라도 말해왔는데, 운명은 곧 창조가 가진 잠재력의 드러남이요, 사전에 존재하는 조건들 (전통적인 산스크리트어로 '구나스'라는 세 가지 덕, 곧 행위, 앎, 저항을 뜻하는 라자스, 사트바, 타마스의 삼덕)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바람직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조건이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선택을 통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창조의 힘은 <신>의 영역이다 (24쪽)."
: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 혹은 연기법과 동일. 즉, 사람들의 운명은 자신들이 행한 카르마에 의해 결정되기에, 미래는 오늘 현재 내 행위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 인과율 너머에 있는 창조의 본성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앎>의 의식에게 <참 존재>의 선물로서 그 모습을 보인다. 모든 것은 그들의 창조의 신성 속에서 본래 성스럽다. 이원적 지각의 비판적이고 차별적인 측면이 사라질 때 모든 것의 절대적인 완전함과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25쪽)."
: 대가일수록 스스로 작품을 창조했다 말하지 않는다. 작품이 내게 왔다는 표현이 맞을 수 밖에 없음이다..

"우리는 좋다거나 나쁘다는 용어들조차도 인간의 욕망에서 유래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 관찰 행위에서 인간적인 판단이 제거될 경우 끊임없는 진화 과정 속에서 '변화하는' 형상들만 보일 것이다. 본원적으로 바람직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들만. (25쪽)."

"비극과 승리는 단지 이원적인 마음의 한계 안에서만 일어날 뿐이며 독자적인 실체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각의 한계 안에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듯하다 (26쪽)."

"<실재의 세계>는 시공간과 형상 너머에 있으므로 하나의 '사물'이나 '사람'이 짧은 한 순간만 존재하는지, 천 년 동안 존재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몇 년, 아니 불과 며칠을 더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존재가 시간 속에서 경험되는 것이 아니므로 한낱 공허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진실이다 (26쪽)."

"지각은 에고의 눈이다. 그 눈은 체험할 수 없는 무한한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유한한 것으로 바꿈으로써 시간과 공간, 지속, 차원, 위치, 형태, 한계, 개체성 등의 지각을 낳는다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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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4 13:14:54 *.12.196.129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09>

#시처럼 살다간 사람..

사부님께서 당신 묘비명으로 삼고 싶어하시는 글귀다.

사부님의 묘비명이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다.
앞으로 수십년간은 그럴 일 없을테니 다행이라 여기며
그 때 쯤이면 나 역시도 세상에선 이미 멀어져 있을테니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그런 날은 분명 상상되지 않는다..

스승이 말씀하시는 "시처럼 살다간 사람"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고 계실까..

당신이 표현을 빌자면 "매일은 결코 같은 날이 아니고, 인간은 단 한 번밖에 없는 <찰나>를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인간이 한번밖에 없는 순간을 산다는 것은 비극 속의 기쁨이다. 매 순간 다른 삶을 살기에.."라고 하신다.

어제 강단 위에 서신 스승의 모습은 내가 본 강연들 중에서도 가장 자유스러워 보이셨다.
예술극장답게 검게 드리워진 커튼을 배경으로
마이크와 칠판 하나, 단 두 개의 소도구를 이용하여
시와 같은 이야기로 청중, 아니 관객의 마음 속에 촉촉히 스며드는 시인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기까지
그와 같은 내공을 갖추기까지
스승은 매일 새벽 일어나 그 많은 간접적인 삶을 경험하고 사유하여 당신의 것으로 풀고 계시다.

진정성이 담긴 언행일치.
내가 사부님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스승이 말씀하시기를
시처럼 자유롭게 살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일과 관계,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신다.

일.
밥벌이.
밥벌이 걸려 넘어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한 가지 분야에 통달하라 하신다.

통달의 의미가 무엇인가.
바로, 내 분야에서 "통찰력"을 지니는 거.

그리고 사부님께서 정의하시는 통찰력의 정의가 그 분이 어디까지 와 계신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통찰력이란 다름아닌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데이비드 호킨스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에고가 다 깍여 나가면
그 때 비로소 인간이 참자아가 하늘의 뜻과 맞닿아 내 안에서 발현할 수 있게되어 볼 수 있는 육안 너머의 세계.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통찰력"이란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된다는 것이 어찌 테크닉한 기술적인 것 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일까..

다음으로 스승이 말씀하시는 관계.
이 역시도 지금까지 들어왔던 강연보다 더 도약하신 말씀을 주셨다.

첫째, 우리 모두 안에는 신이 있다, 고 하신다.
그러므로 내 안의 신이 발현할 때, 그 때 비로소 나는 도약할 수 있다.
통찰력과 통하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우리 모두는, 사람과 사람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라 하신다.

끝으로, 1인 창조기업이 10년 전에는 컨셉에 불과했다면, 현재는 선택이고, 10년 뒤에는 대안이 될거라 하신다.
사회적으로 정상에 이르는 또 하나 10% 사다리를 만드는 게 이상이라 말씀하시는 스승님.
그러나 그 사다리는 결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 "나의 세계" 하나쯤은 갖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냐고 반문하시는 스승.

몇번의 강연 속에서
어제의 강연이 가장 좋았다.

편하고, 자유스럽고 그러면서도 철학의 향기를 흠씬 품고 있는
스승님의 모습 그대로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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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4 13:27:33 *.12.196.129

Book review 66- 데이비드 호킨스의 "나의 눈" 64쪽까지 읽기 완료

"시간 감각이 사라지면 모든 욕구와 결핍감도 사라진다. 무한한 고요함을 동반한 <참존재>가 모든 정신적, 감정적 활동을 대신한다 (33쪽)."

"시간은 빛의 속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자의적인 관찰점이다. 우주를 설명하려는 우리의 습관적인 시도는 사실 우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자의적인 관찰점들에 대한 설명이나 평상적인 마음이 굴러가는 방식에 관한 도면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35쪽)."

"지각은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무엇에 "대해서'만 알 수 있으므로 스스로를 제약하는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 과학은 단지 우리를 앎의 문턱까지만 인도해줄 수 있을 뿐이다 (35쪽)."

"사람들은 자기의 실재에 대해서 전혀 알거나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그들은 프로그램화된 허구적인 신념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 무의식적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고전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카르마'가 된다 (36~7쪽)."

"에고는 두려움의 소산인 듯하며, 에고가 지향하는 목표는 경험의 다음 순간을 통제해서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에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과거에 대한 후회 사이에서 요동하는 듯하다 (37쪽)."

"영적인 진화는 새로운 어떤 것을 획득함으로써가 아니라 기존의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일어난다 (52쪽)."
: 모든 현자들이 공통적으로 설파하는 진리에 이르는 길: 비움의 철학

"계시란, 많은 장애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거나 혹은 그것이 저절로 무너짐으로써 좀 더 큰 맥락이 갑자기 드러나고, 그렇게 됨으로써 내적인 빛으로 증험되는 확장된 의식의 장을 환하게 밝히고 드러나게 하는 영적인 상태를 뜻한다 (52쪽)."
: 계시에 대해 듣던 중 가장 명쾌한 정의. 비우고 깍아내려 참자아가 발현될 수 있는 상태.

"영적인 스승은 말뿐만 아니라 그 말에 동반된 높은 의식의 에너지로도 이로움을 준다 (61쪽)."
: 어제 스승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죽은 나무에서도 좋은 냄새가 난다. 과연 죽은 사람에게서도 그런 좋은 향이 날까.."

의미심장한 말씀이시다.

수행을 하면 가장 먼저 터득하게 되는 단계가 다름아닌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는 거다.
그 전에는 무관했던 자연, 특히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숲에 있게 되면
그들의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심지어 도심의 아스팔트 길 위에 끼어선 핀 꽃 한송이에서도..

그런만큼, 사람들에 대해선 어떠할까..
에너지장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의외로 중요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창조적 소수에 대해 저절로 생각들이 흐르고 있다.
사자 프로젝트 중에 어떤 부분을 가져다가 어떤 틀로 놀이를 시작하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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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09:35:02 *.12.196.162
요한님의 굿바이에 대한 생각 넘 좋은데요^^
현실상처에 대한 굿바이와 세상과의 작별로서의 굿바이..
제목에 대한 너무 좋은 리뷰인데요^^

말씀처럼 그런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작별하지 않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세상 모든 만물에겐 시작이 있듯 끝이 있나니,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살고, 굿바이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머 이런 거겠죠..? 요한님 덕분에 영화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갈 수 있네요. 좋은걸요~ ^^

이런 우연이! 저 지금 용재 오닐 음악 듣고 있는데요!
저도 이분 연주 좋아해요^^
자신의 삶처럼 어딘가 애잔한 듯 하면서도 진한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것 같아요..

무튼, 요한님 매일매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 되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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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요한
2010.09.17 06:49:01 *.90.31.75

굿바이에 대한 소개를 여기에 올려두셨군요!

수희향님의 글이 <굿바이>를 더욱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소감을 조금 덧붙이면
저는 <굿바이>가 두가지 의미가 있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죽음을 통한 현 세상에 대한 굿바이가 그 하나고, 다른 것은 내가 부여잡고 있었던 세상에의 이미지, 사람들에 대한 애증, 자신의 내적 상처로 부터 <굿바이>이지요. 주인공은 자기 무의식 중에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슬픔과 무기력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자의 <굿바이>를 경험해가면서 후자에 대한 <굿바이>도 조금씩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둘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하는 '작은 돌'은 어쩌면 그 둘간의 차이가 그렇게 작다는, 그리고 인간의 마음도 그렇게 작지만 어쩌면 섬세하다는...그런 것을 내포하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영화에서도 살짝 암시되었지만, 나는 만약 영화의 속편이 있다면 어쩌면 주인공이 정말로 훌륭한 첼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끔 납관사 일을 부업으로 하면서요 ^^ ... 아니면 반대일까요? )  그는 굿바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깊은 내면에서 연결되는 그런 지점을 파악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교감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아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것을 전달하는 (수희향님 표현대로) 수단을 택하지 않았을까...합니다.

개인적으로 비올라이스트 리차드 용재 오닐의 연주를 좋아하는데,  그의 슬픈 가족사와 또 한편 애정의 가족사가 그에게 깊고 풍부한, 심금을 울리는 비올라 연주를 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에게 슬픔은 예술을 만들어내고 그 예술은 깊은 힘을 가지고 있구나...생각했습니다.

아침 일찍 촉박한 시간에 댓글을 남기려니 조금은 두서가 없지만...^^;; 
암튼 오늘도 <굿바이>정신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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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5 15:20:01 *.118.58.83
주인공은 어떻게 장의사? 염을 전문하는 단어가 뭐였더라??
무튼 그 일을 천직으로 받아들 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 끝에 놓여있는 죽음에의 통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이 일이었던만큼 당연히 처음에는 천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과의 대화 말이다.
"생물은 생물을 먹고 산다. 이 녀석들, 식물은 다르지. 그런데 이 음식들 말이야. 너무 맛있다.
.... 미안하게도.." 캠벨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제 이 영화를 볼 때는 개인적인 이유로 죽음만이 유달리 부각되어 다가왔지만
오늘 커피를 마시는데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천직이란 거 말이다. 어떤 형태를 띄고 우리에게 다가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 말이다.
어떤 형태로 내 업이 다가오더라도 중요한 건, 그 안에 나의 천복이 들어있느냐가 아닐까.

그러니까 주인공에겐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생명 고귀함에 대한 통찰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요 천복으로서
첼로 연주나 장의사나 업은 그저 그것을 실어나르는 수단이요 방법에 불과할 뿐이라는 거 말이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하면 어떠리. 자신은 그 일을 하면서 이미 충분히 진한 삶을 느끼며 사는데..
내 안의 신이 살며시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건네오는 일이라면 그게 천직이겠지..

내 안의 신.
사부님께서 이런 표현을 쓰시는 거 월욜 강연에서 처음 들었다.
점점 더 캠벨의 범우주론에 깊이 들어가시는 듯.

오늘 하루, 내 안의 신을 일깨워 세상 다른 신들께 인사드린다.
나마스떼..
서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어느 맑은 가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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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4 21:53:04 *.12.196.129




# 영화이야기 7- 굿'바이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9년 작품)

인간이란 참 묘한 존재인 것 같다.
아주 가까운 사람을 떠나 보내도 정작 내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거
여전히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 고마웠다는 말. 그리고 사랑했었다는 말.
시간이 허락되었을 때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슴에 차고 또 차서
내 마음을 온통 돌무덤으로 만들었었다..

영원히 그런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또한 나의 미련함이었다.

언젠가 나도 죽음이란 문을 통과하여 또 하나의 경계를 넘으리라.
지금 잠시 경계선 이쪽과 저쪽에 갈라져있지만
인간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순간을 영원처럼 살고 싶다.
생의 한 순간, 순간을 아끼고 또 아끼며
순간을 영원처럼 사랑하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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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5 20:45:09 *.118.58.83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10>

에공. 공저 1 & 2장을 썼는데...심각하다...
아무리 초고의 드라프트만 잡았다고는 하지만 창피하다^^::::

낼은 일단 1장을 집중적으로 보완한다.
그나마 건진게 있다면 어찌 써야 할지 쓰면서 좀 감을 잡았다고나 할까. 

넘 충격을 받아 홧팅을 외칠 기운도 없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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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07:30:27 *.201.121.157
제가 좋아하는 수희향님.
그냥 한 번 와 봤어요.

수희향님의 단군일지는 제가 쉽게 집중할 수가 없어요.
워낙 깊이가 대단한 일지라서.. ㅎ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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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19:53:04 *.118.58.14
감잡은 줄 알았는데 막상 써보니 그게 또 여엉~이요^^::::

허나! 저 예쁜 토끼와 윙크까지 해주며 응원해주시는 명희님의 "우리별" 한마디에 다시 기운차렸어요. 낼은 더 열씸, 홧팅할게요^^ 근데, 저렇게까지 응원해주시니 저 가끔 엄살부리고 싶어지는데요~ ㅋㅋㅋ

먼별 샤먼도 좋지만, "우리별 샤먼"도 참 예뻐요^^
명희님, 워 아이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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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2010.09.16 18:37:25 *.92.203.197
어찌 써야할 지 감을 잡으셨다면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은데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매일 조금씩, 꾸준히 글쓰는 일에 길을 내어가기를 기원합니다.
단군1기, 2기 챙기시느라 바쁘시죠? 게다가 자신의 수련도 해야하구요.
그래도 수희향님은 2010년을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단군 수련 덕분에 자기 삶의 변화가 시작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요. 저를 포함하여!
우리별! 힘 내세요, 홧팅, 자여우(加油)!emoticon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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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08:09:41 *.12.196.39
부족원들 단군일지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부족장님 뵈면서
마음 속으로 감사하고 있었어요..^^

찾아주심 감사드리며,
에... 제 단군일지는 깊은 거이가 아니고 지루하죠 ㅋㅋㅋ

부족장님도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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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19:46:50 *.118.58.14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11>

어제 쓴 원고를 다 날리고 1장 전체를 다시 썼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제보다 분량은 그럭저럭 한 꼭지의 형태에 가까워졌지만 흡족함과는 거리가 멀다.

두 가지가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첫째, 자연스레 흐르지 않는다는 거.
둘째, 여지껏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내용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없다는 거.

지금까지 짧은 칼럼 하나를 써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이럴까..?
연구원 시작 이래 1년 넘게 내 안에 있던 주제에,
칼럼과 단군일지를 통해 끝없이 읽고 쓰던 글감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몰입의 강도가 약한가..?
뼈대가 약해서인가?
아님, 겨우 두 번 쓰고 뭔가를 바라는 나의 자만심일까?

셋의 결합체일수도 있겠다..

일단 대략의 얼개를 잡았으니, 내일은 오늘 쓴 1장을 다 날리지는 말고
그 뼈대 위에서 수정, 보완한다. 아니, 원점에서 다시 생각한다..

아.. 향기 좋은 커피 생각 간절하나 이 밤에 큰일날 생각이다.
유혹을 이겨내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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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17:18:20 *.124.233.1
아....
수희향 누님의 글의 내공과 깊이는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계신 것 같아요.
배우고 또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한편으론 두렵기도 또 한편으론 설레기도 합니다.
9월 14일의 사부님 강연후 쓴 단군일지는
누님의 한구절 한구절이 제 마음을 무찌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매일의 수련을 통해 도달해야 할 구체적인 목적지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너무나 기쁩니다. ^^ 너무너무 기뻐요! ^^

즐거운 금요일 입니다.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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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20:45:25 *.12.196.162
ㅋㅋ 경인씨 그거 알아요? 제 단군일지가 깊은게 아니고요
제가 "인용"하는 "사부님 말씀"이나 "책 문구"들이 좋은 거 야요 ㅎㅎㅎ
일종의 착시현상인거죠 ㅋㅋㅋ 

저는 경인씨 200일차 단군일지가 참 좋아요.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 안에 많은 사유를 담고 있어요..^^
아내에 대한 진정한 사랑도 보기 좋고요^^

경인씨도 지금의 그 행복, 그 성찰 늘 이어가기 믿고 계속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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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20:54:02 *.12.196.162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12>

책 전체에 대한 물음과 함께, 내가 맡은 세 개 장에 대해서도 다시 각을 세워 보았다.
2장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 마무리하진 못했다. 낼 이어가기로 하고..

그러나 오늘 한 가지 중요한 걸 깨달은 것 같다.

단군일지에 인용문을 흩어놓는 것 보다는 역시 각 책마다 인용문 파일은 별도로 있어야 한다는 것.
더 최근에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인용문 정리가 따로 되어 있지 않으니 책을 쓸 때는 상당히 힘들다.
오히려 작년에 읽었던 책들이 내가 원하는 구절을 찾기가 훨씬 용이하다.

그러니까, 단군일지에는 아주 대표적인 인용문 한 두개를 끄집어 내는 정도로 하고
전체적인 내 느낌만 정리하고, 지금부터라도 인용문은 다시 별도로 정리하자.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번 사부님 강연에서 사부님께서는 책 주제에 따라 현재 읽는 책을 읽다 적합한 구절이 나오면 주제별로 묶어 두신다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솔직히 마음에 딱히 와 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글을 쓰면서 문득 깨달았다! 가능하다.
나의 경우, 현재 공저를 진행 중이지만, 이게 끝나면 단독 진행할 주제가 정해져 있다.
나 참 바보다. 그렇다면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공저 주제에 필요한 인용문과 단독 진행에 필요한 인용문을 각 주제별로 이미 파일링할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역시 모질라도 한참 모자란다^^::::

무튼, 이제라도 "글작업과 연결한 책 읽기"를 다시 정리하자면:
1. 정독하기: 인용문을 철저히 책별로 별도 파일로 정리한다 (연구원때처럼 내용 위주로 말고, 핵심 포인트별로 정리하자).
2. 사유하기: 단군일지에는 전체적인 느낌만 정리한다- 즉, 책 전반에 대한 나의 사유를 다시 한번 내 언어로 정리하며 내용을 내 것으로 소화한다.
3. 내것으로 활용하기: 향후 진행할 책의 주제가 정해져 있다면, 책별 인용문을 정리하면서 각 주제에 맞게 별췌해놓는다. 그래서 다음 책을 쓸 때, 다른 책들과 내 사유를 적절히 잘 빚어낼 수 있도록 한다.

확실히 책을 읽고 칼럼을 쓰는 것과
하나의 주제를 갖고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별개의 작업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

천복에서 천직으로의 이동.
거기에는 분명, 또 다른 경계가 있음이다..


"경계에서 물러서지 말거라.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경계를 뛰어넘어야 비로서 너의 세상이 열린다
"라고
사자프로젝트에서 주신 사부님의 말씀이 새삼 들리는 것 같다.

지금까지 다른 일들도 그러했던 것처럼
사자 프로젝트에서도 그러하고 이번 공저도 그러하고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때, 그 경계를 밀고 나아가야 하는 것 같다.
그때가 아마 그런 때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내 일에 빠져들어
단순히 하고 또 하고를 반복해야 하는 시점.

그러다보면 무언가 저절로 깨닫는 일도 있게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단순히 그러나 아주 깊이 책쓰기에 빠지면 되는 거다..
아무 딴 생각없이. 그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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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8 10:02:30 *.12.196.9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13>

지난 100일차 수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혼돈스러움이 엿보인다.
그러니까, 책 읽기와 같은 개인적 수련보다는 기획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 같다.
어쩌면 100일차 출사표에서부터 기획일 병행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은데..

이번 200일차는 조금 다르다.
새벽에는 정말 "수련"이 하고 싶어졌다.

4시 45분에 기상해서, 잠이 깰 때까지 잠시 출석부에서 부족원들과 소식을 주고받다
이내 108배를 시작하고, 기도가 끝나면 바로 글쓰기.
즉, <새벽기상- 108배- 글쓰기 새벽수련>의 단단한 틀을 만들고 싶어졌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이룬 것처럼 뿌듯함이 온 마음 가득 차오른다 ㅋ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매일 느껴보고 싶다..

이것을 형성하는데 200일차 들어 가장 큰 걸림돌이 다름 아닌 "책읽기"임이 나타나고 있다.
확실히 나는 책읽기를 글쓰기보다 좋아한다. 정말이지 타고난 취미인 것 같다.
책만 잡으면 몇 시간이고 어느 정도 만족할 수준까지는 계속 읽게 된다.

그래서 요 며칠 과감히 책읽기를 짬짬이 하는 걸로 시험 중이다.
더불어 기획 일도. 아무리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눈 질끈 감고 참자 ㅋㅋ

새벽 수련 기본틀이 잘 잡히면, 오히려 9시~6시 그리고 저녁 시간을
심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더 충만하게 잘 보낼 수 있을거라 믿기에
새벽 시간 가꾸기를 정성스레 진행하고 있다.

다행히 기상과 108배에 이어, 글쓰기 수련까지 조금씩 자리가 잡히고 있다.
서두르지도 말고, 헤이해지지도 말고 그냥 날마다의 습관이 될 수 있도록
내일도 또 한 걸음 걸어가보자..

오늘도 가을 햇살은 나무 냄새와 어우러져 평온함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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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8 23:44:53 *.201.121.157
축하 메시지 보고 놀러 왔어요. ^0^
레알 감사 드린다는..


9월 18일자 공식직함은 이걸로 해주세요.

변화경영연구소 최초 수료증 보유자이자 구선생님과 저녁만찬을 같이 했던,
전설을 만들어가는 단군1기 200일 여정 최초 부족장
(남들이 보면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말이 나오고도 충분하겠다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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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9 22:42:32 *.118.59.12

최초 수료증- 저녁 만찬- 전설- 최초 부족장 중얼중얼~
포인트 찝어 외우는 중이야요~ ㅎㅎ
(천복부족원  아니면 남들은 심오한 의미??를 이해 몬할꺼라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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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9 22:09:16 *.118.59.12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114>

#우리는 영웅이자 조력자^^

캠벨의 영웅 여정말이다.
거기서보면, 한 평범한 인물이 모험에의 소명을 수용하고 영웅이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여러 장애물과 위기를 극복하는데, 이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조력자"이다. 그런데 이 조력자들이 영웅들에게 주는 도움의 내면은 다름아닌 "용기" 이다.

윌리엄 브리지스의 변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변환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끝-중립지대-시작>의 3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끝"이란 다름아닌 "과거와의 결별" , 변경영 식대로 표현하면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되겠다 ㅋ

다음으로 중립지대가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브리지스의 말에 의하면 모든 현자들이 "광야"에서 지낸 시기가 다름아닌 중립지대라고 하는데
꼭 현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이 영웅들 역시 이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중립지대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변환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필요한 것 역시 익숙한 것들의 저항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밀고나가는 "용기"와 "끈기"라고 한다.

자, 이번엔 이 두가지 이야기를 얼마 전에 나누었던 데이비스 호킨스의 의식 혁명 수준과 연결해보자.
호킨스의 표현에 의하면 "성숙한 인간"이 되는 의식수준이 바로 200이고, 이 경계를 넘어가는데 필요한 최후의 조건이 바로 "용기"라고 하였다.

세 가지 이야기 어딘가에 연결고리같은 것이 느껴진다...

우리 천복부족들은 지금 혼자만의 중립지대를 겪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때로는 혼란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호하기도 한 사막같은 그 곳.
하지만 우리에겐 조력자들이 있다. 바로 우리 자신들. 서로에게 사우가 될 수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영웅 신화에나 나옴직한 "조력자"들인 것이다. 19명의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

그래서 우리 서로는 서로에게 중립지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영웅들이 앞으로 전진하는데 조력자들이 꼭 부여해주는 "용기"를 서로에게 북돋아 주면서
매일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게다.

브리지스의 말에 의하면 중립지대를 빠져 나오기 위해 절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
때론 고독할 만큼 충분히 나를 만나고
과거와 진정으로 결별하고 새로운 세계로 향할 그 때가 자연스레 올 때까지
영웅 여정을 쌓아 올리면 된다고 한다.

우린 영웅이자 조력자들이다..
아름다운 천복부족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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