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2단계,

두

  • 김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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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9일 17시 36분 등록
IP *.68.144.3

댓글 143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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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04:17:27 *.68.144.13
1일 
 
 1월은 인문학 관련 저자 2명을 추렸다. 신영복과 이어령 두분이 나왔다. 손에 잡힌 책은 이어령의 책이다. 방학이라 오전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긴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이틀에 한 권꼴로 책에 깊게 들여다 볼 생각이다. 3시 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가량 블로그에 글을 쓰고 '젊음의 탄생' 을 읽고 정리하였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쉽고 간결해서 읽기가 편하다.

개미가 먹이를 찾는 이야기가  생각을 가지게 한다. 먹이를 찾기까지 흔적을 보면 많은 흐트러짐과 정처없는 방황의 걸음을 가진다. 그러나 먹이를 발견한 뒤의 개미는 과감하게 일직선으로 돌진한다. 저자는 꿈에 다가서는 과정도 이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발견된 먹이를 향한 과감한 행동' 에 잠시 생각이 잠긴다. 나는 발견을 했으나 행동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너무나 완벽성을 기하려 하고 이상적인 모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물어본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내 것인지 아닌지 확인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 일이 진짜 내것이라면 나의 내면에 울리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나를 반성하게 한다. 내것에 확신을 가지고  과감한 시도를 하는 나를 그려본다. 내일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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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04:15:08 *.68.144.13
2일

기상 시간과 취침시간이 명확하지 않다. 10시에 자야 한다. 그래야 피곤하지 않다. 방금 일어나는데 조금 힘겨웠다. 나중에 기숙사가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자는 습관 그대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글쓰기 1시간, 책 읽기 1시간과 30분 정리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정리하는 시간을 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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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6:19:45 *.12.196.20
동재님 저에요, 수희향이요^^

출사표가 마치 옛날 우리 선조들이 과거 시험볼 때 펼쳐 놓던 그 무언가가 연상되기도 해요.
아마 동재님이 좋은 책에 빠지겠다고 해서 인것 같아요^^
벌써부터 그리 좋은 스승들을 만나니 앞으로가 정말 기대되는 동재님입니다.

추운 겨울 건강조심하면서 홧팅하세요. 그럼 어떤 책을 읽는지 저도 즐거움을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홧팅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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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04:18:45 *.68.144.13

3일

10시에 잠을 자야하는데 시간을 자꾸 지키지 못한다. 어제 저녁에는 책을 읽다 침대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깨어나니 10시 20분이어서 씻고 다시 잠들었다. 책 읽다 잠들면  깊게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컴퓨터를 할때보다 더 그렇다.

3시 30분에 일어났다. 출석글을 올리고 글을 한바탕 썼다. 어제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자서전도 잠시 남겼다. 컴퓨터를 끄고 이어령의 젊음의 탄생을 마저 읽었다. 키워드들이 이미 한 번 쯤은 들어봄 직한 것이다. 마음속으로 간직해야할 중요한 매세지들이 많다. 이어령에 대해 깊이 공부하려고 그가 이야기 하는 저자들을 함께 적고 있는데 이 분 정말 다독가이고 범위가 다양하다. 

6시20분 쯤 책을 다 읽고 7시까지 정리를 하였다. 방학이라 허용되는 시간이다. 하루에 2권 정도를 생각하니 마음 단단히 먹고 읽어야 할 것이다. 정리는 1시간안에 끝나지 않았다. 7시40분-5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밑줄을 그은 것들을 옮기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작업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단군 일지를 언제 써야 할지도 의문이다. 단순한 작업일지로 무엇을 했다 라고 쓰기에는 아쉽다. 무엇을 했다보다 어떤 것을 느꼈다를 서술하고 나의 생각을 집어 넣는 글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쉬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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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04:17:13 *.68.144.13
4일

글쓰는 시간이 많이 늦었다. 일어나서 인터넷 다른 것을 한다고 지체되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듯한 느낌이다. 평소에 자던 시간보다 늦어서 그럴지 모르겠다.

활용할 시간은 많은데 생활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마음 먹은데로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 만은 적잖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문제다. 무엇을 스트레스 받는가. 내가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너무 소비하는 것이 아닌지, 해야할 일들이 있으나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자꾸 다른 것에 현혹되지 말자. 불필요한 것은 잘라내 버리고 중요한 것에 푹 깊게 집중하자. 그것은 무엇일까. 책 읽기와 글쓰기 영어,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의 계획들이다. 잘하고 있다. 흐트러진 하루는 다시 되잡으면 되는 일이다. 잘해보자.

이어령 책에서 신영복 책으로 바꿨다.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저자를 깊게 읽어보라는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 저자의 선택에 신중 해야 할 것 같다. 처음 내 손을 잡은 것은 반짝이는 매세지로 찬 이어령의 책이었다. 젊음의 탄생까지는 괜찮았으나 두번째 책을 읽을때 무엇인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잔잔한 깊이있는 깨달음을 원하는 것 같다. 동재 네놈이 이제 스님이 되려하는구나

결국은 이어령에서 신영복으로 바꾸었다. 지난 나침반 수업 후 여행을 간다고 할때 승완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도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이었다.  인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그 분의 깊음을 알리라. 나는 그저 익숙하지 않았던 에세이 식의 글을 한줄씩 읽으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생각이 막힐때면 흐름을 터주는 책이도 했다.

잘못된 것이고 아니다로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너무 쉽게 바꾸는 것이 아닌가. 놓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의 인내심을 의심하며 억지로 읽던 두번째 책을 과감히 집어 던졌다. 그분에게 배울 마음도 있지만 나의 마음이 기우는 것은 다른 쪽인것을 어쩌리. 이 선택이 올바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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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4 04:20:12 *.68.144.13
5일

글을 쓰려는데 왜이리 피곤한지 모르겠다. 잠을 자는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다. 10시에 잠을 자는 거도 흐트러졌다. 어제는 컴퓨터 때문에 그렇고 그 전에는 다른 일을 섞어서 그렇다. 내가 원하던 중심을 잘 못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는데 방학 시간만큼은 내 것으로 제대로 활용을 해야한다. 피곤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도 글을 쓰고 오늘 해야할 일을 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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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5 04:18:44 *.68.144.13
6일

가슴이 뛴다. 한 시간여를 울고  글을 쓰기를 반복했다. 샤콘느 켜놓고 한참을 들었다. 음악을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이것이 억지 울음인가를 수 없이 물어봤다. 눈을 감고 머리로 그리며 그 장면을 글로 묘사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코가 막힌다. 옆에 자고 있는 룸메이트가 신경이 쓰였다. 시간이 지나 그것도 잊었다 억눌려진 것에 맥이 터져 눈물이 쏟아진다.  한참을 울며 글을 쓰고 나니 후련하다. 내 안에 확신이 없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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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07:26:38 *.21.107.71
처음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메인화면을 지키고 계신 분께서 깜짝 놀래켜 주시네요. 새벽잠이 달아나겠어요 ^^

어젠 제가 참 좋아하는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큰 힘이 되었다는 발표를 들어서 반가웠어요. 저도 그 책을 통해서 사고의 폭과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확장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두가 각자의 고민을 갖고 살아가지만 그 때마다 선물처럼 '책' 나타나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면 참 좋겠습니다. 계획하신 기간동안 좋은 책들과 만나 인생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줄 사고와 신념 갖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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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17:44:16 *.118.58.146
김동재라는 한 사람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20대에 넘기에는 아주 커다란 산 하나를 넘었습니다.
지니고 있는 무한 잠재력이 세상과 멋지게 만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천금처럼 사용하실거라 믿고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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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21:34:57 *.68.144.13
7일
  수행을 시작해야할 시간에 잠을 자러 갔다. 오전 8시가 지나서야 일어났다. 가져온 노트에 글을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세미나때 느꼈던 내용과 술자리때 선생님이 조언해주신 내용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글로 다시 썼다. 집에 내려가는 버스에서 노트에 썼던 내용을 다시 컴퓨터로 옮겼다. 블로그에 비공개로 써두었던 아침 일기의 일부를 단군일지로 옮겼다. 몰아서 붙여넣기를 했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글을 올릴 것이다. 한 주 활동들을 정리해보니 책에 관한 수행내용이 거의 없다. 반성한다. 내일부터 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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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04:11:02 *.68.144.13
8일

  잠결에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내가 무엇인가 즐거워 웃은 기억은 난다. 선생님의 '20대의 자기실현' 이라는 말이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잡힌다. 매세지들을 잊어버릴까 술기운에 휘갈겨놨던 것을 꺼내보았다. 밥 뚜껑안의 밥알의 그림이 다시 생각을 나게 한다.

  세월이 젊음에게를 집어 세개의 거울부분을 다시 읽었고 의식세계의 그림에 관심이 생겨 신화의 힘에서 그 부분을 찾아 읽었다. 젊은 내가 더 이상 파고들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일정선의 균형을 잡을 것이다. 건강한 나를 만들기 위해 깊게 판 우물을 밖으로 올려보낼 것이다. 구본형 선생님이 말한 거울속 또 다른 나의 얼굴을 만들 것이다.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애늙은이는 되지 않을 것이다. 치열하게 읽고 고민하고 움직인다. 시시하게 안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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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의 세계보다 크고 깊지만 만일 우리가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연구하여 점점 더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간다면 원의 내부에 가로로 그려진 선이 밑으로 내려올 것이다. 의식의 세계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오른쪽 그림처럼 의식 세계가 무의식 세계보다 커지만 '나의 중심과 '내가 알고 있는 자아'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드디어 만나게 된다. 그러면 정말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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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04:24:29 *.68.144.13
9일
모닝페이지와 감사일기를 쓰고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176 페이지까지 읽었다.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와는 소명에 대한 설명의 깊이가 더 느껴진다. 마음속에 더 와닿는다. 새벽시간에는 손에 잡히는 것을 읽었다. 죽음편지 작성이후 신영복 선생님 책은 몇일째 표지만 보고 있다. 읽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소명에 관련된 이 두 권의 책을 지금 제대로 읽고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하루 나의 그림을 그린다. 새벽에 일어나 내 안으로부터 나온 글로 이상이라는 밑그림을 그린 뒤 책으로 숨결을 불어넣는다. 해가 떠오르고 집을 나서면 이상의 밑그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붓질하며 산다. 잠들기전 완성된 나의 하루를 되돌아볼때면 기쁘다. 행복하다. 주도적으로 나의 시간을 이끌 수 있는 현재가 감사하게 느껴진다. 내일도 일어나 글로 꿈을 그리고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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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
2011.01.19 21:11:39 *.121.41.236
아름다운 젊음을 봅니다.
아름다운 아픔을 맘 속에 품고, 눈물 한가득 담고
자신을 향해 아름다운 채찍질하는, 성찰할 줄 아는
그런 아름답고 아름다운,
 내 젊은 날에 감히 흉내도 내지 못했던 그런 화사한 젊음을 봅니다.

그리고 고대합니다.
그대의 아픔마저 승화되어
반짝이는 눈동자로 아픔을 노래할 날을.
진정 그대의 정진에 축제 열리는 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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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04:20:40 *.68.144.13

10일

  일어나 글을 쓰고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다 읽었다. 졸음이 와 서서 읽었고 소리내어 읽었다. 100일차때 졸릴 때면 언제나 했던 방법인데 이제는 습관처럼 되었다. 책을 읽다가 혼자 중얼 거리기도 하고 설명을 하듯 손짓도 해본다. 문장 사이에 생각이 넘쳐날때는 노트에 내용을 휘갈겨놓는다. 이런 몰입의 시간이 기쁘다.  오늘도 이 글을 쓰고 난 뒤에 책을 읽을 것이다.

7시쯤 책 정리를 마치고 '인생의 겨울'이라는 부분에 공감이 되어 짧은 글을 썼다. 장희형과 함께 만들고 있는 리더에 글을 바로 올릴까 하다 문장을 조금 수정해서 올려야 할 것 같아 초고의 글만썼다. 책을 읽다 나오는 문장들은 대부분 나의 삶을 비쳐보는 내용이 많다. 인생의 겨울에 관한 부분이 나올 때는 나의 겨울이 언제였고 그때 모습은 어떠했는가를 생각나게 한다.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을때마다 나 자신을 비쳐주고 생각을 가꾸게 해주는 손거울. 이보다 값진 거울이 어디있을까. 책이 좋고 이 시간이 고맙다.
 
  죽음 편지 이후 스스로 달라진 기분이 든다. 내 안에 억눌려 있던것을 눈물과 함께 뽑아내서인지 가슴이 후련해지고 새로운 기운이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구본형 선생님 말씀 중 변화를 위해서는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연구원 수업 초기에 죽음 편지를 쓰는 이유를 알겠다.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만든다. 새로운 나를 창조하기 위해 과거에 묻혀있던 나를 꺼내 죽인다. 죽음에서의 눈물은 과거의 나를 씻겨내는 성수처럼 느껴진다. 눈이 마르도록 나를 씻어낸 만큼 더 나은 모습을 만들것이다.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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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라
2011.01.19 22:47:03 *.161.82.229
동재님..^^ 우연히 오랜 시간  함께한 소라입니다.
그날 잘 들어가셨죠?
한번 뵈었다고 친숙하야 동생~~하며 편안히 장난이라도 칠까 들어왔는데..
동재님의 출사표화 단군일지들..
성실함으로 꿈을 그리고 하루 하루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숙연해 지네요~
역시 나라를 구하실 분이 분명하옵니다. ㅎㅎ
동재님 외유내강!! 화이팅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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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4:18:52 *.68.144.13

11일
오랜만에 잠을 잘자고 일어났다. 패턴이 몸에 잡히는듯 하다. 일어나자마자 다른 활동들을 섞지 않고 글쓰기를 바로 하고있다.

어제는 4시에 일어나 책을 보다 잠을 잤다. 의지력이 약해진 것인지, 몸이 추워서 컨디션이 나빴는지 모르겠지만 의지박약이다. 반성한다. 아침시간에 잠을 그대로 자버리면 오후 시간까지 흐름이 나쁘게 따라가는 것 같다. 아침을 먹는 시간이 늦어지고 뒤에 활동까지도 하지 않게 되버린다.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학기간이지만 규칙적인 생활흐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 같다.
 

어제 하루를 되돌아보면 특별한 일을 하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하루 무엇인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하루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작은 노트로 시간대별로 적어볼 때면 나의 하루가 참 짧고 어제 내가 무엇을 했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을 따져야하는 시간이지만 나는 나의 시간 씀씀이를 알차게 사용하고 싶다.

지금은 고민의 한 가운데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큰 변환점이 될 수 있다. 머리 속에 복잡하게 떠올리는 이 질문들은 나 자신을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하고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가지게 한다. 자기분석 과정이 조금 지치는 경향이 난다. 너무나 오래해왔고 활동을 하지 않았다. 과거의 나를 발견하는데 시간을 써서 현재 움직이지 않는 나를 발견하면 안될 것이다.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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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04:18:34 *.68.144.13

12일
알람을 잠시 손에 쥐고 그대로 자버렸다. 10분 늦엇다. 그대로 글을 쓰자. 어제는 리듬이 좋았다. 잠을 깊게 잘자서 그런 것 같다. 오늘은 기숙사의 시끄러운 방송 때문에 깼다. 새벽 늦게 방송을 하는 줄 알았는데 11시 30분에 했다. 1시간 30분 만에 잠이 깬 것이다.  원래는 신경도 못 쓰고 잤을텐데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신영복 함께 읽기>를 읽었다. 소리내어 잠시 읽기도 하다가 읽기를 마쳤다. 글 한편을 짧게 쓰고 아침시간을 기다렸다. 운동을 나갈까 생각하다 시간이 남았는데 7시까지는 책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집중력이 조금 떨어져서 문제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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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04:17:58 *.68.144.13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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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저자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때는 그 사람에 대한 자서전식 글을 먼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희석님이 신영복 읽기를 시작할때 이 책을 처음으로 추천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책은 저자의 생각과 삶을 기록한 것이다. 책에 녹여있는 저자의 이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삶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할것이다. <신영복 함께 읽기> 라는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과 삶을 다양한 시야로 알게해주는 좋은 지침서이다. 1부에서는 ‘신영복 앓이’ 를 가슴에 담은 지성인들의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지인들이 그의 삶을 더 다깝게 이야기한다.

 대부분 저자들이 교수님이다. 때로는 문체가 어렵고 눈에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있어 조금은 버겁게도 느껴진다. 오늘 새벽은 1부의 4 단락을 읽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영복으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듯하다.마중물같은 이 책이 고맙다. 한동안 나도 신영복 앓이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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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04:18:26 *.68.144.13
14일

  뒤늦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스승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신영복 이라는 단어에 선생님을 붙이지 않고 글을 올린 것이 갑자기 죄송스럽게 생각된다. 새벽에 4시 50분 부터 7시까지 읽었다. 2부에 신영복 선생님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다 어려운 부분이 많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책장을 넘겼다. 3부에 선생님의 스승부터 제자까지 이르는 글을 읽으니 그의 삶을 옅볼 수 있었다. 어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선생님의 책을 대하고 싶다. 벌써부터 이렇게 기대가 되는 것은 분명 칭찬과 감탄이 가득한 이 책을 읽어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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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04:18:01 *.68.144.13
15일

오전 책 읽기까지는 좋았으나 이른 7시-8시 사이에 무엇을 할지가 고민이 안난다. 바로 씻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자꾸 피곤해서 졸리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 싶다. 따뜻한 이불로 들어가 푹 쉬고 싶다. 나만의 약속을 정해놓자. 저녁 시간에는 컴퓨터를 잡지 않기로 오프라인으로 살기로, 책과 글과 같이 잉크냄새가 나는 값진 시간을 보내자

매일 하루를 되돌아 보았을때 값지고 알찬 시간이 없는만큼 무의미한 것이 없을 것이다. 어제는 반성한다. 오늘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피터드러커의 말을 잊지말자. 신이 보고 있다. 떳떳하게 신, 당신이 만든 김동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보여주자. 그리고 나 스스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반성하고 되잡을 것이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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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04:18:53 *.68.144.13
16일

3시에 일어나 책 읽기를 진행하였고 잠시 졸려 침대에서 일어나 일다가 조금 잠이 들었다. 수행하기로 한 6시30분까지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을 것이다. 하륜이 녀석이 왠 일인지 일찍 일어난다. 방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괜히 신경 쓰인다. 새벽시간은 유일하게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일 수록 좋은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직 무엇인가 내 안에 것에 확실하게 결정된 것이 아니라 손 앞에 잡히는 것만 해결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 고민의 마지막 연장은 어디서 끝났을가. 파라슈트 까지 갔던 것 같다. 교육을 하겠다고 했으나 내가 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질문에서 지쳐 자꾸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것이 아닌가. 복잡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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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6 04:17:19 *.68.144.13
17일
 이래서는 안된다하며 정신이 번쩍든다. 매일 아침 사람들의 번쩍이는 불들이 나를 반성하게 한다. 더 열심히 움직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다시 일어나 일지들을 읽다보면 한 없이 나를 되돌아보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내가 단군을 하는 이유이리라. 자기절제, 자기 관리라는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방학이지만 너무나 많은 욕심에 중요한 것 하나 끈기있게 이끌어내지 못한 하루가 나를 괴롭힌다. 무력하게 보낸 오늘 새벽을 반성한다.  그토록 염원하던 이 시간의 소중함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지금 나를 깊게 채울 수 있는 가장 값진 기간이 아닌가. 더 치열하게 물고 늘어질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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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7 04:25:14 *.68.144.13
18일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 효과적인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는 것이 언제부터 지체되었고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이런 기분이 들때면 언제나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일정했던 패턴을 잠시 바꾸었다. 일어나서 바로 글을 쓰기 전에 몸을 움직이며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예전에 새벽마다 자신을 깨우는 의식이라는 글을 보며 왜 저런 것을 할까 생각했는데 일련의 나의 하루를 충만히 보내겠다는 작은 마음다짐의 시간일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모닝페이지와 같은 글쓰기 였지만 몸이 쳐지면 정신도 함께 느려지는 것 같다. 샤워를 하니 피곤했던 기운이 많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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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04:22:51 *.68.144.13

19일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기전 온갖 잠념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어제 보았던 것이 생각나고 반복적으로 들었던 음악들이 귓가를 맴돈다. 고요하게 느껴졌던 이 시간이 조금은 혼란 스러워진다. 어제 낮 오후 시간에 너무 자극적인 활동들만 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음악이 기분을 좋게하고 마음을 즐겁게 할 지는 모르지만 고요했던 분위기와 마음을 흐트리게 한다.  

저녁 시간 만큼은 소리를 죽이고 책과 내면에 만날 새벽을 미리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요하게 집중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잠을 조금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10시에 자서 4시에 일어나면 너무 많이 진다. 3시에 알람소리를 들었지만 이불속을 나오지를 못하였다. 몸이 게을러 진 것인지 정신상태가 약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신영복 함께 읽기> 를 다 읽었다. 드디어 <강의>다. 책을 기다리다 떨리는 기분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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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9 04:16:33 *.68.144.13

20일

책장을 넘기자마자 가슴에 도장이 콱 찍히듯 문장이 다가온다  

周公曰 嗚呼 君子 所其無逸 주공왈 오호 군자 소기무일

先知稼穡之艱難 乃逸 則知小人之依 선지가색지간난 내일 즉지소인지의

相小人 厥父母 勤勞稼穡 상소인 궐부모 근로가색

厥子 乃不知稼穡之艱難 乃逸 乃諺 旣誕 궐자 내부지가색지간난 내일 내언 기탄

否則 侮厥父母曰 昔之人 無聞知 부즉 모궐부모왈 석지인 무문지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합니다. 

군자는 무일無逸(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건데 그 부모는 힘써 일하고 농사짓건만 그 자식들은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함을 취하고 함부로 지껄이며 방탕 무례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방학이 되어 여유로운 시간이 많다. 그러나 나태해진 나를 되돌아본다. 원인을 환경과 의지부족이라 생각하여 매일 다그쳤다. 오늘 나를 세게 친 문장이 있으니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합니다 ‘ 라는 선생님의 말씀이다. 읽는 동시에 ‘아’ 하며 책상을 쳤다. 불편함이라는 글자앞에 편안함 속에 나태함으로 둘러쌓인 나를 되돌아본다. 너무나 안락한 환경에서 나의 나약함도 함께 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기간 위기의식이 누구보다 높았고 열심히 달려온 것도 불편함이라는 것이 함께 와서 내가 지치지 않고 뛰어오지 않던게 아니였던가.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각성할 수 있는 불편함이란 무엇일까. 학습하는 자리부터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읽기 조용하고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기숙사 열람실이 좋은 조건이지만 혼자 있어 긴장을 하지 않는다. 점심시간 이후 피곤해서 잠시 잠을 자는 것도 길게 늘어져서 자는 내가 아닌가. 긴강의 문제이다. 집중도는 방학이전에 활동이 다분했던 그때가 더 집중력이 높았던게 생각난다.  

현실적인 활동도 해야겠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간간히 나가는 것에 그다지 큰 현실적인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밖으로 나가 치열하게 느껴보는 시간을 주일에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 여름 선생님 말씀 중에 ‘일을 하지 않으면 정신이 피폐해진다 ‘ 라는 말이 생각난다. 일을 하더라도 일 같지 않은 것. 드물게 드러나는 일들이 현재의 나의 나태함을 만든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환경을 바꾸고 몸을 움직일 것이다.

+ 그나저나 중고등학교 때 게임만하며 놀다 한자공부를 하지 않은게 지금와서 뼈저리게 후회된다. 책에서 글 해석을 배경지식과 함께 쉽게 풀어써주시지만 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엇인가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답답해서 화가 날지경이다. 시부분들은 음과 뜻을 찾아서라도  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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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0 04:23:32 *.68.144.13
21일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보다 집이 크면 그 터의 기가 건물에 눌립니다. 고층 빌딩은 지기를 받지 못하는 건축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땅에 건물을 너무 많이 쌓아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터와 집의 관계뿐만 아니라 집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립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 듯한 집이 좋다고 하지요.

자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그 ‘자리’ 가 그 ‘사람’ 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 의 자리’ 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 밖에 없습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능력과 적성에 아랑곳없이 너나 할 것 없이 ‘큰 자리’ 나 ‘높은 자리’ 를 선호하는 세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70%의 자리’ 가 득위의 비결입니다.

   스스로 불량품으로 만들지 말자. 여백이 없으면 상하게 된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창조적 공간과 예술적 공간이 도는 '여백’ 에 주목하고 싶다. 과거의 내가 비쳐진다. 지나칠 정도로 많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매달았던 그때.  쉬는 시간 없이 빡빡하게 박혀있는 목표과 그 것에 스스로를 내던져지는 나의 모습. 열성적인 것은 좋았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현재의 ‘자리’ 를  스스로 소화할 수 없는 100의 양으로 나를 파괴한 것이 아닌가.

‘자리’의 의미가 나에게는 ‘삶’ 으로 다가온다. 열성가들은 속안에 있는 열이 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뜨거움이 있어, 좋은 원동력이 되지만 열이 지나치면 스스로 녹게만드는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00을 넘어 150 까지 만들어내어서는 안될 것이다. 활동을 한만큼 그 활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모색. 항상 기억해두자. 지금의 나는 득위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는가. 삶으로 부터 배운다. 삶을 통해 나를 더 개선시킨다는 의미도 여백이라는 여유의 시간을 비워두어 스스로 균형을 잡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가슴을 팍팍 쳐주며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선생님의 책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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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04:13:11 *.68.144.13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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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1 04:21:21 *.68.1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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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04:37:17 *.68.1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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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04:37:40 *.68.1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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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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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04:39:07 *.68.144.13
29일
움직이지 않던 돌을 다시 굴리는 것처럼 힘겹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몇번을 다시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몇일째 이어지는 감기가 몸을 더 괴롭힌다. 연휴기간 책 읽다 몇번을 잠들어버린 내가 부끄럽다. 일어나 출석은 한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는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천천히 돌을 밀어내면 된다. 예전처럼 빠른 속도를 가진 흐름을 기대하는 것보다 찾아간다고 생각하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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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8 04:21:53 *.68.144.13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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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9 04:21:33 *.68.144.13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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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04:23:03 *.68.144.13
32일
gogo 오늘도 최선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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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04:25:09 *.68.144.13
33일
불안불안하다 내일 세미나가 가장 걱정이다. 어서 나아야하는데 아직도 목이 잠기고 머리 무겁다. 언제나 계절이 바뀔때 날아들어오는 이 지독한 녀석은 매번 나를 괴롭힌다. 이번에는 심하다 할 정도로 길게 끄는구나. 힘없는 강아지마냥 책을 쥐고 펴고를 반복하다 침대로 기어들어가는 나를 보니 한심하게 짝이없다. 약없이 나으려는 것도 미련하게 느껴지는구나 오전까지 진전이 없으면 병원이라도 가야할터다. 중요한 시기에 이러니 몸도 마음도 아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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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2 06:07:39 *.68.144.13
3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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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3 17:09:12 *.68.144.13
3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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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21:26:59 *.68.144.13
으 이렇게 지켜봐주시는 줄도 모르고 한 없이 미뤄두었던 제 일지들을 보니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가 숙여집니다ㅜ
놓여진 끈을 다시 매어 잡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수희향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아닌가 생각되요 감사합니다 더 힘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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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17:04:09 *.12.196.158
아름다운 청년 김동재~ 그냥 이렇게 함 불러보고 싶었음^^
몸은 나아졌나요? 아프지 마삼. 아니, 아프든 안아프든 몸 잘 돌보기^^

조용한 성품의 그대야 안에 최상주의자, 성취자, 초점에 질서에 탐구심까지..
주옥같은 원석들이 보석으로 꿰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어떻게 개발할지를 물었는데 세미나 들으며 답을 좀 찾았는지 궁금하군..
이런 방법은 어떨까..?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모습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대야의 5가지 강점 테마를 어떻게 활용할지 역으로 그려보는 방법..
동재씨는 이미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윤곽은 잡기 시작하였으니 이 방법도 나름 괘안을 것 같은데..^^

초점과 질서에. 성취자와 탐구심이 함께 하니 뭐든 반드시 이루어내리라는 믿음이 감.
거기다 아름다운 생각, 아름다운 성품까지 지녔으니, 그대야의 최상주의자는 진정 예쁜 빛을 발할것같음.

김동재..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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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21:15:09 *.68.144.13
36일
2011년 2월 14일 월요일

1장 신화와 현대 세계

 

25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정신의 문학과 친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 일어난 일이나 그 시각에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만 겨우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26

예전에는 그리스 문학, 라틴 문학 그리고 성서와 관련된 문학이 교육 과정의 일부를 이루었어요. 하지만 교육 과정에서 이런 게 다 떨어져나간 지금은 신화에 관한 정보를 얻을 길이 깜깜해지고 말았어요. 앞에서 말한 고전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 놓으면 그 이야기가 나날이 일어나는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터인데 말입니다. 이런게 없어진 것을 보니 우리가 대단히 중요한 것을 잃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 우리에게는 앞에서 말한 것 같은 문학을 대신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지요. 인류의 삶을 떠받쳐오고, 문명을 지어오고, 수천 년 동안 종교의 틀을 지어온 고대의 정보는 심원한 내면적 문제, 내면에 관한 신비, 내면적인 통과의례의 문턱을 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길을 가는데 도로 표기가 없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는 도로 표지에 상응하는 걸 만들어서 길잡이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신화라는 주제를 마음에 두게 되면 우리는 대신할 것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신화라는 것에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전통의 느낌, 깊고 풍부하고 삶을 싱싱하게 하는 정보가 솟아 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계와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을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 옛 이야기를 하고, 읽는다는 말씀이군요? 내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28

‘완전’ 한 것은, 보고 있으면 조금 싫증이 난다, 이 말입니까? 그럴수밖에 없지요.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보고 듣는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인간이나 불사신이라는 느낌을 주는 대신, 아슬아슬한 것,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인간미.. 이게 사랑스러운 겁니다.

 

 

29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 천복을 따르는 것,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감정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나의 천복이 아니겠는가. 연금술사와 비슷한 내용이다.

 

 

30

선생님께서는 신화의 정의를 ‘의미의 모색’에서 ‘의미의 경험’으로 바꾸셨는데요? ‘삶의 경험’ 이라고 하기로 합시다. 마음은 의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답니다. 꽃의 의미는 무엇이지요? 선 이야기에는 꽃과 관련된 석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석가는 그저 꽃 한 송이를 쳐듭니다. 그런데 좌중에 딱 한 사람이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석가를 향해 웃어 보입니다. 석가라는 분 자신은 ‘이렇게 해서 오신 분’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에는 의미가 없어요 우주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벼룩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모두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지요. 그겁니다. 모이어스 씨, 당신이라는 분의 의미는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 뿐입니다.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을 어떻게 경험하실 수 있었습니까? 신화를 읽었지요.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시 시작하지요. 자, 다른 민족의 신화를 읽어야 하지,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읽는 것이 아니랍니다.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보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에게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신화를 읽으면 경험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41

신화는 문학과 예술이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이건 대단한 것이지요.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것으로서, 한번 빠져볼 만한 것이 신화지요. 신화는 우리의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43

신화는 바로 지금 이 시가에 우리가 사는 삶과 구조에 어울리는 수준으로도 삶의 본을 제공해줍니다. 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시간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삶의 모습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50년 전에는 온당했던 것이 지금은 온당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어요. 과거에는 미덕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악덕이 되었고요. 과거에는 우리가 악덕이라고 하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필요악이 되어 있는 경우도 수없이 볼 수 있어요. 도덕적인 질서는 지금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사는 실제적인 삶의 도덕적 필요성과 발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형편은 그렇지 못해요. 구 시대의 종교는 다른 연령층, 다른 족속, 다른 가치 체계, 다른 우주에 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다보니 이제는 역사와도 발이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린 세대는 앞 세대에게서 배운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고, 정작 들여다보아야 할 내면은 무시한 채 엉뚱한 내면만 기웃거리고 있어요.

 

 

 

47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변모시킬 수 있습니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명상이라는 게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곧 명상입니다. 그 명상의 대부분이 비의도덕인 명상이기는 하지만요. 많은 사람들이 명상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되, 돈이 들어올 데, 돈이 나갈 데에 관해서만 명상을 합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족의 문제에만 관심을 둡니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조건과 관계가 깊은 관심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자기 자식들과 영적인 의식을 나누고자 하지만 이게 안 됩니다. 영적인 의식이 없는 사람이 자기 자식과 그것을 어떻게 나눕니까? 그러면 영적인 의식이라고 하는 걸 어디에서 얻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신화가 필요한 겁니다.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 기도나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의 수준을 오르락내리락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어떤 의식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48

나는 다른 사람들의 꿈 이야기는 듣지 않아요. 하지만 신화라고 하는 것은 곧 다른 사람들의 꿈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인간의 어마어마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현몽하고 있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나는 이 원형적인 꿈 세계의 문턱에 이를 때마다 거기에 이르렀따는 것을 압니다.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를 가르쳐줍니다. 신화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74

앞으로 우리는 신화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세상은 신화를 낳을 사이도 없이 너무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요. 그럼 신화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개인은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 내가 밤낮 하는 이야깁니다만,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지를 아는 순간,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지를 아는 순간, 우리는 이 엄청난 신비 앞에서 이미 경이를 경험합니다. 신화는 신비의 차원, 만물의 신비를 깨닫는 세계의 문을 엽니다. 그런 세계를 잃은 사람에게 신화는 있을 수 없지요. 만물에서 신비를 읽을 때, 우주는 한 폭의 거룩한 그림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도 초월의 신비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 신화를 통해 나의 의미를 끌어들이라는 것인가

 

신화의 두 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관심을 두는 영역이 바로 이 차원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줍니다. 현대인들에ㅔㄱ는, 과학이 모든 답을 내렸따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자들은 “해답은 커녕 질문도 미처 다 하지 못했다. 우주가 어떻게 운행되는가는 우리도 안다. 하지만 우주가 무엇인데? 라고 반문합니다. 성냥을 켜면 불이 입니다. 불이 무엇이지요? 산소가 연소되는 현상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으로는 불에 대해서 아무 설명도 안 됩니다.

신화의 세 번재 기능은 사회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신화가 곳에 따라 많이 다른 것은 바로 이 기능 때문입니다. 중혼의 신화도 있고, 단혼의 신화도 있는 것은 이 기능 때문입니다. 중혼이든 단혼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는 곳에 따라 다르니까요. 신화의 기능중에서 우리 세계를 가장 폭넓게 지배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이 사회적 기능입니다. (..) 도덕률을 말합니다. 좋은 사회라면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고 믿어지는 우리 삶의 법 같은 것 말이지요.

 

77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옵니다. 이 양자는 상징적인 형태에서 나타내어야겠다는 일종의 깨달음에서 옵니다.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신화 중에서 가치 있는 신화는 어떤 도시, 어떤 동아리에 관한 신화가 아니라 이 땅에 관한 신화입니다. 모든 인류가 사는 이 땅에 관한 신화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신화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 앞에 내밀 수 있는 나의 중심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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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5 04:27:58 *.68.144.13
37일
2011년 2월 15일 화요일

 4장 희생과 천복

179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조간에 어떤 기사가 실려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남이 나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모르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 입니다. 이 여백이야말로 창조의 포란실 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179

나이를 먹어갈수록 순산 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살다보면 우리는 늘 우리에게 요구된 일만 합니다. 우리 천복의 정거장은 어이데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좋겠지요.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 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이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말이지요.

186

왜 우리가 새삼스럽게 신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까?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 잡아줍니다.

 

189

자연의 본성인 신성은 누가 해석합니까? 누가 우리의 샤먼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러저러한 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 됩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작가, 저 작가로 옮겨다니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썼는지는 줄줄 외고 다닐 수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은 안 됩니다.

204

만일에 우리가 우리 삶을 두려워하면 동산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자아’ 라고 하는 것이 더 크고 영언한 전체성의 한 기능임을 깨닫는다면, 작은 것이 아닌 큰것을 섬긴다면, 이런 문지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무사 통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공토와 욕망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 삶의 선이어야 한다는 데서 생긴 공포와 욕망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난 겁니다.

 

204

삶이 모든 사람에게 환희의 연속인 때도 있지요. 일상의 삶과 이 환희의 순간이 다른 점은 전자는 낙원 밖에서 사는 삶이고 후자는 낙원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것이지요. 다시 낙원으로 들어가려면 우리는 공포와 욕망이라는 이 한 쌍의 대극을 극복해야 합니다. 조화시켜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초월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모든 깨달음에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하는 경험입니다.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는 다시 나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의식과 동일시합니다. 이런 삶에서 육신은 의식을 나르는 수레에 지나지 않아요.

 

205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므로, 이 양자를 조화시켜야 하는 것이겠군요? 죽음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거지요. 이 양자는 한 사상, 즉 ‘존재’의 두 측면이니까요.

 

211

쇼펜하우어의 말은 그런 심리적 위기가 형이상학적 깨달음의 돌파구임을 보여줍니다. 이 형이상학적 깨달음이란 ‘우리’ 라고 하는 존재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 ‘우리’ 라는 것은 한 생명의 두 측면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우리’ 라는 것을 서로 별개인 둘로 인식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아래서 형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13

<신약성서>는 자기를 버릴 것을, 이 세상과 세상의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글자 그대로 죽음의 고통을 당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건 밀교적인 표현법이에요. 그런데 자살 역시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자살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연히 어떤 시간대에 처하게 된 삶에 대한 심리적인 자세 자체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더 나은 시간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른 삶을 위해 이 삶을 버리는 행위가 곧 자살인 겁니다. 하지만 융 박사의 말마따나 상징적인 상황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죽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죽어야 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통해서 더 큰 삶의 길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 죽음 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육체의 죽음이 아닌 가상의 죽음, 영적인 죽음. 나를 죽임으로써 원흉의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만드는 일. 죽음편지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15

사람들은, 살아 있음의 경험을 절실하게 하기 때문에 전쟁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매일 직장을 오가면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우리는 문득, 살아 있음의 체험안으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삶은 고되로운 것,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 있다…. 전쟁은 이런 느낌을 경험하게 합니다. 베트남전 당시의 이 젊은이는, 전우를 위해 용감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222

천복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 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222

천복을 좇으면 어떻게 됩니까? 천복에 이르는 거지요. 중세의 필사본에, 여러 문맥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가 바로 행운의 바퀴라고 하는 이미지입니다. 이 바퀴에는 굴대도 있고 바퀴살도 있고, 테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 바퀴의 테를 잡고 있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굴대를 잡고 있으면 늘 같은 자리, 즉 중심에 있을 수 있답니다. 성혼 서약에도, 성할 때나 아플 때나, 넉넉할 때나 가난할 때나,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 (..) 나는 그대를 중심으로 맞아들이고 그대를 천복으로 좇는다. 그대가 나에게 줄 재물도 아니요, 그대가 나에게 줄 사회적 지위도 아닌 오직 그대만 좇으리다… 뭐, 이런 대목이 있지요 이게 바로 천복을 좇는 겁니다.

 

223

천복이 있는 영생의 샘을 찾는 이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늘 이와 비슷한 것, 천복에 들어온 것과 같은 조그만 직관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걸 잡는 겁니다. 그걸 잡으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바닥으로 그걸 인식할 도리밖에는 없어요.

 

 

224

시인들은 시 쓰는 일을 자기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 자기 삶의 방법을 천복에 맞추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다른 일에 관심을 쏟지요. 정치적, 경제적 문제에 끼어들어나 군대에 입대하여 흥미도 관심도 없는 전쟁터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천복을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가 전적으로 관심을 쏟지 않던 일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방향 전화의 계기를 기다리는 능력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실제로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종종 있던 일이어서 나는 알고 있지요.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 (..) 부모가 시켜서 선택하는 삶은 바퀴테를 붙잡는 삶입니다. 굴대를 붙잡아야 천복을 누리며 살 수 있어요.

 

- 세상의 요구와 기대로 내 안에 들어온 삶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삶. 주도적인 삶.

 

225

돈이 없다는 건 느꼈지만 가난하다는 느낌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226

지금 말하는 이 천복이라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배운 겁니다. 산스크리어에는, 이 세상의 가장자리, 즉 초월의 바다로 건너뛸 수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 세 가지 있어요. 즉 ‘사트' (Sat), ‘취트(Chit)’, ‘아난다(Ananda)’ 가 그것입니다. ‘사트’라는 말은 ‘존재’ , ‘취트’ 라는 말은 ‘의식’ , ‘아난다’ 라는 말은 ‘천복’, 혹은 ‘황홀’ 을 뜻합니다. 이 말을 공부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지요. “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227

천복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이라는 것이군요. 천국에서는,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생전 안 하던 경험을 하니 대단하긴 하지요.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경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는 것이지, 천국에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227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며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느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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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a
2011.02.15 06:05:20 *.97.192.16
동재~동상^^
메일은 gimmorrison@hanmail.net (고마워요)
그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지 못해 아쉬웠으요.
혹여 몸이 많이 안좋아 돌아간건 아니었는지 위의 글을 보니 걱정이 되네요.
지금 몸은 어때요? 몸이 뭔가 할 말이 있나본데...^^
따뜻한 물 자주 자주 마셔요. 동재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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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04:21:50 *.68.144.13
38일
2011년 2월 1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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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04:24:22 *.68.144.13
39일
2011년 2월 17일 목요일

시간아 너는 왜 이리 빨리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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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8 20:45:49 *.68.144.13
40일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친구졸업식 축하로 대구로 귀가. 출석후 책 읽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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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9 04:28:41 *.68.144.13
41일
2011년 2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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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0 04:22:13 *.106.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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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5일 금요일

48일
2011년 2월 26일 일요일

49일
2011년 2월 27일 월요일

50일
2011년 2월 28일 화요일
잘먹고 잘놀다왔다. 여행기간동안 일어나서 꾸물거리며 무엇인가를 했는데 하나하나 기록을 해놓지 않으니 마음이 휑하다. 책 읽고 여행기 쓰고 다시 잠든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진하게 어울릴 수 있는 여행이라 행복했다. 새학기 그리고 3월 새로운 기분으로 다가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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