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3단계,

세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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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7일 12시 39분 등록

세상과 아름다운 춤을 추고 싶었다.

햇살 가득 받으며, 따스한 햇살 아래 몸을 내맡기고 하늘하늘 가벼운 옷차림에 가벼운 신발을 신고
쉬임없이 그냥 그렇게 햇살을 받으며 행복하게 춤을 추고 싶었다..

그러나.. 내 세상은 어두었다..
캄캄하여 앞이 보이지 않았고, 그 곳은 마니 춥고 마니 외로웠다..
살기 위해, 살아야 하니까 두터운 옷으로 무장하고 어두운 곳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를 맞추고저 사력을 다했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아무리 떠돌아도 미로 속 어둠은 걷히지가 않았다.
영혼의 블랙홀과도 같은 그 곳, 그 시간들.. 지옥은 사후세계만이 아니었다..
두려움에 나의 몸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의 세계는 늘 슬픔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기도..
그랬던 것 같다.
삶의 생명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영혼 깊이 살아 숨쉬는 내 마지막 생명의 불꽃이 기도를 했던 것 같다..

빛이다..
오랜 세월 어둠에 익숙해져 잘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어딘가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인다..
그 빛을 타고 다가온 공기의 느낌..
지금까지의 축축함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의 그 무언가가 느껴진다..

저 빛을 따라가야만 하는데..
천 년이란 긴 세월을 갇혀있어서 일까. 몸이 너무 무겁다..
겨우 일으켜 한 걸음을 내디디려 하면, 가느다란 그 빛을 누르고 들려오는 세상 소리들이 너무 커진다.
무섭다. 다시 그 자리, 내가 늘 있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다..

한 걸음 내딛고 세 걸음 미끄러지며 겨우 블랙홀에서 빠져 나왔는데..
내 앞에 펼쳐진 건 사막이다.. 이럴수가..
이건 너무 가혹한거 아닐까..
사막을 통과하라 하시다니.. 내겐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걸..

저게 뭐지..
저기 멀리.. 저만치 멀리서 별이 빛난다. 북극성이다..
아.. 블랙홀을 비춰주던 그 한줄기 빛이 사실은 북극성이었구나..

예쁘다..
어쩐지 따스할 것도 같고..
그래 이 느낌인데.. 이 따스함.. 생명받기 이전부터 내가 꿈꾸던 바로 그거..

뒤돌아보니 발밑에서 방금 빠져나온 블랙홀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본다.
눈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

그 때였다.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저기 멀리 보이던 북극성이 커다란 태양처럼 나를 덮친다.

그 강렬함. 데일 것만 같은 열기.
찰나에 불과했지만 여직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무언가가 나를 이끈다..

발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라 하지 않았거늘, 한 걸음 내딛는다. 북극성을 향하여..

걷고 있다.
뒤 돌아보지 않고 사막 모래 위를 걷고 있다..

사막 모래 폭풍이 나를 휘감아 올린다.
물기 하나없는 건조한 모래밭이 내 안의 수분조차 앗아간다..

물이어라..
인간이자 암컷이었다. 암컷 인간은 물처럼 살라한다..
사막 모래 깊은 곳으로 살며시 스며들어 적셔주는 물처럼..
내 눈물, 내 슬픔은 따스한 물빛이 되어야 한다고..

심장에서 한 방울 따스한 눈물이 사막 모래 위에 떨어졌다.
신기하다.. 몰랐는데 내가 걷고 있는 황량한 사막이 황금빛 모래바다로 출렁인다..

아름답다..
낮이면 금빛 모래바다가 출렁이고, 밤이면 별빛바다가 쏟아져 내린다..

들린다. 별들의 소리가..
그들의 아름다운 선율이 내 마음을 적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아직 걷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난 이 사막여행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
그 위대한 아름다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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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은 제게 연구원 3년차이자, 단군의 후예 3백일을 동시에 시작하는 또 하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입니다.

"변화라는 뿌리를 딛고, 관계라는 줄기를 타고, 문화라는 제 꽃을 피우겠습니다.."라고 되뇌였습니다..

"천직이란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이룬 진정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라는 말씀만을 지니고
천복에서 천직으로의 길 걷겠습니다.

부지런히 자아성찰을 이어가 스러지는 낙엽이 아닌 별을 마음에 품고 살겠습니다.
부지런히 천복을 연마하여 천직이 일상의 업으로 퇴색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세상과 아름다운 접점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 접점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제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슬픔보단 기쁨으로, 두려움보단 설레임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에 별을 품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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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80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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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8 11:30:44 *.12.196.5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단군 방학을 정리하며..>

# 매일의 위대함

단군 방학을 맞이하여 한 해를 정리해보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1년이란 시간을 펼쳐놓고 살펴보게 된다.

1년..
1년을 하루같이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아니,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왜? 라 묻자, 계절을 탄다..라고 답한다.

프리랜서로 전향했지만, 예전 직장다닐 때의 시간 패턴, 연중 패턴이 여전히 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
12월 중순부터 시간이 내 안에서 풀어진다. 이 시기는 그런 시기라고 속삭인다.

그런데 1월과 2월도 웅크리고 지냈다.
어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봄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고 마냥 움츠린체 겨울이 가기만을 기다리며.

7월과 8월은 태양의 뜨거움에 내 열정이 묻혀버린다.
봄에는 봄햇살의 설레임에, 가을은 낙옆과 함께 우울해서..
매순간 열정적이지 못할 이유투성이었고, 그렇게 지냈었다.

이번 단군방학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12월 중순. 새해를 준비하기 아주 좋은 시기이다.
여러가지 의미를 두고 블로그를 오픈하였고, 지금까지 비공개글 포함 73개의 포스팅을 올렸다.
그 중 하나가 다음과반디앤루니스 합작 12월의 리뷰 중에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아주아주 작은 승리 하나.

책은 4권을 읽었고, 사람들도 만났다. 진정성을 지닌 농도진한 만남들.

그러면서 깨달았다.
천재들과 나의 차이는 재능이란 거대함뿐만 아니라 "몰입과 끈기의 괴리감"이 더 크다는 것을.

피카소가 의무로 작업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니진스키가 책임감으로 매일 춤 연습을 했을까.
천복이란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그 무언가"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매일 할 수 있다.
매일 하고 싶으니까, 매일 하는 거다.

매일이 곧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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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1.01.08 20:11:35 *.226.215.22
기쁜 우리 젊은 날...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지요? 갑자기 떠 오르네요

언젠가 수희향님의 기쁨의 눈물과 춤이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매일의 화이팅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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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9 05:37:42 *.12.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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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8 22:09:33 *.72.153.166
같이 바다 보러 갈까요? 어쩔 수 없이... 시인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정작 본인은 뭐라할 지 모르지만, 요근래 산문시로 만난 함민복 시인과 함께 강화도에 살다보니 바다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수희향님의 글에 바다도 나오고, 오늘 그랑블루도 보고 하니... 여자, 바다, 물, 근원, 시, 삶, 사랑, 우주, 신, 이런 것들이 마구 뒤섞여버립니다. 모두 생명이고 삶의 근원이고 한마디의 말로는 부족한 것들입니다.
같이 바다 보러 가실래요?
300일 종파티를 바다로 제안한... 이유입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거대한 것 앞에서는 침묵으로 답하게 됩니다. 바다가 보고 싶습니다. 동해 말구요, 달과 공명하는 서해....금빛 비늘과 은빛 비늘로 춤추는 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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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9 05:40:12 *.12.196.5
그랑블루 좋죠..? ^^
저도 바다 무척 좋아하는데, 그러고보니까 바다 본지 오래되었네요..
문득 물결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리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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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2011.01.09 05:25:49 *.142.197.96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샤먼
신으로부터 내면의 탐험을 허락받은 유일한 권력자 샤먼
더 깊이, 더 처절하게 꿈을 불러와 꿈을 찾는 이들에게 소통이 되는 샤먼
100동안 꿈을 불러와 현실에서 한바탕 놀아봅시다.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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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9 05:41:56 *.12.196.5
한바탕 춤사위 좋죠..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이 되는 춤사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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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9 08:53:14 *.12.196.5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단군 3백일차를 준비하며..>

# 내 영혼은 3세

새벽에 일어난다..

108배를 올린다..

블로그에 리뷰를 중심으로 한 개 이상의 칼럼을 올린다..

글쓰기 수련이 끝나면 그날의 느낌을 단군일지에 정리하거나
그날 쓴 글들 중 마음에 드는 걸 일지에 옮긴다..

그렇게 나의 새벽은 시작되고 아침 전까지 마무리한다.

하루의 시작 부분이 이렇게 새벽에 박히게 되면
나머지 시간들도 자연히 여기에 따라 흐르게 된다.

100일차는 수련은 커녕, 새벽 기상도 안정되지 못했다.
200일차는 100번의 기상만큼은 꼭 이루고 싶었고 그리했다.

300일차는 100번을 일어나, 100일간의 수련을 한다.

400일차부터는 홀로가야 한다.

그 길에도 여전히 생명력 진한 동지들은 함께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의 내면은 이번 300일차 100일 동안 더욱 깊고 단단해져야 한다.

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지 이제 겨우 3년.
안으로 더욱 깊이 침잠하여 거기 그 곳에서부터 생명의 불꽃을 피워올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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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3:03:33 *.55.76.110
북극성 아래 금빛모래가 흩날리고 넘실대는 불꽃속에서
한바탕 흥겨운 춤판을 벌이고 있는 우리별님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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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3:53:45 *.118.58.45
사막의 모래 위에서 불을 피우고 춤추는 우리별이라..
딱 샤먼인데요~! 호금님의 묘사 정말 탁월합니다 ㅎㅎ

함께 추실거죠..? 아니, 곁에 계신거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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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3:31:35 *.118.58.45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1>

# 천직, 천복을 실어나르는 수레바퀴.. 

일본영화 굿(앤)바이는 첼리스트였던 주인공이 어느날 악단이 해체되면서 가장 비천한 직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죽은 시체를 염하는 납관일을 하게 되는 스토리이다. 어떻게 첼리스트가 납관일을 천직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이고는 첼로 연주나 납관 일 모두를 통해 결국 세상과 한 가지 소통을 하고 있다. 그 뿌리는 하나..
(굿앤바이 영화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

어제 왼종일 호랑이 프로젝트 세미나가 있어서일까. 아님 오늘이 단군 3백일차 시작날이어서일까.
어쩜 이 모든 것들이 연구원 3년차라는 2011년과 맞물려 돌아가며 내 안에서 무언가가 또 다시 잔잔한 요동이 일렁이는 것 같다.

천직은 목표일까, 결과일까..?

프레더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파머 파커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39쪽).

천직이 목표가 되면 우린 미래 어느 날, 천직이 일상의 밥벌이로 추락하는 것을 다시금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천직이 목표라는 건, 결국 세상의 호응, 세상이 나에게 어떤 환희를 보내는지, 그 달콤한 유혹에 나를 내맡기는 것과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위험하다.

어제 사부님께서 말씀해주신 바에 의하면 역시나 천직은 "철학"과 "필살기" 두 가지가 그 중심 핵이 될 수 밖에 없다.

"내게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 때문에 죄의식을 만들어내면서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지쳐갔다 (파커 29쪽).

딱 내 모습 그대로의 묘사.
한동안은 나를 그렇게 내몰았다고 생각하며 부모님을 원망도 하였지만, 그런 무지에서 날 구해준 건 니체였다. 그 분들도 당신이 속한 체제 아래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셨을 뿐이라는.

경험상 원망의 시기가 길어지는 건 결코 좋지 않다. 당신들도 모르고 한 일에 대해, 결국 되돌아 생각해보면 감사해야 할 부분에 부정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거였고, 결정적으로 원망이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라도 내가 깨달았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경계를 넘어야 하는 일이 눈 앞에 있을 뿐.

그리고 세상 경계를 넘어 나만의 세계를 정립해 나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고 하신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 철학 속에 그 답이 있다고 말이다.

다음으로 천직의 핵은 "필살기"
자신만의 죽여주는 필살기가 없는 천직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개인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이루는 "진정성"이라 하시며
현대사회에선 점점 이 부분이 기업 윤리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말씀.

천직이 세상과 만나는 접점으로서의 "꽃"을 피우는 일이라면
천복은 천직의 모태가 되는 "씨앗"이고
천복의 뿌리는 바로 "철학과 필살기"여야 한다.

나무가 씨앗을 토양에 뿌리내릴 때 자신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바람과 태양, 때로는 흐르는 물과도 삶을 공유하며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우리들의 천직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나의 본성과 기질 그리고 재능에 거스르며 세상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세상에서 정한 목표에만 나를 맞추려하면
어떻게 아름다운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천직이란 결단코 목표가 될 수 없음이다.

이제 3백일차, 천복에서 천직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스승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고 100일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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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수련: Book reveiw 77- 파커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읽기 완료 및 1&2장 인용문 정리
(연구원 시절 읽었으나 그 때는 과제에 치여 인용문 정리까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인용문 정리하고 넘어간다).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15).”

사람은 누구나 천부의 재능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난다. 그래놓고는 인생의 절반을 그 재능을 내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미혹되어 잊어버리고 산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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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5:07:00 *.118.58.45

# 기다리는 자..

사부님께서 어제 스승으로서의 당신을 묘사한 정의다.

변화경영전문가에서 이제 사상가로까지 흐르고 계신 분께서 하신 말씀치고는 좀 역설스럽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기다리시다니..

사부님께선 변화란 절대 타인이 외부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절대적으로 개개인 스스로 내면에서부터 "의식의 전환"을 불러 일으킬 때, 그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고.
그러므로 당신은 길을 보여주고 기다리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다림의 미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린 잘 알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세상 그 누구도 질주하여 내 삶에 달겨들어 바꿔놓으려고 하지,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다림이란 그만큼 어렵고도 묵직한 일이기에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샤먼인 나는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할까..
그리고 오늘 단군 1기들의 3백일차 일지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그림자가 되어야 겠구나..'

그림자. 그렇다 그림자..
함께하지만 주체로서의 존재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 그림자.
그러나 언제라도 자신을 반추해볼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존재, 그림자.

단군 1기들의 3백일차 출사표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100일차를 떠날 때의 그 혼란함, 그 물음들에 비해 얼마나들 단단해지고 있으신지..

어쩌면 본인들 스스로는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객관화를 이루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난 기쁜 마음으로 바라봐드리고, 응원하고 손뼉친다.
함께하지만 객관화가 가능한 내가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구석구석까지 기뻐해드리는거다.

"함께하는 그림자.."
어쩐지 샤머니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그 분들의 삶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나를 통해 그 분들의 삶을 내비쳐드리고..
그렇게 우린 사우로서 3백일차를 조용하지만 뜨겁게 걸어갈 것 같다.

황금빛 모래 사막 위에서도 함께 춤출 수 있는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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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15:25:27 *.118.58.45

# 짜집기와 모방은 다르다: 좋은 책의 정의는..

어휴.. 사부님을 뵙기만 하면 말씀, 말씀이 어찌나 중요한지, 미련한 제자는 이튿날이 되도록 정리하기에도 바쁘다 ㅋㅋ

어제 스승님께서 "좋은 책은 어떤 책이냐"에 대해 말씀 주셨다.

사부님께서 정의하시는 좋은 책이란 "저자의 삶이 녹아들어가 있는 책"이라 하신다.

지식을 모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방을 그대로 활용하면 그건 "지식의 짜집기"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어떻게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낼 것.
그리고 이 때 끼어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저자 스스로의 고유한 삶의 흔적.

초보작가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방대한 지식을 짜집기 하여 마치 자신의 것인양 한다는 것.
이건 아마도 "생각하는 힘"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아는 우리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나, 혹은 책을 읽고 그 책을 바탕으로 쓰는 짧은 칼럼 한편에서도
내 목소리를 내려면 진땀이 흐른다. 하물며 한 권의 책에 나를 녹여낸다는 작업이란..

그런 의미에서 연구원 시절 북리뷰 끝에 있는 "내가 저자라면"이란 내게 좋은 수련장이었고
거기에 이어 "단군 일지" 또한 아주 수련터가 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딮다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마니 써라.
그러면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글을 쓸수 있으면 좋은 책을 쓸 수 있다.

마니 읽다 보면, 어느 날부터 쓰레기와 보석을 구분할 안목이 생긴다.
쓰레기같은 책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건, 쓰레기같은 책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 일이다.
불필요한 책은 이미 넘치도록 많다. 거기에 그대들의 책을 한 권 더 얹지 마라.

"좋은 책"을 마니 읽어라.
마니 생각하여 그대들의 철학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대들의 삶이 녹아들어있는 좋은 책을 쓰거라.

사부님의 말씀이 달리는 말에서 화살을 쏘시듯 마음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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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말씀은 토씨하나 안틀린 말씀이 아님을 밝힘니다.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의 본질은 잘 전하고자 애썼습니다만.. 급하게 받아적다 보니
실제 말씀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혹시라도 말씀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그건 전적으로 잘못 받아적은 저의 불찰임을 헤아려 주시기를..^^::

간단하지만 매우 깊은 "좋은 책"에 대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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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0 20:09:09 *.124.233.1
누나의 출사표를 읽는데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저도 사막을 걸었는데 북극성을 보았어요.
황량한 사막에 단군이가 나타나 주었지요.

도 언젠가는 새벽에 깜빡 졸았는데,
제 마음 속 깊숙한 곳에 거대한 우주가 살아 숨쉬는 걸 보았어요.
그 무한한 우주를 관조하는 듯한
의연하게 우뚝 선 한 사내를 보았지요.
전 단박에 그가 제 자기(Self)란 것을 알게 되었지요.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님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점점 깊어지기 위해 정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네요.
먼저 간 누나가 남긴 발걸음 따라 걸어요.
목이 마르고 힘들면 잠시 앉아 쉬고 계세요.
얼른 제 물 가져다 드릴께요.

늘 고맙습니다 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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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09:15:48 *.12.196.20
김경인.. 그대야라면 진정 내게 물 한모금 가져다 줄 것 같아..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건, 세상을 살면서 참 소중한 가치인 것 같아..
신뢰야말로 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그대야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응. 목마르면 그대에게 손내밀께.
손내밀어 줘서 진정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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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08:49:00 *.12.196.20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2>

#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독서법

간만에 파커 파머의 책 인용구 정리를 끝냈다. 얼마만의 인용문 정리인지.. ㅋ

연구원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중의 하나가 "독서법"이다.
그때까지 내가 해왔던 독서법과는 사뭇 다른.
나조차도 잊기 전에 사부님의 음성을 떠올리면 기록해놓는다.

1. 정독하거라
책들 중에는 하루만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심지어 몇 시간만에 읽을 수 있는 책들도 있다.
그러나 그대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지 못하는 책에서는 그다지 배울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좋은 책"을 선별하여 "정독"하거라.
다독을 하면 수많은 지식을 그저 수박 겉핡기 식으로 거쳐 갈 뿐, 그대 안에 남는 것은 없다.

정독을 하되, 눈으로만 읽지 말고 꼭꼭 씹어서 완전히 그대들의 것의 되도록 하라.
가치가 있는 작가를 만나거든 "그 분"이 "그 놈"이 되어 맞짱을 뜰 수 있을 때까지 그 작가를 들고 파거라.
그 작가가 쓴 모든 책, 그 작가가 언급하는 다른 작가들, 그 작가의 사상을 이룬 배경 책들..
여하튼 괜찮은 그 분이 그 놈이 되어 맞짱을 뜰 수 있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면, 하나의 세상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음부터는 연구원들이 북리뷰를 하는 방식이다.

2. 작가에 대한 서치를 하라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 말고, 그대가 책을 읽으며 발견한 점, 그 작가의 사상을 이루고 있는 배경 등을 서치하여 정리하라.

사부님께선 책의 앞장에 소개되는 작가에 대해 써오는 걸 가장 꺼려하신다. 그건 그냥 단순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그런데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니체를 잘 알게 되면, 헤세와 카잔차키스가 더 이해된다. 융을 잘 알게 되면 헤세의 데미안이 달리 보인다. 캠벨을 깊이 알면 알수록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달리 보인다. 이런 식이다. 어째서 작가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닌 작가의 사상을 이해하라 하셨는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하게 된다.

3. 인용문을 정리하라
연구원 북리뷰를 할 때 최소 10페이지 이상의 인용문을 정리해야 한다. 마음에 무찌러 들어오는 글귀들을 모아.
처음엔 이 작업이 정말 시간 낭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그 두꺼운 책들의 인용문을 정리하라니!

나의 무지는 첫 책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캠벨의 "신화의 힘"
그 거대한 책을 어찌 한번 읽은 것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인용문을 치면서 다시 공부한다. 그러고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

4. 내가 저자라면을 1페이지 이상으로 정리하라.
"내가 저자라면"은 그야말로 책을 내것으로 만들어 소화해서 내 목소리로 토해내는데 가장 좋은 수련터이다.
그런만큼 책 내용을 내것으로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내가 정리해놓은 인용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정리한 인용문을 다시 읽으며 (결국 책을 3번째 읽는 셈이다), 빨간줄과 파란줄을 긋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책 내용을 내 안 깊숙히 각인시키며 책을 읽으며 느꼈던 점,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보기도 하면서 "내가 저자라면" 어찌 생각했을지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5. 칼럼을 쓴다.
칼럼은 드디어 책을 완전히 덮고 이미 내 안에 가득 찬 책 내용을 나의 현실로 불러들여 책의 주제가 아닌 "나의 주제"로 푸는 단계이다. 내가 저자라면까지가 여전히 책에 대해 나의 생각을 반영한다면, 칼럼은 반대로 나의 주제에 책을 대비시키는 단계이다. 책을 완전히 내것으로 만든 후에 가능한 단계이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칼럼을 잘 쓰려면, 내가 저자라면을 잘 써야 하고
내가 저자라면을 잘 쓰려면 인용문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인용문을 잘 정리하려면 책을 흐름에 맞춰 꼼꼼히 읽어야 하고
책을 흐름에 맞춰 잘 읽으려면 저자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저자를 잘 이해하려면 수백권의 책들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저자를 선별해야 하고..


수십장의 인용문을 치며 날밤을 지새우던 그 시절이 그립다.
아마 내 인생 최고로 책에 빠져서 산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사부님께서 선별해주신 책과 함께.
어릴 때 방학하면 숙제고 머고 다 내팽개치고 책에 빠져있던 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에 빠져서 행복하게 지내던 시간들 말이다..

구멍이 숭숭난 나의 인문학적 배경을 가장 밑바닥부터 조금씩 메우기 희망했던 시간들.
밑에서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한권, 한권 오롯이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구원이 끝나고나선 그런 북리뷰를 거의 하지 못했다.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역시나 "인용문 정리"

요즘도 책을 읽으면 반드시 내가 저자라면은 븍리뷰 형식으로 하고 있지만
역시나 엄청난 시간을 요하는 인용문 정리는 거의 놓치고 있다.

그러다 이 책 파커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 와서 드디어 인용문 정리를 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책 읽기도 1+1= 2가 아니다.
하나하나 내 안에 쌓여가면서, 쌓인 책들끼리 만나 조금씩 울림을 만들어낸다.
축적의 힘은 놀랍다..

"읽고 쓰기"
내겐 생명의 근원과도 같은 일인데 마니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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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09:56:17 *.124.233.1
누나 일지 매일 리뷰해야 겠어요..
알차고 주옥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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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2:43:06 *.12.196.20

# 프리랜서는 양날의 칼..

새벽 수련 시간 내내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3장~6장까지 인용문을 타이프 쳤다.
욕심이었다. 어제처럼 3 & 4장만 치고 중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냥 계속 그 일이 하고 싶어서.

그래놓고 인용문을 다 정리하고 나니 이번엔 또 쓰기 욕심이 난다.
인용문을 다 정리하니 당연히 머리 속에, 마음에 멤돌며 나오고 싶어하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도저히 그냥 다음 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책 전체 리뷰를 하다보니, 이번에는 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인도영화 "블랙"이 떠오른다. 엊그제 뵌 스승님의 모습과 당신의 말씀이 겹쳐서인지, 책에서 나오는 영혼의 고통을 받는 이들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에서 "블랙"과 스승님이 자연히 겹쳐 떠오른다. 역시나 인도영화 "블랙" 리뷰를 하지 않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북리뷰 & 영화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

아무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지만 하루에 3~6장까지 인용문을 정리하고 독서법까지 포함 칼럼을 4개 쓴다.
당연히 새벽 2~3시간 갖고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난 오늘 9시 넘어까지 글을 만지고 있다. 프리랜서니까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위험하다.

직장인들같으면 아무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고 싶다해도 일정한 시간이 되면 성소를 떠나야 하는데, 나와 같은 프리랜서의 경우는 본인이 원하면 계속 머무를 수 있다.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으실 것 같다.

그러나 위험하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약점은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 한층 엄격한 '자기절제" 혹은 "자기관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비해 시간이란 자유가 주어진 것 같지만, 자유라는 그 달콤함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아주 쓰게 돌아오기도 하니까.

술마시고 논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난리치냐고 하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성에 관심을 갖게 되면 세속 일도 멀리 하지 않는다는 캠벨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언제, 어느 때라도 늘 이상과 현실의 균형과 조화의 줄타기를 멈출수는 없는 것 같다.

인생,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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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06:33:27 *.12.196.20
동재씨 왔네요. 방가요^^
정리한 게 도움이 된다니 다행요~
동재씨도 추운 날씨 감기 조심하고, 실천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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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9:22:56 *.68.144.13
앗 저에게 가장 필요한 글이 여기있네요 ㅜ 
반가운 마음에 블로그로 바로 옮겨서 밑줄 박박 그으며 읽었답니다 ! 잘 실천해볼게요
언제나 따뜻한 응원 감사합니다. 토요일날 인사드릴게요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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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09:20:23 *.93.128.163
지금 내가 깊게 고민하고 있고,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이 왜 이 며칠 안되는 단군일지에 모두 녹아져 있을까요?
너무 신기하네요.
내게 펼쳐진, 보이지 않는 이 엄청난 비밀(이게 동시성인지도 모르겠지만)의 힘이 신기하기만 해요.


너무 하고픈 말이 많지만...
이번 300일은 꾸준히 참고 제 내면과 먼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성향이 성향인지라 쉽지는 않겠지요. ^0^)

이번 300일차에서는 일부러 사우들의 리플에도 답을 달지 않고
사우들의 단군일지에도 리플을 달지 않아보려구요.
내 자신의 깊음이 어디인가를 확인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더 집중하고 싶어요.


수희향님.
아니 수희향 누나.
제 자신의 껍질을 뚫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 준 누나에게...
누나가 보기에 흡족하게 성장한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번 300일차는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랍니다.

안녕~~나의 주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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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3:03:23 *.12.196.20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는 아마도 자신의 영혼을 탐구하고 성장시키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는 자.. 천년 세월에 걸친 존재 이유가 아닐런지요..

사막 여행의 맨 앞에서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계신 레족장님.
제겐 누구보다 멋진 수련 동지입니다.

언젠가 거대한 한 마리 새가 되어 가물가물 높은 창공으로 비상하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대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비상하실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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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09:01:54 *.118.58.80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3>

# Book Review 78- 대니얼 코일의 "탤런트 코드" 2부 223쪽까지 읽기 완료

대니얼 코드의 "탤런트 코드"를 읽는 중이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아마도, 최근에 내가 느끼는 "노력이 재능을 앞지른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단군의 후예를 하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100일차가 끝날 때까지도 나는 위 명제에 대해 그러그러했었다. 반신반의라고 할지.. 무튼 내 안에서 체험되지 못하면서 머리로는 알듯하지만 마음에 각인되지는 않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2백일차를 지나면서 서서히 내 안의 무언가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그 어떤 성취를 일궈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모든 단군이들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느리지만 "매일의 위대함"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문득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았다. 연구원 2년차이자 단군 새벽수련 2백일차.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건지 물어보았다.

단군일지.
그래, 나의 단군일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단군일지는 분명 내게 "매일 글을 쓰는 수련터"였다.
거기, 그 곳이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들이 예전에 읽은 책들과 어우러진다.. 잊은 줄 알고 있었던 인용구가 문득 떠오른다..
갑자기 예전에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좀 신기했다.

그리고 오늘 "탤런트 코드"를 읽으며 이 모든 일들이 "점화"를 위한 "기초 공사"의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코일에 의하면 우리가 심층연습을 하면 그 모든 것들이 우리 뇌 속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아스팔트 길을 닦듯이 기초 공사를 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기간은? 역시나 예외없는 "일만 시간의 법칙"

그 기간 동안 뇌는 마치 근육이 운동을 하면 단련이 되듯 우리의 모든 심층연습 과정을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어느 날 "점화"가 인다고 한다. 스승님 표현을 빌자면 바로 "도약의 순간"이 되겠다.

그럼 세상은 천재의 출현에 놀라지만, 사실 하나의 천재가 태어나기까지 분야에 관계없이 일만시간동안 심층연습을 해야 하는 공통의 기초공사를 거쳐야 한다는 말.

나한테도 도약의 기회가 있다는 의미에서 좋다. 내 인생도 다시 한번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철저하게 내 책임이란 의미는 무섭다. 지금까지는 내 삶이 활짝 꽃피우지 못함을 천재들의 천재적 재능이란 핑계 뒤에 숨고는 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스승님은 지금도 매일 아침 새벽 4시면 어김없이 기상을 하셔서 18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고 계신다. 멀리 떨어진 천재들이 아니라도, 스승의 명성을 따라가진 못해도 노력은 앞서가야 하는 제자이거늘 부끄러울 따름이다.

천재와 나 사이의 차이점이 점점 더 재능의 차이가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사유하며 읽을 정도는 아니어서 책장을 쓱쓱 넘기며 읽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앞에 오늘 새벽도 불밝혀 일어날 수 있었다.

내일 새벽도 일어나자. 모레 새벽도 일어나자.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도 일어나자..
일어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또 하나의 기초공사를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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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미
2011.01.12 17:28:18 *.44.124.42
수희향님의 단군일지를 읽으며 구본형선생님의 목소리를 바로 옆에 서 전해듣는 듯 마음 속 깊숙이 불꽃이 지펴지는 걸 느끼네요. 300일차 앞선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님들이 어떤 내면의 길들을 걷고 계신지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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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09:34:29 *.118.59.250
영미님 오셨어요, 방가요^^
첨엔 제가 기억해두기 위해 정리를 시작했는데, 여러분들이 읽어주시니 자칫 사부님 말씀 잘못 옮기지나 않을까 살짝 염려가 되기도 해요^^::: 그런만큼, 담부턴 종이랑 연필을 불끈쥐고 귀를 쫑긋 세우고 더 잘 받아적겠슴당~ ㅎㅎ

영미님의 2백일차도 잔잔하지만 수면 아래로 뜨거운 열정이 전해옵니다. 다 함께 즐겁게 홧팅하는 100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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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09:32:14 *.118.59.250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4>

# Book reveiw 79-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읽기 완료

나는 전부이자, 아무 것도 아니다..
소설은 무섭도록 현실을 허구에 담아내고 있다.

여기 "그"라고 불리우는 한 남자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름조차 지닐 수 없는 "그"
그는 그토록 평범하지만, 한편 그토록 일상화된 존재이기도 하다.

철없던 시절, 주변 환경에 맞춰 첫 번째 결혼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 이 결혼은 숨막힘 그 자체일 뿐.
한 방향을 바라보지 못하는 아내. 그래서인지, 그녀로부터 얻은 두 아들들로 자신과는 다르다.

영혼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피비를 얻었다. 두 번째 아내.
그녀에게 얻은 딸, 낸시는 피비를 닮아 사랑스럽고 자상하다.

인생이 여기서 머무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 오십에 들어서면서 이 남자는 자신을 평범한 남자로 분류하는 길에 들어선다.
26살이 어린 모델과 욕망이 전부인 애정행각을 벌리게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피비마저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몇 시간만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두 여인을 한 꺼번에 잃었습니다.."

내리막길을 걷게되자 이 방향의 삶도 가속도가 붙는다.
끊임없이 건강이 악화되며 거듭되는 수술 속에 분신같이 따르던 형마저 멀리한다.
건강하고 잘나가고 가정도 충실히 유지하는 형에 대한 본능적 질투라는 이유때문에..

피비가 떠나자 주인공 표현에 따르면 "뇌없는 모델"과 세 번째로 결혼한다.
그래야만, 그나마 자신의 과오를 덮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녀와의 결혼으로 인해 이번엔 욕망외엔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하는 "뇌없는 모델"의 삶 전체를 그가 감당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질고 현명하고 정숙한 아내를 버리고 얻은 것치고는 상당히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 되어버렸다.

결국 세 번째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혼자가 된다.
나이 70에 해변가 공동체 커뮤니티의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아침에 조깅하는 젊은 여인에게 희롱을 걸다 한방 먹는다. 육신은 노인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젊음에 매달리고 싶은 "그의 처절함"이 어처구니없다기보다는 차라리 불쌍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죽음.
이제 죽을 때가 되었으니 죽어야만 하는데, 당최 정리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남은 사람도 없고, 세상을 위해 헌신한 것도 없다.

오로지 그 때, 그 때 닥치는대로 살았는데 어느 새 70여년의 세월이 흘러 죽어야만 한다.
통탄할 노릇이다.

비로소 가슴을 치기 시작한다.
여러개의 인공 장치를 꼽고 있어 조심해야 하는 자신의 심장을 70여년이 지나서야 내리치며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내일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고, 죽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을.

"그"가 이젠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데
내 마음이 울린다.

결코 동정할 짓을 하며 살아온 인생이 아닌 주인공인데 그래서 마음이 할퀴우는 느낌이다.
마치 심장에 박힌 인공 장치가 잘못되어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고나 할까.

1969년에 첫 작품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소설을 계속 써오고 있는 필립 로스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 점 더함도 덜함도 없다.
무서우리만치 인생의 단면을 그대로, 정면으로 들이댄다.

그래서이다.
동정받을 짓을 하지 않고 살았던 고유한 이름도 갖지 못한 주인공 "그"가
어찌 그일수만 있을까.

아무리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펼쳐놓으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70여년 길게 펼쳐진 삶을 하나로 모아, 한 점으로 모아 오늘 하루를 살아보고자 한다.
그만하면 충분했다.
이젠 "깨어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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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희
2011.01.13 15:06:25 *.143.199.187
^^
수희향님의 일지에서는 여기 저기서 보석들을 줍는 기분입니다.
반짝반짝 예쁘게 빛나는 보석들 허락없이 냉큼 가져감을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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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4 11:34:04 *.118.59.9
(무조건) 아자 홧팅!  emoticon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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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1.01.13 17:54:58 *.136.209.2
쓱삭 쓱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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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16:15:01 *.118.59.250
성희씨 왔네요, 방가방가요~ ^^

사부님 말씀은 보석이 맞는데요, 나머지 제 글들은 아직 거친 돌이죠 ㅋㅋ
성희씨라면 그런 거친 돌을 가져다가 자신만의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먼가 땡기는게 있다면 제가 더 감사하죠. 얼마든지 가져다가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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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4 09:45:20 *.118.59.9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5>

# Book review 78- 대니 보일의 "탈랜트 코드" 읽기 완료

"에브리맨"을 읽느라 하루 밀쳐두었다가 읽기 완료.
이 책의 경우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책이라기 보다는 정보전달에 중점을 둔 지식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그러므로 인용문 정리까지는 하지 않고 북리뷰만으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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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장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탤런트 코드 66쪽)."

위 말은 사람들이 "피에타"를 만든 미켈란젤로를 순수한 천재라고 평가하자 미켈란젤로 자신이 한 말이다.

난 이 한마디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지난 번 스티븐 킹의 자서전에서도 맞딱뜨린 이야기지만 천재 혹은 대가라고 불리우는 길은:
1. 자신의 재능이 감흥하는 길을 찾을 것.
2. 그 분야를 반복적으로 연습할 것.

아주 간단하면서도 무서운 진리이다. 더 이상 방법론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재능이 감흥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건 즐겁게,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면 된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매일 즐겁게 할 수 없는 일을 반복적으로 일만 시간 수련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볼 때 아이젠스타트의 리스트에 있는 유명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원칙이 논리적으로 확장된 경우라 해야 할 것이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능은 심층 연습을 필요로 한다. 둘째, 심층 연습은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셋째. 특정한 신호는 막대한 에너지가 분출되도록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167쪽)."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적으로 수련을 하는데, 이것이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점일 것 같다. 어째서 대가들이 수련을 하는 동안에는 외부 세계와 단절을 하고 자신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에너지를 안으로, 안으로 모은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부 안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그 세계가 성숙되면 세상 밖으로 뿜어낸다. 도약의 순간이 될 것이다. 드디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고. 설익은 과일이 세상에 나오면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정말이지 명심, 또 명심해야 할 말인 것 같다.

우든 코치는 그의 자서전인 <우든>에 이렇게 썼다. "빠르고 대단한 발전을 추구하지 마라.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해라. 그것이 실력을 습득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얻은 실력은 오래 유지된다 (243쪽)."

올해 초 스승님께서 "말은 줄이고 삶은 더 많이!"라고 말씀하셨다.

새해가 정확히 두 주가 지났다.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은 아닌지, 너무 많이 에너지를 분산시킨 것은 아닌지, 아직도 하루를 낭비하고 있는 건 어닌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또 점검해본다.

매일의 위대함.
고대에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단 하나의 비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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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5 08:44:32 *.118.58.146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6>

# Book review 80- 자크 아탈리의 "살아남기 위하여" 2장 (107쪽)까지 읽기 완료

자크 아탈리의 책을 시작했다.
급히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는 책이라 조금 천천히 진행.
책에 대한 정리 시작 전, 일단 3대 미래 학자 (엘빈 토플러/ 제레미 리프킨/ 자크 아탈리)에 대한 생각을 먼저 정리한다.

엘빈 토플러:
세 사람의 미래학자 중 가장 미국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학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지식적인 측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다른 문화권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서구권인 유럽에대해서조차 깊이 다루지 않는 그의 관점이 조금 편중된 느낌이다.

제레미 리프킨:
미국인이지만 유럽 세계에 한 발을 깊이 들여놓고 있는 미래학자. 그래서 유러피안 드림이란 책의 후속작으로 "공감의 시대"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유러피안 드림"을 읽어본 독자라면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이 바로 리프킨이 유럽 공동체 문화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잠재력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크 아탈리: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석학. 현존하는 최고의 지성이라는 표현이 과히 어색하지 않은 학자이다. 아탈리에게 이런 칭호가 붙는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깊은 지식과 전 세계를 비교적 균형있는 바라보는 그의 관점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가지 덧붙이자면 과거까지를 꿰뚫으며 단단한 철학적 사유에 기반을 둔 그의 통찰력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글로벌한 트랜드에 대해서는 리프킨이나 아탈리의 신작을 늘 챙겨보게 된다.

이번 아탈리의 책 "살아남기 위하여" 역시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서구 사회의 금융위기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부터 시작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기업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더 희망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얼마 전 그의 철학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를 읽어서인지, 아탈리의 깊은 지성이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지성인과 지식인은 참으로 극명하게 다른 것 같다.
이 세상에 지식을 한 가득 안고 있는 지식인은 많지만, 거기에 자신의 치열한 철학적 사유를 겸비한 지성인은 소수인 듯 싶다.

그래서인듯 싶다. 단순한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지성인의 책을 만났을 때의 충만감.
아탈리의 책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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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5 09:02:29 *.118.58.146

# 자크 아탈리의 "살아 남기 위하여" 2장까지를 읽고.. : "전 세계 위기의 원인"

자크 아탈리가 말하는 세계적인 위기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뿌리를 닿고 있을까?
다름아닌 미국발 경제위기,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금융위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걸까?
다름아닌 소위 금융 엘리트들이 벌이는 자기기만 형식에 따라 수많은 대중들이 피해를 보는 형상이다.

즉, 그들만의 리그를 성장시키기 위해 무리한 금융정책을 펼치며 전 세계 금융자산이 기형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저축에 의한 성장이 아닌 부채에 의한 성장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젠 대다수 국가에서 개인들의 부채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해결의 힘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자칫 폭발물을 잘못 건드릴 경우, 가뜩이나 재정적자에 흔들리는 국가 경제가 주저 앉을까 염려스러워 말이다.

여기서 기인하는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다름아닌 "달러의 폭락 가능성"
사실 이 부분 역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부분이다. 문제는 과연 그 "때"가 언제일지 정도라고나 할까.
아탈리에 의하면 이 문제는 상당부분 유럽과 중국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대개 채무국가가 그들이니까) 결정될 확률이 크다고 한다.

해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숨통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국을 차세대 패권국가로 점치고 있으나, 중국은 그 위치를 확보하기에는 아직 내부적인 많은 문제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외에도 기타 크고 작은 많은 위기들이 있으나, 아탈리가 바라본 현재의 글로벌 위기상의 핵심 요인인 것 같다.

다음 3장부터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해결책을 짚어보고, 이것을 개인/기업/국가/인류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여기까지 읽고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국가가 관료주의로 비대해지는 건 정말이지 원하지 않는다. 그 무능력한 거대함이란..
하지만 신자본주의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끝갈데없이 전 세계를 휘젓는 것도 정말 끔찍하다.

작은 정부. 그러나 기본에는 철저한 작은 정부. 꿈일까..
한동안 앤서니 기든이 "제3의 길"이 이와같은 논증을 전개하고 빌 클린턴 정부가 연구하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치, 경제 이슈에는 거시적 트랜드를 살펴보는 정도 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보단 내가 속한 작은 커뮤니티 혹은 공동체의 최선이 무엇일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요즘인 것 같다.

그럴 때 우리 연구소의 철학이 좋다. "따로또같이"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키되 최대한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다 함께 성장하려는 철학 말이다.

사실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공동체 형식이고 그러기에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유적 성숙이 절대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도 한다. 자유와 책임이 공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말이다.

그렇기에 리프킨이 말하고 있는 "공감의 시대" 와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경쟁이 아닌 "공헌하라"는 사유가 통함이 있지 않나 싶다 (아직 공감의 시대 읽지 못했다. 읽으며 다시 되짚어보고 싶은 부분이다..).

무튼, 전 우주적 차원에서 생각할 때면 하나의 점도 되질 못한 한 사람이지만
속한 곳, 속한 시간대를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 한 사람으로서의 내 몫이라 생각한다.

결국 개인이 모여 우리가 되고, 우리가 곧 사회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있을 단군 2기들의 1차 세미나 "죽음편지"
모든 분들이 또 한걸음 성장하는 하루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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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08:49:59 *.118.58.146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7>

#Book review 81-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2" 145쪽까지 읽기 완료

어제 좀 늦게 잤더니 오늘 새벽에는 무거운? 아탈리의 책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이럴 때는 살짝 소설 쪽으로 방향을 튼다 ㅋㅋ
(나의 경우, 두 개 라인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하나는 생각을 많이 요하는 책들과 하나는 그 책들로 인해 머리 아플 때,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 대개 소설이나 문학 책들이 후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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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에도 생각을 끌어내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책은 아니다.
그냥 어른들이 옛날 이야기해주시는 것처럼 슬슬 넘어간다고나 할까.

지난번 아탈리의 철학 소설을 읽고 안그래도 관심이 가던 남유럽 문화와 사상에 부쩍 더 땡겨서 무조건 주문했던 책이다. 1권은 단군방학 때 읽고, 지금은 2권 읽는 중.

유럽에 남겨진 마지막 이슬람 문화라 할 수 있는 에스파냐 남쪽 그라나다 지역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싼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을 미국의 소설가 워싱턴 어빈이 19세기 그 곳에 체류하면서 정리한 이야기집이다.

유럽의 정취에 숨어있는 이국적인 아랍 문화를 접하면서 남유럽 문화 분위기 속에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필요?라고 표현하긴 머하지만, 남유럽 문화에 한가로이 빠져들기 어렵기에 집중적으로 독서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천천히 남유럽 세계에는 조금씩 빠져들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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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11:29:42 *.118.58.146

# 단군 2기- 2백일차, 1차 세미나 "죽음편지"의 의의..

어제는 단군의 후예 2백일차를 진행하시는 2기 분들의 1차 세미나 "죽음편지"가 있었다.

춥고 추운 토요일 오후 종로에 모여 우리는 각자가 죽음편지를 쓰면서 느끼고 관찰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면 탐험의 출발선에 다시 서고자 애쓰는 시간이었다.

왜 하필이면 죽음편지로 내면 탐험을 시작할까..?
그건 바로 과거와의 단절이자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서이다.

변경영 연구원이 되면 1박 2일 오리엔테이션 시간 동안 처음 만나는 선배들 앞에서 "죽음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갖는다. 당연히 힘들다. 죽음편지를 쓰다보면 우선 "관계에의 회환"이 가장 많이 몰려오고, 이는 결코 낯선 이들 앞에서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래서 더 홀가분하다. 아마도 그 누구라도 보일 수 있는만큼만 내보일 것이고, 내보인 부분은 사실 드러내는 그 순간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연구원 입학 전 아주 오랜 기간 나를 가두어 두었던 이야기를 그 순간에 처음으로 세상에 대고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그 때부터 서서히 나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스승님께서 어째서 "잘 죽어야,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지 이젠 충분히 이해한다..

한편, 죽음편지에서 관계에 이어 두 번째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회한이다. 진솔하게만 쓴다면 죽음을 앞에 두면 자신의 삶이 일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며, 정말이지 내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정작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시도도 하지 못하고 일생이 밀려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때에 따라 어떤 이들의 경우는 그 거대한 파도 앞에 자신이 정작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파도 거품에 휩쓸려 떠내려 보내는 이들도 있다. 어떤 경우던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단군의 후예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죽음편지 부분은 관계보다는 두 번째 하지 못했던 일, 즉 천복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 (물론, 자신의 꿈을 하지 못한 근본을 캐나가다보면, 결국 관계에 그 뿌리가 닿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계와 일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늘 맞물려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죽음의 회환 앞에서는 세상 눈치보느라, 세상에 나를 맞추느라 하지 못했던, 그러나 어쩌면 내 삶의 진정한 의미가 되어줄 수 있었던 그 무언가가 어렴풋이나마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작은 실마리라도 잡히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조금 길었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단군의 후예에서의 "죽음 편지"는:
1. 진솔하게, 정말 진솔하게 써 본다.
2. 관계부분은 원하면 발표를 해도 좋고 (발표할 수 있는 부분은, 발표와 함께 내려놓음이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원하지 않으면 발표를 하지 않아도 좋다 (발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글로써라도 대면하기 시작하면 "객관화 과정"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3. 관계 다음에 이어져 나오는 "천복", 즉 자신이 진정 열망했던 꿈 부분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면 그걸 부족원들과 공유하면서 자기탐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4번째는 이런 과정을 함께 한 부족원들간의 "끈끈한 결속력"이 내면탐구라는 길고도 조금은 힘든 여정에서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어제 부족원들에게도 말했지만 내면탐구는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작업이다. 그런만큼 "함께 하는 힘"은 100일차보다 점점 더 강도가 진해지면서 나를 지탱해주는 귀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 같다.

무튼, 연구원 시절 나의 죽음편지때도 그러하고 어제 부족원들의 죽음편지도 그러하고, 한 사람이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한번쯤 바닥 깊이 내려가 정면으로 마주본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라 생각된다. 변화를 원한다면 간절함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또 하나가 "용기"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가장 어려운 존재가 다름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의 부족원들이 자랑스럽다.

그 분들은 분명 발표한 이상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을테고, 지금부터 남은 2백일차는 더욱 깊이 한 걸음 들어갈테니 말이다.

참자아를 찾아 떠나는 변화에의 내면탐구.
그 아프고도 빛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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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11:49:44 *.118.58.146
# 단군 2기들의 죽음 편지를 지켜본 느낌..

위 글에서 죽음편지가 지닌 의의를 정리했다면, 이번에는 전체적인 느낌을 정리해보고 싶다.
이 느낌이 내 안을 떠나기 전에..

우연이었겠지만 금요일, 죽음편지 세미나 하루 전날, 사부님께서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 두 편을 올려주셨다.

"내 육체 안에 있는 것은 언제나 너였다.. "

불가에서는 늘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일체중생 모두가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러나 늘 말씀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나의 책을 읽더라도 어제 체득되는 구절과 오늘 그리고 내일 체득되는 구절은 다르다.
그래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우고 또 배울 수 밖에 없는 존재겠지..

그랬었다.
나를 내려놓으려 노력했지만, 타인의 삶과 내 삶이 하나라는 것까지는 아직이었다.
끝끝내 남아있는 에고가 타인과 나의 혼연일체를 막아서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제 단군2기 분들이 내게 선물을 주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가득한 선물을..
그분들 한분, 한분이 자신의 삶을 펼쳐보이는데... 그 순간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내게로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사람과는 이 부분이, 저 사람과는 저 부분이..
이렇게 저렇게 삶을 공유하며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은 닮아 있다..
우린 동떨어진 행성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직 모르고 있었을 뿐..

에너지가 필요하다.
말하지 않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힘들다. 성가시다.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피하고만 싶다..
그러나 어디까지.. 지구 위 그 어느 곳에도 숨을 곳은 없다.
육신이 죽은 뒤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거기에 머물면 내 영혼의 존재가 감춰질까..

흐르고 또 흘러야 하는 것이 의식이고 의식의 에너지장을 담고 있는 것이 영혼이다.
그래서이다. 힘들지만 영혼이 깨어나게 해주어야 하기에, 참 자아를 마주보아야 하는 거 말이다.

쉽지 않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때론 함께 한다.
혼자, 오로지 홀로 감당해야 할 몫도 있지만
때론 함께 에너지를 모아 더 큰 에너지장을 형성할 필요도 있다.

나는 돌로 죽어 꽃이 되었다.
나는 꽃으로 죽어 짐승이 되었다.
나는 짐승으로 죽었다.  그리고 사람이 되었다.
왜 죽음을  두려워 하는가
죽음을 통해 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한 적이 없건만
죽음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건만
내가 사람으로 죽으면 그 다음 나는 한 줄기 빛이나 천사이리라.
그리고 그후는 어떻게 될까.
그 후에 존재하는 건 신뿐이니 다른 일체는 사라지리라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한, 누구도 듣지못한 것이 되리니
별 속의 별이 되리라.
삶과 죽음을 비추는 별이 되리라.

역시나 하루 전날 주신 루미의 시다.

티벳 불교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노래를 부르고 환호하면서 장례식을 치른다고 한다.
더 좋은 세계로 건너가는 영혼을 축복해주기 위해..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난 그래도 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아니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나, 약간 황망했던 것 같은데..

죽음..
죽음이 두려운 건, 삶의 바닥, 삶의 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편지를 잘 써보면,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바닥을 한번 경험하고나면 허위의 삶을 벗어버리고 오직 진솔함을 추구하며 살 수 있기에.

그러나 그 다음은 분명 "죽음조차 뛰어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 역시 어제 다가왔다..
루미의 시처럼, 죽음은 내게 한번도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
늘 나를 더 큰 세계, 더 큰 진화의 과정으로 이끌고 있을 뿐..

그 일련의 과정을 아름답게 이루고 싶다.
우주가 내게 내린 삶의 의미에 내 영혼이 답하여 깨어났다면
이젠 아름다움으로 남은 여정을 물들여가야하는 거겠지..

그러면 죽음을 반겨 맞이할 수 있을 게다.
내 육신의 죽음말이다.
그거야말로 내가 태어난 바로 그 곳, 그 아름다운 영혼의 별로 돌아가는 길일테니 말이다..

이래서이다.
이래서 사람들의 관계, 아름다운 에너지장을 가진 이들과의 관계는 축복이다.

그들의 죽음 속에 가려진 삶을 들으러 갔다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했다.
어제 하루는 내게도 햐얀 겨울 속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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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09:03:39 *.12.196.85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8>

# Book review 80- 자크 아탈리의 "살아남기 위하여" 읽기 완료

다시 아탈리로 돌아가 읽기를 완료했다.
이 책은 적어도 3~5장 부분은 인용문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북리뷰는 인용문 정리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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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09:06:22 *.118.58.142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09>

# Book review 80- 자크 아탈리의 "살아남기 위하여" 인용문 정리 완료

인용문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총 7장으로, 1 & 2장에서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 위기의 주 원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분석한다 (다시 한번이라 표현하는 것은, 그의 전작 "위기 그리고 그 이후"에서 상세히 다뤄지 부분에 대해, 그 이후 현재까지 발전한 모습을 요약처럼 짚어주기 때문이다).

3장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는 근본 원칙 7가지를 제안한다.
이 7가지 제안이 얼핏 한번 읽으면 그다지 날카롭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인용문을 정리하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미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개인/기업/국가/인류에 대한 아탈리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그 기본원칙을 4장에서는 개인의, 5장은 기업, 6장은 국가 그리고 7장에선 인류의 생존원칙으로 제각각에 맞추어 재해석해서 설명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아무래도 1~2장을 읽으며 내가 속한 글로벌 세계가 왜 이다지도 복잡하고 소란한지를 조금 더 이해한 뒤, 다음으로 3 & 4장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생각한 것 같다. 다음은 아탈리가 생각하는 미래 생존원칙 7가지와 각 개인의 생존전략이다.

1. 자긍심의 원칙 (기본원칙) - 개인의 법칙: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이나 집단들 중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조차 없거나 전혀 존중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따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 스스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이다 (127)"

아탈리가 무슨 변화전문가도 아니겠고, 철학자도 아닐텐데 그가 제안하는 미래 생존원칙 1법칙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생존원칙 1이라니..

이를 개인에게 적용하면:

"요컨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이며, 각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꾸준한 성찰과 자각이 필요하다 (146)."

그러니까 아탈리가 제시하는 미래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개인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갈 줄 아는 존재여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 연구소에선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아탈리의 책에서 이렇게 만나니 그나름 또 새롭다.

스승님은 늘 중용이란 평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의 미학"이라고 말씀하셨다. 아탈리가 말하는 자긍심의 원칙을 읽으며 이 말씀이 떠오르는건, 자긍심이란 무조건 외부 환경에 나를 맞춰 단기적인 성취에 도취하는 자만심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필요하게 주눅들지도 않는 한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최적의 균형적인 상태를 논하는 것 같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긍심을 지니며 살 수 있을까..?

"스스로를 존중하기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개혁하여 자신이 가진 최고의 능력을 끌어내며, 자신이 현재 알고 있는 것,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더 나은 존재 이유를 만들어 가야 함을 의미한다 (148)."

낯설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아무리 방법을 모색해도 삶을 발전시키는 길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하는 일이라는 걸 거듭 깨닫게 되니 말이다..

2. 전력투구의 법칙- 개인원칙: 시간의 밀도를 높인다

"삶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152).

긴 말이 필요없는 제2의 원칙이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을 깊게 해야 할 부분은 "밀도"를 높이라는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같은 하루를 살아도, 같은 한 시간을 무언가에 투자해도 엄청난 에너지를 집중하라는 의미가 되니, 그냥 쉽게 읽고 넘어갈 부분만은 아니다 (밀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3. 감정이입의 원칙- 개인원칙: 감정이입을 통해 세계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정립한다.

또 하나의 출중한 미래학자 리프킨이 말하는 "공감의 시대"와도 상통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세계의 철학적 패러다임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이루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탄력성의 원칙- 개인법칙: 충격을 겪으면 다시 튀어오른다

충격 혹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물론 탄력성이란 저절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너무도 자명하고, 아탈리는 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5. 창의성의 원칙: 개인원칙 - 위협을 기회로 바꾼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말은 익히 낯익은 표현이다.
탄력성이  충격을 극복하는 원칙이라면, 창의성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전환의 힘을 내재하고 있다.

6. 유비쿼터스의 원칙: 개인원칙 -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중세시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끝없이 존재 자체를 위협받으며 살던 유태인들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이 부분이 내겐 또 한번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나에게는 과연 여러 삶을 소화하고, 여러 문화에 동참하며, 여러 개의 언어, 교리, 신앙을 구사할 능력이 있는가. 여러 가지 중에서 몇몇 요소를 취사 선택하되, 그 선택으로 인하여 구속받거나 자아를 상실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여러 삶을 병행해서 순차적으로, 아니 이보다 더 대담한 시도가 되겠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완전히 투명한 가운데 성심껏 영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를 자문해보아야 한다 (165).

어렵다..
공간을 초월해 어느 문화, 어느 땅에서라도 생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러나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지구 위 그 어디에서라도 적응함과 동시에 고유한 "나"는 지켜나갈 수 있냐고 묻고 있다. 물론 그 "고유한 나"는 허영덩이의 에고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난 참 많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나의 안일함에, 나의 나태함에..

7. 혁명적 사고의 원칙- 개인원칙: 혁명적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자긍심을 지닌 "고유한 나"를 지키지 못한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면, 혁명의 기치를 들어올리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이 과연 시대를 불사르는 거대한 횃불만을 의미할까..

나는 과연 자긍심을 지키는 "고유한 나"를 지키고 있는지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7가지 원칙의 실현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며, 정신적인 여유와 겸손을 필요로 하는 훈련이다. ... 제대로 잘 실현되기만 한다면, 생존에 필요한 이 7가지 원칙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에너지로 우리를 무장시켜 줄 것이다 (169).

개인의 원칙 끝을 장식하는 저 문장이 결코 화려하거나 시끄러운 동요를 조장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묵직하게 울려오는 건, 아마도 얼마전에 읽은 아탈리의 철학 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가 떠올라서 였던 것 같다.

거기, 그 곳에, 일개 개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지키고자 위 7가지 생존원칙을 그대로 자신들의 삶에 담아서 살고 있는 모습들이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개인들로 인해 결국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사상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아탈리의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에너지"라는 말이 그저 장식용 끝문장이 아닌 아탈리 자신의 오랜 시간 철학적 사유에서 나오는 울림인 것을..

얇은 책이고, 어렵지 않게 쓰여졌지만, 어렵게 읽어야 할 책이었다.
중세 어둠의 시대를 살아남은 현자들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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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08:23:18 *.12.196.93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10>

# Book review 81-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2" (어제 밤에 읽기 완료: 북리뷰는 블로그에..)

# Book review 82-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1부 224쪽까지 읽기 완료

자크 아탈리의 "살아남기 위하여" 다음으로 시작한 책이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아탈리의 책을 읽어서 자연히 이 책으로 손이 간 것 같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리프킨의 주장, "인류는 호모 엠파티쿠스, 즉 공감하는 존재이다"를 증명하기 위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의 증거를 찾아 독자를 자신의 주장으로 끌어들이는 중이다.

엄청나게 두껍고, 엄청나게 많은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솔직히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그의 핵심 주제에 깊이 몰입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마 그의 주장은 2부, 문명과 공감을 지나 3부, 공감의 시대에서 보다 확실히 전개될 것 같다.

그러나 인류가 전 지구의 에너지를 소비만하여 인류종말이 더 이상 막연한 상상이 아닌 시점에서
(인류 종말론은 사실 현실화 될 수 있는 개념임을 아탈리의 "살아남기 위하여"를 읽으며 느꼈다. 인류 전체의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책에 보면 지구 위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수많은 종들이 멸종한 예가 커다란 경우만 꼽아봐도 5번이나 된다. 그렇다면, 그 멸종하는 종에서 인류만이 부단히 안전할 것이라 믿는건 너무 극한 낙천주의가 될 것 같다. 조금 더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인류가 개개인 차원에서 "공감의 시대"로 진화해 가야 한다는 저자는 일단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저자의 주제 자체가 믿고 싶고, 따르고 싶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나 할까..

너무 방대한 지식보다는 그것들을 제레미 리프킨이란 훌륭한 연금숫사를 통해 보다 정교하고 명쾌한 주제로 풀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 다양하게 폭넓은 배경을 소개하면서까지 현대인들을 공감의 시대로 이끌려는 저자의 주제에는 적극 동감이다.

2부와 3부를 읽으면 그림이 보다 명확해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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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19:36:47 *.118.59.101
ㅋㅋ 언냐, 내가 뛰어봤자 벼룩이징~ ㅋㅋㅋ
글고 통과 몬한게 아니라니까~ 그냥 다 뜻인게야. 더 좋은 일을 위한 우주의 미소라니까^^

근데 쫌 이상해. 연구원 현역시절에는 책을 읽으면 하나씩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요즘은 한권 읽을 때마다 부족한 내가 점점 더 보여. 현역시절에는 철없이 그저 마냥 기뻤던걸까..?

언니가 그리는 멋진 사람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나이지만
일단, 무조건, 묵묵히 걸어갈께..

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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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
2011.01.19 16:40:10 *.121.41.236
너무 멀리, 너무 빨리 가지말지?
통과도 못한 내가 헉헉대잖아! ㅋㅋㅋ

맘 좀 다잡아 볼라고 마실 다니는 중일세.
아는 사람 이름이 여기 한 네명은 있네.

나날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맘도 몸도 생각도 눈빛도. 그래서 더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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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19:03:57 *.68.144.13
샤먼이라는 이름이 왜 붙은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조용히 그림자처럼 다가와서 용기를 불어넣어주시고 가세요.
매번 따뜻한 응원에 힘이 불끈 솟아납니다ㅎ 감사합니다 더 힘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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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19:39:39 *.118.59.101
힘이 난다는 동재씨 말이 참 훈훈해서 좋은데요..^^
이런 것 같아요. 서로를 응원해주고 용기주고.. 그게 우리 단군이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겠죠..
그럼 동재씨의 따듯한 말에 힘입어 샤머니도 더욱 열씸으로 정진하겠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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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7:54:29 *.12.196.85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11>

# Book review 83-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원재: 철학의 위안) 읽기 완료

와우!
약간 지겨운 공감의 시대를 비껴나 집어들었던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단숨에 읽었다.

잼있다. 쉽다. 그러나 깊다.
한 마디로 짱이다! 

러셀의 "서양 철학사"라는 철학 만찬을 준비해놓고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에피타이저를 먹은 기분이라고 할까. 근데 그게 정말 특이하다. 보통의 필력 앞에 (그러나 그는 니체에 가서 필력이 탄생하기까지의 고통에 대해 여과없이 드러내는데, 전율이 일 정도다..)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마구 빨려 들어갔다는 표현이면 될런지..

보통은 소크라테스, 에피쿠로테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를 현대로 불러낸다.
그렇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이르는 이 철학자들이 보통에 이어 현대, 바로 이 시점에서 내게 이야기를 하듯 풀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 드러나지 않게 이어가고 있지만 이 여섯 철학자들간의 보이지 않는 사상적 흐름 전개 또한 일품이다.

유명한, 너무도 유명해서 마치 내가 그의 사상까지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쾌락의 철학자라는 단 한마디로 단정짓는 무례함을 범하고 있는 에피쿠로스
철학이 일상에서 왜 필요한지에 대해 소개하는 세네카에 이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과 일상이 맺을 수 있는 상상 외의 세계로 이끌고 가는 몽테뉴
역시 삶은 고통일 수 밖에 없는건지를 동의하게 만드는 쇼펜하우어를 거쳐
그 자신 쇼펜하우어를 거쳐, 그를 딛고 자신만의 정상에 오른 니체까지.

그러나 보통이 이 한권의 책을 쓰기 위해 단지 위 여섯 명의 철학자만 연구하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수많은 철학자들 사이를 거닐다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었겠지..

"우리는 그렇게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걸작의 이면에 숨어 있는, 뼈를 깍는 작가적 투쟁의 증거들을, 말하자면 <수상록>이 태어나기까지 치러야 했던 수많은 첨삭과 퇴고를 발견해야 한다 (341)"

"니체에 따르면 만약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적과 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작가들이 천재성을 결여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창작하는 데 따르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소설 작품을 남기려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342)."

니체에 가서 화산처럼 터져나오는 보통 자신의 견해들 앞에 나까지 가슴이 뛴다.

니체라는 우버멘쉬 (초인)에 대해 한 점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너무 어려운 니체라는 거대한 대양에 쉽게 발을 담그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게 보통은 또 하나의 길을 보여주었다. 그 자신의 경쾌한 현대적 해석과 함께.

"철학은 결국 인간 잠재력에 대한 극단적인 믿음 (위대한 소설을 집필하는 일이 그렇듯, 인간 완성도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과 극단적인 고통 (우리는 첫번째 책을 쓰느라 10여 년을 비참하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의 묘한 혼합으로 귀착되었다 (343)."

니체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밤에는 간소하게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대가에 이르는 불변의 법칙과도 같다..

*다시 한번 인용문을 정리하며 긴 호흡으로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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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08:53:50 *.12.196.109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12>

# Book review 82-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2부 6장~8장까지 읽기 완료

어제는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선배가 한국으로 역출장?을 오게 되 간만에 사부님 모시고 저녁을 먹게 되었다. 좋은 자리.. 너무도 좋은 자리여서 정말 일찍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결국 평소보다 늦게 들어와 새벽에 잠들었더니 오늘 새벽에는 잠이 쏟아져셔 책 읽는 내내 거의 서서 읽어야만 했다. 몸이란 어찌도 이리 정직한지 말이다.

무튼, 겨우겨우 읽은 2부 세 개의 장은 리프킨이 인류 문명을 더듬어 "공감의 근원"을 찾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첫 번째 공감문명의 태동은 신석기 시대.
고대에서 가장 평화로웠다고 여겨지는 신석기 시대는 농경의 시대로서 자아에 대한 의식은 없었어도 서로에 대한, 동물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공감의식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다.

다음으로 그가 꼽은 건 로마 시대.
이 때의 공감 역시 아직 확실한 자아의식의 발로라기 보다는 제국이 팽창하고 확산하기 위해 타민족, 타인종 심지어 타종교까지 폭넓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면서 근저에 깔리기 시작한 공감의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리프킨의 주장에 따르면 로마는 이 공감문화를 바탕으로 그토록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나, 로마 제국 멸망 후 약 5백년간의 암흑 시대에는 공감의식이 다시 단절되었다고 한다 (물론, 리프킨이 로마 제국 발전과 쇠락의 원인을 공감 단 한가지에 준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 책의 주제가 '공감'인만큼, 내가 공감이란 관점에서만 정리 중이다).

그리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성숙한 공감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바로 16세기.
과학과 예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시작하여 문학의 천재 세익스피어로 끝난다고 하는 16세기는 르네상스 중에서도 "북유럽 르네상스"라고 불리우면 인간과 자아에 대해 인류가 본격적으로 풍성한 문화를 꽃피우는 바야흐로 "인문시대"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어제 보통의 책에서 만난 몽테뉴를 다시 만났다.

"공감은 전적으로 육체성을 입은 채 노래하는 삶의 예찬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감은 또한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수단이다. 몽테뉴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343)."

그러니까 몽테뉴는 인간의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 몸과 마음과 영혼이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펴며,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보다 깊은 고찰을 하는 철학에의 길을 펼친다.

이후부터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등의 사적인 개념에서의 "자아"가 생겨나며, 인류는 바야흐로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는 한 영혼과 마주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리프킨의 주장에 따르면 공감은 자아성찰로부터 시작하여 인류 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배우자로 확산되며 (그때까지 일방적인 가부장적 결혼 제도가 이 시대 이후 서서히 동반자 개념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점차 보다 큰 관계로까지 사회적으로 확산되시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상이 8장까지이 내용이었고 다음 9장은 근대 사회, 10장은 현대사회에서 심리학적 견지에서의 공감을 다루고 있다.

그런 후 아마 3부에서 리프킨이 정작 주장하고 싶었던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공감의 시대"를 펼쳐가게 될 것 같다.

길고 지식도 방대한 책이다.
하긴 한 시대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장하고자 하는 미래 사회학자의 작품이다.
두꺼운 책만큼이나 깊은 저자의 노력 앞에 침묵하며 그의 말을 따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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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16:36:42 *.124.233.1
누나! 내일이면 뵙겠네요 ^^
지난 1년은 제 자신의 진정성과 간절함을 시험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사부님의 그 한마디 때문이었죠.
'오직 자신의 글과 역사로만 이야기 할 것'
그 한 구절이 제 안에 천둥같은 울림으로 다가와
모든 걸 내려 놓고 안으로 안으로 들여다 보았어요.

제 간절함이 저를 연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거겠죠?
연금술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어요.

온마음을 다해 간절히 원할 때 우주가 제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주겠지요?
초심자의 행운만이 아닌 가혹한 시련으로 점철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이미 쓰여진 제 운명이고, 역사의 기록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걸으려 합니다.
'마크툽'

고마워요 누나! 토요일에 뵐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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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1.01.22 12:24:04 *.118.58.50
하모하모 마크툽이야!
그리고 우린 "자아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온거지..^^

좀있다 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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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08:52:26 *.118.58.50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13>

# Book review 82-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2부 9장 & 10장 읽기 완료

근대로 넘어오는 9장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다름아닌 "낭만주의"이다.
18세기가 이성과 감성이 줄다리기를 하는 "감성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이성을 맹신하는 계몽주의의 반발로 생겨난 "낭만주의"시대가 펼쳐진다.

영국인들이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사랑한다는 제인 오스틴이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오만과 편견" & "이성과 감성"을 발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녀는 이성과 감성의 차이를 소설에서 치밀하게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16세기의 돈키호테가 첫 소설 형식의 문학작품으로 이상세계를 꿈꾸는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면, 3세기 뒤의 그녀 작품은 소설 속에 이성과 감성의 차이를 세밀히 다룬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지금까지 독자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면 제2의 르네상스라고 불리우는 낭만주의의 특징은 무엇일까?

역사가 에릭 홉스 봄은 낭만주의를 1789년~1848년까지라고 구분지으며, 이 시기를 "공감의 세속화"시기였다고 정의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1848년: 전 유럽적 혁명).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역시 무능한 권위에 대한 반동으로 인간의 영혼을 재조명한다는 것에는 일치를 두고 있으나, 물질을 강조하는 16세기 인문주의에 비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적 유기체로 바라보며 철학과 느낌을 중요시했던 점에서 낭만주의는 그 차이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을 고정불변한 것이 아닌 자연은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 소멸, 생성을 거듭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으며 인간은 그 창조적 흐름의 한 지류라고 보는 견해이다.

다만 그들이 보는 인간은, "개인은 창조적 잠재력을 부여받은 고유한 존재였다.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고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로 활용하는 것이 진정 자유로운 삶이었다 (427)." 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그 어떤 시대보다 고유한 정체성을 띠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타고난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열쇠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루소에 의하면, 다름아닌 "상상력의 자유"라고 한다.

"낭만주의의 대부 루소는 누구나 자연 상태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타락한 문명이 방해꾼이 되어 개인의 자연적 성향과 가능성을 억누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문명을 개조하여 문명과 진정한 자연적 인간을 조화시키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428)."

그러나 루소 그 자신도 자신의 <고백록>에사 말하듯이, 상상력을 잘못 해방시키다간 자칫 광적인 이기심으로 도달할 수도 있으니 낭만주의의 가장 큰 고민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상상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 핵심이었다. 당시엔 '창조적 천재'가 하나의 새로운 현상이자 유행이었다 (428)." 라고 한다.

그렇다면 에릭 홉스 봄이 말한 공감의 세속화란 낭만주의와 어떤 연결성을 갖는걸까?

"낭만주의 운동은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상상하는 것을 중요시했다는 이유로 공감 의식의 진화라는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에 위치한다. 이 시기에 공감적 영감을 진전시킨 주역은 다름 아닌 시인들이었다 (429)."

이로써 근대 시인들이 어째서 유럽에서 대거 출현하게 되었고, 그들이 시가 지금까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철학자로 넘어오면 공감의 과정을 분명하게 정의한 쇼펜하우어가 등장하게 되지만, 결국 낭만주의 운동은 철학적, 문학적, 예술적 운동을 넘어서 "사회적 행동주의"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남녀관계에서 "소울 메이트"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결국 20세기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꽃피우게 된 소유와 존재의 문제에서 소유를 존재의 적으로 삼은 낭만주의들에게 인생이란 여정은 "인간 본성의 뿌리를 찾는 여정"이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구조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성숙이다. 우리 모두는 공감적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러한 존재의 핵심은 문명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통합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진정한 공감 의식을 전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456)."

이렇게 귀결된 낭만주의 사조는 결국 1848년 파리에서 불꽃이 폭발하여 전 유럽으로 번지는 혁명으로 이어진다.

길고 긴, 그러나 매우 중요했던 9장, 낭만주의였다.
현대인들이 21세기에 인간의 자유와 존재성에 대해 보다 깊이 고찰할 수 있는 두 번의 역사가 있었다면
16세기 르네상스와 그 뒤를 이어 커다란 보폭으로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해 들어간 19세기 "낭만주의"를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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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포스트 모던의 실존적 세계에 담긴 심리학적 의식에서는 사회학 시대가 가고 "심리학의 시대"가 도래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심리학의 시대가 도래하는 걸까?

"석유로 가동하는 내연기관과 함께 전기가 발명되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체제가 탄생했다. 인간의 의시깅 또 한번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 심리학적 의식으로 사람들은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나 생각은 물론이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까지도 사고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누구나 심령의 탐구자요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 그렇게 시작된 공감적 표현은 베이비붐 세대의 저항 문화와 사회적 행동주의 물결과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462)."

데이비드 호킨스는 "호모 스피리투스"에서 인류의 의식수준은 20세기 이후 놀라우리만치 진화의 속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리프킨의 책에서 그 원인?과도 비슷한 해답을 얻으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이유야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제 인류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놀라우리만치 내적 성장의 길을 걷게 되는 것만은 틀림없고, 그 중심 주제는 "공감"이라는 리프킨의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감과 정신세계가 맞물려 있는 걸까? 조금만 더 들어가보자.

"생각 자체에 한계가 없다는 생각은 20세기 초에 정신세계를 다루는 문학에서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다. ... 결국 공감은 그 자체의 본성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경계를 조금씩 허문다. 공감을 경험하는 과정은 비물질적이면서도 물질적이다. 비물질적 사고 매체를 수단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467)."

이 부분을 읽는데 얼핏 자크 아탈리의 철학 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가 떠오른다.
서구 사회는 철학이란 이성을 딛고 통찰이란 정신 세계로 나아간다는 말 말이다 (이 역시 호킨스의 주장과도 일치하여 아탈리 소설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던, 결국 리프킨에 와서도 표현은 다르지만, 여러 이론들이 한 줄로 꿰어지고 있다..).

"개인사의 고유한 본성을 강조하고 현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관용을 길렀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기꺼이 인정하면서 사람들은 각자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고유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고유한 개인사인 그들의 특이성과 유한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더 많은 공감적 반응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각적 관점은 도덕적 상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약점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480~1)."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내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고,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역으로 우린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이 될 수 있다. 드디어 징하게 내게 들러붙어 있는 "에고"를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해 객관화 작업을 이루기 시작하면, 이제 서서히 시관과 공간에 꼼짝없이 갇혀있는 시공의 감옥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는게다..

"아인슈타인은 절대 시간이란 개념을 거부하면서, 시간 그 자체는 관찰자와 관찰되는 대상 사이의 상대적 움직임에 의해 결정되는 관점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482)."

비로소 과학자가 아니라도, 과학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 하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우린 문학에서 시간적 연대기가 아니라 시공을 넘나드는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 전개하는 소설, 제임스 조이스의 그 유명한 "율리시스"를 만나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는 시간과 공간과 복수시점을 문학에 응용하여 세잔과 피카소와 입체파들이 캔버스에서 시도했던 효과를 거두었다고 스티븐 컨은 지적한다. "율리시스"에서 조이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은 더블린의 평범한 일상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마음은 우주로 날아가 멀리 은하계를 떠도는가 하면 분자의 미시 세계로 뛰어들어 시간과 공간의 배열을 현기증 날 정도로 뒤섞어 놓는다. 조이스를 통해 독자들은 처음으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의식의 흐름이란 마음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을 떠돌 듯, 우리가 걷거나 잠자는 순간에도 불쑥 겪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의식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하루 동안에도 마음 속에서는 여러 곳과 여러 시간을 오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다. 마음은 고정된 시점에 머무르는 법없이 이음새 없는 객관적 현실을 수용한다 (485)."

결국 다양성을 받아들여 자신에 대한 객관화 작업을 행하다보면, 역설적으로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의 현실은 번잡하고 시끄러우면, 모든 사람은 그와 같은 현실 속에서 나름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우린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이 바로 리프킨의 주장이다.

"서로에게 공감할 때,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상대방의 일상적 투쟁을 인정하고 좀 더 잘살아 보려 애를 쓰고 자신을 초월하려는 욕구를 높이 평가한다. ... 이상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수히 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486~7)."

불가에서 말하는 측은지심 혹은 자비심을 타인에게 적용하기 시작하여 결국 나를 구원한다고나 할까..
어째서 서구 현대 철학이나 현대 물리학이 서서히 동양사상으로 근접해 들어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에게 공감이 차지하는 의의는 무엇일까?

"데이비드 존슨과 로저 존슨은 그들의 공저 <협력과 경쟁>에서 이렇게 밝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관계는 우리 생존의 핵심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잉태되어, 태어나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504)."

여기서 떠오르는 철학자는 역시 사르트르:
"타인은 지옥이나 인간은 구원이다"

나 한 사람을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타인과의 관계가 소중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릇된 개인적 이기주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공감하면 "우리 속의 나, 나 속의 우리"를 성장시켜 나가는 정신 세계를 지향하게 된다.
이는 철학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으로, 심리학에선 "인본주의 심리학"으로, 정치에선 "신좌파주의"의 형태로 드러나 20세기를 그려내고 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의도성을 가지고 사는 존재로 이해한다. 즉 목적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다. 목적은 인생을 보다 더 큰 맥락에서 해석함으로써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개인은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보다 더 큰 맥락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 한다 (518)."

"티모시 리어리는 1960년대에 신좌파가 갖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사회학이 꾸준히 심리학에 자리를 내어주고 정치적 집단성이 개인에게 양보하는 현실을 지켜본다. 그 '여정'은 내향적이며 더 깊은 차원의 자아 검토를 지향한다. 왜냐하면 신좌파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보다 부드러운 감정에 정치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열망과 사랑, 그리고 비폭력과 동정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려는 적극성에 있기 때문이다 (526)."

아탈리는 그의 신작 "살아남기 위하여"에서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첫 번째 조건으로 "자긍심"을 꼽았다. 그리고 자긍심을 가지려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삶을 꾸려갈지를 치열하게 생각해보라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나 인본주의 심리학자 심지어 신좌파주의 정치학 모두 치열하게 고뇌한 뒤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나는 나 하나의 삶을 위해 그리 깊게,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우리 사회는 21세기를 넘어오면서 동양의 뿌리 깊은 동양사상을 깊이 고찰하고, 그것을 현대로 변형시킬만한 철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정치적 고민을 얼마나 한 것인지.

더 이상 이 땅위의 정치, 사회 현실이 그들만의 문제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작은 그리 거창할 필요없이, "나"의 내면세계로 한 걸음 들어가보는 성찰에서부터 시작하면 충분하고도 충분하지 않을까.

리프킨의 방대한 지식 앞에 혼이 다 얼떨떨할 지경이지만 그런만큼 가깝지만 그다지 자세히 알지 못했던, 근대 사회를 한걸음 더 이해하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아마 두고두고 곱씹으며 추후 읽는 책들과 연결이 될 듯 하다.

뛰어난 한 개인이 끼치는 영향력이란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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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08:29:28 *.12.196.164
<먼별 샤먼의 단군일지 214>

# 새벽 수련 이야기

어젠 단군 1기- 3백일차 "가치 모델" 1차 세미나가 있었다.
당연히? 끝나고 함께 저녁 묵고 3차로 커피까지 마셨다. 해도해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이 사람 이야기도 듣고 싶고, 저 사람 이야기도 듣고 그러면서 또 내 이야기도 하고.
다들 오늘 새벽 기상이 아니었으면 훨씬 더 오래 있었겠지만 우린 10시가 안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단군이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내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정리하느라.

오늘 새벽에는 겨우겨우 눈을 떴다. 책 읽기는 불가.
최후의 수단?으로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에서 제대로 만난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의 삶을 그린 영화 "비커밍 제인"을 보았다.

# 단군 1기- 3백일차 "핵심가치 찾기" 1차 세미나를 끝내고..

나의 경우 핵심가치 찾기와 다음 세미나에서 다루게 되는 역할 모델 찾기를 연구원 시절 진행하였다.
사부님께서 알려주시는 책들과 책들 사이를 누비며 찾게 된 나의 핵심가치는 "신념, 열정, 끈기" 세 가지였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 모델은 (연구원들은 한 사람의 롤 모델보다, 각자 핵심가치를 자신들의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간 세 명의 인물을 설정해야 한다), 신념은 예수회의 로욜라 신부님, 열정은 피카소, 끈기는 미켈란젤로였다.

그렇다면 사부님께선 왜 핵심가치를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걸까?
왜냐하면 변화를 만들기 위한 "침묵의 일만시간"을 거치려면,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한 사람이 꿋꿋이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중심 동력이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즉 "핵심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일상은 시달림의 연속이라 할만큼 누구에게도 힘겨웁다. 여러 각도에서 소소한 일들이 치고 들어와 부대끼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서 쉽사리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개인들도 자신들만의 "철학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밖에 없다. 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나무는 튼튼히 자랄 수가 있지만, 뿌리가 깊지 못하면 그 나무는 꽃이나 열매를 피우기 전에 비바람에 뿌리체 뽑힐수도 있기에 말이다.

신기한건 핵심가치가 그 자체도 변화 혹은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작년에 단군 프로젝트 2백일차를 하는 동안 내 안에서 핵심가치 중에서 특히 신념 부분은 어쩐지 너무 무언가 강박관념이 느껴지지 않니..?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역시 어제 구체적인 방법으로 진행해보니 새로 형성된 나의 핵심가치는 뚜렷한 변화를 보여준다.

누군가는 묻고 싶을 수 있겠다. 핵심가치라면 일생 변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 변화는 핵심가치가 호킨스식의 설명에 따라 의식수준 200 아래로 변한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만, 반대로 진화하거나 혹은 보다 더 "진정한 나"에 다가가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연구원 초기에는 아직까지 사회적 분위기가 내 안에 많이 잔존하여 "진정한 나"와 "의무적인 나" 사이의 회색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내게 너무도 중요했던 시기는 2010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은 변화에의 첫 걸음을 내디디고 내 안을 헤뒤집고 나를 찾고 했던 시기로서 중요했더만
2010년은 새로 태어난 내가 자칫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도 있었던 갈림길에 다시 한번 놓이게 되는 해라고 할까.
그래서 연구원 2년차가 중요하다고 스승님께서는 늘 말씀하신다 (물론 이전 생활로 복귀해도 그 나름 변화를 이어가는 연구원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워낙 전면적인 변화를 원했던 경우라 그래서는 안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계속해서 프리랜서로 머물며 현실은 보다 퍽퍽해졌지만 내면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거 말이다. 그리고 단군의 후예가 내게 다가왔다. 우주가 길을 열어주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 일.
단군 프로젝트 덕분에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연구원 2년차 2010년을 연구원 시절 행하던 나름의 내면탐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 그래서 어제 드디어 난 새로운 핵심가치를 내 안에서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서 새로 형성된 핵심가치는 "정신적 성장, 자아실현 그리고 가족"이다.

정신적 성장:
나라는 한 영혼이 이 행성에 온 이유인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가 아닐런지..
정신적으로 성장을 이뤄나가기 시작하면 알게 모르게 삶 속으로 "평화와 자유"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세상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사라지며, 두려움이 옅어져간다.
카잔차키스의 말처럼 세상에 바라는바 없으면 두려움이 없고, 그러면 거대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아직 나야 그 정도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 가 거기에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자아실현:
우리들이 왜 외부 세상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걸까.
그건 우리 안의 "에고"가 크게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에고말이다. 그러므로 요즘 내가 드는 생각은 에고를 내려놓고 "참자아"가 "극대화" 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열정"과 기다려줄 줄 아는 "끈기"가 필요하다. 에고를 내려놓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진정으로 나답게 살고자 하는 열정이 없으면 어느 순간 포기할 수 밖에 없기에 말이다.

가족:
내게 가족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선천적 가족이 있겠고, 또 하나는 후천적 가족. 이전에 내 삶이 고통스러웠다 생각할 때는 핵심가치 안에 들지 못했던 가족이 오히려 이제는 핵심가치 안에 들어온다. 이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폭품같이 방황하던 시절을 정리하여 이제 어느 정도 내가 가야 할 길을 희미하게나마 찾았다는 의미가 될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건 선천적 가족에 대한 생각이고.

그리고 또 하나. 후천적 가족, 즉 내가 이뤄야 할 나의 가정에 대한 생각도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저절로 정리가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족의 의미는 뭘까? 내겐 진정한 사랑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진정으로 사랑하고 함께하고픈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그게 어느 날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 적령기"라는 이름으로 내게 결혼을 강요할 때 난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저항하였다. 가깝게는 엄마의 가슴에 피멍이 드는 걸 지켜봐야했고, 멀게는 이후 두고두고 회사 회식의 술자리 안주감이 되는 모멸감을 포함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거기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어머니가 되는 건 여자의 의무라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주제..

그래서 아마 내 안에서 이 부분을 쉽게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처럼 유교사상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싱글녀라는 것은 결코 드러내서 당당히 말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고뇌하고 끝없이 물어보고 스승님을 만나 여쭙기도 하면서 이제 드디어 내 안에서 정리되었다.
"사랑의 끝이 꼭 결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모든 이들이 다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고. 먼별아 사랑을 하렴. 그러나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삶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과 하렴"

사랑과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내게 스승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결혼하는 모든 이들을 축복한다. 부모되는 모든 이들을 축복한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았다고 문제될 건 없다. 그 또한 개인의 선택적인 사항일 뿐이다.
내겐 사회적 적령기보단 "정신적 적령기"가 더 중요하다. 너무 소중한 일이었기에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겐 남편보단 인생을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가 우선이었다.
파트너일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 되어주길 소망했는데, 울타리가 되어줄 사람들이 있었을 뿐, 나를 자신들의 파트너로는 받아주지 않았다. 찰스 핸디와 엘리자베스 핸디처럼 서로에게 소울 메이트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꿈꾸었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을 때 난 내 앞에 드리워진 선택의 기회를 거부했을 뿐이다.

그리고 2011년 이제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되돌아보면 참 후회도 많고 회환도 많았던 시간들이었지만, 이젠 그 모든 시간들이 내 삶의 여정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이란 참 신기한게, 과거 시점에선 이해하지 못했던 삶을 몇 년이 지난 오늘에야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삶이란 오늘을 살지만, 어떤 면에선 결국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하나의 점으로 통한다는 말이 아주 아득히나마 이해될 것 같기도 한 순간이다.

핵심가치찾기에 이어 진행된 "직업가치찾기"에서도 또 한걸음 내딛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어 기뻤다.
지금까지 내겐 작가와 기획자 이 두가지는 너무도 뚜렷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벗에서부터 세번째 동그라미는 여전히 빈 공간으로 남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작년에는 그러다 어느 날부터 자연히 내게 다가오겠지..하고 생각했는데, 어제 직업가치에서 맨 끝으로 "나눔"이 나왔다.

그랬구나.. 내가 나를 바로 세우면 그 다음에는 주변 분들과 나누는 삶을 사는거.. 내 삶은 그렇게 흘러가겠구나.. 말할 수 없는 감동이 그 순간 내 안을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형태의 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업으로 다가와도 즐거울 것 같다. 즐겁게 다가오는 그 일을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어제는 내 개인적으로도 너무도 충만한 하루였다.
지난 2010년 단군을 하면서 이어온 날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형성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장 힘들었던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선 것 같다.
내면에만 스며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정리한 생각을 내 언어로 표현하고 나니 이제 비로소 홀가분하게 직면할 수 있을 것 같다. 결코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난 지금도 파트너가 우선이다. 이후 관계적 삶이 어찌 풀려갈지는 운명이란 커다란 인연에 내어맡기고 난 또 내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게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인연들을 사랑하면서 말이다.
 
요즘은 그런 느낌이 든다.
내 삶을 이끄는 것은 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에너지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기에 삶을 가로막지 말고, 되려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
삶은 참 오묘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그 깊이에 빠져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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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1:10:05 *.12.196.164
# 제인 오스틴의 삶을 그린 영화 "비커밍 제인" 영화 리뷰

현재 읽고 있는 리프킨의 책 "공감의 시대"에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제인 오스틴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을 위한 결혼을 거부하였지만, 가난했던 톰과의 사랑을 이루지는 못해 일생 독신으로 살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어제 단군 1기-3차 세미나에서 내 안의 사랑과 파트너 그리고 결혼에 대한 그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급한 마음에 오늘 새벽 아직 책도 읽지 않은 "제인 오스틴"의 삶을 그린 영화 "비커밍 제인"을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살면서 우린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지만, 언제고 하나의 선택이 행복만 몰고 오거나 어려움만 가져다 주진 않는다는 거다. 설혹 그게 사랑이든 결혼이든, 그 어떤 선택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선택은 행복과 어려움을 함께 지니고 있고, 우린 그 시간을 살아내며 나름 또 삶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비커밍 제인"

그 제목부터가 참으로 절묘하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이다.
그야말로 톰과 위슬리 사이에서 내린 결정으로 말미암아 평범했던 제인 오스틴이 드디어 진정 역사에 남는 작가로서의 제인 오스틴이 되는 계기가 되니 말이다.

"Becoming Jane" 그 제목부터가 참으로 대단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영화.

요즘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읽으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본 그녀라는 한 인물이 내게 다가왔고 급한 마음에 그녀의 작품보다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18세기 영국의 시골 어느 가난한 목회자의 딸로 태어난 제인.
그런 그녀에게 그녀는 물론이고 집안까지도 가난에서 헤어나게 해주겠다는 위슬리로부터 청혼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녀는 오만하지만 매력이 넘치는 톰에게 마음이 빼앗긴 뒤였으나 톰은 그녀 못지 않게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다. 현실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현실을 피해 스코트랜드로 도망을 결심하지만 제인은 자신보다 톰의 가족 상황 앞에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이후 스토리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듯이 제인은 일생 독신으로, 톰은 부잣집 딸과 결혼하여 변호사로서의 삶을 이어가지만 자신의 첫째 딸 이름을 "제인"이라고 할 정도로 그녀의 흔적을 삶에서 지우지 못하고 살아간다..

둘이 도망쳐 살았으면 행복했을까?
둘이 도망쳐 살았어도 제인이 작가로 성공하였을까?
만약 그러했다면 둘이 도망쳤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역사에는 "왜"가 없다고 하지만, 후세 사람들은 "왜"를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현재에 스스로 생각하는 최선의 답을 적용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내 안에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역시나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그녀가 결혼을 위한 결혼을 위해 위슬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비록 가정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있는 그대로 톰을 사랑했던 건 소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 대한 그런 진정성이 있었기에,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그 사랑을 내적인 거름삼아 자신의 작품 세계를 열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삶을 대하는 그녀의 진정성이 내게도 전해져왔다고나 할까..

여류작가로서 사랑보다 일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현실보다는 이상을 쫓는 삶을 살았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것 같은 제인 오스틴의 삶을 한 걸음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천재의 삶이 과대하게 포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그녀의 일생이 잔잔하게 다가오는 영화라고나 할까.

인생은 흑과 백이 아니기에 살면서 반드시 그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고 무조건 행복하거나 무조건 불행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 나름의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오는 것 같다. 다만 함께오는 행복과 어려움의 형태가 다를 뿐.

제인 오스틴이란 한 작가의 삶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번 반추해볼 수 있었다.
이제 그녀의 작품을 통해 그녀의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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