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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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세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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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수 0
2011년 1월 8일 14시 59분 등록
새벽 활동을 바꾸기로 했다.
갑자기 바꾸게 됐다.
기존에 정한 새벽 활동은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마음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걸 따르기로 했다.

20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어떤 책을 읽을지는 나도 모른다.
끌리는 책을 읽을 것이다.
계획은 없다.
그저 끌림을, 흐름을 따른다.
   - 1월 10일 (월) 오후 4시 30분


------- 이전 단군일지 내용 : MBTI와 STRONG을 즐겁고 성실하게 공부한다 --------

* 새벽 시간과 새벽 활동
1. 새벽 시간 : 오전 6시~9시
2. 새벽 활동
  1) 처음 30분 : 의식
  2) 2시간 30분 : MBTI, STRONG 공부


* 나의 전체적인 목표 (1~3가지)
1. MBTI 강사 자격 취득
2. STRONG 기본 교육 이수
3. MBTI FormK 검사 및 상담 8명 수행


* 하루 흐름 : 교육이나 강연 등이 없다면 아래와 같은 흐름을 따른다

[새벽]
  0. 108배, 향초 태우기, 차 마시기
  1. MBIT, STRONG 공부
  (아침 식사, 꼭)

[오전]
  1. 독서
  (점심 식사, 꼭)

[오후]
  1. 집필
  2. 프로그램 계발, 상담
  (저녁 식사, 가능한 적게)

[저녁]
  1. 집필 or 프로그램 계발 or 상담 (자유 선택)
  2. 대화


나는 삶에 대한 믿음 하나를 가지고 있다. 좋은 장면과 좋은 순간이 쌓일수록 좋은 삶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많이 그리고, 일상에서 그 장면들을 구현하는 것 그리고 그 장면을 이야기로 간직하는 것, 올해 내 삶의 방향성이다.
IP *.237.9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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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1.01.08 20:06:49 *.226.215.22
형! 300일도 화이팅이에요!
형의 좋은 장면과 좋은 순간들이 쌓여 좋은 삶이 되고
그 좋은 삶이 주변인들에게도 좋은 삶을 쌓을 수 있는 토대가 되길...

P.S : 펜들은 각인만 하면 되요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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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74
2011.01.08 22:00:21 *.201.121.165
동행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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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8 22:14:03 *.72.153.166
승완, 올해도 많이 사랑하고 빛처럼 밝은 날이 많이 있길...
햇살같이 환한 웃음 많이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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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2011.01.09 05:29:48 *.142.197.96
더 깊은 내면으로...
더 깊은 통찰로...
더 깊은 사랑으로...
또 다시 100일 입니다.
항상 받기만 하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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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6:26:09 *.237.95.132
2010년 1월 10일 (월)

새벽 활동을 바꿨다. <리더란 무엇인가>를 두 번째로 읽으면서, 문득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 목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끌리는 책 20권을 읽을 생각이다. 어떤 책을 읽을지는 정해놓은 게 없다. 아마도 기존에 읽은 책과 새로 읽는 책이 뒤섞일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읽다보면 그 책에서 혹은 다른 계기로 그 다음 읽을 책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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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12:27:15 *.55.76.110
식사는 꼭~, 꼭~, 적게, 하시구요.
승완님의 때론 짖궃은 농담에 멋지게 응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를만한 책으루 추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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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12 21:23:56 *.237.95.132
2010년 1월 11일 (화)

지난 21개월 동안(2009년 4월~현재)까지 요동치는 굴곡을 많이 겪었다. 요즘도 그렇다. 엄밀히 따지면 요즘 시작된 건 아니고, 아마 작년 겨울이 시작되면서 부터인 것 같다. 모든 게 흐릿해졌다.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 흐릿하니, 그 내면으로 보는 세상도 흐릿하다. 사고와 감정, 감각과 직관뿐만 아니라 독서와 글쓰기도 그렇고, 관계와 삶도 그런 것 같다. 가령,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고, 글을 쓸 때 '어쩌면, 아마도, ~한 것 같다'는 등의 표현이 과거에 비해 매우 늘어났다. 이에 비해 수렴형 문제나 구체적인 활동에서는 전보다 인식력이 넓고 깊어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런 문제나 활동은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흐릿함', 처음에는 몰랐다. 성격과 심리 기능의 변화에 따른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겪어 보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실마리가 어제 오늘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계속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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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11.01.16 03:27:42 *.109.72.6
승완 고마우이^^
그대는 참 좋은 벗이고 늘 배우게 하는 스승이오.
고맙다.  굳이 말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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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16 21:13:20 *.237.95.132
2010년 1월 12일 (수)

나는 사랑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랑은 내면에 있고,
주변에 있었다.
사랑을 그리워했지만 그걸 찾을 생각 안 했다. 
때가 되면 올거라 생각했다.
아니다.
사랑은 늘 있었다.
그걸 몰랐고, 보지 못했다.
그리고 사랑을 오해했다.
이제서야 사랑이 뭔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아주 조금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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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16 21:18:49 *.237.95.132

2010년 1월 13일 (목)

"영웅적인 삶은 각자만의 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
- 조지프 캠벨

삶은 여행이 아니다.
모험이다.
여행은 '돌아옴을 전제한 떠남'이다.
모험은 그렇지 않다.
모험자는 자신이 돌아올지 못 돌아올지,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돌아오고 싶을지 그러고 싶지 않을지,
알 수 없다.
삶도 그렇다.
그래서 모험이다.

허나 모험은 여행이다.
모험의 끝은 엘리엇이 말한 '출발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고 우리 모두의 탐험이 끝날 때에 우리는 출발했던 자리에 닿게 되리라.
그리고 바로 그 자리를 처음으로 알게 되리라.”
- T. S.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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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16 21:25:40 *.237.95.132
2010년 1월 14일 (금)

<리더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눈이 커졌다.
아래 글 때문이다.

"바렐라는 또한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전제'들이 흐려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때가 바로 내가 가능성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작년 겨울이 시작되면서, 내면에 전에 없던 증상이 하나 생겼다.
모든 것이 흐릿해진 것이다.
나를 비롯한 사람에 대한 관점, 세상과 미래를 보는 시점,
책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등 내면의 모든 눈들이 흐려지는 순간이 잦았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런데 꾸준히 이런 증상이 늘어나면서 조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바렐라가 말한 '가능성의 세계'와 만나고 있는 걸까?
그 세계 속에 있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모르겠다.
좀 더 지나가면 알게 될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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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16 21:26:52 *.237.95.132
2010년 1월 15, 16일 (토, 일), 늦게 일어났고, 정해진 시간에 수련하지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다.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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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향
2011.01.19 16:45:16 *.121.41.236
반가운 이름입니다.

마음 심산해서 조금 어슬렁거려 봅니다.
300일차 되면 다들 이렇게 깊어지는군요.
무서버라~^^

응원합니다.
멋진 길 터주셔서 감사도 하구요.
그대의 강의 기대할게요^^(부담되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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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19 23:10:04 *.237.95.132
2011년 1월 18일 (화)

삶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미리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일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반응할 건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빅터 프랭클이 말한 아무도 뺏을 수 없는 자유일 것이다.

자유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삶도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아마도, 자기 운명과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운명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뭐든지 간에 말이다. 
캠벨의 말처럼,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삶이 무엇을 주든,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하는 '전사의 방식',
니체가 강조한 것처럼, 자기 운명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뭐든지 즐기는 사람이 자유로워보이는 게 아닐까.

어쩌면 스피노자나 코에료의 말처럼, 이미 인간의 운명은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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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6:56:03 *.237.95.132
2011년 1월 19일 (수)

의식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혼돈이론의 한 가지 중요한 원리가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sensitive dependence on initial conditions)'이다. 이 원리는 초기의 미세한 변화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엄청난 변화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1도의 차이로 시작한 항해가 끝에 가서는 수백 킬로미터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이 현상은 나중에 상세하게 언급하겠지만, 모든 진화에서 빠드릴 수 없는 메카니즘이며 동시에 창조 과정의 잠재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데이비드 호킨스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 전에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알고 있었다.
이 개념을 나는 '시작이 끝을 결정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한 설명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 개념을 온전하게 알고 있던 것이 아니다.
반쯤 오해하고 있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개념의 본질은 '초기 조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반복과 축적' 역시 중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시작점이 틀렸다고 해도, 그것을 파악하고 고칠 수 있다.
시작점이 바르다고 해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면 결과는 부정적이다.

초기 조건에 반복과 축적의 힘이 더해질 때, 도약할 수 있다.
물론 도약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도약 과정에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난류(turbulence)’ 현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도약은 난류 현상을 겪어야만 가능하다.
호킨스는 말한다.

“난류 현상이 의식의 끌개 에너지 장에 나타나면 감정적 불균형이 초래되고, 이런 현상은 새로운 균형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기존의 수준에서 불균형 단계를 거쳐 새로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균형을 위한 ‘작은 변화의 반복’과 누적이 필수적이다.
가령 새벽 기상을 습관화하기 위해서는 하루를 재편해야 한다.
야간 활동을 줄이고, 최소 수면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꾸준히 새벽에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새벽 기상에 적합하게 하루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일상의 혼란과 불균형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새벽 기상 습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기류이다.
이러한 불균형 과정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조금씩 조금씩 야간 활동을 정리하고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반복적인 노력이다.
이런 노력이 누적되어 임계점을 넘게 되면, 새벽 기상은 습관이 된다.
새벽에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일상이 되는 것이다.

기상 습관도 그렇고, 내면 탐험도 그렇고 천직을 구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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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7:20:05 *.237.95.132
2011년 1월 20일 (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하다. 동기는 의미에서 나온다. 따라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 데이비드 호킨스

모든 것은 두 번 창조된다. 먼저 마음에서 그려지고, 다음으로 외부에 건설된다. 무언가에 대한 창조의 마음이 유형의 창조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물은 창조성의 현현이라 볼 수 있다. 창조에는 동기가 필요하다. 호킨스가 말한 것처럼 동기는 의미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의미의 근원은 무엇인가? 내 생각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이 선택한  의식 수준이 의미를 결정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호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 경험을 자신들의 타고난 에너지 장 또는 의식 수준에서 해석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진보를 이룩하긴 하지만, 타고난 에너지 장을 초월한다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 수준이 우리의 행동 동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면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동기는 의미에서 나오고, 의미는 사물을 이해하고 믿는 개인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은 사물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비롯되며, 이 관점에 기반을 둔 행동 동기가 결국 우리들의 의식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호킨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각자의 의식 수준을 타고난다고 한다. 그는 의식 수준의 진폭은 매우 크지만, 의식 수준의 도약을 실현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의 빌리면 "태어났을 때 측정된 에너지 장은 일생 동안 겨우 5점 정도의 증가를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몇 백 수치를 뛰어 넘는 갑작스러운 도약 또한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실제로 이것을 해낸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의식 수준을 도약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잠재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잠재력과 만나고, 그 잠재력이 그 사람의 인생길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서는 진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의식 수준의 측정치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수(logarithm)로 확장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인생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실로 중요하다."

무엇을 선택하는 뜻일까? 잠재력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어떤 잠재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럼 잠재력이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힘, 내면의 힘이다. 다시 말해 잠재력이란 의식 수준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의식 수준을 선택하고 거기에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내기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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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7:33:52 *.237.95.132
2011년 1월 21일 (금)

모든 도약은 도약의 발판을 필요로 한다. 고통은 진화를 위해 존재한다. 축적된 아픔은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한다. 물론 그 작용이 매우 느리긴 하지만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통이 필요하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간의 고통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리하여 배움을 얻기까지 그토록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바닥을 치고 솟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데이비드 호킨스

호킨스의 말은 '영웅의 여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연에의 접근'과 '심연'에 직면하고 그것을 충실히 겪어야 하는 이유는,
시련과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단련할 수 있고, 바닥에서 얻은 깨달음이 상승의 원동력이기 때문이 아닐까?

니체의 “이제야 비로소 너 위대함에 이르는 너의 길을 가고 있구나. 산정(山頂)과 심연(深淵)은 이제 하나가 되었구나.”라는 말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또한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캠벨의 말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 지나야
곧이어 계시가 나타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온통 어둠인 것처럼 보일 때,
새로운 삶이, 하나같이 내가
필요로 하던 것들이 나타난다."
- 캠벨

심연을 겪고, 거기서 깨달음을 내재화한 사람은 심연에서 산정으로 솟아오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캠벨이 말한 '전사의 방식'을 생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전사 말이다. 
여기서 기쁨은 슬픔을 환영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깊은 슬픔 속에 보석이 숨어 있음을,
이 슬픔의 바닥을 딛고 일어서면 한 개인이, 한 조직이, 한 사회가,
그리고 인류가 도약할 수 있음을 아는 데서 오는 그런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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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8:03:09 *.237.95.132

2011년 1월 22일 (토)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범위는 우리와 관련되어 있는 끌개 패턴에 의해 결정된다. 주어진 상황에 나타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각자의 의식 수준에서 나오는 관점과 이해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보는 사람의 동기는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동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과관계란 상황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사람의 편견에서 나온다.
- 데이비드 호킨스

내가 보기에 호킨스의 말은 다음과 같은 캠벨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신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들은 무수히 많다.
여러분의 신을 선택하라."

여기서 신은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캠벨이 말한 '신'은 호킨스가 말하는 '의식 수준'이다.

자신이 어떤 의식 수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세계를 보는 방식’,
다시 말해 어떤 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해의 범위와 능력이 달라짐에 따라 동기 역시 달라지게 된다.

캠벨은 "이 세상은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라고 말했다.
좋은 짝을 만나고 싶다면, 스스로 좋은 짝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캠벨이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삶에 선사하는 것과 삶이 여러분에게 보답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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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22:43:51 *.237.95.132
2011년 1월 23일 (일)

"개인이든 집단이든, 성장을 더딜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성장은 억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경향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 모두에게 수많은 기회가 항상 주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항상 자신들이 좋아하는 상황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택 범위는 대개는 개인의 비전에 의해 한정된다.

관점, 가치관, 의미 등은 조직적인 끌개 에너지장의 한 부분에 속하는 에너지 패턴의 미묘한 거미줄을 다른 말로 바꾼 데에 불과하다. 끌개 에너지 장은 더 큰 끌개 에너지 장의 일부이고, 이렇게 무한으로 계속되어 결국 의식 자체의 전체적인 장을 포함하게 된다."

"우리의 의식 수준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결정하고, 피동적인 관찰자로서 우리가 직면하는 세상을 결정한다. 그러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구성하고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수준에 따라 현실에 반작용을 가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외적인 사건들이 환경을 만들지는 몰라도, 그 사건들이 우리가 어느 수준으로 반응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반응하고 있는 세상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의식 수준이 낮을수록 사물에 대한 응시가 힘들어진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흥미있는 사실이다. 아주 낮은 수준에서는 사물과 만나는 초점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반면에, 높은 의식으로 올라갈수록 오래, 그리고 아주 깊게 응시할 수 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눈빛, 적대적인 눈빛, 그리고 결백에서 나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는 눈빛들을 떠올려 보라. 잠재력과 인식은 손에 손을 맞잡고 나아간다."

"각자의 마음은 자신의 '옳음'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정'의 과정을 밟는다. 이러한 부정성이야말로 인간이 평생 동안 의식 수준을 5점 정도밖에 진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의식의 커다란 진전은 '내가 안다'는 착각을 버릴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기꺼이 변화하려는 태도는 흔히 개인들의 믿음이 다 허물어지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아주 '밑바닥'에 처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닫힌 상자 속으로는 빛이 들어갈 수 없다. 위기의 좋은 점은 그것이 높은 의식 수준으로 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인생이란 배움의 터전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삶은 진정한 스승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루는 삶의 고통스러운 교훈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성장과 발전의 디딤돌로 삼지 않는다면, 삶은 헛되이 낭비될 뿐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의식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마음을 관찰하게 되면, 겸손해져서 다 안다는 자만심을 버리게 된다. 이 때 앎의 성숙이 시작된다. 겸허한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을 비웃는 능력이 생기며, 마음의 노예에서 벗어나 주인다워질 수 있다."
- 데이비드 호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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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23:00:18 *.237.95.132
[215일차] 2011년 1월 24일 (월)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이 그렇게도 드문 것은, 그 절차를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상태에 전혀 흥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포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 데이비드 호킨스

맞는 말 같다.
왜 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깨달음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깨달음의 중요성은 알지만 방법을 몰라서 머뭇거리거나 방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중요성도 이해하고 방법도 알지만, 어떤 두려움으로 인해 모험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먹고 사는 일에 치여서 그런 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호킨스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의식 수준을 타고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의식 수준은 평생 동안 매우 미약하게(5점 정도) 상승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나는 타고난 의식 수준이 얼마이든지 간에, 인간의 내면에는 자기실현의 욕구와 가능성,
다시 말해 의식 수준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잠재력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이에 대한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소명 의식과 사명감 등 무엇으로 표현하든지간에 본질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데이비드 호킨스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 그가 말하는 의식지도에 대해 모르는 사람 중에서
의식 수준을 도약시키고, 의식 수준의 정점에 도달한 사람은 인류 역사에 매우 많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예수님이 그렇고 부처님이 그렇고, 마더 테레사 수녀가 그렇고 간디가 그렇다.
내 주변에도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알게 모르게 자기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 수준이나 의식 지도에 대해 알고 모르고는 자기 실현의 본질이 아니다.
물론 이런 개념과 방법론이 가치가 있고 유용하지만, 이밖에도 방법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실현의 소명, 그 모험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충실히 겪으며 헌신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측면에서 종교 생활과 함께
내면 탐험과 천복과 천직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구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면 탐험과 천복과 천직은 생활이다.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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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9:17:58 *.237.95.132
[216일차] 2011년 1월 25일 (화)

"에너지 장이 550 이상인 교사들과 함께 있게 되면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도 강력한 끌개 장의 지배를 받게 되어 높은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지는 각자가 높은 의식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한, 교사의 높은 에너지 장을 벗어나게 되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뛰어난 코치가 필요한 것은 그들의 영향이 선수들에게 최대의 노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수련자는 높은 수준의 교사에게 집중하고 그의 에너지 장에 보조를 맞춤으로써 자신의 진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영적인 추구를 계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변화를 일으키는 극적인 계기가 수련자의 힘을 초월하는 곳에서 나타나곤 한다. (...) 이것은 낮은 수준의 새로운 사람이 자신을 높은 수준의 영향 하에 놓을 때 나타나는 삼투 현상이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변화를 받은 살마들에게는 늘 뚜렷한 계기가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예) 성 어거스틴

"우주는 인간의 의식이다."

"의식 수준의 향상은 개인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더구나 이 선물은 파도의 효과와 마찬가지로 그 출처로 돌아오게 된다."
- 데이비드 호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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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28 17:58:51 *.237.95.132
[217일] 1월 26일 (수)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의 본문을 "사랑은 기술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랑은 기술'이라고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처럼 사랑이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는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몇 가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라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하는 문제이다. (...)

우리 문화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경우,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는 인기와 성적(性的) 매력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15p

"사랑에 대해서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의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假定)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 또는 사랑받을 - 올바른 대상의 발견이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15p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가정에 이르게 하는 세 번째 오류는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좀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 남남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리고 밀접하게 느끼고 일체(一體)라고 느낄 때, 이러한 합입의 순간은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격앙된 경험의 하나이다. (...)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어서,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상호간의 권태가 생기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 버리는' 것을 사랑의 열도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중할 뿐이다." -16~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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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28 17:59:21 *.237.95.132
[218일] 1월 27일 (목)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열심히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려고 하고 개선의 방법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이 활동을 포기할 것이다.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17p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그림이나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의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쳐야 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는 무어인가?"-17p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이론의 습득', 다른 하나는 '실천의 습득'이다. 대부분의 기술을 완숙한 정도로 익히기 위해서는 이론적 지식과 함께 실무 경험(실전 훈련)이 필수적이다. 프롬은 '직관이 모든 기술 숙달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 말의 뜻은 이론과 실무 둘 다에서 숙달할 때 한 눈에 본질을 파악하고 척 보면 아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롬은 특정 기술에 능통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기술의 습득'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기술 숙달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그 기술을 계발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뜻이고, 동시에 시간과 돈과 땀을 여기에 쏟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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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28 18:17:55 *.237.95.132
[219일] 1월 28일 (금)

"사랑은 사랑을 일으키는 힘이고 무능력은 사랑을 일으키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43p

"사랑의 능동적 성격은, 준다고 하는 요소 이외에도, 언제나 모든 사랑의 형태에 공통된 어떤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다."-44p

모든 사랑의 기본 전제는 '적극적 관심'이다. 적극적 관심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의 기반이고, 이 네 가지는 적극적 관심의 산물이다. 적어도 이 네 가지는 적극적 관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프롬의 말처럼 "사랑에 보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어린애에 대한 모성애에서 가장 명백하다."

"무엇인가를 위해서 '일하고', '무엇인가를 키우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며 사랑과 노동은 불가분의 것"이다.-46p

"사람은 자신의 노동의 대상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일하기 마련이다."

"보호와 관심에는 사라의 또 하나의 측면, 곧 '책임'이라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은 책임이 흔히 의무, 곧 외부로부터 부과된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책임은, 그 참된 의미에서는,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동이다. 책임은 다른 인간존재의 요구 - 표현되었든, 표현되지 않았든 - 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갖추어여 있다는 뜻이다.

(...)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한다."

프롬이 말한 사라의 세번째 요소인 '존경'은 내게 '존중'으로 다가오고, 네 번째 요소인 '지식'은 '이해'가 더 적절하게 보인다.

"만일 사랑의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은 이 말의 어원(respicere-바라본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7p

"어떤 사람을 존경하려면 그를 잘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보호와 책임은 지식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다.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 (...) 사랑의 한 측면인 지식은 주변에 머물지 않고 핵심으로 파고드는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을 그의 입장에서 볼 수 있을 때에도 가능하다."-47~48p

"사랑은 지식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며 사랑은 합일의 행위를 통해 나의 물음에 대답한다. 사랑하는, 곧 나 자신을 주는 행위에서, 다른 사람에게 침투하는 행위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아내고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우리들 두 사람을 발견하고 나는 인간을 발견한다." -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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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29 17:26:39 *.237.95.132
[220일] 1월 29일 (토)

어린애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62p

사랑의 '능력'의 발달과 사랑의 '대상'의 발달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62p

재능, 지능, 지식의 차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인간적 핵심의 동일성과 비교하면 무시해도 좋다. 이러한 동일성을 경험하기 위해선 주변으로부터 핵심으로 침투할 필요가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주로 표면적으로 지각한다면 나는 주로 차이점을 지각하게 되고 이 차이점은 우리를 분리시킨다. -71p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실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랑의 기술의 실용'에 대해, 그리고 보다 확장해서 모든 기술의 실천에 대해서 "어떤 기술의 실용에 대해서 그 기술을 실용하는 것 이외에 더 배울 것이 있을까?"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실천에 대한 말, 그것이 실천 방법에 대한 말이든, 실천하는 태도에 관한 말이든지 간에, 그 기술을 실제로 적용하고 발휘해보는 것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실행은 실행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목공에 대한 기술이든 의학에 대한 기술이든 어떤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훈련'이 요구된다. 여기서 말하는 훈련은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연습하는 것'을 뜻한다. 프롬이 지적한 것처럼 "'그럴 기분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재미있는 취미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결코 그 기술에 숙달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현대인은 일을 떠나서는 자기훈련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은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게을리 지내거나 빈둥거리고 싶어하며, 더 좋은 말을 쓴다면 '긴장을 풀고' 싶어한다. 게으름을 피우려는 이러한 소망은 주로 생활의 규격화에 대한 반발이다." -144p

기술 숙달의 두 번째 필수 조건은 '정신 집중'이다. 집중력이 기술력을 좌우한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프롬의 지적처럼 "자기훈련 이상으로, 정신 집중도 우리 문화에는 드물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라디오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으며 인터넷 서핑을 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이렇게 해도 문제 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기술을 익히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방식은 치명적이다. 기술 숙달에는 집중력이 필요한데, 이런 방식은 집중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세번째 요소는 '인내'이다. 기술 습득을 포함해 어떤 일이든, 그것을 달성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프롬의 말처럼 "빠른 결과만을 바란다면, 우리는 결코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생활에서 인내와는 다른 가치 즉 신속성을 추구한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다'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어떤 기술에 통달하면 우리는 신속성과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느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네번째 요소는 이 기술을 배우는 데 '최고의 관심'을 쏟는 것이다. 내가 이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술을 배우는 데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그 기술에서 만큼은 명인이 될 수 없다.

이런 네 가지 요소는 모든 기술에 적용된다. 사랑의 기술도 예외는 없다.

"목공기술을 배우는 자는 나무를 깎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자는 음계 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궁술(弓術)의 선적(禪的) 기술을 배우는 자는 호흡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기술에 숙달하려면 생활 전체를 이 기술에 바치거나 적어도 이 기술과 관련시켜야 한다. 자기 자신이 기술훈련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는 이 말은, 이 기술분야에 명장이 되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생활의 모든 국면을 통해 훈련, 정신 집중, 인내를 '실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147p

"훈련이 외부로부터 부과된 규칙처럼 실행되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의지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훈련을 즐겁게 생각하고 훈련을 그만두면 결국 실패하게 될 행동에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 본질적인 일이다."

"정신 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사실상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역설적으로 말하면 홀로 있을 수 이는 능력은 사랑의 능력의 조건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곧 음악감상, 독서, 어떤 사람과의 대화, 경치구경 등에 전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 순간에 하고 있는 활동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하고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 만일 정신집중이 되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하는 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나, 우리들의 충분한 주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현실성을 갖게 된다." -150p

"사라을 성취하는 중요한 조건은 자신의 '자아도취'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아도취적 방향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만을 현실로서 경험하는 방햐이다. 반면 외부세계의 현상은 그 자체로서는 현실성이 없고 오직 이러한 현상이 자아도취적 인간에게 유익한가 위험한가에 따라 경험된다. 자아도취의 반대극은 객관성이다. 이것은 사람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고, 이러한 객관적 대상을 자신의 욕망과 공포에 의해 형성된 상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온갖 형태의 정신병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무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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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학렬
2011.01.31 19:21:14 *.87.60.233
안녕하세요.. 독서량이 엄청나시네요.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추천해주시고, 다음 모임 때 의식수준에 대한 강연도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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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31 20:28:04 *.237.95.132
[221일] 1월 30일 (일)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
부서지면서
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 나무처럼

마음이 맑은 사람은
아무리 더러운 세상에서라도
그 마음 흐려지지 않는다.
뱀들이
온 몸을 친친 휘감아도
가슴에 독을 품지 않는
전단향 나무처럼
- ‘전단향 나무처럼’

이렇게 살고 싶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물론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오랜 깊은 수행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하고, 노력할 가치는 충분하다.

위 시는 인도의 ‘수바시따’ 중 하나이다. 이 시는 단 몇 줄로 향기 나는 삶, 깊은 삶 그리고 바른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놀랍다. 아마도 이것이 시의 힘일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훌륭한 시의 작자가 미상이라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바시따’는 인도 민중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 오는 고전 시가이다. <수바시따>의 엮은이 재연 스님의 말처럼 “이런 시들이 일단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애초의 작자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결국 대중 것이 되어버린다.”

“산스크리트어 ‘수바시따(subhasita)’는 ‘바샤테(bhasate : 말하다)’의 과거분사 ‘바시타(bhasita)’에 부사 혹은 형용사적인 접두사 ‘su(잘, 좋은)’를 붙인 합성어로 ‘잘 설해진, 멋지게 쓴, 기발하게 만들어낸’ 격언, 경구, 시를 가리킨다. 직역하면 명담, 혹은 명언이랄 수 있다. (...)

인간의 욕망과 정감, 약점과 결함까지도 포함한 인간성의 따스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명 혹은 무명 시인들이 신화와 전설, 그리고 실생활에서 경험한 흥미로운 예와 함께 제시한 짧은 시들이 수바시따의 주류를 이룬다. 이런 시들이 일단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애초의 작자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결국 대중 것이 되어버린다. (...)

이렇게 뭇사람의 입술을 떠돌다 후대의 수바시따 선집에 채록된 글들이 모두 훌륭한 시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지극히 암시적이며 의미 심장한 언어로 표현된 세상 사는 지혜와 정수리를 내리치는 듯 얼얼한 풍자들은 인도인들의 정감과 그들이 이룬 대중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

수바시따 시들의 가장 큰 특징은 동음 이의어나 비슷한 발음에도 엉뚱하게 다른 뜻을 가지는 단어들을 이용한 말장난, 한 가지 사실에 대한 상반된 견해, 그리고 신랄한 풍자와 유머다.”
- 재연, <수바시따>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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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1.31 20:46:42 *.237.95.132

[222일] 1월 31일 (월)

서로 손을 맞잡은 뒤에
서로 눈을 바라본 뒤에
서로 귀를 기울인 뒤에
서로 입을 살짝 연 뒤에
비로소 마음은 흐르는 것
사랑이라 하네
- ‘사랑법1’

그렇다. 마음은 이렇게 나누고 흐른다.
마음을 나누는 것은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진심을 가지고, 그것을 나누면 마음은 흐른다.
여기서 사랑은, 아마도 이성간의 사랑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넓고 깊은 관점에서의 사랑이다.

무엇에 대한 사랑이든, 어떻게 사랑하든, 왜 사랑하든,
모든 사랑에는 마음이 흐른다.
다시 말해 마음이 흐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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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1 21:47:25 *.237.95.132

[223일] 2월 1일 (화)

누군가 말했지
헤어져 있을 때 더 많은 축복이 있다고
함께 있을 때 내 님 오직 하나더니
헤어진 지금 온 세상 님으로 가득
- ‘사랑법2’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원치 않은 이유로 이별한 연인들에게 이 시는,
이별의 아픔이 크겠지만 그래도 사랑의 추억이 주는 위로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둘 중 한 명은 이별을 원하고, 다른 한 명은 이별을 원치 경우 이 시는,
한 명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않겠지만, 다른 한명,
즉 이별을 원치 않았던 사람에게는 그리움에도 한 조각 기쁨이 있음을 알려줄 것이다.

이 시를 보며 가장 환하게 미소 짓는 사람은, 아마도 어떤 이유에서든,
잠시든 오랜 기간이든 떨어져 지내는 연인들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슬픔은 분리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함께하지 못함에 관한 슬픔이다.
하지만 영원한 결별이 아님을 알기게,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짙은 만큼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어둡지도 정처없이 헤매지도 않는다.
오히려 헤어져 보내는 시간은 사랑의 가치를 확인하게 해주고,
사랑을 더 깊게 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은,
자신의 주위에 사랑의 에너지장을 만들어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에서 그의 사랑을 보고, 노래하는 새 소리에서 그의 사랑을 들으며,
활짝 핀 꽃의 향기에서, 부드러운 빵에게서, 그리고
밤마다 나를 비추는 달빛에서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라에 빠지면, 그의 내면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러면 외면은 내면의 거울인지라, ‘온 세상 님으로 가득’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든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에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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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05 23:40:27 *.237.95.132
[224일] 2월 2일 (수)

나쁜 친구
처음엔 길었다 점점 줄어드는
아침 나절 그림자

좋은 친구
처음엔 짧아도 점점 늘어나는
오후의 그림자
- '나쁜 친구 좋은 친구'

유비와 은유가 더 명료할 때가 있다.
이 시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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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23:43:56 *.237.95.132
[225일] 2월 3일 (목)

다른 사람의 심장을 뚫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 않는
시나 화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 '제대로 된 시'

독서 습관과 글쓰기와 강연과 프로그램,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 없이 제대로 된 것을 바라는 건 역시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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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05 23:46:51 *.237.95.132
[226일] 2월 4일 (금)

주문이 되지 않는 말이 없고
약이 되지 않는 뿌리는 없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 또한 없다
다만 희귀한 것은
그 모든 것 적절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리라
- '희귀한 것'

이성과 감성, 자뇌와 우뇌,
감각과 직관, 이론과 경험,
둘 중 하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합하고 통합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것이야말로 희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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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05 23:58:36 *.237.95.132
[227일] 2월 5일 (토)

노여움은
인간의 첫번째 적이다
제 몸속에 머물면서 자신을 파괴하므로

나무 속에 든 불이
곧 그 나무를 태우듯

노여움은 미혹을 낳고
미혹은 기억을 흐리게
흐린 기억은 이성을 잃게 하고
이성을 잃은 자 막장에 이른다
- '첫번째 적'

***
눈 속에 들어가면 청량한 안약,
가슴속 환희
고뇌와 행복 함께 담는 잔
이런 친구 얻기 참으로 어렵다오

일이 잘되어 갈 때
함께 나누자고 설치는 사람
어디에나 흔하니
재난은 우정의 시금석
- '시금석'

짧은 시 속에서 소박한 지혜를 본다.

***
자신없는 학문
구두쇠의 재물
겁쟁이의 팔 힘
귀머거리에 풍악
장님 눈알 굴리기
송장에게 건 꽃목걸이
- 이 세상에 쓸모 없는 것들

자신에게 있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는 것,
자신에게 소용 없는 것을 쫓고,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
모두 자기에 대해 깊이 모르기 때문이다.

***
못난 사람은
어려움이 두려워
시작조차 않는다
보통사람은
장애에 부딪치면
중간 지점에서 쉽게 포기하기 마련
뛰어난 사람은 거듭 고난에 부딪쳐도
시작한 일을 버리지 않는다
- 차이1

인과관계를 바꿔도 진실인 것 같다.

어려움이 두려워 시작조차 않는 사람은 못난 사람
장애에 부딪치면 중간에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
거듭 고난에 부딪쳐도 계속 하는 사람이야말로 뛰어난 사람

***
든 것 많아도
분별이 없는 사람은
알맹이를 모르는 법
국자가 국물 맛을 모르듯이
- 바보2

핵심을 통찰알줄 알고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이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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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06 20:10:55 *.237.95.132
[228일] 2월 6일 (일)

앉아 있는 사람에게 행운은 앉아 있다
서 있는 사람에게 행운은 멈춰 서 있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행운은 드러누워 있다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행운 또한 움직이리라
- 행운

존재의 수준에 따라 보인다.

***
의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성지 순례처럼
먼 길을 떠나는 것
그러나 성지 순례는
때가 되어야 성과가 있지만
의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은
금세 열매를 맺는다
- 의인과의 만남

마음 속 영웅, 역할모델,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먼 길을 돌아가며 우리는 그 사람을 점점 알게 된다.
마음 속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내 마음 바로 안다.
그리고 삶이 바뀐다.

***
-여보게, 친구! 그대 뉘신가?

-나, 이 세상 저주하고 싶은 사람이라네

-웬일로 이 무서운 숲속에 홀로 서 계신가?

-호랑이 같은 잔악한 짐승에게 잡아먹히려고 여기 있네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날 잡아먹은 호랑이, 사람 생각이 더 간절해지라고

-그래서?

-그래서 이 세상 인간들 모조리 먹어치우라고!
- 저주의 시

살면서 이런 적 없었나?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치졸했으면서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반성할 일이다.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성자는
아주 작고 하찮은 것에게도
마음을 보낼 줄 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사는 말이라고
달빛을 거두지 않는 달처럼
- 달 빛

그래서 달빛은 고운 걸까?
달은 여러 정감을 동반한다.

***
모두 제 잘난 세상에서
어리석음 감추라고 감추라고

침묵은
겸손한 자의 아름다운 장신구

말하지 않아도 내면의 향기
스스로 퍼져 나가는 법
사향노루가 굳이
향주머니 자랑하지 않는 것처럼
- 침묵에 대하여

사부님 말씀처럼 '말은 줄이고 삶을 더 많이!'

***
작은 불씨에 너무 많은 땔감
불을 이루지 못하듯이
소화의 불 또한 일어나지 않는 법

먹는 일, 말하는 일에
혀의 한계를 잊지 말라

진실을 말하라
듣기 좋게 이야기하라
사실이라도 모진 말 하지 말라
듣기에 좋더라도 그릇된 말 하지 말라

선을 넘는 음식과 말
한순간에 귀한 목숨 앗아간다
- 혀의 한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
마음에, 말 가운데, 몸가짐에
향기로 가득 차 있는 이

베풂으로써 기쁨을 누리는 이

남들의 작고도 넉넉한 인정의 열매
산처럼 키워 칭송하며
스스로 가슴속에 꽃을 피우는 이

얼마나 되나?
- 얼마나 되나

아주 적을 것이다.
그렇다고 슬퍼할 일 아니다.

내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렇지 못한 것이야말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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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희
2011.02.07 10:54:08 *.143.199.187
좋은글이 그득~하네요.
사실은 바늘같은 글에 찔리기도 하였지만...
때론 체한 사람에게 바늘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뚝뚝..핏방울 흘리며 나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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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1 06:41:56 *.254.238.26

[229] 27 ()

 

힘이란 제대로 이해하자면 목적을 달성하는 역량일 뿐이다. 힘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 역사상 크나큰 문제 중에 하나는 사랑과 힘이라는 개념이 보통 반대되는 것으로 (그것도 완전히 극과 극으로) 대비되며, 그리하여 사랑은 힘의 포기와 동일시되고, 힘은 사랑의 부정과 동일시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사랑이 없는 힘은 무모하고 폭력적이며, 힘이 없는 사랑은 감상적이고 나약하다. (…) 엄밀히 말하자면 도덕이 결여된 힘과 힘이 결여된 도덕의 충돌이 우리가 맞다뜨린 중대 위기의 원인이다.”

-       마틴 루터 킹,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Go From Here?)’ 중에서

 

아담 카헤인은 뛰어난 분쟁 조정자(Facilitator)이자 현실적인 사회변화 프로젝트의 설계자이다. 그는 20년 넘게 수십 곳에 달하는 세계 각지에서 갖가지 난제를 해결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를 알게 된 건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서이고,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죠셉 자보르스키의 <리더란 무엇인가>이다. 이렇게 책은 책과 연결된다.

 

<통합의 리더십>을 의미 있게 읽었다. 이 책은 열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카헤인은 새로운 사회 현실(social realities)’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개방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진정한 자아에게, 서로서로에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환경이 우리한테 요구하는 것에 마음을 열고, 이런 모든 것들 것 연결되는 것이다.”

 

카헤인의 두 번째 저서인 <포용의 리더십>을 읽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이 책에 대해서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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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1 06:42:29 *.254.238.26

[230] 28 ()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교착 상태에 빠진 문제들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어떻게 사회변화를 만들어낼까?”

 

<포용의 리더십>은 이 질문에 대한 카헤인의 경험과 통찰을 담고 있다. 그는 20년간의 경험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중 하나를 담은 책이 <통합의 리더십>이다. 이 책 출간 후 5년만에 나온 <포용의 리더십>은 카헤인의 두 번째 깨달음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에 대처하려면 분명 서로 연결되고 관계를 맺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또한 성장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랑(통합의 능력)과 힘(자아실현의 동력)을 함께 발휘해야 한다. 사랑이나 힘 중에 하나만 선택한다면, 기존 현실을 되풀이하는 정체에 빠지거나, 혹은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집에서, 일터에서, 공동체에서, 세계에서 새롭고 더욱 좋은 현실을 창조하고자 한다면 사랑과 힘을 통합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사랑과 힘이라, 그리고 사랑과 힘의 통합이라, 말은 좋은 데 너무 이상적인 것 같지 않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랑과 힘의 통합에 대한 카헤인의 통찰은 이론이 아니라 20년간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의 경험에 대한 엄격한 재검토를 통해 나는 서서히 사회변화 역학에 대한 나만의 견해를 구축했다고 책에 밝히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귀 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카헤인에 따르면 난해한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가장 흔한 접근법은 두 가지이다. 공격적인 전쟁과 굴종적인 평화, 이 두 가지 방식은 서로 양극단에 위치한다. 전자의 본질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 무리하게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후자의 본질은 난제와 갈등을 회피하거나 은폐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방법을 적용해도 난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두 가지 접근법은 교착 상태를 초래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면 말이다. 이러면 문제는 장기화되고 해결은 요원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극단적인 방식이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사회 문제에 대처하려면 전쟁이나 평화가 아닌 제3의 방식, 누군가의 말처럼 황금의 중간길을 찾아내야 한다. 이 길은 그냥 발견할 수 없다. ‘공동 창조를 통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어떻게 새로운 사회현실을 공동으로 창조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회현실을 공동으로 창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근본적인 동력을 이용해야 한다. (power)과 사랑(love)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힘과 사랑은 대체로 서로 가깝기보다는 이질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과 힘은 넓고 깊은 개념인 관계로, 사람마다 그에 대한 생각과 정의가 다양하다. 카헤인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폴 틸리히의 방식으로 사랑과 힘을 정의한다. 폴 틸리히, 여기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났다. 희한하게도 요즘 읽은 책들에서 이런 경험을 종종 한다.

 

폴 틸리히는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힘과 사랑을 정의한다. , 그는 힘과 사랑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틸리히는 힘을 강도를 높이고 외연을 확장하면서,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의 동력으로 정의한다. 카헤인의 표현을 빌리면 힘이란 목표를 달성하고 업무를 완수하고 성장하는 동력이다. 사랑에 대해 틸리히는 분열된 것들이 통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기반을 두고 카헤인은 사랑이란 실제로 분열되었거나 그렇게 보이는 것들을 다시 연결하여 하나로 만들어주는 동력으로 규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여기서 말하는 힘은 억압적인 힘이 아니고, 사랑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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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1 06:42:45 *.254.238.26

[231] 29 ()

 

난제들, 최악의 문제들은 거의 대부분 여러 요소가 얽히고 설켜 있다. 한 마디로 복잡하다. 카헤인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복잡성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적이며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문제는 역학적으로 복잡해진다. 이런 문제는 하나만 단편적으로 다뤄서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체제를 전체적으로 봐야만 대처가 가능하다. 둘째, 관련자들이 다른 관점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 경우 문제는 사회적으로 복잡해진다. 이런 문제는 전문가나 권위자들이 맡아 해결할 수가 없으며, 관련자들의 참여에 의해서만 성공적으로 해결된다. 셋째, 미래 모습 자체가 근본적으로 낯설고 불투명한 경우 문제는 발생학적으로 복잡해진다. 이런 문제는 과거 성공사례를 그대로 적용해서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새로운 미래형해결책을 만들어냄으로써만 해결이 가능하다.”

 

이 세 가지 복잡성이 동시 병행적으로 작용하는 문제일수록 풀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랑과 힘 둘 다 필요하다. 그런데 사랑과 힘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힘과 사랑, 각각 발전적인(generative)’ 속성과 퇴행적인(degenerative)’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둘을 함께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되는 힘과 사랑은 발전적인 힘과 사랑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힘과 사랑은 궁극적으로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이다. , 사랑은 힘을 퇴행적이 아닌, 발전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힘은 사랑을 퇴행적이 아닌, 발전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힘과 사랑이 각각의 잠재력을 100퍼센트 실현하려면 서로가 필요하다.”

 

힘과 사랑의 단절은 위험하다. 마틴 루터 킹이 지적한 것처럼 사랑이 없는 힘은 무모하고 폭력적이며, 힘이 없는 사랑은 감상적이고 나약하다.” 킹은 도덕이 결여된 힘(immoral power)과 힘이 결여된 도덕(powerless morality)의 충돌이 우리가 맞닥뜨린 중대 위기의 원인이다라고 갈파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난제를 되새겨 보면 킹의 통찰이 얼마나 절묘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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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1 06:43:39 *.254.238.26

[232] 210 ()

 

은 목표와 의지, 이익과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사랑은 도덕과 관계와 공통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런 힘과 사랑은 사회와 조직 그리고 개인 내부 모두에 존재한다. 우리가 목표 달성이나 문제 해결에 전심전력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양쪽 진영의 충돌과 갈등 때문이다.

 

힘과 사랑은 상호보완적임에도, 이 둘을 통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칼 융은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는 의지가 없고, 의지가 군림하는 곳에는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그림자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융학파의 분석심리학자인 로버트 존슨은 어쩌면 우리가 화해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하는 가장 골치 아픈 대립쌍이 바로 사랑과 힘일 것이다. 현대 세계는 사랑과 힘의 양분 때문에 갈가리 찢긴 상태이며, 우리는 양자를 화해시키려는 시도에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욱 많이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사회현실을 공동으로 창조하는 데 성공하고자 한다면, 힘과 사랑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양자를 모두 선택해야 한다. 본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       아담 카헤인, 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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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1 19:25:43 *.254.238.26

[233] 211 ()

 

1장 힘은 양면성

 

힘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을 <포용의 리더십>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힘의 발전적인 측면,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게끔 하는 일방적인 동력을 보았다. 힘은 우리의 목적의식, 전인성, 동인을 나타낸다. 힘이 자아를 실현하는 동력이라고는 하지만, 힘의 영향력은 자아를 넘어선다. 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며, 새로운 사회현실을 창조하는 수단이다. 힘이 없이는 어떤 새로운 것도 자라나지 않는다.” – 42p

 

힘의 발전적인 면은 폴 틸리히가 자아실현 동력이라고 말했던 추구하는 힘(power-to)이다. 퇴행적이고 어두운 면은 타인의 자아실현을 억누르는 지배하는 힘(power-over)이다.” -48p

 

틸리히는 힘의 양면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힘은 물리력과 강압을 통해 스스로를 실현한다. 하지만 힘은 전자와 후자, 어느 것도 아니다. (….) 힘은 이런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강압이라는 방법을 활용하고 남용한다. 힘은 스스로를 실현하기 위해서 물리력을 활용하고 남용한다. 하지만 힘은 물리력도 아니고 강압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배하는 힘은 타인을 억누르거나 탄압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물리력과 강압을 남용한다.” -48p

 

문제는 발전적인 추구하는 힘이 퇴행적인 지배하는 힘으로 쉽게 변질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카헤인은 결국 퇴행적인 지배하는 힘은 발전적인 추구하는 힘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가령, 한 사람이 추구하는 힘을 행사하다가 다른 사람의 추구하는 힘과 충돌하면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은 추구하는 힘을 지배하는 힘으로 바꿔버린다. 갈등 상태에서 힘으로 타인을 제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조직은 상대방을 억누르고 지배하는 힘을 행사하기 쉽다.

 

자아실현 동력은 자신의 자아실현 가치를 타인의 그것보다 우위에 두는 우를 범하기 쉽고, 이런 우는 내가 타인보다 자아실현 자격이 있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타인의 그것과 충돌하는 자아실현을 밀어붙이게 된다. 심지어 이런 행동이 스스로의 자아실현마저 방해한다고 해도.” – 49p

 

지배하는 힘의 사례로 인종분리주의가 지배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황을 들 수 있다. 이 나라에서 흑인들은 없는 존재 취급을 받았다. 카헤인은 타인을 보지 않는 것, 즉 타인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배하는 힘의 극단적인 형태이다.”라고 지적한다. 이때 타인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 혹은 기껏해야 그것(it)’에 불과하다.

 

백인들 다수는 타인, 특히 흑인들의 자아실현보다 자신의 그것에 가치를 두었다. 그리고 인종분리주의를 이데올로기 삼아 이런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했다. 어느 사회에서든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인종, 민족, 계급, 성별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이런 역학관계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추구하는 힘의 건강하고 매력적인 얼굴이 잔인하고 사악한 지배하는 힘의 얼굴로 바뀐다.

 

지배하는 힘은 자기중심적이다. 보편적인 원칙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에 맞춰 모든 것을 해석하고, 서로 합의한 규칙을 쉽게 무시하고 거부하고 깨뜨린다. 규칙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굴면서 특권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힘이 있을 때 경계할 일이다.

 

발전적인 힘(추구하는 힘)이 퇴행적인 힘(지배하는 힘)으로 뒤바뀌는 사례로 원주민에 대한 계몽주의에서도 꼽을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소위 문명화되었다는 이주민들은 그 지역의 원주민들을 발전시켜야 하는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미국 개척자들이 인디언들을 바라본 관점이 그랬고, 캐나다에서도 개척자들이 원주민들을 바라본 사고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기준에서 원주민은 미개한 상태로 판정하고, 이들을 깨우치고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지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런 생각은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동화정책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된다.

 

가령 1859년대 캐나다 정부는 공격적인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원주민의 자녀를 부모에게서 강제로 떼어내 교회나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다. 북아메리카 기숙학교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은 이런 방법을 인디언을 죽이고 인간을 구한다는 말로 압축했다. 하지만 기숙학교는 육체적, 정신적, 성적, 문화적 학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놀랍게도 1998년 마지막 기숙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원주민들을 억압하는 방식이 100년 넘게 되풀이되었다. 이런 사례는 사랑 없는 힘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원주민과 비원주민 사이에 뿌리 깊은 갈등이 존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출신의 유명한 운동 선수 마이클 롱은 멜버른에서 캔버라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그의 목적은 원주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총리 존 하워드를 만났을 때 이렇게 물었다. “우리 원주민들에 대한 사랑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세계 각지의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 인류의 생존이 걸린 생태계를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행위는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 의해 가속화된다. 사람과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 인류와 지구 역시 연결되어 있다. 지배하는 힘은 연결된 것을 단절된 것으로 보고, 서로의 관계가 단절시킨다.

 

카헤인의 말처럼 사랑 없는 힘이 야기하는 부정적인 현상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장소와 규모에 상관없이 힘이 사랑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요한 깨달음은 세상을 새롭게 봄으로써, 또한 구체적으로 자신을 (그리고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새로운 시각에서 봄으로써 얻어지는 것” – 55p 카헤인의 동료 우슬라 베르스티전

 

* 힘의 본질과 사랑과의 관계

힘에는 양면성이 있다. 발전적인 면과 퇴행적인 면이다. 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단결하여 자아실현을 하는 경우에 발전적이 되고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과 단결을 간과하거나 부정하는 경우, 혹은 이것들과 단절되는 경우에 우리의 힘은 퇴행적이 되고 제약된다. 구체적으로는 무모하고 폭력적이 되며, 심한 경우 더욱 악화될 수 있다.” -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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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3 23:01:10 *.237.95.227

[234] 212 ()

 

2장 사랑의 양면성

 

자아실현을 향한 동력, 즉 힘은 자기표현과 자아성장에 초점을 두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 즉 사랑은 관계와 결합에 초점을 두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69p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면, 20대에 자기중심적인 야망을 꿈꾸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꿈과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60대에도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철학자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은 신문에서 사회 전체로는 좋지만 자기한테는 좋지 않은 소식을 읽고도 행복해하는 자신을 볼 때, 스스로가 성숙했음을 깨닫는다고 했다. 이것은 인격의 성숙성을 가늠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사랑은 자아(ego)로 하여금 외부에 다른 것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는 하나의 힘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 71p

 

사랑은 분열된 것들을 재통합하는, 타인을 인정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도와주는 동력이다.”-71p

 

영적교감이 이뤄지는 순간은 참가자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열을 통합으로 이끄는 사랑이다. 이런 순간에는 발전적인 사랑이 관여한다. 사랑은 통합의 동력이다.

 

* U이론(theory U) U자형 과정(U-Process) : 피터 센게, 죠셉 자보르스키, 오토 샤머, 베티 수 플라워즈

- <미래, 살아 있는 시스템> 참고할 것.

- 새로운 현실창조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일반 이론.

- 개인과 조직 모두에 적용 가능.

 

혁신은 U자 형태로 나타나는 3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U자에서 하강하는 왼쪽 변으로 자각(sensing)’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이해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체제의 현황에 대한 느낌을 강화하는 단계다. 2단계는 U자의 바닥 부분으로 실재(Presencing)’라고 불린다. 체제 안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하여, 해야 하는 일에 대하여 심오한 이해에 접근하면서 온전히 거기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이다. 3단계는 U자에서 상승하는 오른쪽 변으로 실현(realizing)’이라고 불린다. 심도 있는 이해라는 단계에서 새로운 현실을 생산하는 단계로 움직이는 것이다. -79p

 

U자형 과정의 혁명적인 측면은 그것이 창조적인 지도자와 다양한 이해관계자, 전체 환경, 지도자 자신의 상위자아(Higher Self)의 통합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79p

 

* 집단에서의 U자형 과정

1) 공동 자각 단계 : 현재 상황 파악.

경험과 관점 공유, 관계자들간의 교류, 현장답사, 시나리오 플래닝(종합화하기)

 

2) 공동 실재 단계 :

현실 파악, 자신들의 역할과 해야 할을 이해

 

3) 공동 실현 단계 :

일련의 실행(장기, 중기, 단기)

 

 

퇴행적인 사랑.

카헤인은 여러 분쟁을 사람들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특히 대화 과정이 예상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겉보기에는 성공적이었음에도 결과는 그렇지 않은 사례들이 많았다.

 

특정 제도와 관련된 지도자들이 제도변화라는 목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처한 환경을 깊이 이해하고, 필요한 조치에도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은 다음에 보면 제도는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이론과 실천에서 뭔가 빠져 있었다.” -82P

 

그것은 바로 힘이었다. 힘없는 사랑의 위험성.

 

힘에 대한 관심 혹은 힘의 전환이 없는 사랑은 그저 감상적이고 나약할 뿐만 아니라, 이미 힘이 넘치는 사랑들의 역량을 더욱 강화시켜 그들이 무모하고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 힘을 무시하는 태도는 순진하거나 반대로 교활하다는 증거다.”

 

가령 내가 힘이 강한 쪽과 힘이 없거나 약한 쪽 사이의 갈등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 내 의도와 상관 없이 힘이 있는 쪽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힘이 약한 쪽에서 볼 때 이것은 중립이 아니다. 물론 힘이 있는 쪽은 이런 상황을 겉으로는 중립적이라고 하겠지만 속으로는 반길 것이다.

 

힘이 없는 사랑, 즉 자아실현의 여지가 없는 통합은 그저 감상적이고 나약할 뿐만 아니라 기만적으로 현재 상태를 강화시키고 있다.” -92P

 

힘이 없는 사랑은 자아실현을 억누르거나 해치는 통합이다.”-93P

 

사랑은 소통의 통로, 가능성, 기회를 만들어내지만 이것들을 구체적으로 시험하고 현실화시키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힘과 함께하지 않는 대화는 새로운 사회현실을 창조할 수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힘은 추구하는 힘이지 지배하는 힘이 아니다.

 

새로운 사회현실을 창조하려면 통합하려는 사랑이라는 동력과 이런 통합을 현실화하기 위한 힘이라는 동력이 모두 필요하다. 사랑과 더불어 힘을 행사하려면, 키워야 할 대상은 파괴하지 않고 제도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92P

 

사회변화와 관련한 일에서 힘이 없는 사랑은 느낌은 좋지만 무력한 결합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결합은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지도 만들어낼 수도 없다.

 

힘이 없는 거짓 사랑이라는 표면 아래 숨은 것은 자기 기만적이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랑이 없는 힘이다.

 

힘이 없는 사랑은 사실 힘이 결코 부재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힘은 그저 감춰져 있을 뿐이다. 인종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은 인종차별주의는 숨겨져 있는 경우보다 밖으로 드러날 때 대항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한다. 감춰진 힘은 명백히 드러난 힘보다 상대하기가 어렵다.

 

힘을 숨긴 사라의 문제점은 전문 원조직(helping profession)에서 종종 나타난다. 힘이 항상 존재하지만 논하기는 뭐한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 그런 영역이다. 심리학자 제임스 힐먼은 이렇게 말한다.

 

힘을 둘러싼 갈등이 항상 있는 비즈니스나 정치 영역만큼은 아니지만 성직, 의료, 예술, 교육, 간호 같은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직업에서도 그렇게 무자비한 이유는 뭘까? 비즈니스와 정치를 보면 이상주의적인 모습은 적고 오히려 음산한 기운이 강하다. 이런 영역에서 힘은 억눌러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친구처럼 항상 함께하는 존재다. 더구나 이런 영역에서는 힘이 사랑의 적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사랑을 옹호하고 힘을 적대시하는 낭만적인 세력들이 힘이라는 개념을 타락시키면, 힘 자체가 타락하게 된다. 이런 타락은 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힘에 대한 무시에서 비롯된다.” -95p

 

가장 퇴행적이고 일그러진 사랑은 자아를 실현하는 힘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거나 무시하거나 은폐하는 사랑이다.

 

개인의 경계를 부정하는 경계 없는 통합이라는 지배적인 원칙은 타당한 합의를 가록막는 힘이 없는 사랑의 일례이며, 따라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97p

 

* 사랑의 본질과 힘과의 관계

사랑에는 양면성이 있다. 발전적인 면과 퇴행적인 면이다. 사랑은 그것이 우리와 타인에게 힘을 부여할 때 발전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경우에. 힘을 간과하거나 부인하거나 억누르는 경우에 사랑은 퇴행적이 된다. 구체적으로는 감상적이고 나약하며 심한 경우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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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4 22:11:57 *.237.95.227

[235] 214 ()

 

3장 힘과 사랑의 딜레마

 

사랑이 없는 힘은 무모하고 폭력적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힘이 없는 사랑은 감상적이고 나약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힘과 사랑의 이런 퇴행적인 모습은 사회, 일터, 우리 자신 내부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다. 힘이나 사랑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항상 잘못된 선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힘과 사랑을 함께 행사할 수 있을까?” -101p

 

난제를 해결하는 데는 힘과 사랑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힘과 사랑은 딜레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부정하면 스스로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카헤인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 힘과 사랑을 모두 활용하는 방법을 두 다리로 걷는 법을 배우는 것에 비유한다.

 

나는 힘과 사랑을 모두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두 다리로 걷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본다. 한쪽 다리로는 걸을 수 없는 것처럼 힘이나 사랑만으로는 힘든 사회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다리로 걷기가 양쪽 다리를 동시에 움직인다는 의미도, 항상 안정된 균형을 유지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한쪽 다리를 먼저 움직이고 이어서 다른 다리를 움직여야 두 다리로 걸을 수가 있다. 양쪽 다리는 항상 균형 상태가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쪽 다리는 항상 동적 균형상태에 있다.

 

두 다리로 걷는 핵심비결은 한쪽 다리에 동작을 집중하는 동안에도 다른 다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02. ) 음양의 조화

 

 

두 다리로 걷기 : 처음에는 넘어지고, 다음에는 위태위태하게 비틀거리고, 마침내 걷는다. 그리고 나중에는 뛸 수 있다.

 

힘과 사랑을 활용하여 교착 상태에 빠진 사회 상황을 바꾸려 할 때도 이런 세 가지 상태를 모두 볼 수 있다. 힘과 사랑이 분리되어 있으면 넘어지고, 힘이 사랑보다 강하거나 반대 상황이라면 위태위태하게 비틀거리고, 힘과 사랑의 균형을 잡고 양쪽을 오갈 수 있으면, 그리하여 힘과 사랑이 하나로 통합된다면 능숙하게 걸을 수가 있다.

 

나는 타인과 나에게서 세 가지 상태를 모두 보았다. 세 가지 상태는 일종의 발전 단계처럼 연속선상에 있었다. 넘어지면 새로운 사회현상을 공동으로 창조하는 일이 불가능하고, 비틀거리면 가능은 하지만 불안정하며, 걸으면 확실하게 가능하다.” -104

 

 

4장 넘어짐

 

카헤인은 사랑과 힘 사이에 동적 균형이 깨지면 어려운 문제일수록 해결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불균형은, 문제 해결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일부는 사랑에 집중하고, 다른 일부는 힘에 집중하며, 소수만이 두 가지 모두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과 힘은 분리되고, 점점 양극단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결국 문제 해결은 물 건너간다. , 넘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사랑과 힘의 갈등을 피하지도 않고 거기에 맞서지도 않는 것이다. 갈등과 무관심이 아닌 제 3지대, 즉 함께 있을 수 있는 공유지를 최대한 확보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접근법은 공통점이 차이점보다는 중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접근 방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불균형과 갈등이 심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는 반대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무관심을 표면 위로 끄집어 올릴 필요가 있다. 차이와 갈등을 통해 자신과 문제를 보다 넓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이와 갈등을 드러내고 무관심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일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차이와 갈등을 은폐하거나 무관심을 통해 회피하는 방식의 그릇된 합의에 이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런 합의는 필연적으로 토대가 위태롭다. 그래서 위기가 찾아오면 힘없이 무너진다. 오래 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넘어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넘어질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넘어지는 경험과 그에 따른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과 문제를 보다 깊이 성찰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사랑과 힘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거나 위기가 찾아오면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려 한다. 두려움과 중압감이 심하고 선택에 제약을 받는 상황일수록 그런 선택을 부채질한다. 문제는 힘과 사랑이 양극으로 대립하게 되면, 둘 다 퇴행적으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힘은 무모하고 폭력적이고 되고, 사랑은 감상적이고 나약해진다.

 

쓰러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은 힘과 사랑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두 가지 동력 모두를 품고 활용해야 한다. 그러면 힘과 사랑이 연결되고, 각각이 서로를 더욱 발전적으로 만들어준다.

 

힘과 사랑 모두가 드러나고 활발히 활동할수록 하는 방법은 뭘까? 감추지 말고 드러내놓고 상황을 묻는 것이다. 부정하며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기보다 모두 인정하고 활발히 논의되도록 하는 것이다. 타인과 함께 스스로의 상황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131

 

-       이곳에서 힘은 어디에 있는가?

-       나를 포함한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들의 지위와 욕구, 관심은 무엇인가?

-       누가 어떤 종류의 추구하는 힘지배하는 힘을 활용하고 있는가?

-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누구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가?

-       여기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       여기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       관계자들이 어떻게 분열되어 있으며, 어떻게 통합되어 있는가?

-       재통합을 이끄는 동인은 무엇인가?

-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통합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힘과 사랑의 자각 혹은 무지, 연결 혹은 단절 등의 여러 가지 조직적인 패턴들 중에 우리가 어떤 것을 방해 혹은 증대시키고 있는지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정한 패턴이 고의 혹은 무의식적으로 힘과 사랑의 양극화를 부채질하거나 심화시킨다면 우리는 결국 넘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넘어진다. 때로는 부주의해서, 때로는 통과하는 지형이 위험해서. 넘어지면 아프지만 동시에 거기서 배울 수가 있다. 넘어짐은 일종의 신호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재고해야 하며, 원인과 결과도 재고해야 한다는. 그러고는 스스로를 추스르고, 전보다 더욱 세심하게 준비한 다음 다시 앞으로 나가야 한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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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6 11:36:54 *.237.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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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비틀거림

 

비틀거림은 통제되는 상태도 순조로운 상태도 아니다. 통제되지 않고 불안정한 상태다. 비틀거려도 우리는 전진한다. 하지만 절뚝거리며 불규칙하게 나아가는 것이며 항상 넘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135

 

분열된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이 타인의 욕구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구만 내세우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공격적인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힘의 원심력과 사랑의 구심력.

-       구심력: 등속원운동을 하고 있는 질점에 원의 중심을 향하여 작용하는 힘

-       원심력: 원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에 나타나는 관성

 

재통합이란 본래 하나에 속하던 것이 분열되었음을 전제한다. 사랑은 낯선 것들의 통합이 아니라 분열된 것들의 통합으로 묘사된다. 분열이란 그들이 원래 하나였음을 전제한다.”

-       폴 틸리히

 

힘의 자아실현 동력과 사랑의 통합 능력이 모든 사회 상황에 항상 존재하는 것임을 알고 나면, 문제는 이들 동력을 어떻게 파악하고, 드러내고, 활성화시키고, 성장시키는가, 특히 상대적으로 약한 동력을 어떻게 파악하고, 드러내고, 활성화시키고, 성장시키는가가 된다.” -145

 

* 조직에서 나타나는 4가지 상이한 작용

1) 차별화 :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개발

2) 동질화 : 정보와 능력의 공유

3) 개별화 : 서로서로 별도로 작동하는 부분들

4) 통합 : 전체와 연결된 부분들

 

힘은 차별화와 개별화 작용과 관련되고, 사랑은 동질화와 통합 작용과 관련된다.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은 타자중심적인 결합하는사랑과 달리 퐁당 빠지는낭만적인 사랑은 궁극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낭만적인 사랑은 자체 속성상 반드시 이기주의로 흐르게 되어 있다. 낭만적인 사랑의 열정은 항상 자신의 예상, 기대, 환상을 향하게끔 되어 있다.”

 

집단 참여 대화 과정은 두 가지 상반된 위험에 취약하다. 하나는 과도한 동질성, 즉 집단사고의 위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며(힘이 부족한 사랑), 자신들의 합의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조차 보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과도한 차이와 분열로 야기되는 위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견해를 갖고 있고(사랑이 부족한 힘), 함께 전진할 수가 없다. -155

 

카헤인의 파트너인 자이드 하산은 팀이 건강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정 집단은 구성원의 다양성과 정보 접근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다수의 구성원들이 상호 협력 혹은 경쟁으로 얻은 지적 능력을 활용한 결과 나타나는 집단적인 능력-옮긴이)을 발휘한다. 집단의 다양성이 부족하거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집단지성을 보여주지 못하며, 오히려 갈등이 나타나거나 충분한 검증 없이 합의에만 연연하여 왜곡된 결정을 내리는 집단사고(group think)’로 흐르는 경향을 보인다. 집단지성 창조에 필요한 조건을 갖춘 집단이라면 복잡한 사회 체제 안에서도 현명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혼란스럽고 터무니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사회전체의 회복 능력을 높이고 더욱 지속가능한 사회로 이끄는 그런 결론을.” -160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집단에 컨테이너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컨테이너의 의미는 노바스코샤 해양학교(The Nova Scotia Sea School) 창립자 크레인 스투키의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컨테이너란 닫혀 있어서 도망칠 재주가 없는 환경이다. 해양학교에서 갑판도 없는 9미터 길이 배 안에서 3주 동안 함께 생활하는 열두 명이 일종의 컨테이너가 될 수 있고, 극기 훈련, 강 같은 자연환경, 심지어 일터가 컨테이너가 될 수도 있다. 해변에서 주운 돌을 갈고 다듬어 보석으로 만드는 석재광택기는 컨테이너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석재광택기 안의 돌들은 갈고 다듬는 작업이 끝나 빛나는 보석이 된 다음에야 밖으로 나간다. 돌들 사이의 마찰, 혼란스러운 움직임은 모두 돌에 광을 내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돌 안에 내재하던 광채가 드러나게 된다. 돌에 색깔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광채가 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작업을 한다.”

 

* 강한 컨테이너의 특징

1) 목적이 분명하다.

2) 참가자 모두가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3) 기본원칙과 업무 진행 방식에 대해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신중하게 체계화한다.

4)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5) 물질적, 인적 지원이 훌륭하다.

6) 참가자들이 서로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다.

 

시카고고 산업지역재단(The Industrial Areas Foundation,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가기 전에 일했던 곳이다)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지역사회운동가 솔 알린스키의 후임자 에드워드 체임버스는 관계를 통해 추구하는 힘을 발전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의제와 조화시킬 줄 아는 사람은 자기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사람한테는 거부된 힘의 원천에 접근할 수 있다. 온전히 이해하고 보면 이란 동사적 의미로 주고받기’, ‘상호관계형성하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영향을 받는 것이다. 관계에서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력만큼이나 힘을 발휘하는 일이다. 관계에서 나오는 힘은 무한하며 통합적이고, 제한적이지도 분열적이지도 않다. 이는 또한 더하고 곱하는 작용을 할 뿐 빼거나 나누지 않는다. 내가 강력해질수록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도 강력해진다. 그들이 강력해질수록 나도 강력해진다. 이것이 바로 관계에서 나오는 힘이며,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함께 하는 힘이다.”

 

그는 또한 힘과 사랑은 상보적이라고 역설한다.

 

서구문화에서는 일방적인 힘을 의미하며, ‘사랑일방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은 힘과 사랑을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양자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올바른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누군가에게 힘을 행사하는경우 우리는 그들의 이익을 무시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경우 자신의 이익을 무시한다. 하지만 힘과 사랑은 (이기주의와 자기희생처럼)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부부간의 협력처럼 상보적인 관계에 가깝다.”

 

 

스스로가 비틀거리는 것을 알았을 때, 새로운 사회현실을 공동 창조할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당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동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173

 

힘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면 사랑에 주의를 기울이고 강화해야 한다. 이해관계자가 많은 사회문제일 경우, 동질성과 통합을 강조하는 절차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분열된 관계자들을 모아 서로 유대감을 갖게 하고, 그들이 감정을 공유하며 상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노력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회의나 만남, 워크숍 같은 대화의 장 마련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에는 힘에 관심을 기울이고 강화해야 한다. 사회의 차별화와 개별화를 강조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자아실현 방향을 인지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활동가 프로그램이나 기업가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힘과 사랑을 많이 활용할수록 각각이 서로를 증대시키고, 더욱 강하고 더욱 발전적이게 만든다.” -173

 

약한 동력을 강화시키는 방법 이외에 이미 강하지만 불완전하게 활용되는 동력을 올바로 활성화시키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균형 조정 과정에는 현재 상황을 알고 바로잡게 도와주는 피드백에 대한 관심, 규제와 관리 프로세스, 컨테이너 등이 포함된다.” -175

 

비틀거림은 위험하지만 건강하다. 건강하다는 것이 결코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에 걸리거나 균형이 깨졌을 경우, 치유하고 균형을 회복할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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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16 11:37:25 *.237.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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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슨 만델라의 진정성 담긴 상징적 행위

1995년 요하네스버그에서 럭비 월드컵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만델라 대통령은 주장인 프랑수아 피나르 선수의 이름과 번호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수아 피나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프리카너(Afrikaner), 즉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출신이었고, 럭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아프리카너와 동일시되는 스포츠였다. 인종분리주의 체제를 만들어내는 선봉에 섰던 백인들 말이다.

 

언론인 존 카를린은 만델라의 행동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분열에서 통합으로의 전환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팀 감독이었고, 프랑수아 피나르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너였던 모르네 뒤 플레시의 말을 인용했다.

 

밝고 강렬한 겨울 햇살 속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외치고 있는지, 선수들이 운동장에 나오기도 전인데 왜 이리 흥분된 분위기인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이해했습니다. 백인 아프리카너 관중들이 마치 한 사람처럼, 한 민족처럼,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 -! -’ … 그런 감동적인 경험은 앞으로도 다시는 못할 것 같군요. 정말 마법의 순간이었고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이 나라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구나!’” (166~168)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상황은 복잡했다. 프레드릭 데 클레르크가 이끌던 백인소수정부는 과거 테러리스트로 불렀던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고 아프리카민족회의와 다른 야당들을 합법화했다. 정부와 야당은 1994년 과도헌법 제정과 민주선거에 대해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만델라 대통령은 모든 사람들이 화해하고 이 나라를 통합시키는 데 자신을 바쳤다. 앞의 일화도 그런 노력 중 하나였다. 만델라 대통령의 행동은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것이었다. 이 행동이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평가 받을 만큼 효과적이었던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 강력한 상징은 강력한 의미를 갖고 있고, 이 의미의 영향력 역시 강하다. 또 하나, 상징은 정동을 수반한다. 즉 상징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만델라 대통령의 상징적인 행동은 쇼가 아니었다. 쇼는 과장하고 미화하고 의미가 깊지 않다. 만델라 대통령의 행동은 진정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평화와 통합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라는 점을 아프리카너들도 알고 있었다. 인종분리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적어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결정적인 순간,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성과 상징성이 결합될 때의 효과는 엄청나다.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용어인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라는 의미), 즉 인종분리주의는 각각의 인종과 민족 집단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다른 인종이나 민족과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기반하고 있었다. 인종분리주의는 각각의 집단이 생활하고 일할 장소, 결혼할 대상의 범위, 어느 지역의 시민이될지(모든 흑인 거주구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까지를 세세하게 통제하는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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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0 21:24:22 *.237.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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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걸음

 

다양성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 지구를 통해 연결되어 있고, 생명의 거미줄인 식량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농부와 왕자가 다르지 않은, 같은 인류라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180

-       반다나 쉬바, 인도 환경운동가

 

역학적, 사회적, 발생학적 복잡성이 높은 문제, 즉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삼중의 복잡성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조직적이고 참여적이고 새로운 형태여야 한다.

 

집단에서의 사랑 : 깊은 친밀함과 유대감, 동료애, 경험의 공유 등

집단에서의 힘 : 이해관계, 시간과 자원 배분과 통제, 통제권과 소유권, 성과와 비판 등

 

발전적인 리더십과 퇴행적인 리더십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리더가 발전적이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서 힘을 얻는다. 퇴행적인 리더와 만나면 에너지에 다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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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0 21:24:43 *.237.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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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법

복잡한 상황에서 신중하게 함께 걷기를 연습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팀원들 모두가 해결하기를 바라지만 누구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에 대처할 컨테이너를 신중하게 구축하는 일이다. ‘컨테이너는 물리적, 사회적, 정신적, 의도적 공간이다. 일본인들이 바(ba, )라고 부르는 그런 공간. 그런 컨테이너는 넓으면서도 동시에 한계가 명확해서 팀이 창조적이고 안전하게 실험하고, 놀고, 연습할 수 있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208

 

컨테이너의 예로 변화 연구팀을 들 수 있다. 변화 연구팀은 일종의 통제된 환경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내부에서 경험을 쌓고, 자각하고, 현대사회의 빠르게 변하는 불안정한 역학관계에 대처할 전략을 개발하는 곳이다. 변화 연구팀은 현실 세계와는 다른 공간이기를 꿈꾼다. 그 안에서는 남다르게 행동해도 괜찮은 공간, 권력 관계를 뒤집는 것을 격려하고, 실수가 배움의 토대가 되는 문화를 응원하는 그런 공간이기를 열망한다.

 

컨테이너는 복잡한 문제에 대처할 획기적인 방법을 공동으로 만들어내려는 우리의 작업을 돕는 공간이다. ‘컨테이너는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고, 당황하고 길을 잃고 헤매고,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개척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213

 

변화 연구팀의 핵심 활동은 집단이 함께 힘에서 사랑으로 다시 반대로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힘에서 사랑으로 움직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힘을 모아 시스템을 전체로 보고 영향력을 행사할 다양한 주인공들을 소집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공자각을 통해서 전체를 더욱 더 많이 보고 전체와 더욱 많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211

 

힘에서 사랑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이런 자각과 관련된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게 도와준다. -211

 

당신이 해결책의 일부가 아니라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다.” (X)

당신이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면,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없다.” (O)

 

힘에서 사랑으로 이동하면 우리가 어떻게 문제의 일부이며,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를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사랑에서 힘으로 두 번째 움직에는 해당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조치들에 착수하도록 관계자들을 독려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이는 또한 누군가 해야 해.”에서 내가 하겠다.”로의 긍정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212

 

누군가 해야 해.” (X) “내가 하겠다.” (O)

 

U이론의 공동자각이 주로 힘에서 사랑으로 이동과 관계되고, 공동실현이 사랑에서 힘으로 이동과 관계된다면, ‘변화 연구팀을 중심으로 보면 공동실재라는 과정은 두 가지 움직임을 모두 포함한다. -213

 

명상 시간과 짧게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집단적인 통찰의 시간을 통해 팀원들은 퇴행적인 분열과 집착을 놓아버리고’, (이는 힘에서 사랑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진취성과 재충전된 목적성을 강화시켰다.’(이는 다시 사랑에서 힘으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공동실재 과정은 힘과 사랑의 딜레마를 화해시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정적인 통합 상황에서 자아실현 동력을 발휘할 수 있고, 현실적인 자아실현 상황에서 통합 동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3

 

헌신성, 헌신적이라는 뜻은 힘(의지)과 사랑(통합)을 전심전력을 다해 발휘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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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0 22:07:10 *.237.95.227

[240] 220 ()

 

결론 : 이끈다는 것은 앞으로 걸어간다는 의미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랑과 힘을 함께 활용하기 위해서는 3가지 단계(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힘과 사랑 모두에 관심을 기울이고 양자 사이의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상대적으로 약한 동력을 강화하고 끌어모음으로써 스스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두 가지 동력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전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둘이 하나가 되도록.” -216

 

1.     힘과 사랑 둘 다 자각하기

첫째 단계는 힘의 양면성과 사랑의 양면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우리가 두 가지 동력을 모두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하나를 게을리 하고 다른 하나에만 의지하는 실수를 범한다. (…) 우리는 의식적으로 신중하게 힘과 사랑을 관찰하고, 양자를 마구 뒤섞거나 한쪽만 선택해서는 안 되며, 억지로 합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외부와 자신의 내면 모두에 힘과 사랑의 딜레마 때문에 야기되는 창조적 긴장이 존재한다는 불변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와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217

 

2.     스스로 균형 유지하기

두 번째 단계는 상대적으로 약한 동력을 강화하고 끌어모음으로써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 타인과 갈등 상황이고 상처 받을까 두려워하는 경우 방어기제가 발동하면서 나는 뒤로 물러선다. 그러면 갈등에 대처할 능력은 더욱 줄어들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공간에 대한 자각은 한층 좁혀지며, 결국 나는 옴짝달싹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진다. 이는 통합의 동력인 사랑을 약화시키는 힘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과 통합하는 데에 치중할 경우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통합에 방해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감히 앞으로 나가질 못한다. 이는 자아 실현 동력인 힘을 약화시키는 사라이다. -218

 

힘과 사랑 중 하나게 지나치게 의존해서, 이 둘이 서로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힘과 사랑을 어떻게 행사하고 있으며, 결과가 어떤가에 대한 피드백을 항상 의식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218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치유함에 있어 상처가 오히려 재능이 되기도 한다. 상처는 민감하고 취약한 부분을 알려주고 따뜻한 주의를 요구한다.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걸음을 떼어 앞으로 나아가는 위험,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배우고 성장하도록. -219

 

상처는 치유하는 재능이 된다.”

 

우리가 모든 힘과 모든 사랑을 발휘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 공포다. 타인을 화나게 하거나 상처 입힐까봐 두려워서 목표를 향해 과감히 나가지 못하고 힘을 행사하는 것을 망설인다. 창피를 당하거나 상처 입을까봐 두려워서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고 사랑하는 것을 망설인다. 그리하여 공포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을 가로막도록 내버려두는 우를 범한다. -221

 

두려움이 상처 입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때로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 때문에 고통 자체로 인한 것보다 더욱 힘들어 한다. -222

 

3.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연습하기

세번째 단계는 힘과 사랑 사이를 유동적으로 오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무능에서 의식적인 무능으로, 다시 의식적인 유능으로, 유동적이고 무의식적인 유능으로. 그런 유동성은 그렇게 난해한 것도 희귀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힘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법을 안다. -224

 

유동적으로 움직인다 함은 교착상태에 있지 않다는 의미다. -224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사랑과 힘이 막힘 없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합기도 훈련 목표는 강해지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힘이 있고 강해진다고 해서 타인을 폭력으로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강해지기를 포기하고 남이 자신을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사랑은 아니지요.” –밥 윙, 합기도 사범

 

힘은 사랑에 힘을 부여하여 감상적이고 나약하지 않게 해준다. 사랑은 힘이 통합을 지향하도록 하여 무모하고 폭력적이지 않게 해준다. 이리하여 힘과 사랑은 둘 다 더욱 완전해지고 발전적이 되며, 서로를 채워 하나가 된다.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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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5 01:32:52 *.237.95.227

[245] 2 23 ()

어느 꿈1


꿈을 꿨다.
꿈은 늘 꿨다.
다만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
뭔가 꿈을 꾸었다는 느낌만 알 뿐.

기억에 남는 꿈은 많지 않다.
그런데 어제 꿈은 조금 기억이 난다.
기억나는 내용은 조금인데, 인상은 강렬하다.

어제는 꽤 오랜 시간 꿈을 꿨던 것 같다.
물론 기억나는 장면은 드문드문이고, 분량도 적다.
기억나는 장면을 아래에 기록해둔다.

***
버스를 타고 있다.
버스에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승객이 앉아 있으니까.
나는 버스의 중간에서 조금 앞쪽에 앉아 있다.
승객은 여러 명이다. 10명은 안 되는 것 같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그런데 버스가 가는 길이 일반 도로나 정류장이 아니다.
조금 험한 길을 가고 있다.
큰 장애물은 아니지만, 길의 곳곳에 작은 장애물,
작은 언덕, 철조물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잘 닦인 길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비포장 도로도 아니고, 시골 길도 아니다.
버스 운전사가 운전을 장애물들을 피하는 데 애를 먹는다.
운전사는 길이 조금 험악하다고 짜증이 난 것 같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내 귀에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다.
다른 승객들은 이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
잘 들어보니,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소리 지른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목소리다.

창밖을 바라보니,
저 아래에 사람 둘이 계곡물 같은 곳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게 보인다.
나는 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버스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한다.
버스가 서자, 나는 내린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내려간다.
역시 아이들이 계곡 물 같은 곳, 어쩌면 늪인 것 같기도 한데,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 되고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한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잡으라고.
 
그런데 그 순간,
그 아이의 표정이 바뀐다.
그 전까지는 간절하게 도와달라는 표정이었는데,
내가 손을 뻗은 순간, 그 아이의 표정은 무섭다.
그 순간 그 아이는 녹색의 괴물처럼 보인다.
몸은 작고, 눈도 작고, 몸 색깔은 연두색이다.

순간, 나는 이 아이의 손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늪 같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
아뿔싸' 그냥 물이 아니라 늪이다.
위에서 봤을 때는 분명히 계곡 물 같았는데,
지금 이 순간은 늪이다.

나는 이 아이의 손에 끌려, 늪으로 빠져 들어간다.
나는 왼손을 내밀었고, 아이가 잡은 내 손 역시 왼족이다.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아이의 반대편으로 뻗는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서, 여기서 나를 끌어내어 줄 수도 있으니까.
역시, 누군가 내 오른 손을 잡았다.
여자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의 힘이 더 세다.
그녀는 나를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이 다음부터는 기억이 안 난다.
이 부분에서 잠에서 깼는지,
꿈이 끝난 건지,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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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5 01:33:31 *.237.95.227

[246] 2 24 ()

어느 꿈2


이상한 꿈이다.
잠에서 깬 후, 이 장면이 상당히 선명하게 남았다
.
이렇게 선명한 경우는 많지 않은데
.
그리고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소름이 끼쳤다
.
진짜로
.

그래서 생각해봤다
.
이 꿈의 의미를
.
내가 해석한 이 꿈의 의미는 이렇다
.

이 꿈은 내게 영웅심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
나는 가장 먼저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생각에
,
내가 이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속단했다
.
다른 승객들과 합심하여 구할 수도 있었고
,
그게 더 현명할 수도 있는데... 꿈의 결말을 보면, 분명히 합심해서 구하는 게 더 나았다
.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이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
시간은 부족하고, 아이들이 위태로운데, 비명 소리는 가장 먼저 들은 건 나이기 때문에

내가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오만인 것 같다
.
내가 무슨 영웅이 된 것처럼
,
혹은 영웅이 되고 싶었던 욕망으로 인해
,
나만이 이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오판이었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구했어야 한다.

성급했고, 자만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꿈은 내게 겸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만 빠져 있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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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5 22:33:19 *.237.95.227
[247일] 2 25 ()

한 1주일 전에 故 이윤기 선생님이 쓰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을 읽었다.
재밌고 의미 있는 독서였다.
이윤기 선생님의 새로운 신화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 책을  '마음편지77'에서 소개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칼럼을 하나 써보려 한다.
그리고 이 칼럼을 단군일지에 넣어볼까 한다. 단군일지는 내 성찰터이자 놀이터니까.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읽고 쓴 칼럼 (1)

자신을 알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문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한 다음에는 그 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의 답을 모색하는 사람만이 신화의 주인공,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 의문만 제기할 뿐 그 답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은 신화의 조연(助演), 자기가 사는 모둠살이의 조연에 머문다.

-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66p

 

전해오는 옛 이야기에 따르면 그리스 델포이의 신전 문 상인방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소크라테스 덕분에 널리 퍼진 이 문장은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이 질문을 그냥 던지면 안 된다. ‘진지하게던져야 한다. 진지하게 던진다 함은, 이 질문을 오랫동안 치열하게 품고 탐구하겠다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묻기 위해서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계기와 그를 통해 뭔가를 깨닫게 되는 각성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 계기는 대체로 시기적으로 느닷없이, 형태적으로는 위기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에 대한 탐구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이 위기 속에서 에서 진정한 자기 존재를 만나기 위한 부름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는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그의 존재에 관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 깨달음을 자각하는 순간이 각성의 경험이다.

 

이런 계기와 각성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탐색의 여정이 시작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모색하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신화에서는 이 과정의 출발점을 강 혹은 바다를 건너기로 상징된다. 이에 대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윤기 선생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강을 건넌다……. 주인공공들이 강가에 서면 이야기는 갑자기 의미심장해진다. 많은 경우, 이 강은 돌이킬 수 없는 결심과 행동의 상징이 된다. 새로운 세상은 바로 이 돌이킬 수 없는 행동과 함께 열리는 일이 자주 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은 자신의 아버지가 숙부에게 빼앗긴 왕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넌다. 이아손은 이올코스라는 나라의 왕손이다. 그는 이 강에서 심술궂은 노파로 변신한 헤라 여신을 만나게 된다. 헤라 여신은 이아손이 영웅이 될만한 재목인지를 시험한다. 이아손은 노파의 불손한 언사에 공손하게 답하고, 가죽신을 한 짝을 잃어버리면서도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게 해주겠다고 노파와 한 약속을 지킨다. 이렇게 해서 이아손은 헤라 신의 시험을 통과한다. 시험을 통과했다는 건, 헤라 신의 점지를 받고 은총도 받게 될 거란 뜻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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