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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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진심으로 협력하며
자신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업무에 대해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환경의 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돕는 리더를 꿈꾼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이면서 나를 짓누르는 리더쉽을 들여다 보고,
가능하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덜 충돌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깊고, 진실하며, 솔직하게, 글로 써 보고자 한다.
누군가의 피드백보다도 스스로 거울이 되고 가다듬어 나갈 것이다.
둘,
복합적 감정으로 밀고 올라오는 나의 어린시절을 더듬어 성장과정을 기록하고 싶다.
기상시간 : 6시

1.
300일을 다시 시작하는 조금은 설레고 긴장되는 첫날.
아 첫날부터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네.
담당직원이 출근하자마자 일주일간 휴가를 가고 싶으니 허락해달라고 한다.
자신이 맡은 업무를 어떻게 인수인계할지 아무런 대안도 세우거나 의논하지 않고 조른다.
사전에 조율하지 않는 태도를 늘 지적하여도 되풀이된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스스로 불편한 감정을 읽고, 긴 호흡을 내쉬어보지만 콘트롤되지 않는다.
휴가를 가도 되겠느냐는 채근을 뒤로하고,
자리를 피해 상황을 다시 정리하느라 한참이 걸렸다.
결국, 직원에게 휴가를 허락했다.
2.
조직에서 사람을 키우기 위해 채용한 직원을
주 5일 근무 중에 이틀을 학교를 다니게 했고,
대신 토요일에 북카페매니저로 대체근무 하게 했다.
그런데 학업에 대한 욕구가 커져서 토요대체 근무를 못하겠다고 한다.
학위를 마친 후에는 조직을 위해 일하지 않고 이직하고 싶다는 솔직한 의견도 내비친다.
어떻게 해야할지 많은 시간 고민하여도 결정하기 어렵다.
3.
사례회의에서 정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계속되는 문제행동에 모두들 소진되어 퇴소조치를 내비친다.
"힘들다고 무조건 퇴소조치하면 쉼터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있겠느냐
내쫓지 않고 변화되는 지원을 반복적으로 하기 위해 우리가 있다." 등등.
결국 정이의 상담은 내 몫이 되었다.
정이를 불러 꼬옥 안아줄뿐이다.

1.
종진스님을 어제 점심에 처음만나 밤늦도록 이야기하고,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서로의 사유를 거침없이 쏟아내어도 지루하지 않고,
대화 중에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향일암을 갔다가 갈릴리교회에 들려 김순현목사를 만나 서로의 화두를 꺼내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누고 깊어진 대화를 끊기가 못내 아쉬웠다.
세사람이 모두 융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있고,
집중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인연이 신기했다.
더군다나 김순현 목사는 융심리학 관련책들을
여러권 번역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횡재한 기분도 들었고.
독일의 영성가인 마이스터 엑하르트 연구를 오래전부터 해 온터라
북카페 공개강좌 연사로 초청하기로 약속도 하고.
종진스님은 언니들의 심리치유와 성장을 위해 발벋고 나서주기로 하였으니
몸은 고단하여도 마음은 부자로세.
체력은 딸린다.

카페매니저가 휴가를 가 아침에 문을 열고,
종일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뛰고 마감을 하여야 하루의 일과를 마치게 된다.
코에 뽀루지가 생겼고 입천장은 헐었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어깨, 알람소리를 듣고도 일어날 수가 없다.
겨우 출석을 하고 스트레칭으로 온몸을 이완시켜보지만 단단한 어깨는 풀리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경직된 몸을 통해 이완하라고 말하고 있다.
신체가 경직되니 감정도 시니컬해진다.
3.
아침 등교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준비물을 챙기지 않는 의정이에게 손바닥 체벌을 했다.
눈물을 참고 가방을 들고 나가는 뒷모습이 짠하다.
달려가 꼬옥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꾹 참아본다.
잘못을 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무한한 애정이 솢구친다.
자식에게는 한없는 친절함이 베풀어지는 나.
정이는 가슴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직원들이 신음한다.
오늘도 정이와 언니 주이를 불러 다독이는 친절을 베풀었다.
의정이에게 생기는 무한한 애정이 솢구쳐지지 않는다.
정이와 주이, 아니 언니들 모두가 가족애를 갈구하고 있는데
나는 어쩌다 한번 친절을 베푸는걸로
소임을 다하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있지나 않은지....
이 무겁고 칙칙함은 무엇인가.

정이를 만난지 6년째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쉼터 입퇴소를 반복하여 왔다.
어릴적부터 보육원에서 자라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가보다 짐작만 해왔다.
자신이 겪고 당한 경험들을 간헐적으로만 내게 들려주었다.
아니 정이의 개인사를 다 들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쉼터에 들어오면서 팔뚝에 그은 자해의 흔적들을 보여주며
칼질을 아무리 해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을 언뜻 내비칠때도
'왜 그런짓을 했냐. 앞으로는 그러지마라'라고만 반응했었다.
연휴를 앞두고 고모네집으로 언니와 함게 추석을 쇠러 보내야하는데
고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쉼터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려 상담실로 불러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어떤 아저씨에게 붙잡혀 언니는 도망가고
여관방에서 사흘을 갇혀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털어놓았다.
그 놈의 얼굴을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말에 온 몸이 오그라든다.
그동안 뭔 일을 했나.
최선을 다해 지지하고 안아주면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헛물이 되고 말았으니.
깊은 상처 치료가 먼저였던 것을.

의정이 반 학부모 난주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 체험학습 갔을 때 모두들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는데
의정이만 도시락을 가지고 오지않았다고 한다.
모두 도시락을 꺼내자 의정이 눈에서 눈물이 핑도는 모습을 보고
난주엄마가 친구들 밥을 모아주어 의정이가 점심을 먹었단다.
이번주 체험학습때도 도시락을 싸가야하는데
의정이가 또 그런 상황에 처할까봐 전화를 한 것이다.
중학교 2학년때 였을까
소풍을 하루 앞둔 전날 담임선생님께서
"내일 소풍에 한사람도 빠지면 안된다. 특히 김선관 결석하면 가만 안둔다"
하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소풍.
장기자랑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슬며시 친구들을 피해 바위에 앉아
친구들이 점심 먹기를 기다렸다.
친구들이 싸 온 삶은 달걀이 너무나도 맛있어 보였던 소풍.
오래된 각인처럼 기억에 남아있는 그림이다.
더욱 세밀하게 그려질 날이 올테지.

"현이야 오늘 기분이 안좋아 보인다"
"소장님 오늘 저 건들지 마세요 저 뚜껑열릴라그러거든요"
"왜 또 어제밤에 뭔일 있었냐?"
"말하기 싫거든요"
현이의 샴푸를 정이가 몰래 썼는데 정이 언니 주이에게 불만을 말했더니
주이가 정이에게 그대로 전달하여 쉼터 안에서 싸움이 벌어졌었나보다.
정이를 불러 폭력 사용의 잘못에 대해 직면시키고 현이에게 사과를 해보라고 했다.
정이는 자신이 없는 곳에서 자기이야기를 한 것에 분노감정이 우발적으로 생겼고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사용하게 되었다며 사과할 의향은 없다고 한다.
"정이야 너도 네가 잘못한 것은 인정하지?"
"네. 그렇지만 뒤에서 욕하는건 제가 참을 수 없어요"
"기분나쁘다고 폭력을 휘두르는건 어떻게 생각해?"
"제가 때릴려고 미리 생각했던건 아니예요. 순간적으로 주먹이 나갔고 그 뒤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없어요"
"현이도 많이 화난것 같어 네가 먼저 현이에게 사과를 해라. 화날때마다 참지 못하고 주먹질한 네 잘못이 더 커"
"아이 전 절대 사과 안할거예요"
......
"여보세요. 소장님 저 종진스님입니다"
"네 스님 어쩐일이세요?"
"음 제가 지난번 정이를 잠깐 보았을때 정이 안에 분노감정이 꽉 찬 느낌을 받았거든요.
제가 그동안 정이와 비슷한 감정상태인 사람들을 여러번 도와줬는데 제가 정이를 돕고 싶어서요"
"그렇잖아도 정이가 심리상담을 받고 싶어하였는데 잘됐네요. 정이도 스님을 편안해하는 것 같구요.
제가 정이에게 스님이 돕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하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고 다시 연락할께요"
"정이야 지난번 만났던 종진스님이 너를 돕고 싶다고하셔 어떻게 생각해?"
"아 그 스님요. 저를 잘 이해해주셨는데 그 분이 도와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그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기로 약속하자. 한번은 스님이 여수로 오시고 한번은 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고"
"저도 변하고 싶어요. 잘됐지 모르지만 도와주신다면 노력해볼께요"

전남은 다른 광역자치단체와는 달리 섬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2007년 한국여성재단으로부터 여성복지사업으로 지원받아
전남의 섬지역을 돌며 반성매매활동(아웃리치, 캠페인)을 나름 열정을 다해 진행하였었다. 4개의 섬활동을 하고 거문도섬에서 활동을 하다 만난 섬마을교회 장로님께서
우리의 활동에 대해 설명을 들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여기 마을은 기혼여성의 절반이상이 과거 성매매여성들이다"라고.
아 나는 뒷통수를 한대 맞는 기분이 들었었다.
섬을 방문하여 "성매매는 범죄입니다. 성매매를 근절합시다"라고 외쳤던.
우리의 구호와 캠페인 활동들이 섬마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동네아낙들 한사람 한사람의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짓을 했구나.
많이 슬펐다.
그 사업이 2007년 여성재단 우수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상금(50만원)과 상패를 받기도 하였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 이후 나에게 무거운 짐처럼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어 나오지 않는 과제로 남아있다.
그 동안 성매매피해여성들을 지원하면서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고
자칫 불행의 씨앗으로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마도 섬마을로 시집온 여성들 중에
산더미 같은 빚더미를 지고 있었던 언니들이 많았을테지.
대신 빚을 갚아 준 사람을 따라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였지만,
섬 생활이 그리 만만치 않았을 거고 부적응으로 섬을 도망쳐 나왔을텐데....
남은 가족들, 자식들은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고 극복되었을까?
내 고향도 섬마을이다. 어렸을적에 고향을 떠나 왔지만
친척집을 방문하여 친지들로부터
"뉘집의 새댁은 얼마를 갚아주고 데려왔는데 몇 일 못살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여러차례 들었던 기억도 생각나고.
그 가족들에게 나타났을 어려움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무얼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이 일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여럿이 그 실태를 들여다보면,
구체적 서비스를 고민할 수 있을텐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까? 실현가능성은 있을까? 등등 나홀로 고민에 빠졌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여 동안
경북 포항 일대의 유흥업소 여성 8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고,
이곳 여수에서도 작년 5월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보석 같은 생명이 줄줄이 스러져 가는 동안에도
세상은 지퍼처럼 굳게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침묵의 대가는 공범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고,
한 개인의 치부요 부끄러운 죽음으로 서둘러 덮어 버렸을 때
그네들의 죽음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별개의 것이 되었던 것이다.
밟히고 짓눌려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그네들이
생의 벼랑 끝에서 선택한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기 위해, 살아보기 위해 몸부림치던 나날들을
무엇 때문에 그리도 쉽게 죽음에게 저당 잡혀야 했는지,
1년 여가 지난 지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부끄럽다며 제 몸뚱이 낳아준 부모도 연락을 끊고
피를 나눈 형제도 절대로 그런 누이는 둔 적 없다며 외면할 때,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 불쌍한 인생을 거두어 줄 것이냐며
마흔아홉 날 가슴을 치며 마지막까지 예를 다했던 이름 없는 여인들,
그들이 뿌린 한 줌의 재가 바스러진 뼈의 절규, 피멍든 살덩이의 외침인 것을
여전히 귀를 막은 채 듣지 않는 세상을 향해 누군가는 외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고 져야 할 짐이다.
오늘 포항 버스터미널 앞에서 소리쳐 불렀던 '불나비'를 다시 불러본다.

어제 정이가 내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현이와 사과하고 싶으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온 몸 뼈마디마디 통증으로 드러누워있는 상태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오늘 만나기로 하였다.
공개강좌가 있는 날이라 마음은 바쁘지만 정이가 갈등관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지지하고, 그녀들 가슴에 응어리진 뭔가를 풀어내기 위해 정이와 갈등관계에 있는 3명을 함께 만났다.
서로간에 생긴 오해가 조금은 풀렸다.
정이는 3명 모두에게 없는 힘을 끌어모아 아주 아주 힘들게 사과하였다.
4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등을 쓰다듬어 준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다독인다.
몸은 부서질듯 휘청거리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보육원에서 자란 정이와 주이는 단체생활을 힘들어 한다.
아니 누군들 쉼터를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여럿이 한방에서 잠을 자야하고,
성격이 맞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하는 곳이 쉼터다.
1년간 현장에서 일하게 되면 10년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깊은 트라우마를 담고 살아내고 있는 그녀들.
상처 입은 가슴을 움켜쥐고 살아가야하는 그녀들.
각자의 삶의 여정이 다르고 그 상처의 모습도 다르지만
사실 그녀들의 상처는 대부분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
그녀들이 쉼을 얻고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는 쉼터여야할터인데,
다루기 쉽고 말 잘듣는 언니들만 감싸는 사람들.
어렵고도 어렵다.
감정만 격해진다.
어떻게 해야할까.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다.
이 전쟁같은 일상을 탈출하자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저것들은 부쩍 자주 등장하네.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 정이와 주이를 불렀다.
주이는 남편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으나 여전히 불안하다.
어제 자살하기 위해 뛰어든 차 운전자에게 욕설 들은 이야기를 장난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주이.
정이는 쉼터를 뛰쳐 나간 뒤 아는 언니가 머무르고 있는 원룸에서 매일 술과 담배에 찌들고 있다.
정이를 그곳에서 탈출시켜내기 위해, 정이와 거처할 집을 찾아다녔다.
쉽지 않다. 더 힘이드는건 애써서 공들여도 다시 와르르 무너지면 어떡하나.
쓸데없는 걱정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하지만,
어렵고 힘든 여정을 지켜보며 따라와주는 정이가 그저 고맙다.
무너지면 다시 탑쌓기를 시작하는 매일이 삶인 것이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박남준
견딘다는 것,
희망이라는 무엇인가의 내일을 기다리기 때문인가.
마당에 나와 뜰앞 파초들의 겨울잠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한다.
지난 여름 그렇게 무성했던 그늘이 드리웠던 자리에
겨울햇살이 반짝인다.
양지바른 처마끝에 나앉아 슬쩍 옷깃을 열고
주섬주섬 겨울 햇살을 퍼담던 옛날 할아버지들의 흑백사진이
찰칵거리며 스쳐간다.
무상하다 이렇게 똑같은 풍경의 정물이 되어질줄 어찌 알았겠는가
뒷뜰 작은 연못에 금붕어 두마리 얼었다 풀렸다
얼음장 아래 잘 견디고 있다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 낙숫물 소리,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어디 마음뿐일까
그렇게 겨울이 깊어갔다 문득 저 산마루로부터 몰려오는
무더기 흰 찔레꽃 같은 꽃사태
그 앞에...


정이와 주이를 위해 종진스님이 오셨다.
오랫동안 삶을 짓눌러온 상처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작한 일.
정이가 나타나지 않아 정이와 주이의 히스토리를 다시 정리하는 시간,
인간이해가 깊은 종진스님과의 대화는 꽉 막힌 도랑에 물꼬를 트는 작업이다.
보육원에 버려진 너무나 단단한 기억,
방치된채 어린시절을 견뎌내며 당했던 온갖 폭력앞에서 막막했을 정이.
내 살처럼 아끼고 보듬어준 어느 누구 한사람이라도 정이에게 있었다면 지금 정이의 모습은 아닐텐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이와 그녀들의 경험을 깊이 이해하고,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괴로움, 고통의 원인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
정이에게는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
종진스님과의 상담을 통해 미뤄왔던 삶의 과정을 다시 시작되기를 응원하자.

어떤 기도
오세영
기도하는 갈매기를 보았는가.
허공을 선회하던 갈매기 한 떼가
돌연
뭍으로 내리더니
해안 사구에 정연히 자리를 잡고
해를 바라 조용히 명상에 든다.
수평선 너머 한 방향을 일제히 응시하는 그
눈빛들이 경건하다.
머리에는 한결같이 힌 깃의 히잡을 썼다.
모스크 광장에 도열해서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무슬림들 같다.
잠시 전
고깃배에서 활어를 약탈하고,
어시장에서 생선 찌꺼기를 훔쳐먹고,
날쌔게 잠수해서 어린 물고기를 샬육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갈매기도
험난한 바다에선 삶이 고해임을 아는 까닭에
이처럼 신에게
고뱍할 줄을 아는 것이다.

3년전 가난하고 집없는 사람들에게 작은 집을 기증하시겠다며 중년의 남자분이 찾아 오셨다.
10평 남짓한 재래식 화장실에 곰팡이와 지붕에서 비가 새는 작고 허름한 무허가 집.
무허가집이긴 해도 조금만 수리하면 한두명이 어울려 살 수 있겠다 싶어 덮석 기증을 받았다.
막상 수리를 위해 봉사단을 만나 견적을 뽑아보니 부담되는 액수였다.
후원금은 바닥난 상태라 어찌해야하나 고민이 시작되어 몇날 몇일 밤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괴로웠다.
하느님 이런 일을 시키실거면 저에게 경제적 여유를 주시지
맨날 밑바닥 인생인 저에게 감당케 하시나이까
원망섞인 기도가 절로 나왔고 긴 눈물의 강을 건너야했다.
몰래 대출을 받아 집수리를 하였다.
그 집의 첫 수혜자는 정이다.
거기에서 정이는 3개월을 버텨내었다.
수리를 하였건만 비만오면 지붕에서 물이 새고 집에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하자
정이는 그 집을 나왔고, 다시 수리가 이어졌다.
그 후 그 집은 주인을 기다려야 했다.

정이가 쉼터에서 나간 후 아는 언니집에 얹혀 살다가
트러블이 생겼는지 봉강동 그 집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는 중에 연락을 받아 해질녁에 만나 짐을 싣고 가는 중에
일요일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져왔다.
정이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이라며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잘하지 못할걸 뻔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센터 공동작업장에서 일하며
출퇴근 습관을 기른 후에 아르바이트를 해도 늦지 않다고 설득한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놓아 청소를 해야할 상황이지만 밀린 수도세를 내야
수도물을 공급받을 수 있어 정이를 찜질방에 내려주고 후다닥 달려와버렸다.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밥이라도 사 먹이고 왔어야 했는데
외면하고 말았다.
따라와 주지 않는 정이를 억지로 끌고 가려다 제풀에 넘어진 하루였다.

어떻게든 정이를 붙잡으리라는 생각에 오늘 하동 출장길에 동행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안가면 안될까요? "
"야 약속한거는 지켜라 10시 30분에 출발할테니까 빨리 챙겨서 와라 알았지!"
쭈빗쭈빗 나타난 정이를 태우고 하동으로 달려갔다.
"소장님 어제 처음만난 언니가 한명있는데요
그 언니집에 가보니 건물지하에서 고양이 3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고양이의 대소변을 치우지 않아 악취가 진동해서 사람 살 곳이 못돼요
그 언니가 대인기피증에 우울증이 있다고 하는데 도와줘야할 것 같아요."
정이는 생존하기 위해 전에 일하던 업소를 다시 찾아갔고
거기에서 일하던 그 언니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지고 모자란것 같아 측은지심이 생겼는지
일을 마치고 그 언니의 집을 따라갔단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자신보다 힘든 언니를 도와주자는 정이.
정이가 다시 업소로 발을 들여놓게 한 우리의 현실 앞에
먹먹해진 가슴의 통증을 애써 억누르고 정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운전대를 붙잡는 손바닥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오늘 새벽에 두 가지를 연결하며 문득 이헌님께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저랑 같이 꿈(밤에 꾸는 꿈^^)작업 하던 이 중에 NGO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엄마의 딸이 있거든요.
그이가 엄마를 이해하는 노력을 드문드문 듣곤 합니다. 모든 딸들의 과제인 듯 합니다.
또 하나는 여성주의 저널 일다를 읽다가 거기 딸에게로 가는 길 이라는 제목으로
이혼 후 헤어진 딸을 향하는 이런저런 것을 쓰는 여자분이 있어요.
여덟살 의정양이 커가면서 이헌님은 여덟살 부터를 다시 사시겠구나 생각합니다.
이헌님의 이야기를 써두는 것은 이담에 딸이 서른과 마흔 사이에 자신을 돌아보며
엄마로서가 아닌, 여자로서의 이헌님을 이해하고 싶을 때 좋겠구나 생각했어요.
출사표에 쓰셨던 두번째 것을 막~막~ 응원합니다
(제 특기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기입니다 ^^;;; 네, 뒷북도 좀 잘 칩니다. ^^;;;)

난 많은 책들을 읽지 못하고 있다.
책보다는 현장에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고픈 어린시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찾아 들었던
도서관에서의 광휘를 잊지 못하여 북카페를 시작하였다.
스텝들과의 갈등과 반목이 이어졌어도
나의 소신과 간절함은 흔들리지 않았었다.
10월 초 어느 날 30년동안 모아 온 책들을
흔쾌히 기증하시겠다는 서재환님과 연결되었고,
1만권이 넘는 책들을 만나는 기쁨도 잠시
광양에서 여수로 옮기는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나 혼자 움직여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사람들을 설득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그 모든 과정을 견디어 온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10월의 문턱을 넘는 길이 힘에 부쳤으나
난 늘 온 힘을 쏟아부었다.
1만권이 넘는 책들을 분류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
책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간절함은 더욱 확장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