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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7일 12시 02분 등록


  퇴직은 두려움인가 ? 그렇다. 사람들은 겨우 쉰 살 즈음에 회사를 떠나고 격무에 시달리던 몸이 갑자기 할 일 없는 무료함 속으로 빠져들면서 당황한다. 쉰 살은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두렵고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젊은 나이다. 퇴직을 하고 2주쯤 지나면 초조해 지기 시작한다. 당장 뭔가를 시작하지 못해 안달이 나기 시작하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때 조심해야한다. 격전의 전반전이 끝나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기 전에 지금은 푹 쉴 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휴식과 준비의 시기다. 이때를 초조와 안달로 보내면 겨울을 잘 보내지 못한 나무처럼 새로운 인생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한다. 자신을 북돋아 정말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일대 전환을 꾀해야한다. 새로운 인생은 퇴직과 함께 온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최상이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인생 후반기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덜컥 퇴직을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휴식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적어도 몇 년 정도는 잘 준비할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것이다. 꿈,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난 늘 이 예를 들기를 좋아하는데, ‘삼국유사’의 해제와 저술로 유명한 고운기 교수는 삼국유사와의 첫 만남에서 ‘내가 이 책 한 권으로 유명해지리라’는 뜻을 세우게 되었고, 그 결심은 결국 그를 삼국유사의 전문가로 만들어 주었다. 나의 새로운 인생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회사를 나올 때 나는 1인 기업가의 꿈을 꾸었고, 변화경영전문가로 나를 세운 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곧 기업이며 나를 고용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스스로를 고용함으로 고용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변화경영전문가로 불렀다. 그러니 이제 묻자. ‘나는 무엇으로 유명해 지고 싶은가 ? " 제 2의 인생은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먼저 뜻을 세워라.

일단 특정한 분야에 대한 뜻이 서면 다음으로 할 일은 그 분야에서 필살기를 갖추는 것이다. 같은 일을 비슷한 기간 동안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그 일을 아주 잘하고 어떤 사람은 평이한 수준에 머물고 만다. 어떤 사람은 그 일에 통달한 달인이 되어 그 일로 인생의 후반기를 가득 채운다. 필살기를 만들어 내는 비법은 다음과 같다. 모든 비즈니스는 경영전략을 가지고 있고, 전략의 핵심은 여러 가능성 중에서 가장 강한 것에 집중투자함으로써 리더십을 장악하는 것이다. 강점경영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차별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시간과 관심을 집중 투자하라. 집중 투자의 요령은 '매일 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매일 반복 수련하는 실천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내일 4시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 1년이 지나면 책이 한 권 나온다. 1인 기업가의 꿈을 꾼 후 13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 온 습관이다. 새로운 습관으로 실천을 자동화하면, 시간이 되어 빵이 익듯이 1만 시간이 지나면 필살기가 구워진다. 이것을 '나를 전문가로 만드는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차원이 다른 세계에 도달한 통달의 경지에 이르려면 깨어있는 시간 전부를 그 일에 투입하고 3년 정도면 일만시간이 채워져 그 일로 밥을 먹게 될 수 있다.

세 번 째는 인생에 즐거움을 더하는 것이다. 평생을 먹고 사는 일에만 전력하게 되면 그것이 모든 것이 되고 만다. 인생의 전반부가 그저 먹고 살고 아이들을 건사하기 위한 경제적 생존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삶의 진수를 즐기는 문화적 각성이 반드시 따라주어야 나이들어 너그러움과 관용이 커지게 된다.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200년 전 다산 선생은 양계를 시작한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네가 닭을 기르기로 했다니 좋은 일이다. 농서(農書)를 잘 읽어서 좋은 방법을 선택하여 실험해 보되, 색깔과 종류별로 구별해 보고, 홰를 다르게 만들어 사육관리를 특별히 해서 남의 집 닭보다 더 살찌고 더 번식하게 하며, 또 간혹 시를 지어 닭의 정경을 읊어 보아라. 만약 이익만 보고 의리를 알지 못하고 기를 줄만 알고 취미는 모르는 채 부지런히 골몰하기만 하여 옆집 채소를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만 한다면 겨우 시골의 졸렬한 사람이나 하는 양계법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산의 풍모를 흠모하게 된다. 인생의 후반부에서 조차 먹고 살기 위해 전전긍긍해야한다면 우리에게 삶을 즐기고 찬미할 시간이 언제 있겠는가 ? 이 때 쯤이면 일과 취미가 둘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때는 좋아하는 일을 아주 잘하게 되어 그 일로 밥을 먹고, 그 일로 나날이 정신적 기쁨을 얻어 갈 수 있도록 밥과 존재를 일치시킬 시기다. 닭을 키우되 닭이 경제적 수단만이 아니라 닭의 정경을 관조하고 그 정경을 읊고, 그 일을 즐기게 되는 차원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언젠가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 마테오레의 수도원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킨 수도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구도였다. 엎드려 기도하는 것만이 수련이 아니라 빵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가구를 손질하는 모든 것이 신께 나아가는 방법이었다. 나는 후반기의 직업관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영적인 부문이 있듯이 비즈니스에도 영혼이 있어야 비로소 그것이 천직이 된다. 일은 밥벌이 일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 자체라는 인식이 무르익어 가야만 후반기 삶이 의미와 보람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

'좋아하는 일을 하다 죽을 것이고, 죽음이 곧 퇴직인 삶을 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직업관이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평생 죽을 때 까지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세월과 함께 점점 더 그 일을 잘하게 되고, 그 일의 골수를 얻게 되면 그 일이 곧 내 삶의 정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월에 인생을 더 할 줄 아는 사람, 우리의 후반기 삶은 그리 되어야 한다.

(월간 '아버지'  - 인생 후반전에 대한 기고문,  2011년 1 월 21일 )

IP *.160.3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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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1.01.28 06:13:51 *.111.206.9
다산의 '닭' 예화를 들으시면서, 저를 떠올리시지 않으셨습니까? 3년간 '닭'에 몰입했는데, 이제는 화장품으로 옮겨왔습니다. 업종은 다르지만, 손님을 끌어야하고,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남달라야 하고, 특별해야 한다는 사실은 같아 보입니다. 

50. 

전 아직 10여년이 남았습니다.  
'좋은 글은 작가의 삶이 녹아있다'는 말씀. 가슴에 새기고, 피보다 진하게 살고 싶습니다. 젊은 날의 고생과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이 아름답기 보다는, 내용이 견실한, 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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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1.01.28 11:06:01 *.97.72.95
위대한 강점 경영!

내가 직업이다!

내 일의 골수, 내 삶의 정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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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12:09:16 *.12.196.159
네, 사부님! 즐겁게, 꾸준히 수련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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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1.28 13:31:44 *.30.254.21
죽음이 곧 퇴직인 삶...
세월에 인생을 더하는 삶..

그리 살아봐야 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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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희
2011.01.28 18:36:49 *.173.40.131
칼럼 글을 보고 글을 올렸다가 올리다보니 댓글이 아닌 사적 편지가 되어 댓글에서 삭제하고
편지로 다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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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현
2011.05.15 05:47:01 *.202.134.83
단군의 후예 100일차입니다.
비몽사몽으로 출첵했는데, 이 글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군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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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4 16:55:28 *.212.217.154

퇴직이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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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1:09:36 *.212.217.154

좋아하는일을 하다 죽을 것이고,

죽음이 곧 퇴직이 될 것임을 알겠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오늘도 한걸음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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