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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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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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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1일 15시 14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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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3 04:36:35 *.109.25.162

046일차 (6월 2일)

새벽의 지하철. 35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 중 가장 정신이 맑아 나의 독서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이 또한 아주 오랜 시행착오의 결과다. 우선은 피곤하니 앉고, 졸기도 하고, 가벼운 수필집을 읽기도 하며, 때론 명상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가기도 했다. 뭘 하든 너무나 좋은 시간이다. 올해 초부터는 오로지 독서만 한다. 졸음을 쫓기 위해 일부러 서서 같다. 휠체어용 장애인석에 텅 빈 자리가 늘 나의 자리다. 구석진 곳에 가방을 내려 놓고, 벽에 기대어 서서 책을 읽는다. 어떤 책이든 좋다. 금요일 양평에 내려가기 위해 차로 출근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지하철로 출근하는 평일에는 꼭 그렇게 한다. 오히려 새벽에 일어나는 것보다 더 습관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청담역에서 회사까지 그리고 회사에서 청담역까지 늘 걸어서 다닌다. 이 또한 비가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예외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걸으며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무심히 걸을 때도 있고, 또 때로는 그날의 화두를 꼭 붙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기도 한다. 퇴근길에는 회사에서 종일 시달린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내려놓는 회복의 시간으로 활용한다. 소중한 사람들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회사와 청담역 이 두 지점을 오가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이 또한 새벽기상과 지하철 독서처럼 습관의 근육을 통해 강화된 시간이다. 나의 하루를 받쳐주는 세 번째 기둥이다.

혁신과제 보고가 있어 출근 후 새벽시간은 발표자료를 정리하는 것으로 보냈다. 벼락치기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게 싫지만 그 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오전을 회의실에서 보냈다. 다행히도 상무님께서 만족하신다. 뚝딱뚝딱 나오는 장표, 누구나 보기 좋은 장표, 날 더러 사람들은 프로젝트, 장표 작성의 달인이라고 한다. 같은 부서의 대리는 '보고서 잘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쓰라고 한다. 예전에는 그저 흘려 들었는데, 내 강점에 대한 소중한 단서들이라 쉽게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나마 5년간 허송세월을 하지 않은 것이 지식과 개념을 담는 그릇에 대한 훈련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또 다른 강점이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퇴근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조스 떡볶이'라는 분식집에 가서 오랜만에 떡볶이, 순대, 튀김을 먹었다. 함께라면 뭘 먹어도 좋다. 아내가 오후에 우리만 함께 들어가는 카페에 편지를 써놨었다. 매주 수요일 내가 편지를 쓰는데, 이번 주 수요일은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 쓰지 못했다.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운 내용이다. 연구원 생활, 가끔 생기는 오해와 지금의 우리 모습 등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너무 부족하고, 이기적인 나를 믿고 배려해주는 아내의 마음이 곱다. 더 잘하고 싶다. 점점 더 아내는 나를 행동하게 하는 방법을 안다. 잔소리가 아닌 칭찬과 배려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요소임을 안다. 현명하다.

집에 들어와 <난중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나간다. 명량해전을 읽다가 자꾸만 책을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이 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존경하는 사람. 그렇게 존경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동영상으로 보고, 음악을 들으니 마치 내가 장군이 되어 달 밝은 수루에 우뚝 서있는 기분이었다. 그 고뇌, 두려움으로 인한 압박감을 견뎌내고 승리를 거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김훈의 <칼의 노래>도 읽고, 드라마도 죄다 보고 싶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여러 가지로 홀가분한 하루다. 조바심 같은 거 내지 말고, 홀가분하게 여유를 가지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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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3 18:27:31 *.124.233.1

047일차 (6월 3일)

어제 와인을 한 잔 하고 잤는데 잠을 덜 잔 것 같이 피곤하고 눈이 부었다. 양평에 내려 가는 날이라 차를 가지고 나왔다. 오는 길에 법정스님께서 육성으로 녹음하신 '홀로 사는 즐거움', '행복의 조건'을 들었다. 스님 살아 계셨을 때가 생각났다. 김세원 씨가 법정스님의 수필을 내레이션 한 <연꽃 향기를 들으며>를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스님의 글을 읽고 들으면 내 마음은 맑고 평화로워진다.

종합운동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회사까지 걸어 왔다. 청담역에서 회사로 오는 거리와 비슷하다. 매일 걷고 계단을 오른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전혀 숨이 차지 않고, 날씨가 더워졌는데도 땀이 덜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새 걷고 계단 오르는 것 말고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 두 달 전보다 약간 살이 붙었다. 지금 여기서 5kg 정도를 빼야 체질량지수(BMI)가 완전하게 정상이 된다. 좀 더 노력해야겠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난중일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읽었다. 노량해전 전날까지만 기록이 남아 있다. 당연한 일, 다음날 적의 유탄을 맞고 전사하셨으므로. 1주일간 투명인간이 되어 이순신 장군의 곁에 머물렀다. 연인과 헤어지는 것처럼 마음이 짠하고 애틋하다.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불멸의 이순신> 동영상을 봤다. 어제 저녁은 '명량해전', 오늘 점심은 '한산도대첩'을 봤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연구원 과정이 끝나면 꼭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어볼 것이다.

내가 성취를 통해 중요성을 획득하는 개인화된 재능을 갖춘 최상주의자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다. (나의 강점 테마 : 개인화, 성취자, 최상주의자, 초점, 중요성) 어제 혁신과제 보고를 통해 다시 찾은 자신감과 성취감을 자원으로 오늘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슬럼프의 계절인 6월에 슬럼프를 벗어나는 것일까? 삶이 주는 또 다른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온다. 조금씩 균형을 잡아 나가는 것 같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내일과 모레 이번 주 과제를 위해 뻐근하게 공부를 할 것이다. 다행히 아내의 자격증 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아 주말 내내 함께 공부할 것 같다. 함께 할 수 도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난중일기>를 읽고 난 다음인지, 수련일지의 문체가 <난중일기>의 문체를 약간 따르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내 삶, 내 행동에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 깊은 향기에 흠뻑 젖어 있다 나오는 기분이다. 한 번쯤은 남해에 있는 한산도를 찾아, 장군님이 하셨던 것처럼 수루에 올라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시름에 젖어보고 싶다. 드디어 기다리던 융을 만난다. 다음주가 기대된다. 많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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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5 05:01:09 *.109.24.98

048일차 (6월 4일)

양평에 내려갔다. 동생네를 불러다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종의 가족회의다. 동생네가 형편이 어려워져서 부모님 댁으로 들어와 살겠다고 한다. 부모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동생네도 그렇고 생각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모두가 '남의 돈'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보기엔 코웃음을 칠 수도 있는 얼마 안 되는 그 금액이, 여리고 가난한 나의 가족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부모님께서는 갖은 지병과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매일 강에 나가 일을 하시지만 생활비 수준에 머무를 뿐 늘어나는 이자를 막을 길은 없다. 그런 부담과 짐이 고스란히 내 어깨에 올라와 얹힌다.

문득 지금 하고 있는 연구원 과정이 나만을 위한 사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 연구원 활동이야 말로, 타성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굵은 기둥 중 하나이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연구원 해외 연수'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결정을 내린 후 계속해서 마음이 침울해 지려는 것을 참고 있다. 하나를 극복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솟아나고, 그 문제를 극복하려면 또 다른 문제가 솟아나는 식이다. 물론 머리로는 그러한 시련이 나를 더 강하게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성장의 통증을 감내하는 나의 몸과 마음은 지치고 고단하기만 하다.

자존심, 오직 그 놈의 자존심은 뻣뻣하게 살아 있어서 지금까지 나를 포기 하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게끔 만든 것 같다. 서울로 올라와 그 길로 아내와 북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아내와 나 모두 어깨가 무거웠지만, 공부만큼은 함께 몰입해서 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쌍문동 처가에 갔다. 잠깐 TV를 보았는데 '사랑의 리퀘스트' 였던 것 같다. 두 어린 남매가 있는데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였다. 물론 행복은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는 마음 속 고통의 강도는 저기 나오는 아버지와 아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며 다시 기운을 차리곤 한다. 내가 목이 저릴 정도로 올려다 보는 위의 세계, 부와 명예로 점철되는 그런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 저렇게 생로병사애오욕이 고스란히 드러난 고통의 바다를 살아가는 삶이 진짜 중생의 삶, 사바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나의 머리는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해답을 이야기 한다. '행복은 밖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있다' 행복이 상대적인 것이라 여긴다면 위를 올려다 보지 말아야 한다. 늘 그들에 비해 나는 불행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웃을 보며 살아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가지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게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들과 정을 나누어야 한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 정말 과연 적은가? 그렇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탐욕 때문이다. "분수 밖의 욕구인 탐욕은 목마를 허욕일 뿐 근원적으로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본래 내 것이란 없는 법이니깐." 역시 스님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마음으로 배우고 따를 수 있는 삶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진짜 행복이다. 자신의 마음 속의 커다란 들보는 보지도 못하면서 남의 눈에 낀 작은 먼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속된 자들의 말은 그래서 듣고 싶지 않다. 마음은 인식의 세계를 넘어 드넓은 이상과 진리의 세계를 향하라. 그러나 세속의 삶도 결코 무시하지는 말자. 이 두 개의 아이러니 한 세계는 본래 둘이 아닌 하나이다. 그 하나임을 가슴으로 품을 때 나는 비로소 다음 단계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 저기 가는 곳 마다 6월의 붉은 장미가 만발해 있다. 행복은 그 향기 속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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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6 04:43:27 *.109.24.41

049일차 (6월 5일)

새벽에 일어나 모닝페이지와 수련일지 이렇게 두 꼭지의 글을 썼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휘갈겨 쓰는 글인데도 쓰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주말은 몸과 마음을 놓아주는 쇄신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에게 쇄신의 시간이라야 평소보다 2~3시간 더 눈을 붙이는 일이 전부다. 아내가 차려준 맛있는 아침을 먹고, 함께 북 카페를 찾았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하루 3천원이면 종일 이렇게 행복한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는데, 그 동안 주말에 무엇을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학창시절, 그저 무료하게 흘려 보낸 방학이 사무치게 아쉽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렇게 흘려 보낸 시간이 지금의 간절함을 빚었을 수도.

이순신에 대하여 알면 알아갈수록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참으로 힘겨운 시절을 살았다. 중요한 것은 힘겨운 시절이 아니다. 힘겨운 시절, 하루도 버티기 힘든 그 시절의 하루하루를 살아간 이순신이다. 그렇게 그는 전란의 한 가운데서 하루 하루를 살았다. 전쟁의 한 가운데에 서면 어떻게 될까? 내 한 목숨 부지하고자 허둥지둥 도망 다니기 바쁠 것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아주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평화의 시대에는 깊숙이 가라 앉아 있는 인간의 이런 어두운 본연의 모습이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러한 전란의 한 가운데서도 이순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헤아릴 줄 알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했으며, 자신의 어떤 위치에 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앉아 있는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원균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순신은 뜸 아래 앉아, 때로는 수루에 기대어 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다. 심지어는 꿈을 해석하고, 점을 치는 행위를 통해서까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끊임 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이순신은 자신의 중심을 지킬 수가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을까? 조국에 대한 사랑, 군왕과 백성에 대한 사랑, 불굴의 의지. 그러나 나는 이런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왜 이렇게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물론 그 또한 타고난 천재일 수도 있고,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더욱 더 근본적인 내적 동기이다. 어떤 계기나 자극, 혹은 내적 통찰이 그로 하여금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하게 한 것일까? 뭔가 비밀 가까이에 다가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 열쇠를 찾으면 나 또한 내 꽃으로 피어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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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04:28:13 *.109.24.41

050일차 (6월 6일)

휴일이라 쉬었다. 늦잠도 자고 빈둥빈둥 게으름도 피웠다. 이번 주는 오프라인 수업이 있는 주고, 읽을 책의 분량과 깊이도 만만치 않아서 여유를 부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나는 강요에 의해 동기부여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스스로에게 강요할수록 청개구리처럼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강요하지 않았다. 짬짬이 융과 만났다. 그는 참으로 깊은 사람이다. 내가 아는 한 자신의 마음 속에 가장 깊이 침잠하는 모험을 감행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예전에 융에 관한 자료를 찾으며, 어떤 목사가 그를 가리켜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무당'이라고 폄하한 글을 본적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기를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융은 그러한 자신 속의 또 다른 인격에게 결코 지배당하거나 장악 당하지 않았다. 비단 융뿐만 아니라 우리도 내면 속에 수많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러한 목소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있어 그것이 나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격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융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여행의 탐험과 목적지가 외부의 물리적 장소가 아닌, 마음의 우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전엔 아내가 닭 가슴살 스테이크를 해주어서 맛있게 먹었고, 소화도 시킬 겸해서 베스킨라빈스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기도 했다. 포장 속에 드라이 아이스가 있었는데, 대접에 물을 받아 넣고 넣으니 부글부글 흰 연기가 나왔다. 어린 아이처럼 신이 났다. 그렇게 빈둥거리다가 책 읽기를 반복하다 보니 하루가 금새 지나갔다. 아내와 수락산 입구에 있는 두부요리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 날씨가 참 예술이었다. 연구원 과제 그리고 아내의 자격증 시험준비만 아니었다면 어디로 훌쩍 놀러 가면 참 좋았을 날씨다.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반려가 있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은 인생의 사족이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지금 당장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아무런 판단하지 말고 해라. 생각이 많은 내겐 그것이 최선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앞이 캄캄하면 우선 주어진 일을 하고, 묵묵하게 한걸음씩 걸어가라. 운명인 것이다. 길을 아는 것도 운명이요, 모르는 것도 운명이다. 모르는 길을 걷다 우연하게 찾아온 깨달음을 맞이하는 것 또한 운명이다. 내가 운명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강요와 압박이 아닌 자유로운 침묵이다. 그냥 걷게 내버려 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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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18:53:06 *.124.233.1

051일차 (6월 7일)

어제 불규칙적으로 쉬어서 바이오리듬이 깨진 것 같다. 잠이 부족하지 않은데, 종일 피곤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마와 눈 주위가 뜨끈뜨끈하다. 융과의 만남은 벅차다. 그저 가슴이 벅차 오른다. 진짜 자아탐색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바로 융의 자서전인 <기억 꿈 사상>이고, 오쇼라즈니쉬 자서전이다. 두 자서전의 공통점은 사실적이고 서사적인 전개가 아닌 의식의 흐름, 마음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마치 내가 그들의 정신 세계로 빙의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오전 내내 상무님의 프로젝트 리뷰가 있었다. 내 과제는 지난주 합격 점을 받아 수정사항이 많지 않았다. 몇 마디 수정사항을 이야기 하려고 3시간 내내 회의실에 갇혀 있었다. 어제 하지 못한 자발적 빈곤을 하느라 점심 시간에 사무실에서 융을 만났다. 사람들이 들어 올 때쯤 23층에 올라가 잠시 앉아 눈을 붙였다. 조금 개운했지만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2시부터 5시 넘어서 까지 혁신 사무국 리뷰가 있었다. 다행히 내 과제는 15분만에 리뷰가 끝났다. 역시나 오전처럼 3시간을 회의실에 갇혀 있었다. 수첩에다 계획도 좀 세우고 연구원 오프라인 과제 초안을 끄적거렸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의실에 있다가 올라오니 진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짬을 내어 연구원 과제를 하려고 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역시 기운이 빠지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는 단순한 일이 최고다. 밀린 7기연구원 단군프로젝트 출석부를 작성했다. 지난주에 작성하려다 3주차 이후 출석부 파일이 사라져 허무해 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게다가 연구원 과제와 혁신과제 등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많아 작업을 못했다. 딱 지금이다 생각하고 작업했다. 별것 아닌 단순한 작업이지만 뭔가 완성하고 나면 뿌듯하고 성취감이 든다.

내일 6기 선배들을 만나기로 하였으나, 다들 오프라인 과제와 버거운 과제도서로 꺼리는 듯 하여 약속을 미루었다. '자발적 빈곤의 날' 저녁은 언제나 포장마차와 소주가 생각난다. 배도 고프고 사람도 고파져서 그런 것 같다. 처가 근처 우이천 조그만 다리 위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는데, 거기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그저 그때 마음이 맞는 벗과 만나 TV에 나오는 것처럼 홀짝 한잔 마시고 "카~" 하고 외치고 국물 한 수저 떠먹는다. 요즘 그런 낭만이 많이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일찍 자고 나면 리듬을 회복할 것이다. 늘 그랬다. 빨리 퇴근해서 융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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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9 04:28:43 *.109.80.221

052일차 (6월 8일)

어제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었다. 별것도 아닌데도 아내는 무진장 행복해 한다. 그런 아기 같은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 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데 시련과 고난은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 이것도 내가 가진 복이라면 복이다. 고랭지에 있는 꽃이 온실 속 꽃보다 훨씬 선명하고 건강하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 자생력도 강하다고 한다.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내고 비범함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난 아주 행복한 축에 속한다.

일찍 잠이 들어서 일찍 일어났다. 오늘 새벽의 화두는 이번 주의 오프라인 과제다. 생각하기에 따라 어려운 과제일수도 쉬운 과제일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 즐기라 하셨으니 즐기며 자료를 찾고, 즐기며 초고를 적어본다. 사람들이 붐비기 전의 지하철 그리고 출근길과 사무실의 고요가 참 좋다. 아니 난 새벽의 적막함을 사랑한다. 어제 '자발적 빈곤'을 실천하고 가볍게 아침을 먹고 나와서 그런지 몸이 가볍고 경쾌하다. 이 가벼운 느낌이 너무나 좋다. 그래서 절대 다시 살찐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융과의 만남이 계속된다. 선배들이 써 놓은 리뷰도 몇 개 읽었는데, 재미있는 내용 중 하나가 융의 여성 편력이었는데 의외였다. 프로이트가 철저한 금욕주의적 삶을 살았던데 비해 융은 조금 자유분방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융에게 배우고자 하는 것은 내면의 세계를 탐색하는 그의 끊임없이 깊은 탐구정신이지 사생활이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예전에 승완이 형이 분석심리를 공부하다 악몽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승께서 마스터 없이 깊이 들어가지 말라 하셨다. 명심할 것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여의치가 않다. 저녁엔 처가에 들러 새로운 가족인 처남의 아이 얼굴을 보았다. 처남을 많이 닮았다. 아이는 늘 사랑스럽다. 묵묵하게 나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결국엔 발을 내딛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누군가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 남이 태워주는 차를 탈 수도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지만 엄연한 의미에서 그건 내 삶이 아니다. 나의 땀과 나의 노력이 베어 있는 나의 한걸음, 한 땀으로 이루어진 것만이 진정한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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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0 05:06:20 *.109.52.24

053일차 (6월 9일)

새벽에 꿈을 꾸었다. 무척이나 신기한 꿈이었다. 융을 읽어서 그런 것일까? 기억해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꿈 속에서 꿈을 꾸고 꿈을 깨고 꿈을 기록했다. 꿈의 마지막이 두렵고 무서웠다. 처음엔 작은 천둥번개로 시작했다. 이것은 아마도 어젯밤 천둥번개였던 것 같다. 종국에는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처럼 길가에 있던 순간 어마어마한 폭음과 천둥번개와 함께 안내 방송이 나오며 태풍이 나를 휩쓸고 갔다. 고통 같은 것은 없었고, 태풍과 물살이 덮친 후 깨었다. 나의 두려움, 그리고 무기력하게 휩쓸리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특이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회사사람들이었고, 아내와 가족들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친밀감 있게 지내는 연구원 들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나의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나미에 휩쓸려 간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나의 영향력이 개입하기 힘든 무기력함 같은 것을 뜻하는 것이다. 신기하게 회사사람들도 함께 지내는 부서 사람들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아닌 인사부서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이 꿈은 내가 부서 이동을 소망하고 있고, 회사에서 무기력함을 지속적으로 체험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꿈이 아닐까? 인사부서 사람들은 어떤 계시가 되어주려고 하는 것일까? 꿈 속에서 그들은 어떤 공부(아마도 컨설팅 쪽이었던 것 같다)를 계속 추천했다. 아무튼 마지막에 쓰나미에 무기력하게 휩쓸리는 장면은 두렵고 슬픈 장면이다. 무엇보다 꿈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것도 신비롭다.

이것은 융이 꿈이라는 무의식으로 이르는 세계의 열쇠를 내게 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꿈이 생각날까? 모르겠다. 꿈은 상징이다. 어떤 음흉한 의도라기 보다는, 성적인 충동이라는 암울한 의도가 아닌 무한한 에너지의 우주인 무의식이 나의 자아에게 보내는 어떤 메시지이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신비로운 체험이며, 종종 이런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나쁘지는 않다.

꿈 해몽을 찾아보니 최근 나의 근황과 너무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신기했다.

『꿈속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나 천재 지변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것은,현실의 탈피, 새로운 계획,선택이나 결정의 기회, 새로운 환경,미숙함의 발전, 이러한 것들의 상징으로, 천재 지변으로 땅이 흔들리거나 땅이 꺼지는 것은, 현재의 복잡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들이 있을 것이며 혼자서는 해결하기 거북한 일이나 문제도 있거나 생길 것이며, 천재지변으로 강이 터지거나 산이나 언덕이 변형되거나 무너지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현재의 부족한 부분들을 발전 시키기 위해 색다른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천재 지변으로 인하여 몸에 벼락을 맞거나 상처를 입는 것은, 적성에 맞는 진로를 결정하거나 다방면의 관심 있는 일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기회가 있을 것이며, 또한 어떠한 일에서 선택 받거나 이에 상응한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올 것입니다, 천재지변으로 특정한 곳에 고립되거나 혼자서 길을 찾거나 잊어버리는 것은, 자의건 타의건 새로운 환경에 접할 기회가 있거나 원하지 않는 일에 대가 없는 봉사를 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고, 천재지변으로 자신이 죽거나 누군가 죽는 것을 보는 것은, 미숙함 들이 발전하여 희망 있는 일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질것이고 또한 신체가 강건하여 신변에 질병이 있다면 쾌차하여 무병할 것입니다, 천재지변을 사람들과 같이 피하거나 위험에 대치하는 것은, 좋은 인연으로 좋은 만남이 있을 것이고 뜻을 같이 할 이웃이나 벗도 있거나 생기게 될 것입니다. 대략 이것들이 천재지변의 상징입니다.

심리적으로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떠한 일에 집착해야 하거나 아직은 자신이 원하는 진로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거나 이러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현재의 잡다한 것들을 정리해야 할 때, 또한 현재의 복잡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천재지변을 보거나 자신이 이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것으로 잠시 자신의 계획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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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1 04:52:07 *.109.52.96

054일차 (6월 10일)

어제 마시고 잔 와인의 뒤끝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래도 모닝페이지는 결코 빠뜨릴 수 없다. 막상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니 지끈거림을 잊을 수 있었다. 무엇을 써내려 가는지도 모른 체 마구 써 내려갔다. 융의 '만년의 사상'을 접하며 출근했다. 그의 드넓고 깊은 삶과 집요한 탐구정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나의 그릇이 너무 작음을 깨닫는다. 예전에 법정스님의 수필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의 깨달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은 나이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융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심오하게 회상할 수 있었던 것은 만년에 얻은 깨달음 때문이리라. 그의 어린 시절도 우리처럼 철부지였을 것이고,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거쳤을 것이다. 다만 그와 우리가 다른 점은 그는 우리가 걷고자 하는 여정을 먼저 걸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천복을 깨달았고, 낙타의 견딤을 극복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자기 실현'이라는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가 주장한 무의식의 자기 실현을 달성한 셈이다.

오늘은 출근 후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7시 전후로 도착하면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오늘은 23층에 올라가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사람도 없고 아주 조용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보통 8시 전후로 사람들이 출근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왔다 갔다 오가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흘끔 흘끔 들여다 보는 낯선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서서히 비춰오는 햇살과 고요한 독서. 이렇게 좋은 장소를 왜 이제야 찾아냈을까? 모든 것은 이처럼 다 때가 있나 보다. 나는 이 때를 좀 더 당기는 일을 하고 싶다.

점심에는 상무님께서 혁신과제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점심식사로 채식 뷔페를 사주셨다. 이제는 건강한 식단이 너무나 좋다. 나중에 꼭 아내와 찾아와야겠다. 오늘은 부서에서 야구관람을 하고 회식을 한다고 한다. 술을 안 마신지는 꽤 되었고, 즐겁게 관람하고 자연스레 어울러야겠다. 내일은 오프라인 수업이 있고, 일찍 사부님을 모시고 출발해야 하니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야겠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들어가야 책의 남은 부분을 읽을 수 있다. 내일이 너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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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2 11:33:58 *.192.54.157

055일차 (6월 11일)

어제 팀 회식으로 야구를 보고 밤 12시가 넘어서 귀가했다. 그래도 4시에 일어났다. 오늘 오프라인 수업이 있는 날이고, 사부님을 모시러 가야 하기 때문에 다시 잠들었다 늦게 일어나면 큰 일이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오늘 발표자료를 한 번 읽어 보았다. 7시 30분까지 사부님을 모시러 가면 되었는데, 여유 있게 6시 반에 출발했다. 휴대폰의 네비게이션이 속을 썩여서 길을 잘못 들어 2번을 빙빙 돌았다. 수업장소로 출발한다는 훈이형님과의 통화 덕분에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일찍 출발한 덕에 늦지 않게 사부님을 모시고 출발할 수 있었다.

소풍 가듯 설레었다. 아내도 함께 갔으면 너무나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 안에서 사부님께 융의 여성편력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사부님께서 "너는 여성 편력 없니?"라며 장난스레 물으셨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동시 진행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오프 수업을 하시며 사부님께서 동료들에게 장난 식으로 내 여성 편력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재미있게 몇 편 말씀드릴 걸 그랬다. 아마도 뻣뻣이 굳어 보이는 내 이미지를 야들야들해지게끔 해주시려는 사부님의 깊은 뜻이 있으셨을 게다.

양평 소나기 마을 원두막 아래에서 진행된 수업은 그야말로 '행복한 에너지 장' 그 자체였다. 내가 꿈꿨던 풍광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풍광이다. 삶은 이렇듯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답다. 내 발표와 함께 이어지는 고마운 사우들의 피드백, 사부님의 코멘트. 내가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동료들의 발표를 눈을 감고 들었다. 그들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보기 위함이었다. 소나기 마을 근처에서 팬션을 하는 중학 동창 관배가 동생 선배와 함께 점심 도시락을 가져다 주었다. 사부님 인터뷰 온 '영 삼성' 친구들도 함께 점심을 했다. 텃밭에서 직접 키운 푸성귀들로 이루어진 너무나 맛깔 난 점심 식사였다.

오후가 되면서 식곤증으로 무척이나 나른해 졌다. 꾸벅 졸다가 일어나 원두막 아래 서서 수업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잠을 3시간 밖에 못 잤다. 저녁 6시가 넘어가자 체력이 바닥난 것 같았다. 눈이 침침해 지고 배가 명치가 아팠다.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새삼 느껴졌다. 어디에 잠시 들어가 눈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7시쯤 관배네 팬션으로 가서 미나의 발표를 마저 듣고 수업을 마무리 지은 뒤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1기 재동 선배와 6기 미옥 선배 가족이 합류했다. 한껏 넓은 잔디밭 마당에 앉아 하는 바비큐 파티는 정말 운치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과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해가 저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이 차 올랐다. 훈이 형님께서 수업 마무리 멘트로 우리의 모습이 점점 차오르는 저 달과 같다고 시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런 평화로운 순간에도 내 가슴 속에는 끊임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디서 그런 감정들이 흘러 들어오는 것일까? 아마도 끊임 없이 전진하려고 하는 지나친 추진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여백이 내겐 필요하다. 어린 시절 들었던 영화제목이 하나 생각이 난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그렇다. 내게 필요한 것은 삶의 여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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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04:15:51 *.109.53.114

056일차 (6월 12일)

버겁다. 이 생각이 오늘의 첫 생각이다. 어떻게 오늘의 난관, 이번 주의 난관을 헤쳐나갈 것인가? 1천 페이지 분량의 책이다. 산술적으로는 하루 200페이지씩 읽으면 된다. 그렇게 읽지 못하거든 잠들지 말 것. 그리고 칼럼도 써야 한다. ~해야 한다는 말이 내 삶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7월 한 달을 잘 견디기 위해서는 이번 주와 다음 주를 잘 보내는 것이 무지 중요하다. 가볍고 경쾌하게, 그리고 즐기면서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좋다.

대신 지나치게 바싹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로 자신 꽉 채워 전전긍긍 하지는 말 것. 지금 나는 하루라는 작은 승리의 조각들을 모아 한 주의 승리, 한 달의 승리, 1년의 승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제법 긴 기간의 승리를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럴 때 일수록 단순하고 간소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을 빼먹는다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형식과 비본질적인 것들을 털어내라는 의미다.

이번 주는 여유를 잠시 반납해야 하기도 할 것이다. 여유 있는 점심시간도 반납해야 할지도 모르고, 체력 비축을 위해 새벽에 조금 더 잠을 자는 일도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무리 바쁘고, 쫓기는 분주한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마음 속 여유는 잃지 말 것. 나는 어린 왕자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버섯과 같이 바쁘기만 한 삶은 살고 싶지가 않다. 자꾸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어깨에 들어가는 힘은 긴장과 부자연스러움을 알려주는 행동 지표다. 서둘러 가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간다. 내 숙제는 모순과 역설을 끌어 안는 것.

오늘 하루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이번 한 주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무척 바쁜 타이밍에 여백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재미있는 주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디에도 내가 심각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울 것이고, 땀도 많이 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볍게 덜어내고 또 덜어내야 한다. 경박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 밥을 줄이고, 입 속에 말을 줄이고, 마음 속에 생각을 줄이라는 뜻이다. 가볍게 가다 보면 버거운 길도 완주할 수 있다. 불필요한 짐은 내려놓고 가볍게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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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19:15:14 *.124.233.1

057일차 (6월 13일)

오늘 새벽은 이번 주 연구원 과제 도서의 두께의 압박에 눈을 떴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전날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리뷰 과제를 마무리 지었다. 이번 주 도서가 1천 페이지 이상의 분량이니 적어도 하루에 200페이지 이상은 읽어야 칼럼과 리뷰를 제 때 완료할 수 있다. 내용이 심하게 난해하지는 않았지만, 시대를 달리한 인물이고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읽는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자발적 빈곤'을 위한 레몬액 2통을 만들고 책을 읽기 위해 서둘러 23층으로 올라갔다. 아뿔싸! 오늘 23층에서 경영회의가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다시 13층으로 내려와서 구석진 회의실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속독을 의식하니 남는 내용이 없었다. 1시간 반이 금새 지나갔다. 자리에 돌아와 지난주 도서 리뷰를 마무리 지었다.

지난주 오프수업 때 훈이 형님과 재경 누나 조언이 생각나서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회사 사람들이 오지 않을 만한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40분 가량 책을 읽었다. 깜빡 졸면서 읽었는데, 생각만큼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직 책에 대한 워밍업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사무실에서 읽을 때 사람들이 뒤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의식하며 부담스럽게 읽는 것에 비하면 훨씬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웠다.

오후에 짬을 내어 오프라인 발표 자료와 북 리뷰를 정리해서 올렸다. 쉽지 않은 한 주가 될 것이다. 7월의 <서양철학사>를 위한 예행연습이라 여기고 바싹 긴장하고 한 주를 임한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이것이 내가 즐기지 못하고 전투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왜냐하면 내가 연구원 과제를 하며 추구하고자 하는 과제의 질적 수준과 나에게 주어진 정신적 시간자원이 거의 대등하기 때문에 여백이 부족하다.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벼랑 끝에 몰아 전투적인 마음이 되도록 몰아 붙인다. 힘겹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 이게 나의 스타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퇴근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일찍 잠들었지만 이번 주는 잠을 조금 줄여서라도 책 읽는 시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 같다. '자발적 빈곤'으로 배도 고프고 기운도 달릴 것이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냐'라고 생각하니 그냥 웃음이 난다. 나는 지금이 나비가 번데기 속에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어떤 날개를 달고 새롭게 태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스스로가 이 고행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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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17:52:22 *.124.233.1

058일차 (6월 14일)

모닝페이지를 쓰고, 괴테를 읽었다. 융이 자신의 내면을 깊게 탐험했다면, 괴테는 사람과의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한 주는 배 멀미를 해가며 임진왜란을 체험했고, 또 한 주는 마음의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 보았다. 그리고 이번 주는 18세기 독일로 가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경계선에 서본다. 독서는 여행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제서야 독서에 매력에 빠졌다는 사실은 참 아쉽고도 아쉽다. 그 길고 길었던 방학과 학창시절에 수 많았던 여백을 나는 무엇으로 채웠는가?

업무시간 중 틈틈이 간추린 서양역사를 찾아 읽었다. 나에게 서양은 그저 유럽이라는 뭉뚱그려진 이미지였다. 그런 유럽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등으로 쪼개져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학창시절 나는 유럽여행은 꿈도 꿔보지 못했다. 운 좋게 공짜로 중국에 2번 다녀온 것이 전부다. 가능하다는 마음만 먹었더라면 스스로 자생력으로 유럽 배낭여행쯤은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의지력이었다면 말이다. 그때는 뭐가 그리 버겁고 무기력하기만 했을까?

그렇게 물쓰듯 흘러가버린 시간이 눈물 날 정도로 사무치게 아쉽게 다가온다. '그 때로 다시 돌아 간다면' 나는 이런 류의 사고를 싫어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사무치게 난다. 왜 갖춰진 집의 어른들이 큰 돈 들여 가며 유럽 여행과 어학 연수를 보내려 하는지 이해된다. 자식들의 눈을 트이게 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했던 나의 대학시절에는 시야를 넓혀줄 선배와 스승도 없었고,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책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아쉽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이제 30대 초반이다.

10년 후 마흔이 넘었을 때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나의 전성기다. 꿈을 나누는 벗들과 우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배우며, 높은 경지에 이른 스승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독서를 무지막지하게 하고 있다. 이는 곧 내 삶의 혁명을 위함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싶다. 좀 더 많은 자유를 가지고, 내게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지금 하고 있는 이 후회를 하지 않도록 내 삶을 불태우고 싶다. 죽을 때 오늘 같은 후회 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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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17:55:48 *.153.37.156
너무나 빡빡한 일정이 돌아가는 것을 엿보다 보니
따뜻한 저녁 한 끼 같이 하자는 말을 쉽게 못 꺼내고 그냥 돌아섭니다.

여유 될 때, 연락 주길 기다리고 있을께요.
Adios my 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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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04:19:53 *.109.80.163
형님! ^^
다음주 정도에 시간 괜찮으시죠?
할 이야기들이 참 많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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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04:18:59 *.109.80.163

59일차 (6월 15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에 눈을 뜨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새벽에 몇 번 뒤척였기 때문일까? 올 한 해, 그 중 최근이 내 삶에서 가장 힘겨운 시기인 것 같다. 아마도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가까워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를 읽고, 역사를 읽고, 영웅을 읽는다. 이 모두의 공통점은 바로 갈림길이다. 내 고민의 본질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선택의 문제인가? 포용의 문제인가? 문제의 본질이 규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괴테를 읽는다. 분량에 대한 부담감으로 속독하려다 보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중력이 떨어진다. 18세기에 대한 배경지식 부족으로 당시 시대상황과 문화, 예술 등에 관한 내용이 머릿속에 형상화 되지 않는다. 처음이고 생소하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8월에 <이탈리아 여행기>와 단테 <신곡>, 겨울에 <파우스트>를 읽고 나면 왜 스승께서 이전 연구원 과정에 없던 괴테를 새롭게 올해 추가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승께서는 자기계발의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면 18세기에 이르고, 거기서 낭만주의와 만나게 되며 그 한 가운데에 괴테가 있다고 하셨다. 그 본질이 <파우스트>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어떤 대사에 나와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시와 진실>에 이어 괴테 전집을 섭렵하고 싶지만 스승의 배를 타고 항해 중이니 개인 행동을 할 수도 할 시간도 없다. 지금 읽고 있는 <시와 진실>이라도 충실하게 읽을 것.

이틀째 점심을 아내가 준비해준 샌드위치로 해결했다. 중간에 배고프면 싸간 바나나 2개와 두유 한 잔을 마신다. 나가서 푸짐하게 먹는 점심에 비해 부실하지만 몸은 한결 가볍고 경쾌해 기분이 좋다. 빨리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 더 많이 의미 있는 장면을 포착하는데 주안점을 두도록 한다. 죄 다 담는다는 것은 과욕이고 단 몇 개의 장면이라도 좋으니 현재의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 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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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17:24:09 *.124.233.1

060일차 (6월 16일)

잠시 쉬기 위해 23층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즐기면서 글을 써본 게 언제더라?' 예전엔 삶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내적으로 성찰하는 마음 편한 에세이를 가끔 쓰곤 했었다. 처음 '김경인 닷컴'을 만들고 'Essay' 메뉴를 만들어 쓰고자 했던 글도 그런 글이었다. 법정스님 같은 수필을 쓰고 싶었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수필의 정의는 '붓 가는 데로 쓰는 글'로 기억된다. 매주 쓰는 칼럼, 매일 쓰는 수련일지, 이 모두가 수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의 글들이 독기 가득 머금은 투쟁적인 글들이 되어가고 있다. 글은 내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니, 내가 처한 상황이 투쟁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게도 하루 중에 맑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새벽에 출근하기 전 아기처럼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올 때를 기다리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을 볼 때,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며 길 사이에 있는 나무와 풀 내음, 흙 내음을 맡을 때 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지하철 뚝섬유원지에서 청담으로 가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찬란하게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을 바라볼 때도 경이로움을 느낀다. 또 있구나. 잠시 짬을 내 쉬기 위해 회사 건물 23층에 올라 녹음으로 가득한 선릉공원과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시내와 그 사이를 흐르는 한강 물줄기를 바라볼 때 내 마음은 성성해진다. 지난 번에는 회사 옆 포스코 건물 안에 있는 커다란 수족관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열대어들을 바라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저녁 6시 전후로 해질녘 노을을 보며, 소혹성 B-612에서 마흔세 번의 해넘이를 바라봤을 슬픈 어린 왕자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어깨가 많이 위축되고 경직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몸과 마음은 따로 놀지 않는다. 마음이 뭔가에 쫓기고, 불편해 하고, 두려워하면 몸은 위축되고 경직된다. 지난 몇 달간 나의 시선은 계속해서 어둡고 부정적인 곳만을 향해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중일기가 떠오른다. 자주 아파 괴로워 하고, 가족을 그리며 눈물짓던 이순신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 날들을 하루하루 살아냈다.

나는 매일 무엇을 그리워 하고 있는 걸까? 사랑, 자유, 돈, 명예 이런 것들일까? 내 머릿속은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얽히고 설킨 개똥 이론들로 가득하고, 마음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름으로 가득하다. 불교에서는 이것이 삶이라고 한다. 사바세계, 고통의 바다, 참고 견디는 세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딱 참고 견딜 수 있을 만큼 괴로운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늘 아름다웠던 순간을 그리워하고, 아름다울 미래를 꿈 꾼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아름다운 순간과 맞닥뜨리고 싶다.

아내와 함께 거닐던 마우이 해변가와 구름 속 할레아칼라 하늘 길, 제주도 성산 일출봉의 해넘이 풍경. 떠올림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순간들이다. 그렇다. 나는 내 삶을 더 많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것이 내 꿈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더 많은 아름다운 경험과 더 많은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그 날이 언제인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내가 투쟁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서 빨리 그날을 오늘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 빨리 낯선 곳에서 설레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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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8 13:07:30 *.109.53.5

061일차 (6월 17일)

어제 썼던 글 중에 새벽 지하철로 한강 다리를 건널 때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 했던 게 생각나서 오늘 더 유심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너무 찬란하고 아름다워서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정리를 하고 곧장 23층으로 향했다. 딱 한 시간 반 괴테를 만났다. 보통사람의 2배 이상의 삶을 산 것 같은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보다 더 변화무쌍한 시대, 세계사의 굵직한 일들이 겹치는 시대에 태어나 남보다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더 많이 사랑했다.

오늘 변경연에 첫 책 출간 글이 또 올라왔다. 이곳에서는 책 출간을 정신적 출산이라 표현한다. 나보다 세 살이 어린 서른의 친구가 책을 써냈다. 물론 어떤 특정 전문분야에 관한 책이 아닌 자신의 드라마 같은 삶을 책으로 써냈다. 대단한 정열을 가진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늘 내가 놓치지 않으려는 화두 '나는 누구인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모험으로 이끌었다. 열악한 학벌과 스펙을 극복하고 외자계 회사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또 그곳에서 과감히 나와 세계 여행을 떠났다. 자신의 삶을 건 것이다.

저마다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삶이라지만, 겁 많고 소심하며, 늘 힘들다 징징거리며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무엇이 그를 절박하게 만들었으며, 모험을 떠나게 했을까? 타고난 도전정신과 모험정신 때문이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중심에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망설인 길목에서 그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그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한 다른 선택을 했던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을 책으로 쓰려고 한다면 내 삶을 드라마로 만들어야 한다. 드라마란 무엇인가? 극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영화 같은 삶이 아니겠는가? 영웅의 여정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로 모험을 떠나고 거기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며, 시련과 고통을 겪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 또한 이미 하나의 공식으로 내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평범하고 무난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말에 동의 할 수 없다. 죽을 때 평범해서 좋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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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10:46:11 *.192.54.157

062일차 (6월 18일)

아직 책을 다 마무리 짓지는 못했지만, 읽던 책을 잠시 접어 두고 칼럼을 썼다. 꽤 오랫동안 품어온 화두였는데, TOPICA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글의 분량이 걱정되었다. 그래도 오전 중에 마무리 짓겠다는 일념으로 구상과 초고를 썼다. 중간에 막막하여 생각도 정리할 겸 집 근처 근린 공원을 3바퀴 정도 돌았다. 공원에 아름답게 늘어선 녹음 짙은 플라타너스, 그리고 그 푸른 잎 사이로 반짝반짝 비추는 햇빛 아래 푹신푹신한 산책로를 걸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새벽의 풀 내음과 풋풋한 흙 내음이 내 마음을 깨운다.

그렇게 1시간여를 걷고 집으로 돌아와 서너 시간 내리 글을 써내려 갔다. 언제쯤 글을 다 쓰고 난 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은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다. 그렇게 칼럼 쓰기를 마무리 짓고, 책의 여남은 부분을 읽어 나갔다. 오늘은 북 카페를 가지 않고, 시원한 옷차림으로 집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공부를 했다. 졸음이 와서 독서대를 가지고 문밖 난간에 올려 놓고 서서 책을 읽었다. 햇빛으로 눈 부시면 다시 들어와 책을 읽었다.

오후 2시에 아내가 4시에 있는 자격증 시험을 보러 나갔다. 함께 나가 버스를 기다리고 출발하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책의 남은 부분을 다 읽고 나니 4시가 되었다. 휴식을 취할 겸, 집 근처 허브 용품 판매점에 가서 워머와 허브오일, 초를 사왔다. 값이 꽤 나왔는데, 이런 곳에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 맑은 허브 향기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것만으로 값어치는 할 테니 말이다. 필사를 하려다 집중이 되지 않아 잠시 쉬는 사이 아내에게 시험이 끝났다는 전화가 왔다. 시험이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한다.

노원에서 아내를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장모님께 연락이 와 처가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노곤해져서 작은 방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눈을 뜨고 나니 밤 9시가 되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도 한 주 과제의 꽃인 칼럼을 써 마음은 편안하다. 내일 새벽 집중해서 리뷰를 작성하고, 필사를 마치면 끝. 책이 두꺼워 한 주 내내 점심을 반납하고 읽는데 공들이 보람이 있다. 어서 빨리 워머를 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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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0 04:51:48 *.109.26.182

063일차 (6월 19일)

새벽에 과제 고민으로 잠을 조금 설쳤다.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리뷰 중 새롭게 지어내야 하는 부분을 끝마치고 싶었다. 그래서 모닝페이지를 쓰자마자 리뷰 작업을 했다.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에 집중을 해서 작업을 하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전까지는 북 카페의 조금 시끄러운 곳에서 집중해서 작업을 하려 하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업무 중에 틈틈이 만들어 놓은 연표와 스크랩 해 놓은 자료들이 시간을 많이 단축시켜 준다. 그리고 어느 정도 틀이 갖추어 져서 거기에 맞게 쏟아 담으면 된다.

무엇보다 이번 달 도서는 자서전이라 저자에 관한 자료 탐색이 어렵지 않다. 책 자체가 저자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쯤에 집을 나섰다. 아내는 어제 시험이 끝나, 오늘 홀가분하게 친구를 만나 놀 것이라고 한다. 늦잠을 푹 자고 싶었을 텐데, 일어나서 맛있는 아침과 도시락으로 꼬마 주먹밥을 싸주었다. 늘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넘치는 허영심 가득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이렇게 예쁘고 마음씨 고운 아내를 만나 살아가는 것, 이번 생에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북 카페에서 필사를 했다. 일찍 끝마치면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다행히도 5시 정도에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고 아내가 북 카페로 찾아왔다. 함께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옹골면이라고 하는 국수집으로 갔는데 예전에 법정스님 다큐를 보다 생각난 곳이다. 대표 메뉴가 옹골면이었는데, 생긴 것은 까르보나라 같이 생겼는데, 우리 음식답게 담백하고 고소해서 맛있었다. 아내는 롯데리아에서 사온 팥빙수를 먹었다.

'X맨 퍼스트 클래스'를 보았는데, 정말로 잠시 숨돌릴 틈 없이 1시간 반 내내 박진감 있게 내용이 전개되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따로 없지만, 가끔 이런 판타지 시리즈를 보면 나도 모르게 흥분된다. 문득 니체가 말하는 '초인' 혹은 캠벨이 말하는 '영웅'을 내가 무지하게 동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가진 뛰어난 능력, 평범함을 넘어선 비범함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내 가슴 속을 진동 시킨 것이 바로 '마음' 다른 초능력보다도 '마음을 읽는' 주인공의 능력이 가장 탐이 났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조화를 이루고, 마음을 읽는 그 능력을 세상을 위한 보다 큰 뜻에 기여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내 가슴 속을 파고 들어왔다. 시각적인 것을 중시하는 할리우드 영화, 그 속에서도 나는 나의 천복의 모습을 발견한다. 작은 믿음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미 깨우침을 얻었고, 발견했는데,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데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찾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괴로움 보다 즐거움이 훨씬 더 클 것이기에 나는 이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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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0 17:30:32 *.124.233.1

064일차 (6월 20일)

<삶의 여백>이라는 칼럼을 쓰고 보니, 새벽에 눈을 뜰 때부터 마음의 매무새가 달라진다. 늘 반복하던 행위인데도 왠지 오늘따라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자 마자 마시는 냉수의 맛도 새롭고, 이리저리 몸을 풀 때의 느낌도 새로웠다. 내리 모닝페이지를 쓰고, 어제 미처 쓰지 못한 수련일지도 써내려 갔다. 한 시간 가량이 금새 지나갔다. 평소보다 늦게 잠들기도 했고, 간 밤에 더워 중간에 잠을 설친 터라 좀 더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그냥 씻고 출근을 했다.

책을 읽다가 뚝섬유원지라는 안내방송을 듣자마자 뒤로 돌아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서울시내에 살며 이런 광활한 풍광을 보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막연한 그리움이 몰아쳤다. 걸어서 사무실로 오는 동안, 오늘은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자발적 빈곤'을 위한 레몬액을 만든 뒤 곧장 23층으로 올라가 다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적당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도를 넘어선 것은 아닐까?

사무실에 내려오니 분주하다. 5년 이상 몸담았던 곳임에도 월요일만 되면 부담스럽고, 명치가 막히는 듯한 답답증을 느낀다. 물론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나 개인의 메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다음부터 생긴 괴리감 같은 것이다. 도무지 일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동시에 온갖 상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매주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재경 누나도 적응 장애로 쓰러지기 전 이런 비슷한 류의 증상이었다는 말이 생각나 두려움이 생겨 글로 이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했다.

남이 써 놓은 모범 답안은 무지하게 많은데 나만의 답안은 아직 도출되지 않았다. 생각을 되풀이 할 수록 내 어깨에 올려진 짐이 많고, 그 짐을 내려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다 더 명료하게 재확인할 뿐이다. 문득 든 생각 '어디 한 번 해봐! 난 더 이상 잃어버릴 게 없는 놈이라고!' 그러나 난 움켜쥐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 그 어떤 용기와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늘 신경증의 위 아래를 오가는 위험한 갈등만 되풀이 할 뿐이다. 강인한 정신력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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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9:12:58 *.124.233.1

065일차 (6월 21일)

와인이 숙면에 좋다고 하여 어제 잠들기 전에 가볍게 화이트 와인을 한잔 마시고 잤다. 열대야 때문인지 며칠째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 같다. 드디어 선풍기를 가동하기 시작했고, 조만간 에어컨이 있는 거실로 나가 원정 수면을 취해야 할 판이다. 인디언은 자기가 태어난 계절 모두를 생일이라고 보았는데, 내 생일은 겨울이다. 그래서 나는 무더운 여름보다 춥더라도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 따뜻한 아랫목을 누릴 수 있는 겨울이 좋다.

지난주 점심은 내내 샌드위치로 때웠는데 오늘은 간만에 나무 형님이랑 함께 밥을 먹고 선릉 공원을 산책했다. 이제는 이렇게 점심에 산책을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혹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제법 살도 빠지고, 체력도 좋아지고, 찬찬히 걸었는데도 땀이 흘렀다. 살랑살랑 한들 바람이라도 불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녹음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듣다 나왔다. 그래도 풀 내음, 땅 내음을 맡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도배된 도시에서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일 모레 혁신과제 리뷰가 있어서 오늘은 중간에 연구원 과제 작업을 못하고 계속해서 일만했다. 벼락치기, 똥줄타기에 의존한 일 처리다. 아마도 만 5년간 몸담은 이 부서에서 하는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벼락치기와 유종의 미라는 힘으로 과제를 한다. 덕분에 집중은 잘 된다. 나는 분명 이 프로젝트 쪽에 분명히 재능이 있다. 확실히 평균수준 이상이다. 이 재능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분류하여 미래 직업과 연결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여러 재능의 아름다운 조합인 듯 한데 아직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오늘 저녁은 아내와 함께 뚝섬유원지 역 한강변에서 치킨을 먹을 것이다. 우리 둘 다 매 년 꼭 한 번은 하자고 다짐한 이벤트다. 늘 함께 놀 수 있는 아내가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적어도 아내가 있으니 이 세상에 혼자는 아니다. 가족도 있고, 연구원 사우들도 있고, 단군 사우들도 있고, 사부님도 계시고, 내겐 좋은 사람이 참 많다. 순례자처럼 고독하게 걷는 것이 청승맞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스운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홀로 할 수록 함께 할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물론 법정스님 말씀이다. 좋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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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04:32:15 *.109.52.7

066일차 (6월 22일)

1년 중에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다. 가장 길어 보여야 하는 해는 장맛비와 그로 인한 구름으로 종일 가려져 있다. 언제쯤 삶에 대한 징징거림이 멈출 것인가? 새벽에 일어나서 드는 첫 생각이 언제쯤 설렘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게 오늘이면 안 될까? 그날은 꼭 모든 것이 갖추어진 미래의 어느 날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늘 오늘은 그 하루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사는 게 싫어졌다. 오늘을 잘 살고 싶다. 미래에 있을 그날을 오늘로 데려와 오늘부터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물질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풍족해졌음에도 예전보다 훨씬 많은 불행함을 달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물론 '마음'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야 말로 나의 평생 연구과제다. 내 삶 속에 과감하게 큼직한 쉼표를 찍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도무지 이것저것 뭔가에 엄청나게 쫓겨 늘 머릿속은 과부하 상태가 되어있다. 물론 이건 순간적인 감정이다. 문제는 그런 순간적 감정의 반복과 누적으로 인한 피로감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선택에 대한 가능성과 아쉬움이다. 이 길이 전부는 아닌데, 다른 방식의 삶도 있을 텐데 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지만, 결국은 떠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좌절과 서글픔을 머금은 체 지친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좌절이 반복되면 무기력이 된다. 이것도 신경계에 일종의 회로를 생성시킨다. 마치 조건반사와 같다. 자극에 대한 같은 반응은 자동화가 되고, 자동화된 반응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바로 그렇게 생성되는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려운 것이다.

지인들은 저마다 조급히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삶이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마음의 평온함을 찾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내 마음 속으로 깊이 다가갈수록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하루하루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낡은 생각, 낡은 울타리로부터 거듭거듭 떨치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 나도 제멋에 살 수 있어야 한다. ~해야 한다 패러다임에서 유머러스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싶다. 뭐가 재미있을까? 뭘 하면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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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17:37:39 *.124.233.1
명희누님 ^^
누님.. 무엇이 저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무엇이 저를 이리도 성마름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지나친 욕심과 기대이겠지요?
누추한 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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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2011.06.23 13:20:05 *.220.138.241
경인님은 자신의 길을 찾아서 잘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잘 아시잖아요? 지난 해 5월 24일부터 단군이 100일차를 시작하였지만 변화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1년이 넘는 시간들 속에서, 경인님은  비교적 빨리 변화 발전하고 있고(단군이에서 연구원으로 변화됨), 올빼미였던 저도 새벽수련을 하기위해 애쓰고 있잖아요. 저는 비록 느리고 느린 걸음일지라도 이렇게 걸어보려고 하네요. 힘내세요! 경인님은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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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17:36:03 *.124.233.1

067일차 (6월 23일)

장마가 시작되어 종일 비가 내린다. 열린 창 틈 사이로 들리는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니 밖에 나가 한바탕 시원하게 비를 맞으며 길을 활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르바처럼 말이다. 문득 떠오르는 또 다른 장면,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엔디 듀프레인이 감옥을 탈출한 직 후 시원하게 내리는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두 주먹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되찾은 자유의 희열을 뿜어내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 또한 나를 속박하는 모든 현실적 감옥과 굴레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엔디는 어떻게 쇼생크를 탈출했는가? 앤디야 말로 1만시간 법칙, 즉 견딤의 원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작은 숟가락으로 탈출구를 파 내려갔다. 그는 견뎌냈다. 모든 시련을 견뎌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비밀스러운 그 시간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자유를 위해 탈출구를 팠다. 지금 나의 치열한 자기 탐색, 매일 쓰는 글, 매일 읽는 책이 나를 기다리는 자유를 향한 통로를 위한 파 내려감이다. 훈이 형님께서 사부님과 같은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힘드냐?"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본질적인 것으로 힘든 것이냐, 아니면 비본질적으로 힘든 것이냐?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이 비본질적인 쓸 때 없는 감정 싸움이라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섬뜩 거릴 수 밖에 없다.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물이 웅덩이를 채우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하듯 쓸 때 없는 것은 없다. 불필요해 보이는 감정싸움도 더 나은 나로 성장해나가기 위한 필연의 과정, 웅덩이를 채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보왕삼매론'의 네 번째 구절 "수행하는 데에 마(魔)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에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하셨느니라." 스승께서 해주신 말씀처럼 내가 지금 견디고 있는 것이 다름 때문인지, 아니면 그름 때문인지를 명료하게 규명해야 할 것이다. 아! 나의 어리석은 아집이여! 자존심이란 껍질들!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이러한 미혹에서 벗어나 부드러워지고 유해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다 한 때일 뿐이다. 즐거움도 한 때이고, 괴로움도 한 때이다. 영원한 고통과 영원한 기쁨은 없다. 오늘 읽은 러셀의 잠언이 내 가슴을 무찌른다. "거짓과 더불어 제 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이기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렇다. 지금 나는 지는 연습, 통렬하게 패배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이 곁에 있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스승과 사우들이 있다. 그렇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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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5 04:57:24 *.109.24.115

068일차 (6월 24일)

회사 프로젝트로 인해 한 주 내내 회사일로 빠듯했다. 이렇게 바쁜 주가 연구원 초기에 있었다면 굉장히 괴로웠을 것 같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란 책이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이란 책을 찾다 없어 선뜻 집어 든 책인데, 아직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던 책이었다. 울림이 아주 큰 책이다. 두 번 읽기 주라 시도하는 외도지만, 나도 관심이 있었던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화두를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전개해 나갔다. 왜 그 책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고, 종종 눈에 띄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방향이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방향감각일 것이다. 과거에는 <성취>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깐 일의 분야와 색깔 방향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일을 하고 났을 때 받는 <칭찬>과 <인정>을 인한 뿌듯함이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 보험이란 분야에서 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삶의 방향>이라는 것을 찾기 시작하고, 탐색하고, 스스로에 대한 많은 단서를 찾으면서 내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게 되면서, 힘겨운 갈등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내게 '주어진' 일을 아무 말 없이 달게 받고, 즐겁게 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의도> 같은 건 없었다. 단기적인 것을 짧은 순간에 제대로 처리해서 <성취감>을 느끼며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 받는 일에 함몰되어 일종의 <방향 감각>을 상실했던 것이다.

어제 저녁 희석형님을 만나 가볍게 저녁식사를 함께 했는데, 거기서 내가 형님께 한 이야기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얻은 세 개의 직업은 '강연가, 작가, 컨설턴트' 이 세 가지였고, 분야는 '변화, 마음, 심리, 경영, NLP' 등이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나의 분야, 내가 원하는 직업일까? 이 중 내가 제대로 시도해본 일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그저 동경의 대상들, 그리고 간접체험만 해본 것들이다. 직접 부딪혀 내게 맞는지 검증해 본 일은 없다.

그저 스승께서 하시는 일이 부러워 동경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내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나의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혹시 나는 다른 류의 사람은 아닐지? 조직 내에서 경쟁하여 승리하고 거기서 <성취>를 맛보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과 칭찬을 받고, 그러한 감정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일의 분야와 내용과는 상관없이 <초첨>이 흔들리지 않고 <최상>의 품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은 아닐까? 꼭 '변화, 마음'과 자기계발과 정신적인 영역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어찌 보면 내게는 조직의 사다리를 타는 것 등의 경쟁과 정치 같은 것이 더 어울리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희석형님께서는 '진실한 생각'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자기 탐색은 자기계발 프로그램 참여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내가 커다란 뭔가를 놓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늘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새로운 관점에서 탐색하라. 앞서 한 이야기를 통해 내가 나의 강점 테마에 충실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내 강점 테마 5가지는 <개인화> <최상주의자> <성취자> <초점> <중요성> 이다. 앞서 말한 묘사에 이 테마들이 다 들어가 있다. 이러한 테마가 하나로 꿰어 맞춰지면서 나의 행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명쾌하게 이해될 때 나는 깜짝 놀라게 된다. 사실 어찌 보면 이런 요소들도 일종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껍질, 즉 페르소나와 같은 요소일 수 있다. 도구에 함몰되지 말고 더 깊이 파고들어 가자. 자꾸 어떤 공통된 특성으로 묶으려 하지 말고, 다양한 사례 자체를 받아 들이자. 자기 탐색은 참 즐거우면서도 어렵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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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6 04:40:07 *.109.24.56

069일차 (6월 25일)

새벽에 일어나 곧장 모닝페이지를 써내 갔고, 그 다음 어제 다 적지 못한 일지를 적었다. 그러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잠이 들었다. 지난 한주간 너무 피곤했다. 회사 일이 여유로웠던 적은 없지만, 지난주는 특히 힘들었다. 6시그마의 DMAIC Tool로 진행하는 혁신과제의 깔딱 고개인 A(Analyze) 단계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다른 회사로부터 입사제의를 받았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늘었던 셈이다. 그래서 짧게 새벽활동을 마치고 나에게 충분한 수면을 선물했다.

오랜만에 거실에다 이부자리를 펴고 잤는데, 이불의 보송보송함과 까슬까슬함이 좋다. 일어나 아내가 씻는 동안 한 주 동안 생각했던 칼럼의 화두를 가지고 아웃라인을 잡았다. 그리고 나서 아내와 함께 아침을 지어먹을 반찬거리를 사러 나섰다. 비가 내린 직후라 대기 중의 먼지가 깨끗이 씻겨진 세상 그 어떤 순간보다 맑고 선명한 풍광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집 문을 열고 나오면 병풍처럼 들어선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이 마치 눈앞에 와 있는 것 같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내는 주말에 늦잠 자고, 이렇게 맑은 풍광을 보고, 함께 장보러 나가는 이런 한가로움이 너무나 행복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나와 함께 하는 이런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껴주는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나도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빠듯한 일상 속에 함께 손 잡고 장도 보고, 여행도 떠날 수 있는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고 마음 속에 되뇌었다. 양상추, 양파, 계란 그리고 분홍색 옛날 소시지를 사가지고 와서 아침을 지어 먹었다. 아내가 해준 웰빙 샐러드는 언제나 일품이다. 점점 요리 실력이 는다. 확실히 재능이 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소화도 시키고 칼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겸 산책을 나섰다. 산책 가기 전에 집 근처 단골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았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지 만 3년이 되었는데, 매 달 그 미용실에서만 머리를 깎는다. 이것도 나의 기질을 드러내는 부분 중 하나다. 이런 종류의 것들은 한 번 정하고 만족스러우면 잘 바꾸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 번 좋아한 사람은 끝까지 좋아하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한 번 돌아서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차갑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집 근처 근린 공원을 세 바퀴 정도 돌았다. 비가 내린 직후라 땅에서 올라오는 흙 내음과, 나무와 풀에서 나오는 향긋함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산책로의 푹신푹신함과 내 가벼운 발걸음, 길가로 쭉 뻗어 있는 사랑스런 플라타너스가 내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준다. 아직 남은 피로감으로 목과 어깨가 뻣뻣하다는 느낌 말고는 모두 좋았다. 아! 이런 시간과 이런 공간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문득 꽃 향기처럼 행복한 마음이 가슴 속에서 피어 올랐다. 늘 고뇌에 찬 순간만으로 살수만은 없지. 그래서 찾아온 행복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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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07:47:22 *.124.233.1

070일차 (6월 26일)

태풍 '메아리'와 장마의 여파로 종일 비가 내린다. 어제 조금 늦게 잠든 탓으로 새벽에 1시간 남짓 모닝페이지와 수련일지 등을 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오늘 소화해야 하는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되지만, 수면부족과 피로감으로 집중력 없이 멍 하게 꾸역꾸역 하는 것보다, 좀 더 잠을 자서 명료한 정신으로 임하는 것이 더 낫다. 한해 중 내가 가장 고전하는 6월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과도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잠을 더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고 정신이 말끔해진 것 같다.

지난주에 자격증 시험을 마친 아내는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조조영화를 보겠다며 일찍 집을 나섰다. 나도 10시에 문을 여는 북 카페로 가기 위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샤워를 했다. 현관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집안의 묵은 공기를 싹 거두어 베란다 창문으로 나간다. 상쾌하다. 아마도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더불어 연구원 과정의 첫 번째 깔딱 고개인 '철학의 달'이 시작된다. 지난 주에 틈틈이 <서양철학사>를 읽는 시도를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과욕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철학자의 자신의 온 생애를 걸어 터득한 것들을 한 주 만에 마스터 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다. <서양의 지혜>도 그러하거니와 <서양철학사>도 전공자들에게 한 학기 혹은 두 학기 분량의 과제일 것이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이 정독과 얕은 이해에 대한 부담감에 기인한 합리화이자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한 주 안에 이 책을 읽어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미션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과감하게 지나쳐야 할 것이다.

처가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가족들과 함께 할 때면 이들과 늘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쓸 수 있는 자유의 양을 늘리고,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이것이 내가 지금 애써 노력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수단과 목적이 도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점은 늘 명심해야 한다. 언제나 이런 고민의 귀결은 '모순과 역설'을 끌어 안고, '조화와 균형'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배우는 '자기경영', '변화경영'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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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04:40:37 *.109.24.188

071일차 (6월 27일)

언젠가부터 나도 월요일 하루가 가장 힘들어졌다. 아마도 연구원 생활을 하며 회사 일에 대한 비중을 줄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인 것 같다. 당연한 귀결이다. 주말 내내 온통 다른 아주 높은 세계에 살다가 갑자기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마치 짧은 주말 동안 아주 해외 먼 곳을 다녀와서 느끼는 시차 피로 같다. 가장 아끼는 새벽 수련시간을 아침에 있는 프로젝트 발표 준비를 위해 할애했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회의를 했다. 회의에 엄청난 회의를 느꼈다.

내가 발표한 시간은 30분도 안 되었지만 회의실 안에서 5시간 이상을 앉아 있었다. 눈이 침침해졌다. 끝나고 자리에 돌아오니 기운이 다 빠졌다. 오늘은 동료들의 글에 댓 글도 달아야 하는데, 정말로 기운이 없다. 7시가 조금 넘어 곧바로 퇴근했다. '자발적 빈곤'의 날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무겁고 길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책을 좀 더 읽다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회사도 그렇고, 개인적인 거취도 그렇고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다시 익숙함을 취할 것인지, 아니면 혁명적인 변화를 취할 것인지. 무모해지기에는 나의 길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없다. 융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대학교수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그렇다. 이러한 감정은 실은 하찮은 것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세상의 눈이다. 겉으로는 마음의 세계를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바깥 세상의 이목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약한 자아와 피에로의 웃음을 짓고 있는 페르소나가 있다.

연구원 커리큘럼도 좋고, 나의 첫 책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내 삶의 목표는 아니다. 그저 중간에 거치고 싶은 정류장 같은 일종의 과정이며 수단일 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강을 건너는 뗏목일 뿐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는 그 뗏목을 마치 목적으로 여기고 그것까지 짊어지고 가려 하고 있다. 비 본질을 버려라. 불필요한 것을 버리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 마음이다. 진짜 내 마음이다. 겉돌지 말고 마음과 직접 대화를 나누라. 아프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라. 그리고 반드시 답을 들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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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18:34:39 *.124.233.1

072일차 (6월 28일)

어제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 자리에 들었다. 그래서 푹 잤다. 새벽에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한결 개운하다. 어제 종일 굶은 상태에서 근육운동을 해서 그런지 팔이 좀 욱신거렸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나서는 길, 몸이 가볍고, 발걸음이 경쾌하다. 출근한 뒤 23층에 올라가 책을 읽었다. 깔딱 고개답게 무지 어렵다. 그저 읽는데 의의를 둘 뿐이다. 2000년도 더 된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에 깊고 넓은 생각들. 지금을 사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진다.

아무리 환경이 화려하고 좋다고 하더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썩게 된다. 그들이 천착한 것은 진리와 지혜다. 그들과 내가 추구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 수박 겉핥기 수준이겠지만 이 과정을 즐길 것이다.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에 그저 귀와 눈을 열어놓는 수 밖에 없다. 연구원이 아니었더라면 결단코 내 눈에 띠지 않았을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러니한 짜릿함을 느낀다. 그분이 아니라면 감히 누가 나에게 그런 책을 읽으라 했을까?

지난주 금요일 자리를 바꾸었다. 예전 파트장님께서 앉아 계셨던 창가의 전망 좋은 자리다. 지금 파트장의 일종의 '귀양살이' 조치 같은 것인데, 이게 웬 행운인가 싶다. 몰래 몰래 칼럼을 읽거나 글을 쓸데, 뒤를 걱정하는 일이 줄어들 것 같아 좋다. 점심은 가볍게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책을 읽었다. 졸음이 몰려와서 서서 책을 읽었다. 예전과 같은 하루를 사는데, 어찌 하루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스승의 말씀처럼 새벽, 글쓰기, 독서, 걷기. 이 네 가지가 내 삶에 들어 왔는데 내 삶은 정말로 달라졌다. 많이 달라졌다.

오랜만에 사무실 창 밖으로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해 저무는 풍광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늘 어린 왕자 생각이 난다. 얼마나 슬펐길래 마흔 세 번이나 해넘이를 바라보았을까? 내가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 바닷가에서 해넘이를 꼭 보고 싶다. 되도록이면 투박한 나무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고 싶다. 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는데, 처음엔 괴롭더니 지금은 설렌다.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늘 함께 하는 아내와 가족, 벗 그리고 스승이 있다는 사실. 아직 나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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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6:37:38 *.124.233.1

073일차 (6월 29일)

어제 저녁 연구원 동기들을 만났다. 바쁜 와중에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 주었다. 나는 이게 얼마 만에 갖는 푸짐한 저녁약속인지 모르겠다. 자발적 선택이긴 하지만 마치 금욕주의 삶을 살아가는 듯 한 요즘이었다. 가끔 저녁에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호프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바깥에 앉아 시원한 생맥주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늘 나의 선택은 짜 놓은 일상의 틀과 룰을 반듯하게 지키는 것.

늘 글을 쓰며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하지만, 어제는 사람들이 무척 그리웠다.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실컷 떠들었다. 떠들다 보니 내가 너무 많이 떠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어울림이 고팠던 모양이다. 재경 누나가 그랬다. 나를 보면 혼자 고독하게 걸어가는 순례자 같다고. 신기하다. 지난해 말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와 <연금술사>를 읽고, 배운 것을 일상에 녹여보고자 했다. 그래서 실제로 하루 중에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최대한 걷고, 홀로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마련해 보려고 했다.

그래서 외로웠던 것 같다. 이런 나의 행보에 영향을 준 법정스님의 말씀 '홀로 있을수록 함께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법정스님의 영향으로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 저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하나씩 끌어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옆구리 게를 스쳐 지나가는 외로움, 고독을 느껴야 한다.' 등의 신념들이 내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자기수양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념들이다. 그러나 원해서든 원하지 않아서든 더불어 살아가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많은 신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한 것 같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기가 싫었던 것 같다. 그 동안 조심스레 쌓아 올린 것들이 방심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다. 잃을 게 있었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절제하고, 자제하고, 참고, 견뎌 보려 했던 것 같다. 나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2년 전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른다. 술 많이 마시고,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우고, 살도 많이 찌고.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거다. 한 번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하늘이 늘 나를 돕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늘 좋은 사람들을 곁에 보내주시고, 딱 견딜 수 있을 만큼만의 시련을 주고, 딱 필요한 만큼의 돈을 보내준다. 회사에서 겪는 고뇌에 대해 또 다른 갈림길을 하늘이 제시해 주었다.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한 것은 좋은 것이다. 어젯밤은 정말 밤을 지새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니 하룻밤으로는 부족했을 것 같다. 다음 번에는 많이 들을 것이다. 고마운 동기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또 귀 기울일 것이다. 그들이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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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30 17:54:39 *.124.233.1

074일차 (6월 30일)

6월의 마지막 날이다. 올 한 해의 절반을 마무리 짓는 날이며, 연구원 활동을 시작한지 정확히 석 달 1/4 지점이다. 전에 비해 하루하루는 빠듯해졌지만, 내면 세계는 점점 더 깊어져 가는 것 같다. 깊어져 갈수록 많이 아프기도 하다. 아직은 견딜 만 하다. 새벽에 일어나 내 멋대로 쓰는 글은 편한데, 갖추어서 세상에 내 놓아야 될 글을 쓰는 건 무지 뻐근하다. 얇고 가벼운 책은 하루 안에 뚝딱 읽을 만큼 쉬워졌는데, 두껍고 어려운 책을 만나면 눈이 감긴다. 그래도 하루하루 담금질 되어 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패배와 실패를 받아들이는데 내가 아주 미숙하다는 것을 느낀다. 과연 내가 맛본 것이 통렬한 실패인지, 아니면 정반합이란 성장의 상승과정에서 겪는 반작용인지 모르겠다. 5보 전진을 위한 일시적인 1보 후퇴인지, 아니면 퇴행인지 아직 모르겠다. 아마도 섞여있지 않을까? 그래도 후자라 믿는다. 국소적인 문제가 마치 내 인생 전체의 문제인 양 확대 해석하지 말자. 오해는 있을지언정 악의가 있었던 적은 없었으니깐. 내가 정말 못되고 악랄한 것이 아니라면 하늘과 땅이 알고 있으니 걱정은 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개인적인 삶에서 얻은 것이 많은 그 만큼, 회사의 삶에서는 딱 그 만큼이 비어 있다. 얻어서 해가 되는 것도 있고, 잃어서 득이 되는 것도 있다. 아마 내가 잃어버린 것은 잃어서 득이 되는 것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이제는 홀가분해지려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정말로 홀가분하다. 마음의 짐이 떨쳐진 기분이다. 움켜쥐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은 겁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놓아 버리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만다라를 그려보려고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도안들이 많이 있다. 도화지에 인쇄된 큼직한 도안을 구해 직접 손수 색칠도 해보아야겠다. 물감도 사고, 색연필도 사고, 파스텔도 사야겠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그려보고자 한다. 만다라는 '자기'의 중심에 이르는 길의 도면이라는 융의 이야기, 재경누나의 조언, 평소의 바램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가 가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가고 싶었던 것이다. 다름이 있었지 나쁨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정말로 홀가분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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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18:51:50 *.124.233.1

075일차 (7월 1일)

어제는 승진자 발표와 부서회식이 있었다. 승진한 후배들을 축하하며 연거푸 몇 잔 마셨더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1시간 정도 있다 나왔다. 7시가 조금 넘었는데 날이 아직도 환하다. 아내도 승진했기 때문에 노원에서 만나 축하파티를 하기로 했다. 부리나케 역 근처에 있는 꽃가게에서 꽃다발을 사고,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산 뒤 아내를 만났다.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고 아이처럼 좋아라 하는 아내를 보니 나도 행복해졌다. 함께 근처에 있는 파스타 집을 찾았다. 만난 지 100일되었을 때 갔던 곳인데, 이름도 인테리어도 바뀌었다. 함께 축하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이란 곳이 주는 안정과 안락함이란 이런 것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양평에 내려가는 날이라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낭패였다. 잠실종합경기장에 무료로 주차를 하는데 오늘 정부 행사라 350여대의 버스가 들어와야 해서 주차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운동장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길가에 불법주차를 할까 하고 차를 세웠는데 잘못하면 과태료가 4만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바퀴 더 돌다 안 되면 비싼 값에 회사 주차장에 세우려 했다. 그러던 찰나 운동장 귀퉁이 버스들이 모여드는 곳 한 쪽에 작은 주차 공간이 있었다. 물론 경찰은 없었다. 그래서 쏜살같이 그곳에 주차를 하고 나왔다. 오늘도 하늘이 돕는구나!

5일째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책을 읽고 있다. 아침과 저녁시간 만으로 일주일 안에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센 놈을 만난 것이다. 다음 주는 더 센 놈인데 이번 주말에 최대한 시간을 내어 미리 읽어두어야 한다. 우선 이번 책부터 끝마치고. 게다가 다음주는 오프라인 수업도 겹쳐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수업 과제도 미리 당겨서 해야 한다. 깔딱 고개답게 박진감 넘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내가 낼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그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도 자기경영, 운영의 묘가 발휘되어야 함을 실감한다.

이 고지를 넘고 나면 여행도 떠나게 되고, 땅으로 내려오며, 현실 세계에서의 경영을 다룬다.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늘 가장 힘들었던 6월 한 달을 방어했다. 7월, 8월 두 달이 남았다. 내 삶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 한 계절이 될 것이다. 이 고개를 넘고 나면 또 다른 고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즐길 것이다. 내 세계가 넓어졌다.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 없던 내 삶에 글쓰기, 독서, 걷기, 사우, 스승이 들어 왔는데 내 삶은 혁명적으로 변화했다. 처음엔 괴로웠는데 지금은 설렌다. 앞으로는 어떨까? 괴롭더라도 굳은 살이 이만큼 배겼으니 견딜 만 할 것이다. 견디는 것도 즐기면 된다. 삶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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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07:59:12 *.109.24.117

076일차 (7월 2일)

양평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거의 4주 만에 내려온 것 같다.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물론 불필요한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로 보낸다는 뿌듯함도 따르지만 말이다. 또한 늘 과제 도서 읽기와 칼럼쓰기 등에 마음이 쫓긴다. 아직 연구원 활동의 상투를 틀어쥐고 내가 앞서서 이를 끌고 나가기엔 역량도 딸리고, 성실함도 딸린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낀다. 게다가 10년 이상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힘겨운 여름 나기가 시작되었다.

철부지 어린 시절은 여름 방학이 되면 외갓집이나 친척집에 놀러 가서 그저 즐겁고 신나게 놀면 그만 이었다. 물론 개학하기 전에 엄청난 양의 그림일기와 탐구생활, 방학숙제를 해야 하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의 여름 방학, 특히 고등학교 시절의 방학은 나에겐 정말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덥고, 습한 날씨, 끈적거림으로 인한 불쾌감, 오르지 않는 성적, 떨어질 데로 떨어진 체력, 모든 것이 바닥을 치는 그런 계절이었다. 그 이후로도 여름만 되면 나는 이런 상황을 반복했다.

봄 타고, 가을 타듯 나는 늘 여름을 탔다. 그런 몇 가지 전조 현상들이 보이기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려야 함을 느낀다. 새벽 기상, 글쓰기, 독서, 많이 걷기 등이 조금씩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잠을 더 자는 것, 스스로에게 쉴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처지는 체력을 비축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이지만, 그것이 일상을 지탱하는 큰 기둥을 와해시키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발생할지도 못한다는 행동신호가 나타났을 때 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뻔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여름의 계절적 불리함, 체력적 한계, 빠듯한 연구원 활동, 관계의 깊어진 골 등은 분명 나의 힘을 빠지게 하는 원인임이 분명하다. 내가 응수할 수 있는 것은, 명상과 침묵, 더 많이 걷기,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배려 등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부정적 은유를 즐거운 은유로 대처하는 것, 그리고 많이 웃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듯, 더운 여름도 지나간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다 한 때일 뿐이다. 이 마저 감사히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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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09:59:36 *.124.233.1

077일차 (7월 3일)

잠을 2시간 정도 더 잤다. 일어나고 나니 불쾌함이 덜 하고 개운하다. 요즘은 늦게 잠들면 의도적으로 잠을 더 청하려고 노력한다. 최소한 6시간 이상은 자야지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며,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벽 4시 기상은 내 삶에 자명한 미션이고, 중요한 상징이다. 새벽 4시, 지하철 독서, 걸어서 출근, 계단 오르기, 월요일의 자발적 빈곤, 주말의 중랑천 산책 등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나의 삶을 소중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상징이 되어준다.

그러나 상징은 어디까지나 상징일 뿐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내가 정말 가슴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얼마나 그러한 삶에 가깝게 근접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그런 접근을 방해하는 상징적 행위들은 허례 허식일 뿐이다. 새벽 4시의 상징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10시 이전의 취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벽 4시 기상은 고된 허례허식이 되어 건강을 해지는 원인이 되어버린다.

처가에 들러 아침밥을 먹은 후 곧장 북 카페로 향했다. 평소보다 늦은 오전 10시 반쯤 도착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구석진 곳에 있는 내 전용자리에 앉아 이번 주 과제도서 중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을 읽었다. 독서를 마무리 짓고,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 작업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타이핑을 하는 능동적 작업으로 졸리지 않고, 중요한 내용을 눈이 아닌 손으로 꼼꼼히 읽어낼 수 있어서 쓰고 나면 제대로 배운다는 느낌을 받는다. 상대가 좋은 책이라면 통째로 필사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한다.

필사를 마무리 짓고, 칼럼과 과제를 올리고 나니 저녁 7시가 훌쩍 넘었다. 더 남아서 공부를 할까 생각하다 진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집으로 향했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차려 먹은 후,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주말연속극과 개그콘서트를 보며 실컷 웃었더니 몸과 마음이 많이 이완된 것 같았다. 이번 주말의 짧은 휴식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정식 연구원이 된지 14주, 레이스 포함 18주를 잘 보냈으니 가장 힘들지도 모르는 다음주도 잘 보낼 수 있겠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한 가지씩 이루어지고 있다. 새삼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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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7:38:15 *.124.233.1

078일차 (7월 4일)

월요일 새벽,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떤 마음으로 맞이했는가? 즐겁고 설레는 새로운 하루라는 마음에 어서 빨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는가?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과 피곤한 마음에 마지 못해 눈을 떴는가? 후자다. 이것도 일종의 반복에 의거한 습관인 것 같다. 어떠한 깊은 사유 없이 자동적으로 형성된 굵직한 신경회로인 것이다. 하와이로 신혼여행 갔을 때, 아내와 제주도로 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려 보자. 그때도 이런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했었는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을 되뇌라고 한다. 이것도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일 것이다. 스스로 불행하다 여겨지고, 불안하고 두려운 이유는 원하지 않은 상태로 들어가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아주 많은 원인들이 엮여 복합한 메커니즘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마인드 셋을 변화시키고, 자주 쓰는 언어를 변화시킴으로써 일상에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변화의 대상이 의식의 영역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대체로 변화가 요구되는 대상들은 무의식적이거나 습관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어 그것이 변화의 대상인지 인지되지 않은 체 의식의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마도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느끼는 뜻 모를 두려움도 이런 영역에 속해 있을 것이다. 좋은 환경은 좋은 생각을 이끈다. 당연한 귀결이다. 원치 않는 어두운 환경에서 좋은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어떠한 내적 작업을 수반한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평생 연구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그 방법이 최악의 상황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한 위안이 될지, 불행한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한 위안이 될지, 혹은 또 다른 어떤 방법이 활용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하루를 행복하게 맞이하고 싶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의 메커니즘과 언어 또는 비언어로 쌓이는 내 경험의 방식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뭔가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린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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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5 18:56:26 *.124.233.1

079일차 (7월 5일)

10년을 바친 인생에서
'이 길이 아닌가 봐'라는 경우는 있다. 
20년을 바친 인생에서
'이 길이 아닌가 봐'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두렵고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평생을 바친 길에서
'이 길이 아닌가 봐'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이미 그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이르는 길이 어디 하나 뿐이더냐?  
산을 넘어 가는 길도 있고,
강 따라 가는 길도 있고, 긴 길도 있고,
도는 길도 있고 짧은 길도 있다.
끝까지 가면 닿게 되어 있다. 
어느 길에나 위대함으로 가는 길을 있는 것이다.
끝까지 가면 바다에 이른다. 
그러므로 가다가 되돌아 와 갈림길에서 울더라도
다시 다른 길을 찾아 쉬지 말고 가야 한다.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 것도 가는 길의 한 부분이다.
헤매지 않고 어찌 처음 가는 길을 찾을 것이냐. 
갈림길에서 지쳐 주저 앉아 있지 마라. 일어서 걸어라.
그곳을 벗어나 계속 걸으면 바다에 다다르게 되리니. 

사부님께서 이번 주 재경 누나 칼럼에 달아주신 댓 글이다. 끝까지 가면 닿게 되어 있다. 어느 길에나 위대함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이다. 끝까지 가면 바다에 이른다. 그러므로 가다가 되돌아 와 갈림길에서 울더라도 다시 다른 길을 찾아 쉬지 말고 가야 한다.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 것도 가는 길의 한 부분이다. 헤매지 않고 어찌 처음 가는 길을 찾겠는가? 갈림길에서 지쳐 주저 앉아 있지 말고, 일어서서 걸어라. 그곳을 벗어나 계속 걸으면 바다에 다다르게 되리니. 이 말을 읽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뻔 하였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네오가 모피어스로부터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을 제안 받는 장면이 떠올랐다. 일상에 함몰되면 괴로움은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고민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결국 기계를 위한 건전지에 지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진실은 고통스럽고 괴롭다. 배가 고프고, 생존의 위기와 끝없이 다투어야 한다. 오늘 분명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년을 바친 인생에서 '이 길이 아닌가 봐'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오늘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다시 갈림길에 서 본다. 그러나 나는 또 같은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또 다시 돌아온다. 다른 길이 있음을 알면서도 같은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내 모습에 쓴 웃음만 나온다. 수면 아래 어두운 곳에 숨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비롯한 나의 그림자들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현실은 그저 현실일 뿐이다. 나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나의 그림자이다. 아주 강력한 자석과 같아서 훌쩍 뛰어 올라 다른 길을 가려는 나를 강하게 끌어 당긴다. 그 힘이 만만치 않다.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 자존심, 다른 사람들의 시선, 죄책감,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내 안에 우글거리는 수 많은 그림자의 형상들이 보인다. 저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결코 떠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과 중력의 정체를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현실은 그저 현실일 뿐이다. 그냥 직시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내 안의 그림자. 오늘로 3일 단식의 2일차. 배가 많이 고프다. 그러나 많이 가볍다. 그래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가벼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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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19:07:09 *.124.233.1

080일차 (7월 6일)

오늘로 단식 3일차, 3일 단식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는 새벽에 일어날 때 머리도 지끈 거리고 몸도 무겁더니 오늘은 훨씬 가볍고 개운하다. 오늘 출근길에는 독서 대신에 연구원 오프라인 과제 작업을 했다. 목요일이 마감이라 어쩔 수 없다. 이번 주 과제도서 분량이 1천 페이지가 넘는데, 오프라인 과제까지 겹치니 아주 버겁다. 게다가 이번 달 과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과제다. 단식까지 하고 있으니 몸에 에너지도 많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들 중 진짜 불가능했던 것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지하철에서, 회사로 걸어오는 길에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적었다. 출근해서도 컴퓨터를 켜자마자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오전 9시쯤 회사 건강검진 병원에 들러 체중을 재러 갔다. 3달 전 회사에서 측정한 다이어트 펀드 체중 유지 확인을 받기 위해서다. 이미 3개월 전 감량에 성공을 했지만, 감량한 체중을 3개월간 유지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체중유지 축하금 5만원을 별도로 지급한다고 했다. 3개월 전 68.9kg이었는데, 오늘은 68.2kg이다. 그 사이 조금 변동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성공적으로 유지했다.

매주 월요일 '자발적 빈곤'을 실천한지가 만 6개월이 되었고, 3개월에 한 번 3일 단식을 실시한지 이번이 두 번째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임에도 실제로 해냈다. 나의 천복과 천직도 이 경험에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이란 미명하에서는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를 절대 그만둘 수 없지만, 그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실제로 모험을 감행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사부님을 비롯하여 연구원 선배들 그리고 훈이 형님, 재경 누나가 그러하다.

물론 그들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거나 믿을 수 있는 뭔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비빌 언덕도 없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뛰쳐나오면 금새 배가 고파진다. 몸이 배고픈 건 참을 만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고정관념. 그렇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다. 동굴에 갇혀 그림자를 실재로 착각하고 있는 어리석은 원시인이다. 회사에 다니지 않던 시절에도 나는 살았다. 어찌 보면 지금보다 더 잘 살았다. 적어도 마음 만큼은 훨씬 더 잘 살았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마음에 걸린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내가 없다면 정말 그들은 살아가기 힘들까? 생활수준은 분명히 떨어지겠지만,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가난해지는 것, 그들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은 내게 엄청난 괴로움으로 작용한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나 하나 배고픈 건 상관없다. 나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다르다. 바로 이 마음이 내가 이야기하는 내 안의 어둠, 나의 그림자다. 하늘로 도약하는 딱 그만큼의 힘으로 나를 다시 땅으로 끌어 당기는 존재. 넘어서야 할 장애물의 실체 하나는 제대로 찾아냈다. 자! 그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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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8 09:18:25 *.124.233.1

081일차 (7월 7일)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벌써 1년의 절반이 지났고, 연구원 첫 번째 고비인 철학의 산을 한걸음씩 오르고 있다. 버거운 연구원 과제와 회사 일의 중간 길을 걷는 모험이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지금이 자기경영의 묘미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다. '자기경영을 통해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해보니 되더라'는 것을 스스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시기가 지나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철학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일까? 생각의 대가들을 만나기 위함일까?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함일까? 생각을 통해 지혜를 얻기 위함일까?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지금 읽고 있는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아주 어렵다. 1주일 안에 완독을 하고 필사를 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정해 있기 때문에 눈으로는 읽어 나가지만 모두 정독하지는 못한다. 이 중에 내 삶에 쓸만한 생각 하나만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나가려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가 철학을 배우는 이유가 일상과 타성에 함몰되어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함이다. 긴 시간을 두고 읽어도 어려운 철학서를 짧은 시간에 읽게 하신 스승의 의도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2천년 이상 생각의 역사를 이끌어 온 철학자들과 비록 옷깃만 스치는 가벼운 만남이지만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획득하고 사유의 대략이라도 맛을 보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끊임 없이 자신과 세상에게 질문 하는 힘' 그것이 철학을 배우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탈레스가 서양철학사의 출발점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질문은 수 많은 나쁜 질문의 시행착오에서 비롯된다. 아마도 변화의 본질은 바로 '세상을 향한 끊임 없는 질문'과 그 질문에 답하는데 있지 않을까? 러셀이 제공한 방대한 철학의 스펙트럼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얻은 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배운 것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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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9 07:58:27 *.109.52.131

082일차 (7월 8일)

정말로 시간은 흐른다. 벌써 금요일이 되었다. 어려울 것 같던 과제도 했고, 분량이야 어찌 되었든 책도 읽어 내려갔다. 이번 주는 정말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다음주에 있는 프로젝트 CEO 보고대회 때문에 수정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나에게는 내일 있을 연구원 오프라인 수업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오전과 오후 내내 뒤통수에도 눈을 달아 놓고, 열심히 동료들의 과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들의 성취와 아픔이 보였고, 그들의 깊은 마음이 느껴져서 마치 그들과 옆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연구원 활동을 시작한 후 분명하게 깨닫고 있는 것은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인지에 대한 자각, 소크라테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 이는 상대와의 비교를 통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동굴 속에 갇혀있던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끎으로써 느낄 수 있는 어떤 통찰과도 같은 것이다. 스승을 통해 배우고, 동료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배운다는 것은 이렇듯 자신의 무지에 대해 통찰을 함으로써 겸손해지는 것이다.

오후에 스승께서 추가로 제안하신 과제인 '동료들의 기질과 재능에 대한 평가' 과제를 했다. 동료들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쉬울 줄 알았던 이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냥 붓 가는 대로 적어 내려가려 했지만, 뭔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어 각자에게 어울리는 한자성어를 찾아, 그의 기질과 재능과 엮어 해석해 보았다. 감히 내가 그들을 평가하거나, 단정지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격은 없지만, 주로 그들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잠재력을 보려고 노력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저녁 8시를 훌쩍 넘어버렸다. 내일 발표할 자료에 대한 출력을 부탁 받고, 내 자료도 출력을 해야 하는 지라 자료를 뽑고 정리를 하고 나니 9시가 넘었다. 이렇게 내가 원해서 하는 일들이라면 더 늦게 까지 라도 작업을 할 수 있다. 이 또한 나의 동기부여 방식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원 활동은 나의 기쁨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나를 위한 프로젝트이며, 또한 나를 알아주는 이들을 위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전율한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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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08:50:21 *.109.52.131

083일차 (7월 9일)

새벽 기상에 대한 자명한 진리, 늦게 자면 일찍 일어나기 힘들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 피곤하다. 피곤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공부도 일도, 관계도 원활해지지 않는다. 아주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새벽에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이 400일 차에 접어들 무렵 드는 생각은 결국 새벽기상의 관건은 전 날 언제 잠 자리에 드느냐이다. 새벽에 일어나 나만의 2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기상 시간대를 조절한다는 것이지, 수면시간을 줄인다는 것이 아니다.

수면시간을 줄이며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오래 가지도 못하고, 설령 오래 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늬만 새벽활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는 하는 것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뭔가를 하려는 이유는 그 시간이 모두 잠들어 있는 고요한 시간대이고, 그래서 나 홀로 깨어 있어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간에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온 마음을 집중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중에 2~3시간 동안 방해 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대가 하루 중 새벽이란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늦은 아침과 오후 커피숍이 될 수도 있고, 자정이 넘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리고 실제로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 시간대를 새벽으로 선택하였을 때 통과해야 하는 진입장벽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새벽기상을 습관화 하는 것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것은 규칙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2~3시간이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가벼운 운동이 될 수도 있고, 자기 탐험이 될 수도 있고, 자격증 공부 등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수도 있다. 내 경험상 부담이 없는 활동으로 그 시간대에 대한 즐거움을 확보하여 습관화 한 뒤에 삶에 좀더 중요한 활동으로 옮겨가는 것이 나은 것 같다. 1년이 넘는 시점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새벽기상은 나에게 뭐지?'라는 질문 때문이었다. 단지 기상 시간대를 바꾸는 것 뿐이데 라며 쉽게 생각하기엔 우리를 지배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고되고 만만치 않다.

오늘은 연구원 오프라인 수업이 있었다. 사부님과 동료들에게 고마운 조언을 들었다. 나 또한 동료들에게 조언을 했다. 그들이 내게 전해준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내겐 아주 커다란 배움이 되었다. 마음을 따끔거리게 하는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없다. 그러나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뭔가를 조심스럽게 지적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김용규 선생님을 다섯 달 만에 뵈었다.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강의였다. 나는 그분이 좋다. 그간 힘든 일이 있으셨다고 한다. 마음이 찡하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셨으면 좋겠다.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깊고 의미 있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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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1 13:29:26 *.124.233.1

084일차 (7월 10일)

어제 연구원 오프라인 수업이 있어 늦게 귀가했다. 발표와 수업, 그리고 김용규 선생님 강의, 이어지는 뒤풀이와 또 다른 뒤풀이,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컸다. 집에 들어오니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늦게까지 잤다. 개운하다. 북 카페에 가려고 서둘러 가볍게 시리얼로 아침을 때우려고 했는데, 아내가 일어나 밥을 차려줘서 먹고 나섰다. 북 카페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5권으로 분철해 놓은 <서양철학사> 중 앞의 3부분을 집에 두고 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가져왔다.

오후 3시까지 책 읽기를 마무리 짓고 필사를 시작했다. 마감일은 화요일 정오까지지만, 회사에서 필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늘 중에 마무리를 지을 수 밖에 없다. 근처 편의점에서 가볍게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필사를 했다. 오늘 중에 끝마치기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저녁에 쌍문동 처가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터라 왔다 갔다 하고, 밥 먹고 하다 보면 2~3시간은 보내야 한다. 가족들과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싶고, 과제도 해야 하고 주말마다 늘 이런 안타까운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갈등에 직면한다.

필사를 도중에 접고 쌍문동 처가에 갔다. 장모님께서 닭백숙을 끓여주셨다. 맛있게 뚝딱 두 그릇을 비우고, 주말연속극이 끝나갈 때쯤 집으로 출발했다. 나른해지고 졸음이 몰려왔지만 오늘 마무리 짓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필사를 했다. 아내가 장모님께서 싸주신 대추 방울 토마토와 참외를 깎아 주었다. 맛이 일품이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새벽 1시다. 그래도 끝 마친 게 어딘가. 자발적 빈곤이 있는 날이라 졸음을 참고 레몬즙을 만들었다. 30분 정도 걸렸다. 뻐근한 주말이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도 꾸려나가고 저축도 하며, 무엇보다 내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유의 양을 늘리는 것이 지금의 이런 고됨과 견딤을 택하게 한 것이 아닌가? 꼭 이런 고행의 과정을 겪어야만 하는가? 그렇다. 그 동안 내게 주어진 '중요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대가이다. 새로운 화두가 내 안에 들어왔다.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혼자 걷는 과정을 마스터 했으니, 이제 함께 걷는 법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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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1 18:56:30 *.124.233.1

085일차 (7월 11일)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출근길 비가 하도 많이 내려 걸어오지 못하고 버스를 탔다. 참. 오늘 새벽엔 꽤 늦게 일어났다. 어제 새벽 2시가 넘어서 잤기 때문이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람소리도 듣지 못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지각한 것에 대해 혼자 욕지거리를 하며 화를 냈을 텐데 그냥 웃으며 찬찬히 일어났다. 이런 게 뭐 대수라고. 마음 같아선 회사도 빼먹고 종일 푹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부슬부슬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싫지 않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모닝페이지를 휘갈겨 적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은 홀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 내용이야 어찌되었든지 간에.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런 여과 없이 나를 너무 지나치게 드러낸 것은 아닐까? 지극히 당연한 사람의 마음 중에서 너무 좋은 면만을 보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빛과 어둠을 드러내는 것은 내 자유지만, 내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자유.

때에 따라서 내가 쓴 솔직한 글이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작용을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런 것들을 의식했더라면 애당초 공개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생각할수록 신경이 쓰였다. 내가 쓰는 글은 나의 극히 일부, 지금의 나의 모습 또한 33년 간 내 삶의 스펙트럼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면면이 한 사람을 전체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뜨끔해졌다. 아! 내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조차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쪽에서는 너무 드러내지 않고, 한 쪽에서는 너무 드러내고, 보여지는 것은 양극단을 달리지만 내 존재는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말이다. 역시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 것일까? 여전히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날은 저물어간다. 스피노자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불행은 대체로 변하기 쉬운 대상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데서 생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변치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나 그것만을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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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2 19:23:29 *.124.233.1

086일차 (7월 12일)

나는 아직 덜 여물었다. 그리고 성마르다. 그러니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두르지 말고 너무 의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꾸만 선택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선택 당하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차올라 흘러 넘칠 때까지 침묵하라. 그렇게 입 다물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라. 문득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담아본다. 이것이 정말 내 마음의 소리인지, 고요의 울림인지, 신의 음성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소란스럽고 번잡한 상황 속에서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 하며 내게 떠오른 생각이다.

시련은 나를 깊어지게 하지만, 쓰라리고 아프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은 맨발로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던 것일까? 새로운 과제도서에도 스피노자가 있다. 더욱더 심혈을 기울여 읽어본다. 한참 오래 전에 살았던 이 사람이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는다. 수많은 철학자들 가운데서 이 사람만이 유독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 아마도 스피노자를 만나기 위해 철학의 달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의주의. 회의주의는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반대를 해봄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음을 예방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선택해온 길을 모조리 의심해 본다. 과연 이 길이 맞는 길인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한 단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회사의 예전 부장님도, 연구원 동료도 회사에 승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지금 내가 그려놓은 미래의 직업, 작가, 강사, 컨설턴트, 그리고 내가 정한 분야인 변화경영, NLP, 분석심리 등. 이 모든 것들을 지우개로 쓱쓱 지워본다.

회의주의는 내게 다시 한 번 판을 짜보라고 이야기 한다. 회사 내에서의 승부, 지도자의 삶 등 또 다른 가능성도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신이 양이라고 생각한 어미 잃은 호랑이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피가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먹고 포효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본래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을까? 호랑이가 호랑이이듯이, 도토리가 참나무가 될 수 밖에 없듯이, 내가 될 수 밖에 없는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라. 그것에 천착해라. 이 웅덩이를 채우지 못하면 앞으로 흘러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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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19:06:56 *.124.233.1

087일차 (7월 13일)

내일 6시그마 프로젝트 CEO 보고대회가 있어서 이번 주 내내 정신이 없다. 벌써 프로젝트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한지 6년 차다. 아마도 내 길은 이런 쪽에 있을 것 같은데, 1인 기업이 되기 위해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프로젝트 논리전개 방식과 기획력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디 가서 조직 생활을 경험했다고 이야기 하려면 어떤 수준이 되어야 할까? 적어도 관리자가 되어 팀을 이끌어 본 경험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넘어가는 과도기에 연구원 활동을 택한 것이 과연 현명한 결정일까?

아무리 프로젝트가 바빠도 연구원 과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지하철로 출퇴근 하며 1시간, 출근 후 1시간 반, 점심시간 1시간 이렇게 하루 3시간을 과제도서를 읽는데 할애한다. 그리고 업무시간 중에 짬을 내어 리뷰 자료를 작성하고, 주말 내내 북 카페에 앉아 칼럼을 쓰고, 필사를 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틈이 없다. 조금만 느슨한 조직에 있었다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빡빡한 일정이 팽팽한 긴장감을 주어 매주 마감일을 엄수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연구원 동료인 재경 누나가 나의 일지 댓 글에 연구원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들을 회사업무에 적용해 보는 이른바 '필살기'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아주 고마운 조언이지만 이미 작년에 사부님의 '필살기'라는 책을 서너 번 읽고, 홀로 꼼꼼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해 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결론은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 사이에 공통점이 거의 없어서 부서이동이나 이직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꿈 벗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연구원에 지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선은 10월 1일자로 부서 이동은 확실하다. 다만 어디로 이동 할지 명확하지 못할 뿐이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지 간에 새로운 곳으로 옮겨 새로운 '필살기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계획이다. 되도록 나의 적성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부서로 이동하길 바라지만,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나의 직관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게 전한다. 두 가지 쉽지 않을 일을 동시에 해야 하므로 에너지가 분산될 수 밖에 없다. 빈틈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일년 이상을 잘 운영해 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이직이 되었든 부서 이동이 되었든 내가 처한 환경이 많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어스름하게나마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그 윤곽이 보이는 듯하다. 좋은 환경에서, 여유로운 여건 속에서 뭔가를 하는 귀족적인 방식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그 점만큼은 분명하다. 진흙탕에서 험하게 구르고 그 속에서 근육을 키워 점점 강해지고 싶다. 앞으로 갔다가 도로 갈림길로 돌아가도 아직 늦지 않다.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아주 젊다. 무지하게 젊다. 그게 내 메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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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4 19:02:35 *.124.233.1

088일차 (7월 14일)

지난 4월에 킥오프한 프로젝트 CEO보고를 마무리 지었다. 물론 9월 초에 최종 보고대회가 있지만 그리 중요하진 않다. 아마도 6년째 몸담은 이 부서에서 하는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문득 법정스님의 수필집 제목이기도 한 <아름다운 마무리>가 떠올랐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6년간 몸담고 5년 이상을 잘 해도 마지막 일부가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프긴 하지만 이 또한 불편한 진실이다.

10시 반쯤에 편의점에 가서 미리 후다닥 점심을 먹고 12시부터 1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서양철학사>보다 '조금 더' 재미있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보통 내공이 아니다. 이 책을 쓰려고 500권 이상의 참고서적을 읽었다고 한다. 그것도 꽤 어려운 책들을 말이다. 아마도 그 중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사람 잡는 책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연구원 1년 과정 동안 50권의 책을 읽는 것에 비추어보면 10년은 걸리는 일이다. 역시나 비범한 인물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혼자 가면 멀리 갈 수 있고, 함께 가면 오래 갈 수 있다고 한다. Or의 문제일까 And의 문제일까? 당연히 And의 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신 '홀로 있을수록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이 문제에 대한 가장 멋진 답이 아닐까?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집단이 '하향 평준화' 집단이다. 내가 부족하니 너도 부족해야 한다고 암묵적 투사를 하는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집단이다. 서로 돕지 못하고, 공헌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견제하며 깎아 내리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에너지 뱀파이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검게 물들고 싶지 않다. 악화에 물들지 않고, 양화가 되어 맑은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이 초복이라 처가에서 장모님께서 호출하셨는데, 프로젝트 보고가 무사히 되었다고 상무님께서 맥주를 한 잔 하자고 하신다. 잠시 들렀다 가도록 해야겠다. 쉴 틈 없이 책을 읽고 과제를 해야 한다. 나도 내 활의 시위를 잠시 풀어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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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8 17:27:31 *.124.233.1
089일차 (7월 15일)
술병으로 드러누웠다. 새벽 3시까지 오랜 시간 갈등을 빚어왔던 상사와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도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마음 고생을 한 것 같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관계에 있어서 신뢰란 철저하게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커다란 바위가 치워진 기분이다. 오늘의 술병, 막힌 곳이 뚫릴 때 생기는 명현현상, 긍정으로 향하기 위한 일시적 아픔.


090일차 (7월 16일)

새벽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지난해 내가 찍어드린, 두 분께서 환히 웃으시는 사진이 보인다. 해주고 또 해주고 싶으신데 해주시지 못함에 늘 미안해 하신다. 나도 그렇다. 더 해드리고 싶은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다. 언제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뒤로 미룰 것인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함인데, 그러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희생되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뭐가 맞는 것일까?


091일차 (7월 17일)
그만 두고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그곳으로 돌아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계시들. 새벽에 재경 누나가 걱정해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음을 다 잡고 향한 북 카페. 오병곤 선배를 만났다. 2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의 대화였지만, 그는 아픈 곳을 매만져주었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뭔가 분명히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신비로운 느낌. 보스와의 극적인 화해, 조력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선배.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분명히 크고 넓다.


092일차 (7월 18일)
사람이 어울려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다. 지나친 기대는 불행의 씨앗이다. 지나치게 허물없이 스스로를 드러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탄식을 하며 잘못을 깨닫는다.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거듭 살펴야 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었을 뿐. 절절히 '인지상정'을 대해 깨닫는다. 아주 굵고 짧았던 마음의 몸살. 비는 그쳤다. 파란 하늘 뭉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쬔다. 해밀, 비가 온 뒤에 맑게 개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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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0 10:56:36 *.124.233.1

093일차 (7월 19일)

저렇게 아름다운 파아란 하늘과
너무나 귀여운 뭉개 구름은
누가 그린걸까?

출근 길
한강을 건널 때 보이는
눈부신 햇살과
반짝거리는 강물은
누구의 숨결일까?

함께 한 추억
함께 하는 지금
함께 할 내일
이 모두를
한 곳으로 모으면
그것이 곧 영원

온통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과
영원을 함께 하는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그 존재
그 존재 앞에
오늘의 나는
한 없이 겸손해진다

001.jpg

'' 회사건물 계단에 있는 창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뭉개 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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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2 11:38:34 *.124.233.1

094일차 (7월 20일)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져 먹통이 되었다. 그 순간 내 가슴도 먹먹해졌다. 아주 많은 것을 이 작은 기계에 의존하고 있었구나. 기계는 기계일 뿐인데, 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의존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에서 말하는 집착. 물건에 대한 집착,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집착. 사람에 대한 집착이 물건에 대한 집착보도 몇 곱절 더 강한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예서 선배 북콘서트에 다녀 왔고, 사부님을 비롯한 많은 선배들과 새벽 3시까지 함께 했다. 높이 뜬 달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더욱 더 정겹다.


095일차 (7월 21일)
신이 형님이 오셨다. 내 삶에서 아주 의미 있는 사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벗이다.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큰 사람이다. 큰 사람이 될 것이다. 형님도 나도. 그렇게 한 세상 함께 살아갈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손으로 써보려고 한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추천을 받았다. 저녁에 Rotring 펜을 샀다. Moleskine은 원하는 사이즈가 없어 못 샀다. 밋밋해진 새벽이 새로워질 것 같다. 불필요하고 형식적인 것은 빼고, 새벽에 마음과 만나는 글쓰기가 하고 싶다. 모닝페이지의 본래 모습을 찾고 싶다. 아이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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