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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3일 11시 29분 등록

<변신이야기1,2 - Metamorphoses> -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민음사

 

* 저자에 대하여 *

<오비디우스의 생애와 작품들>

오비디우스의 생애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그의 작품 <비탄(悲嘆)의 노래>4권 10부에 나오는 그 자신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오비디우스라고 부르는 로마 시인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Publius Ovidius Naso)는 기원전43년 3월 20일 로마에서 동쪽으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중부 이탈리아 술모(Sulmo)시의 기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일 년 전인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일파에게 암살됨으로써 로마는 또다시 내란에 휩쓸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로마는 정치체제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면서 흔히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져 있는 옥타비아누스(기원전63-기원후14년)가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된다. 그리하여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의 이 시대를 흔히 ‘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부른다.

오비디우스는 한 살 위한 형과 함께 로마에 가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시 엘리트 청년들이 그러하듯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려고 수사학(修辭學)을 공부한다. 공부를 마친 뒤 그는 그리스의 아테나이와 소아시아와 시킬리아를 여행하고 로마로 돌아와 하급 관직에 취임했으나 문학에 대한 미련 대문에 관직을 버리고 시인이 된다.

오비디우스는 세 번 결혼하여 둘째 부인에게서 딸을 하나 얻었으며, 그의 세 번째 부인은 그가 귀양 가 있는 동안 그에게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오비디우스는 처음에 헥사메터와 펜타메테로 이루어진 비가조(悲歌調) 대구(對句)로 연애시를 써서 큰 성공을 거둔다. 지금 남아있는 그의 시들은 <변신이야기>에서 서사시 운율인 헥사메터가 사용된 것 말고는 모두 비가조 대구로 씌어졌는데, 이 운율은 그리스 시대부터 비가(悲歌)와 경구(警句)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여러 가자 성찰을 표현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오비디우스의 초기 작품으로는 여러 가지 사랑이야기를 담은 <사랑의 노래>와 신화와 전설상의 유명 여성들이 자신들을 버렸거나 떠나 있는 남편이나 애인에게 예컨대 페넬로페가 오뒷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된 <여걸들의 서한집>과 역시 신화적 요소와 세속적 풍습을 묘하게 엮어 어떻게 하면 여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지 조언해주는 <사랑의 기술>과 실연(失戀)한 자들에게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랑의 치료약> 등이 있다.

오비디우스는 기원후 2년에 자신의 대표자인 <변신이야기>와 <로마의 축제일>을 동시에 쓰기 시작한다. 기원후 8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변신이야기>는 헥사메테로 씌어진 전 15권 대작으로 천지창조부터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전설 속의 변신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 한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회화적 묘사는 이 작품속에 나오는 신들이나 인간이 신화 속의 인물들이라기보다는 당시 로마 상류사회의 인물들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그는 기원전 8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인 흑해 서안의 토미스(오늘날의 루마니아)로 유배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날의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그곳의 야만인들 사이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 지 10년 뒤인 기원후 17년 또는 18년에 세상을 떠난다. 유배지에서의 비참한 생활과 로마로 돌아가리를 바라는 아니면 로마에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기를 k라는 그의 간절한 소망은 그가 유배지에서 쓴 <비탄의 노래(기원후8-12년)>, <흑해에서 온 편지(기원후 12-16년)>에 잘 나타나 있다.

오비디우스는 유배된 이유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 자신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두가지 죄, 즉 시(詩)와 과오 때문에 유배되었는데, 이에 관해서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유배된 이유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모두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말한 ‘시(詩)’가 <사랑의 기술>을 의미할 것으로 보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같다. 그렇다면 이 시는 나온 지 8년 뒤에 문제가 된 셈이다, 따라서 그가 추방된 결정적 이유는 ‘과오’인 것으로 생각된다.

오비디우스는 유배를 철회하거나 로마에 더 가까운 곳으로 유배지를 바꿔달라고 직접,간접으로 청원하지만 끝내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기원후 17년 또는 18년 봄에 세상을 떠난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문명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그가 쓴 책들은 공공도서관들에서 철거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살아남아 어떤 작가들보다 더 많이 읽히게 될 것이라고 <비탄의 노래>에서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확신은 조금도 과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호메로스와 3대 비국시인들과 베르길리우스와 더불어 그리스 로마 문학이 중ㄹ세와 르네상스 시대는 물론이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잊혀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데 가장 많이 기여한 작가들에 포함도리 것이기 때문이다.

 

<오비디우스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라틴어로 글을 쓰던 서양 중세에서 그리스 로마 작가들 가운데 오디우스만큼 많이 읽힌 작가는 없다. 그래서 중세학자 트라우베는 서양의 12-13세기를 오비디우스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단테가 그랬듯이 서양의 작가들이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스 로마 작가들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리스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건너와 그리스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라틴 작가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더욱더 줄어들었고, 이 점에서 오비디우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 20세기의 1980년대 이후로 오비디우스는 고전학자들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애호하는 이뿐 아니라 시인과 문인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어 제2의 ‘오비디우스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20세기의 1970년대만 해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한 고대 작가가 이토록 인기를 누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독자들이 오비디우스에게 매혹당하는 것은 우선 그의 작품들이 재미있으면서 쉽게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별다른 사전시식이나 주석 없이도 그런대로 부담감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그것이 신화(神話)이든 관습이든 권력이든 이를 거리낌 없이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현대적’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그는 <변신이야기>에서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 이야기(8권)를 하면서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들의 거의 다 모였어도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고 그중 한 명인 네스토르는 멧돼지를 피해 장대높이뛰기를 하듯 창 자루를 짚고 나뭇가지 위로 도망치게 하는데, 이는 우리가 다른 문헌에서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달리 말하면 오비디우스는 신화속의 영웅들을 우리와는 다른 머나먼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와 비슷한 또는 가까운 소설 속의 등장인물처럼 그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오비디우스에게는 다른 매력도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네스토르가 트로이야 전쟁 때 그리스의 영웅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레 늘어놓는 장면을 알아야만 우리는 앞서 말한 네스토르의 비겁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충분히 알수 있다. 이렇듯 오비디우슨 겉보기와는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사전지식이 있어야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매우 ‘박식(博識)한 시인’임을 우리는 군데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중성이 그의 지속적인 인기를 설명해줄 수 있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변신이야기1>

p.15 마음의 원(原)에 쫓기어 여기 만물의 변신(變身)이야기를 펼치려 하오니, 바라건대 신들이시여, 만물을 이렇듯이 변신하게 한 이들이 곧 신들이시니 내 뜻을 어여쁘게 보시어 우주가 개벽할 적부터 내가 사는 이날 이때까지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힘을 빌려주소서.

p.20 처음은 황금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관리도 없었고 법률도 없었다. 사람들은 저희들

끼리 알아서 서로를 믿었고 서로에게 정의로웠다. 이 시대 사람들은 형벌도 알지 못했고 무서운 눈총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았다.

p.22 세상의 지배권이 유피테르의 손으로 넘어오자 이윽고 시대는 변하여 은(銀)의 시대가 되었다.

유피테르는 늘 봄이던 계절을 뚝 분질러 겨울과 여름, 날씨가 변덕스러운 가을, 짧은 봄, 이렇게 네 계절로 나누었다.

청동시대 인간은 은의 시대 인간보다 성정(性情)이 거칠어 더러 무기를 잡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흉악하다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온 시대는 철의 시대다. 이 천박한 금속의 시대가 오자 인간들 사이에서는 악행이 꼬리를 물로 자행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순결, 정직, 성실성 같은 덕목을 기피하고 오로지 기만과 부실(不實)과 배반과 폭력과 탐욕만을 좇았다.

p.33-34 물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즈음 데우칼리온이라는 사람과 그의 아내 되는 퓌라는 조그만 배를 타고 이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데우칼리온은 그 많은 세상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바르고 의롭게 살아온 사람이었고 퓌라는 그 많은 세상 여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믿음이 깊은 여자였다. 데우칼리온 부부는 배에서 내리자 코뤼코스의 요정들과 산신(山神)들과 테미스 여신에게 기도했다.

유피테르는 물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피테르는 그 많던 사내들 중에서 오직 하나. 그 많던 여자들 가운데서 오직 하나만 살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둘에게는 지은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이 둘이야말로 직심(直心)스럽게 신들을 섬겨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피테르는 북풍에게 명하여 비구름을 쫓고 안개의 너울을 걷게 한 다음 하늘에서는 땅이, 땅에서는 바다가 보이게 했다.

p.35-36 내 아내이자 내 사촌이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퓌라여, 처음에는 혈육으로 인연을 맺더니 이윽고 혼인으로 인연을 맺은 퓌라여, 이제 이 위난(危難)이 또 한번 우리를 하나로 묶는구나. 이 넓은 땅, 해뜨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살아있는 인간은 우리 둘뿐이다.

가련한 아내여, 우면이 나를 앗아가고 그대만 남겨놓았더라면 그대 마음이 어떠하였으랴! 홀로 남아 있었더라면 두려움은 어찌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며 슬픔에 잠기면 누가 그대를 달랠 수 있었으랴. 그러나 나를 믿으라. 바다가 그대마저 앗아갔더라면 나는 그대 뒤를 다라 바다가 나까지 앗아가게 했으리라. 나에게 아비 되는 재주가 남아 있어서 자손을 퍼뜨리고 새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면 좀 좋으랴. 내게 흙을 이겨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여기에다 숨결을 불어넣는 재주가 있다면 좀 좋으랴. 그러나 이제 인류의 운명은 우리 둘에게 달려 있다. 이것이 신들의 뜻....우리는 인류의 본으로 남은 것이다.

p.37 신들의 마음이 신심(信心)이 있는 자들의 기도로 움직이고 부드러워진다면, 신들의 분노가 이로써 가라앉는다면. 일러주소서, 테미스여신이시여, 어찌하면 인류가 절멸한 이 땅의 이 재난을 수습할 수 있을지요. 자비로우신 여신이시여, 환란을 당한 저희들을 도와주소서...

p.48 이제 다프네의 모습은 거기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만 거기에 남아 있을 뿐....

p.57 그대와 나는 영원히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로 이야기를 나눌것이오.

p.60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고, 내 말을 듣고 계시는, 찬연히 빛나는 태양에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는 네가 우러러보고 있는 태양, 온 세상을 밝히는 태양의 아들이다.

p.80 [어머니, 저를 다치지 마세요, 제발 꺽지 마세요. 나무로 둔갑했어도 제 몸의 일부랍니다. 아, 어머니, 안녕히]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 껍질이 딸들의 입을 막았다. 이 나무 껍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태양빛에 굳으면서 호박 구슬이 되어 가지에서 강물로 떨어졌다. 강물은 이 호박 구슬을 물 밑에 간직했다. 뒷날 로마 부인네들의 장신구가 된 호박 구슬이 바로 이것이다.

p.81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은, 일식(日蝕)때 그러듯이 늘 슬픔에 잠긴 채 기가 죽어 지냈다. 그래서 그는 빛을 싫어했고, 자기 자신을 싫어했으며 화창한 날을 싫어했다.

p.96 아기야, 세상 사람의 건강을 돌볼 팔자를 타고난 아기야, 씩씩하게 자라거라.

p.107 <질투>가 옮긴 괴질은 빠른 속도로 이미 병든 곳과 성한 곳을 파괴했다. 이어서 생명의 숨결이 지나다니는 길을 거슬러 치명적인 냉기가 올라왔다.

p.109 사랑을 성취시키려는 마음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은 원래 조화도 양립도 불가능한 법이다.

p,118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힐 날이 되어봐야, 그 한 살이가 행복한 한 살이였는지 박복한 한 살이였는지, 드러나는 법이다.

p.131 에코는, 동무들과 헤어져 인적 없는 숲속으로 혼자 들어온 이 나르키소스를 보고는 그만 마음을 뻬앗기고 말았다. 에코는 가만히 이 나르키소스의 뒤를 밟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에코의 가슴은 그만큼 더 뜨거워졌다. 에코의 가슴은 이 사라의 열기에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았다. 불길에 갖다대기만 하면, 횃대 끝에다 재어놓은 유황이 타듯이...

p.133 나르키소스로부터 박대받은 이들 중 하나가 하늘을 향해 두손을 벌리고 이렇게 기도를 했다. [저희가 그를 사랑했듯이, 그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소서, 하시되 이 사랑을 이룰 수 없게 하소서, 이로써 사랑의 아픔을 알게 하소서]

p.136 나는 죽어도 좋으니, 내가 사랑하던 것만은 오래오래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우리 둘은,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하나도 다라 죽어야 할 운명...


<변신이야기2>

p.16 노호하는 파도에 시달리면서도 그 우람한 모습으로 꿈쩍도 않고 의연하게 서 있는 거 대한 바위처럼 말입니다.

p.21 「내가 강을 정복하기로 한 바에, 어찌 이 강이라고 그냥 둘 수 있을 소냐!」 그는 망설이거나, 물살이 조용한 곳을 찾아보는 빛도 보이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p.22 「나는 죽되 내 피로 하여금 이 값을 치르게 하리라」네소스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천 조각을 이 피로 적셔, 장차 요긴한 사랑의 묘약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를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주었다.

p.31 뱀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 비늘이 반짝이는 새 껍질로 거듭나듯이 티륀스의 영웅도 필멸(必滅)의 육체를 벗고 불사의 몸으로 거듭났다. 인간의 오체(五體)를 벗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는 이전보다 더욱 위엄 있는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p.37 아, 이 아기를 이 가지에서 거두어가 다오. 데리고 가서, 잘 보살펴주고 우유를 먹여주고, 자라거든 내 가지 밑에서 놀 수 있게 해다오. 말을 하게 되거든 이 어미에게, 슬픈 사연이나마 이런 말을 하게 해다오. ‘우리 엄마는 이 나무 안에 숨어 있대요.’ 이 한 마디를 하게 해다오. 아이가 물가에 가지 않도록 해주고, 나무에서 함부로 꽃을 꺽지 않게 해다오. 열매가 달리는 나무는 모두 여신들의 몸이라는 것을 가르쳐다오.....중략.....언니의 말이 끝나는 순간부터 언니의 입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몸이 나무로 변했는데도 그 나무의 가지는 한동안 따뜻했습니다.

p.44 뷔블리스가 세상 처녀들에게, 사랑해도 좋을 상대가 있고 사랑해서는 안 될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p.47 사랑이 나를 물러서지 못하게 한다.

p.54 뷔블리스는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그 몸이 하나도 남김없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바람에 그만 샘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름이 이 처녀의 이름과 같은 <뷔블리스 샘>은 지금도 그 산자락의 계곡 감탕나무 그늘에 있다고 한다.

p.56「텔레루사, 나와 신세가 비슷한 텔레루사여, 너무 근심하지 말고 네 자아비가 그런 명을 내렸다고 너무 야속하게 생각하지도 말아라. 루키나 여신이 점지하거든, 사내아이든 계집아이든

p.57 괘념치 말고 잘 기르도록 하여라. 나는 기도하는 너희에게 유익한 여신이다. 그러니 섬겨도 돌보아주지 않는다고 야속하게 여기지도 말고 불평도 하지 말아라.

p.59 너 자신도 속이지 말고, 남들도 속이지 말고, 네가 무엇으로 태어났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보고, 여자인 네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여라. 사랑에의 욕망을 낳고 이 욕망을 살찌우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p.61 마땅히 신전으로 달려가, 기뻐하는 마음으로, 믿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려야 할 일이었다. 텔레투사와 이피스는 신전 제단에다 제물을 바치고 거기에다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남겼다.

p.65 이 무서운 땅의 권능에 기대어, 이 끝없는 혼돈, 이 넓은 땅을 감도는 침묵의 권능에 기대어 소원합니다.

p.65 빨리 오든, 늦게 오든 필경은 모두 이곳으로 와야 합니다. 저희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으며 이곳은 저희들 최후의 안식처입니다. 인간은 이곳에 와서 영원히 이곳의 신이신 저승 왕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p.67 아내가 혹시나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염려하던 오르페우스는 근심과 걱정과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뒤를 돌아다보고 말았다. 그 순간 에우뤼디케는 다시 저승 땅으로 떨어졌다.

p.70 하여튼 이 산에는 온갖 나무가 다 있었다. 이런 나무 사이에는 원추형으로 자라는 퀴프로스도 있었다. 이 나무는 오르페우스 시대에는 비록 나무가 되어 있었지만 원래는 나무가 아니라 수금과 활을 좋아하던 신의 사랑을 받던 소년이었다. 이 소년이 삼나무가 된 사연은 이러하다.

p.72 소년은, 신들께, 마지막 소원이니 수사슴의 죽음을 영원히 슬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 오래 울고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의 몸에서는 피가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의 팔다리는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흰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은 하늘을 향해 뻣뻣하게 일어서기 시작했다. 아폴로 신은 이것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했다.「네가 남을 위하여 슬퍼하고,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의 벗이 되고자 하니 나 또한 너를 위하여 슬퍼하리라」

p.73 신들의 사랑을 받던 소년, 부정한 사랑에 눈이 멀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처녀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였다.

p.73 새의 모습을 빌린 대신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이 일리움의 양치기 소년을 하늘로 채어 올렸다. 유노 여신 보기에는 꼴사납겠지만 이 소년은 지금도 천궁에서 술을 빚고 유피테르 대신에게 술잔 드리는 일을 한다.

p.76 나는 살아 있고 너는 죽었으나 너는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다. 너의 이름은 영원히 내 입가를 맴돌 것이다. 내가 수금 가락을 고를 때, 노래할 때, 내 노래와 내 가락이 너를 부를 것이다. 내 너를 새 꽃으로 만들되 내 흐느낌을 그 꽃잎에다 아로새기리라.

p.77 후대에 영웅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영웅이 너와 인연을 맺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너의 꽃잎에서 그 영웅의 이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p.77 휘아킨토스가 흘린 피는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풀잎을 적시더니, 이 피가 굳으면서 모양이 백합과 흡사하고 색깔은 튀로스 산(産) 보라색 옷감보다 더 고운 꽃이 피어났다. 아폴로신이 휘아킨토스를 축복하여 꽃으로 피어나게 한 것이었다. 아폴로 신은 이 소년을 꽃으로 환생하게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설움을 그 꽃잎에 아로새겼으니 휘아킨토스의 꽃잎에 <아이(αι)>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80 <피그말리온의 사랑> 「이렇게 사악한 삶을 사는 여자들을 본 퓌그말리온은 자연이 여성들에게 지워놓은 수많은 약점이 역겨워 오랫동안 여자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정말 혼자 산 것은 아니고,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한 솜씨로 만든, 눈같이 흰 여인의 상아상(象牙象)과 함께 살았다. 퓌그말리온이 만든 이 상아상의 여인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퓌그말리온은 자기 손으로 만든 이 상아상의 여인을 사랑했다....중략....퓌그말리온은 틈만 나면 이 상아상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서는 인간의 형상을 본떠 만든 이 상아상에 대한 사랑이 샘솟았다....중략....퓌그말리온은 이 상아상에 입을 맞추면서는 이 상아상이 이 입맞춤에 화답하기를 바랐다. 그는 어쩌면 눌렀던 자국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손가락으로 이 상아상의 살갗을 꼭 눌러보기로 했다. 그러나 혹 상처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너무 깊이는 누르지 않았다.

p.81 이 상아상을 상대로 아첨 섞인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이 상아상에다 옷을 입혀주는가 하면,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워주고, 목에는 긴 목걸이를 걸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역시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을 때였다. 퓌그말리온은 튀로스 산(産) 보라색 천을 씌운 긴 의자에 이처녀를 눕히고, 그렇게 하면 처녀가 고마워하기라도 할 것처럼 머리 밑에는 베개를 받쳐주기도 했다. 이렇게 해놓고 그는, 짐짓 이 상아 처녀를 자기의 반려라고 불렀다.

온 퀴프로스 섬이 다 떠들썩해지는 베누스 축제 때의 일이었다....제단에서 향연(香煙)이 오르자 퓌그말리온은 제 몫의 제물을 드리고 제단 앞에서 더듬거리는 어조로 기도했다. <신들이시여, 기도하면 만사를 순조롭게 하신다는 신들이시여, 바라건대 제 아내가 되게 하소서, 저…….> 퓌그말리온은 <상아 처녀를……> 하려다가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상아 처녀 같은 여자를……>, 이런 말로 기도를 끝내었다. 그러나 축제를 맞아 그 제단에 임재(臨在)하여 제물을 흠향(歆饗)하던 베누스 엿ls은 그 기도의 참뜻을 알아차리고, 그 기도를 알아들었다는 표적으로 불길이 세 번 하늘로 치솟게 했다.

p.82 집으로 돌아온 퓌그말리온은 바로 상아 처녀에게 다가가 그 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상아 처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퓌그말리온의 입술에 닿는 처녀의 입술에 온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화들짝 놀라 입술을 떼었다가는 다시 입술을 대고 손으로는 가슴을 더듬어 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손끝에서 그렇게 딱딱하던 상아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상아에는 그의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기 시작했다. 흡사 태양의 열기에 부드러워져, 사람의 손끝에서 갖가지 모양이 빚어지는 휘메토스 산의 밀랍같이…….그는 몇 번이고, 아내 삼기를 바라던 상아 처녀의 살갗을 만져보았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상아 처녀의 몸은 분명히 인간의 몸이 되어 있었다. 파포스 사람 퓌그말리온은 수다스럽게 베누스 여신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한동안 감사 기도를 드리던 퓌그말리온이 그래도 믿어지지 않았던지 상아 처녀에게 다시 입을 맞추자 상아 처녀는 이 입맞춤에 화답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p.93 몸의 모양이 바뀌면서부터는 뮈라의 마음도 나무의 마음을 닮아갔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는 것만은 여전했다. 뮈라가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p.94 나무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나 사실 이 나무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이 눈물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에서 듣는 수액에는 이 처녀의 이름이 붙어 오늘날까지도 <뮈르>라고 불린다.

p.100 ‘귀중한 목숨을 걸되 그 목숨을 내 앞에 던져 청춘을 바치려하다니, 참으로 인물이 아깝구나. 저 인물 앞에 서니 오히려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구나.

p.101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저 청년의 외모가 아니라 저 청년의 젊음이다. 게다가 저 청년에게는 용기도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청년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저 청년은 나와의 혼인을 위해서하면 목숨을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p.102 그대는 이 겨루기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를 이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대 같은 사람은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것을, 내 팔자가 기박하지 않았더라면, 운명이 내게 지아비 맞는 것을 허락했더라면, 나와 잠자리를 나눌 수 있는 남성은 그대뿐이었을 것을……아탈란테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지. 물론 자기에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 알지 못하면서도 아탈란테는 이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야.

히포메네스는 나를 부르면서 이렇게 기도하더구나. ‘오, 퀴테라의 여신이시여. 바라오니, 오시어서 무모하게 이 일에 뛰어든 저를 거들어주소서. 여신께서 불을 붙이셨으니, 이 불이 더욱 힘차게 타오르게 하소서,’ 이 청년의 기도가 바람결에 실려오더라. 이 청년을 기특하게 여겼던 나는 곧 이 청년을 도와주기로 했다.

p.104 이 히포메네스가 나에게 감사표시로 제물을 바쳤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런데도 이 지각없는 것은 나에게 제물을 바치기는커녕 그 명예를 내게 돌리는데도 인색했다.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무시당한데 대해 몹시 화가 났던 나는 이것들에게 본때를 보여 장차 나를 대하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둘을 치기로 했던 것이다.

p.105 신들의 어머니께서는 이들의 부드러운 목덜미에서 꺼칠꺼칠한 털이 돋아나게 하셨다. 신들의 어머니께서 이렇게 손을 쓰시니, 이들은 손가락은 휘어져 발톱이 되었고 어깨는 구부러져 영락없는 짐승의 어깨가 되었다.

p.106 아도니스여, 내 슬픔의 징표를 너에게 남기고야 말 터이니, 해가 바뀔 때마다 p.107 사람들은 내 슬픔을 흉내 내어 너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다. 너는 피는 꽃으로 변할 것이니 죽되 영영 죽는 것이 아니다. 베누스 여신은 아도니스의 피에다 향기로운 넥타르를 뿌렸다. 신주가 뿌려지자 아도니스의 피에 젖었던 노란모래에서 거품이 일었고 잠시 후에는 여기에서 핏빛 꽃이 피어났다. 꽃 모양은, 외피가 종자를 싸고 있는 석류꽃과 흡사했다. 그러나 이 꽃은 피기가 무섭게 곧 지고 말았다. 워낙 대가 연약한데다 꽃잎이 얇은지라, 꽃은 산들바람만 불어도 그 대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을 연상하여 이 꽃의 이름을 <아네모네>라고 부른다.

p.112 오르페우스가 변을 당할 당시 그 현장에서 여자들은 모두 땅바닥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땅바닥에 뿌리내리게 한 것이었다.

p.114 미다스 왕에게, 이 박쿠스 신이 내리는 선물은 좋을 것이 없었다, 그 까닭은 이 미다스 왕이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p.115 그는 이루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이 소원이 싫어 어떻게든 이를 모면해 볼 궁리를 했다. 그는 황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금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진 그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외쳤다.「아버지 바쿠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큰 죄를 지었나이다. 기도하옵건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재앙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신들은 자비로우시다. 미다스 왕이 제 잘못을 인정하자 박쿠스 신은 그에게 주었던 권능을 거두어주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p.116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너의 그 어리석은 욕망을 씻으려거든 사르디스에서 가까운 강으로 가거라. 그 강으로 가서 뤼디아 물길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 그 물이 발원한 곳이 이르거든 네 머리와 몸을 담그고 네 죄를 정하게 씻어라」

p.116 미다스 왕은 복귀를 마다하고 산이나 숲에 정을 붙였다. 그는 여전히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한번 당하고도 또 한번 당하게 되니, 어리석어도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p.117 그러나 미다스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하다면서 심판의 판정에 항변했다. 델로스의 신은, 이 같이 어리석은 자의 귀가 여는 인간의 귀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p.118 신은 이 미다스의 귀를 잡아 늘이고는 그 안에 털이 소복이 자라게 한 다음, 미다스의 머리에 달린 채로 이쪽저쪽으로 움직일 수도 있게 만들었다. 귀만 빼면 미다스의 다른 곳은 멀쩡했다. 단지 귀 모양만 바꾼 것이었다.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와 비슷했다.

p.122 「신들의 도우심을 입지 않았더라면 그대가 어찌 날 이길 수 있었으랴」

p.125 평화와 부부생활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습니다만,

p.126 형을 불쌍하게 여긴 포에부스 아폴로 신이 한 마리 새로 화하게 했습니다. 형의 몸에서는 날개도 돋아나고, 부리도 돋아났습니다. 보세요, 그렇게 성정이 나폭하던 형은 저렇게 새가 되었어도 남에게 온정을 베풀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p.142 알퀴오네는 케위크스가 왔던 흔적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이, 꿈속에서 케위크스가 서 있던 곳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울부짖었다.

p.142 「......슬픔과 싸우면서 살지는 않으렵니다. 그대 없는 세상을 살지는 않으렵니다. 우리를 태운 재가 비록 한 항아리에 들지는 못할지언정, 비록 그대와 나란히 묻히지 못할지언정 저는 그대 뒤를 따르렵니다. 제 뼈가 그대 뼈와 섞이지 못할지언정 제 이름만이라도 그대의 이름과 나란히 새겨지게 하렵니다.」알퀴오네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흐느낌이 알퀴오네의 말을 토막내었고, 슬픔이 가슴을 갈가리 찢었기 때문이었다.

p.144 알퀴오네는 이 방파제로 올라가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알퀴오네가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고, 알퀴오네에게 거기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장작 이러한 기적보다도 더욱 놀라운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방파제에서 뛰어내린 알퀴오네가 어느새 돋아난 날개로 날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새 새로 변신하여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것이었다. 바다 위를 날고 있는 알퀴오네의 입에서는,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전까지 입이었던 부리에서는 가냘픈 새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윽고 지아비의 시신 곁에 이른 알퀴오네는 새로 돋은 날개로 지아비의 몸을 가볍게 감싸고 부리를 그의 입술에다 대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케위크스가 알퀴오네의 입맞춤을 느끼고 몸을 움직일 까닭이 없다. 그러나 케위크스는 분명히 몸을 움직였다. 물결 때문이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케위크스는 분명히 몸을 움직인 것이었다. 신들이 이 둘을 가엾게 보고 케위크스까지 새로 변신시킨 것이었다. 둘의 사랑도 그때까지 유효했다. 날개를 얻었는데도 혼인의 서약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이 두 마리의 새는 짝을 지어 알을 낳았다. 알퀴오네는 바다 위에다 지은 둥지에서 이레 동안 알을 품었다. 이 동안은 바다도 잠잠했다. 아기들의 외조부가 되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외손자들을 위해 바람을 재웠기 때문이었다.

p.145 이 물총새들이 나란히 열을 지어 넓은 바다 위를 나는 광경을 보고, 이들이 끝내 이루어내고야 만 사랑을 찬탄하는 노인이었다.

p.146 <미안하오, 뒤를 쫓은 내가 잘못이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길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그대가 나로 인하여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뱀이 그대를 무는 순간 우리들의 사랑도 끝났소. 그러나 이렇게 만든 책임은 나에게 있소. 책임이 나에게 있는 만큼 나도 죽어서 그대에게 사죄하려 하오.> 아이사코스는 이런 말을 남기고는, 밑동이 파도에 깎인 아주 높은 절벽위로 올라가 몸을 던졌네. 그러나 테튀스 여신은 이 청년을 가엾게 보시고 손을 쓰셨다더군. 이 청년이 바닷물에 떨어지는 순간 온몸에서 깃털이 돋았다니까. 깃털이 돋았으니 바다에 떨어져도 죽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청년에게는 자살이 하릴없게 된 것이네. 아이사코스는 죽으려던 자기 뜻이 그렇게 꺾이자 몹시 짜증스러웠네. 그에게는 삶이라는 게 오히려 불명예스러웠던 것일세. 그래서 아이사코스는 새로 얻은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두 번째로 바다로 내리꽂혔네. 이번에도 깃털 때문에 자살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네. 격분한 아이사코스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네. 덕분에 그의 몸은 깊이깊이 가라앉을 수 있었지.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사랑하는 마음이 그 몸을 가벼워지게 했네. 아이사코스는 보다시피 목과 다리가 긴 새가 되었네. 이 새는 물을 좋아하네. 물에 뛰어들기를 좋아해서 이름조차 잠수조라네

p.152 이 세상의 한가운데, 말하자면 땅과 하늘과 바다 한가운데, 이 땅과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세상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고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이곳에 소문의 여신인 파마가 살고 있다. 집은, 소리를 잘 들리는 청동으로 지어져 있다. 그래서 오고가는 말로 집 안은 늘 시끄럽다. 침묵과 고요라는 것은 이 집안에 없다. 고함소리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시끌시끌,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 집에는, <경거망동>, 생각이 깊지 못한 <실수연발>, 터무니없는 <기쁨>, 소심한 <공포>, 당돌한 <선동>,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속삭임>이 식객으로 붙어산다. 파마 여신 자신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알아내어 온 세상에 그 소문을 퍼뜨린다.

p.167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말이네, 보는 눈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달라. 하지만 퀼라로스는 자타가 인정하는 미남 켄타우로스였네. 황금빛 수염에 묻히기 시작하는 턱, 어깨까지 치렁치렁하게

p.168 늘어진 황금빛 머리카락…… 어쨌든 이 자는 보기가 좋았네. 표정은 늘 싱싱했고, 목, 어깨, 손, 가슴 등등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은 모두가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 같았네. 말의 형상을 한 하반신도 상반신 못지않게 아름다웠어. 우리가 이놈을 보면서, 잔등에다 카스토르를 태웠으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네. 그만큼 힘살도 흠잡을 데가 없고 가슴이 넓었던 것일세. 그 많은 암 켄타우로스 중에서 퀼라로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깊은 숲속에 사는 이 휠로노메뿐이었다고 하더군. 이 휠로노메는 퀼라로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늘 갈기를 잘 빗질하고, 머리에는 오랑캐꽃이나 장미나 백합 같은 것을 꽂고 다녔다고 하더군. 어디 그 뿐인가. 파가사이 산 숲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하루에 두 번씩 얼굴을 씻었고, 하루에 두 번씩 그 물에 멱을 감았다고 하더군.

p.179 트로이아 군 쪽에서 보면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리스 군에서 보면 거룩한 평화의 수호자였던 이 불굴의 전쟁영웅도 결국은 화장단 위에서 재가 되었다. 아킬레오스의 갑옷을 지어주었던 그 신이 이번에는 불꽃으로 그의 육신을 소진시킨 것이었다. 살아 있을 때는 범 같은 장수였던 아킬레오스도 재가 되었을 때는 항아리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온 세상에 차고 넘쳤다. 아킬레오스라는 이름이 있을 곳으로 마땅한 곳은 넓디넓은 우주뿐이었다.

p.191 나는 내 웅변이 사감(私感)을 지어내는 웅변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자주 여러분을 이롭게 하는 데 쓰였던 이 웅변이 지금은 그 주인을 변호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지닌 재주를 써서 제 주장을 펴야하는 것이니까요.

p.208 피에 젖은 대지는, 휘아킨토스의 피에 젖은 대지에서 피었던 것과 똑같은 보랏빛 꽃을 피워 올렸다. 꽃잎 한가운데엔, 미소년 휘아킨토스의 죽음과 아이아스의 죽음을 동시에 상기시키는 문자(<αι>는 우리말의 <아아!>에 해당하는 말인 동시에 <아이아스>라는 이름의 두 문자가 되기도 한다는 뜻)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자는, 휘아킨토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탄식인 동시에 이 영웅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두 문자이기도 했다.

p.214 지아비를 위해, 조국을 위해 흘리던 눈물을 자기 자신을 위해 흘렸다. 네 몸에 난 상처는 너의 상처이자 나의 상처이기도 하다.

p.215 나의 트로이아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나의 슬픔 또한 끝나지 않았다. 내 지아비, 매 자식, 내 사위, 내 며느리 덕분에 그 땅의 왕비이자 종부였던 내가 지금은 내가족의 무덤에서 끌려나와 이렇듯 페넬로페의 종으로 끌려가는구나.

p.216 헤쿠바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슬픔과 고통이 목구멍을 막고, 눈물을 말려버린 것이었다. 바위처럼 버티고 선 채 헤쿠바는 모래 바닥과, 하늘과, 죽은 아들의 얼굴과, 아들의 몸에 난 상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p.217 헤쿠바는 날아오는 창과 돌을 손으로 막으면서 트라키아 백성들에게 사정을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헤쿠바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라 개 짖는 소리였다. 이런 일이 벌어졌던 땅에는, 지금도 이 일을 상기시키는 지명이 붙어 있다. 개가 된 헤쿠바는 과거의 고통을 잊지 못했던지 트라키아

p.218 땅을 방황하며 짖었다. 불쌍한 트로이아 왕비의 비극은 트로이아 유민(流民)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그리스 인들, 심지어는 신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유피테르 대신의 누이이자 아내인 유노 여신까지도 헤쿠바의 불행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p.234 갈라테이아여, 가슴에 붙은 사랑의 불길이 나를 태울 것만 같구나. 내 가슴속에는 아이트나 화산이 들어앉은 것 같은데, 어쩌란 말인가, 갈라테이아, 그대는 아는 척도 않으니…

p.238 바다의 신들은 나를 영접하면서 동아리가 된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수많은 바다의 신들은 저 오케아노스 신과 테튀스 여신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인간 세상에서 지은 죄를 닦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두 분신들께서는 내 죄를 닦아주셨다. 정죄의 주문을 아홉 번 외게 하셨고, 백 개의 강에 몸을 닦으라고 하셨다.

p.239 나는, 강을 찾아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사방에서 불이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 뒤로 나는 별별 희한한 일을 다 겪었으나, 그대에게 들려줄 마음만 있을 뿐 기억할 수가 없구나.

p.242 「그런 여자를 두고 가슴을 앓기보다는, 그대를 원하고 그대를 따르고자 하는 여성, 그대가 사랑하는 만큼 그대를 사랑하는 여성을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남의 짝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니까요. 그대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던질 생각이 있거든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세요. 아직은 늦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외모에 자신을 가지세요.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신의 딸인 나는 이래봬도 여신이랍니다. 게다가 내가 가진 약초의 효험도 만만찮고, 내가 풍기는 매력 또한 만만찮답니다. 그러니, 나를 차지할 생각을 해보세요. 그대를 능욕한 계집일랑 잊어버리고, 그대를 따르고자 하는 나를 따르세요. 그대 마음먹기에 따라 나는 그대의 것이 될 수 있고 그대는 내 것이 될 수 있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피차 어울리는 일일 테니까요.」

p.244 후일 스퀼라는, 오뒤세우스의 재를 나파시키고 수많은 이타카 용사들을 죽임으로써 키르케에게 복수했다. 이 스퀼라가 지급은 바위로 변하여 파도 위에 우뚝 서 있다. 바위로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스퀼라는 여전히 뱃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p.250 나는 순진했는지라, 흙덩어리 하나를 가리키면서, 저 흙덩어리에 든 흙의 낱알 수만큼 생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만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영원한 청춘을 함께 요구하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이제 인생의 황금기는 나를 떠나고, 황혼이 비틀거리며 내게로 다가옵니다만 나는 이런 채로 오래오래 더 살아야 합니다. 오래오래 살다보면 언젠가는 내 몸이 한 움큼도 못 되게 오그라지고 내 사지 역시 오그라져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날이 오겠지요. 부가 나를 보고, 한때는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는 신까지 즐겁게 해준 적이 있는 여자라고 하겠습니까? 이제는 포에부스 아폴로 신께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거나, 알아보시더라도 내게 애정을 기울이신 일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실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내 모습도 사라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모습은 사라질지언정 목소리만은 이 땅에 남겨야 하는 팔자를 타고났습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고 그게 내 목소리인 줄 알게 되겠지요.

p.254 나는 한편으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도토리와 풀잎과 풀뿌리로 연명했네. 외로웠네. 그 죽음의 섬에 홀로 남은 내게는 희망도 없고, 희망을 가져야 할 건더기도 없었네.

p.263 <나를 사로잡은 그대의 그 아름다운 눈, 여신은 나를 사로잡아 이렇듯 부끄러움을 모르게 한 그대의 아름다운 청춘에 기대어 드리는 말씀이니, 들으소서. 원컨대 내게 친절을 베푸시어 나를 사랑해 주시고, 만물을 내려다보시는 태양신의 사위가 되소서. 마음 문을 여시되, 티탄의 딸인 이 키르케를 욕보이지 마소서.> 그러나 피쿠스 왕은 키르케 여신의 애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이러면서요. <그대가 누구신지 모르나 나는 그대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나는 이미 다른 영성의 포로가 된 몸, 오래오래 이렇게 포로로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이랍니다. 그러니 운명의 여신이 나와 야누스의 딸 카넨스를 떼어놓지 않는 한, 혼외(婚外)의 사랑을 유혹하여 사랑의 맹세를 깨뜨리게 하지 마시오.>

p.265 새색시였던 요정 카넨스는, 옷과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울고 있는 것으로는 마음이 풀리지 않았던지 궁전을 뛰쳐나가 지향도 없이 라티움 숲을 누볐어요. 엿새 밤, 엿새 낮을 카넨스는 산과 골짜기를 누볐어요.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말이죠. 슬픔에 젖어, 기나긴 방황에 지쳐 강둑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카넨스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튀브리스 강의 신이었다고 해요. 카넨스는 이 강둑에 앉아 울면서, 곡을 붙여 신세타령을 했다는데, 그 노랫소리는 흡사 백조가 죽기 직전에 부른다는 마지막 노래 같았다고 해요. 슬픔은 결국 이 카넨스의 골수부터 녹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카넨스는 이렇게 녹아 사라져버렸어요.

p.274 슬피 우는 세들의 모습에서 패망하는 도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새들의 이름과 이때 패망한 도시의 이름이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아르데아는 이로써 날개를 치며 제 운명을 슬픈 울음으로 우는 새가 된 것이었다.

p.281-282 아기양 별자기가 잠길 즈음에 끓어오르는 바다보다 잔인했고, 노리쿰 대장간에서 벼른 쇠붙이나 땅바닥에 박힌 돌보다 더 단단했어요. 아낙사레테는 쌀쌀맞게 구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청년을 멸시하고 놀리기까지 하는가 하면 청년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막말까지 해서, 이 청년의 가슴에 남아 있던 사랑에 대한 가냘픈 희망까지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어요.

p.284 남의 사랑은 본 척도 않는 그 오만한 마음을 버리세요. 버리시고 그대를 사랑하는 분에게 사랑으로 화답하세요. 그래서 복을 지으면 봄 서리는 그대 과수원의 열매 눈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고, 여름의 태풍은 그대 과수원의 꽃을 날리지 않을 거예요.

p.300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드러난 것은 단지 찰나적인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항상 흐릅니다, 강처럼 흐릅니다.

p.301 네 계절이 차례로 바뀌는 것을 눈여겨보셨습니까? 이 네계절은 우리의 인생과 비숫합니다. 초봄은 부드럽고 따사롭습니다. 아직은 튼튼하지도 곧지도 못하지만, 초봄의 밭에서 자라는 곡물은 농부들의 가슴을 희망으로 채워줍니다. 식물이라는 식물은 다 꽃을 피우고, 기름진 땅은 색색의 꽃을 한아름 안고 봄을 노래하지만, 나뭇잎에는 아직 힘이 없습니다,. 봄이 자라 여름으로 접어들면 계절은 젊은이를 연상시키게 됩니다. 일년 중에 이때만큼 튼튼한 계절, 풍부한 계절, 뜨거운 계절, 작열하는 계절은 없습ㄴ이다. 청춘의 시절이 끝나면 가을이 계절을 이어받습니다. 가을은 풍요와 성숙의 계절입니다. 청춘기와 노년기 사이에 드는 계절,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계절입니다. 이어서 노년의 겨울이 추위에 떨면서, 비툴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옵니다, 머리가 빠지거나 백발이 된 모습을 하고 다가옵니다.

p.302 이와 같이 우리의 육체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내일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 혹은 오늘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태 속에 있던 시절이 있습니다. 인간이 될 것이라는 약속만을 받은, 씨앗 같은 상태로 말이지요. 자연은 참으로 섬세한 손길로 이 씨앗을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이 너무 비좁아 우리가 몸부림치면, 자연은 우리를 우리의 집에서 텅 빈 공간으로 밀어냅니다. 날빛 아래로 태어난 아기는 연약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시기가 끝나면 아기는 짐승처럼 사지로 기어다니기 시작하고, 또 이 시기가 지나면 아기는, 떨리는 다리, 불안정한 다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 다리로 섭니다,. 옆에 무엇이 있으면 잡고서라도 말이지요, 그러다 튼튼한 다리로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재빠른 다리로 세상을 달립니다. 이윽고 청년을 보내고 중년을 보내면, 우리는 노년에 이르는 비탈길, 인생의 황혼으로 통하는 내리막길에 세게 됩니다.

....나이는, 청년기와 중년기의 힘을 빼앗아버립니다....탐욕스러운 미식가인 세월은 모든 것을 부수고 갉아 마침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p.303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합(合))은 변하지 않습니다.

p.304

나는 같은 형상을 영원히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땅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p.313 하늘과 하늘 아래 있는 만물은 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땅과 땅 위에 있는 만물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피조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도 변합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날개 달린 영혼도 여기에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날개 달린 우리의 영혼은 들짐승의 가슴을 찾아들어갈 수도 있고, 가축의 가슴을 찾아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짐승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짐승의 몸에 어쩌면 우리 부모형제나, 우리 친척,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영혼이 깃들여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이 예사롭지 않는 지위를 불명예스럽게 하거나 튀에스테스식(式) 식사로 우리의 배로 채우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맙시다.

p.314 소에게는 쟁기나 끌게 하십시오. 그러다 나이를 먹어 죽게 되면 그 죽음을 슬퍼해 주십시오....해로운 짐승은 죽이되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 고기가 우리 입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마십시오. 거친 음식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는 이렇게 가르쳤으나 사람들은 그의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p.333 베누스여, 네가 관심하는 카에사르는 운명의 서에 기록된 삶을 다 살았다. 이 땅에서 살게 되어 있는 햇수를 다 채웠다는 말이다. 카에사르는 이제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죽는 것이 아니다. 죽어서는 신이 되어 하늘에 오르게 되어 있고, 인간은 신이 된 카에사르를 위해 신전을 세우게 되어 있다. 카에사르의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게 되며 아버지를 살해한 자들과 복수전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우리를 제 편으로 끌어넣어 싸우게 된다. 뿐이냐, 이 아우구스투스는 위대한 로마의 지도자가 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포위된 무티나 서은 그에게 강화를 빌고, 파르살리아는 그의 막강한 힘을 알고는 땅을 칠 것이며, 마케도니아의 필리피는 다시 한번 피투성이가 된다. 폼페이우스라는 위대한 이름은 시켈리아의 바다에서 사라질 것이다.

p.335 베누스는 카에사르의 육신에서 갓 떨어져나온 그의 영혼을 수습하여,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가슴으로 끌어안고 별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올라갔다. 그러나 여신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바람에 영혼을 놓치고 말았다. 영혼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여신의 품을 빠져나온 영혼은 하늘 높이 솟아 달에 이르기까지 날아오르다가 드리어 긴 불꽃의 꼬리가 달린 별이 되었다.

p.336

이제 내 일은 끝났다.

유피테르 대신의 분노도, 불길도, 칼도,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不死)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초판역자후기: 오비디우스의 유쾌한 경망(輕妄)>

p.341 호메로스와는 달리, 이 오비디우스를 읽다보면 이따금씩 궁색한 대목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오비디우스가 저희 왕통(王統)을 그리스의 신통(神統)에 끌어다 붙이기 위해 그리스 신화를 지나치게 아전인수로 윤색해서 풀어먹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따금씩 신화의 아귀가 맞지 않아서 마뜩지 못한 대목을 만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귀합니다. 인류 2천년 문화의 두 대궁 중 한 대궁은 기독교적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한 문화인데, 그 인식체계에 물들지 않는 고대의 인식체계 그리스도 이전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읽는 것은 신선한 읽기의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하늘이 열리던 때의 아득한 때와 우리가 사는 때 사이에 가로 놓인 긴긴 세월이 소거(消去)되는 듯한 희한한 경험도 가능하게 합니다.

 

* 내가 저자라면 *

“인류 2천년 문화의 두 대궁 중 한 대궁은 기독교적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한 문화인데, 그 인식체계에 물들지 않는 고대의 인식체계 그리스도 이전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읽는 것은 신선한 읽기의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하늘이 열리던 때의 아득한 때와 우리가 사는 때 사이에 가로 놓인 긴긴 세월이 소거(消去)되는 듯한 희한한 경험도 가능하게 합니다.”라는 역자의 말처럼 <변신이야기>를 읽는 묘미는 서양의 역사라고 하면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는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만 생각하게 되는데, 기원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한 태초의 역사부터 신화적 역사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의 역사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태초의 천지창조 시대부터 오비디우스가 태어나고 살았던 즈음의 카에사르와 옥타비아누스의 시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1부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제2부 신들의 전성시대
제3부 박쿠스의 탄생 외
제4부 페르세오스와 메두사 외
제5부 무사의 탄생 외
제6부 신들의 복수
제7부 영웅의 시대
제8부 인간의 시대
제9부 헤라클래스 외
제10부 오르페우스의 노래 외
제11부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 외
제12부 트로이 전쟁 외
제13부 유민의 시대
제14부 로몰루스와 레무스 외
제15부 카에사르의 승천 외

그런데 과연 오비디우스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황제인 옥타비아누스의 시절을 굳이 신화와 전설을 기반으로 한 문학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용으로 서술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오비디우스는 순수문학보다는 현실에 기반한 문학을 하고자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카에사르의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게 되며 아버지를 살해한 자들과 복수전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우리를 제 편으로 끌어넣어 싸우게 된다. 뿐이냐, 이 아우구스투스는 위대한 로마의 지도자가 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포위된 무티나 성은 그에게 강화를 빌고, 파르살리아는 그의 막강한 힘을 알고는 땅을 칠 것이며, 마케도니아의 필리피는 다시 한번 피투성이가 된다.”는 구절을 보면 당시 권력에 보여주려고 지나치게 아첨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변신이야기>가 로마제국 성립의 역사가 천지창조 시절부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그 속의 신화와 전설을 제시하면서 카에사르와 옥타비아누스에 이르기까지 로마제국 성립의 당위성을 보여주려고 쓰여진 느낌을 받는다.

오비디우스는 책에서 자신의 사상적 기반을 다음의 퓌타고라스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하늘과 하늘 아래 있는 만물은 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땅과 땅 위에 있는 만물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피조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도 변합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날개 달린 영혼도 여기에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날개 달린 우리의 영혼은 들짐승의 가슴을 찾아들어갈 수도 있고, 가축의 가슴을 찾아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짐승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짐승의 몸에 어쩌면 우리 부모형제나, 우리 친척,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의 구절을 보면 기원전후의 로마 시대의 사상이 불교의 윤회사상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당시 시대에 서양과 동양은 서로 교류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꿈인 “영원불멸(永遠不滅)”이라는 모티브 아래에 서양은 “변신(變身)”, 동양은 “환생(幻生)”의 개념을 바탕으로 비슷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혼의 불멸과 그 불멸의 영혼이 다른 형태의 몸으로 변한다는 모티프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고, 그것은 인간이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보완점>

서양의 신화와 전설 중 ‘변신의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하는 동양의 ‘변신의 이야기’를 비교해서 수록하는 것도 좋겠다. 보통의 우리들은 동서양의 세계관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서양의 사상이 지리적인 문화적인 특성상 분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이라는 공통된 인식에 따라 비슷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할 수도 없다. 예를들면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서양의 ‘미다스의 귀’와 동양의 ‘임금님귀는 당나귀’의 내용을 함께 제시하여 동서양의 비슷한 세계관을 읽어내어 동서양이 사실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작업도 의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퓌타고라스의 순환적 세계관(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과 장자의 순환적 세계관(오비디우스보다 몇 백년을 앞서 살았던 중국의 장자는 영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을 불꽃이 몸을 땔나무에 비유했다. 땔나무가 타오를 때의 불꽃이 인간의 영혼이라면 땔나무는 몸이라는 것이다. 땔나무가 다 타버려도 불꽃은 다른 땔나무를 통해 계속 이어진다고 했다. 세상에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변할 뿐, 장자에게 시간은 직선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었다.)이 닮아있음을 제시하여 동서양 공통의 신화와 전설의 모티브, 철학적 인식을 찾아내는 작업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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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13 18:32:47 *.236.3.241
리뷰에 공을 많이 들인 게 느껴진다.

오비디우스에 대한 상세한 소개하며,
동서양의 변신이야기라, 컨셉이 흥미를 팍 땡기는데 ㅎㅎㅎ

장자와의 비교를 통해 순환적 세계관을 이끌어낸 시도 신선했어
바야흐로 <연주의 시대>가 도래하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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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4.13 18:40:10 *.30.254.28

막내같은 연주의 맏이같은 리뷰에,
맏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일뿐...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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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4.13 20:29:45 *.219.109.113
나도 한표.
연주의 '내가 저자라면' 참 좋네.   여행가서 아침도 안 먹으며 책을 읽던
 노력의 열매이구나.
분발해야겠다.
참 잘했어요. 별 다섯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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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4.14 00:05:19 *.129.207.200
리뷰도 선생님 답구나. 

친절하면서, 상세하다. 

어디서 참고했어? 자료도 잘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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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11:38:51 *.106.7.10
정말 리뷰 잘 읽었어.
특히 <오비디우스 르네상스>와 <동양 사상과의 비교> 새롭고 좋다.
정신없이 숙제하던 나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는다.
연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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