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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2일 06시 28분 등록

변신이야기_Metamorphoses /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1. 저자 오비디우스에 대하여

오비디우스.JPG

 

로마에 대한 사랑을 온갖 전설과 신화로써 노래한 시인. 오비디우스. 모국(母國) 로마에 대한 사랑은 종국에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끝나게 되지만 그가 보여 준 사랑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 곳곳에서 노래되고 친구처럼 이야기 되어지고 있다.

 

우연히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한 악타이온은 그 벌로 사슴으로 바뀌게 되고, 결국 자신의 사냥개에게 잡아 먹히게 된다. 이는 의도하지 않은 죄와 그 벌에 대한 내용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악타이온은 범하여서는 안될 것을 범하게 됨으로써 받게 되는 저주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자신의 유배와 로마로 돌아가지 못한 처지를 악타이온과 비교하였다고 전해진다. 로마에 대한 사랑을 온갖 전설과 신화로써 노래한 시인. 오비디우스. 모국(母國) 로마에 대한 사랑은 종국에는 일방적인 짝사랑의 파국으로 끝나게 되지만 그가 보여 준 사랑의 노래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 곳곳에서 노래되고 친구처럼 이야기 되어지고 있다. 그의 허망한 사랑의 연유를 이해하면서 <변신이야기>의 결사를 읽으니 그의 마음이 읽는 눈을 따라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그의 사랑은 위대했다.

 

<변신이야기>를 통해서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왜 오비디우스가 그리스 신화를 다시 변용하여 로마의 신화를 쓰게 되었는지 시대적인 배경을 잠깐 짚어보았다.

먼저 오비디우스가 살았던 시대(BC43 ~ AD18)는 로마가 기원전 146년 코린토스 전투에서 마케도니아를 물리쳐 그리스를 로마의 속국으로 삼은 이후의 시대이다. 그 후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기원전 27년에서 서기 14년 까지 로마제국의 초대황제로 재위하였으니 그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인 로마문학사의 황금기에 살았던 것이다.

로마는 군대의 힘으로 그리스를 점령하였지만 그리스의 높은 문화수준을 동경하였으며 이를 존중하였다고 한다. 이런 동경과 존중에서 시작된 모방은 그저 겉모습만을 흉내 내는 답습이 아니라 로마의 상황과 시대적 요구에 맞게 창조적으로 변용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로마는 더 나은 문학적 예술적 가치들을 창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역사적 흐름에서 오비디우스의 작품들 또한 로마 문화를 지탱하는 큰 기둥으로서 이렇게 살아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리라.

 

[1] 오비디우스의 생애와 작품들

오비디우스의 생애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그의 작품 <비탄(悲嘆)의 노래>4 10부에 나오는 그 자신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오비디우스라고 부르는 로마 시인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Publius Ovidius Naso)는 기원전43 3 20일 로마에서 동쪽으로 150킬로미터쯤 떨어진 중부 이탈리아 술모(Sulmo)시의 기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일 년 전인 기원전 44 3 15일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일파에게 암살됨으로써 로마는 또다시 내란에 휩쓸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로마는 정치체제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면서 흔히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져 있는 옥타비아누스(기원전63-기원후14)가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된다. 그리하여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의 이 시대를 흔히 ‘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부른다.

오비디우스는 한 살 위한 형과 함께 로마에 가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시 엘리트 청년들이 그러하듯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려고 수사학(修辭學)을 공부한다. 공부를 마친 뒤 그는 그리스의 아테나이와 소아시아와 시킬리아를 여행하고 로마로 돌아와 하급 관직에 취임했으나 문학에 대한 미련 대문에 관직을 버리고 시인이 된다.

오비디우스는 세 번 결혼하여 둘째 부인에게서 딸을 하나 얻었으며, 그의 세 번째 부인은 그가 귀양 가 있는 동안 그에게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오비디우스는 처음에 헥사메터와 펜타메테로 이루어진 비가조(悲歌調) 대구(對句)로 연애시를 써서 큰 성공을 거둔다. 지금 남아있는 그의 시들은 <변신이야기>에서 서사시 운율인 헥사메터가 사용된 것 말고는 모두 비가조 대구로 씌어졌는데, 이 운율은 그리스 시대부터 비가(悲歌)와 경구(警句)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여러 가자 성찰을 표현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오비디우스의 초기 작품으로는 여러 가지 사랑이야기를 담은 <사랑의 노래>(기원전 20)와 신화와 전설 속의 유명 여성들이 자신들을 버렸거나 떠나 있는 남편이나 애인에게 예컨대 페넬로페가 울렉세스에게,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된 <여걸들의 서한집>(기원전 1세기 말), 역시 신화적 요소와 세속적 풍습을 묘하게 엮어 어떻게 하면 남자들이 여자의 호감을 살 수 있는지 조언해주는 <사랑의 기술 Art Amatoria>(기원전 1), 실연(失戀)한 자들에게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랑의 치료약>(기원후 1) 등이 있다.

오비디우스는 기원후 2년에 <로마의 축제일들>과 함께 자신의 대표작인 <변신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로마의 축제와 관습을 별자리 이야기들과 로마의 역사에 관한 일화들과 묶어 월별로 설명하고 있는 <로마의 축제일들>은 그가 기원후 8년 유배될 때까지 완성되지 못해 1~6월분만 남아 있다. 이를 유배지에서 부분적으로 손질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천문학에서는 기원전 3세기 전반에 활동하던 그리스 시인 아라투스의 <현상들>로부터, 로마의 종교와 관습의 기원에서는 기원전 3세기 전반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 박식 시인 칼리마쿠스의 <기원설명>으로부터 로마의 전설들은 로마의 선배 시인 프로페르티우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의 축제일들>에서도 프로세프피나의 납치와 같은 그리스 신화를 가끔 언급하는데 그럴 경우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내용상 중복되지 않게 하려고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이때는 이미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와 프로페프티우스도 세상을 떠나고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문학계를 대표하고 있었다. 시인으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어느 날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흑해 서안의 토미스로 유배된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그는 로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날의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 지 10년 만인 기원후 17년 또는 18년에 세상을 떠난다. 유배지에서의 비참한 생활과 로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아니면 로마에서 좀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소망은 그가 유배지에서 쓴 <비탄의 노래>(기원후 8~12) <흑해로부터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유배된 이유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 자신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두 가지 죄 즉, 시와 과오 때문에 유배되었는데 이에 관해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시가 <사랑의 기술>일 것으로 보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 시가 나온 지 8년 뒤 문제가 된 셈이다. 따라서 그가 추방된 결정적인 이유는 '과오'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오비디우는 자신의 처지를 악타이온의 그것에 비교하고 있다. 오비디우스가 본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우구스투스 자신이나 그의 바람둥이 딸 율리아나 아우구스투스의 재혼한 아내 리비아의 부적절한 행위나 그 밖에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될 짓을 그가 목격한 것일까? 아니면 아들이 없던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가 되려고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의 아들들과 리비아가 데리고 온 아들 티베리우스가 권력 투쟁을 할 때 오비디우스는 율리라의 아들인 가이유스 카이사르의 편이 되는데, 가이유스 카이사르가 기원후 4년 돌연사하자 리비아와 티베리우스가 가이유스 카리사르의 추종자들에게 보복하는 과정에서 오비디우스도 유배되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경우 아우구스투스가 세상을 떠나고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된 뒤에도 오비디우스가 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 모든 견해는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오비디우스의 유배를 철회하거나 아니면 로마에서 좀더 가까운 곳으로 유배지를 바꿔 달라고 직간접으로 청원하지만 끝내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출처 : 변신이야기 / 천병희 / 도서출판 숲 / 옮긴이 해제에서]

 

[2]

그리스 문화를 존중하는 로마인의 경향은 그들의 열등감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민족적 편견이나 차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로마인의 특질인 개방성과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로 이루어진 보편 제국을 통치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뛰어난 지배 감각의 증거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로마가 멸망한 지 1천 년이 지난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업이 계속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그 사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계속 이익을 얻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로마인의 가장 우수한 자질을 들라면, 모든 일은 자기네끼리만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주저 없이 단언하겠습니다. 정치와 군사, 국가 규모의 경제정책과 사회간접자본 정비는 자신들의 임무로 삼았지만, 그 밖의 일은 모두 피지배자들에게 맡겼습니다.

통치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면, 우선 각 분야에 뛰어난 인물들에게 맡기는 편이 제국의 운영상 효율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둘째, 패자라 해도 생존의 이유와 기쁨, 그리고 인간 사회에 필요한 일과 거기에 합당한 보수를 주는 편이 지배하는 데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인이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를 확립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외부의 적에 대한 방위에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부의 적으로 변할 수 있는 피지배자들이 로마에 등을 돌리지 않도록 애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처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 중에서]

 

[3]

지식인들이 라틴어로 글을 쓰던 서양 중세에서 그리스 로마 작가들 가운데 오디우스만큼 많이 읽힌 작가는 없다. 그래서 중세학자 트라우베는 서양의 12-13세기를 오비디우스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단테가 그랬듯이 서양의 작가들이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스 로마 작가들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리스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건너와 그리스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라틴 작가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더욱더 줄어들었고, 이 점에서 오비디우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 20세기의 1980년대 이후로 오비디우스는 고전학자들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애호하는 이뿐 아니라 시인과 문인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어 제2의 ‘오비디우스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20세기의 1970년대만 해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한 고대 작가가 이토록 인기를 누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독자들이 오비디우스에게 매혹당하는 것은 우선 그의 작품들이 재미있으면서 쉽게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별다른 사전시식이나 주석 없이도 그런대로 부담감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그것이 신화(神話)이든 관습이든 권력이든 이를 거리낌 없이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현대적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그는 <변신이야기>에서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 이야기(8)를 하면서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들의 거의 다 모였어도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고 그중 한 명인 네스토르는 멧돼지를 피해 장대높이뛰기를 하듯 창 자루를 짚고 나뭇가지 위로 도망치게 하는데, 이는 우리가 다른 문헌에서 알고 있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달리 말하면 오비디우스는 신화속의 영웅들을 우리와는 다른 머나먼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와 비슷한 또는 가까운 소설 속의 등장인물처럼 그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오비디우스에게는 다른 매력도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네스토르가 트로이야 전쟁 때 그리스의 영웅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레 늘어놓는 장면을 알아야만 우리는 앞서 말한 네스토르의 비겁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충분히 알수 있다. 이렇듯 오비디우슨 겉보기와는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사전지식이 있어야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매우 ‘박식(博識)한 시인’임을 우리는 군데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중성이 그의 지속적인 인기를 설명해줄 수 있다.

 

이렇듯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그는 기원전 8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으로 로마 제국 변방인 흑해 서안의 토미스(오늘날의 루마니아)로 유배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의 야만인들 사이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 지 10여 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시인 오비디우슨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문명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그가 쓴 책들은 공공도서관에서 철거되기도 했지만, 그는 호메로스, 3대 비극시인(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베르길리우스와 더불어 그리스 로마 문학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잊혀지지 않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로마의 축제일 / 한길사 / 출판사 서평에서]

http://www.yes24.com/24/goods/1491141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변신이야기 1

 

마음의 원()에 쫓기어 여기 만물의 변신(變身)이야기를 펼치려 하오니, 바라건대 신들이시여, 만물을 이렇듯이 변신하게 한 이들이 곧 신들이시니 내 뜻을 어여쁘게 보시어 우주가 개벽할 적부터 내가 사는 이날 이때까지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힘을 빌려주소서.(15)

 

이 같은 반목에 종지부를 찍은 이는, 이런 요소들보다는 훨씬 빼어난 자연이라는 신이었다. (16)

 

이 짐승들보다는 신들에 가깝고, 또 지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생물을 지배할 만한 존재는 없었다. 인류가, 인간이 창조된 것은 이즈음이었다. 이 인간은 세계의 시원이자 만물의 조물주인 신이, 신의 씨앗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고, 이아페토스의 아들 프로메테오스가 천공에서 갓 떨어져 나온, 따라서 그때까지는 여전히 천상적(天上的)인 것이 조금은 남아 있는 흙덩어리를 강물에다 이겨, 만물을 다스리는 조물주와 그 모양이 비슷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19)

 

처음은 황금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관리도 없었고 법률도 없었다.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알아서 서로를 믿었고 서로에게 정의로웠다. 이 시대 사람들은 형벌도 알지 못했고 무서운 눈총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았다. (20)

 

사투르투스(크로노스)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스어 <크로노스> <시간>이라는 뜻이다. 크로노스의 이러한 속성은 태어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 자체의 속성을 상징한다. 사쿠르누스는 자기 자식인 유피테르 6남매도 모조리 삼켰다가 다시 토해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유피테르 6남매가 이로써 시간을 극복했음을 상징한다. (21)

 

유피테르는 늘 봄이던 계절을 뚝 분질러 겨울과 여름, 날씨가 변덕스러운 가을, 짧은 봄, 이렇게 네 계절로 나누었다. (22)

 

세 번째 시대에 해당하는 청동의 시대다. 청동시대 인간은 은의 시대 인간보다 성정이 거칠어 더러 무기를 잡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흉악하다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온 시대는 철의 시대다. 이 천박한 금속의 시대가 오자 인간들 사이에서는 악행이 꼬리를 물고 자행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순결, 정직, 성실성 같은 덕목을 기피하고 오로지 기만과 부실과 배반과 폭력과 탐욕만을 좇았다. (23)

 

이때까지만 해도 햇빛과 공기와 함께 모든 인간의 공유물이었던 땅거죽도, 서로 제 땅이라고 우기는 이른바 땅 임자들이 그은 경계선을 얼룩졌다. 사람들은, 넉넉한 대지로부터 곡물이나 먹이를 거두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대지에 내장에까지 침입하여 대지가 스튁스 근처에다 감추어둔 재보와 인간에게 악업을 부추기는 보화를 파내었다. (23)

 

대지는 이로써 제 혈통이 끊어질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이 뜨거운 피에다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의 모습으로 환생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간은 거인들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이들이 올륌포스 신들을 업수이 여기는, 흉포하고 잔인한 족속이었던 것을 보면, 피에서 태어난 피의 자식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24)

 

그러나 뤼카온이라는 자는 이 신심있는 백성들의 기도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 자가 신인지 인간인지 내 시험해 보리라. 내 시험에 오류가 없을 터이니 이로써 드러나는 저 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혹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28)

 

뤼카온이라는 이 자, 이리로 변신한 것이오. 이 자가 지니고 있던 광포한 성정이 모여 입은 괴물의 주둥이가 되고 말았소. (29)

 

그러나 신들의 왕 유피테르는,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인 즉, 신드이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는, 새로운 종족, 이 전의 종족과는 전혀 다른, 전혀 불가사의한 기원에 그 뿌리를 두는 새 인류에게 땅을 맡길 것을 약속했다. (30)

 

그는 퀴클롭스가 만들어 바친 무기를 거두고는 다른 방법으로 인류를 벌하기로 마음먹었다. , 하늘 하나 가득 비를 쏟아, 물로써 인류를 멸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었다. (30)

 

물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즈음 데우칼리온이라는 사람과 그의 아내 되는 퓌라는 조그만 배를 타고 이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데우칼리온은 그 많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바르고 의롭게 살아온 사람이었고 퓌라는 그 많은 세상 여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믿음이 깊은 여자였다. 데우칼리온 부부는 배에서 내리자 코뤼코스의 요정들과 산신(山神)들과 테미스 여신에게 기도했다.

유피테르는 물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피테르는 그 많던 사내들 중에서 오직 하나. 그 많던 여자들 가운데서 오직 하나만 살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둘에게는 지은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이 둘이야말로 직심(直心)스럽게 신들을 섬겨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피테르는 북풍에게 명하여 비구름을 쫓고 안개의 너울을 걷게 한 다음 하늘에서는 땅이, 땅에서는 바다가 보이게 했다.(34)

 

내 아내이자 내 사촌이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퓌라여, 처음에는 혈육으로 인연을 맺더니 이윽고 혼인으로 인연을 맺은 퓌라여, 이제 이 위난(危難)이 또 한번 우리를 하나로 묶는구나. 이 넓은 땅, 해뜨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살아있는 인간은 우리 둘뿐이다.

가련한 아내여, 우면이 나를 앗아가고 그대만 남겨놓았더라면 그대 마음이 어떠하였으랴! 홀로 남아 있었더라면 두려움은 어찌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며 슬픔에 잠기면 누가 그대를 달랠 수 있었으랴. 그러나 나를 믿으라. 바다가 그대마저 앗아갔더라면 나는 그대 뒤를 다라 바다가 나까지 앗아가게 했으리라. 나에게 아비 되는 재주가 남아 있어서 자손을 퍼뜨리고 새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면 좀 좋으랴. 내게 흙을 이겨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여기에다 숨결을 불어넣는 재주가 있다면 좀 좋으랴. 그러나 이제 인류의 운명은 우리 둘에게 달려 있다. 이것이 신들의 뜻....우리는 인류의 본으로 남은 것이다.(36)

 

신들의 마음이 신심(信心)이 있는 자들의 기도로 움직이고 부드러워진다면, 신들의 분노가 이로써 가라앉는다면. 일러주소서, 테미스여신이시여, 어찌하면 인류가 절멸한 이 땅의 이 재난을 수습할 수 있을지요. 자비로우신 여신이시여, 환란을 당한 저희들을 도와주소서...(37)

 

이러한 피조물들은, 온기와 습기가 알맞게 어울리는 환경에서만 그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물과 불은 비록 상극이기는 하나 습윤한 온기는 만물의 근원이었다. (39)

 

포에부스, 그대의 활이 아무거나 쏘아 맞히는 활이라면, 내 활은 그대를 맞힐 수 있는 활이오. 짐승이 신들만 못하듯이 그대의 영광 또한 내 영광만 못할 것이오. (43)

 

이 강들은 다프네의 아버지 페네이오스에게 축하 인사를 해야 할지,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채로 강이라는 강, 흐름이라는 흐름은 오랜 방황으로 고단해진 몸을 이끌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50)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고, 내 말을 듣고 계시는, 찬연히 빛나는 태양에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는 네가 우러러보고 있는 태양, 온 세상을 밝히는 태양의 아들이다. (60)

 

내게 네 소원을 하나 말하여라. 내가 이루어지게 하겠다. 신들이 기대어 맹세하는 강, 아직 내 눈으로는 보지 못한 강이 내 약속을 보증하리라. (63)

 

그러나,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이것은 명예가 아니고 파멸의 씨앗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이 은혜가 아니고 파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66)

 

아버지의 수레를 몰던 파에톤,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이날 하루만은 태양이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타오르던 불길이 세상을 비추었더란다. 세상을 태우던 불길이 하루만이나마 세상을 비추었다는 이야기가 묘하다. 그러고 보면, 재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익한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이다. (78)

 

"어머니, 저를 다치지 마세요, 제발 꺽지 마세요. 나무로 둔갑했어도 제 몸의 일부랍니다. , 어머니, 안녕히"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 껍질이 딸들의 입을 막았다. 이 나무 껍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태양빛에 굳으면서 호박 구슬이 되어 가지에서 강물로 떨어졌다. 강물은 이 호박 구슬을 물 밑에 간직했다. 뒷날 로마 부인네들의 장신구가 된 호박 구슬이 바로 이것이다.(80)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은, 일식(日蝕)때 그러듯이 늘 슬픔에 잠긴 채 기가 죽어 지냈다. 그래서 그는 빛을 싫어했고, 자기 자신을 싫어했으며 화창한 날을 싫어했다. (81)

 

곰 모습을 하고 있는 칼리스토는, 아들에게 다가서고 싶어 견딜 수 없었지만, 한 발짝만 접근하면 아들의 창이 날아와 가슴에 꽂힐 터였다. 그러나 이 모자에게 서로 죽이고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돌개바람을 시켜 이들을 빈 하늘로 옮기게 하고 다시 이들을 이웃해 있는 두 개의 별자리로 박아준 것이었다. (88)

 

미네르바 여신의 신조 자리는 밤새에게로 돌아가버린 것이지. 나는 하룻밤 사이에 밤새에게 내 자리를 빼앗긴 거야.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았는지 알아? 여신께서는 뭇 새들에게 경고하신 거야. 함부로 입을 놀리면, 혹은 공연히 입을 놀리면 이 꼴이 된다는 걸 나를 통해서 보이신 것이야. (92)

 

이 뉘티메네는 새가 되고도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사람들의 눈이 있을 때나, 날 빛이 비칠 때는 날지 않아. 말하자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밤에만 나는 것이지. 이 뉘티메네는 하늘에 있다가, 다른 새들에게 쫓겨 땅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있어. (94)

 

, 운명의 여신들이 제 말을 엿듣고 있었군요. 제가 얻은 이 예언하는 능력은 은혜로 얻은 권능이 아니라 저에게 내린 하늘의 분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저에게는 보입니다. 인간의 모습이 제게서 떠나는 것이 보입니다. (98)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가 아폴로의 가축을 훔쳐 숨겨둔 곳이 바로 언덕 밑이었다. 메르쿠리우스는 기가 막혔던지 웃으면서 노인을 꾸짖었다.

「이런 사기꾼, 면전에서는 그러마고 해놓고 돌아서서는 딴 소리를 해? 영감은 내 앞에서 나를 배신했어」

메르쿠리우스는 이 노인을 단단한 돌로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시금석이라고 불리는 돌이 바로 이 돌이다. 그래서 이 돌에는 옛날에 거짓말하던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101)

 

인비디아는 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밤이고 낮이고 근심 걱정에 쫓기고, 남의 좋은 꼴을 보면 속이 상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여위어가는 것이 인비디아였다.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 하는 대로, 자신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저 자신만 녹아나는 게 바로 이 인비디아였다. (105)

불꽃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 결국은 건초더미를 깡그리 태우고 마는 불길과 비슷했다. (107)

 

<질투>가 옮긴 괴질은 빠른 속도로 이미 병든 곳과 성한 곳을 파괴했다. 이어서 생명의 숨결이 지나다니는 길을 거슬러 치명적인 냉기가 올라왔다. (107)

 

돌의 색깔은 거무튀튀했다. 검은 마음의 물이 들어 그런 색깔로 변하게 된 것이다. (108)

 

사랑을 성취시키려는 마음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은 원래 조화도 양립도 불가능한 법이다.(109)

 

여신은 그에게, 땅을 갈아엎고 인간의 씨앗인 왕뱀의 이빨을 뽑아 뿌리면 새 백성이 돋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116)

 

이렇게 선 도시가 바로 테바이다. 카드모스는, 결과적으로 보면, 아버지로부터 추방당함으로써 축복을 받은 셈이다. (117)

 

악타이온은 여신의 벌을 받아 사슴으로 전신했다가, 제 손으로 기른 사냥개들 이빨에 찢기어 죽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악타이온이 이런 변을 당한 것은... 그에게 죄가 있었다면 길 잃은 죄밖에 없었다. (118)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힐 날이 되어봐야, 그 한 살이가 행복한 한 살이였는지 박복한 한 살이였는지, 드러나는 법이다. (118)

 

악타이온은 제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사냥개들 이빨에 찢기는 대신 진짜 사슴이 찢기는 것을 구경이나 하고 있었으면 얼만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너무나 분명하게 거기에 있었다. (123)

 

유피테르(제우스)는 이 세멜레의 뱃속에 들어 있던, 아직 달이 덜 찬 아기를 꺼내어 자기 허벅다리에 넣고 실로 기운 뒤, 남은 달을 마저 채워 꺼냈다고 한다. (127)

 

리리오페는 강의 신 케피소스의 사랑을 입고 그 자식을 지어낸 바 있는 요정이다. 이 리리오페는, 케피소스 강이 그 굽이치는 흐름으로 감아 안는 바람에 처녀를 잃었는데 보는 사람의 얼을 빼 놓을 만큼 잘생긴 이 아기, 그래서 망연자실, 그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게 하는 이 아기를 <나르키소스>라고 이름했다. (129)

 

에코는, 동무들과 헤어져 인적 없는 숲 속으로 혼자 들어온 이 나르키소스를 보고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에코는 가만히 이 나르키소스의 뒤를 밟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에코의 가슴은 그만큼 더 뜨거워졌다. 에코의 가슴은 이 사라의 열기에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았다. 불길에 갖다 대기만 하면, 횃대 끝에다 재어놓은 유황이 타듯이 (131)

나르키소스로부터 박대 받은 이들 중 하나가 하늘을 향해 두손을 벌리고 이렇게 기도를 했다. [저희가 그를 사랑했듯이, 그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소서, 하시되 이 사랑을 이룰 수 없게 하소서, 이로써 사랑의 아픔을 알게 하소서](133)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물론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쫓는 동시에 쫓기고 있었다. 그는 격정으로 타오르는 동시에 태우고 있었다. 이 무정한 샘물에 입술을 대었으나 하릴없었다. 영상의 목을 감촉하려고 물에다 손을 넣었으나 이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기 자신의 목에다 손을 대면 될 일이나 그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영상이 지펴낸 불꽃, 그의 눈을 속이는 환상, 그 환상이 지어낸 기이한 흥분에 쫓겼다. (134)

 

어리석어라! 달아나는 영상을 쫓아서 무엇 하랴! 그대가 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서보라. 그러면 그대가 사랑하던 영상 또한 사라진다.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은 그대의 모습이 비춰낸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대가 거기에 있으면 그림자도 거기에 있을 것이요, 그대가 떠나면, 그대가 떠날 수 있어서 그 자리를 떠나면 그림자도 떠나는 법인 것을(134)

 

나는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자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고 내가 보는 내 사랑에, 나는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마침내 닿지 못하는구나.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내 사랑이 나를 피하는구나.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저 넓디넓은 대양도 아니요, 먼 길도 산도 아니요, 성문의 빗장이 걸린 성벽도 아니다. 견딜 수가 없구나. 내 사랑이 내 포옹을 바라고 있는데 어찌 이를 내가 모르겠는가? (135)

 

나는 죽어도 좋으니, 내가 사랑하던 것만은 오래오래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우리 둘은,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하나도 다라 죽어야 할 운명. 나는, 내 젊음의 꽃봉오리 안에서 죽어가고 있구나. 죽음과는 싸우지 말자. 죽음이 마침내 내 고통을 앗아갈 것이니. 그러나 나는 죽어도 좋으니, 내가 사랑하던 것만은 오래오래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우리 둘은,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하나도 따라 죽어야 할 운명 (136)

 

리베르 신이라는 자는 용맹스러운 사내들의 씨를 말렸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 암상스러운 적을 물리쳐 조상의 영광을 지켜야 한다. 테바이가 어차피 무너져야 할 성이라면 적의 파성 무기에 무너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 눈에 불길이 보여야 하고 우리 귀에 적의 함성이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141)

 

펜테오스의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피 묻은 손으로 그 머리의 조작을 주워 들고 아가베가 외쳤다. 「보아라, 우리가 이겼다. 내가 승리했다」무리가 몰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펜테오스 왕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151)

 

박쿠스 신관들은, 박쿠스 축제는 반드시 거행되어야 하고, 이날만은 하녀들도 하녀들 몫의 일에서 풀려나 이 신을 섬길 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52)

 

박쿠스 신은, 거칠고 소란스러운 자. 시름을 덜어주는 자. 거듭 내어난 자. 뉘사에서 자라난 자. 튀오네의 아들, 즉 세멜레의 아들. 포도나무를 심은 자. 밤에 얼굴을 붉히는 자. 환호하시는 아버지. 부르짖는 자. 세 번 태어난 자. 영혼의 사냥꾼, 광기를 불어넣는 자. 일으켜 세우는 자 같은 별명이 있다. (153)

 

이 심술궂은 벽아. 왜 우리 사이를 가로막느냐? 와르르 무너져, 우리가 서로를 껴안을 수 있게 해주면 좀 좋으냐? 우리 욕심이 지나치다면 틈을 조금만 더 열어 입이라도 맞출 수 있게 해주려무나. 늘 고맙다는 말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건 우리 사랑이 그 만큼 진하기 때문일 것이야. (157)

 

뽕나무는 이때 퓌라모스가 흘린 피에 젖어 보랏빛으로 물들었어. 이 피를 마신 뿌리는 둥치를 통해, 가지를 통해 이 피를 열매에 보내었을 테지. (159)

 

당신의 손,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죽였군요. 이만한 일을 할 손이라면 내게도 있어요. 당신의 사랑에 못지 않는 내 사랑도 이만한 상처를 낼 힘쯤은 내게 베풀어줄 거예요. (160)

 

그러니 우리를 한 무덤에 묻어주소서. 나무여, 이미 내 사랑의 주검을 보았고 곧 내 주검을 내려다볼 나무여, 우리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시어 사람들이 우리 둘이 흘린 피를 되새기도록 그대 열매를 어둡고 슬픈 색깔로 물들여 주세요. (161)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가 익으면 검붉은 색깔로 변하는 것은 신들이 이 티스베의 기도를 들은 증거요, 화장 단에서 나온 두 사람의 뼈를 한 골호에 넣은 것은, 부모님들이 이 티스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한 증거라는 거야. (161)

 

달이 태양빛을 가리면 세상이 어두컴컴해지지 왜? 그러나 이때 세상이 컴컴해진 것은 이 때문이 아니라 태양신의 상사병 때문이었대. (165)

 

쿠피도는 늘 동자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드물게는 이런 청년의 모습으로 그려질 때로 있다. 쿠피도는, 실수로 자기 화살에 찔려 프쉬케와 사랑에 빠진 적도 있다. (172)

 

이곳이 바로 겁벌의 집이다. 여기에는 자그만치 9유겔룸이나 되는 땅이 꽉 차게 드러누운 채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티튀오스가 있다. 탄탈로스도 여기에 있다. 탄탈로스는 물이 가까이 있으나 이 물이 자꾸만 도망치는 바람에 영원히 물을 마실 수 없고, 과일나무 가지가 머리 위에 있으나 손을 내밀면 과일이 도망치는 바람에 영원히 과일을 먹을 수 없다. 시쉬포스는 여기에서, 굴려올려 놓으면 순식간에 굴러내려오는 바위와 영원히 씨름하는 벌을 받고 있다. 사촌이자 지아비인 신랑을 죽였던 벨로스의 손녀들도 여기에서 밑 빠진 독에다 영원히 물을 길어다 부어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다. (181)

 

티시포네에게는 저승 궁 문지기인 케르베로스의 침, 레르나 연못에 사는 마녀 에키드나의 딸인 휘드라의 독에다 <환각>, <망각>, <눈물>, <범죄>, <광기>, <살의> 이런 것들을 잘 섞어 만든 고약이 있었다. (183)

 

이 해초는 메두사의 머리에 닿는 순간부터 굳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도 산호는, 대기에 닿으면 돌이 되는, 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물 속에서는 식물인데 수면 위로 나오면 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198)

 

나는 저분에게, 공훈의 보상을 약속했다. 저분은, 너를 우선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고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니 그리 알아라. (203)

 

그 넓은 땅은 그만두고, 네 누울 자리 만큼만 차지하거라. (208)

 

음악과 예술을 주관하는 아홉 무사이의 이름은 나팔과 물시계를 들고 다니는 영웅시와 역사 담당인 클레이오. 지구의를 들고 다니는 천문시 담당 우라니아. 가면을 들고 다니는 비극시 담당 멜포메네. 웃는 가면이나 목양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지는 희극시 담당 탈리아, 합창 담당 텔릅시코레. 연애시와 서정시 담당 에라토, 유행가 담당 에우테르페, 늘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다니는 무언극 담당 폴륌니아, 오르페오스의 어머니이자 서사시와 웅변을 담당하는 칼리오페. 이들의 어머니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쉬네라는 사실은, 고대의 문학 예술이 인간의 기억을 통하여 구전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218)

 

퀴아네는, 납치당해 끌려가는 프로세르피나가 불쌍해서, 샘의 권리가 짓밟힌 것이 분해서 한없이 울었는데... 가엾어라, 퀴아네. 얼마나 울었으면 슬픔이 요정의 육신을 녹여 물이 곧 요정, 요정이 곧 물이게 했을까. 요정의 사지가 녹기 시작하자 뼈와 손톱 발톱도 흐물흐물해졌다지. 맨 먼저 그 늘씬하던 몸이 녹았고, 이어서 검은 머리카락, 손가락, 다리, 발이 차례로 녹아서 물이 되었지. (225)

 

저승을 흐르는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다.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그의 배를 탄 사람은 네 사람. 즉 테레우스와 페이리로스 그리고 헤리클레스와 오르페오스이다. 아이네이아스와 오뒤세우스도 저승을 다녀온 것으로 되어 있으나, 카론의 배를 탔다는 말은 없다. (230)

 

프로세르피나가 저승에서 금식의 법을 어겼구나. 어쩔꼬, 프로세르피나가 이 저승에서 손질이 잘 된 뜰을 지나다가 무심코 석류를 하나 따서 그 알 일곱 개를 먹었으니... (231)

 

새가 되었는데도 이 새는 제 힘으로 제 날개를 들지 못한다던가. 무슨 새가 되었는가 하면, 인간에게 불길한 소식이나 전하는 새, 불길한 전조를 보이는 기분 나쁜 새, 올빼미가 된 것이지. (231)

 

유피테르는 슬픔에 잠겨 있는 케레스아 정든 아내를 내어놓지 않으려는 플루토를 화해시키려고 애썼어. 어떻게? 일년을 반으로 나누고는, 일년의 반은 어머니의 나라인 땅, 나머지 반은 지아비의 나라인 저승에서 지내게 한 것. 그러니까 프로세르피나는 이 두 나라에서 번갈아 가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이지. (232)

 

그것들이 저희를 비웃은 순간, 웃음소리는 울음소리가 되었습니다. 저희들을 가리키던 그것들의 손가락 끝에서는 깃털이 돋기 시작했고요. 이 깃털은 곧 온 팔을 덮었습니다. (238)

 

아라크네의 뺨은 잠깐 붉게 상기되었다가는 곧 핏기를 잃었다. 새벽의 손길에 붉게 물들었다가 해가 돋으면서 창백해지는 하늘빛 같았다. 아라크네는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오직 이길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 운명과 맞서려 할 뿐이었다. .. 여신은 이 도전을 받아들여 곧 겨루기에 들어갔다. (242)

 

겨루기 상대의 솜씨가 인간의 도를 넘은 데 격분한 이 금발의 여신은, 신들의 비행을 낱낱이 폭로한 이 베폭을 찢어버리고는, 들고 있던 퀴토로스 산 회양나무 북으로 아라크네의 이마를 서너 번 때렸다. 아라크네는 그제서야 여신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얻은 줄을 알고는 들보에 목을 매었다. 여신은 제 손으로 들보에 목을 맨 이 아라크네를 가엾게 보고 그 끈을 늦추어 주면서... 이것은 벌은 벌이나 겁벌이어서 끝이 없을 것인즉, 네 일족, 네 후손들까지 이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 아라크네는 꽁무니로 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이때 거미가 된 아라크네는 지금도 옛날과 다름없이 실을 내어 공중에다 걸고는 거기에 매달려 산다. (249)

 

니오베의 혀는 입천장에 달라 붙어 침묵하는 돌이 되었고, 핏줄에서는 맥박이 사라졌다. 몸 속의 장기도 남김없이 돌이 되었다. (257)

 

목양신 마르쉬아스는 이 신묘한 소리가 나는 피리를 손에 넣은 것을 자만하여 수금의 명수인 아폴로에게 연주를 겨루어보자고 도전하면서 이긴 자는 진 자의 껍질을 산 채로 벗기자고 제안한다. 결국 이 겨루기에서는 아폴로가 승리, 마르쉬아스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다. (262)

 

테레오스는 이제는 자식의 무덤이 되어버린 제 육신을 저주하면서 울부짖었다. 새의 가슴에는 살인한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채 진홍빛 핏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슬픔에 잠긴 채 복수를 서둘던 테레오스 왕도 새가 되었다. (278)

 

욕망은 나더러 이렇게 하라고 하고 이성은 나더러 저렇게 하라고 하니 이 일을 어쩌지? 어는 길이 옳은 길인지 나는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나는 옳지 않은 길을 따르려 하고 있다. (284)

 

메데이아는, 자기를 버린 이아손에 대한 복수의 손길을 멈추지 않고, 궁전을 불 싸지르고 자기가 낳은 자식을 둘이나 죽인 뒤에 이아손의 분노를 피하여 도망친 것이었다. (304)

 

이런 더러운 여자여, 여기에서 그대를 유혹하던 자가 바로 그대의 서방이다. 이제 그대는 가면을 벗었구나, 이제야 나는 그대가 부정한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323)

 

이 전쟁이 터진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불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구나. 사랑하는 미노스 왕이 우리의 적이라는 것이 애석하구나. 하지만 이 전쟁이 터지지 않았으면 나는 저분의 모습을 뵐 수가 없었을 것이니 어쩌면 이 전쟁이 잘 터진 것인지도 모르지. (333)

 

스퀼라는 살며시 아버지의 침실로 숨어들어가 그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딸이 아버지의 머리로부터, 아버지의 목숨과 운명이 걸린 머리카락을 훔친 것이다. (335)

 

테세우스는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이 미궁으로 들어갈 때 명주실을 풀면서 들어갔다가 이 괴물을 죽이고는 그 명주실을 잡고, 아무도 살아나온 사람이 없는 이 미궁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 그러나 공주 아리아드네는 이 섬에서 아테나이로 가지 못했다. 테세우스가 공주를 이 섬에다 남겨두고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343)

 

이카로스, 내 아들아. 내 단단히 일러두거니와 하늘과 땅의 한 중간을 겨냥하여 반드시 그 사이로만 날아야 한다. 너무 올라가면 태양의 열기에 깃이 타버릴 것이요,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에 젖어 깃이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344)

 

이 어미로부터 두 번, 한 번은 이 어미가 너를 낳았을 때, 또 한 번은 불붙은 장작개비를 불 속에 꺼낼 때 받았던 그 목숨을 어미에게 돌려다오. 네가 그 목숨을 내어놓기 싫거든 이 어미를 어미의 아우들이 있는 저승으로 보내다오. (360)

 

우리는 신들이다. 나그네 대접할 줄 모르는 네 이웃들은 곧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 자들은 큰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 재앙을 피할 수 있게 해주리라. 이 집을 떠나 우리와 함께 뒷산으로 오르자. (369)

 

파메나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입술은 쩍쩍 갈라져 있더랍니다. 안에서 음식이 썩는 독기 때문에 목은 잔뜩 쉬어 있었고, 살갗은 딱딱한데도 어찌나 얇고 투명한지 오장육부가 다 들여다 보이더라는군요. (375)

 

에뤼식톤은 이렇게 되돌아온 딸을 되팔아 허기를 메워 나갔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준비된 음식을 다 먹고도 성에 차지 않았던 그는 처음에는 제 팔다리, 그것도 모자라 결국은 제 몸을 모두 뜯어 먹었다는 이야깁니다. (378)

 

변신이야기 2

 

노호하는 파도에 시달리면서도 그 우람한 모습으로 꿈쩍도 않고 의연하게 서 있는 거 대한 바위처럼 말입니다.(16)

 

그 친구는 내 뿔 하나를 그 우악스러운 손으로 잡더니만, 뚝 분질러버리는 게 아닙니까? 나는 이로써 공격무기를 잃은 것입니다. 다행히 나이스들이 이 뿔을 거두어 안에다 과일을 넣고 향기로운 꽃을 꽂아 신들께 바쳤지요. 자비로우신 코피아 여신께서는 이 뿔을 축복해 주시었습니다. (19)

 

「내가 강을 정복하기로 한 바에, 어찌 이 강이라고 그냥 둘 수 있을 소냐!」 그는 망설이거나, 물살이 조용한 곳을 찾아보는 빛도 보이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죽되 내 피로 하여금 이 값을 치르게 하리라. (21)

 

「나는 죽되 내 피로 하여금 이 값을 치르게 하리라」 네소스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천 조각을 이 피로 적셔, 장차 요긴한 사랑의 묘약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를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주었다. (22)

 

탐욕스러운 불길은, 처음에는 그가 장작더미에다 깔고 누운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태웠고, 그 다음으로는 몽둥이를 베고 누운 그의 목,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그의 얼굴로 옮겨 붙었다. 그의 표정은,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술잔에 둘러싸여 있는 술잔치의 술손님의 표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29)

 

뱀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 비늘이 반짝이는 새 껍질로 거듭나듯이 티륀스의 영웅도 필멸(必滅)의 육체를 벗고 불사의 몸으로 거듭났다. 인간의 오체(五體)를 벗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는 이전보다 더욱 위엄 있는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었다.(31)

 

, 이 아기를 이 가지에서 거두어가 다오. 데리고 가서, 잘 보살펴주고 우유를 먹여주고, 자라거든 내 가지 밑에서 놀 수 있게 해다오. 말을 하게 되거든 이 어미에게, 슬픈 사연이나마 이런 말을 하게 해다오. ‘우리 엄마는 이 나무 안에 숨어 있대요.’ 이 한 마디를 하게 해다오. 아이가 물가에 가지 않도록 해주고, 나무에서 함부로 꽃을 꺾지 않게 해다오. 열매가 달리는 나무는 모두 여신들의 몸이라는 것을 가르쳐다오.....중략.....언니의 말이 끝나는 순간부터 언니의 입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몸이 나무로 변했는데도 그 나무의 가지는 한동안 따뜻했습니다.(37)

 

뷔블리스가 세상 처녀들에게, 사랑해도 좋을 상대가 있고 사랑해서는 안 될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44)

 

잠들어 꿈을 꾸면 너울을 벗은 욕망이 저를 사로잡아 그 뜨거움으로 저의 뼈마디를 녹이더이다. 저를 질투하여 밤은 서둘러 새고, 그래서 제 꿈은 짧기가 그지없어도 그 일만 생각하면 그 기억이 제 몸을 저리게 하나이다. (46)

 

하늘에는 하늘의 법도가 따로 있다고 하실 테지요만, 하늘에 하늘의 법도 따로 있고 땅에 땅의 법도가 따로 있다면, 하늘의 법도로 인간을 다스리시려 하시는 것에 장차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하오나, 바라건대 이 금단의 욕망을 저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47)

 

사랑이 나를 물러서지 못하게 한다.(47)

 

뷔블리스는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그 몸이 하나도 남김없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바람에 그만 샘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름이 이 처녀의 이름과 같은 <뷔블리스 샘>은 지금도 그 산자락의 계곡 감탕나무 그늘에 있다고 한다.(54)

 

심한 산고 끝에 텔레투사의 무거운 짐은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 딸아이였다. 그러나 텔레투사는 태어난 아기가 딸아이라는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는 대신 아들이라고 속여, 길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었다. (57)

 

너 자신도 속이지 말고, 남들도 속이지 말고, 네가 무엇으로 태어났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보고, 여자인 네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여라. 사랑에의 욕망을 낳고 이 욕망을 살찌우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59)

 

p.61 마땅히 신전으로 달려가, 기뻐하는 마음으로, 믿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려야 할 일이었다. 텔레투사와 이피스는 신전 제단에다 제물을 바치고 거기에다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남겼다.

"처녀로서 약속 드렸던 이피스의 제물을, 청년이 된 이피스가 드리나이다." (61~62)

 

제가 이 슬픔을 참아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강한 인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참으려고 애썼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아모르 신이 부리는 조화가 저에게는 너무나 힘에 벅찼습니다. (65)

 

채 피기도 전에 져버린 에우뤼디케의 운명의 실을 다시 이어주십시오. (65)

 

이 무서운 땅의 권능에 기대어, 이 끝없는 혼돈, 이 넓은 땅을 감도는 침묵의 권능에 기대어 소원합니다. (65)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계속될 동안 탄탈로스는 영원히 물러나는 물을 좇으려고 안달을 부리지 않았고, 익시온의 불수레 바퀴는 놀랍게도 잠시 멈추었으며, 티튀오스의 간을 파먹던 독수리는 잠시 그 부리질을 쉬었고 다나오스의 딸들은 항아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잠시 쉴 수 있었으며 시쉬포스도 바위에 앉아 잠시 쉴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저 복수의 여신들인 푸리아에 자매들도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66~67)

 

오르페우스는 근심과 걱정과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뒤를 돌아다보고 말았다. 그 순간 에우뤼디케는 다시 저승 땅으로 떨어졌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손을 잡으려고 자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손 끝에 닿는 것은 싸늘한 바람뿐이었다. (67)

 

하여튼 이 산에는 온갖 나무가 다 있었다. 이런 나무 사이에는 원추형으로 자라는 퀴프로스도 있었다. 이 나무는 오르페우스 시대에는 비록 나무가 되어 있었지만 원래는 나무가 아니라 수금과 활을 좋아하던 신의 사랑을 받던 소년이었다. 이 소년이 삼나무가 된 사연은 이러하다.(70)

소년은, 신들께, 마지막 소원이니 수사슴의 죽음을 영원히 슬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 오래 울고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의 몸에서는 피가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의 팔다리는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흰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은 하늘을 향해 뻣뻣하게 일어서기 시작했다. 아폴로 신은 이것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했다. "네가 남을 위하여 슬퍼하고,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의 벗이 되고자 하니 나 또한 너를 위하여 슬퍼하리라" (72)

 

새의 모습을 빌린 대신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이 일리움의 양치기 소년을 하늘로 채어 올렸다. 유노 여신 보기에는 꼴사납겠지만 이 소년은 지금도 천궁에서 술을 빚고 유피테르 대신에게 술잔 드리는 일을 한다.(73)

 

나는 살아 있고 너는 죽었으나 너는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다. 너의 이름은 영원히 내 입가를 맴돌 것이다. 내가 수금 가락을 고를 때, 노래할 때, 내 노래와 내 가락이 너를 부를 것이다. 내 너를 새 꽃으로 만들되 내 흐느낌을 그 꽃잎에다 아로새기리라. (76)

 

p.77 휘아킨토스가 흘린 피는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풀잎을 적시더니, 이 피가 굳으면서 모양이 백합과 흡사하고 색깔은 튀로스 산() 보라색 옷감보다 더 고운 꽃이 피어났다. 아폴로신이 휘아킨토스를 축복하여 꽃으로 피어나게 한 것이었다. 아폴로 신은 이 소년을 꽃으로 환생하게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설움을 그 꽃잎에 아로새겼으니 휘아킨토스의 꽃잎에 <아이(αι)>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77)

 

케라스타이가 이런 벌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염치없는 프로포이티데스 무리는 가량 없이도 이 베누스 여신의 신성을 모독했다. 여신의 부노가 이들에게도 미쳤다. 여신은 이들로부터 <프로포이티데스>라는 이름을 빼앗아 버리고 그 땅에서 쫓아내어 뭇 사내들에게 몸을 팔게 했다. (79)

 

「이렇게 사악한 삶을 사는 여자들을 본 퓌그말리온은 자연이 여성들에게 지워놓은 수많은 약점이 역겨워 오랫동안 여자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정말 혼자 산 것은 아니고,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한 솜씨로 만든, 눈같이 흰 여인의 상아상(象牙象)과 함께 살았다. 퓌그말리온이 만든 이 상아상의 여인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퓌그말리온은 자기 손으로 만든 이 상아상의 여인을 사랑했다....중략....퓌그말리온은 틈만 나면 이 상아상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서는 인간의 형상을 본떠 만든 이 상아상에 대한 사랑이 샘솟았다....중략....퓌그말리온은 이 상아상에 입을 맞추면서는 이 상아상이 이 입맞춤에 화답하기를 바랐다. 그는 어쩌면 눌렀던 자국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손가락으로 이 상아상의 살갗을 꼭 눌러보기로 했다. 그러나 혹 상처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너무 깊이는 누르지 않았다.(80)

 

이 상아상을 상대로 아첨 섞인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이 상아상에다 옷을 입혀주는가 하면,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워주고, 목에는 긴 목걸이를 걸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역시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을 때였다. 퓌그말리온은 튀로스 산() 보라색 천을 씌운 긴 의자에 이처녀를 눕히고, 그렇게 하면 처녀가 고마워하기라도 할 것처럼 머리 밑에는 베개를 받쳐주기도 했다. 이렇게 해놓고 그는, 짐짓 이 상아 처녀를 자기의 반려라고 불렀다.

온 퀴프로스 섬이 다 떠들썩해지는 베누스 축제 때의 일이었다....제단에서 향연(香煙)이 오르자 퓌그말리온은 제 몫의 제물을 드리고 제단 앞에서 더듬거리는 어조로 기도했다. <신들이시여, 기도하면 만사를 순조롭게 하신다는 신들이시여, 바라건대 제 아내가 되게 하소서, 저…….> 퓌그말리온은 <상아 처녀를……> 하려다가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상아 처녀 같은 여자를……>, 이런 말로 기도를 끝내었다. 그러나 축제를 맞아 그 제단에 임재(臨在)하여 제물을 흠향(歆饗)하던 베누스 엿ls은 그 기도의 참뜻을 알아차리고, 그 기도를 알아들었다는 표적으로 불길이 세 번 하늘로 치솟게 했다.(81)

 

집으로 돌아온 퓌그말리온은 바로 상아 처녀에게 다가가 그 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상아 처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퓌그말리온의 입술에 닿는 처녀의 입술에 온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화들짝 놀라 입술을 떼었다가는 다시 입술을 대고 손으로는 가슴을 더듬어 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손끝에서 그렇게 딱딱하던 상아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상아에는 그의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기 시작했다. 흡사 태양의 열기에 부드러워져, 사람의 손끝에서 갖가지 모양이 빚어지는 휘메토스 산의 밀랍같이, 그는 몇 번이고, 아내 삼기를 바라던 상아 처녀의 살갗을 만져보았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상아 처녀의 몸은 분명히 인간의 몸이 되어 있었다. 파포스 사람 퓌그말리온은 수다스럽게 베누스 여신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한동안 감사 기도를 드리던 퓌그말리온이 그래도 믿어지지 않았던지 상아 처녀에게 다시 입을 맞추자 상아 처녀는 이 입맞춤에 화답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82)

 

나무에서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나 사실 이 나무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이 눈물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에서 듣는 수액에는 이 처녀의 이름이 붙어 오늘날까지도 <뮈르>라고 불린다. (94)

 

아탈란테여, 너에게는 지아비가 소용없구나. 너는 남자 겪는 일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쩔꼬, 너는 결혼을 피할 팔자가 아니다. 결혼한 뒤에는 산 채로 너 자신을 잃겠구나. (98)

 

귀중한 목숨을 걸되 그 목숨을 내 앞에 던져 청춘을 바치려 하다니, 참으로 인물이 아깝구나. 저 인물 앞에 서니 오히려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구나. (100)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저 청년의 외모가 아니라 저 청년의 젊음이다. 게다가 저 청년에게는 용기도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청년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저 청년은 나와의 혼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101)

 

그대는 이 겨루기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를 이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대 같은 사람은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것을, 내 팔자가 기박하지 않았더라면, 운명이 내게 지아비 맞는 것을 허락했더라면, 나와 잠자리를 나눌 수 있는 남성은 그대뿐이었을 것을. 아탈란테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지. 물론 자기에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 알지 못하면서도 아탈란테는 이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야.(102)

 

히포메네스는 나를 부르면서 이렇게 기도하더구나. ‘오, 퀴테라의 여신이시여. 바라오니, 오시어서 무모하게 이 일에 뛰어든 저를 거들어주소서. 여신께서 불을 붙이셨으니, 이 불이 더욱 힘차게 타오르게 하소서,’ 이 청년의 기도가 바람결에 실려오더라. 이 청년을 기특하게 여겼던 나는 곧 이 청년을 도와주기로 했다.(102)

 

이 히포메네스가 나에게 감사표시로 제물을 바쳤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런데도 이 지각 없는 것은 나에게 제물을 바치기는커녕 그 명예를 내게 돌리는데도 인색했다.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무시 당한데 대해 몹시 화가 났던 나는 이것들에게 본때를 보여 장차 나를 대하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둘을 치기로 했던 것이다. (104)

 

아도니스여, 내 슬픔의 징표를 너에게 남기고야 말 터이니,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내 슬픔을 흉내 내어 너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다. 너는 피는 꽃으로 변할 것이니 죽되 영영 죽는 것이 아니다. 프로세르피나가 한 여인의 몸일 멘테로 바꾸었을 때도 시비하는 자가 없었는데 내가 이 용감한 퀴뉘라스의 왼손에게 다른 몸을 준다고 장차 누가 시비하랴! (107)

 

베누스 여신은 아도니스의 피에다 향기로운 넥타르를 뿌렸다. 신주가 뿌려지자 아도니스의 피에 젖었던 노란 모래에서 거품이 일었고 잠시 후에는 여기에서 핏빛 꽃이 피어났다. 꽃 모양은, 외피가 종자를 싸고 있는 석류꽃과 흡사했다. 그러나 이 꽃은 피기가 무섭게 곧 지고 말았다. 워낙 대가 연약한데다 꽃잎이 얇은지라, 꽃은 산들바람만 불어도 그 대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을 연상하여 이 꽃의 이름을 <아네모네>라고 부른다.(107)

 

이 가인에 앞서 희생된 것은 이 가인의 이름을 온 땅에 널리 알려지게 했던 청중들, 말하자면 그의 음악에 넋을 잃고 있던 새들, 뱀과 들짐승들이었다. 광기 들린 여자들은 먼저 이들을 쳐죽이고 나서 그 피 묻은 손으로 오르페우스를 공격했다. 그 바닥을 피로 물들일 팔자를 타고난 한 마리의 사슴을 죽이는 광경과 비슷했다. (110)

 

오르페우스가 변을 당할 당시 그 현장에서 여자들은 모두 땅바닥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땅바닥에 뿌리내리게 한 것이었다. (112)

 

미다스 왕에게, 이 박쿠스 신이 내리는 선물은 좋을 것이 없었다, 그 까닭은 이 미다스 왕이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114)

 

그는 이루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이 소원이 싫어 어떻게든 이를 모면해 볼 궁리를 했다. 그는 황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금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진 그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외쳤다.「아버지 바쿠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큰 죄를 지었나이다. 기도하옵건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재앙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115)

 

신들은 자비로우시다. 미다스 왕이 제 잘못을 인정하자 박쿠스 신은 그에게 주었던 권능을 거두어주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너의 그 어리석은 욕망을 씻으려거든 사르디스에서 가까운 강으로 가거라. 그 강으로 가서 뤼디아 물길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 그 물이 발원한 곳이 이르거든 네 머리와 몸을 담그고 네 죄를 정하게 씻어라」 (116)

 

그러나 미다스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하다면서 심판의 판정에 항변했다. 델로스의 신은, 이 같이 어리석은 자의 귀가 여는 인간의 귀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117)

 

신은 이 미다스의 귀를 잡아 늘이고는 그 안에 털이 소복이 자라게 한 다음, 미다스의 머리에 달린 채로 이쪽저쪽으로 움직일 수도 있게 만들었다. 귀만 빼면 미다스의 다른 곳은 멀쩡했다. 단지 귀 모양만 바꾼 것이었다.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와 비슷했다.(118)

 

그는 들판으로 나가 땅에다 구덩이를 파고는 거기에다, 임금님 귀가 그 꼴이더라는 말을 하고는 흙으로 다시 구덩이를 메웠다. 그제야 그는 집으로 돌아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 이 갈대는 엉뚱한 짓을 했다. 즉 남풍에 흔들릴 때마다, 제가 자란 땅에 묻혔던, 임금님 귀에 대한 주인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다. (118)

 

펠레오슨 바다의 신 네에로스의 딸인 테티스 여신을 아내로 맞는데,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저 유명한 아킬레오스이다. 테티스는 인간과 정식으로 혼인한 유일한 여신일 것이다. 이 둘의 결혼식에는 천상의 모든 신들이 초대를 받았지만 유일하게 빠진 신이 바로 불화의 여신 에리스였다. 에리스는 이 잔치에 불청객으로 참석, 불화의 사과 한 알을 던지는데, 이것이 후일 트로이아 전쟁의 불씨가 된다. (120)

 

「신들의 도우심을 입지 않았더라면 그대가 어찌 날 이길 수 있었으랴」 (122)

 

달이 차자 키오네는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하나는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신의 아들인 아우톨뤼코스인데, 이 아이는 제 아버지처럼 사술에 능하여 흰 것을 능히 검게 할 수 있었고, 검은 것을 능히 희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포에부스 아폴로의 아들인 필라몬인데, 이 아이는 제 아버지처럼 노래를 잘 부르고 수금을 잘 탔습니다. (125)

 

형을 불쌍하게 여긴 포에부스 아폴로 신이 한 마리 새로 화하게 했습니다. 형의 몸에서는 날개도 돋아나고, 부리도 돋아났습니다. 보세요, 그렇게 성정이 난폭하던 형은 저렇게 새가 되었어도 남에게 온정을 베풀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126)

 

알퀴오네는 케위크스가 왔던 흔적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이, 꿈속에서 케위크스가 서 있던 곳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울부짖었다. 「슬픔과 싸우면서 살지는 않으렵니다. 그대 없는 세상을 살지는 않으렵니다. 우리를 태운 재가 비록 한 항아리에 들지는 못할지언정, 비록 그대와 나란히 묻히지 못할지언정 저는 그대 뒤를 따르렵니다. 제 뼈가 그대 뼈와 섞이지 못할지언정 제 이름만이라도 그대의 이름과 나란히 새겨지게 하렵니다.

알퀴오네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흐느낌이 알퀴오네의 말을 토막 내었고, 슬픔이 가슴을 갈가리 찢었기 때문이었다.(142)

 

알퀴오네는 이 방파제로 올라가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알퀴오네가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고, 알퀴오네에게 거기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장작 이러한 기적보다도 더욱 놀라운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방파제에서 뛰어내린 알퀴오네가 어느새 돋아난 날개로 날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새 새로 변신하여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것이었다. 바다 위를 날고 있는 알퀴오네의 입에서는,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전까지 입이었던 부리에서는 가냘픈 새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윽고 지아비의 시신 곁에 이른 알퀴오네는 새로 돋은 날개로 지아비의 몸을 가볍게 감싸고 부리를 그의 입술에다 대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케위크스가 알퀴오네의 입맞춤을 느끼고 몸을 움직일 까닭이 없다. 그러나 케위크스는 분명히 몸을 움직였다. 물결 때문이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케위크스는 분명히 몸을 움직인 것이었다. 신들이 이 둘을 가엾게 보고 케위크스까지 새로 변신시킨 것이었다. 둘의 사랑도 그때까지 유효했다. 날개를 얻었는데도 혼인의 서약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이 두 마리의 새는 짝을 지어 알을 낳았다. 알퀴오네는 바다 위에다 지은 둥지에서 이레 동안 알을 품었다. 이 동안은 바다도 잠잠했다. 아기들의 외조부가 되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외손자들을 위해 바람을 재웠기 때문이었다. (144)

 

이 물총새들이 나란히 열을 지어 넓은 바다 위를 나는 광경을 보고, 이들이 끝내 이루어내고야 만 사랑을 찬탄하는 노인이었다. (145)

 

<미안하오, 뒤를 쫓은 내가 잘못이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길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그대가 나로 인하여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뱀이 그대를 무는 순간 우리들의 사랑도 끝났소. 그러나 이렇게 만든 책임은 나에게 있소. 책임이 나에게 있는 만큼 나도 죽어서 그대에게 사죄하려 하오.> 아이사코스는 이런 말을 남기고는, 밑동이 파도에 깎인 아주 높은 절벽위로 올라가 몸을 던졌네. 그러나 테튀스 여신은 이 청년을 가엾게 보시고 손을 쓰셨다더군. 이 청년이 바닷물에 떨어지는 순간 온몸에서 깃털이 돋았다니까. 깃털이 돋았으니 바다에 떨어져도 죽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청년에게는 자살이 하릴없게 된 것이네. 아이사코스는 죽으려던 자기 뜻이 그렇게 꺾이자 몹시 짜증스러웠네. 그에게는 삶이라는 게 오히려 불명예스러웠던 것일세. 그래서 아이사코스는 새로 얻은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두 번째로 바다로 내리꽂혔네. 이번에도 깃털 때문에 자살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네. 격분한 아이사코스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네. 덕분에 그의 몸은 깊이깊이 가라앉을 수 있었지.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사랑하는 마음이 그 몸을 가벼워지게 했네. 아이사코스는 보다시피 목과 다리가 긴 새가 되었네. 이 새는 물을 좋아하네. 물에 뛰어들기를 좋아해서 이름조차 잠수조라네 (147)

 

평소에 은근히 아름다움을 뽐내던 유노 여신, 베누스 여신, 미네르바 여신은 서로 자기가 그 사과의 임자라고 주장한다. 유피테르가 여기에 끼여들어, 이다산에서 양치기 노릇을 하는 파리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누구인지 가려달라고 부탁하자고 제안한다. <파리스의 심판>이라고 불리는 이 심판에서 파리스는 자기에게 그리스 최고의 미녀를 주겠다고 약속한 베누스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뽑는다. 헬레네였다. (149)

 

여신은 이피게네이아가 제물로 바쳐진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신은 이 이피게네이아를 구름으로 감싸고, 제관들이 웅성거리는 틈을 타서 이 처녀를 빼돌리고는 그 자리에다 암사슴 한 마리를 세워 놓았다. 디아나 여신의 분노가 가라앉자 바다의 파도도 가라앉았다. (151)

 

이 세상의 한가운데, 말하자면 땅과 하늘과 바다 한가운데, 이 땅과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세상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고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이곳에 소문의 여신인 파마가 살고 있다. 집은, 소리를 잘 들리는 청동으로 지어져 있다. 그래서 오고가는 말로 집 안은 늘 시끄럽다. 침묵과 고요라는 것은 이 집안에 없다. 고함소리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시끌시끌,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 집에는, <경거망동>, 생각이 깊지 못한 <실수연발>, 터무니없는 <기쁨>, 소심한 <공포>, 당돌한 <선동>,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속삭임>이 식객으로 붙어산다. 파마 여신 자신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알아내어 온 세상에 그 소문을 퍼뜨린다. (152)

 

해신께서는 저를 이렇듯 사랑하여 주셨으나, 저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일일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여자만 아닐 수 있다면 저에게 더 바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159)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말이네, 보는 눈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달라. 하지만 퀼라로스는 자타가 인정하는 미남 켄타우로스였네. 황금빛 수염에 묻히기 시작하는 턱, 어깨까지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황금빛 머리카락......어쨌든 이 자는 보기가 좋았네. 표정은 늘 싱싱했고, , 어깨, , 가슴 등등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은 모두가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 같았네. 말의 형상을 한 하반신도 상반신 못지않게 아름다웠어. 우리가 이놈을 보면서, 잔등에다 카스토르를 태웠으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네. 그만큼 힘살도 흠잡을 데가 없고 가슴이 넓었던 것일세. 그 많은 암 켄타우로스 중에서 퀼라로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깊은 숲속에 사는 이 휠로노메뿐이었다고 하더군. 이 휠로노메는 퀼라로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늘 갈기를 잘 빗질하고, 머리에는 오랑캐꽃이나 장미나 백합 같은 것을 꽂고 다녔다고 하더군. 어디 그 뿐인가. 파가사이 산 숲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하루에 두 번씩 얼굴을 씻었고, 하루에 두 번씩 그 물에 멱을 감았다고 하더군.(168)

 

트로이아 군 쪽에서 보면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리스 군에서 보면 거룩한 평화의 수호자였던 이 불굴의 전쟁영웅도 결국은 화장단 위에서 재가 되었다. 아킬레오스의 갑옷을 지어주었던 그 신이 이번에는 불꽃으로 그의 육신을 소진시킨 것이었다. 살아 있을 때는 범 같은 장수였던 아킬레오스도 재가 되었을 때는 항아리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온 세상에 차고 넘쳤다. 아킬레오스라는 이름이 있을 곳으로 마땅한 곳은 넓디넓은 우주뿐이었다. (179)

 

나는 내 웅변이 사감(私感)을 지어내는 웅변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자주 여러분을 이롭게 하는 데 쓰였던 이 웅변이 지금은 그 주인을 변호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지닌 재주를 써서 제 주장을 펴야 하는 것이니까요. (191)

 

피에 젖은 대지는, 휘아킨토스의 피에 젖은 대지에서 피었던 것과 똑같은 보랏빛 꽃을 피워 올렸다. 꽃잎 한가운데엔, 미소년 휘아킨토스의 죽음과 아이아스의 죽음을 동시에 상기시키는 문자(<αι>는 우리말의 <아아!>에 해당하는 말인 동시에 <아이아스>라는 이름의 두 문자가 되기도 한다는 뜻)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자는, 휘아킨토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탄식인 동시에 이 영웅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두 문자이기도 했다. (208)

 

지아비를 위해, 조국을 위해 흘리던 눈물을 자기 자신을 위해 흘렸다. 네 몸에 난 상처는 너의 상처이자 나의 상처이기도 하다.

이제 아킬레오스를 두려워할 일은 없겠다. 했더니 아킬레오스는 죽은 다음에도 사람을 죽이는구나. 아킬레오스는 무덤에 들고도 이렇듯이 우리 집안에 대한 증오를 버리지 않으니 우리는 이제 그 자의 무덤까지도 두려워해야 하는구나. (214)

 

헤쿠바는 날아오는 창과 돌을 손으로 막으면서 트라키아 백성들에게 사정을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헤쿠바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라 개 짖는 소리였다. 이런 일이 벌어졌던 땅에는, 지금도 이 일을 상기시키는 지명이 붙어 있다. 개가 된 헤쿠바는 과거의 고통을 잊지 못했던지 트라키아 땅을 방황하며 짖었다. 불쌍한 트로이아 왕비의 비극은 트로이아 유민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그리스인들, 심지어는 신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 유피테르 대신의 누이이자 아내인 유노 여신까지도 헤쿠바의 불행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218)

 

이윽고 맴논의 시신을 태우던 화장단이 불길 한가운데로 내려앉았다. 여기에서 오른 연기가 구름을 가렸다. 강이 내뿜은 안개가 햇빛을 가리는 형국이었다. 내려앉은 화장단에서 솟은 검은 재는 하늘로 날아 올라가 덩어리로 뭉치면서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불길의 열기와 튀어 오르는 불꽃이 하나의 생명을 지어낸 것이었다. 불의 가벼운 기는 이 생명을 얻은 형상에 날개를 부여했다. 얼핏 보기에는 새 같았다. 과연 새였다. (219)

 

성문 앞으로 보이는 것은 장례식 광경이었다. 무덤이, 불붙은 화장단이, 가슴을 드러낸 채 머리를 산발하고 애곡하는 여자들이 보였다. 샘물이라는 샘물은 모조리 말라버렸다고 탄식하는 물의 요정들도 보였다. 잎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나무도 보였고, 풀을 찾으러 바위산을 헤매는 양떼도 보였다. (224)

 

바다의 신들은 나를 영접하면서 동아리가 된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수많은 바다의 신들은 저 오케아노스 신과 테튀스 여신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인간 세상에서 지은 죄를 닦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두 분신들께서는 내 죄를 닦아주셨다. 정죄의 주문을 아홉 번 외게 하셨고, 백 개의 강에 몸을 닦으라고 하셨다. (238)

 

나는, 강을 찾아 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사방에서 불이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 뒤로 나는 별별 희한한 일을 다 겪었으나, 그대에게 들려줄 마음만 있을 뿐 기억할 수가 없구나. (239)

 

「그런 여자를 두고 가슴을 앓기보다는, 그대를 원하고 그대를 따르고자 하는 여성, 그대가 사랑하는 만큼 그대를 사랑하는 여성을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남의 짝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니까요. 그대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던질 생각이 있거든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세요. 아직은 늦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외모에 자신을 가지세요.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신의 딸인 나는 이래봬도 여신이랍니다. 게다가 내가 가진 약초의 효험도 만만찮고, 내가 풍기는 매력 또한 만만찮답니다. 그러니, 나를 차지할 생각을 해보세요. 그대를 능욕한 계집일랑 잊어버리고, 그대를 따르고자 하는 나를 따르세요. 그대 마음먹기에 따라 나는 그대의 것이 될 수 있고 그대는 내 것이 될 수 있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피차 어울리는 일일 테니까요.(242)

 

후일 스퀼라는, 오뒤세우스의 재를 나파시키고 수 많은 이타카 용사들을 죽임으로써 키르케에게 복수했다. 이 스퀼라가 지급은 바위로 변하여 파도 위에 우뚝 서 있다. 바위로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스퀼라는 여전히 뱃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244)

 

이 섬의 주인인 케르코페스는 원래는 사람이었으나 속임수에 능하고 거짓맹세를 잘 하는 아주 고약한 사람들이어서 신들의 아버지 유피테르가 이들을 모양은 사람과 비슷하되 사실은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전신시켜 이 섬으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247)

 

아폴론 신께서는 나에게, 사랑을 허락하면 영원한 생명을 주겠노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러셨겠지만, 아폴로 신께서는 온갖 선물을 다 약속하시면서, 저 흙덩어리에 든 흙의 낱알 수만큼 생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처녀의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250)

 

나는 순진했는지라, 흙덩어리 하나를 가리키면서, 저 흙덩어리에 든 흙의 낱알 수만큼 생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만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영원한 청춘을 함께 요구하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이제 인생의 황금기는 나를 떠나고, 황혼이 비틀거리며 내게로 다가옵니다만 나는 이런 채로 오래오래 더 살아야 합니다. 오래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 몸이 한 움큼도 못 되게 오그라지고 내 사지 역시 오그라져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날이 오겠지요. 부가 나를 보고, 한때는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는 신까지 즐겁게 해준 적이 있는 여자라고 하겠습니까? 이제는 포에부스 아폴로 신께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거나, 알아보시더라도 내게 애정을 기울이신 일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실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내 모습도 사라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모습은 사라질지언정 목소리만은 이 땅에 남겨야 하는 팔자를 타고났습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고 그게 내 목소리인 줄 알게 되겠지요.

p.254 나는 한편으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도토리와 풀잎과 풀 뿌리로 연명했네. 외로웠네. 그 죽음의 섬에 홀로 남은 내게는 희망도 없고, 희망을 가져야 할 건더기도 없었네. (250)

 

<나를 사로잡은 그대의 그 아름다운 눈, 여신은 나를 사로잡아 이렇듯 부끄러움을 모르게 한 그대의 아름다운 청춘에 기대어 드리는 말씀이니, 들으소서. 원컨대 내게 친절을 베푸시어 나를 사랑해 주시고, 만물을 내려다보시는 태양신의 사위가 되소서. 마음 문을 여시되, 티탄의 딸인 이 키르케를 욕보이지 마소서.> 그러나 피쿠스 왕은 키르케 여신의 애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이러면서요. <그대가 누구신지 모르나 나는 그대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나는 이미 다른 영성의 포로가 된 몸, 오래오래 이렇게 포로로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이랍니다. 그러니 운명의 여신이 나와 야누스의 딸 카넨스를 떼어놓지 않는 한, 혼외(婚外)의 사랑을 유혹하여 사랑의 맹세를 깨뜨리게 하지 마시오.> (263)

 

새색시였던 요정 카넨스는, 옷과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울고 있는 것으로는 마음이 풀리지 않았던지 궁전을 뛰쳐나가 지향도 없이 라티움 숲을 누볐어요. 엿새 밤, 엿새 낮을 카넨스는 산과 골짜기를 누볐어요.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말이죠. 슬픔에 젖어, 기나긴 방황에 지쳐 강둑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카넨스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튀브리스 강의 신이었다고 해요. 카넨스는 이 강둑에 앉아 울면서, 곡을 붙여 신세타령을 했다는데, 그 노랫소리는 흡사 백조가 죽기 직전에 부른다는 마지막 노래 같았다고 해요. 슬픔은 결국 이 카넨스의 골수부터 녹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카넨스는 이렇게 녹아 사라져버렸어요. (265)

 

전우들이여, 그렇게 험한 고초를 겪고도 겁을 먹는가? 두려움은 인간을 허약하게 만드는 법이다. 우리가 이 역경을 밟을 수 있을 때,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69)

 

트로이아 전쟁에서는 신들도 편이 갈려 싸웠는데, 자신이 수호하는 영웅을 편들다 베누스는 디오메데스로부터 부상을 입었다. 베누스가 디오메데스의 부하들을 미워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270)

 

이 목동은 그 자리에서 야생 감람나무가 되었다. 이 야생 감람나무 열매를 맛보면 누구든 그 목동이 얼마나 야비한 인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욕지거리를 한 야비한 혀가 녹아 이 열매의 맛이 되었다는 것이다. (271)

 

슬피 우는 세들의 모습에서 패망하는 도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새들의 이름과 이때 패망한 도시의 이름이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아르데아는 이로써 날개를 치며 제 운명을 슬픈 울음으로 우는 새가 된 것이었다. (274)

 

아기양 별자기가 잠길 즈음에 끓어오르는 바다보다 잔인했고, 노리쿰 대장간에서 벼른 쇠붙이나 땅바닥에 박힌 돌보다 더 단단했어요. 아낙사레테는 쌀쌀맞게 구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청년을 멸시하고 놀리기까지 하는가 하면 청년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막말까지 해서, 이 청년의 가슴에 남아 있던 사랑에 대한 가냘픈 희망까지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어요. (282)

 

남의 사랑은 본 척도 않는 그 오만한 마음을 버리세요. 버리시고 그대를 사랑하는 분에게 사랑으로 화답하세요. 그래서 복을 지으면 봄 서리는 그대 과수원의 열매 눈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고, 여름의 태풍은 그대 과수원의 꽃을 날리지 않을 거예요. (284)

 

로물루스가 이들을 공격했다. 로마의 땅은, 사비니 인들과 로마 시민들의 피로 물들었다. 무서운 칼날 아래 목숨을 잃은 장인들과 사위들의 피는 새로 생긴 물길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이 전투를 마무리 지은 것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아니라 평화였다. (287)

 

하늘에서 별이 하나 떨어지면서 황비의 머리에다 불을 질렀다. 왕비는 머리에 불이 붙은 채 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로마의 건설자 로물루스는, 왕비에게는 너무나 낯익은 포옹으로 아내를 맞았다. 그 순간 왕비의 모습이 달라졌다.... 왕비 헤르실리아를 <호라>라고 불렀다. 헤르실리아는 퀴리누스 신의 비()인 호라 여신이 된 것이다. (290)

 

이탈리아 땅에다 그리스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지방의 노인 하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뮈스켈로스는 아르고스 사람인 알레몬의 아들입니다. 어느 날 잠을 자는데, 늘 몽둥이를 둘러메고 다니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꿈에 나타나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네 아버지 나라를 떠나 머나먼 아이사르 강의 자갈이 많은 지류를 찾아가거라.> (293)

 

흔히 황금 시대로 불리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은 저절로 열매 맺는 과일나무와 대지가 가꾸어내는 곡식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입술을 다른 짐승의 피로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297)

 

인간은 이런 죄를 저지르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번에는 신들을 이 사악한 저희의 수호자로 상정하고, 이런 짐승을 죽여 바치면 하늘의 신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298)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니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300)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드러난 것은 단지 찰나적인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 뿐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항상 흐릅니다. 강처럼 흐릅니다. 강물에, 어디 가만히 정지해 있는 순간이 있던가요? 물결은 다른 물결에 밀립니다. (300)

 

네 계절이 차례로 바뀌는 것을 눈여겨보셨습니까? 이 네 계절은 우리의 인생과 비슷합니다. 초봄은 부드럽고 따사롭습니다. 아직은 튼튼하지도 곧지도 못하지만, 초봄의 밭에서 자라는 곡물은 농부들의 가슴을 희망으로 채워줍니다. 식물이라는 식물은 다 꽃을 피우고, 기름진 땅은 색색의 꽃을 한아름 안고 봄을 노래하지만, 나뭇잎에는 아직 힘이 없습니다,. 봄이 자라 여름으로 접어들면 계절은 젊은이를 연상시키게 됩니다. 일년 중에 이때만큼 튼튼한 계절, 풍부한 계절, 뜨거운 계절, 작열하는 계절은 없습니다. 청춘의 시절이 끝나면 가을이 계절을 이어받습니다. 가을은 풍요와 성숙의 계절입니다. 청춘기와 노년기 사이에 드는 계절,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계절입니다. 이어서 노년의 겨울이 추위에 떨면서,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옵니다, 머리가 빠지거나 백발이 된 모습을 하고 다가옵니다.(301)

 

이와 같이 우리의 육체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내일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 혹은 오늘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 태 속에 있던 시절이 있습니다. 인간이 될 것이라는 약속만을 받은, 씨앗 같은 상태로 말이지요. 자연은 참으로 섬세한 손길로 이 씨앗을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이 너무 비좁아 우리가 몸부림치면, 자연은 우리를 우리의 집에서 텅 빈 공간으로 밀어냅니다. 날빛 아래로 태어난 아기는 연약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시기가 끝나면 아기는 짐승처럼 사지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또 이 시기가 지나면 아기는, 떨리는 다리, 불안정한 다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 다리로 섭니다,. 옆에 무엇이 있으면 잡고서라도 말이지요, 그러다 튼튼한 다리로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재빠른 다리로 세상을 달립니다. 이윽고 청년을 보내고 중년을 보내면, 우리는 노년에 이르는 비탈길, 인생의 황혼으로 통하는 내리막길에 세게 됩니다.(302)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303)

 

나는 같은 형상을 영원히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304)

 

하늘과 하늘 아래 있는 만물은 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땅과 땅 위에 있는 만물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피조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도 변합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날개 달린 영혼도 여기에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날개 달린 우리의 영혼은 들짐승의 가슴을 찾아 들어갈 수도 있고, 가축의 가슴을 찾아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짐승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짐승의 몸에 어쩌면 우리 부모형제나, 우리 친척,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영혼이 깃들여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이 예사롭지 않는 지위를 불명예스럽게 하거나 튀에스테스식() 식사로 우리의 배로 채우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맙시다.(313)

 

소에게는 쟁기나 끌게 하십시오. 그러다 나이를 먹어 죽게 되면 그 죽음을 슬퍼해 주십시오....해로운 짐승은 죽이되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 고기가 우리 입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마십시오. 거친 음식으로 만족하십시오. ... 그는 이렇게 가르쳤으나 사람들은 그의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314)

 

흙덩어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기겁을 했을 수밖에.... 잠시 후 이 흙덩어리는 제 모양을 잃고 사람이 되어, 갓 생긴 입으로 미래의 일을 예언했다. 이 지방 사람들은 이 예언자를 <타게스>라고 불렀다. 전해지기로는 튀레니아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점술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이 타게스였다고 한다. (319)

 

베누스여, 네가 관심하는 카에사르는 운명의 서에 기록된 삶을 다 살았다. 이 땅에서 살게 되어 있는 햇수를 다 채웠다는 말이다. 카에사르는 이제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죽는 것이 아니다. 죽어서는 신이 되어 하늘에 오르게 되어 있고, 인간은 신이 된 카에사르를 위해 신전을 세우게 되어 있다. 카에사르의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게 되며 아버지를 살해한 자들과 복수전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우리를 제 편으로 끌어넣어 싸우게 된다. 뿐이냐, 이 아우구스투스는 위대한 로마의 지도자가 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포위된 무티나 서은 그에게 강화를 빌고, 파르살리아는 그의 막강한 힘을 알고는 땅을 칠 것이며, 마케도니아의 필리피는 다시 한번 피투성이가 된다. 폼페이우스라는 위대한 이름은 시켈리아의 바다에서 사라질 것이다.(333)

 

베누스는 카에사르의 육신에서 갓 떨어져나온 그의 영혼을 수습하여,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가슴으로 끌어안고 별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올라갔다. 그러나 여신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바람에 영혼을 놓치고 말았다. 영혼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여신의 품을 빠져 나온 영혼은 하늘 높이 솟아 달에 이르기까지 날아오르다가 드리어 긴 불꽃의 꼬리가 달린 별이 되었다. (335)

 

이제 내 일은 끝났다.

유피테르 대신의 분노도, 불길도, 칼도,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不死)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336)

 

호메로스와는 달리, 이 오비디우스를 읽다 보면 이따금씩 궁색한 대목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오비디우스가 저희 왕통(王統)을 그리스의 신통(神統)에 끌어다 붙이기 위해 그리스 신화를 지나치게 아전인수로 윤색해서 풀어먹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따금씩 신화의 아귀가 맞지 않아서 마뜩지 못한 대목을 만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귀합니다. 인류 2천년 문화의 두 대궁 중 한 대궁은 기독교적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한 문화인데, 그 인식체계에 물들지 않는 고대의 인식체계 그리스도 이전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읽는 것은 신선한 읽기의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하늘이 열리던 때의 아득한 때와 우리가 사는 때 사이에 가로 놓인 긴긴 세월이 소거(消去)되는 듯한 희한한 경험도 가능하게 합니다. (341)

 

 

3. 내가 저자라면

 

순수 문학일까? 정치적 산물일까? 민족의 정체성만을 생각했을까? 본인의 기구한 삶의 구원을 생각했을까? 로마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유배에 대한 원망을 사랑으로 가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모방과 창조의 줄달음 사이에서 오비디우스는 어디쯤에 서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호메로스나 <신통기>의 헤시오도스가 이 책을 보았다면 표절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앞서 있다.

 

<변신이야기_ Metamorphoses>는 전체 15개 장, 128편의 신화를 담고 있다. 원저에는 소제목이 없는데 민음사의 책은 이윤기 작가가 옮기면서 15개의 각 장에 작은 제목들을 붙여 두었다. 옮긴이의 배려가 구성상 전개의 지루함을 약간 보완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민음사의 책 구성 : 1부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 2부 신들의 전성시대 / 3부 박쿠스의 탄생 외 / 4부 페르세오스와 메두사 외 / 5부 무사의 탄생 외 / 6부 신들의 복수 /7부 영웅의 시대 / 8부 인간의 시대 / 9부 헤라클래스 외 / 10부 오르페우스의 노래 외 / 11부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 외 / 12부 트로이 전쟁 외 / 13부 유민의 시대 / 14부 로몰루스와 레무스 외 / 15부 카에사르의 승천 외]

 

[1]

굳이 신화를 이야기 하면서 오비디우스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황제인 옥타비아누스의 시절까지 담아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책의 대미에서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라고 노래한 것처럼 신의 시대를 목적으로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2]

개인적으로 신화는 재미있지만 어렵고 복잡하다. 상징과 은유가 담고 있는 삶의 진실을 읽지 못하는 통찰력의 짧음도 있지만 신화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이름과 등장하는 신들의 얽히고 설켜있는 관계의 복잡성도 주요한 요인이다. 이것을 짚어가며 읽다 보면 나는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된다. 이번에 이런 시험의 한가운데 오비디우스의 책임이 있음을 알았다. 복잡함을 두 배로 증폭시킨 진정한 연출가인 셈이다. 그 시대의 인간적 사유와 의식이 정치와 역사 및 철학적 배경의 변화와 함께 변용되어야 한다고 해도 신들의 이름은 그대로 썼으면 안되었을까 하는 독자로서의 편의적인 바램을 가져본다. 더불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의 신화에 우리나라 신들의 이름을 갖다 붙인다고 우리민족의 정통성으로 이해되지는 않을 듯한데 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 그 시대의 의식이 궁금하기도 하다.

 

[3]

21세기를 사는 내가 <변신이야기>와 같은 책을 쓴다면 먼저 후대의 역사를 사는 사람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것과 지양해야 되는 것을 각각 생각해본다.

먼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앞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려 놓은 신화와 관련한 그림을 잘 활용하여 보는 것과, 역사적으로 이해하면 좋은 것들에 대한 각주를 넣고 싶다. 그렇게 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책의 내용 또한 풍성해지지 않을까 한다.

다만, 지양해야 하는 한가지로 생각이 드는 것은 원래의 신화가 가지고 있는 원형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화를 읽는 궁극적인 목적이 긴 간극의 시간을 넘어서 우리네 삶의 진리를 읽어내기 위함이라고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검증과 고증을 통한 신화의 재해석이 깊이 없이 마음대로 해석하게 되는 것으로 전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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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3 13:13:05 *.124.233.1
형님..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이셨을텐데 말끔히 리뷰를 완성하셨네요. 고생하셨어요..^^
저자에 대하여서에는 로마인의 자유로운 기질 부분이 가장 와 닿았구요,
'곡학아세'스러운 오비디우스의 처신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셨네요.
무릇 글을 글로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글과 삶이 일치해야하니깐요
마치 형님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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