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레몬
  • 조회 수 2553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2년 4월 17일 11시 17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오비디우스(Ovid)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Publius Ovidius Naso, B.C 43 ~ A.C. 17)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대표적 시인으로 그의 저서는 초서, 세익스피어, 단테, 밀턴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한국의 대표적 출판사인 민음사의 첫 번째 간행물이었을 정도로 유럽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후대에 알려진 그리스 신화는 대개 이 작품을 원전으로 하며, 유명한 불핀치, 해밀턴의 그리스 신화 역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풀어 쓴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B.C.43, 로마의 술모에서 부유한 기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해 바로 전에 카이사르가 살해되었다. 아버지는 오비디우스와 그보다 한 살 많은 형을 공부시키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을 전공하기를 바랐으나, 오비디우스는 법을 하기에는 감성이 풍부하였다. 대신 오비디우스는 수사학을 배웠다.  로마가 발전함에 따라 로마 문학이 그리스 문학에 대해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학의 번역은 중요했다. 오비디우스가 후에 <변신 이야기>를 서술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존재했다. 로마의 문인들은 그리스의 시인들과는 달리 학교에서 문법 및 문학적 훈련을 받았고, 오비디우스는 그 중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형이 20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오비디우스는 생의 유한함을 직시한 까닭인지 법을 포기하고 아테네, 소아시아, 시실리 등지를 여행하였다.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대표적 문인이었던 세 명의 시인 중 한 사람으로서, 오비디우스는 다른 두 시인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와 달리 황제가 추구했던 정책과 갈등을 빚었다. A.C. 8년에 로마의 가장 대표적 문인이었던 그가 돌연 황제로부터 추방당한 사건은 오비디우스 인생의 결정적 시련이었다. 추방의 원인과 그 상징성은 이 로마의 시인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추방의 원인에 대해 완전한 추론에 도달한 경우는 없었다. 오직 시인 자신만이 그 원인을 알겠지만 오비디우스는 이에 대해 언급을 삼가고 있다. 그는 Tristia II 207-209에서 '시와 실수'(carmen et error)라는 두 개의 잘못이 자신을 파멸시켰다고 하면서도 그 중 실수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역사에 나오는 옥타비아누스로, 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는 간통법과 혼인법을 제정하여 성윤리를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시대를 사투르누스 지배하의 황금시대가 다시 도래한 로마 역사의 절정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서 대국에 걸맞는 옛 윤리의 회복은 중요한 과제였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오비디우스가 말한 의 잘못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 Ars amatoria> , 주로 자유연애를 다룬 시에 의할 가능성이 크다. 오비디우스에게 황제의 간통죄는 촌스러운 것이었고, 혼인, 가족의 의무, 출산보다는 사랑과 개인의 자유가 우선했다. 그는 모든 연인들이 유혹 가능한 존재이며 유혹 당하기를 원한다고 보았다. 여기에는 유부녀가 배제되어 있지 않다. 오비디우스는 황제가 납시는 원형 경기장이 여성을 물색할 장소로서 최적이라거나, 뼈아픈 패전 기념일을 상점이 문을 닫아 선물을 사주지 않아도 되니 연애하기 좋은 날로 권장하기도 했다. 그는 황제의 권력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듯한 서술도 서슴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나 텔레고누스의 이름을 저서의 소제목으로 삼고자 하여 왕이 곧 생부의 살해자라는 비유에도 거칠 것이 없었으며, 황제가 율리우스 가문의 계보라 여겨 소중히 하는 여신 베누스에 대해서는 마르스와의 부정에 중점을 두어 언급하였다. 이런 당돌한 행위가 황제에 대한 의식적 저항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비디우스의 저서는 자못 경박하다고 평가될 만큼 의도적으로 가벼울지언정, 반역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에게는 골치 덩어리 딸이 하나 있었는데, 세네카에 의하면 딸 율리아는 황제가 간통금지법을 제안했던 바로 그 연단에서 간통을 하는 등 희대의 탕아였다. 아우구스투스는 그 사실에 격노하여 원로원에 이 사실을 공개했다. 딸의 부정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함이리라. 그만큼 딸 율리아의 문제는 황제 개인의 고뇌이자, 정치에 있어서 불리한 패였다. 이쯤 되자, 오비디우스도 시대상을 눈치채고 자숙의 시기를 가졌다. 그는 사랑의 교사의 자리를 내어놓고 로마의 달력과 그에 담긴 종교 축제들을 다룬 <행사력 Fasti>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장려한 종교 축제와 황제의 축제일들을 챙기면서 아우구스투스를 찬양할 빌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연이어 후대를 이을 외손자들 둘도 차례로 잃은 황제에게 관용은 점점 자리를 잃어갔다. 딸 율리아를 이어 역시 간통죄를 저지른 손녀 율리아를 추방한 아우구스투스는 같은 해에 오비디우스마저 추방해버리고 말았다. 그 시간적 근접성 때문에 손녀 율리아와 오비디우스 사이에 모종의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되기도 한다. 오비디우스는 그가 두 눈을 가진 죄로 뜻하지 않게 범죄를 목격한 불운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오비디우스는 평소 고위층들과 잘 어울렸으니 이 와중에 우연히 윤리적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러니 평소 황제로부터 미움받던 오비디우스에게는 회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불운한 예라 불릴만하다.

 

오비디우스의 저서 <변신 이야기>는 휘기누스의 텍스트를 참조하여 쓰여졌다는 가설이 우세하다. 그의 책은 당대의 시풍이 주로 로마의 숭고한 역사를 다루었던 데에 반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하고 자신이 문학적 색깔로 풀어내면서 그는 신과 인간의 변신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자연물인 동물, 식물로 자유롭게 변신한다. 오비디우스는 책에서 신과 인간의 사랑과 애욕을 자유분방한 그의 성품에 맞게 가감없이 다루고 있다. 그러나 <변신 이야기>는 후대에 덕목을 강조한 도덕서로 사용되기도 했다. 책이 다루는 화제와 표면적 해석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책의 색깔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오비디우스는 그 묘한 긴장 관계 사이로 숨어들어갔다.

 

<변신 이야기>는 성소에 버금가는 베스트셀러로 근대 유럽의 예술, 특히 회화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오비디우스는 그리스인들과 달리 신화가 허구임을 전제하고 문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기독교 유일신의 지배 하에 숨죽이던 유럽 지성인들에게 문학적 구원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로마 황제로부터 추방당한 시인이었지만, 국가의 하드웨어만 강대했을 뿐 문화가 부실했던 로마에서 오비디우스는 그리스의 문화를 끌어와 대는 물줄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5

바다도 없고 땅도 없고 만물을 덮는 하늘도 없었을 즈음 자연은, 온 우주를 둘러보아도 그저 막막하게 퍼진 듯한 펑퍼짐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막막하게 퍼진 것을 카오스라고 하는데, 이 카오스는 형상도 질서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못했다. 말하자면 생명이 없는 퇴적물, 사물로 굳어지지 못한 모든 요소가 구획도 없이 밀치락달치락하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 여기에는 아직 이 세상에다 넉넉하게 빛을 던져줄 티탄도 없었고, 날이 감에 따라 초승달의 활시위를 부풀려가는 포이베도 없었다. 대지는 아직, 그 대지를 감싸주는 대기안에서 제 무게를 감당할 형편이 못 되었고 암피트리테도 땅의 가장자리를 따라 그 팔을 뻗을 형편이 못되었다. 대지와 바다와 공기를 이루는 요소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땅 위로는 걸을 수가 없었고 바다에서는 헤엄칠 수가 없었으며 대기에는 빛도 없었다. 말하자면, 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만물은 서로 반목하고 서로 방해만 했을 뿐이었다. 한 가지 질료 안에 있으면서도 추위는 더위와, 습기는 건기와, 부드러움은 딱딱함과, 무거움은 가벼움과 싸우고 있었다.

 

세상은 카오스로부터 시작하였다. 세상의 탄생은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나는 과정이다. 이런 설명은 서구 문화의 양대 산맥인 그리스 로마 신화와 기독교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명하기 전에 혼돈이 있었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창세기> 1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아리조나 지역 피마 인디언의 전설 <세상의 노래> - 태초에는 도처에 흑암, 그러니까 흑암과 물뿐이었더라. 그러다 한 곳에서 흑암이 덩어리지니, 덩어리졌다가는 갈라지고, 덩어리졌다가는 갈라지고 하니……<조셉 캠벨, 신화의 힘>

 

신은 세상의 창시자이자 근원이기 때문에 태초에는 신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신 역시 존재 탄생의 궁극점에서는 자기인식이 없었다. 마치 어두운 자궁 속의 태아와 같았다. 그런 신이 자아를 깨닫는다는 것은 자아와 자아가 아닌 것의 분별을 의미하므로 이 것이 곧 세상의 탄생이 된다. 세상은 분별이라는 매커니즘 하나로 모든 존재를 분리해나가기 시작했고, 거기서 질서가 태어났다.

놀라운 것은 과학 추론 역시, 신화적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방사선동위원소 분석 등의 과학 연구 결과, 지구는 실제로도 뜨거운 덩어리에서 지반이 안정되고 바다가 생기고 대기가 만들어지면서 오늘날에 이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이 인간의 영적 에너지, 즉 신화와 소통한다고 여겨지는 근거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20세기의 과학 화두는 세 가지로,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그리고 카오스 이론이다. 푸앵카레는 뉴튼 역학과 달리 변수 셋 이상부터는 미세한 차이에 의해 전혀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복잡계 연구의 문을 열었다. 기상학자 로렌츠는 지구 반대편에서 토네이도를 유발하는 나비표과, 만델브로는 프랙탈 구조를 발견했다. 인류가 이미 상식으로 알고 있던 실존적 세상에 과학이 더욱 근접해갈수록 카오스의 성질이 드러났다. 질서 속의 혼돈이 바로 세상의 이치이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 구겨져 있는여분의 차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알기 전에는 이 역시 손끝처럼 빤히 보이는 곳에 있었으나 암흑이었던 세상이다.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상징적 암흑에서 빛이 솟아나야 한다. 이 말은 상징이 아니다.

 

19

그러나 이 짐승들보다는 신들에 가깝고, 또 지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생물을 지배할 만한 존재는 없었다. 인류가, 인간이 창조된 것은 이즈음이었다. 이 인간은, 세계의 시원이자 만물의 조물주인 신이, 신의 씨앗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이페토스의 아들 프로메테오스가 천공에서 갓 떨어져나온, 따라서 그때까지는 여전히 천상적인 것이 조금은 남아있는 흙덩어리를 강물에다 이겨, 만물을 다스리는 조물주와 그 모양이 비슷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늘 시선을 땅에다 박고 다니는 데 비해 머리가 하늘로 솟아 있어서 별을 향하여 고개를 들 수도 있었다. 이로써,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흙덩어리였던 대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품안에 거느리게 된 것이다.

 

인간이 흙에서 나왔다는 것, 신의 닮았다는 것의 모티프 역시 기독교적 교리와 비슷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몸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고, 이마저도 더욱 쪼갠다면 탄소, 질소 수준의 별부스러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흙에서 인간이 나왔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두 발로 걸으며 머리가 하늘로 솟아 별을 향하여 고개를 든다는 구절은 탁월한 식견이 돋보인다. 동물로서 인간을 분석하자면, 직립 보행이 가능해지면서 자유로워진 손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뇌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 작은 차이가 오늘날 인류와 다른 영장류 간의 돌이킬 수 없는 차이를 만들었다. , 인간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신적 이상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39

홍수가 지나간 뒤 대지에 덮였던 진흙이 하늘에서 비치는 태양의 그윽한 열기로 다시 더워지자 대지는 이루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생명을 지어내었다. 이렇게 지어진 생명 중에는 홍수 이전에 있던 것도 있었고 전혀 새롭게 지어진 것도 있었다.

그럴 의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지가 산 것 중에서 크기로 치면 으뜸이 될 만한 왕뱀 퓌톤을 지어낸 것도 이 때였다. 이 왕뱀은 누우면 산자락 하나를 덮을 만큼 컸다. 이렇게 큰 짐승을 본 적이 없는 새 인류에게 이 왕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달아나는 사슴 아닌면 겁많은 산양에게나 활을 쏘아본 적이 있는 활의 신 아폴로는 이 왕뱀을 상대로 화살통을 비웠다. 왕뱀이 상처로 독액을 모두 쏟을 때까지 수천 개의 화살을 쏜 것이다. 아폴로는,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이 이 영웅적인 행적을 잊지 않도록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재간 겨루기 대회를 창시했다. 이 겨루기 대회가 바로 퓌티아 대회다. 이 대회에서는 여러 가지 겨루기가 벌어진다. 씨름, 달음박질, 병거 경주 같은 겨루기에서 승리한 젊은 선수는,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을 상으로 받았다. 이 시절에는 월계수로 만든 월계관이 없었다. 포에부스도 머리카락이 흘러내릴 때면 이 관을 썼다.

 

홍수 역시, 기독교의 노아의 방주를 생각나게 한다. 홍수라는 큰 물이 지나간 후 햇빛이 비추자 많은 생명이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이 생명의 탄생 과정을 재현하기 위해 설정하는 산실의 조건은 물과 빛(에너지)이다. 뱀은 조셉 캠벨이 해석하였듯이, 삶을 의미한다. 그 것도 큰 뱀이다. 뱀이 여자의 음탕함을 상징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자가 음탕하고 음기가 축축하리만치 풍성해야 생명이 탄생한다. 활의 신 아폴로가 이 왕뱀을 상대로 화살통을 비운다. 화살은 곧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태양의 신인 아폴로가 여자를 상징하는 뱀과 교합하면서 생명은 꽃을 피운다. 이 둘의 만남을 영웅과 괴물의 이야기처럼 다룬데에는 성적 특수성이 작용하였다. 이상이 <오감>라는 시에서 보여주었듯이 성은 원래 무서운 것이다.

 

48

나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포에부스 아폴로는 다프네를 사랑했다. 나무 둥치에 손을 댄 포에부슨느 갓 덮인 수피 아래서 콩닥거리는 그녀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월계수 가지를 다프네의 사지인 듯이 끌어안고 나무에 입술을 갖다대었다. 나무가 되었는데도 다프네는 이 입맞춤에 몸을 웅크렸다.

 

실제로도 나무들은 다른 동물이 자신에게 접근해올 때, 다프네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아름다운 신 아폴로지만 싫다는 여성을 억지로 취하고 있으므로, 이 이야기는 사실 여자인 나로서는 읽기가 버거운 텍스트이다.

 

63

태양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수레를 단 하루만 빌려주면 다리에 날개 달린 말을 몰아 수레를 끌어보겠노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아버지 태양신은, 스튁스에 맹세한 것을 후회했다. 세 번이나 그 빛나는 머리를 가로젓고는, 그가 말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경솔하게 말했다는 것을 알겠다. 내가 어쩌다 이런 약속을 했을꼬. 무슨 까닭이냐? 잘 들어라. 이것만은 내가 이루어줄 수 없는 소원이구나. 바라노니 네가 취소하여라. 네가 말하는 소원은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다. 네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권리다. 네 힘, 네 나이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인간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은 필멸의 팔자를 타고난 인간에게는 이루어질 수 가 없는 것이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소원은 다른 신들에게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신들이 각기 저희 권능을 뽐내지만 이 수레를 몰 수 있는 신은 오직 나뿐이다. 저 무서운 벼락을 던지시는 전능하신 올륌포스의 지배자도 이 수레만은 몰지 못한다. 너도 알다시피 유피테르보다 권능이 나은 자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이카루스의 예보다 더욱 직설적이다.

 

79

어머니인들 무슨 수로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어머니 클뤼메네는 달려가, 자신의 입술을 느낄 수 있을 동안이라도 입을 맞추어주는 수밖에 업었다. 그러나 클뤼메네는, 입맞춤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나무에서 껍질을 벗겨내려고 애쓰면서 아직은 부드러운 나뭇가지를 꺾어보았다. 그러자 꺾인 자리에서 수액 대신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너무나 흡사한 액체가 흘렀다. 이 가지를 꺾인 딸이 외쳤다.

[어머니, 저를 다치지 마세요. 제발 꺾지 마세요. 나무로 둔갑했어도 제 몸의 일부랍니다. , 어머니, 안녕히]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 껍질이 딸들의 입을 막았다. 이 나무 껍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태양빛에 굳으면서 호박 구슬이 되어 가지에서 강물로 떨어졌다. 강물은 이 호박 구슬을 물 밑에 간직했다. 뒷날 로마 부인네들의 장신구과 된 호박 구슬이 바로 이것이다.

 

식물과 인간의 신호 체계가 변신하는 순간이다.

 

85

요정은, 자기가 당하는 꼴을 목격한 그 숲이 싫어서 견딜 수 없어 그곳을 떠났다. 얼마나 싫었으면 활과 화살통 가져가는 것도 잊고 그곳을 떠났을까……

 

 

106

케크롭스의 달 아글라우로스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인비디아는 여신이 명한 대로 손을 썼다. 먼저 심술이 뚝뚝 듣는 손을 처녀의 가슴에 대어 그 안을 가시덩굴로 채우고 시커먼 독기를 뿜어 뼛속에까지 독기가 스며들게 한 뒤, 심장에도 따로 독기를 흘려넣었다. 인비디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글라우로스가 오로지 메르쿠리우스와 헤르세만을 질투하도록 말쑥하게 차려 입은 메르쿠리우스와 시집 잘 가는 헤르세의 형상을 빚어 따로 보여주었다. 빚어서 보여주되, 실제보다 훨씬 화려하게 빚어서 보여주었다.

케르롭스의 딸은 그 환영을 보고는 그만 질투의 화신이 되고 말았다. 가슴에서 이는 질투의 불길이 처녀의 가슴을 먹어들어갔다. 처녀는 밤이고 낮이고 한숨만 쉬면서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마음의 근심에 쫓기며 나날이 여위어가는 아글라우로스는, 흡사 뜨거운 햇볕 아래 놓인 얼음 덩어리 같았다. 아니다. 헤르세으 화려한 결혼과 늘어진 팔자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아글라우로스 가슴의 불길은 건초더미에 인 불길과 비슷했다. 불꽃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 결국은 건초더미를 깡그리 태우고 마는 불길과 비슷했다. 아글라우로스는, 팔자 늘어진 헤르세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말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엄한 아버지에게, 헤르세와 메르쿠리우스의 밀회를 고자질해야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결국 아글라우로스는 언니의 방문 앞에 드러누워 메르쿠리우스가 언니의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로 했다. 이윽고 메르쿠리우스가 왔다. 메르쿠리우스는 이글라우로스에게 길을 비키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아글라우로스는 소리를 질렀다.

[이제 내 언니에게 그만 오세요. 당신을 쫓아내기 전에는 여기에서 꼼짝도 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말 잊지 않도록 하여라]

발빠른 퀼레네의 신은 이렇게 응수하고는 신장으로 툭 건드려 문을 열었다.

아글라우로스는, 메르쿠리우스의 말이 심상치 않게 여겨져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사지가 노곤하고 무거워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글라우로스는 다시 한 번 일어나 보려고 했다. 그러나 역시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글라우로스가, 온 몸을 지나 손가락 끝까지 퍼져나가는 한기를 느끼고 있는 동안 혈관에서는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갔다. <질투>가 옮긴 괴질은 빠른 속도로 이미 병든 곳과 성한 곳을 파괴했다. 이어서 생명의 숨결이 지나다니는 길을 거슬러 치명적인 냉기가 올라왔다. 아글라우노스는 말을 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애썼다고 하더라도 소리는 제 길을 찾아 올라오지 못했으리라. 곧 목이 석화했고 이어서 입술이 굳어졌다. 아글라우로스는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실은 석상처럼 가만힌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석상이 되어 가만힌 앉아 있었다. 석상이 되었는데도 돌의 색깔은 거무튀튀했다. 검은 마음의 물이 들어 그런 색깔로 변하게 된 것이다.

 

질투는 그리 떳떳한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질투에 눈 먼 여인들은 수동적 공격성에서 머문다. , 직접 죽이지는 못하되, 가장 절묘고 결정적인 공간에서 무의지를 가장한 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도 비슷한 일화가 실려있다. 아마란타는 고아인 레베카에게 사랑하던 남자, 피에르토 크리스피를 빼앗긴 후 질투에 눈이 먼다. 우여곡절 끝에 레베카는 피에르토 대신 아마란타의 오빠 호세 아르카디오와 결혼하게 되고, 남겨진 피에르토는 레베카 대신 아마란타에게 구애를 한다. 그러나 이미 약이 오를 때로 오른 아마란타는 피에르토를 벌하기 위해서인지 끝끝내 이 여린 청년의 청혼을 거절한다. 피에르토는 절망하여 권총 자살한다. 후에 아마란타는 그 누구의 청혼도 거절한 채 조용히 수의만을 만든다. 그리고 이 수의가 완성되자 생을 마감한다. 아마란타는 아글라우로스보다는 덜 직접적이지만, 연적을 향한 질투로 타인과 자신의 삶을 파괴했다. 심지어 사랑하던 사람을 획득할 기회가 왔는데도 그녀는 이를 거부한다. 그녀는 그저 가만히 있는다. 아글라우로스가 돌이 되어 버린 것처럼 아마란타도 여성으로서의 삶을 정지시켜 버린다. 이는 희생양을 자처함으로써 자신에게 질투를 유발한 자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원망 때문에 돌이 되어버리는(혹은 그 비슷한 것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는 한국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혼례를 치른 첫 날, 술이 거나하게 취한 신랑이 새색시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가 오줌보가 급해 다시 방문을 나오다가 그만 바지가락이 못에 걸렸다. 자신을 잡아끄는 못이 음탕한 새색시의 손인 줄 알고 빈정이 상한 새신랑은 그 길로 신방을 떠나 몇 년을 방랑한다. 후에 집으로 돌아와보니, 새색시는 신부복 차림 그대로 신방에 다소곳히 앉아 있었다. 놀란 신랑이 그녀의 어깨를 만지자, 그제서야 신부는 가루가 되어 흩어져 내렸다.

 

 

113

그러나 이 동굴에는 머리에 황금 볏이 달린 마르스의 왕뱀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왕뱀의 두 눈은 화등잔 같았고 그 몸은 독액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왕뱀이 입을 벌리자 세 줄로 난 이빨 사이로 세 갈래로 찢어진 혀가 들락거렸다. 포에니키아에서 온 이 망명객들은 동굴에 왕뱀이 사는 것도 모르고 샘 가까이 다가가 물에다 항아리를 넣었다. 왕뱀이 이들의 발소리를 듣고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카드모스의 부하들은, 사진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듯한 공포를 느끼고, 물항아리를 놓고는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왕뱀은 비늘 달린 몸으로 똬리를 틀었다가 활 모양을 그리며 윗몸을 쳐들었다. 몸이 어찌나 큰지 이로써 숲 전체를 덮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왕뱀은 윗몸을 들고 숲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똬리를 푼 이 왕뱀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사이에 있는 뱀자리 성좌만큼이나 컸다. 왕뱀은 바로 포에니키아 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망명 온 군사들 가운데엔, 무기를 들고 싸울 준비를 하는 자도 있었고 도망칠 준비를 하는 자도 있었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하는 자도 물론 있었다. 왕뱀은, 엄니로 물어죽이고, 똬리 안으로 감아들여서 죽이고, 유독한 숨결을 내뿜어서 죽이고 …… 하여튼 이들을 모두 죽였다.

 

……(중략)……

 

승리한 카드모스가 이 무서운 적의 거대한 시체를 내려다보고 서있는데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드모스는 목소리의 임자를 찾느라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분명히 들려오고 있었다.

[아게노르의 아들아, 왜 네가 죽인 왕뱀을 내려다보고 서 있느냐? 너 역시 인간의 눈 앞에서 그렇게 뱀이 될 것이다.]

카드모스의 뺨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카드모스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한동안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이때 이 영웅의 수호신인 팔라스 여신이 공중에 나타나 소리없이 땅 위로 내려섰다. 여신은 그에게, 땅을 갈아엎고 인간의 씨앗인 왕뱀의 이빨을 뽑아 뿌리면 새 백성이 돋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뱀이 하늘의 뱀자리 성좌만큼 크다면, 그건 뱀이 아니라 용이 아닐까? 조셉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뱀과 용에 대해서 거론했듯이, 뱀이 독수리와 같은 양의 기운과 합쳐지면 용이 된다. 뱀이 숲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크다면 이 뱀은 아직 용은 아니더라도 용이 되기 위해 수천년을 기다려온 이무기 정도는 될 것이다.

 

카드모스는 이 괴물을 영웅적으로 처단한다. 한국 설화에서 천년 묵은 이무기를 죽이게 되면 그 원한 때문에 반드시 재앙이 뒤따른다. 대개의 경우, 미리 베풀어 둔 선행 때문에 자연의 또다른 미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한국적 정서인 반면, 카드모스는 자신이 죽인 동물로 환원된다. 캠벨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는 생존의 원죄에 대해 설명한다. 이 죄책감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인류는 피살된 생명과 동일화를 추구하는 의식을 거행해왔다. 실제로 카드모스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훗날 뱀이 된다. 이토 준치의 공포 만화에서는 재미로 달팽이를 괴롭힌 학생이 달팽이가 되는 내용이 나온다. 스스로 피살자가 되어 속죄를 하는 셈이다.

 

신화의 상징으로 해석하자면, 뱀을 모티프로 하는 부족국가에 새로운 문명인들이 섞여 들어왔다가 호된 신고식을 치른 후, 전쟁으로 그들을 제압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승리자들 역시 그 땅에 살게 되면서 원래의 뱀 부족 국가의 문화에 동화되어 버렸다. , “뱀이 되어버린 셈이다. 영웅의 수호신이 카드모스에게 땅을 갈아엎고 인간의 씨앗인 왕뱀의 이빨을 뽑아 뿌리라 한 것 역시, 카드모스의 사람들이 뱀 부족의 여인들과 결혼하여 자손을 양산하였고 그 생의 근본으로 농업을 해왔음을 시사한다.

 

128

테이레시아스는, 두 신의 다분히 장난기가 있는 논쟁을 평론할 입장에 몰리자 남신을 편들어 유피테르 쪽이 옳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노는 별것도 아닌 이 일에 불같이 화를 내며 이 테이레시아스를 장님으로 만들어버렸다. 참으로 염치가 없는 것은 유피테르였다. 그러나 신들의 세계에서, 한 신이 매긴 죄값을 다른 신이 벗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피테르는, 보는 능력을 빼앗긴 테이레시아스에게 대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눈을 주었다.

 

132

에코의 가슴에 내린, 나르키소스에 대한 사랑의 뿌리는 깊었다. 실연의 고통을 몸부림칠 대마다 이 사랑의 뿌리는 나날이 깊어갔다. 격정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에코는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갔다. 나날이 수척해지면서 온몸에 주름살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여위어가다가 여위어가다가 에코의 아름답던 몸은 그만 한줌의 재로 변하여 바람에 날려가고 말았다. 남은 것은 뼈 뿐이었으나, 곧 이 뼈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리자 마지막으로는 소리만 남았다.

 

 

138

나르키소스는 샘물을 내려다보면서 마지막으로, [무정한 이여!] 이렇게 중얼거리자 에코도, [무정한 이여……] 하고 중얼거렸고, 나르키소스가, [안녕]하고 마지막 인사를 보냈을 때도 에코는 [안녕…….] 소리를 되울렸다.

 

분명 신화보다 먼저 존재했을 메아리라는 현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풀어내었다.

 

143

내 이름은 아코이테스 라고 합니다. 태어난 곳은 뤼디아. 부모님은 신분이 천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저에게, 힘좋은 황소로 갈아야 할 만한 전답도, 양떼도, 소도 물려주시지 못했습니다. 그럴 여유가 없으셨던 것이죠. 아버지는, 지금의 저처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로 물고기나 잡으셨으니까요. 아버지의 전재산은 바로 고기잡는 기술이었던 것이지요. 아버지께서는 이 기술을 가르쳐주시면서, [내가 물려줄 것은 이것뿐이니, 이 재주를 익혀 내 뒤를 이어라] 이러십디다.

아버지는 이로부터 오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는 강물만 유산으로 남기시고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이 세상을 살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뱃길 헤아려 키를 잡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비를 부르는 올레노스 산양자리, 타위게테 자리, 휘아데스 자리, 곰자리를 곧잘 헤아리고 바람의 속내, 피항에 알맞은 항구 같은 것에 대해서도 제법 알지요.

 

부모에 대한 연민과 태생의 극복을 위한 고군분투

 

 

155

처녀라는 처녀는 모두 뿌리도 줄기도 없는 축제에 나가 휴일을 즐기니까 우리도 이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어야 하지 않겠어? 손은, 저 박쿠스보다 더 거룩하신 팔라스 여신의 직무에 맡기고 입으로는 차례로 옛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다. 하나가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들으면서 일하고……

 

오비디우스는 다양한 문학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신화에서 액자형 구성을 사용함으로써 색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처녀들이 일을 하던 와중에 함께 휴식을 취하면서 서로 재미있는 신화에 대해 앞다투어 만담꽃을 피운다. 휴식을 기대하는 처녀들만큼, 읽는 독자들 역시 신명나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묘한 장치이다. 당시 로마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161

내가 죽어서 당신의 뒤를 따르면,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죽이고 당신의 길동무가 되었다고 할 테지요. 죽음이 당신을 내게서 떼어놓았지만, 이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어요. 무정한 부모님들이시여. 내 부모님, 퓌라모스의 부모님들이시여. 원하오니 저희들 소원을 이루어주소서. 뜨거운 사랑과 죽음의 손길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한 무덤에 묻어주소서. 나무여, 이미 내 사랑의 주검을 보았고 곧 내 주검을 내려다볼 나무여, 우리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시어 사람들이 우리 둘이 흘린 피를 되새기도록 그대 열매를 어둡고 슬픈 색깔로 물들여 주세요.]

이렇게 울부짖는 티스베는 그때까지도 퓌라모스의 체온이 남아있는 칼을 가슴에 안아 그 끝을 가슴 밑에다 대고는 앞으로 꼬구라졌어.

 

 

이 대목에서 어찌 세익스피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비디우스가 영국의 대문호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은, 바로 이 대목을 두고 한 말이리라. 줄리엣은 자신의 몸을 관통할 칼에게 비장한 대화를 시도한다. [여기가 네 칼집이다.] 티스베는 나무 열매를 어둡고 슬픈 색깔로 물들여 달라고 청한다. 줄리엣ㅢ 칼집 발언보다 덜 결연하지만 더 처연한 빛을 띈다.

 

 

167

이즈음 태양신을 짝사랑하고 있던 클뤼티에가 이 사실을 알았어. 자기의 사랑은 본 척도 앖고 다른 처녀를 사랑하는 이뤼테에에게는 태양신뿐만 아니라 이 레우코토에까지도 원망스럽게 보였어. 그래서 클뤼티에는 레우코토에가 태양신에게 순결을 잃었다는 소문을 퍼뜨렸지. 이 소문은 오래지 않아 레우코토에의 아버지 오르카모스의 귀에까지 들어갔어. 오르카모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수밖에. 그는 딸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지. 레오코토에는 아버지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태양을 향해 팔을 벌리고 이렇게 외쳤대.

<그분이 강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원해서 그리 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말을 믿지 않고, 구덩이를 파게 하고는 딸을 이 구덩이 안에 넣은 다음 그 위에다 모래 언덕을 하나 만들어버렸어. 휘페리온의 아들은 빛줄기로 이 모래를 흩어버리고, 사랑하는 레우코토에가 머리를 들고 태양신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려고 했어. 하지만, 인간에 불과한 레우코토에가 그 무거운 모래 언덕에 깔려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겠어? 죽었던 거야. 전해지기로는, 아들 파에톤을 잃은 이래로, 천마모는 이 태양신이 가장 슬퍼한 것은 이때였대. 태양신은, 식어버린 이 레우코토에의 몸에다 빛줄기로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대. 하지만 레우코토에의 팔자 마련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태양신이라고 별수 있겠어? 태양신은 할 수 없이 레우코토에의 몸에, 그리고 그 주위에다 넥타르를 뿌린 뒤 목놓아 울고는 이렇게 다짐했다는군.

<어떻게든 네가 하늘을 보게 하고야 말겠다.>

그러자 신주에 젖은 레우코토에의 몸이 스르르 녹으면서 주위로 향기가 퍼져나갔다지. 이윽고 그 흙에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면서 모래 언덕 위로 가지를 뻗는데…… 이 나무가 바로 유향목이야.

 

 

우리는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의 묘소에 꽃을 가져가거나 술을 가져 간다. 제삿상에는 망자가 살아 생전 좋아했던 음식을 놓기도 한다. 어째서 레우코토에는 유항목이라는 나무가 되었을까? 이 역시, 그녀의 비극적인 최후에 대한 신의 위로이다. 네가 나와 사랑하였으니 우리 비록 인간의 몸은 빌리지 못할 지언정, 나무가 되어 함께 보며 살자는 차선을 택했다. 죽음 후의 변신은 이처럼 죽은 자의 생전의 마음도 위로하면서, 사랑하던 이의 죽음을 부정하여 이승에 남겨진 자들 역시 위로한다.

 

 

201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내 설명해 드리지요. 메두사는 한때 아름답기로 소문난 처녀였더랍니다. 수많은 구혼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니까요. 다른 부분도 아름다웠이지만 그 중에서도 머리카락은 특히 아름다웠이던 모양이지요? 나는, 이 시절에 메도사의 머리카락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바다의 지배자가 이 메두사를 미네르바 여신의 신전으로 데려가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합디다. 이 유피테르의 따님으로서는 방패로 얼굴을 가려야 할 만큼 무안당하셨던 거지요. 그래서 이 죄값을 물어 이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어버리신 것이지요. 요즈음도 여신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이 뱀을 흉갑에다 달고 다니시면서, 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신답니다.

 

 

243

베짜기의 여신인 팔라스 자신은 물론, 잘된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리볼 조차도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 솜씨였다. 겨루기 상대의 솜씨가 인간의 도를 넘은 데 격분한 이 금발의 여신은 신들의 비행을 낱낱이 폭로한 이 베폭을 찢어버리고는, 들고 있던 퀴토로스 산 회양나무 북으로 아라크네의 이마를 서너 번 때렸다. 아라크네는 그제서야 여신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얻은 줄을 알고는 들보에 목을 매었다. 여신은, 제 손으로 들보에 목을 맨 이 아라크네를 가엾게 보고 그 끈을 늦추어 주면서 이렇게 일렀다.

[이 사악한 것아, 네가 누구 마음대로 네 목숨을 끊으려 하느냐? 목숨을 보존하라. 보존하되 늘 이렇게 매달려 있어야 한다. 이것은 벌은 벌이나 겁벌이어서 끝이 없을 것인즉, 네 일족, 네 후손들까지 이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라크네의 신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번역에서는 여신이 아라크네보다 더 아름답게 베를 짰다고 설정하기도 한다. 아라크네가 신을 능가하는 것이 교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신보다 더 베를 잘 짰다. 그런 그녀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거미가 된 것이 실제 신화이다. 불조리한 권력 그것이 상사가 되었든, 국가 일반이 되었든 간에 에 한 번이라도 저항할 꿈을 품어본 적이 있는 성인은 이 신화를 매우 잘 이해한다. , 성인이 되어서야 실제 신화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나이대별로 신화에서 얻는 깨달음이 다르고, 각자를 위한 신화 역시 다르다고 한 캠벨의 말이 생각난다.

 

 

 

262

지금은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사람이 한, 라토나 여신을 업신여겼다가 재앙을 당한 뤼키아 사람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끝났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른 사람이, 사튀로스가 아폴로의 손에 산 채로 껍질을 벗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즉 미네르바가 만든 피리로 아폴로와 연주 겨루기를 도전했다가 진 벌로 껍질을 벗기게 된 것이다. 껍질을 벗기게 된 마르쉬아스는 외쳤다.

[살려주세요. 어쩌자고 진짜로 내 껍질을 벗긴 것입니까? 다시는 이러지 않겠으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약속합니다. 피리 불기에서 졌다고 이러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내 껍질을 벗긴 것입니까?”의 원문은 왜 나로부터 나를 벗깁니까?”라고 한다. 이윤기의 번역에 대한 한 비평에서는 이 대목을 예로 들며, 해독력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문학을 상실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일리가 있는 비평이다. 문학의 생명력을 번역 후에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간 덜 다듬어진 수더분한 번역을 감수해야 한다. 독자는 지나치게 잘 읽히는 번역서를 경계해야 한다고 비평가는 말했다.

 

 

그가 이렇게 고함을 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아폴로는 그의 껍질을 깡그리 벗겨버렸다. 이로써 그의 몸은, 전체가 하나의 상처가 된 거싱었다.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신경의 가닥도 하나 남김없이 밖으로 드러났다. 껍질이 없어졌으니, 핏줄 뛴느 것이 드러나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벌떡벌떡 뛰는 내장기관과, 가슴 속의 허파도 훤히 들여다보였다. 들판을 누비고 다니던 숲의 반신들인 파우누스들은 이 마르쉬아스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 동아리인 사튀로스들은 물론, 그가 사랑하던 올륌포스, 요정들, 산에서 양떼나 뿔 달린 가축을 돌보던 목동들까지도 이 마르쉬아스를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렸다. 기름진 땅은 눈물로 젖었다. 젖은 땅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가슴 깊숙이 빨아들였다. 땅은 이 눈물로 샘을 지어 땅 위로 용솟음치게 했다. 이 샘에서 물은 시내가 되어 둑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다. 이 시냇물은 온 프뤼기아 땅에서도 가장 맑았는데, 사람들은 이 시내를 <마르쉬아스 시내>라고 불렀다.

 

 

눈물이 흘러 강을 이루는 한시 하나가 응당 생각이 날 것이다.

 

 

275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칼을 갈아야 할 때다. 아니, 칼보다 나은 무기가 있다면 그것을 벼려야 할 때다. 필로멜라, 내게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왕궁을 불바다로 만들고 테레오스를 그 불길 속에 던져 넣으면 네 분이 가라앉겠느냐. 이 자의 혀를 자르고 눈알을 뽑고, 너에게 범죄한 사지를 잘라 육신으로부터 죄많은 영혼을 풀어내면 네 분이 풀리겠느냐. 시시한 복수는 안 된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방도를 모르겠구나.

 

 

여동생을 위한 복수를 결심한 언니. 현대 사회에서는 그저 남편과 이혼하고 자기 역시 또다른 피해자의 입장에 서버리고 끝나기 쉽상일 테다. 그러나 위대한 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대 여인들은 남편과의 갈등 관계에서 결코 수동적 입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한 고대 설화에서 타향의 길로 우연히 접어든 남자가 그 지역의 곰과 결혼을 하여 아이 둘을 낳고 잘 살았다. 그러다 운 좋게 고향으로 돌아갈 방도가 생긴 남자는 처자식을 버린 채 강을 건너 돌아가 버린다. 그런 남편을 자식들과 함께 좇아온 아내는 강 건너 남편을 보고 화가 났다. 그래서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자식들을 찢어 죽여버린다.

 

 

291

내 아내여. 내가 오늘 같은 영화를 누리는 것은 다 그대 덕분이오. 그대는 내게 모든 것을 베풀었으니 나는 그대가 베푼 은혜 헤아릴 길이 없소. 그러나 할 수 있어서(그대의 마법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어디에 있으리오만), 내 수명에서 몇 년을 빼어 내 아버지 수명에다 보태어준다면 내가 더 무엇을 바라겠소?

 

 

변신 이야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찾아지는 효성에 관한 텍스트이다.

 

 

320

그러니까 말하자면, 먼저 납치해당해야 했던 사람은 오리튀이아였다기보다는 프로크리스였던 셈이지요. 나와 프로크리스는 에렉테오스 왕의 허락을 얻어 혼인했어요. 사랑으로 하나가 된 거지요. 사람들은 나를 일러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소만, 아닌게아니라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신들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좋게 안 보셨던 모양이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행복하게 살고 있을 테지요. 우리가 혼인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오. 나는 꽃이 만발한 휘메나이토스 산에다 사냥 그물을 치고 사슴을 기다리다가 아우로라 여신의 눈에 띄고 말았어요. 새벽빛으로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여신, 그대도 모르지 않겠지요. 노란 옷을 입은 이 아우로라 여신은, 싫다는 나를 강제로 끌고 갔어요. 이여신을 명예를 돌보는 뜻에서 내 솔직하게 말하리다. 여신의 장밋빛 입술은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밤과 낮의 경계이 있는 왕국의 여왕이시고, 날마다 넥타르를 마시는 분이시니 당연하지요. 하지만 내 사랑은 프로크리스였지 여신이 아니었어요. 따라서 프로크리스는 언제나 내 입술에, 내 가슴에 있었어요. 나는 여신에게, 혼인에 대한 나의 의무, 내가 겪었던 신혼생활, 새로 꾸민 가정, 나를 잃은 아내에게 내가 했던 약속을 누누히 말하면서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했지요. 마침내 여신은 화를 내시면서 이러시더군요.

<이 은혜를 모르는 자야, 우는 소리 이제 그만 작작 해라. 프로크리스가 그렇게 좋으면 가려므나. 하지만 내가 너흐들 앞일을 꿰어보니, 너는 아무래도 프로크리스와 혼인한 것을 후회하겠다.>

 

 

367

집 주인은 필레몬이라는 영감과 그의 할멈 바우키스…… 마음씨 착한 이 노부부는 바로 그 초라한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둘 다 백발이 될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네. 이 노부부는, 가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라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네. 이 집에는 주인과 종이 따로 없었지. 식구가 둘뿐이었으니 명을 내리는 사람 다로 있고, 그 명을 받들어 좇는 사람이 따로 있을 턱이 없을 것이 아니겠나.

 

 

370

그런데 어느 날 말이네, 세월의 무게로 허리가 고부라진 이들은 신전 계단에 서서 옛날 기기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바우키스는, 필레몬의 몸에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고, 필레몬은 바우키스의 몸에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네. 이윽고 머리 위로 나무가 드디어 올라가지 시작하자 이들은 마지막 인사를 서로 나누었네. 말을 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인사를 해두어야 했던 것이네.

<잘 가게, 할미.>

<잘 가요, 영감.>

이들이 이러는데 얼굴이 나무껍질로 덮이면서 이들의 입을 막아버렸지.

프뤼기아 농부들은 지금도 나란히 서 있는 이 두 그루의 나무, 한때는 부부지간이었던 이 나물를 보면서 옛이야기를 한다네.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나를 속여서 득될 것이 하나도 없는 노인이었네. 나는 이 나뭇가지에 화한이 걸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고, 화환을 하나 만들어 직접 여기에다 건 사람이네. 나는 화환을 걸면서 이런 말을 되뇌었네.

<신들을 사랑하는 자는 신들의 사랑을 입고, 신들을 드높이는 자는 사람들로부터 드높임을 받는 법이거니.>

 

 

여기서 한 번 더, 인간은 최후의 인간말을 한 후 나무가 된다.

 

 

2

 

 

28

전하에 그 이름을 떨친 유피테르의 아들 헤라클레스는 험한 오이타 산에서 자란 나무를 잘라 스스로 화장단을 쌓았다. 그러고는 포이아스의 아들 필록테테스에게 자기의 활과 화살통을 주었다 .이 활과 화살통은 후일 두번째로 트로이아성에서 그 이름값을 하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이 필록테테스에게 화장단에다 불을 지르게 했다. 탐욕스러운 불길은, 처음에는 그가 장작더미에다 깔고 누운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태웠고, 그 다음으로는 몽둥이를 베고 누운 그의 목,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그의 얼굴로 옮겨 붙었다. 그의 표정은,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술잔에 둘러싸여 있는 술잔치의 술손님의 표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윽고 불길은 힘을 얻어 사방으로 혀를 날름거리면서 그 불길을 두려워하지 않던 영웅의 사지를 태우고, 그 불길을 가볍게 여기던 영웅의 몸을 태웠다. 천궁의 신들은 지상의 왕자였던 이 영웅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러나 유피테르 대신은, 신들의 어두운 표정을 일별하고는 이런 말로 그들을 위로했다.

[슬픔에 잠긴 그대들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이 흡족하오. 내가 은혜를 아는 인간들의 절대자이자 왕으로 불린다는 것이 오늘처럼 만족스러웠던 날은 없소. 나는, 그대들 역시 나처럼 내 아들을 지켜주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오. 그대들은 저 아이가 이룬 위대한 업적으로 저 아이를 대견하게 여기는 모양이오만, 그 영광은 나로 인한 영광에 다름 아니오. 그러나 그대들이 온 마음으로 슬퍼해야 할 일인 것만은 아니오. 저 오이타 산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정복한 헤라클레슨느 그대들이 바라보고 있는 저 불길까지 정복할 것이오. 저 불카누스의 권능이 태울 수 있는 것은 저 아이가 제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뿐이오. 저 아이가 내게서 받은 것은 영생불사하는 것이니 저런 불길에 탈 리가 없소. 나는 이제 지상에서 한살이를 마친 저 아이를 이 천상으로 불러올리려 하오. 나는 그대들 신들이 모두 기뻐하리라고 믿소. 혹 헤라클레스가 천궁으로 올라와 신이 되고, 이런 특혜를 누리게 되는 것을 반기지 않을 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이에게도 사람은 있을지언정 저 헤라클레스에게 그런 특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오]

신들은 모두 유피테르의 말에 갈채를 보냈다. 천궁의 왕후인 유노 여신도, 유피테르가 한 말의 마지막 부분이 자기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눈쌀을 찌푸렸을 뿐 별로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불카누스가 헤라클레스의 몸으로부터 불에 탈 수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내자 이 영웅의 형상은 이 영웅을 떠났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영웅의 모습, 오로지 아버지 유피테르로부터 받은 것으로만 이루어진 영웅의 모습은 이제 지상에서 숨쉬던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뱀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 비늘이 반짝이는 새 껍질로 거듭나듯이 티륀스의 영웅도 필멸의 육체를 벗고 불사의 몸으로 거듭났다. 인간의 오체를 벗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는 이전보다 더욱 위엄있는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전능한 그의 아버지 유피테르는 그를 사두마차에다 태우고 구름으로 가려 천상으로 불러올리고는 반짝이는 별자리 사이에다 박아주었다. 아틀라스는 이 새로운 별의 무게를 어깨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헤라클레스의 최후를 보고 매우 놀랐다. 반신반인인 헤라클레스의 죽음, 그리고 죽음 후 아버지 제우스신에 의해 신으로 부활하여 천상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을 단번에 떠오르게 한다. 메시아만큼 신성을 부여받은 존재가 자신을 스스로 희생하는 신의 의례를 통과한 후 신이 된다. 인간 성인식의 차상위 버전이라 불릴 만하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힌 후 가장 사랑받는 신이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곤경에 처하게 된 연유가 지극히 개인적이라 대승적 가치를 예수만큼 부여하기는 힘들다. 오비디우스의 저술이다 보니, 아버지 제우스도 아들의 죽음을 질투하리만치 철딱서니 없이 그려진다. 그러나 의미 덧입히기를 거부한 까닭에 헤라클레스의 죽음은 신화이면서도 극사실성을 띄게 된다.

 

 

58

이피스는 그러니까, 소녀의 몸으로 소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피스는 착잡한 심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면서 혼자 이런 말을 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이 사랑, 이같이 기묘한 사랑에 빠진 나는 장차 어떻게 될까? 세상에 이런 사랑이 있는 줄을 그 누가 알랴? 신들께 나를 살려두실 생각이 있었더라면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버려두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나를 파멸케 할 의향이 있었더라면 신들께서는 인간을 치시는 여느 불행으로 나를 치셨을 것이다. 암소는 암소를 사랑할 수 없고, 암말은 암말을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다. 암양의 피를 끌게 하는 것은 숫양이요, 암사슴 뒤를 쫓는 것은 수사슴이 아니던가. 새들도 이와 같이 짝을 짓는다. 이 세상에, 암컷이 암컷을 사랑하는 짐승이 어디 있던가? ,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괴물이라면 없는 것이 없는 이 크레타에서 솔의 딸이 황소를 사랑한 일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왕비는 여자였고 소는 수소가 아니었던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나의 이 미친 사랑에 비하면 그 왕비의 사랑은 이루어질 가능성이라도 있었으니 만큼 그래도 온당한 편이다. 왕비는 암소 모형을 빌려 이 수소를 속여 사랑을 이루지 않았던가? 왕비가 속인 소는 그래도 수소가 아니었던가?

 

 

이피스는 아버지를 향한 연정에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사랑의 이치에 대해 강박적인 서술을 늘어놓는다.

 

 

85

그러나 그분은 제 아버님이십니다. 만일에 제가 그렇게 훌륭한 임금님의 딸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그분의 신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신들이시여, 그분은 이미 저의 마음 차지가 되었는데 저는 왜 그분에게 다가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저와 그분과 가깝다는 것이 저에게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94

그러나 사실 이 나무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이 눈물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에서 듣는 수액에는 이 처녀의 이름이 붙어 오늘날까지도 <뮈르>라고 불린다.

 

 

97

도망치는 짐승을 보거든 용기를 내어 쫓아도 좋다. 그러나 네가 사냥하려는 짐승이 너와 용기를 결려 하거든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짐승과 겨루는 것은 위험하다. 너로 인하여 고통 받는 것이 나라는 것에 유념하고 겁없이 대들지 말기 바란다. 자연이 너와 대적할 무기를 내린 짐승은 도발하지 말아라. 공연히 도발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기면, 명예에 대한 네 욕심 값을 나는 근심으로 치러야 한다. 베누스까지도 반하게 만들었던 너의 그 젊음, 너의 그 아름다움, 너의 그 매력도 사자나 멧돼지나 그 밖의 사나운 들짐승의 눈이나 사나운 성정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 멧돼지는 그 무서운 엄니로 전광석화 같이 공격하고 사자는 포악하여 언제나 인간을 공격할 채비를 갖추고 기다린다. 내 너에게 이르거니와 이런 짐승들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그 하지 말라는 것을 통해 죽게 된다. 영화의 전형화된 플롯.

 

 

106

백조가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고 있던 베누스 여신은 퀴프로스에 이르기도 전에, 아도닌스가 죽어가면서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고는 백조 머리를 돌려,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베누스 여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도니스는 이미 사지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수레에서 뛰어내린 베누스 여신은 옷깃과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그 아름다운 가슴을 사랑의 여신에겍는 어울리지 않게 두드리며 운명의 여신들을 비난했다 .베누스 여신은 울부짖으며 이런 푸념을 했다.

 

<운명의 여신들이여, 그대들은 이렇듯이 이 가엾은 것을 죽게 하였다만 그대들 뜻대로만은 안 될 것이다. 아도니스여, 내 슬픔의 징표를 너에게 남기고야 말 터이니,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내 슬픔을 흉내내어 너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다. 너는 피는 꽃으로 변할 것이니 죽되 영영 죽는 것이 아니다. 프로세르피나가 한 여인의 몸을 멘테로 바꾸었을 때도 시비하는 자가 업었넨드, 내가 이 용감한 키뉘라스의 외손에게 다른 몸을 준다고 장차 누가 시비하랴!>

이 말 끝에 베누스 여신은 아도니스의 피에다 향기로운 넥타르를 뿌렸다. 신주가 뿌려지자 아도니스의 피에 젖었던 노란 모래에서 거품이 일었고 잠시 후에는 여기에서 핏빛 꽃이 피어났다. 꽃 모양은, 외피가 종자를 싸고 있는 석류꽃과 흡사했다. 그러나 이 꽃은 피기가 무섭게 곧 지고 말았다. 워낙 대가 연약한데다 꽃잎이 얇은지라, 꽃은 산들바람만 불어도 그 대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을 연상하여 이 꽃의 이름을 <아네모네>라고 부른다.

오르페우스의 기나긴 이야기는 이로써 끝났다.

 

108

1.     오르페우스의 죽음

트라키아의 가인 오르페우스가 이런 노래를 부르자 살아 있는 산속의 모든 짐승들, 심지어는 숲과 바위들까지 그의 노래에 감응했다. 그런데 이런 오르페우스의 모습이 트라키아 여자들 눈에 띄었다. 어깨에다 짐승 가죽을 두른 이 여자들이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다가, 수금 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오르페우스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산들바람에 나부끼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외쳤다.

[보아라, 저기를 보아라! 여기에 우리를 업신여기는 자가 있다!]

이렇게 외친 여자가, 아폴로 신이 사랑하는 이 가인을 향하여 그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입술을 겨누고, 들고 있던 무기를 던졌다. 나뭇잎이 달린 무기는 과녁을 향해 날았다. 그 노래를 부르는 가인을 공격하려 했던 것을 사죄라도 하는 듯이 가인의 발치에 떨어졌다. 여자들의 공격은 더욱 거칠어졌다 .여자들의 자제가 무너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자들이 자제를 잃고 나서부터는 오직 광기가 그들을 지배했다. 여자들이 광란했다고는 하나 이들의 무기는 오르페우스가 부르는 노래의 마력에 흘려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자들이 미친 듯이 지르는 고함소리, 프뤼기아 피리 소리, 찰찰이 소리, 여자들이 저희 가슴을 치며 발악하는 소리가 수금이 지어내는 가락을 차단했다. 이때부터 여자들이 던지는 돌은 이 가인의 피로 물들었다. 여자들 귀에는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

 

 

무리에서 우연한 최초 반응자의 판단이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준 사례이다. 살아있는 자연이 모두 감응한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분명 아름다운 노래였으리라. 그러나 여기에 전혀 뜻밖의 의미를 부여한 최초의 여자 때문에 그녀에게 동조하는 무리들은 오르페우스의 음악을 제대로듣지 않고 제멋대로 광란에 빠져 날뛰었다.

 

 

115

미다스 왕이 이 황홀한 꿈에 잠겨 있는데 시종이 음식상을 마련했다. 상에다 고기르 차리고 빵을 차린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먹으려고 빵을 집자 빵은 딱딱하게 굳어져 금이 되었다. 배가 고파 고기를 먹으려고 한 입을 베어물면 금으로 변한 고기에는 그의 이빨 자국만 났다. 그는 이러한 선물을 준 박쿠스신의 포도주에다 물을 타서 마시려고 OGTEK .그러나 이 포도주는 그의 입술 사이로 들어가다가 말고 굳어져 금덩어리가 되고는 했다 .엄청난 부자가 되는 판인데도 미다스는 슬며시 겁이 났다. 그는 이루어진 지 얼마 안되는 이 소원이 싫어 어떻게든 이를 모면해 볼 궁리를 했다. 아무리 많아도 먹을 수가 없었다. 목이 타는데도 아무것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는 황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진 그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외쳤다.

[아버지 박쿠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큰 죄를 지었나이다. 기도하옵건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재앙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사람들은 마이다스의 손이 주는 황홀한 도취감에 빠져, 마이다스 이야기의 최후가 황제의 참담한 기도로 끝난다는 사실을 잘 잊어버린다.

 

 

144

그러고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지아비의 주검을 쓰다듬으며 울부짖었다.

[그대여, 이렇게 되어 돌아오시려고 저를 떠나셨나요?]

바닷가에는 방파제가 있었다. 먼 바다의 파도를 막아 그 힘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사람들이 쌓아올린 아주 높은 방파제였다. 알퀴오네는 이 방파제로 올라가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알퀴오네가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고, 알퀴오네에게 거기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기적보다도 더욱 놀라운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방파제에서 뛰어내린 알퀴오네가 어느새 돋아난 날개로 날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새 새로 변신하여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것이었다. 바다 위를 날고 있는 알퀴오네의 입에서는,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전까지 입이었던 부리에서는 가냘픈 새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윽고 지아비의 시신 곁에 이른 알퀴오네는 새로 돋은 날개로 지아비의 몸을 가볍게 감싸고 부리를 그의 입술에다 대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케위크스가 알퀴오네의 입맞춤을 느끼고 몸을 움직일 까닭이 없다. 그러나 케위크스는 분명히 몸을 움직였다. 물결 때문이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케위크스는 분명히 몸을 움직인 것이었다. 신들이 이 둘을 가엾게 보고 케위크스까지 새로 변신시킨 것이었다. 둘의 사랑도 그때까지 유효했다. 날개를 얻었는데도 혼인의 서약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이 두 마리의 새는 짝을 지어 알을 낳았다. 알퀴오네는 바다 위에다 지은 둥지에서 이레 동안 알을 품었다. 이 동안은 바다도 잠잠했다. 아기들의 외조부가 되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외손자들을 위해 바람을 재웠기 때문이다.

 

 

157

그대들은 퀴크노스 하나만 봤지만 이 세상에 칼로 쳐도 상처가 나지 안흔 사람, 창으로 찔러도 피를 흘리지 않는 사람은 퀴크노스뿐만이 아니라네. 나는 옛날에 테살리아의 카이네오스라는 자를 본적이 있네. 카이네오스의 몸에는 수천 개의 창을 맞았는데도 상처 하나 나지 않더군. 오트뤼스 산에 살던 이 카이네오스는 무공으로 세상에 널리 그 이름을 떨친 사람이네. 하지만 이 사람 이야기에서 정작놀라운 것은 그것이 아니야.  그럼, 무엇이냐. 원래는 이 사람이 여자였다는 것이지.

좌중의 장수들은 모두 흥미를 느끼고는 네스토르의 침상 곁으로 모여들었다. 아킬레오스가 그에게 말했다.

[우리 시대를 빛내신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이신데다 연세도 많이 잡수셨고 또 언변에도 능하시니, 한마음으로 바라건대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카이네오스라는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어째서 여자로 태어나 나자가 되었습니까? 어르신네와는 어느 전투에서 함께 싸우셨습니까? 이 사람에게 만일에 진적이 있다면 대체 누구에게 졌습니까?]

노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렇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흐르는 세월이 내 기억을 좀먹는 바람에 옛날에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내 머리에서 많이 사라져버렸네. 그러나 아직은 사라져벌니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더 만ㅁㅎ아. 전쟁시에도 많이 듣고 보고 평화시에도 많이 듣고 보았네만…… , 나이가 많다고 많이 듣고 많이 보았다고 할 수 있다면 나는 두 세기를 살았고 세 세기째 사는 사람이니까 많이 보고 많이 들었다고 할 수 있을 테지…… 이 일처럼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없을 것이네.

카이네오스가 원래 태어나기는 여자로 태어났다고 했네만, 여자일 때의 이름은 카이네오스가 아니라 카이니스였네. 엘라토스의 딸이었던 카이니스가 혼기를 맞았을 때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처녀였네. 아마 테살리아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처녀였을 게야. 아킬레오스, 자네가 타셀라아 사람이니까 하는 말이네만, 당시의 자네 고향 청년들 중에 이 처녀와 혼인하려고 설치지 않는 청년이 없었네. 모르기는 하지만 부친 펠레오스 역시, 만일에 그때 이미 자네 모친과 혼인한 몸이 아니었더라면 이 처녀를 넘보았을걸세. 하지만 카이니스는 어느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으려 했네. 그런데 이때를 전후해서, 이 카이니스가 한때 혼자서 해변을 산보하다가 해신의 품에 안긴 적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네. 소문에 따르면 해신 넵투누스가 이 새 애인에게, 무슨 소원이든지 말만 하면 들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네. 카이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네.

<해신께서는 저를 이렇듯이 사랑하여 주셨으나, 저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일일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여자만 아닐 수 있다면 저에게 더 바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카이니스가 이런 말을 하는데 마지막 한마디에서는 남자나 낼 수 있는 아주 굵은 목소리가 나오더래요. 카이니스는 남자가 된 것이지. 해신은 이 카이니스를 카이네오스로 만들어준 것뿐만이 아니고 어떤 무기도 이 카이네오스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만들어주었다는군. 카이네오스가 해신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래서 그 땅을 떠나 남자들이나 하는 일을 하면서 테살리아 산야를 누볐다네.

 

 

신은 원하는 여자를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취한 후, 소원 성취라는 선물을 하사한다. 전근대 소설에서는 능력은 있으되, 인격이 없는 남자들이 힘없는 여성들을 아무렇게나 취하고 내키는대로 사례하는 강압적 매춘 이야기가 꽤 나온다. 아마도 시대상의 반영이리라. 오늘날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역학이라 생각되지만 사회 통념 상, 표면으로 나오기는 어려워진 플롯이다.

 

카이니스가 전쟁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해신으로 대표되는 남성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성폭행 피해자들이 이 대목의 신화를 읽는다면 공감하는 바가 많을 것 같다.

 

 

160

그런데 술이 원수였는지 신부의 아름다움이 원수여쓴지 모르지만 켄타우로스 중에서도 포악하기로 소문난 에우뤼토스가 그만 꼭지가 돌고 말았어. 술에 취한 이 자의 눈에 신부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겠나? 그래서 그만 이성을 잃고 만 것이네. 이 에우뤼토스가 신부의 머리채를 끌고 나가려고 하는 바람에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지. 술상이 뒤집어지고 술잔이 날았으니까. 에우뤼토스가 신부를 끌고 나가니까 켄타우로스들은 제각기 걸리는 대로 하나씩 손님으로 온 부인네들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겠나. 적군의 손에 떨어진 성안의 풍경이라고나 할까? 궁전은 여자들이 지르는 비명소리로 찌렁찌렁 울렸네.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네만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은 테세우스였네. 테세우스는 이렇게 호령했네.

[에우뤼토스, 어째서 미친 수작을 하는 것이냐? 내 눈앞에서 페이리토스의 신부를 능욕하려 하다니…… 페이리토스를 욕보이는 것은 곧 나와 페이리토스를 동시에 욕보이는 것인 줄 모르느냐?]

말로써는 보람이 없자 이 영웅은 켄타우로스를 붙잡아 신부를 빼앗더군. 에우뤼토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말로써 분풀이가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모양이야. 에우뤼토스는 말로 하는 대신, 신부를 보호하려는 영웅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네. 테세우스 옆에는 마침 겉면에 무늬가 있는, 골동품 술잔이 하나 있었네. 아이게오스의 아들 테세우스는 이 술잔을 집어들고 번쩍 쳐들었다가는 에우뤼토스의 얼굴을 향해 던지더군. 에우뤼토스는 이 술잔을 얼굴에 맞고 쓰러져, 부리전 이빨과 술과 피를 토했네. 에우뤼토스가 죽자 형제 켄타우로스들은 한목소리로 외치더군.

<무기를 들라! 형제가 죽었다!>

술이 이들의 용기에다 불을 지른 것이네. 싸움이 시작되었지. 술잔과 술 항아리와 음식 그릇이 날았네. 잔치 마당이 싸움터가 된 것이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파리스와 헬레네의 행각과 비교된다. 순간의 욕정을 참지 못한 대가로 전 부족이 멸망한다. 헬레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전쟁에 대한 서구의 대의명분이 지나치게 사적이고 얼토당토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은 어쩌다보니 이렇게 커지는 것이다. 에우뤼토스와 페이리토스의 이야기는 욕정의 나비 효과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176

아킬레오스의 죽음

삼지창으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는 신은 파에톤이 사랑하는 새로 변한 자기 아들 쿼크노스를 생각하며 속을 끓였다. 그는 쿼크노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아킬레오스를 저주하다가 아킬레오스를 쳐서 아들의 죽음을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전쟁이 10년이나 계속되는데도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다. 넵투누슨느 장발을 한 스민케우스에게 잉런 말을 했다. [내 조카들 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조카여, 나와 함께 이 트로이아 성을 쌓은 아폴로여. 이 성이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판국인데 속이 상하지도 않나?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다고 치세만 제 조국의 성채 밑에서 죽어 질질 끌려다닌, 그것도 우리의 눈앞에서 질질 끌려다닌 헥토르의 망령을 어찌 생각하는가?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킨 자 중의 하나, 우리가 쌓아올린 이 성채를 부숴뜨리려는 이 야만인인 아킬레오스가 아직도 살아 있네. 나는 이 자에게, 내 삼지창의 위력을 보여주고 싶네. 그러나 나는 신인지라 이 자와 몸과 몸으로 맞서 싸울 수가 없네. 그러니까 자네가 그 보이지 않는 화살로 이 자를 쏘아주게.]

아폴로는 그러마고 했다. 숙부의 부탁이 있어서 그러마고 한 것이 아니었다. 아폴로도 이 아킬레오스를 좋게 보지 않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아폴로는 구름으로 몸을 가리고 트로이아 전쟁의 일선으로 갔다. 그는 이 전선에서, 하잘것없는 병사를 상대로 싸우는 파리스를 발견했다. 아폴로 신은 자신의 존모습을 보이고 파리스에게 말했다.

[왜 하찮은 것들을 죽이는 일로 창에다 피를 묻히고 있느냐? 만일에 너에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거든 아이아코스의 손자를 공격하여 죽은 네 형들의 원수를 갚아라]

아폴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칼을 휘두르며 트로이아 병사들을 죽이고 있던 아킬레오스를 가리켰다. 아폴로는 파리스를 위하여 활의 겨냥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파리스가 화살을 날리자 아폴로는 화살을 인도하여 아킬레오스에게 명중하게 했다. 아들 헥토르가 전사한 이래 프리아모스 왕이 웃는 얼굴을 보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수많은 트로이아 영웅들을 이겨내었던 저 유명한 영웅 아킬레오스는 이러헤 해서, 그리스 땅에서 남의 아내를 껴드겨온 비겁한 자의 손에 죽었다. 아킬레오스는 자신이 여자만도 못한, 파리스 같은 자의 손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킬레오스는 차라리 아마존의 도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했으리라.

 

 

영웅이라고 반드시 충무공처럼 장엄하게 죽는 것은 아니다.

 

 

200

, 우리 그리스 군의 보루이던 저 아킬레오스가 쓰러지던 날을 어찌 눈물 없이 추억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슬프고도 무서웠습니다만 나는 분연히 뛰어나가 쓰러진 그를 둘러메었습니다. 이 어깨로 둘러메었습니다 .나는 아킬레오스의 시신을 둘러메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차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무기도 거두어들었습니다. 내게는 그의 시신을 둘러메고도 그의 무기까지 거두어들 힘이 있었고, 여러분이 만일에 유품의 상속자로 나를 선택하신다면 그런 명예에도 값할 만한 용기가 있습니다. 아킬레오스의 어머니이신, 저 바다의 여신이 그토록 아들에게 내리고 싶어했고, 그래서 마침내 내리신, 저 천품이 벼리어 낸 이 천상의 보물을 저 무식하고 거친 장수의 손에 맡기겠습니까? 내가 아이아스를 이렇듯이 험담하는 데엔 까닭이 있습니다. 아이아스는 저 방패에 새겨진 참으로 의미심장한 부조, 가령 바다와 땅과 땅에 산재하는 도시, 별 박힌 하늘, 프레이아데스 성단, 휘아데스 성단, 바다에는 들 수 없는 곰자리, 그리고 오리온의 저 빛나는 칼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아이아스는, 그 의미와 가치를 알지도 못하는 아킬레오스의 유품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놈이나, 저 놈이나.

 

250

나는 순진했는지라, 흙덩어리 하나를 가리키면서, 저 흙덩어리에 든 흙의 낱알 수만큼 생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만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영원한 청춘을 함께 요구하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폴로 신께서는, 만일에 자기가 요구하는 사랑을 받아들이면 그만한 수명은 물론이고 영원한 청춘까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처녀의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인생의 황금기는 나를 떠나고, 황혼이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옵니다만 나는 이런 채로 오래오래 더 살아야 합니다. 보시다시피 나는 7세기를 살았습니다만, 흙덩어리에 들어 있는 흙의 낱알 수에 해당하는 햇수를 살려면 3백 번의 씨뿌리기와 3백 번의 가을걷이를 더 보아야 합니다. 오래오래 살다보면 언젠가는 내 몸이 한 움큼도 못 되게 오그라지고 내 사지 역시 오그라져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날이 오겠지요. 누가 나를 보고, 한때는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는 신까지 즐겁게 해준 적이 있는 여자라고 하겠습니까? 이제는 포에부스 아폴로 신께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거나, 알아보시더라도 내게 애정을 기울이신 일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실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내 모습도 사라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모습은 사라질지언정 목소리만은 이 땅에 남겨야 하는 팔자를 타고났습니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고 그게 내 목소리인 줄 알게 되겠지요. 시붸레의 이야기가 끝났다.

 

 

인생의 노년에 대해서. 사실 늙으면 목소리도 남지 않게 되지만 목소리를 정신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왜 그녀는 아폴로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껍데기를 위해 영혼을 팔 수는 없었기 때문이리라. 괴테의 파우스트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279

저기 저 느릅나무를 좀 보아요. 저 느릅나무가 포도 덩굴과 혼인하지 않고 저 혼자 덜렁 서 있다면 잎밖에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게 뭐 있겠어요. 포도 덩굴도 그렇지요. 포도 덩굴도 느릅나무와 혼인해서 저렇게 가지를 감고 올라가 있으니까 보기에 좋잖아요? 아무리 포도 덩굴이지만 느릅나무와 혼인하지 않았더라면 땅바닥이나 기고 있지 별 수 있겠어요? 아가씨는 그래, 저 느릅나무와 포도 덩굴을 보면서도 느껴지는 게 없나요? 그대는 혼인이라는 걸 싫어하지요? 혼인 같은 것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대는 누구와든 혼인을 해야 해요. 헬레네에게 구혼자가 많았다지만 그대와의 혼인을 바라는 구혼자만큼 많았겠어요? 혼례식장에서 라피타이가 행패를 부린 것으로 유명한 저 히포다메이아에게 구혼자가 많아다지만, 그대와의 혼인을 바라는 구혼자만큼 많겠어요? 용감한 오뒤세우스가 물리쳤다는 페넬로페에게 구혼자가 많아다지만 그대와의 혼인을 바라는 구혼자만큼 많았겠어요? 그대가 매정하게 돌아서 있는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그대에게 호소하고 있어요. 이들 중에는 신들도 있고, 반신들도 있고, 이름을 들으면 알바 산도 벌벌 떨 신혈붙이도 허다하답니다. 하지만 아가씨가 영리하신 분이고, 또 정말 제대로 된 혼인을 하고 싶어하는 분이라면, 아가씨의 어떤 구혼자들보다 아가씨를 더 사랑하고,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가씨를 더 사랑하는 내 말을 들어, 다른 구혼자들은 모두 내치시고 베으툼누스를 아가씨 반려로 고르세요. 그 양반의 말을 들어봐야겠지만 내 말만으로 그 양반을 믿어도 좋아요. 나는 그 양반 자신 이상으로 그 양반을 잘 알아요. 그 양반은 그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이나 좋아하는 양반이 아니라 이 정도 되는 과수원을 지키면서 과수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양반이랍니다. 그대와의 혼인을 바라는 구혼자들의 대부분은 첫눈에 그대에게 반한 이들이지만 내가 말하는 이 베르툼누스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그대는 이 양반의 첫사랑이자 하나뿐인 애인이랍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열심히 구애하는 작은 수컷새가 생각난다. 요즘 세상에 드문 열정과 순수가 느껴진다.

 

 

295

당시 이 도시에는 사모스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사모스에서 태어났으나 전제 정치에 대한 혐오감 대문에 이섬을 떠나 망명자의 삶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심오한 사상으로, 인간 세계에서는 아득히 먼 신들에게 다가갔으며, 자연이 인간에게는 베풀지 않았던 그 나름의 독특한 심안으로 사물을 볼 수 있었다. 희대의 천재성과, 지칠 줄 모르는 탐구의 열정으로 사물의 본질과 원리를 인식한 그는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경탄의 눈길을 보내면서 묵묵히 듣고 있는 제자들에게, 우주의 기원, 만물의 근원, 자연의 정체, 신들의 속성,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까닭, 번개와 천둥의 정체, 이 번개 및 천둥과 유피테르와의 관계, 천둥과, 바람이 구름을 찢는 소리와의 관계, 별들의 운행에 관한 법칙, 지진이 일어나는 까닭,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가르쳤다. 처음으로 육식을 금해야 한다고 가르친 사람도 그였고, 처음으로 자신을 <현자>와 유사한 말로 지칭한 사람도 그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외면 당한 피타고라스. 실제 피타고라스 학파의 위세를 고려하면 잘 믿기지 않는 대목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질 않았다는 대목에서 40권의 책밖에 팔지 못한 채 정신병동에서 고통을 감내한 니체가 떠오른다.

 

296

그대들이여, 죄많은 식물로 그대들 육체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곡식이 있고,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린 과실이 있고, 포도덩굴에서 부풀어오르는 포도가 있습니다. 먹을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맛이 도는 나물도 있고, 삶아 먹을 수도 있고 구워 먹을 수도 있는 야채도 있으며, 우유도 있고, 꽃 향기가 도는 꿀도 있습니다. 대지는 그대들에게 죄없는 식물을 얼마든지 베풀어주고 있고, 도살하지 않고도 피를 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잔칫상을 얼마든지 차려내고 있습니다. 고기로 배를 불리는 것은 짐승들 뿐입니다만 짐승이라고 해서 다 고기를 먹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나 소나 양 같은 가축들은 풀을 먹고 삽니다. 제가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은 성정이 포악하고 잔인한 짐승, 가령 아르메니아의 호랑이나 약탁자인 사자, 그리고 곰과 이리들뿐입니다. 우리 몸을 살찌우기 위해, 우리의 탐욕스러운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동물의 살을 먹다니, 이 어찌 사악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산 것이 죽은 것을 먹다니, 이 어찌 사악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 어머니 중에서도 가장 자비로운 어머니신 대지가 우리에게 모자라지 않게 베풀어주는데도 불구하고 흡사 외눈박이 거인들처럼 사악한 이빨을 다른 짐승에게 박다니요?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고는 탐욕스러운 배를 채울 수 없다는 말인가요?

 

흔히 황금 시대로 불리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은 저절로 열매 맺는 과일나무와 대지가 가꾸어내는 곡식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입술을 다른 짐승의 피로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이 시절에는, 새들은 자유로이 하늘을 날 수 있었고, 메토끼는 아무 두려움 없이 들판을 누빌 수 있었으며 물고기는 낚시 바늘에 대한 걱정 없이 물 속을 헤엄쳐 다녔습니다. 이 시절에는 덫도 없었고 속임수도 없어서, 모든 동물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가 지나자,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누군가가 고기를 그 탐욕스러운 목구멍으로 삼키는 사자를 보고는 이를 부러워하고 나쁜 전례를 만들면서 인간은 죄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자로 인하여 인간이 칼에다 다른 동물의 피를 묻히는 일이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우리 인간을 해치려는 동물만 인간의 칼에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의 인간은 아무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났어야 했습니다. 죽일 이유는 있었지만 먹을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요.

 

 

식물에게 영혼을 부여하여 이들을 죄없는 (가엾은)” 식물로 부르고 있다.

 

 

300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니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302

이와 같이 우리의 육체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내일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 혹은 오늘의 우리가 압니니다. 우리에게는 어머니 태 속에 있던 시절이 있습니다 .인간이 될 것이라는 약속만을 받은, 씨앗 같은 상태로 말이지요. 자연은 참으로 섬세한 손질로 이 씨앗을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곳이 너무 비좁아 우리가 몸부림치면, 자연은 우리를 우리의 집에서 텅 빈 공간으로 밀어냅니다. 날빛 아래로 태어난 아기는 연약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시기가 끝나면 아기는 짐승처럼 사지로 기어다니기 시작하고, 또 이 시기가 지나면 아기는, 떨리는 다리, 불안정한 다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 다리로 섭니다. … … 마침내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303

우리가 <원소>라고 부르는 것도 불변하는 것이 아닙니아. 이 원소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시지요? 내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영속하는 우주는, 형상의 질료가 되는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의 두 가지, 즉 흙과 물은 무거워서 가라앉습니다. 반면에 나머지 두 가지, 즉 공기와 공기보다 가벼운 불에는 무게가 없어서, 가두는 것이 없으면 위로 솟아오릅니다.

 

 

303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듯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 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

 

 

306

나는 이런 이야기를 무수히 들었습니다만, 몇 가지만 더 예로 들겠습니다. 물이, 새로운 형상을 지어내거나, 지어내는 데 큰 몫을 한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뿔 달린 강의 신 암몬의 물은, 대낮에는 차가운데 해가 지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까닭이 궁금하시겠지요. 아타마네스 인들이, 달이 사위어 없어지기만 하면 이 강물에다 나무를 띄우고 불을 붙인답니다. 나는 이 강물이 그래서 따거워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키코네스 땅에는, 마시는 사람의 장기를 석화시키는 광물이 있답니다. 장기만 석화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이 돌이 온몸으로 퍼지는 바람에 온몸이 돌이 된다는 것이지요. 크라티스와 쉬바리스 강물에도 이 강물과 비슷한 마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흐르는 쉬바리스 강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금빛 혹은 호박색으로 변한다는 것은 그대들도 잘 아시겠지요.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에서 뮈사르는 세상이 점차 석회화 되어 조개껍질처럼 변해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 역시 석회화 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물을 마시는 등 최대한 석회화를 늦춰보려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도 운명 앞에 굴복한 채 죽게 된다. 사람은 태초의 열린 마음으로 태어나 어른이 되면서 사고가 경직된다. 이 과전을 석회화된다 라는 은유로 이해한 작가의 시선이 참신했다.

 

 

309

곰이 갓 낳아놓은 새끼는 아기곰이 아닙니다. 그저 두루뭉실한 살덩어리에 지나지 않지요. 하지만 어미곰은 이 아기곰을 핥아 다리가 생겨나게 하고, 모양을 곰꼴로 만듭니다.

 

육각형 벌집 속에 갓 생겨난 꿀벌의 유충을 보셨겠지요? 처음에는 다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이 유충의 몸에서 다리와 날개가 생겨납니다.

 

 

어미곰이 아기곰을 핥아 곰꼴로 만든다는 대목이 참 아름답다. 쥐실험에서 어미가 어릴 때부터 자주 핥아준 새끼들이 훨씬 건강하고 커서 자신의 자식에게도 모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새끼곰은 태어 날 때부터 외향의 가능성은 이미 곰을 갖추고 있지만, 어미곰이 혀로 빚어내야만 비로소 곰의 정신까지 꼴을 갖추게 된다.

 

 

314

그는 이렇게 가르쳤으나 사람들은 그의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329

이윽고 뱀 모습을 한 의신은 세계의 수도 로마에 입성했다. 의신은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목을 돛대에 올려놓고는, 자신이 집으로 삼을 만한 곳을 찾느라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퀴브리스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강이 두 개의 긴 팔로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듯한 땅이 있다. 사람들은 이 땅을 <>이라고 했다. 포에부스의 피를 받은 이 신사는 배에서 내려 이 섬으로 들어갔다. 신이 뱀의 모습을 버리고 신의 모습을 드러내자 로마의 역질은 그것으로 끝났다. 이 신이 로마를 구한 것이다.

 

336

결사

 

이제 내 일은 끝났다.

유피테르 대신의 분노도, 불길도, 칼도,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마지막 말이다. 헤로도토스와 달리 오비디우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저서에 꽤 많이 남기고 있다. 오비디우스는 탈고를 하면서, 이미 <변신 이야기>의 가치를 간파한 듯하다.

 

 

 

 

 

 

 

내가 저자라면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책의 구성면에서 그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다. 250여가지의 신화들을 지리학적, 주제별로 분류하면서, 동시에 비교 및 대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유기성을 잘 활용하였다. 또한 이야기별로 다른 방식의 문학 장르를 적용함으로써 지루함에서 탈피하였다. G.B.Conte는 <변신 이야기>를 여러 문학 장르의 갤러리라고 평가하였다.

 

1부에서 세계는 만들어진다. 오비디우스는 세계가 카오스로부터 시작된 상황을 설명한다. 천지창조와 대홍수, 왕뱀의 이야기는 신화와 성서가 비교되는 조셉 캠벨의 비교신화학을 생각나게 한다. 2부에서 신들의 전성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5부에서 무우사가 탄생하며 인간으로서의 영웅을 예고한다. 6부에서 드디어 신과 경쟁하는 인간에 대한 신들의 복수를 다루고 있으며, 7부에서는 드디어 인간의 영웅이 득세한 모습을 그린다. 8부에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9부에서는 인간과 신의 반신반인인 헤라클레스를 필두로 하여, 실제 전쟁사인 트로이 전쟁, 유민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로마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신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한 치의 어색함 없이 이어 붙인 저자의 구성력이 가히 천의무봉이라 할 만하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신화를 다룬 주요한 그림작품을 부록으로 실은 것 역시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루브르나 오르셰에 전시될법한 이들 그림이나 조각들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작품들이 고대부터 익히 알려지고 회자되었던 중요한 내용임을 상기시킨다. 그림을 찬찬히 훑어보며 내용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크다. 그러나 그림체가 시대별로 다르고, 작품 자체의 존재감이 지나치게 큰 나머지 오히려 이야기의 세계에 온전히 발을 담그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가령, 저승에서 신음하는 다나이스(다나오스의 딸들 중 하나)의 조각을 보자. 이 작품은 로댕이 자신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신화의 내용을 읽다가 돌연 로댕의 로맨스로 화면 전환을 하게 된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기 위한 통섭의 측면에서 이런 그림과 조각들의 배치는 훌륭한 장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친절한 것은 아닐까? 만약 한 명의 재능있는 삽화가가 통일성 있게 삽화를 그렸더라면 오히려 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청소년 신화책들이 아름다운 그림체로 상상력을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그림이 책의 상상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역학의 조율을 잘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삽화가 필요하다면, 전문 삽화가의 통일성 있는 그림을 간간히 넣고 변신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예술 작품 자료는 한꺼번에 모아 중간에 부록으로 수록하면 좋을 것 같다. 읽는 흐름 내내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다른 예술 장르로 외연을 넓히는 장점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역자 이윤기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는 중용의 미를 잘 지켜냈다. 이야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에서 적당한 수준의 역주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는 역자의 말에서, 신의 이름 및 지명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그 원칙을 밝히고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용어의 혼동 없이 첫장을 시작할 수 있다. 그의 선택에 대개 동의하지만, 다만 이미 그리스식 신명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로마식 표기가 반드시 필요했을까 의문이 생긴다. 만약 오비디우스가 로마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신명의 로마식을 고수하려 했다면, 그리스 지명을 굳이 그리스식으로 하는 것 역시 혼란스럽다. 원칙이 있으되, 원칙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원칙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IP *.68.172.4

프로필 이미지
2012.04.18 19:42:14 *.128.229.64

 너 주변을 정리하든지,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그만 두도록 해.  

프로필 이미지
2012.04.18 21:21:12 *.68.172.4

네 사부님, 정리하겠습니다. 제가 욕심 부리고 사람에 마음이 약해져 대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생일은 제 사람들 모두와의 약속이니 깨기 어렵고 이제 준비를 다 마쳤으므로 여기까지만 하고 정리하겠습니다.

 

21일 이후 정리할 내용

1. 바이올린 렛슨을 그만하겠습니다.

2. 디제잉 수업을 그만하겠습니다.

3. 젊은 의사 리더스 클럽 부의장직을 위임하겠습니다(이건 위임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음).

4. 외국어 렛슨을 그만두고 시작하지 않겠습니다.

5. 친구들 모임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직장은 유지하고, 오로지 변경연과 두 가지를 유지하겠습니다.

 

실망과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각성하고, 현명하게 대처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18 21:21:45 *.68.172.4

수정한 내용은 새벽 5시까지 올리겠습니다. 저 아직도 퇴근 못했습니다. 이건 양해해 주세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