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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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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3일 06시 28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책 : 사기열전 (1)
출판사: 민음사
저자 : 사마천 (기원전 145년 ~ 86년)

사마천司馬遷은 중국의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로서 성은 사마司馬 이름이 천遷이 자는 자장子長이다. 그는 아버지의 벼슬을 이어받아 태사령太史令-천문, 달력, 기록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격-을 지낸다. 후에 태사공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아버지는 사마담으로 태산에서 거행된 봉선의식(역대 중국의 황제들이 태산에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을 분하게 여겨 병이 나서 죽었다 한다. 이 때 사마천의 나이는 36세였는데 이 때 내린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게 된다.
후에 그는 한 무제漢武帝에 때 흉노와의 싸움에서 패한 이릉李陵을 두둔을 하다가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고 이로 인해 태사령에서 파면을 다하고 치욕적인 궁형宮刑까지 당한다. 그가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치욕적인 형을 당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의 굴욕적인 사건 이후의 삶으로 인해서 인류는 ‘사기’를 얻을 수 있었다.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기 위해서 황실의 문헌은 물론, 다른 역사서와 제후국의 궁정의 연대기, 경전이나 제자백가의 저술 등 방대한 기록을 참조하였다고 한다. 사마천은 자신의 역사서가 역사적인 사실만을 후대에 알려줄 수 있는 역사서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이런 역사서 편찬의 의도로 인해서 그의 역사서 내에서 스스로 제자백가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쳤고 당시 지배적인 사상이었던 유교 중심의 역사관을 벗어나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자 : 김원기
현재 건양대 교수이며 주요 역사서의 번역가인 김원기는 유학자인 할아버지의 밑에서 4세때부터 한자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이후 중, 고등학교 시절까지 한자와 잠시 떨어져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한자와 함께 하는 삶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전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고, 현재까지 26권의 저서와 역서를 펴냈다고 하는데, 딱딱하거나 지루한 번역이 아닌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도록 완벽한 번역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대전일보 2003년 8월 23일 판에서 사실 인용함)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60] 그렇지만 공자는 “인이란 사람다움이다.”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단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p65]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 호강하며 즐겁게 살고 대대고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이다. 그런가 하면 걸움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면 이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

[p66]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p66]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둑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은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갈 수 있는 것처럼 공장의 칭찬을 받아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위나 동궁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일정한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명성이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살면서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p71]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네기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규를 도운]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p73]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이 굳게 결속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즉 예의, 정의, 깨끗함, 부끄러움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수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p74]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게 정치의 비책이다.

[p81]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p83]노자는 하지 않는 것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말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p84]천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교제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 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p87]대체로 모든 일은 은밀히 진행시키면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p88]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p88]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p102]양저는 병사들이 막사, 우물, 아궁이, 먹거리를 비롯하여 문병하고 약을 챙겨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몸소 보살폈다. 또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재물과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풀고,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이 양식을 나누었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 병사들을 다시 순시하자 병든 병사들까지도 모두 앞다투어 싸움터로 나가기를 바랐다.

[p111]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지금 위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으니, 날쌘 정예 병사들은 틀림없이 모두 나라 밖으로 빠져 나가고 쇠약하고 지친 가들만이 나라 안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병사들을 이끌고 빨리 위나라의 수도 대량으로 쳐들어가 중요한 길목을 차지하고 텅 빈 곳을 치십시오.

[p115]오기는 장수가 되자 신분이 가장 낮은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에도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고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은 직접 가지고 다니는 등 병사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p121]’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p143]원한 맺힌 사람이 끼치는 해독은 정년 무섭구나!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어떠하겠는가?

[p148]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바른 예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p152]자화가 공자의 대답이 다른 것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같은 질문에 달리 대답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p153]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하고 게으르지 않으면 된다.

[p153]”자로는 나보다도 용맹을 더 좋아하지만 그것을 적절히 쓰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로는 제명에 살다가 죽기 어려울 것이다.”
“해진 솜두루마기를 걸치고서 여우나 담비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자와 함께 서도 부꾸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

[p156]내가 자로를 제자로 삼은 뒤로 남의 험담을 듣지 않았거늘

[p160]자공이 물었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가?”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p165]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p170]”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서 다듬는다는 뜻이다.”

[p171]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너는 도에 힘쓰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명성을 좇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p171]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p171]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 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p172]그것이 명망이지 통달이 아니다.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p174]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p184]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란 사람을 하는 것이다.

[p199]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 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p200]지혜로운 자는 법은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예법을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

[p207]천 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천 사람의 마부는 한 사람의 올바른 직언만 못합니다. 주나라 무왕은 신하들의 올바른 직언으로 일어났고, 은나라 주왕은 신하들이 입을 다물어서 망하였습니다.

[p231]’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p232] 과장된 몸짓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라

[p238]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일반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가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을까?

[p241]신이 듣건대 옛날에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했다고 합니다. 왕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을 들으려 한다면 즉시 연나라의 성 열 개를 돌려주십시오.

[p249]대체로 교만한 군주는 반드시 이를 좋아하고 멸망하는 나라의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한다고 합니다. 왕께서 진실로 아끼는 아들과 어머니와 동생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진주와 보옥과 비단으로 제나라 왕의 좌우 신하들을 섬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면, 제나라는 연나라를 자기편으로 여겨 안심하고 경솔하게 송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제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p252]그러나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 배나 비싸고, 월나라 왕 구천을 일찍 회계산으로 쫓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일입니다

[p259]진나라가 죽인 삼진 지역의 백성은 수백만 명이나 되고 지금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진나라가 죽인 자들의 고아와 과부입니다. 서하 외에도 상락의 땅, 삼천 일대 등의 삼진의 땅 중에선 진나라에 침략된 땅이 그 절반이나 됩니다. 진나라가 만든 재앙을 이렇게 급니다. 그런데도 진나라에 갔던 연나라오 조나라의 유세가는 모두 다투어 자기 나라의 군중게 진나라를 섬겨야 한다며 설득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이 가장 걱정하는 바입니다.

[p267]장의는 천하에서 현명한 인문이니 나는 그를 뛰어넘을 수 없네. 지금은 운이 좋아 내가 먼저 등용되었을 뿐이지. 진나라의 실권을 잡아 휘두를 사람은 장의뿐일세.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등용되지 못했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쎄. 자네는 나 대신 은밀히 그를 도와주게

[p275]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잘 살펴서 계책과 의논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은 잠시 휴가를 얻어 위나라를 떠나 있고 싶습니다.

[p294]연나라 왕이 말했다
“과인은 미개한 벽지에 사로 있는 탓에 허우대는 다 큰 어른이지만 생각은 어린아이나 다름없소. 게다가 올바른 계책을 얻기에는 주위 여론이 부족하였소. 이제 다행히 선생께서 가르쳐 주었으니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기기 바라며, 항산의 끝에 있는 다섯 성을 바치겠소.”

[p324] 지혜는 나이와 관계없다.

[p327]주서에 ‘천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요행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포자와 싸워 이겨 현 여덟 개를 얻은 것은 병사가 정예로워서도 아니요 계략이 교묘해서도 아니고 하늘이 큰 행운을 내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또 망묘를 싸움에서 져 달아나게 하고 북택으로 침입하여 대량을 치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하늘이 내려 준 행운이 늘 자기 곁에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p339]잃는 게 없는 싸움을 하라.

[p358]태사공은 말한다.
“세상에 ‘자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에도 긴 데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배기는 적의 전력을 헤아려 날쌔게 대응하고 끊임없이 기이한 계책을 생각해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응후와의 사이에서 생긴 근심은 없애지 못했다. 왕전은 진나라 장군이 되어 여섯 나라를 평정했다. 당시 왕전은 노련한 장수가 되어 시황제 조차도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진나라를 보필해서 덕을 세워 천하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시황제에게 아첨하여 편하게 있을 곳을 구하다가 늙어서 죽음에 이르렀다. 손자왕 때에 이르러 항우에게 사로잡힌 것도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p368]빈객이 순우곤에게 이 말을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전에 왕을 만났을 때 왕은 말을 쫓아가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왕이 음악에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래서 나는 말없이 있었소.”
빈객이 이 말을 왕에게 자세히 보고하니 왕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 순우 선생은 정녕 성인이오. 순우 선생이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바쳤는데, 내가 그것을 타 보기 전에 마침 선생께서 오셨소. 선생이 두 번째 왔을 때는 어떤 사림이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바쳤는데, 사람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쪽으로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것은 사실이오.”
그 뒤 순우곤이 혜왕을 만나 한 번 입을 열자 사흘 밤낮을 이어서 말했는데도 혜왕은 피곤한 줄을 몰랐다. 혜왕은 그에게 공경이나 재상자리를 주어 예우하려고 했지만, 순우곤은 사양하고 물러갔다. 그래서 혜왕은 편안한 의자가 있는 사두마차와 비단 다섯 필, 벽옥, 황금 2000냥을 주었다. 그는 평생 동안 벼슬하지 않았다.

[p393]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뿐 아니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은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p397]살아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멋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며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 하십시오.”

[p404]문하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당신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자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비들은 당신이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하찮게 여기는 인물로 생각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
평원군을 절름발이를 비웃은 애첩의 목을 베고, 직접 문 앞까지 가서 절름발이에게 그 목을 내 주면서 사과했다. 그 뒤 문하에 다시 선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p410]한단의 백성은 땔감이 없어서 죽은 사람의 뼈를 때고,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자식을 바꾸어 먹고 있으니 위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후궁은 백여 명을 헤아리고, 노비들까지 무늬 있는 비단 옷을 입으며 쌀밥과 고기가 남아돕니다. 백성은 굵은 베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고 쌀겨나 술지게미 조차 배불리 먹기 못합니다. 백성은 가난한 데다가 무기까지 바닥나서 나무를 깎아 창과 화살을 만듭니다. 그런데 당신의 기물과 종, 경 같은 악기는 그대로입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무너뜨린다면 당신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조나라가 안전할 수만 있다면 어찌 당신이 부인과 아랫사람들을 사졸 사이에 끼워 넣어 같이 일하게 하고 가진 것을 다 풀어서 사졸들을 먹이면, 위태롭고 고통스런 처지에 놓인 사졸들은 군주의 은혜에 쉽게 감격할 것입니다.

[p436]”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의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p438]”처음에 나는 평원군이 어질다고 들었기 때문에 위나라 왕을 저버리면서까지 조나라를 구해서 평원군의 마음에 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평원군은 사람을 사귀는 데 그저 호걸인 척하는 몸짓만 있을 뿐 참다운 선비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대량에 있을 저부터 줄곧 이 두사람이 어질다고 들어 온 터라 조나라에 온 이래로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평원군은 그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니, 그는 사귈 만한 인물이 못됩니다.”

[p446]천하에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 들리는 말로는 대왕께서 초나라를 치려고 한다는데 이것은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면 힘이 약한 개가 그 기회를 틈타 이익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 더 낫습니다. 신이 그 까닭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신은 “사물이 한쪽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은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라고 들었습니다.

[p447]’시경’에 “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라고 했고, ‘역경’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p448]신은 “적은 용서하면 안 되고 때는 놓치면 안 된다.”라고 들었습니다.

[p461]”내가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과 궁실을 보니 정말 웅장하고 화려했다. 처음에 춘신군이 진나라 소왕을 설득하고 몸을 던져 초나라의 태자를 돌아오게 한 것은 얼마나 뛰어난 지혜였던가? 그런데 마지막에 이원에게 당한 일은 늙어서 사리 판단에 어두워진 탓이리라.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

[p485] 그러나 오늘 네가 죽음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두터운 명주 솜옷을 주면서 옛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용서한다.

[p488]평원군이 대답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벗을 사귀는 것은 천한 몸이 되었을 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 때문이고, 부유할 때 벗을 사귀는 것은 가난해졌을 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위제는 제 벗입니다. 제 집에 있다 하더라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만 지금은 제 집에 없습니다.”

[p491]대체로 모든 일은 평소에 준비하지 않으면 급박할 경우에 대처할 수 없소.

[p498]성인이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덕이 있는 자를 만나기에 이롭다.’라고 말했고.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p498]물총새, 따오기, 코뿔소, 코끼리는 그들이 사는 곳이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하늘에서 내려준 수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잡혀 죽는 까닭은 먹이를 탐하는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소진과 지백의 지혜는 욕된 것을 피하고 피살될 위험을 멀리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죽은 까닭은 욕심에 빠져 그칠 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예의를 만들어 욕심을 누르고,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데도 한도를 두었고, 백성을 부리는 데도 농사철이 아닌 때를 골라 일을 시키는 등 제한을 두었습니다. 생각은 지나치지 않고 행동은 교만하지 않으며 언제나 도를 지켜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이 그를 끊임없이 본받아 이어 갔던 것입니다.

[p502]제가 듣건데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 네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 당신은 어찌 그것을 이어받으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되돌려 어진 사람에게 물려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 밑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지 않습니까?

[p503]지금 지위를 떠나는 게 아까워서 차마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반드시 저 네 사람과 같은 화를 입을 것입니다.

[p503]’역경’에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을 모르고, 가지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p504]”한비자가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 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진실로 옳은 말이다. 범저와 채택은 세상에서 말하는 뛰어난 변사로서 어떤 경우에도 자유자재로 변론할 수 있는 유세가였다. 그러나 각국의 제후에게 유세하여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그들이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나라들의 힘이 약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두루 돌아다닌 끝에 진나라로 들어가자 잇달아 경상이 되고 공을 천하에 떨친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강하고 약한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잇다. 이 두 사람 못지 않는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p516]신이 듣건데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p532]상여가 말했다.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히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p567] 제가 듣건 대 지혜로운 자는 때를 거슬러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감한 자는죽음을 겁내며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으며, 충성스러운 신하는 자기 한 몸을 앞세워 군주를 뒤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장군은 참소를 받은 한때의 분노를 못 참아 연나라 왕에게 좋은 신하가 없음을 알면서도 돌아가지 않고 있으니 이는 충성이 아닙니다. 요성을 잃고 장군도 죽게 된다면 제나라에 장군의 위엄을 떨칠 수 없으니 이는 용감함이 아닙니다. 또한 공이 허물어지고 명성을 잃게 되어 후세 사람들이 장군을 칭송하지 않게 되면 이는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p571]그러나 노중련은 달아나 어느 바닷가에 숨어 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 망정 세상을 가볍게 내 맘대로 살리라!”

[p573]속담에 “젊을 때부터 흰머리가 되도록 사귀었으면서도 새로 사귄듯한 이가 있는가 하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도 옛날부터 사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입니다.

[p575]여자는 예쁘든 못생겼든 궁중으로 들어가면 질투를 받고,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으로 들어가면 시샘을 받게 마련입니다.

[p586]’이소’란 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라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굴원은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겼지만 헐뜯는 사람의 이간질로 곤궁해졌다고 할 수 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604]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낮추고 자기를 귀하다 하네.
통달한 사람은 넓게 보고
무슨 물건이건 한결같이 보네.
탐욕스러운 사람은 재물을 위하여 죽고
열사는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법.
권세를 뽐내는 자는 권세 때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삶에만 매달리지.
이익에 유혹되고 가난에 쫓기는 무리는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네.
성인은 사물에 굽히지 않고
수많은 변화를 만나도 한결같다네.
세속 일에 구애받는 사람은
우리 속에 갇힌 죄수 같도다.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은 만물을 버리고 홀로 도와 함께 하누나.

[p613] “이 진귀한 재물은 사 둘 만하다.”

[p661]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그는 젊을 때 군에서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p696]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을 알고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p698]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룰만하였을 것이다.


Ⅲ. 내가 저자라면

부끄러운 고백 한 가지
사기열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런 류의 오래된 역사책 읽는 것을 그리 즐겨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그러나 이 책 이후로 그런 인간형에서 탈피를 할 지도 모르니 시제가 ‘과거형’임을 주의해서 읽기 바람. 중학교 때 남동생이 ‘삼국유사’를 밤 세워 읽는 걸 지켜 보면서 그게 그리 밤 세워 읽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고 남들이 다 읽고서 감명이 깊었다고 평하는 ‘삼국지’는 2권을 읽다가 그만 두었다. 그런 고로 그 어느 책에서 저자가 삼국유사나 삼국지의 혹은 사기 열전 등의 에피소드를 인용 할라치면 그냥 건너 뛸 수밖에 없었고, 어떤 술자리에서든 그 종류의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고 만면에 웃음 띄워서 무마를 하는 그런 류의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절대로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 대학 때, 친구들이 ‘삼국지’이야기를 하면서 제갈량이 어쩌고 유비가 어쩌고 할 때마다 혼자서 자신 있게 선언하곤 했었다. 난 그 이야기들이 재미없더라고. 그리고는 아무리 내 무식이 탄로가 나는 한이 있어도 나는 ‘삼국지’를 다시 펴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일단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내 호기심을 발동시킬만한 요소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들에서는 ‘남자’들만 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죄다 부인이나 첩이나 딸이었는데 가끔, 아주 가끔 겨우 등장을 했다가 얼마 가지 않아 무슨 이유로 죽임을 당하거나 이웃나라로 볼모로 잡혀 가거나 아니면 정절을 지키거나 그렇게 답답하게 살고 있었다. 별로 인간 취급도 당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History (He – story) –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랬으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나로서는 그 이야기를 절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우리의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들이 주인공으로 대접을 받지 않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 이야기들에 주로 나오는 ‘전쟁’이야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군대도 안 갔다가 온데다가 천성이 평화주의자(?)라서 남의 나라 땅 따먹기 하는 데에 나는 도대체가 관심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삶이고 삶이 전쟁인 그 이야기들이 내게는 가슴 깊이 다가 오질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사기열전’을 읽으면서 두 가지 정도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 이야기들이 단순히 ‘남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나라 간의 ‘전쟁’은 ‘기업’ 간의 전쟁이나 ‘정치적 관계’에서의 권력 다툼 정도로 대입을 해 보아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는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고 예전과는 아주 다르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삶의 틀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공자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했나 보다.
이번 기회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의 범위에 역사서를 넣을 수 있었다는 면이 나에게는
큰 소득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사기열전’을 모두 이해한다고 할 수도 없는 아주 졸렬한 수준이다. 그러나, 적어도 다음 번에는 사기열전을, 삼국지를 우리 삶 혹은 내 삶의 일부로 받아 들여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하마터면, 내 편견 때문에 좋은 책들을 놓칠 뻔했는데 말이다.

몇 가지 장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력이다. 이 책은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등장한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가 2000년도 훨씬 지난 오늘날 한국 땅에서도 우리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이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아마 저자 사마천의 인간을 보는 태도와 그의 당시 상황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한다. 사마천은 원래 나름대로 다양한 사상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세상사를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관직에서 물러나서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한 상태에서 인간사와 고립이 되었던 것, 그것이 이 관조의 눈을 유지하는데 그에게는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그에게는 아픈 현실이었을 것인데도 말이다.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여 방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 이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사마천이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방대한 인간의 스펙트럼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책을 쓰는 것. 그것의 기초가 방대한 자료와 정보의 분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마천의 원저 사기열전 말고, 현재 다시 태어난 민음사의 ‘사기열전’에 대해 이야기 해 본다. 이 책은 한글로 번역한 번역자의 공이 큰 책이다. 이 책은 문장이 대체로 평이하고 어려운 한자어도 많이 배제시켜서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각 열전마다 시작부분에서 대략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며 역자가 생각하는 견해를 밝혀두고 있어서 이것이 독자에게 원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북돋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울러, 보기 좋은 글자체와 충분한 여백이 있는 깔끔한 편집도 이 책의 장점에서 빠뜨릴 수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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