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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4일 12시 06분 등록
사기열전_6

사마천 / 김원중 옮김



1. 작가에 대하여
<천 열전>
*대체로 역사가들이 기록한 책은 매우 많으나 그 파격적임으로 따지면 <사기(史記)>만한 것이 없다. 고금의 역사서로 <춘추(春秋)>나 <서경(書經)> 따위가 있긴 하나, ‘시대 순’이라는 틀을 벗어나 ‘인물 위주’로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크게 구분(區分)이 있다 하겠다. 이제 그 파격적인 기술(記述)의 장본인을 새로이 옮겨 기리려 하니, 이름하여 <천(司馬遷) 열전>이라 한다.

무릉 현무의 선비 사마천
사마씨(司馬氏)는 대대로 주나라 왕실의 기록을 맡았다. 혜왕, 양왕 사이에 사마씨는 주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진나라로 간 후에 사마씨들은 분산하여 위나라 조나라 등지로 흩어졌는데, 그 중 진(秦)나라에 착(錯)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마착은 소진의 합종에 맞서 연횡을 주장했던 장의와 동시대 사람으로,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착은 혜왕의 명을 받아 촉을 쳤다. 착은 촉을 이기고 그곳의 태수가 되었다. 착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은 진나라 주철관(主鐵官: 철을 녹여 그릇 만드는 일을 관장하던 관리)이었던 창(昌)이며, 다시 창의 현손이 바로 천(司馬遷)이다. 창은 무택(無澤)을 낳았고, 무택은 희(喜)를 낳았으며 희는 담(談)을 낳았다. 천의 아버지가 담이다. 담은 진나라의 태사공(太史: 천문을 맡는 직책으로 역사기록도 보관했다. 공은 존칭이다)이 되었다.

태사공 담은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지는 못했으나, 학문에 뜻을 둔 선비였다. 담은 학자들이 학문의 뜻을 알지 못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 안타까워 6가(음양가, 유가, 묵가, 형명가, 법가, 도가)의 원칙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담이 6가에 대해 논한 것은 열전의 마지막 편인 <태사공 자서>에 잘 나타나 있다.

담의 아들이 천이다. 천은 용문(龍門)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분분하나, 유력한 것은 <사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찾을 수 있다. *<태사공 자서>에는 “사마담이 죽은 지 3년 후 사마천은 태사령이 되었으며 (…) 5년 후 태조 첫 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때 사마정이 쓴 <사기색은>에는 “무릉 현무의 선비 사마천이 28세인 3년 6월 을묘일 녹봉 육백 석에 임관되었다” 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태조 첫 해가 천이 태사령이 된 28세가 되는 해이며, 이것을 근거로 기원전 135년, 건원 6년이 천이 태어난 해가 되는 셈이다.

<태사공 자서>에 따르면, 천은 10살이 되자 이미 옛 글을 읽을 수 있었고 20세에는 남으로 양자강과 회수 지방을 여행하면서 회계산에 올라가 우 임금의 묘를 찾기도 하고 순임금이 묻혀 있는 구의산(九疑山)을 찾아가기도 하였으며, 원수(沅水)와 상수를 타고 유람하기도 했다.

사명이 주어졌는데, 어찌 겸손만 부리고 있을 수 있겠는가?
천자가 한 왕조를 위해 봉선의 예를 행하면서 태사공인 담을 데려가지 않자, 담은 슬퍼하며 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리 선조는 주나라 왕실의 태사였다. 예부터 천문을 관장하여 공명이 빛났다. 그런데 천자께서는 봉선의 예를 하면서 나를 데려가지 않으셨다. 그 전통이 나에게서 끊기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부디, 네가 태사가 되어 우리 조상의 일을 이어가도록 해라.”

천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제게 모자란 부분이 너무 많으나 아버님께서 남겨놓으신 귀중한 옛 기록들을 빠짐없이 정리하겠습니다.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태사공 천은 말한다.
“일찍이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공이 죽은 지 500년 만에 공자가 나왔다. 이제 공자가 죽은 500년이 지났으니 누군가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역경>을 바로잡고 <춘추>의 뒤를 이으며 시, 서, 예, 악의 근본을 밝히는 자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아버님의 뜻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나를 염두에 두신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내 어찌 그 일에 겸손만 부리고 있을 수 있겠는가?”

치욕스런 궁형, 그리고 다시 일어서다
* 기원전 104년 (태초 4년), 천의 나이 32세 되던 해에 <사기> 저술이 시작되었다. <본기> 12편, <열전> 70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총 130편에 모두 52만 6,000여 자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 저술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5년 후인 기원전 99년 (천한 2년), 천은 흉노와의 싸움에서 부득이하게 투항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릉을 변호하다 무제의 미움을 사고 투옥되었다. 천은 이후 치욕스러운 궁형(宮刑: 거세형)에 처해진다. 천은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때의 일을 이렇게 썼다.

* 이릉과 저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동료였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입장이나 성격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나눌만한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신념 있는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버이에게는 효를, 친구에게는 신의를 다했으며, 금전관계는 깨끗하였고, 몸과 마음을 바쳐 나라에 충성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인재였습니다.

저는 그가 나라의 큰 선비와 같은 기품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확신했습니다. 대체로 신하 된 자로서 만 번 죽는다 해도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먼저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려 하는 것이란 예나 지금이나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했던 일 중의 하나가 좋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자 자신의 몸을 사리고 처자식 보호하는 데만 급급했던 신하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그의 잘못을 비방하고 조작했기 때문에 저는 참으로 분함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실로 이릉 장군은 끝내 패전하기는 했지만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 휘하에 있던 5천 명도 안 되는 병사를 이끌고 흉노족의 본거지 깊숙이 쳐들어가 목숨을 걸고 수만의 적군과 대결하면서 10여 일에 걸쳐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흉노족은 사상자를 처리할 여유도 없이 총동원령을 내려 포위 공격을 했습니다. 이릉의 군대는 이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 천리를 옮겨 다니며 싸우다가 드디어 화살은 끊겼으며 구원군은 오지 않은 채 사상자는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릉은 군사들을 격려하여 모두 용감히 일어서서 피를 뒤집어 쓰고 눈물을 삼키며 맨주먹을 휘두르면서 칼날에 맞서 싸우다 죽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릉이 아직 패배하지 않았을 전령이 그가 분투한다는 것을 알리자 모든 조정 백관들이 축배를 들고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패전 소식이 들어오매 폐하께서는 입맛을 잃어 음식을 끊고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자 대신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저는 폐하의 괴로운 심정을 알아차리고 천한 내 지위도 잊은 채 폐하께 위로해드리는 뜻에서 아뢰었습니다.

“이릉은 항상 부하들과 고락을 같이 했고, 그리하여 뗄래야 뗄 수 없는 신뢰 관계를 맺었습니다. 옛 명장이라도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가 포로의 몸이 된 것은 차후 한나라에게 다시금 봉사하겠다는 충정에서였을 것입니다.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흉노의 대군을 격파한 공적은 천하에 알려 표창할 만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이러한 저의 충정을 납득하시지 못한 채, 오히려 제가 이릉 장군을 두둔하여 총사령관이던 이광리 장군을 깎아 내리는 것이라 오해하시고 저를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벌금형으로 대신할 만한 재산도 없었고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한 마디의 도움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릉은 목숨을 건져 적에게 항복함으로써 가문을 더럽혔고, 저는 잠실(蠶室: 궁형에 처한 사람을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수용하였던 밀실)에 내던져진 채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정말 서럽고 서러운 일입니다.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

태사공 천은 말한다.
* “천한 노예와 하녀조차도 자결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하려 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고통과 굴욕을 참아내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는 까닭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숙원이 있기 때문이다. 내 이렇게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경우 후세에 문장을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천은 한 때, 옥중에서 비감한 심정으로 이렇게 탄식했다.
“이것이 내 죄 때문인가! 이것이 내 죄인 것인가! 이제 내 몸이 병신이 되었으니 다시는 세상에 나아가지도 못하겠구나!”

그러나 그는 곧 일어섰다. 아니, 그의 처절한 울분은 오히려 냉철한 역사가로서의 눈을 띄어 주었다. 천은 옥중에서도 치욕을 보상받겠다는 일념으로 저술을 계속했다. 4년 후인 기원전 95년 (태시 2년), 천은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 최고직인 중서령이 되었다. 그리고 5년 후인 기원전 90년 (정화 3년), 마침내 20년에 걸친 대작 <사기>가 완성되었다.

천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천은 역사가로서, 다른 이들의 기록은 힘차고 세밀하게 기술하였으나, 정작 본인에 대한 기록은 세세히 남기지 않은 까닭이다. 천은 이후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처형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망한 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여기저기 추측이 있긴 하나, 이곳에서는 그 정확한 연도를 남기지 않기로 한다.

개구쟁이는 말한다.
“사마천은 타고난 품성이 학자인 사람이다. 10세 때부터 옛 글을 읽으며 유랑하길 즐겼다. 또한 사마담과의 대화에서 나타나듯,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태사공 자서>에서 보이듯, 유가 <춘추>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다. <사기열전>에서, “태사공은 말한다” 라고 덧붙여지는 그의 평가는 대부분이 유가사상에 바탕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열전의 인물 됨을 말할 때, 항시 인(仁)과 덕(德)을 강조하는 면이 바로 그것이다. * 나는 일찍이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었는데, 그 내용 역시 사마천의 궤적과 비슷하였다. 함석헌 선생은 역사가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의 자격은 그 기억에 있지 않고 판단에 있다. (…) 바름이란 내게 좋기 위하여 역사적 판단을 구부리지 않는다는 말뿐이지, 도대체 판단하기, 해석하기를 금하는 것이 아니다.” 사마천은 실사(實事: 사실됨)를 위해 여러 유적지를 방문하였고, 열전의 후손들을 찾아가 그들의 평소 사람됨을 물어보았으며, 그 중 정확하지 않은 기술은 제하였다. 그러나 열전의 미덕은 이런 객관성 확보의 노력이 아니다. 그는 각 열전에 자신의 해석과 평가를 넣음으로써 더욱 훌륭한 역사서를 만들어 냈다. <사기 열전>은 사마천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 시대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 주었으며, 독자들은 역사라는 긴 직선 위에 인간이라는 점 하나 하나가 어떻게 찍혀 가야 하는 지에 대한 바름의 지침을 가지게 되었다 하겠다. 그는 그의 예언대로 후세에 명문의 문장을 남기고 간 셈이다. 다만, 중년에 이르러 쓸데없는 일로 치욕스런 형을 받아 목숨을 부지하며 수치스런 일을 당한 것은 훌륭한 궤적에 치명적인 오점이라 하겠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마천의 <사기>가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은 그때의 치욕스러움이 되려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라는데…… 태사공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옛날 서백은 유리에 갇히게 되자 <주역>을 풀이하였으며,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처하여 <춘추>를 지었다. 굴원 또한 추방당한 몸이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실명한 이후에 <국어>를 남기었으며, 손빈은 다리를 절단하는 형을 받고 병법을 저술하였다. 또 여불위는 촉으로 유배된 이후에 <여씨춘추>를 세상에 남기었으며, 한비자도 진에서 갇히 몸이 되어서 <세난>, <고분>편을 지었던 것이다. <시경>에 수록된 300편의 시도 대체로 성현이 분노 속에서 지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마음에 깊이 맺힌 바가 있으나 그 뜻을 직접 표현할 수 없었기에 지나간 사실을 빌어 미래에 그 뜻을 전하였던 것이다.” <태사공 자서>에서.

그렇다. <사기>는 그의 마음에 깊이 맺힌 바가 있어, 그 뜻이 이처럼 훌륭한 130편의 사서(歷史書)로 드러난 것이라 하겠다. 만약, 그 맺힘이 아니었다면, <사기> 역시 평범한 습작(習作: 연습 삼아 지은 작품, 수준이 그만그만함을 일컬을 때 쓰이기도 함)의 범주를 넘지 아니하였으리라. 대체로 보면, 천복에는 언제든 그 흐름이 있는 것이다. 그 흐름은, 모름지기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게 있다. 누가 이것은 옳다 하고 저것은 그르다 하겠는가.



* 열전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백이 열전> 첫 줄의 형식을 빌렸다.
* 커원후이의 <소설 사마천>, 사마천의 생애에서 내용을 가져왔다.
* <태사공 자서>에서 가져왔다.
* 사마천의 나이에 대한 유력한 설은 2개인데 하나는 당나라 때 장수설이 쓴 <사기정의>에 따라 42세에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같은 시대 사마정이 쓴 <사기색은>에 따라 32세에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사마정의 기록을 따랐다.
*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 가져왔다.
*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 가져와 형식을 조금 바꾸었다.
* <상군 열전>의 표현법을 빌려왔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백이 열전>
길이 다른 사람과는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37]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37]
백이 숙제가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했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이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갈 수 있는 것처럼 공자의 칭찬을 받아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위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일정한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명성이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살면서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38]

<관, 안 열전>
관포지교 [40]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비책이다. [42]

<노자, 한비 열전>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그대에게 할 말은 단지 이것뿐이오. (공자가 노자에게 예(禮)에 관해 묻자, 노자가 대답한 말) [49]
그대는 교제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여지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초나라 위왕이 장주를 벼슬로 부르려 하자, 장주가 자신을 데리러 온 사신에게 한 말) [52]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나의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나의 말솜씨로 뜻을 분명하게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나의 주장을 그의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한비의 <세난>편) [54]

<손자, 오기 열전>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언행일치를 못한 손빈과 오기에 대해 사마천이 하는 말) [79]

<오자서 열전>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천리를 좇을 수 없었소. (오자서가 자신의 복수가 너무 심하다고 비난하는 신포서에게 하는 말) [89]
원한이 맺힌 사람이 끼치는 해독은 정녕 무섭구나!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어떠하겠는가? (오자서의 복수에 대해 사마천이 하는 말) [96]

<중니제자 열전>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 (공자) [99]
염구(冉求)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것이고, 자로(子路)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공자; 왜 똑 같은 질문인데 대답이 다르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 사람의 성격에 따라 조언이 달라질 수 있다) [102]
내가 자로를 제자로 삼은 뒤로 남의 험담을 듣지 않았거늘. (공자; 자로가 공자를 욕하는 사람은 크게 꾸짖고 다녔기 때문이다; 좋은 것 만은 아니다) [106]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을 꾀하는 데 있어 큰 걱정거리입니다. (월나라 왕 구천에게 자공이 한 말; 모름지기 일이란 비밀리에 진행해야 함, 다른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음) [113]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사람을 부리기 쉽다. (자유(子遊)가 공자에게 한 말) [116]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의심 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 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다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자장(子張)이 벼슬을 얻는 법을 묻자 공자가 하는 말) [118]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어 잇는 것처럼 한 이후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자공이 도리에 대해 묻자 공자가 하는 말; 이것은 몰입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겠다) [118]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119]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子羽)에게 실수하였다. (공자; 자우가 매우 못생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120]
흰 옥의 티는 갈 수가 있지만, 말(言)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 (시경) [123]
그래서 나는 말만 잘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공자: 자로가 자고를 벼슬에 추천하자 공자가 탄식하면서 하는 말) [125]
사마경(司馬耕)은 자가 자우(子牛)이다. 자우는 말이 많고 성질이 조급하였다. 한 번은 공자에게 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물었는데,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진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러자 자우가 다시 물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을 실천하기란 어려운데, 그것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느냐?”
자우가 한 번은 군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우는 다시 물었다.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음 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126]
번수(樊須)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127]

<상군 열전>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예법의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 (상군) [138]
자격이 없는 자가 그 지위에 있는 것을 지위를 탐한다 하고, 자기가 누릴 명성이 아닌데 그 명성을 누리는 것을 이름을 탐한다고 한다. [143]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 더 높아진다. [143]
겉치레의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144]
진나라 목공은 유여에게 진나라의 화려한 궁궐과 쌓아 놓은 재물을 보여 주어 국력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여는 오히려 이렇게 비웃었다. “만일 이것을 귀신이 만든 것이라면 귀신을 수고롭게 한 것이고, 사람들을 써서 만든 것이라면 백성들을 해롭게 했을 것입니다.” [145]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시경) [146]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 (시경) [147]

<소진 열전>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烏喙)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굶어 죽는 것과 똑 같은 해독이 있기 때문이다. (취했을 때,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 있다) [170]
현명한 왕은 자기 허물을 듣는 것에 힘쓰고, 자신의 뛰어난 점에 관한 칭찬을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175]
교만한 군주는 반드시 이(利)를 좋아하고, 멸망하는 나라의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한다. [177]

<장의 열전>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 [197]

<저리자, 감무 열전>
존귀하게 되는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그 존귀함을 영원히 잃지 않는다. [231]
세속의 말에 “자(尺)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寸)에도 긴 데가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치는 자의 1/10에 해당한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음을 뜻한다) [263]

<맹자, 순경 열전>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 (공자) [265]
네모난 각목을 둥근 구멍에 아무리 넣으려고 한들 들어갈 리가 있겠는가? (애초에 다른 것이 있다) [269]

<맹상군 열전>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마련인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풍환이 맹상군의 불평에 대꾸하는 말) [292]

<평원군, 우경 열전>
모수자천 [296]
낭중지추 [297]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함께 일을 하면, 이로운 것이 있을 때에는 큰 나라가 그 복을 받고, 일이 잘못되면 작은 나라가 그 화를 입게 된다. [310]
이익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 (속담) [311]

<위공자 열전>
대체로 세상 일에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고, 또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체로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가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빈객 중 한 명이 위공자에게 하는 말) [321]

<춘신군 열전>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장기 말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327]
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 (시경) [329]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 (역경)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 [329]
마땅히 결단을 내려야 할 것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340]

<범수, 채택 열전>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는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 내린다. [346]
옛말에도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습니다.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 바로 쇠약해져 떨어지는 것은 천지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입니다. (응후가 채택에게 벼슬에서 그만 물러나라며 하는 말) [370]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 [374]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 [375]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 (한비자; 인재는 모름지기 강한 나라를 만나야 한다) [376]

<악의 열전>
옛날의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의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384]

<염파, 인상여 열전>
아!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판단이 더딥니까? 대체로 천하 사람들은 시장에서 이익을 좇는 것처럼 사귑니다. 당신에게 권세가 있으면 따르고, 당신에게 권세가 없어지면 떠나갑니다. 이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인데, 무엇을 원망하십니까? (염파가 파면되어 모든 빈객이 떠나간 후, 다시 관직을 되찾자 모여드는 빈객을 보며 “객들은 물러가시오” 라고 하자 한 빈객이 하는 말) [404]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마천) [407]

<전단 열전>
용병의 도는 정공법으로 싸우고, 기이한 계책으로 허를 찔러 승리하는 것이다. (사마천) [413]

<노중련, 추양 열전>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을 가볍게 내 맘대로 살리라! (노중련) [427]
속담에 “젊었을 때부터 흰머리가 되도록 사귀었으면서도 새로 사귄 것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도 옛날부터 사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이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추양) [429]
여자는 예쁘든 못생기든 궁중으로 들어가면 질투를 받게 마련이고,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으로 들어가면 시샘을 받게 마련이다. (추양) [430]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라도 녹일 수 있고, 헐뜯는 말이 쌓이고 쌓이면 뼈라도 녹일 수 있다. (추양) [431]

<굴원, 가생 열전>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이 곤궁해지면 근본을 뒤돌아본다. 그런 까닭에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자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자가 없다. [439]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다. /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 길함과 흉함은 한 곳에 있다. (가생의 시) [453]

<자객 열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단장한다고 했다. (예양) [473]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이다. [484]
나이 들고 덕 있는 사람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품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체로 일을 행할 때 남의 의심을 사는 것은 절개 있고 의협심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다. (태자가 비밀을 발설할까 의심하자, 전광이 한 말; 전광은 이 말을 하고 자결했다) [486]

<이사 열전>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다. (이사;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반면, 창고에 있는 쥐들은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면서도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을 보며 한 말) [497]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순자)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506]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여섯 필의 준마가 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다. [513]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지만, 엄격한 가정에는 거스르는 종이 없다. (…) 하찮은 베 조각이나 비단 조각은 도둑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가져가지만, 2,000냥의 좋은 황금은 도적도 훔쳐가지 않는다. (한비자) [519]

<위표, 팽월 열전>
인생은 흰 망아지가 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다. (위표) [565]

<회음후 열전>
병력이 열 배가 되면 적을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 [597]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의 실수가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 그래서 성인은 미친 사람의 말도 가려서 듣는다.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일컬으며 겸손하게 말을 꺼낼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600]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고,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 (신세를 지지 말라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신세를 졌으니 잊지 않겠다; 잊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610]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 (너무 똑똑해도 안 된다; 자신을 숨길 줄 알라) [611]
원래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조짐이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기틀이 된다. (경청의 중요성) [612]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된다. 터럭 같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된다.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며,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모하며, 진나라의 용사 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경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임금이나 우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 (괴통; 한신에게 반역을 꾀하면서; 일의 실행을 강조하는 말) [612]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진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혜와 지모가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 [614]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이다. (괴통이 유방 앞에 끌려와서; 사람은 그 위치에 따라 다르게 처신할 수 있다) [618]





3. 여신(타고 남은 불기운)
<사기열전>에 대해서라면 너무나 많은 해제와 해설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중요한 부분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정도로 그치려 한다. 대신 역사에 대한 약간의 사견을 더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본래 130편으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기열전>이라 하면, 바로 이 <열전> 70편을 일컫는 말이다. <열전>은 ‘시대 순의 기술’이라는 고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인물 중심의 기술’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후들의 이야기가 아닌, 제후들 주위에서 일했던 여러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역사서들과는 전혀 다른 구성이라 하겠다. 이들 주인공은 유세객, 장군, 공자, 선비, 승상, 환관, 자객, 의사 따위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다.

<사기열전>에 대한 호평은 굉장히 많으나, 그 중 가장 굵직한 것으로 3가지만 옮겨본다.

첫째는 뭐니뭐니해도, 사마천 자신의 역사에 대한 해석과 평가라 하겠다. 해당 인물에 대한 신상명세는 최소화하고 그의 인물 됨을 가늠하는 이야기 위주로 구성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사마천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게다가 각 열전의 마지막 부분에는 “태사공은 말한다”로 시작하는 저자의 평가와 해석을 더함으로써 독자에게 역사적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사관(史觀)은 황로사상에 기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열전>에서는 6가(음양가, 유가, 묵가, 형명가, 법가, 도가)의 사상이 고루 읽힌다. <노자, 한비 열전>에서는 법가와 도가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중니 제자 열전>에서는 <논어>를 인용해 유가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백이 열전>에서는 유가의 큰 어른인 공자의 평가를 재 해석하는가 하면, <상군 열전>에서는 군주보다는 백성의 삶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사치스러움은 군주의 악덕임을 강조하는 등 묵가의 가르침도 엿보인다. <열전>의 마지막 편인 <태사공 자서>에서는 음양가와 형명가에 대해서도 얼마간 소개되고 있다. 허나, “태사공은 말한다” 라고 하며 사마천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부분에서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유가 사상 쪽으로 더욱 치우치고 있다.

둘째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였을 뿐 아니라, 실재로 유적지를 답사하고 그 지역 후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등, 실사(實査: 실재로 조사함)의 노력을 더해 매우 사실적인 역사 기술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다음은 열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먼저 방대한 자료 수집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사마병법>을 읽어보니……’ ‘나는 일찍이 상군이 지은 <상군서>에서 <개색>, <경전> 따위를 읽었는데……’ ‘내가 <이소>, <천문>, <초혼>, <애영>을 읽어보니……’ ‘고문에 근거한 것이므로 거의 정확할 것이다. (…) <논어>에 있는 공자 제자들의 문답에서 취하여 함께 엮어서 이 편을 만들었으며, 의심 나는 것은 여기에 싣지 않았다.’

다음은 실사의 노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일찍이 설 땅에 들른 적이 있는데……’ ‘나는 대량의 옛 터를 지나다가 이문이라는 곳을 물어서 찾아보니……’ ‘내가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과 궁실을 보니……’ ‘나는 북쪽 변방 지방에 갔다가 (…)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서 쌓은 장성의 요새를 보니……’ ‘내가 회음에 갔을 때 회음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내가 풍현과 패현으로 가서 진나라 때부터 살아온 그곳 노인들을 찾아가 (…) 물어보았는데……’

셋째는 아름다운 문장과 문학적 구성의 읽는 재미이다. 각 인물들이 했던 말이라며, 대화체로 구성한 이야기들에는 인생의 잠언으로 삼을만한 명문이 풍성하게 달려 있다. 게다가 <열전> 하나 하나를 그 성격에 맞게, 다르게 구성하였으며, 대결구도가 있는 <열전>은 차례로 배열하고, 비교대상이 될만한 인물은 함께 엮는 등, 읽히기 좋게 정성을 들였다는 점이다.

<노자, 한비 열전>에서 한비의 <세난>편을 인용해 유세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부분. <중니 제자 열전>에서 <논어>를 인용해 군자의 인(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범수, 채택 열전>에서 응후가 채택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간언하는 부분. 노중련의 자유로운 삶. 가생의 시. <회음후 열전>에서 한신에게 간언하는 괴통의 비유들. ― 인상 깊게 읽었던 문장들이다.

또한, <오자서 열전>에서 결국 복수에 성공하는 오자서의 인생을 극적인 플롯으로 구성한 것이라든지, <소진 열전>과 <장의 열전>을 차례로 배열해 합종과 연횡의 대결구도를 만들고 있는 것. <맹상군 열전>, <평원군, 우경 열전>, <위공자 열전>, <춘신군 열전>을 차례로 배열해 전국시대 4공자를 비교하여 그리고 있는 것. <자객 열전>이라 하여 비운의 주인공들을 시대 순으로 모아 한편의 이야기로 구성한 것. 이렇듯 자유롭고도 계획적인 구성이 <열전>을 더욱 재미나게 읽히도록 만들어주는 부분이다.

좀 이르지만, <열전>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대신, 기왕에 훌륭한 역사서를 한 편 읽기도 하였거니와, 역사에 대해 하고픈 말이 조금 있기도 하여, 이곳에 더한다.

역사라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명랑한 소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진지하고 무게가 있다. ‘재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어떤 이에게는 역사가 흥미진진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허나, 역사는 요즈음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요즈음 사람들이라 하니 좀 우습지만, 역사가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아 보인다는 말이다. (만약 역사가 대중적인 것이 된다면, 굉장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굉장히 좋은 일이)

그도 그럴 것이, 서점마다 베스트셀러라며 소개하고 있는 리스트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잘 된 역사서 한 편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얼마 전, ‘시’를 읽지 않는 요즈음 사람들의 세태를 꾸짖으며 구본형 어르신께서 탄식의 글을 쓰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요즈음 사람들은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해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이들의 생각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역사는 학자들의 공부거리이고, 학문의 한 분파이며, 기억해두어야 할 사항이 많은 고루한 것이고, 어찌됐든 과거를 움켜쥐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전방보다는 후방을 향하는 것이고, 왠지 모르게 조선시대의 붕당(당파싸움)이 생각나는, 혹은 지금의 정치판이 생각나는 꽉 막힌 무엇이다. 매우 주관적이며, 비 과학적이고, 논쟁과 주장의 성격이 강하다. 지루하며 따분하고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고정관념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진정한 고전으로 꼽히는 책 중에, 역사적 함의와 무관한 것이 없다. 이어 이야기하겠지만, 진리란 반드시 역사의 이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전은 얼마간의 진리를 다루고 있으니, 진리를 담은 고전에서 역사에 대한 진술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다.

어려운 질문을 해보자. “지금 그대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대의 인생은 21세기의 역사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것이 진리인가?” “그대의 삶은 옳은가, 그른가?” “그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뚜렷한가?” “시대의 흐름에 참여하고 있는가?” “그대의 태어남과 돌아감이 무슨 역사의 이름이 될 터인가?”

어떠한가? 만약, 이런 물음들 앞에서 비실대고 있다면, 그의 인생은 썩 튼튼한 것이 못 되는 것이다. 삶이 가장 튼실해 지는 때는, 그가 역사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가지는 때이다. 진리는 역사의 이해에서 시작되며, 그것이 인생을 잡아주는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참말 정직하다. 역사는 그대로 진리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정직한 신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발자취이고, 흐름이고, 맥락이다. 그것과 오늘을 동시에 보면, 그 사실됨이 더욱 정직하게 드러난다. 4.19는 폭동인가, 의거인가? 12.12는 혁명인가, 사태인가? 역사는 이들을 무엇이라 명칭 했는가? 최영, 김종서, 임경업. 불의의 칼에 스러져간 이들의 넋은, 결국 역사의 판단 앞에서 애틋한 위로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역사는 진리의 흐름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흐름의 ‘혼’을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가 내렸던 가타부타에 기대어 그 흐름을 아는 것이다. 그 흐름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 오직 역사를 읽으며 자연히 발견되는 마땅한 진리인 셈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혼’의 줄기를 알 방법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반 만년의 인류 역사 가운데서, 기껏해야 100년짜리 인생살이인 개인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역사라는 선분 위에 잘된 점(point)은 무엇이며 못된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점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 먼저는 선분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역사, 혹은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방향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역사 안에서, 그저 가만히 잊혀지고 말 터이다.





4. 내가 저자라면
간결한 문장의 장단(장점과 단점)
<사기열전>은 매우 재미있다. 그래서 더욱 천천히 읽게 된다.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감상을 실어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머리 속에 그린다는 느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시간은 금새 지나가지만, 실제로 읽은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재미 없는 책을 읽을 때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기열전>이 재미있는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잘 읽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처럼 대화문이 많아, 그 내용이 상황으로 그려지기에 뻣뻣한 서술위주의 글보다는 훨씬 잘 읽힌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 내용에 쉽게 몰입되고, 독서 시간은 마구마구 늘어나는 것이다.

왠지 글이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아 의아해 하고 있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정확히 이 글이 가고자 하는 방향임을 명시해 둔다. 즉 슨, 이 책을 읽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생각을 좀 해봤다. 이 책을 읽는데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5일을 꼬박 읽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결국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저자소개를 쓰면서 어렴풋한 이유를 찾아냈다. 재미있는 저자소개를 써보기 위해 저자의(정확히 말하면 옮긴이의) 문체를 따라 해 보았는데, 바로 그 문체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다음을 읽어보자.

시간이 지난 뒤 포숙(鮑叔)은 제(齊)나라 공자(公子: 제후의 아들을 말함) 소백(小白)을 섬기고, 관중(管仲)은 공자 규(糾)를 모셨다. 소백이 왕위에 올라 환공(桓公)이 되었고, 이에 맞섰던 규는 싸움에서 져 죽었다. 관중은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으나 포숙은 환공에게 관중을 힘껏 추천하였다. 이렇게 하여 관중은 제나라의 정치를 맡게 되었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을 등용하여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환공이 제후들을 여러 차례 모아 천하를 바르게 이끈 것은 모두 관중의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관, 안 열전>의 한 부분이다.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저 읽고 넘어가면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 전개가 매우 빠르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명쾌하다. 한 단락이 품기에는 굉장히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심지어 한 문장 안에도 두 세 개의 정보가 들어 있다. 한 마디로 거침없는 문장이다.”

수식에 수식을 더하기에 늘어지는 감이 있는 영문 번역과는 정 반대이다. 뜻 글자의 특성 때문일까? 달려가는 정도를 넘어, 몇 계단씩 뛰어 넘는 문장이다. 이런 문장을 100페이지 이상 계속해서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너무 많은 정보에 머리는 휴식을 요구할 것이다. 내 경우는 10페이지만 읽어도 놓치는 내용이 많아, 다시 읽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돌아와 집중하여 읽으면 별로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도, 잠깐만 한눈을 팔고 읽으면 뒤의 내용이 연결되지 않을 정도로 어수선해 지는 것이다. 못난 집중력을 탓하며 재탕, 삼탕하기를 몇 번을 거듭했던가?

그렇다. 이 책은 치이타처럼 날아 넘는 문장의 연속이다. 이렇듯 스피디한 전개에 강약과 높낮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반복은 꿈도 꾸지 마시라) 독자는 어디에서 집중해야 하고, 어디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사실, 휴식을 취할 부분은 거의 없다) (정신 놓고 있으면 한 순간에 길을 잃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큰 그림을 놓치지 않으려면 한 단락도 허투루 읽어서는 안되며, 그런 집중력에의 요구가 읽는 속도를 더욱 늦추는 것이다.

이제 장점을 이야기해보자. 다음을 읽어보자.

송나라에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집의 토담이 비에 무너져 내렸다. 그의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담을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그의 이웃집 주인 역시 아들과 똑같이 말했다. 날이 저물자 과연 많은 재물을 잃었다. 부자는 자기 아들은 매우 똑똑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이웃집 주인은 의심했다.

이것은 <노자, 한비 열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라면 도저히 이렇게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군더더기란 전혀 없이 “휘리릭!” 날아 넘는다. 나라면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송나라에 어떤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비가 와서 그의 집 토담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담을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그의 이웃집 주인 역시 아들과 똑같이 말했다.
“담을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이오.”
날이 저물자 과연 도둑이 들어 많은 재물을 잃었다. 부자는 자기 아들은 매우 똑똑하다고 칭찬했다.
“역시, 똑똑한 녀석이야. 녀석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아들과 똑같이 말했던 이웃집 주인은 의심했다.
“혹시…… 그가 내 집에 들어와 재물을 가져간 것은 아닐까?”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그의 문장은 5줄인 반면, 나의 문장은 10줄이다. 저자 소개를 쓰면서 그의 문체를 좀 따라 해 보았는데, 정말이지 강력하고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담고도 지루해지지 않으며, 내용을 좀 포기하고 그대로 짧게 놔둔다면 묘한 여운이 깃들여져 운치 있는 문장이 된다.

문장의 장단(길고 짧음). 이것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면, 산문으로도 시처럼 다양한 분위기의 여운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유세의 어려움
<사기열전>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은 <노자, 한비 열전>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비가 ‘유세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은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훌륭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한비는 유세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1)나의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2)나의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3)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나의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그의 통찰은, 정말이지 오늘날의 인간관계에서도 꼭 들어맞는 것이다. 물론, 그가 어렵지 않다고 열거한 세 가지도 따지고 보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 뜻을 분명하게 전해주는 것, 해야 할 말을 다 하는 것. 어떠한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일들이 어렵기 때문에 유세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세가 어려운 것은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 옛 속담처럼,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사람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여서,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뜻을 분명하게 전했다 하더라도, 해야 할 말을 다 했다 하더라도, 심지어 그를 설득시켰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과 맞지 않는다면 유세는 실패한 것이다. 결국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테니까.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에 대해 한비는 이렇게 썼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고, 그때서야 비로소 옳은 말, 쓴 말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문제없이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관계가 이어지면 유세는 성공한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의 방식대로 유세한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게는 좀더 확실한 방법이 있어 그걸 소개해 볼 셈이다. 어디까지나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이므로 거침없는 지적에 무방비이다. 날카롭게 찌르는 것을 막아줄 방패가 없다는 말이다. 어찌됐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어떠한가? 좀 그런가? 나는 기독교인이기에 성경에서 해법을 가져와봤다. 고전으로 읽히는 한비의 사상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조금 무리를 해볼 셈이다. 내가 한비의 방식보다 성경의 방식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세는 그(한비)의 말대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그(한비)의 방식대로 하는 유세는, ‘충고를 멀리하고 칭찬을 즐겨 듣는 소인배들’에게는 잘 먹힐 지 모르나, ‘쓴 소리를 달게 받고 단 소리를 쓰게 받는 군자’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방식대로 하는 유세는, 본보기를 보이는 것으로, 그 상대가 소인배이든 군자이든 누구에게나 유효하다. 유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것이다.”

진시황도 “아, 이 사람을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 라고 극찬했던 한비자 같은 인물의 사상에 감히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겁도 없다. 그저 성경이라는 절대 권위에 숨어 대범 방자하기가 그지 없다. 이 참에 마구 호가호위(狐假虎威: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하는 것이다.

결국 마음을 사는 일이다. 상대가 마음 문을 열기만 한다면, 무슨 말을 해도 먹히게 되어 있다. 그 문을 열기 위한 열쇠로 한비는 ‘말’을 제시한 것이고 성경은 ‘행동’을 제시한 것이다. 내 보기에는 후자가 나은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떠한가? 참고로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 – 공자 [99]

하나만 더.

그래서 나는 말만 잘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자로가 자고를 벼슬에 추천하자 공자가 탄식하면서 하는 말)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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