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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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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일 02시 57분 등록

▶ 저자 소개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 - 기원전 86?)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역사가, 아버지인 사마담(司馬談)의 관직이었던 태사령(太史令)의 벼슬을 물려받아 태사령으로 복무하였다. 태사공(太史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후에 흉노와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투항한 이릉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궁형(宮刑)에 처하게 된다.

歷史란 무엇인가

『사기』는 「본기」12, 「표」10,「서」 8, 「세가」 30,「열전」70편의 총 130권으로 이루어진 기전체 사서이다. 기전체란 원래 제왕의 행적을 연대기적으로 저술한 「본기」와 개인의 활동을 저술한「열전」이 복합된 형식이다. 『사기』는 여기에 여러 사건의 시간적ㆍ공간적인 연관성을 파악하기 편리한 「표」, 지역적으로 나뉘어 권력을 세습했던 제후왕과 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사건을 시대순으로 서술한 「세가」, 문물제도의 연혁과 그 원리를 서술한「서」 가 추가되었다.

 

낯익은 형식이다.

 

소설가들이 대하소설을 쓸 때 당대의 시대상과 그 시대의 산물인 인물을 입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자료를 정리해 가는 과정을 떠오르게 한다. 사마천은 역사를 개인의 능동적인 활동의 산물로 보았고, 개인의 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개인의 도덕과 능력, 그리고 능동적인 노력의 결과로 설명한다. 그는 제왕으로부터 이름없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이끈 문제적 인간에 주목한다. 그의 역사관은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되는데, 1) 백성에 대한 관심과 지배층에 대한 비판, 2) 천인상관론(天人相關論), 3) 역사변혁관이 그것이다. 10세 이전부터 직접 논을 갈고 목축을 한 그는 다섯 번에 걸쳐 중국 천하를 답사하면서 민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대조적으로 지배층의 잔학성을 대해서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당대의 황제인 한무제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또 인간의 역사가 자연의 변화에 상응하여 변이 한다는 것을 부인하고, 역으로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자연의 질서도 대응한다는 인간주체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物이란 盛 하면 衰하기 마련'이라는 변화론적 관점에서 사회의 진전을 촉진시키는 개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사기』를 썼는가

그에게 역사란 史蹟의 평가를 통하여 정치적, 도덕적 규범의 확립, 후세의 왕자를 위한 난세극복의 원리를 제시하기 위한 저술로서 「天과 인간의 관계를 규명하고 고금의 변화를 관통하는 (원리를 밝혀) 스스로 독자적인 입론의 체계를 이루려는 것」이 공식적인 저술 목적이다.

대대로 태사(太史 : 사관) 집안이었고, 자신을 이어 태사가 되기를 소망한 아버지의 유언도 『사기』 저술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사기』저술의 모티프가 된 결정적인 사건은 宮刑이라고 생각된다.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다가 남자에게 가장 치욕적인 형벌인 궁형을 당한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거세는 사회로부터 그 존재를 부인당하는 행위였다. 절대군주의 시대에 누구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현대적인 사관을 지녔던 그에게, 역사 서술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뛰어넘어 사마천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영원히 남기는 길이었다. 그를 거세하고 그를 침묵하게 한 절대권력은 花無十日紅이지만, 2000년 중국 역사의 재단은 그에게 죽음과도 바꿀 만한 성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역자서문

세계인의 고전 『사기』는 사마천이 사관인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에 따르고자 궁형의 치욕을 딛고 저술한 통사체 역사서로서, 전설의 황제시대부터 한 무제때까지 2000년을 아우르고 있다.  5

 

『사기』 중에서도 『열전』  70권은 주나라 붕괴 후 등장한 50개 제후국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전국칠웅 진, , , , , , 조의 흥망성쇠를 주축으로 하며,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5

 

해 제

이 책은 중국 역사의 典範으로 일컬어지며,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기』는 「본기」12, 「표」10,「서」 8, 「세가」 30,「열전」70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1

 

「세가」는 제왕보다 낮은 위치인 봉건 제후들의 나라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후들 외에 황제의 친척과 공훈을 세운 신하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무관의 제왕인 공자와 왕을 칭한 지 6개월 만에 망한 진섭이 포함되어 있는 점이 이채롭다. 「열전」은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의 전기를 주로 수록하고 있는데, 신분을 초월한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다. 12

 

30세가는 사마천의 독창성이 엿보이는 부분으로 이 가운데 열전에 넣어도 그다지 무리가 없는 「공자 세가」와「진섭 세가」를 뺀다면 28편으로 28수와 일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12

 

중국 고대 역사서의 세 가지 편찬 체제인 편년체, 기사본말체, 기전체 가운데 기전체의 효 시가 『사기』이다. 기전체는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먼저 시대순으로 제왕의언행과 행적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13

 

그는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들에게 천문학과 『주역』및 음양의 원리를 배웠다. 14

 

이 밖에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순수하게 개인의 자격으로 저술에 임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17

 

사마천은 태사령으로 있으면서 궁궐에 소장된 모든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자료 수집을 위하여 유적을 답사할 수 있었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취재할 기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17

 

격동의 시대를 약 120여명이라는 비운의 인물을 통해 그려 냈으니 결국 사마천에게는 비극이야말로 아닌 게 아니라 시대의 표징이었던 셈이다. 19

 

『사기 열전』은 서술에 있어 인물의 비중을 고려하여 안배한 흔적이 두드러진다. 독자에게극적인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대립되는 인물을 같은 편에 놓은 경우도 많다. 또한 유림, 혹리, 자객, 유협, 골계 등 유사한 직업군을 한데 묶어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20

 

은 본래 경전의 주석을 가리키는 말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구두로 전해진 것을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전기biography로 받아들여져 왔다.사마천은 전기를 개인의 역사로 확대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라고 하면 아무래도 주인공의 삶을 모두 기재해야 하는데 『사기 열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실도 더러 있다. 20

 

사마천은 『열전』에서 인물에 대해 나열식으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그 인물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특징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20

 

일반 역사서와 달리 『사기 열전』에 적잖은 주관적 서술이 보이는데, 사마천 자신의 사료 비판능력과 어우러져 탄탄한 역사 서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25

 

반고는 『한서』에서 「동방삭전」을 제외하면 유가 이외에는 모두 비정통파나 하류 문화로 취급하여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26

 

무론 사마천의 기술 방식이나 자료 선정 방법 등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2000년 전이라는 시간적 의미로 볼 때, 정말 이 정도로 완벽한 체제를 갖춘 역사서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된다.요컨대, 개인적으로 기록한 역사 『사기』가 후대에 24史의 필두로 거론되게 된 것은 중국 전설 시대부터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한 무제까지 이르는 유일한 통사체 역사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다. 또 기전체라는 형식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의 정확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절대 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 즉 사마천의 역사를 보는 태도가 다른 역사서와 아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사기』가 문학서로서 색채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7

 

1. 백이 열전

사마천이 단순히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행적을 적었다기보다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총괄적인 입장을 자신을 빗대어 쓴 것이다. 60

 

순 임금 우-하우씨 부락의 우두머리이며 하나라 창시자이다. 그는 곤이 치수에 실패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 십 년 만에 홍수를 다스려 민심을 얻었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농사 시기에 최상의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그 당시 이미 군대, 형벌, 관리, 감옥 등이 있어 중국 초기 국가의 탄생으로 보인다. 67

 

2. 관ㆍ안 열전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四維〕즉 예의〔禮〕, 정의〔義〕, 깨끗함〔廉〕, 부끄러움 〔恥〕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水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73

 

覇道란 仁과 義를 가볍게 보고 권모술수와 무력을 숭상하는 것으로서 王道와 상반되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제후국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은 것도 제후들이 대부분 패도를 숭상하였기 때문이다. 78

 

3. 노자ㆍ한비 열전

노자에 관한 사마천의 관점은 이러하다.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인으로 나이가 공자보다 많고 에 밝아 공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장자의 우언을 당시 유가와 무가를 공격하는 탁월한 무기로 본다.(……) 사실상 사마천은 법가 인물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이므로 오기나 상군 등에 대해서도 편향된 시각을 드러냈다. 79

 

공자는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 81~82

 

노자는 하지 않는 것〔無爲〕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83

 

장자는 몽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이다. 그는 일찍이 몽 지방의 칠원이라는 곳에서 벼슬아치 노릇을 했고 양혜왕, 제선왕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는 학문이 넓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 학문의 요체는 노자의 말에서 시작하여 노자의 학설로 돌아간다. 83

 

초나라 위왕은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많은 예물을 주고 재상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왕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교제郊祭 고대 제왕이 해마다 동짓날에 도성의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올린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84

 

한비는 유학자는 글로 나라의 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협객은 힘으로 나라의 금령을 어긴다고 생각하였다. 군주는 나라가 편안할 때에는 이름 있는 유학자를 아끼고 위급할 때에는 갑옷 입고 투구 쓴 무사를 등용한다. 그러므로 지금 이 나라에서 녹을 주어 기르는 자는 위급할 때에는 쓸 수 없는 자이고, 위급할 때에 쓰이는 사람은 평소 녹을 주어 기른 자가 아니다. 86

 

대체로 모든 일은 은밀히 진행시키면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그러나 유세자가 상대방의 비밀을 들출 뜻이 없었지만 우연히 상대방의 비밀을 말한다면 유세자는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유세자가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고 교묘한 주장을 내세워 그 잘못을 들추어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 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여 공을 세우더라도 군주는 그 덕을 잊을 것이며,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몸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또 군주가 좋은 계책을 얻어 자기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몸이 위태로워진다.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때 유세자가 이것을 알게 되면 역시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을 멈추게 하면 또한 몸이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88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의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89

 

이는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90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든다고 하여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를 짓는다고 하여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1

 

이란 회화나 문서에 나타난 군주의 명령으로서 일종의 성문법이라고 할 수 있고, 은군주의 가슴속에 있는 것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릴 목적을 위해 아랫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킨다든지 잘못한 일이 있으며 꾸짖고 벌주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95

 

4. 사마 양저 열전

양저는 병사들의 막사, 우물, 아궁이, 먹거리를 비롯하여 문병하고 약을 챙겨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몸소 보살폈다. 102

 

5. 손자ㆍ오기 열전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111

 

옛말에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121

 

7. 중니 제자 열전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148

 

제가 듣기에 나라 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강한 적을 공격하고, 나라 밖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약한 적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161

 

이처럼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168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172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172

 

번수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184

 

8. 상군 열전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總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고 합니다. 207

 

당신은 왕의 명령보다도 깊게 백성을 교화시키고 백성은 왕이 명령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당신이 하는 일을 본받습니다. 209

 

9. 소진 열전

자기 친척을 제후로 봉하는 것은 은나라 탕왕이나 주나라 무왕이 나라의 임금을 내쫓거나 죽이는 방법으로 얻었던 것입니다(放伐). 본래 방벌이란 난폭하고 사악한 정치를 하는 天子를 무력으로 내쫓거나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인들의 큰 지주로 자리하고 있는 유교 입장에서 보면 천자를 내모는 것은 매우 큰 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포악한 천자를 내쫓는 것만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다. 260

 

10. 장의 열전

합종파의 대표 인물이 소진이라면 장의는 연횡파의 대표 인물이므로, 합종파와 연횡파의 인물들을 합쳐 각각의 열전을 만들면서 두 사람으로 대표성을 갖게 한 것이다. 263

 

또 합종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과장되게 큰 소리만 쳐 믿을 만한 내용이 적습니다. 제후 한 사람만 설득하면 후에 봉해지기 때문에 천하의 유세하는 사람은 모두 밤낮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면서 합종의 이로움을 말합니다. 275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275

 

 12. 양후 열전

전국시대 중기 이후는 진나라가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제후들을 잠식해 나가던 때이다. 331

 

14. 맹자ㆍ순경 열전

사마천은 음양가와 도가의 학문이 사실상 근본이며 기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가의 위대한 두 스승 맹자와 순자의 사적에 관해서는 짧게 다루고 음양오행가와 도가에 대해서는 유가보다 상세하게 다루었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 한 무제가 尊儒의 기치를 내건 지 백여 년이 지났으나 조정에서도 맹자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을 사마천이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런 면에서 황로사상의 면모가 엿보인다. 361

 

儒者들이 말하는 중국이란 천하의 81분의1을 차지할 뿐이다. 그들은 중국을 赤縣神州라고 이름하였다. 적현신주 안에는 저절로 구주가 있었다. 우 임금이 정리한 구주가 바로 그것이지만, 본래의 〔추연이 마란 아홉 개의〕 주로 셀만한 것이 못 된다. 중국 말고도 적현신주와 같은 것이 아홉 개나 있는데, 이것이 구주이다. 366

 

15. 맹상군 열전

맹상군이 일어나서 몸소 자신의 밥그릇을 들어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은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81

 

맹상군은 반란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이 한 몸을 바쳐 맹세하겠습니다.그러고는 궁궐 문 앞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음으로써 맹상군이 결백함을 밝히려 했다. 민왕이 깜짝 놀라 맹상군의 행적을 조사해 보니 정말로 맹상군은 반란을 꾀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387

 

 16. 평원군ㆍ우경 열전

한단의 백서은 땔감이 없어서 죽은 사람의 뼈를 때고,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자식을 바꾸어 먹고 있으니 위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10

 

18. 춘신군 열전

진나라는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면서 능력 있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고 어질지 못한 자는 내침으로써 서쪽 변방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443

 

21. 염파ㆍ인상여 열전

화씨벽은 천하가 모두 인정하는 보물입니다. 조나라 왕께서는 진나라가 두려워서 감히 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나라 왕은 화씨벽을 보낼 때 닷새 동안 재계하였습니다. 이제 왕께서도 마땅히 닷새 동안 재계하고 대궐 뜰에서 구변의 예를 행하시면 바로 화씨벽을 바치겠습니다. 527

 

25. 여불위 열전

여불위는 전기傳奇 색채가 풍부한 역사 인물이다. 여불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진시황의 친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대목이 이 편에 나오기 때문이다. 611

 

26. 자객 열전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공자 광은 발이 아픈 척하며 지하실로 들어가서 전제에게 뱃속에 비수를 감춘 구운 생선을 올리도록 하였다. 전제는 왕 앞에 이르자 생선의 배를 찢고 비수를 잡아 요왕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였다. 이렇게 하여 왕을 모시고 온 신하들이 크게 소란을 피우자, 공자 광은 숨겨 두었던 병사들을 내보내 요왕의 무리를 쳐서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합려이다. 629

 

조양자는 지백에 대한 원망이 너무 큰 나머지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큰 술잔으로 썼다. 630

 

선비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섭정은 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한라나의 시장 사람들은 섭영의 말에 매우 놀랐다. 그녀는 이윽고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세 번 외치더니 몹시 슬퍼하다가 마침내 섭정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638

 

내가 듣건대 나이 들고 덕 있는 사람은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품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태자께서는 내게 우리가 말한 것은 나라의 큰 일이니 선생께서는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태자가 나를 의심한 것입니다. 대체로 일을 행할 때 남에게 의심을 사는 것은 절개 있고 의협심 있는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전광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형경을 격려하려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디 빨리 태자가 찾아가 전광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여 일이 새나갈 염려가 없음을 분명히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광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645

 

다시 羽聲으로 노래하니 그 소리가 강개하여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이 관을 찌를 듯 치솟았다. 이렇게 형가는 수레를 타고 떠났는데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651

 

27. 이사 열전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으로 훗날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사마천은 호해의 어리석고 무능함과 조고의 음험한 속셈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이사의 이중성을 드러내는가 하면 진나라 통치 계층의 추악한 정권 쟁탈전을 부각시켰다. 659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662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666

 

진나라는 땅을 한자도 남에게 봉해 주는 일이 없고 황제의 자제를 세워 왕으로 삼는 일도 없으며 공신을 제후로 삼지 않았다. 이는 뒷날 내란의 근심거리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667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 흑백을 가려 천하에 오직 황제 한 분만이 있도록 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사로이 학문하는 자들은 서로 모여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허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칙이 내려졌다는 말을 들으면 각자 자기가 배운 학설에 근거하여 그것을 비판하고, 집으로 들어가서는 마음속으로 헐뜯고 밖으로 나와서는 길거리에서 논합니다. 그들은 군주를 비방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겨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어 비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금지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이루어질 테니 금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경』,『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 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 사 년 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성 쌓은 일을 하는 죄수으로 삼으십시오. 의약, 점복, 농사, 원예 관한 책은 없애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배우고 싶은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면 됩니다. 669

 

제가 듣건대 탕왕과 무왕은 각각 자기의 군주를 죽였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의롭다고 할 뿐 충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위나라의 군주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백성은 그의 덕을 받들었고 공자도 이 일을 『춘추』에 적으면서 효성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672

 

 

위와 아래가 마음을 합치면 같이 누릴 수 있으며, 안과 밖이 하나가 되면 일의 겉과 속이 없어집니다. 676

 

세 사람은 공모하여 시황제의조서를 받은 것처럼 꾸미고, 승상은 시황의 아들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677

 

28. 몽염 열전

중국의 중요한 역사적 특질은 독재 군주 사회에서 지배층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암투이다. 고대 중국을 다스린 역대 황제는209명인데, 이 가운데 예순세 명은 자살하거나 암살당했다는 통계가 있다. 711

 

30. 위표ㆍ팽월 열전

반역할 마음을 품었다가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붙들려서 형벌을 받았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자들이지만 오직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때를 만나 자신들의 뜻을 펼쳐 보려고 했기 때문에 갇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751

 

31. 경포 열전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 770

 

32. 회음후 열전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한신에 견줄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왕의 생각이 어느 쪽에 있는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778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나라 용사 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하고 있으면 보통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803

 

33. 한신ㆍ노관 열전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성이 다른 일곱 명을 왕으로 봉하여 봉건 할거 국면을 형성했지만, 나중에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씨가 아닌데 왕이 된 자들을 멸망시키는 정책을 폈다. 그래서 이때 제후들은 조정의 꺼림이나 의심을 많이 받았고 잦은 반란도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한신과 노관도 공을 세워 봉해졌고 고조와 친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음에도, 당시 상황은 그들이 한나라를 떠나 반역의 기로 치닫게 만들었다. 815

 

35. 번ㆍ역ㆍ등ㆍ관 열전

특히 사마천은 여기서 번쾌의 손자 타과의 전언을 근거로 하여 서술함으로써 역사를 기록뿐 아니라 현장 체험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으로 파악하였다. 845

 

번쾌는 여후의 동생 여수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항을 낳았기 때문에 다른 장수들에 비하여 고조와 가장 가까웠다. 853

 

▶ 내가 저자라면

『사기』元典의 장점

1. 사료 검증의 정교함

사마천은 『사기』 저술을 위해 유럽의 네 배나 되는 중국 천하를 다섯 번이나 周遊하며 사료를 수집하고 고증했다. 이후 역사 저술의 원칙과 표준이 되었다.

 

2. 중국 역사에 적합한 역사 저술 방식의 창조

기전체라는 역사편찬방식을 통하여 방대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그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생생 하게 그려 내었고, 그것들이 시대에 미친 영향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3. 탁월한 역사관

역사학의 태동기에 공간성과 시간성, 서술의 주요 대상을 인물로 삼은 인간성을 주요소로 삼아 고금의 변 화상황을 통달한 역사관을 보여준다. 태사공曰 등 논찬 부분은 취재를 통한 철저한 사실 검증 후 이에 대해 고유의 비평을 가하는 오늘날의 저널리즘 방식을 떠오르게 할 만큼 현대적이고 완성된 형태를 지니고 있 다 . 실증주의 사학이라는 미명아래 역사가로서의 책무를 방기한 일제시대 진단학회와 비교하면 더더욱 현대적이고 장쾌하게 느껴진다. 가치관이 투영되지 않는 역사 저술, 나의 삶과 무관한 역사저술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4. 인물에 적합한 표현 방식

『사기』에는 수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사마천은 인물들을 통하여 역사에 대한 그의 시각을 전달하고 있 으니 인물이 결국 『사기』의 주인공이다. 역사서 안인데 그 인물들이 하나 같이 생동감이 넘친다. 천하의 遊說家인 소진과 장의 편에서는 그들의 말 한마디에 이합집산하는 왕과 전국칠웅의 모습이 씨줄과 날줄로 선명하게 부각된다. 자객 열전에서는 갈등과 반전의 상황이 극적으로 서술되어 긴장감을 더한다.
 

5. 중국, 중국인을 이해하는 텍스트

땅 넓고 인구 많은 나라가 중국이다 보니 기본 단위가 다르다.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이 1천만 명이고, 제후들은 빈객을 길렀는데 어떤 이는 1만명이 넘었단다. 맹상군이 자신을 차별한다고 오해했다가 맹상군이 자신의 밥그릇을 들어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이 부끄러워 목숨을 끊었다거나, 조양자 의 지백에 대한 원망이 커서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썼다거나, 한단의 백성은 땔감이 없어서 죽은 사람의 뼈를 때고,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자식을 바꾸어 먹었다는 얘기를 읽고 있자니 허풍쟁이 왕서방의 이미지가 절로 그려진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내러티브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중국은 모든 게 많다. 『사기』에는 또한 대의명분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인물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체면을 중시하고
꽌시(관계)가 사회생활의 제1원칙인 중국인의 특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번역서의 전체적인 구성 및 보완점

양장본에 8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한 손에 충분히 잡히는 책 사이즈라 휴대하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역 자서문과 해제를 책 앞부분에, 책 말미에 찾아보기를 배치하여 『사기』 초보독자에게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었다. 장 시작 전에 개요를 설명해주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에 용이했고, 컬러 인쇄지로 장간구분을 해 놓아 원하는 곳을 찾아 읽기에 수월했다. 번역서는 언어적인 장벽이 있으니 독자로부터 좋은 첫인상을 확 보하기 위해 치밀한 구성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읽어가다 보면 나라이름, 사람 이름이 헤깔려 뒤죽박죽이 된다.
중에는 인터넷에서 춘추전국시대의 지도를 출력해 보면서 책을 읽었다. 시대별 주요인물과 고사성어는 별
도로 정리하고, 주요 지명을 표시한 춘추전국시대의 지도를 첨부하면 체계를 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IP *.204.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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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5.03 08:19:17 *.219.109.113

신문인줄 알았어. 마치 한 편의 신문을 읽는 기분.

저자에 대하여도 다른 각도로 많이 썼네. 내가 찾은 자료 이외에 것들에 대해

읽으며 으음~ 하며 재미있게 읽었네.

주말에 아주 빡세게 했나봐. 예상보다 일찍 올라왔어. ㅋㅋ 또 까만 밤을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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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5.05 20:20:52 *.160.33.180

이렇게 대충 정리될 수 없는 책인데....  참 신기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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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06 00:10:42 *.206.175.132
시간에 쫓겨 충분히 음미하면서 읽지 못했습니다.
책 리뷰에 좀더 공을 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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