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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일 09시 20분 등록

사마천은 몰라도, 궁형은 기억이 난다. 중학교때 선생님은 남자로서 '치욕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치욕이, 궁형, 거세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당사자가 사마천이라는 사실은 더 나중에 알았다. 사마천은 사기 보다는, '궁형의 남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건, 치욕때문이건, 사마천은 독한 사람이다. 작가 중에서 몇십년에 걸친 저술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2천여년전, 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난다. 사마담은 태사령이라는 관직에 있었는데, 천문관측, 달력 개편, 조정의례의 기록을 하는 일이다. 아버지부터가 벌써 기록하는 집안사람이다. 기록하는 집안은 무엇이 틀릴까? 기록하는 자는 정리도 잘한다. 기록과 정리는 한통속이다. 정리해야 기록할 수 있다. 요즘으로 치자면 사마담은 디자이너다. 평상시 디자이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수집한다.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해당 카테고리에 수납한다. 이런 작업을 해놓아야, 아이디어가 나온다. 디자이너는 창조라기 보다는 정리하는 것이 일이다. 

그중에서도 정보디자이너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홈페이지, 그래픽, 영상, 편집 디자이너 모두 정보디자인이다. 이들은 기업의 브로셔도 만들고, 달력도 디자인한다. 사마천은 디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보를 분류하고, 기록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의사 집안에서 의사 나오고, 장사꾼 집안에서 장사꾼 나온다. 좋건 싫건, 가업을 이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도 가업을 이은 케이스다. 시간을 상당 절약할 수 있다. 부모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인다. 다른 이에 비해서, 인센티브가 상당하다.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가업을 이은 자는, 가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아버지 사후, 사마천도 태사령이 된다. 사마천에게 유언으로, 역사서 집필을 부탁한다. 자신의 꿈을 아들이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노하우를 전수 받는 대가로, 가업을 기필코 이루어야한다는 책임을 느꼈을 것이다. 

BC105년 무제의 즉위 기념으로 달력 개편을 한다. 사마천이 작업을 담당하고, 동시에 사기 집필을 시작한다. 평판이 나쁘던 이릉장군을 변호하다가 왕의 신경을 건든다.       디자이너는 성격이 좀 유별나다. 내성적인 사람이 많은 데, 작업 자체가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이고, 작업물이 나오면 자신이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생긴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진한데, 나름 고집이 있는 것이 디자이너의 특징이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묘하게 이런 사람들이 많다.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이혼한 사람도 꽤 된다. 사마천도 작업에 따른 성격상 특성으로, 왕에게까지 바른 소리 했던 것이 아닐까? 

일년 후에 3가지 옵션이 나온다. 1.처형, 2. 보석, 3. 궁형. 

차라리 죽으라는 이야기인데, 사마천은 소심한 디자이너 답게 3번 궁형을 택한다. 써놓고 보니 참 웃긴다. 처형을 고르라니! 

디자인은 1mm, 혹은 1픽셀의 미학이다. 색깔이 자기 예상과 달라도, 결과물이 생각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디자이너다. 신경질적이고, 날카롭다. 게다가 꽁하다. 궁형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치욕이다. 사마천은 이 치욕을 마음에 깊이 새겼을 것이다. 덕분에 그 분노로 인류에 길이 남는 '사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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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에서 그의 업적은 복잡한 사건들을 질서정연하게 기술했다는 점이다. 보면 볼수록, 사마천은 정보디자이너의 성격이 강하다. 복잡함을 단순하게, 어려운 것을 쉽게, 꼬인 것을 푸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훌륭한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결과물을 바라본다. 그런 필요성 때문인지, 사마천은 이전의 역사가들처럼 단순히 연대순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본기, 표, 세가, 서, 열전, 다섯부분으로 나누어서 서술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호흡이 길다. 다루고 있는 시대가 다른 역사가의 정사보다 길다. 수집 자료도 다양하다. 사기는 생색내기 위해서 만든 작업물이 아니다. 진심으로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기술했다. 지금으로 치면, 마우스를 이리러리 클릭하며 즐길 수 있는 텍스트다. 그만큼 서술이 방대하고, 사건과 인물에 대한 각도 또한 다양하다. 

책을 읽으며, 영화 '타짜'가 떠올랐다. 타짜는 몇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사기와 타짜의 공통점이 있다. 먹기 좋게 콘텐츠 하나 하나에 공을 들인 점이다. 가끔 글을 쓸때, 독자가 광화문 사거리의 한 커피숍에서 조각케익을 먹는 상상을 한다. 기분 좋고, 먹기 좋게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기와 타짜는 내 바람에 충실한 모델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한 방법론을 짚어보자. 우선 사료를 모았다. 저술하기 앞서서 자료를 모으는 것은 상식이다. 먹어야 나올 것 아닌가. 위험하기도 하다. 저술은 고통스러운 작업이기도 한데, 자료 수집 명목으로 피할 수 있다. 저술을 할 때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먼저 쓴 다음 자료조사를 하는 순서가 맞다. 소설가 김영하도 비슷한 말을 한다. 자료조사를 먼저하면, 밑도 끝도 없이 조사만 하다 끝나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악의 꽃'은 조선후기 멕시코 이민자들에 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집필할 때도, 반 정도는 한국에서 쓰다가 나머지는 멕시코에 가서 현장을 보아가며 썼다고 한다. 얼핏 생각해보아도, '내 생각'이라는 뼈대가 있어야 자료수집에 대한 방향도 잡힐 듯하다. 

사마천의 기술 방법처럼, 저술을 할려면 '사실fact'이 있어야 한다. 내 저술에 구체적인 팩트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자료만 있어도,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는다. 자료는 근거다. 어떤 일이든, 믿는 구석이 있어야 속도가 붙는다. 일은 어느 정도가 속도가 나와야 진척된다. 구체적인 사실은 범위를 좁게 잡고, 포커스를 맞출수록 잘 보인다. 기본이 장사, 외식업, 자영업인데 너무 범위가 크다. 카테고리를 더 구체적이고 작게 잡아보자.  

나라면, 사기에 나오는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들을 한꼬치에 꿰어보고싶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연결해본다. 소설 아리랑 같은 대하소설이 될 것이다. 
IP *.129.20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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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03 15:47:13 *.236.3.241
똑같은 사료를 가지고 있는데 어떤이는 대하소설을 쓰고,
어떤이는 역사를 쓴다.

사마천이 대대로 史家의 집안이기는 했지만 그가 소설이 아니라
역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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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
2010.05.03 21:40:03 *.117.9.37
작년 5기 연구원 시절엔 성우형의 글에 매료됬었지.
그래서 성우형의 북리뷰와 칼럼이 올라오길 매주 기다렸다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수의 북리뷰는 출력해서 틈틈히 읽었다네.

친구여..
올해는 그 대상이 자네라네..
너의 북리뷰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내 당장 성과를 보여줄 것이 몇가지 있어
올해는 힘들것 같구나..

그냥 가끔 들어와
독자로서 만족을 할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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