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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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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일 10시 3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이 굴욕을 감내하며 <사기> 집필을 완성한 진짜 이유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단다. 사마천은 <사기 열전>의 맨 마지막장인 ‘태사공 자서’에서 궁형의 치욕을 감내하면서도 <사기> 집필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공자의 <춘추>를 이어받아 후세사람들에게 도덕적 규범이 될 만한 通史를 완성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목숨만이라도 부지하여 부친의 유지를 받들기로 한 것이다. 참으로 지극한 효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의심해 본다. 정말 그의 선택이 순전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사투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머나먼 후세의 이름을 위해 목전의 굴욕을 감당해 내는 것이 그에게만 별스럽게 수월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는 무엇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사마천은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열 살 때부터 옛 문헌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스무살이후로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풍속과 역사를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기 전에 이미 어디를 가든 고적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만큼 역사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어떤가? 이쯤에서 인디언 문화에 빠져 어린시절을 보내는 조셉 캠벨이 떠오르지 않는가?

사마천에게 역사는 고된 현실의 감각을 너머 영원의 황홀감을 선사하는 문자 그대로 至福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궁형을 선택할 당시는 이미 <사기> 집필을 시작한지 5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사마천으로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천상의 행복감을 5년이나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숨 너머 가게 재미있는 놀이를 그까짓 억울한 치욕 때문에 포기하다니!’ 그는 어떻게든 이 놀이를 사수할 만한 명분을 찾고 싶었을 테고, 다행히 효성과 사명감, 울분이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찾아내어 스스로와 세상을 무리없이 설득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감정들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굳이 주객을 따지자면 이들은 철저히 손님이지 않았을까?

그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속임수가 오래 갈 수 없음을. <사기>가 200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탁월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점과 사마천이 <사기> 이후 후속 저작을 남기지 못하고 바로 세상을 뜬 점은 이러한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었던 그는 <사기> 130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 부었던 것이다. 특히 자신의 집안 내력과 학문적 배경은 물론이고 <사기> 130편에 대한 일목요연한 해제를 수록해 놓은 열전의 맨 마지막 편인 ‘태사공 자서’에서 마치 죽음을 예견한 이가 써놓은 유서와 같은 비장함을 느꼈다면 이를 순전히 오버센스라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사마천의 천복은 그를 정말 더 고통스럽게 했을까?

만약 사마천에게 가상의 평범한 삶과 실제의 삶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이미 답을 줄 수 없는 그에게까지 갈 것도 없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싱겁게도 나는 1초도 망설임없이 평범한 삶을 택하겠다. 기왕에 천복의 느낌을 알고 있었다면 현실의 무게가 그 몰입의 밀도에 의미있는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 드라마틱한 차이가 분명해진다 할지라도 나는 굳이 불행을 선택할 만큼 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마천이 2000년을 초월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줄만큼 보편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면 그도 크게 다를 것 없지 않을까?

그러면 만일 그가 천복의 느낌을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도 과연 죽음대신 궁형의 굴욕을 선택했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행간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당시 분위기로 궁형은 죽음보다 못한 선택으로 대단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섣불리 갈 수 없는 길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함부로 예단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면 아마 죽음이 더 무난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깨끗이 죽어 없어졌더라면 그의 삶은 더 가치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는 더 행복했을까?

천복을 발견하면 삶이 고달파질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소리없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두려움이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캠벨처럼 비교적 순탄하게 간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닌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비율이라면 무난하게 현실에도 잘 적응하면서도 천복을 누리고 싶은 욕심은 부끄러워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마침 사마천이 왔고 나는 그의 삶을 통해 나의 대답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도 사마천의 경우는 그의 천복이 삶의 질을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가 천복을 이미 찾았기 때문에 억울한 형벌을 당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천복은 오히려 주어진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어 삶을 훨씬 가치있게 했던 것이다. 사마천만 같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내 천복을 좇아도 좋지 않을까? 성급한 일반화라고? 자, 그럼 다음은 누구?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역자 서문

천하를 제 손안에 굴리고 쥐락펴락한 세객(6)

차라리 목을 내놓을지언정 지조는 꺾을 수 없는 충신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홀로적지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나이들의 세계(7)_몬가 멋~지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사람을 살려낼 뿐이다(8)

반야산 기슭에서 조용히 연구에 정진하도록 성원해주는(10)_나도 조용히 정진 좀 해 봤음 좋겠당..

해제

기전체는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구성(13)

사마천은 사료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역사의 발전적 흐름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주었기에, 이 책이 오늘날까지도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다(13)★

史聖 사마천은 누구인가?

10살 때 아버지를 따라 수도인 장안에 와서 당시 경학 대사인 동중서와 공안국에게 고문을 웠다(14)_좋은 스승이 중요하다는 거지!

20세 때 여행을 시작하여 중국 전역을 두루 돌아다녔으며..또다시 무제를 따라 순행하면서 거의 온 나라를 주유했다.(15)_경험도 중요하다!

어디를 가든지 고적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했다(15)_무엇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부친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면서 4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끝에 기원전 104년에 정식으로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15)_그는 궁형(기원전 99년)을 당하기 전부터 ‘뽕맛’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목숨만이라도 부지하여 부친의 유지를 받들기로 한 것이다(16)_단지 아버지의 유언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의무감’으로 설명되는 영역이란 말인가?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라는 차원에서 미루어 짐작컨대..아니다. 이건 의무감으로 해 낼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일이다.

집필을 완성하고 몇 년 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16)_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은 작업이 끝난 후..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사마천이 사기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① 발분의식의 소산. 궁형을 당한 것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구차한 행위가 아니라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_명예욕이 그 굴욕을 견디게 했던 걸까? ② 후세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여 微言大義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_공헌에 대한 의지, 사명감이었을까? ③ 순수하게 개인자격으로 저술_그도 아마추어, 여기서 결정적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생계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그는 이 작업의 순간에만 살아 있었던 것이다. ④ 무제 곁에서 절대 권력자의 영토확장 야욕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또한 무제를 수행하면서 각종 성대한 의전 장면이나 열병의식 수렵 활동 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정신을 터득하기도 했다(17)_사명감에 불을 질렀을 것이다. 마치 나에게 그랬던 것 처럼

결국 사마천에게는 ‘비극’이야말로 아닌 게 아니라 시대의 표징이었던 셈(19)_역사속 인물들에게서 스스로를 위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조롱하는 동시대인들과 누리지 못하는 소통을 역사속 인물들에게서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소통이 가능한 인물들을 가려 복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측면만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인물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특징을 제시하는데 주력했다(20)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신의 위치에 달려있다(23)_ 51%동감,49%가 빠지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그렇지만 결국 자신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스스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기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라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은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24)_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었을 듯

냉정한 이성과 처절한 열정을 갖고 살아간 시대적 거장들의 숨결이 행간마다 녹아있다(25)

2000년 전이라는 시간적 의미로 볼 때, 정말 이 정도로 완벽한 체제를 갖춘 역사서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된다(27)_사마천으로서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얼마나 많은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고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의 절박함은 2000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어받아 축적한 그것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잘 세공된 그의 재능은 그 절박함에 무게를 실어주었음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절대 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 즉 사마천의 역사를 보는 태도가 다른 역사서와 아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 백이 열전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총괄적인 입장을 자신을 빗대어 쓴 것이다(60)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66)_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와 공자가 거기 있었던 이유, 사마천이 또 그랬던 이유는 같다. 안심이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읽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을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66)_이름..그렇게 중요한가? 역사적 평가는 순전히 결과론적인 부분. 동시대인들의 평가도 관리하기 어려운데 먼 후세의 눈을 의식하여 현재의 행동을 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해 보인다. 난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을 수 밖에 없겠다.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더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에 기대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67)

2. 관․안 열전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이 물으면 바르고 신중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을 때에는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였다. 임금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면 그 명령을 따르지만 올바르지 않을 경우에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75)_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안다. 그러고도 명제상으로 칭송받으니 참으로 운좋은 사람이구나..

저를 알아주면서도 예의가 없다면 진실로 죄인의 몸으로 있는 편이 낫습니다(75)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는 마음가짐이었으리라!(77)

3. 노자․한비 열전

도가 사상은 군주 권력의 전제정치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저항을 나타낸 것(79)_그래서 끌리나보다. 내 지복의 영역이 세상이 허락하는 범위밖에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니까..그나마 제일 멋진..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런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81)_공자도 이런 소리를 듣는구나..결국 그래서 공자가 마지막까지 뜻을 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공자의 이상이 세상의 길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세상의 길을 바꾸려 했던 무모함이 결국은 공자 스스로를 상하게 함을 지적하고 싶었던 걸까?

노자는 도와 덕을 닦고 스스로 학문을 수겨 헛된 이름을 없애는 데 힘썼다(82)_나는 아직도 화내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아니라고 우기고는 있지만 본질은 그렇다. 이젠 인정하자!! 똑바로!!!

노자는 하지 않는 것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83)

장자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으므로 왕공이나 대인들에게 등용되지 못했다(84)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84)_50%이해, 50% 이해 안감. 이기적이라는 생각.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된다(88)_직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유세란 결국 영혼을 파는 것 아닌가?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 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89)_결국 자기사람이라는 확심을 주어야한다는 말인데..쩝..쓸 데 없다고 믿는 의전이 결코 쓸 데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어렵다..나는 못할 것 같다..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90)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91) ★★★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이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91)_내가 군주라도 그렇다. 맞는 말인 거 알아도 빈정상해가면서 들을 필요가 있겠는가? 같은 말을 더 이쁘게 해줄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믿고 있다면 더더욱.

한비가 <세난>편을 짓고도 스스로는 재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플 뿐이다(92)_나도 슬프다..지혜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그러나 한편으론 제 한 몸 화를 면하기만 구한다면伏地不動 이상의 처세가 또 있을까? 아예 숨도 안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심은 하되 최선을 다한 후 처분은 달게 받겠다고 각오하는 편이 정신위생에 좋을 듯 하다.

4. 사마 양저 열전

장수란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집을 잊고, 군영에 이르러 군령이 확정되면 친척을 잊으며, 북을 치며 급히 나아가 공격할 때에는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100)_음..공자는 장수는 못되겠다..

병사들을 감동시킨 용병술, 얼마 뒤대부 포씨, 고씨, 국씨의 무리가 경공에게 양저를 헐뜯었다(102)_병사들이 감동할수록 정적들의 미움은 깊어간다니..답이 안나온다..답이..

5. 손자․오기 열전

오기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안목을 바탕으로 하여 용병 방법을 제시했다(105)

방연은 손빈이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두려워하고 시기하여 죄를 뒤집어씌었다. 방연은 손빈의 두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글자를 새겨 숨어 살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110)_음..인간이 싫다..

어지럽게 엉킨 실은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111)

결국 어린애 같은 놈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만들었구나(113)_이 뿌리깊은 열등감..방연 그는 또 얼마나 괴로운 삶을 살아야 했을까?

오기는 그제야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119)_그렇다면 전문은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스스로 공을 낮추고 있었단 말인가?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략은 실로 절묘했으나, 그에 앞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앙을 막지는 못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일이구나(121)_어렵다..역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살 수 밖에..

6. 오자서 열전

나는 왕께 여러차례 간언했으나 왕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곧 오나라가 망하는 날을 보게 될 것이다. 네가 오나라와 함께 죽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138)

7. 중니 제자 열전

오랜 세월 제자들과 함께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봉건 제후들에게 유세하며 정치적 직책을 갈망하였지만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145)_아~

공자는 자신의 교육관을 유교무류(- 有敎無類 ♣ 有 : 있을 (유) / 敎: 가르칠 (교) / 無 : 없을 (무) / 類 : 무리 (류) 뜻 : ☞ 가르침이 있으면 종류가 없다. 가르침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다)에 두었다(145)

벼슬에 나가게 되면 도를 실행하고 물러나면 조용히 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너 뿐이구나!(148)

정치 : 문밖을 나서서는 귀중한 손님을 대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 신중하게 하라(150)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제물로 쓰지 않으려고 하여도 어찌 산천의 신들이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151)

머릿수만 채우는 보통 신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154)_잔인한 평가..

몸가짐을 겸손하게 하면 그 지방의 힘센 자들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너그럽고 올바르면 그곳 백성을 따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공손하고 바르게 정치를 하여 그 곳을 안정시키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154)

군자는 부모의 상을 입는 동안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듣기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게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157)_사마 양저가 들었으면 목을 베었을 것이다.

호련이다(159)_무슨 의미?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160)

용맹스러운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은 다른 나라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웁니다(164)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 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오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165)

자공은 남의 장점을 칭찬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남의 잘못을 덮어 주지는 못하였다(169)_‘나’, 단점을 덮어줄 만큼 깊지 못하다.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어지니 이를 어쩌리..

그림을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서 다듬는다는 뜻이다(170)

너는 도에 힘쓰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명성을 좇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171)_사마천이 후세에 이름을 남기려는 욕심만으로 궁형을 견디고자 했다면 그 역시 소인? 이것만으로는 명분이 안 선다. 뭔가 다른 것 필요하다.

많이 듣고 그중에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며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172)_실수투성이..경박스러움이 제 1원인. 서른 여섯..언제까지 어림을 핑계삼을 수 dT을 것인가?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172)_명심하자!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명망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없이 행동한다(173)_지금 내 단계..가슴속의 분노를 외면하고 방치하면 언제까지나 ‘통달’치 못할지니..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고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176)

봄옷이 새로 만들어지면 젊은이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예닐곱명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밑에서 바람을 쐰 다음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179)

나는 말만 잘하는 자를 미워한다(181)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벼슬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 말에 공자는 그자 도에 뜻을 두고 있음을 알고 기뻐하였다(181)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183)

마음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183)_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원만한 삶을 살 수 없을까봐..세상이 허락지 않는 새로운 것을 볼까봐..가슴은 이해하여 이미 좇으나 머리가 이를 따르지 못할까봐..그리하여 내 가슴과 머리가 서로 믿지 못하게 될까봐..이것이 두렵다. 이런 내부의 전쟁을 치러내는 것이 인생이라면 할 말은 없으나..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에 ..그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도 흔쾌히 발을 떼기는 어려운 것이다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智는 사람을 아는 것이다(184)_나는 둘 다 아니다. 어찌해야 사람을 알고 또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8. 상군 열전

왕께서 공손앙을 등용하지 않으시려거든 반드시 그를 죽여 국경을 넘지 못하게 하십시오(195)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성공적인 유세를 할 수 있다(196)_캠벨식으로 다시 풀자면 상대방의 욕망과 두려움을 알아야 성공적인 유세를 할 수 있다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199)_내가 ‘사람’들과 공명하지 못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 혹시나를 준비하는 것..그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199)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200) ★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聰이라 하고 ,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强이라고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순 임금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207)

-위 아래의 이해관계를 지혜롭게 조정하여 상생의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상군은 타고난 성품이 잔인하고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212)_그가 고치려고 노력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타고난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9. 소진 열전

앞부분은 소진이 계속 유세에 실패하여 실의에 빠진 모습과 뒷날 유세에 성공하여 득의한 모습을 생동감있게 대비시킴으로써 문학적 색체를 더했다(215)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_공부의 목적이 벼슬과 영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천 리 밖의 근심을 버리고 백리 안의 근심부터 해결하라(218)_알겠니?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을까?(238)_좋단 얘기냐? 나쁘단 얘기냐?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굶어 죽는 것과 똑같은 해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240)

신을 더욱 아껴주셔야 합니다(242)_절절하다..

교만한 군주는 반드시 利를 좋아하고 멸망하는 나라의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한다(249)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배나 비싸고, 월나라 왕 구천은 일찍이 회계산으로 쫓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일입니다(252)

10. 장의 열전

싸울 때는 명분과 실속을 모두 얻어야 한다(268)

12. 양후 열전

양후의 공과 권력이 커져 가면서 범저의 비방을 받고 소왕과 사이가 멀어지더니 결국 울분에 차 살다가 죽었다. 그래서 사마천은 논찬 부분에서 인생무상을 언급한다(331)

그는 부유하고 존귀함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범저 한 사람의 탄핵으로 신분이 꺾이고 권세를 빼앗겨 근심과 번민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하물며 객경이야 어떠하겠는가?(342)

14. 맹자․순경 열전

맹자는 공자 학설의 단순한 계승자라기 보다는 유가 사상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유가 사상을 더욱 드러내고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 사람으로 맹자를 이어 유가 사상을 더욱 체계화시킨 대표 인물이지만 맹자의 사상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해야 한다. 순자가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예’를 기초로 해서 계층간의 불화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361)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고 ‘아!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라고 탄식하지 않을 적이 없다(363)_나라를 이롭게 하려는 욕심이 사욕이라면 정당한 욕심이 되려면 그 유익의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할지..

공자가 진이나 채에서 굶주려 얼굴빛이 창백해졌던 일이나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곤욕을 치른 것 같은 일이 있겠는가?(367)

처음에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춘 뒤에 바른길로 가게 했다(367)

15. 맹상군 열전

사람의 운명은 어디로부터 받는가?(377)

맹상군은 신분이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과 똑같이 예우해 주었다(380)

맹상군이 손님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잘 대우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맹상군과 친하다고 생각하였다(381)

술과 소를 많이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뿐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ㅇ벗는 빛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은 의심나는 부분이 있습니까?(393)_말 잘한다..

살아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397)

빈객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겼다(398)_그랬담 다행이지만..내 스타일은 아닌 듯 싶다.

16. 평원군․우경 열전

사마천은 평원군이 다른 사람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 이웃나라에 명망을 떨친 점에서 ‘평원군은 혼탁한 세상에서 새가 하늘 높이 날 듯이 재능과 지혜가 있는 훌륭한 공자’라며 칭찬(401)

사마천은 구차한 삶을 감추고 발분하여 글을 지었기 때문에 우경을 기록한 부분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401)

애첩을 죽여 신의를 지킨다(403)_미쳤다..

서로 다투어 선비를 정성껏 예우하였다(404)_장수가 군사를 모으듯?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른 수는 많다면 천명이 되었겠고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하였다. 모 선생은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이나 대려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모 선생의 세치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409)

왕의 땅은 끝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417)

이익에 사로 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421)_분별의 종류를 옷으로 비유하자..속옷부터..외투까지..

우경에게 고통과 근심이 없었다면 책을 지어 후세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422)_사마천은 고통이 있었기에 <사기>를 저술했던 걸까? 역사서술이라는 지복의 샘을 갖고 있었기에 그 고통을 다 견뎌낼 수 있었던 걸까?

17. 위공자 열전

빈객들로부터 충성과 존경을 얻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425)

어진 사람을 얻으려면 정성을 다라하(427)_정성은 아깝고 사람만 탐난다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왕은 공자가 어질고 능력있음을 꺼려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428)_쯧..

일일이 답례하진 않은 까닭은 하찮은 예의 같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공자께서 위급한 처지에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제가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434)_장엄한 예의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436)

신릉군만이 깊은 산과 계곡에 숨어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은 것(441)_분별에 매여 정말로 귀한 가치를 놓치지 않았다.

18. 춘신군 열전

말년에는 권세와 부귀를 지키려다 이원의 간사한 음모에 걸려 비참하게 살해된다(443)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인재를 계속 받아들였기 때문이다(443)_쓰고 버려질 것을 알면서도 인재가 모여들었다는 것은 당장에 주어지는 안락이 충분히 커서 뒷날의 걱정을 잊게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여러나라를 두루 다니며 배워서 보고 들은 것이 넓었으며(445)_경험이 중요해..역시..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446)

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447)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뒤에 올 재난을 가볍게 여겼습니다(447)

다른 사람이 무언가 마음에 두고 있으면 내 마음으로 그걸 헤아릴 수 있다(448)

늙어서 사리 판단에 어두워진 탓이리라.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461)_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지막 순간까지 총기를 잃지 말아야한다는 말인가보다 했으나..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전장에 나오면 죽기전에는 그 곳을 벗어날 길이 없지 않았을까? 만약 나였더라면..이제는 전쟁터가 지긋지긋하지만 돌아갈 다른 방법을 모른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 칼이 누구의 칼인들 마다할 여유가 있을까? 왠지 그런 느낌이다.

20. 악의 열전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가깝다는 이유로 봉록을 주지 않고 공로가 많은 자에게 상을 주며, 능력있는 사람에게 그에 맞는 일을 맡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재능을 살펴 관직을 주는 이는 공적을 이루는 군주이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사귀는 이는 이름을 남기는 선비입니다(514)_무지하게 당연하지만 또 무지하게 드문 일..

신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잘 모르지만 왕의 명령을 받들고 가르침을 받으면 다행히 큰 허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여 명을 받고 사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515)

자서도 두 군주의 기량이 다름을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양자강에 던쳐지는 처지가 되도록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것입니다(516)_그래서 사람이었던 것이다.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516)_명심하자!

21. 염파․인상여 열전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위로 하기 대문이요(533)_멋지다!! 제일 멋지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 인상여의 문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비천한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533)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가 괄을 장군으로 삼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는 파멸을 당할 것이오(538)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릅니다. 부디 왕께서는 제 아들을 보내지 마십시오(539)_이 엄마의 마음은 또 뭐냐?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또 절대 이해가 안 되기도..

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배 중에 어떤 이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에 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545)_멋지다!! 역시 인상여가 최고!!

24. 굴원․가생 열전

인간 운명의 극적인 성공과 실패라는 분위기로 인해 심각한 회의와 절망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있다. 거기에는 인간사에는 영원불변하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라공 있었다(583)_슬픔의 원인..현실 자체가 왜곡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땐 목숨걸고 바로 잡던지 아니면 현실을 버리고 살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가생도 높은 식견을 갖고 있었으며,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으나 여의치 않아 슬픔만 끌어안고 죽었다(584)_슬픔은 중요한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생기는 원망에서 비롯되나보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기억력이 뛰어나며 잘 다스려질 때와 혼란스러울 때의 일에 밝고 글을 쓰는 능력이 탁월했다(585)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원이 <이소>를 지은 것을 이처럼 분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586)_그렇다고 재능이 억울함의 원인이라는 성급한 일반화는 자제하자! 재능있는 많은 이들이 원통한 사연에 휘말려 있는 듯 보이나 실은 무능하고 억울한자는 그저 잊혀졌기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재능있는 자들은 그 지혜로 자신들의 원통함을 호소할 기회라도 가질 수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그저 그런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그냥 사라져갔다. 혹여..재능이 불행의 원인이라 성급히 결론내고 타고난 재능을 일부러 방치하려는 마음먹을까봐 굳이 짚고 넘어가는 뜻을 새기기 바란다.

사람들의 군주된 자 가운데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어질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충신을 구하여 자신을 위하도록 하고, 현명한 자를 등용하여 자기를 돕도록 하려고 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거듭 생기고, 훌륭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라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충신이라는 이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이가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590)

사람들이 각기 마음속으로 생각은 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아주 명확하게 대답했다(597)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홀로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말하랴(599)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602)

굴원이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 다른 제후에게 유세하였더라면 어느 나라인들 받아들이지 않았으랴마는 그 스스로 이렇게 생을 마쳤구나. 그러나 <복조부>를 읽으니 그는 삶과 죽음을 한가지로 보고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가볍게 여겼으나,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 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607)

25. 여불위 열전

아름다운 얼굴로 남을 섬기는 자는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면 사랑도 시든다(615)

소문이란 겉으로는 인덕을 좋아하는 듯하지만 실제 행동은 오히려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어진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면서도 그에 대한 의혹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관리가 될 때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하고 집에 있을 때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한다(622)_스스로 이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경계하자!

26. 자객 열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623)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631)

어머니께서 이제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는 앞으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리라(635)_알아준다는 것이 이리 중요하단 말이냐?

섭정이 오욕을 무릅쓰고 시장 바닥에 몸을 던진 것을 늙은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제가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천수를 누리다 돌아가시고 저도 이젠 시집을 갔습니다 일찍이 엄중자는 제 동생의 인물됨을 살펴 알고는 곤궁하고 천한 지위에 있는 그와 사귀었으니 그 은택이 매우 두텁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선비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섭정은 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 이름ㅇ르 없앨 수 있겠습니까?(638)_아름답다!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유분방했다(640)_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내 마음은 근심으로 어지러워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642)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642)

27. 이사 열전

권모술수만으로 출세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했음(660)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662)

28. 몽염 열전

몽염은 이름있는 장수로서 이러한 때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백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711)

30.위표․팽월 열전

용 두 마리가 싸울 땐 기다려야 하듯이(743)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자들이지만 오직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751)

31.경포열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지 뒷날을 생각하고 백성 만대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닙니다(768)_<사기>는 백성 만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명예욕을 위해?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770)

32. 회음후 열전

한신은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773)_그렇게도 현명하던 한신이 왜? 교만했던 걸까? 아님 운명적으로 중요한 센서가 고장나 있었던 걸까?

군사를 잘 쓰는 사람은 이쪽의 단점을 가지고 적의 장점을 치지 않고, 이쪽의 장점을 가지고 적의 단점을 칩니다(790)

생각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고 계획을 세워도 써주지 않았습니다(797)_이것이 얼마나 속터지는 일인지 나는 안다. 한신은 유방의 은덕에 죽을 줄 알면서도 차마 배신의 길을 선택할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우환이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801)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802)

한신은 망설이면서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다(804)_이해할 것 같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811)_이것은 좀 배워야 할 듯

33. 한신․노관 열전

절대 권력의 틈을 비집고 사회의 이목을 끌어보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희생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모습(815)

대대로 덕을 쌓고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831)_대대로 안 쌓고 당대에 빛을 보면 다 권모술수인건가? 사마천 이럴 땐 살짝 편파적이다.

35. 번․역․등․관 열전

역사를 기록뿐 아니라 현장 체험을 통한 검증 과정의 일환으로 파악하였다(845)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를 가듯이 한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을 알았겠는가?(869)

3. ‘내가 저자라면’

솔직히 사마천, 그저 놀라울 뿐이다. 부친의 자료를 받아 4년동안 별도의 준비기간을 거친후 집필하는데만 10여년. 자료 수집과 실제 답사 등 <사기> 집필을 위한 그의 노력은 책 사이사이에서 간간히 엿보는 것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할 만한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나오는 책의 홍수속에서도 자신 책한권 갖기가 맘처럼 쉽지 않은 현실을 알고 있기에 그의 업적이 더 대단해 보이지도 모르겠다. 태사령이라는 지위로 인해 궁궐자료와 자료답사, 전문가 취재의 기회를 보통사람보다 쉽게 가질 있었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 방대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해석해낸 그의 재능과 노력을 어떻게 감히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번역서로서도 상당히 흡족한 편이었다. 우선 중국역사와 <사기>열전의 접점을 효과적으로 개관하는 해제를 통해 충분한 예열단계를 거침으로써 자칫 생소할 수 있는 분야에 무리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史詩를 담은 <사기>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史聖 사마천은 누구인가?’ ‘사마천이 <사기>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정말 궁금한 질문에 친절히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한 해제만으로도 책에 대한 호감도가 확 높아질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는 서문역할을 해야 할 ‘태사공 자서’가 옛책의 구성 관례상 맨 나중에 위치하고 있는 한계를 보완한 것으로 역자와 편집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뿐만아니라 각 편의 앞에 덧붙여진 해제은 그 인물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갖는 위치와 이해를 돕기위해 함께 읽으면 좋은 내용을 친절히 소개함으로써 독자가 보다 중국 역사속 인물들과 보다 친숙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소제목만으로도 그 인물의 면모를 충분히 짐작케 할만큼 적절한 제목추출도 참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중국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없이는 감히 시도하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들 속에서도 굳이 보완한 점을 찾으라면, 한눈에 보기 쉬운 역사 연대표와 인물 연표를 정리해 첨부했다면 보다 친절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별책부록정도로 정리해놓으면 두권을 나란히 펴놓고 즐기는 사이에 산산 조각나 떠다니는 중국 역사속 나라간․ 인물간의 관계가 하나하나 퍼즐처럼 쫘~악 맞춰지지는 않을까 욕심을 내보는 것이다.

특별히 감동적인 장절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66)_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와 공자가 거기 있었던 이유, 사마천이 또 그랬던 이유는 같다. 안심이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읽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을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66)_이름..그렇게 중요한가? 역사적 평가는 순전히 결과론적인 부분. 동시대인들의 평가도 관리하기 어려운데 먼 후세의 눈을 의식하여 현재의 행동을 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해 보인다. 난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을 수 밖에 없겠다.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이 물으면 바르고 신중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을 때에는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였다. 임금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면 그 명령을 따르지만 올바르지 않을 경우에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75)_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안다. 그러고도 명제상으로 칭송받으니 참으로 운좋은 사람이구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런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81)_공자도 이런 소리를 듣는구나..결국 그래서 공자가 마지막까지 뜻을 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공자의 이상이 세상의 길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세상의 길을 바꾸려 했던 무모함이 결국은 공자 스스로를 상하게 함을 지적하고 싶었던 걸까?

한비가 <세난>편을 짓고도 스스로는 재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플 뿐이다(92)_나도 슬프다..지혜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그러나 한편으론 제 한 몸 화를 면하기만 구한다면 伏地不動 이상의 처세가 또 있을까? 아예 숨도 안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심은 하되 최선을 다한 후 처분은 달게 받겠다고 각오하는 편이 정신위생에 좋을 듯 하다.

마음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183)_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원만한 삶을 살 수 없을까봐..세상이 허락지 않는 새로운 것을 볼까봐..가슴은 이해하여 이미 좇으나 머리가 이를 따르지 못할까봐..그리하여 내 가슴과 머리가 서로 믿지 못하게 될까봐..이것이 두렵다. 이런 내부의 전쟁을 치러내는 것이 인생이라면 할 말은 없으나..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에 ..그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도 흔쾌히 발을 떼기는 어려운 것이다.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智는 사람을 아는 것이다(184)_나는 둘 다 아니다. 어찌해야 사람을 알고 또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늙어서 사리 판단에 어두워진 탓이리라.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461)_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지막 순간까지 총기를 잃지 말아야한다는 말인가보다 했으나..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전장에 나오면 죽기전에는 그 곳을 벗어날 길이 없지 않았을까? 만약 나였더라면..이제는 전쟁터가 지긋지긋하지만 돌아갈 다른 방법을 모른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 칼이 누구의 칼인들 마다할 여유가 있을까? 왠지 그런 느낌이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원이 <이소>를 지은 것을 이처럼 분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586)_그렇다고 재능이 억울함의 원인이라는 성급한 일반화는 자제하자! 재능있는 많은 이들이 원통한 사연에 휘말려 있는 듯 보이나 실은 무능하고 억울한자는 그저 잊혀졌기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재능있는 자들은 그 지혜로 자신들의 원통함을 호소할 기회라도 가질 수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그저 그런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그냥 사라져갔다. 혹여..재능이 불행의 원인이라 성급히 결론내고 타고난 재능을 일부러 방치하려는 마음먹을까봐 굳이 짚고 넘어가는 뜻을 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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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03 15:25:45 *.236.3.241
독서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

춘추전국시대의 외교는  직설적이고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은데, 오늘날과 비교하면
어떠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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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5.03 17:14:01 *.53.82.120
글쎄요..
실제로 높으신 머릿속엔
훨씬 더 다차원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것도 같고..
그러네요.

생각이 무거운 월요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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