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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일 22시 4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은 누구인가?

 

사마천.jpg사마천(기원전 145?~90?)의 자는 자장, 성은 사마, 이름이 천으로 섬서성 용문시 하양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사마담은 사마천이 7세 때 한 무제의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된 이후 무릉에 거주하였다.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어린 시절부터 고전 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쳤다. 사마천은 10세 때 아버지를 따라 수도인 장안에 와서 동중서와 공안국에게 학문을 배웠다. 20세 때 여행을 시작하여 낭중(황제의 시종)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 산둥, 허난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기원전 111년에는 파촉에 파견되었고, 기원전 110년에는 아버지 사마담이 그에게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후 2년이 지나 무제의 태사령이 되었고 태산 봉선(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수행하여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에서 크게 견문을 넓혔고, <사기>를 저술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자 기원전 108년 태사령이 되면서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금궤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여 기원전 104(무제 태초 원전)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태초력의 제정에 참여한 직후 <사기>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기원전 99년 전한의 명장 이광의 손자 이릉이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때 사마천은 홀로 무제 앞에 나아가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옥에 갇힌 그에게 세 가지 형벌 중에 하나를 고를 권리가 주어졌다. 첫째 법에 따라 주살될 것, 둘째 돈 50만 전을 내고 죽음을 면할 것, 셋째 궁형(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감수할 것이었다. 사마천은 두번째 방법을 취하고 싶어 했으나 귀족이 아니었던 그가 그런 거액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나이 48세 되던 해 마지막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기원전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이 되었다. 중서령은 황제의 곁에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었지만 환산신분으로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으며 운신의 폭도 넓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마천은 마침내 <사기>를 완성했다. 사기 완성의 정확한 연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기원 전 91년 사마천이 친구인 임안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서한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서한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옥에 갇히고 궁형에 처한 경위와 그에 더욱 분발하여 사기를 저술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은 심경을 고백하였다. 이 편지 <보임안서>의 내용으로 보아 <사기>는 이 시기(기원전 91)에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기>의 규모는 본기 12, 연표 10, 8, 세가 30, 열전 70권 모두 130 52 6 5백자에 이른다. 사마천은 <사기>가 완성된 2년 후에 사망하였다. 사마천은 자신의 저서를 <태사공서>라고 불렀지만 후한시대에 들어와 <사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저는 천하의 산실된 구문을 수집하여 행해진 일을 대략 상고하고 그 처음과 끝을 정리하여 성패흥망의 원리를 살펴 모두 130편을 저술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초고를 다 쓰기도 전에 이런 화를 당했는데, 나의 작업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타까이 여긴 까닭에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명상에 보관하였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촌락과 도시에 유통되게 한다면 이전에 받은 치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만 번 주륙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지혜로운 이에겐 말할 수 있지만 속인에겐 말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마천, ‘임안에게 보낸 편지(모안임서)’ 중에서)

 

사마천은 어떤 시대에 살았나?

 

오랜 분열의 춘추전국 시대를 마감시킨 진 제국은 강권통치에 바탕을 둔 급격한 통일책이 실패로 돌아가며 무너졌다. 최후의 승자 한 고조 유방은 진 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파란을 피하고 안정에 치중했다. 무위를 중시하는 황노 사상이 전한 초기를 특정짓는 이념이었다. 7대 황제 무제 유철(재위 기원전 141~87)은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했다. 무제는 흉노를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공격, 압박하고 서방 교통로를 확보했으며 국내 제후의 권력을 사실상 소멸시키고 민간의 유력자들을 억압하여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였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이 국가 재정 위기를 초래하자 소금과 철에 대한 전매 제도를 시행하고 증세를 단행함으로써 백성의 부담이 무거워졌다. 무제는 절대적인 황제권을 확립시키면서 권력의 중앙 집중화를 꾀하고, 유교를 국가공식이념으로 중시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법가 사상에 바탕을 두어 통치했다.

 

무제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등용된 인물들은 지방에서 추천된 인재들 가운데 황제 자신이 선발한 새로운 관료 집단이었다. 그들은 상황에 따른 개인적 판단을 중시하며 법률의 유연한 적용을 지향하던 예전의 통치방식 대신 법률을 엄정하게 적용하는 것에 주안점을 주었다. 이러한 정치, 사회, 사상적 변화를 무제 시대의 관료로서 직접 겪음 사마천은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면서 먼 과거로부터 무제 시대에 이르는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지역까지 포괄하는 역사, <태사공서>를 저술한 것이다.

 

사마천은 왜 <사기>를 썼나?

 

이에 대한 답은 전서의 서문 격으로 <사기 열전>의 맨 마지막에 둔 태사공 자서에 마련되어 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발분 의식의 소산이다. 궁형을 당한 것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구차한 행위가 아니라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백이열전에서 천도시비(하늘의 도는 옳은가 그른가?)의 질문을 제시한 것은 백이와 숙제의 입장이 마치 자신과 비슷하다는 데서 오는 동류의식을 반영한다. 또한 치욕을 견디고 세인들에게 이름을 떨친 관중이나 오자서, 경포 등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들의 전기를 따로 마련한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둘째, 역사적 사실의 포폄(옳고 그름이나 선함과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과 직서(있는 그대로 서술함)이다. 이는 그의 태사공자서에서도 드러나지만 공자가 <춘추>에서 서술한 방식에 바탕을 두고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여 미언대의(작은 말 속의 큰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춘추>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마천의 생각은 부친 사마담의 견해와 일치되는 것이며,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난 당시에 공자의 사상을 누군가가 계승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비롯되었다.

 

이밖에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순수하게 개인의 자격으로 저술에 임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태사령이란 본래 궁중의 예의 제도를 관장하고, 천문 역법에 따라 해가 끝나면 새 역법을 바치며, 나라에 큰 행사가 있으면 길일과 기일을 가려 올리는 직책이다. 따지고 보면 이 직책은 역사 기록과 별반 관련이 없으므로 저술의 직접적인 동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태사령으로 있으면서 궁권에 소장된 모든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자료 수집을 위하여 유적을 답사할 수 있었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취재할 기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중국 고대 역사서의 세 가지 편찬 체제인 편년체, 기사본말체, 기전체 가운데 기전체의 효시가 <사기>이다. 기전체은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먼저 시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행적을 중심으로 당대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마천은 자신이 기술하고자 하는 시대의 사회 구조와 그 내부의 발전상, 인물과 사건의 제도 등 그 사회가 가진 제반 현실에 역사적 해석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사마천은 통사를 쓰면서도 자신의 시대인 한대를 다루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사료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역사의 발전적 흐름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주었기에, 이 책이 오늘날까지도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록한 역사 <사기>가 후대에 24사의 필두로 거론되게 된 것은 중국 전설 시대부터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한 무제에 이르는 유일한 통사체 역사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이다. 또 기전체라는 형식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의 정확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절대 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 즉 사마천의 역사를 보는 태도가 다른 역사서와 아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더하여 <사기>가 문학서로서의 색채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기>는 또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보다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약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사기>를 생명력 넘치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본위의 역사를 일게 만든 작가의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인물들을 현재에 살이 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기>가 폭넓은 독자층을 끌어들이는 까닭은 <사기>가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세계관과 인생관 위에 개인적인 비극을 역사 의식으로 승화시켜, 시대를 살다 간 인물을 조망해 나갔기 때문이다.

 

일반 역사서와 달리 <사기>에 적지 않은 주관적 서술이 보이는데, 사마천 자신의 사료 비판 능력과 어우러져 탄탄한 역사 서술 체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사마천의 혼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기>의 서술 방식에는 냉정한 이성과 처절한 열정을 갖고 살아간 시대적 거장들의 숨결이 행간마다 녹아있다.

 

<사기>에서 사료의 취사 선택 범위는 어디인가?

 

시간적으로는 전설의 황제시대부터 한 무제까지 2000년을 포괄하지만, 이중 과반수가 한대의 것이다. 한 무제는 전한의 제5대 황제로서 고제, 혜제, 문제, 경제 등 네 사람의 통치를 거치면서 중앙 집권 체제가 확고해졌을 때의 통치자이디. 이 시기는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하면서 학술이 번성했다. 따라서 각 분야마다 대표적인 학자들이 탄생했으니 위대한 경학가요 위대한 정치 평론가인 동중서, 문장가 사마상여, 군사 전략가 위청과 곽거병, 그리고 천문학자 당도, 탐험가 장건, 음악가 이연년 등 걸출한 인물들이 무제의 수하에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기>가 무제 때 탄생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상고문헌은 전적으로 경전에 기댔고, 당대 자료는 대체로 문헌 검증과 현지 답사 여행 등을 통한 체험에서 나왔다.

 

<사기열전>을 읽기 위해 알아야 할 주요 개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춘추전국시대란?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주나라 이후 진한 건국 이전까지의 중국 고대의 변혁시대를 말한다. 각국의 제후 왕들이 천하의 패권을 쥐려는 야심을 품고 서로 죽고 죽인 혼란기였다. 끊임없이 동쪽 진출을 모색한 서쪽의 절대 강자 진나라와 남방의 지배자 초나라, 그리고 북방의 실력자 연나라, 이렇게 삼국이 큰 흐름을 주도했고, 이들 틈바구니에 낀 조, , , 제 이 네 나라는 국가 보존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고심했다.

 

기원전 770, 주왕조가 뤄양으로 천도하기 이전의 시대를 서주시대, 이후를 동주시대라고 한다.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뉘어진다. 춘추시대는 주왕조가 도읍을 옮긴 때부터 진나라의 대부인 한, , 조 삼씨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할 때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BC 403) 전국시대는 그 이후부터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BC221년까지이다. 춘추는 공자가 엮은 노나라의 역사책인 <춘추>에서 유래되었고 전국은 한 나라 유향이 쓴 <천국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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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란 무엇인가?

제후란 중국의 주나라가 각 지역을 같은 성의 형제나 친척 또는 공신에게 나누어준 사람을 말한다. 주나라 천자로부터 각 지역을 분봉받은 제후들은 그 지역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제도를 봉건제도 또는 분봉제도라고한다. 주나라 봉건제도는 쌍무계약으로 이루어진 서양 중세의 봉건제도와는 달리 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주나라가 제후에게 땅과 인민을 나누어 준 이유는 주 왕실의 손발과 울타리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주나라 초기에 분봉된 제후국의 수는 모두 71개국이었다. 그 중 주나라 왕실과 같은 성, 즉 희()성을 가진 동성제후는 53개국이었으며, 나머지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 즉 이성제후였다.

 

천자에 대한 제후의 의무는 많았으나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후 중에는 제후의 자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나라 천자의 요청에 따라 주 왕실의 경사를 겸하여, 자신이 주나라 왕의 신복임을 표시하였다. 둘째, 군대를 파견하여 주 왕실을 지키거나 주나라 천자를 수행하여 천자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를 토벌하여 천자의 권위와 공주로서의 지위를 보전했다. 셋째, 제후는 일정한 기간에 주나라 천자를 조근하고 업무에 대해 보고했다. 조근하지 않는 해에는 경과 대부를 파견하여 천자에게 문안했다. 넷째, 제후는 그 지역의 특산품을 주나라 천자에게 공납하고 노예도 바쳤다. 다섯째, 주나라 왕실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파견하여 주 왕실에 복역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을 쌓고 궁전을 짓는 일이었다.

 

주나라가 실시한 봉건제도는 제후에게 나누어 준 봉토의 부족과 혈연의식의 결여 등으로 서주 말기에 점차 붕괴되어 갔다. 봉건제도의 붕귀는 바로 주나라 왕실보다 제후들의 세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 왕실이 쇠퇴한 반면 제후들의 힘이 커진 시대였다.

 

[참고자료]

네이버 백과사전 사마천 http://100.naver.com/100.nhn?docid=83251

<사기열전> 저자 소개와 해제

네이버 캐스트 인물과 역사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610

네이버 백과사전 춘추전국시대 http://100.naver.com/100.nhn?docid=148687

네이버 백과사전 제후 http://100.naver.com/100.nhn?docid=749101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1. 백이열전

 

P59 이 편은 일흔 편의 열전 중 첫 번째 편으로 고국죽 군주의 두 아들인 백이와 숙제의 고매한 인품을 허유, 무광과 대조 또는 대비하여 그려나간다.

 

천도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면서 인간사의 불공정한 여러 형태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천도의 기본은 권선징악이지만 사회 현실을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아 착한 사람이 재앙을 입고 나쁜 사람이 복을 누리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아울러 겸향의 미덕을 강조하고 다툼을 꾸짖었다. 한나라 초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사이의 심각한 이권 다툼 속에서 백이와 숙제가 부귀영화를 마치 뜬구름에 비유하면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은 모습은 단연 돋보였을 것이다.

 

P60 고자는 인이란 사람다움이다.”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이다. 단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로부터 보면 은 인간의 본질을 가리키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의 실천 방법으로 효, , , , , 악을 제시했다.

 

P61 대체로 학자들이 기록한 책은 매우 많으나 믿을 만한 것은 육예 즉 육경(시경, 서경, 예기, 악경, 역경, 춘추)에서 찾을 수 있다. (중략) 요 임금은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여 순 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었다.

 

P63 백이와 숙제만은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응거하여 고사리를 뜯어먹으며 배를 채웠다.

 

P64 공자는 제자 일흔 명 중에서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안연은 늘 가난해서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P66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 더 그러나게 되었다. 안연은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공자라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2. 관안열전

 

P71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음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운)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P74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게 정치의 비책이다.

 

P75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

 

P77 군주가 잘한 점은 좇아 더 잘하게 하고 그 잘못된 점은 바로잡아 주어야만 군주와 신하가 서로 친해질 수 있다.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

 

P78 패도란 인과 의를 가볍게 보고 권모술수와 무력을 숭상하는 것으로 왕도와 상반되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제후국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안은 것도 제후들이 대부분 패도를 숭상하였기 때문이다.

 

3.     노자 한비 열전

 

P79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인으로 나이가 공자보다 많고 에 밝아 공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도가 사상은 끊임없는 전쟁과 불안정 및 권력과 지위 다툼으로부터 벗어나 은둔과 도피를 일삼는 철학이다.

 

P81 당신이 말하려는 그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P83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유가 학문을 내치고, 유가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역시 노자 학문을 내쳤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말 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노자는 하지 않는 것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한다.

 

P87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데 있다. (중략)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P88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P90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P91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든다고 하여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를 짓는다고 하여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니,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92 신불해와 한비는 모두 책을 지어 후세에 전했으므로 이를 배우는 자가 많다. 나는 다만 한비가 <세난>편을 짓고도 스스로는 재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플 뿐이다.

 

노자가 귀하게 생각하는 도는 허무이고, 무위 속에서 변화에 호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지은 책은 말이 미묘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장자는 노자가 말한 도덕의 의미를 미루어 풀어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쳤는데 그 요지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신불해는 스스로 힘써 명분과 실질에 적용시켰고, 한비는 먹줄을 친 것처럼 법규를 만들어 세상에 모든 일을 결단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였지만 너무나 가혹하여 은혜로움이 부족했다. 이들의 학설은 모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 가운데 노자의 학설이 가장 깊다.

 

성씨와 자의 의미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성씨(姓氏)

 

성씨는 사람의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이름 앞에 붙이는 표지로, 성은 혈족을 나타내며 씨는 그 성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성과 씨의 구분이 없어져 성씨가 성을 높여서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초기 발생 단계에서 성과 씨는 엄격히 구분된 개념이었다.

 

한국의 성씨 제도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중국에서는 성이 먼저 나타나고 뒤에 씨의 구별이 나타났다. ()여자가 낳은 자녀들이라는 글자의 의미처럼 모계 씨족사회에서 동일한 모계 혈족을 구분하기 위해 나타났다. 대문에 ()’, ‘()’, ‘()’, ‘()’등 초기의 성들에는 계집 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많았다. 이러한 성은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부계 혈통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종족에 따라 자신들의 거주지나 숭배물 등을 성으로 삼기도 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종족의 인구가 늘고 거주 지역이 확산되자, 하나의 성에서 갈라진 지파는 새로운 거주지나 조상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을 구별할 새로운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하나의 성에서 갈라진 계통의 구별을 나타내는 칭호를 씨라고 한다.

 

이러한 성과 씨의 구별은 하, , 3대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당시 귀족들은 분봉 받은 국읍의 지명이나 관직, 조상의 자나 시호, 작위, 거처 등을 씨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부자 사이에도 성은 같지만 씨가 다른 경우가 생겼고, 성이 다른데도 씨는 같은 경우도 나타났다. 그래서 성이 같으면 결혼을 하지 않았고, 씨가 같아도 성이 다르면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종법 제도가 무너지면서 성시제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종족의 유대와 연결 관계가 약해지면서 씨가 성처럼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전국시대 이후에는 성과 씨의 구별이 점차 사라져 하나의 의미로 쓰였으며 백성이 민중으로 통칭하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참고] 네이버 백과 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91667

 

()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을 말한다. 중국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본명이 태어났을 대 부모에 의해 붙여지는데 비해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이게 되며 자가 생기면 본명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을 휘명이라고도 한다. 흔히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쓴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도 자를 사용하나 손아래 사람인 경우, 특히 부모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는 본명을 사용한다. 공자는 본명을 구, 자를 중니라고 했는데 중()은 아우라는 뜻으로 공자에게는 형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지었고, 니는 그가 이산에 기도를 드려 낳은 아들인 것에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31083

 

4.     사마양저열전

 

P97 춘추전국시대에 전쟁은 필요악이었다. 법가에서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통하여 전쟁을 없애는 이전거전이론을 제시했다.

 

5.     손자 오기열전

 

P105 손무는 전투 현장에서 효과적인 용병술을 강조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오기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안목을 바탕으로 하여 용법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P112 승리를 좇아 백 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상장군을 잃게 되고, 승리를 좇아 오십 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겨우 절반만 목적지에 이른다.

 

P116 예전에 오공께서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공이 지금 또 제 자식의 종기를 빨아 주었으니 이 아이도 어느 때 어디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리 내어 우는 것입니다.

 

P121 실천을 잘 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6.     오자서 열전

 

P123 어찌보면 사마천도 궁형을 받고 인고의 세월을 살았으니 오자서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사마천을 비분강개한 필치로 오자서를 위한 열전을 만들어 오자서야말로 작은 의를 버리고 큰 부끄러움을 씻었다고 칭찬했다.

 

P138 <서경> 반경 편의 고에 옳고 그른 것을 거스르고 공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목을 베어 이 땅에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P143 원한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독은 정녕 심하구나! (중략)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그 뜻이 참으로 슬프구나! (중략) 그는 모든 고초를 견뎌 내어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7.     중니 제자 열전

 

P145 기원전 500년부터 250년에 이르는 기간은 제자백가의 전성 시대이다.

 

공자는 정치가로서의 삶에는 실패했지만 무관의 제왕으로 불릴 만큼 교사로서의 역할에서는 유례없이 성공을 거두었다. 공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그의 나이 서른 살을 전후로 하여 제자를 모아 수업을 했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교육관을 유교무류에 두었다.

 

P147 공자는 내 문하에서 학업에 힘써 육예에 통달한 사람은 일흔일곱 명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들은 모두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덕행으로는 안연과 민자건과 염백우와 중궁이 있고, 정치로는 염유와 계로가 있으며, 언변으로는 재아와 자공이 있고, 문학으로는 자유와 자하가 특히 뛰어났다. 그러나 전손사는 생각이 치우친 데가 있고, 증삼은 어리석으며, 고시는 우직하고, 중유는 거친 데가 있었다. 안회는 끼니를 자주 거를 만큼 가난하였으며, 단목사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재물만을 모았지만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했다.

 

공자가 존경한 인물로는 주나라의 노자, 위나라의 거백옥, 제나라의 안평중, 초나라의 노래자, 정나라의 자산, 노나라의 맹공작 등이 있었다. 그리고 공자는 장문중, 유하혜, 동제백화, 개산자연등을 자주 칭찬하였다.

 

P148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바른 예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벼슬에 나가게 되면 도를 실행하고 물러나면 조용히 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너뿐이구나.

 

P149 안회라는 자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P150 문밖에 나서서는 귀중한 손님을 대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 신중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대신들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P152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P153 백성이 해야 할 도리를 앞장서서 하고, 백성의 일을 위해 몸소 애쓰는 것이다.

 

군자는 의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 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자로는 좋은 말을 한 가지 듣고 아직 실행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좋은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자로의 학문은 지고한 경지에 올랐지만 아직 오묘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P156 내가 자로를 제자로 삼은 뒤로 남의 험담을 듣지 않았거늘.

 

P157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 년 상은 세상의 합의된 예의다.

 

P159 현명한 자들은 그 가운데서 큰 것을 알고, 현명하지 못한 자들은 작은 것을 압니다.

 

P160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P161 제가 듣기에 나라 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강한 적을 공격하고, 나라 밖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약한 적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P163 왕자는 속국의 후대를 끊지 않고, 패자는 적국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P164 용맹스러운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은 다른 나라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웁니다.

 

P165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을 꾀하는 데 큰 걱정 거리입니다.

 

P169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사람을 부리리 쉽다.

 

P171 는 지나친 데가 있고 은 미치지 못하는 데가 있다. (중략) 너는 도에 힘쓰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명성을 좇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P172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에 있는 것처럼 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P173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을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없이 행동한다.

 

P174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P176 나라에 도가 제대로 시행되는데도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다만 녹이나 먹고 있고, 나라에 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데도 벼슬자리에 연연하여 녹이나 먹고 있는 것이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이다.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 한다고 합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P178 흰 옥의 티는 갈 수 있지만,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

 

봄옷이 새로 만들어지면 젊은이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예닐곱명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 밑에서 바람을 쐰 다음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

 

P182 도가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도 천명이다.

 

어진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P183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P184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지는 사람을 아는 것이다.

 

P186 나는 군자는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고 부자에게는 보태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P187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숨기는 것이 예이다.

 

P191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일이다. 물이 깊으면 벗고 건너고, 얕으면 걷고 건너라고 했는데

 

고대의 다섯 제왕으로 황제, 전욱, 고신, , 순을 말한다.

 

8.     상군열전

 

P193 사마천이 <상군열전>을 설정한 것 자체가 상앙의 변법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일련의 강압적이고 전제주의적 조처로써 상앙은 진니라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부강하게 만들고 뒷날 천하는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 법가 사상 자체가 지식인을 탄압하는 전제주의적 성격을 지냈기 때문에 상항의 사상은 지식인과 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는 거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사마천도 그의 인물됨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

 

P199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악 제도를 좇지 않습니다.

 

성인은 백성의 풍속을 고치지 않고 교화시키며, 지혜로운 자는 법을 고치지 않고 다스립니다. 백성의 풍속에 따라서 교화시키면 애쓰지 않고도 공을 이룰 수 있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에 따라 다스리면 관리도 익숙하고 백성도 편안할 것입니다.

 

P200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예법의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

 

P206 어진 이를 추천하여 받드는 자는 번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불러 모아 왕 노릇을 하는 자는 몰락한다. (중략) 자격이 없는 자가 그 지위에 있는 것을 지위를 탐한다고 하고, 자기가 누릴 명성이 아닌데 그 명성을 누리는 것을 이름을 탐한다고 한다.

 

P207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이라고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천 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전 사람의 아부는 한 사람의 올바른 직언만 못합니다.

 

P208 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 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P209 <시경>에서는 쥐한테도 예의가 있는데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구나. 사람으로서 예의가 없으면 어찌 빨리 죽지 않을까?’하고 하였습니다.

 

P210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중략)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

 

P211 !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9.     소진열전

 

P215 사마천도 소씨 형제들이 지혜와 역량면에서 다른 사람을 능가했음을 인정하고 이 열전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바로 뒤편에서 보이듯 장의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는 비판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P218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소.

 

P225 현명한 군주는 의심을 끊고 비방을 버리고 떠도는 말의 흔적을 사라지게 하며 파벌의 문을 막는 데 뛰어나다고 합니다.

 

P228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

 

P231 <주서>에서는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P342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행동하고, 나아가 이루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합니다.

 

10.  장의열전

 

P264 장의가 그 아내와 이야기할 때 혀가 붙어 있는지 물어본 것은 혀가 없는 장의는 생각할 수 없으며, 세 치 밖에 안 되는 혀를 무기 삼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부귀를 좇던 당시 유세가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역사가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일 수 없는 일화들을 기록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P270 명분을 다투는 자는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을 다투는 자는 저잣거리에서 다툰다고 합니다.

 

신은 나라를 잘살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땅을 넓히는 일에 힘쓰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힘쓰며, 왕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덕정을 널리 펼치는 일에 힘쓴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가지 조건만 갖추어지면 왕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P275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P282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떼 편에 섰습니다.

 

P283 공이 크면 위험에 빠지기 쉽고 백성이 고달프면 윗사람을 원망한다고 들었습니다.

 

P287 진나라 군사가 산동 군사를 무거운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마치 힘센 오획이 어린아이와 싸우는 꼴입니다. 맹분이나 오획 같은 용맹스러운 무사들을 전쟁터로 보내 복종하지 않는 약소국을 치는 것은 마치 3만 근 무게를 새알 위에 내려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무사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P302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하자, 묵고 있던 여관의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리면서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잡아 먹으려 합니다. 먹어 봐서 맛이 좋으면 분명히 서로 다툴 것입니다.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테고, 서로 싸우게 되면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을 것입니다.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면 한꺼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다는 명성을 얻을 것입니다.

 

P305 삼진(, , 한나라)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두 삼진 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11.  저리자 감무열전

 

P307 진나라 혜왕의 척신(임금과 성이 다르나 일가인 신하)인 저리자에 대해서 호평한 것을 보면 사마천은 척신 정치를 그댜지 반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P309 저리자의 이름은 질이고 진나라 혜왕의 배다른 동생으로 어머니는 한나라 사람이다. 그는 우수갯소리나 행동을 잘하고 지혜도 풍부하여 진나라 사람들이 지혜주머니라고 불렀다.

 

P312 내가 죽으면 백 년 뒤에 이곳에 천자의 궁궐이 들어서서 내 무덤을 둘러쌀 것이다. 저리자 질의 집은 소왕의 무덤 서쪽, 위남의 음향 저리에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그는 저리자라고 불렀다. (중략) 진나라 속담에 힘은 임비요, 지혜는 저리자이다.’라는 말이 있다.

 

P317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수레를 뒤엎는다고 합니다.

 

P318 세상 사람들은 존귀하게 되는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그 존귀함을 영원히 잃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P321 제가 듣건대 못하는 여자와 잘사는 여자가 함께 길쌈을 하였는데 못사는 여자가 나는 초를 살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당신의 촛불에는 남은 빛이 있으니 그 남은 빛을 나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당신의 밝음에 해를 끼치지 않고 나도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2.  양후열전

 

P331 전국시대 중기 이후는 진나라가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재후들을 잠식해 나가던 때이다. 진나라 무왕이 죽고 소앙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선태후가 섭정하고 선태후의 동생 양후가 실권을 휘둘렀다.

 

P333 양후 위염은 진나라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의 동생이다. 그 조상은 초나라 사람으로 성은 미씨이다. 진나라 무왕이 죽었으나 아들이 없으므로 그 동생이 왕위를 이어 소왕이 되었다. 소왕의 어머니는 예전에 미팔자로 불렸으나 소왕이 왕위에 오르자 선태후로 불렀다. 선태후는 무왕의 어머니가 아니다. 무왕의 어머니는 혜문후로 무왕보다 먼저 죽었다.

 

P337 <주서>천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요행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13. 백기 왕전 열전

 

P353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 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P357 무릇 세 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반드시 싸움에서 지게 되오. 반드시 싸움에서 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소?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쳐부순 것이 많아서 그 후손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오.

 

P358 세상에 자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에도 긴 데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백기는 적의 전력을 날쌔게 대응하고 끊임없이 기이한 계책을 생각해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응후와의 사이에서 생긴 근심을 없애지 못했다. 왕전은 진나라 장군이 되어 여섯 나라를 평정했다. 당시 왕전은 노련한 장수가 되어 시황제조차도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진나라를 보필해서 덕을 세워 천하의 근본을 튼튼히하지 못하고, 그럭저걸 시황제에게 아첨하여 편하게 있을 곳을 구하다가 늙어서 죽음에 이르렀다. 손자 왕이 때에 이르러 항우에게 사로잡힌 것도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3.  맹자 순경 열전

 

P361 사마천은 음양가와 도가의 학문이 사실상 근본이며 기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가의 위대한 두 스승 맹자와 순자의 사적에 대해서는 짧게 다루고 음양오행가와 도가에 대해서는 유가보다 상세하게 다루었다.

 

맹자는 공자 학설의 단순한 계승자라기 보다는 유가 사상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유가 사상을 더욱 드러내고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순자는 전국 말기 사람으로 맹자를 이어 유가 사상을 더욱 체계화시킨 대표 인물이지만 맹자의 사상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해야 한다. 순자가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를 기초로 해서 계층 간의 불화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P363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P364 맹자는 요 임금과 순 임금과 하, , 주 세 대 성왕들의 덕치만을 부르짖으므로 가는 곳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364 그는 먼저 반드시 (주변의) 작은 일을 살핀 뒤에 이것을 추론하고 확대시켜 무한한 곳까지 이르렀다.

 

P367 이윤은 솥을 짊어지고 요리사가 되어 은나라 탕왕에게 다가가서 힘을 다해 제왕의 일을 이루게 하였고, 백리해도 수레 밑에서 소를 치다가 목공에게 등용되어 목공을 천하의 우두머리로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춘 뒤에 바른 길로 가게 했다. 추연의 말은 일반적인 법칙을 벗어나지만, 그도 소를 친 백리해나 솥을 짊어진 이윤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P370 제나라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을 칭송해서 하늘을 말하는 추연, 용을 아로새긴 듯 문장을 꾸미는 추석, 곡과를 지지는 순우곤!’이라고 노래했다.

 

15.  맹상군열전

 

P375 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위나라 신릉군 무기, 초나라 춘신군 황헐은 선비를 기르기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각기 식객 3000여 명을 거느려 흔히 전국 사공자라고 부른다.

 

맹상군이 풍환을 비롯하여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흉내 내던 무리를 빈객으로 불러 들였을 때, 그들이 맹상군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378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고 하기 때문이다.

 

P379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게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P383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두 사람이 그를 구하였다. 그 뒤 빈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 속 깊이 맹상군을 따르게 되었다.

 

P397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로 빈객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16.  평원군 우경 열전

 

P401 사마천은 평원군은 혼탁한 세상에서 새가 하늘 높이 날듯이 재능과 지혜가 있는 훌륭한 공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P406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삼 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고.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P409 모 선생은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이나 대려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P417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P418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면 어진 어머니라고 하겠지만 아내의 입에서 나오면 반드시 질투심이 많은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은 같지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마음도 바뀝니다.

 

P421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함께 일을 하면 이로운 것이 있을 대에는 큰 나라가 그 복을 받고, 일이 잘못되면 작은 나라가 그 화를 입게 된다.

 

이익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

 

17.  위공자열전

 

P425 네 공자 중 신릉군은 그 빈객들로부터 충성과 존경을 얻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로 일컬어지는 지식인들의 능력을 알아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P428 그 뒤로 왕은 공자가 어질고 능력 있음을 꺼려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로 하지 않았다.

 

P436 세상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18.  춘신군열전

 

P443 진나라는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면서 능력 있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고 어질지 못한 자는 내침으로써 서쪽 변방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P446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면 힘이 약한 개가 그 기회를 틈타 이익을 차지할 것입니다. (중략) 사람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P447 <시경>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라고 했고 <역경>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P448 병사를 잘 다스리는 이는 멀리까지 가서 정벌하지 않는다. (중략) 이리저리 날뛰는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 마음에 두고 있으면 내 마음으로 그걸 헤아릴 수 있다. (중략) 적은 용서하면 안 되고 때는 놓치면 안 된다.

 

P459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던 복이 찾아올 수도 있고, 또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과 재앙이 찾아오는 세상에 살고 있고, 기대를 걸 수 없는 군주를 섬기고 계십니다. 어찌 재앙을 막아 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를 구해 두지 않으십니까?

 

P461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  범저 채택 열전

 

P463 사마천은 범저와 채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뜻을 잃지 않았고 공을 이룬 뒤에는 물러나 어진 사람을 따랐기 때문에 특별히 이들에 관한 열전을 만든 것이다. 아울러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P470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가 있는 자에게 내린다.

 

대부의 집을 번창시킬 인재는 나라 안에서 찾고, 제후의 나라를 번창시킬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 (중략)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을 알고, 훌륭한 군주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밝습니다. 이로우면 행하고 해로우면 버리고 의심스러우면 좀더 시험해 봅니다.

 

P473 오제 같은 성인도 죽고, 삼왕 같은 어진 사람도 죽었으며, 오백 같은 현인도 죽고, 오획이나 임비 같은 힘센 장사도 죽고, 성형과 맹분과 왕경기와 하육 같은 용사도 죽었습니다. 죽음이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죽을 몸, 죽음으로써 조금이라도 진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의 가장 큰 바람인데 또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P477 왕께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이웃 나라를 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왕의 것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더라도 왕의 것이 됩니다.

 

P479 대체로 나랏일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자를 왕이라 하고, 사람에게 이익과 해를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 하며,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위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고 합니다.

 

P480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안으로는 그 권위를 굳히고 밖으로는 그 권력을 무겁게 한다.

 

나무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 기둥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수도가 지나치게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가 지나치게 존중되면 군주가 낮아집니다.

 

P484 수고는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매우 놀라 웃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무릎으로 걸어서 문지기릍 통해 죄를 빌었다.

 

P488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벗을 사귀는 것은 천한 몸이 되었을 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 때문이고, 부유할 때 벗을 사귀는 것은 가난해졌을 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P489 사람이란 본래 알기가 힘들지만 남의 됨됨이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P490 진나라 법에 따르면 사람을 추천할 경우 추천받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추천한 사람도 그와 같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군주가 욕을 보면 신하는 죽는다.

 

내가 듣기로 초나라의 칠검은 예리하지만 광대들은 시원찮다고 하는데, 칠검이 예리하면 군사들이 용감할 것이고 광대가 시원찮으면 생각이 깊을 것이오. 깊은 사고력으로 용감한 군사들을 이끌면 초나라가 진나라를 칠까 두렵소. 대체로 모든 일은 평소에 준비하지 않으면 급박한 경우에 대처할 수 없소.

 

P493 인을 바탕으로 하여 의를 지키며 도를 시행하여 덕을 베푼다면 천하에 자기 뜻을 이루는 것이고, 천하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흠모하여 군주로 받들고자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변설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선비가 기대하는 바 아니겠습니까?

 

P495 군자는 의를 위해서는 어려운 일을 하다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죽는 것을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쉽게 여기고, 살아서 치욕을 겪는 것보다 죽어서 영예로운 편이 낫다고 생각했소. 선비란 본래 자기 몸을 죽여서 이름을 남기나니 정의를 위해서라면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소.

 

군주가 성스럽고 신하가 어진 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복입니다. 군주가 명철하고 신하가 정직한 것은 나라의 행복입니다. 아버지가 자애롭고 자식이 효성스러우며 남편이 성실하고 아내고 정숙한 것은 가정의 행복입니다.

 

P496 만약 죽은 뒤에야 충성스럽다는 이름을 얻었다면 미자는 어진 사람이라 할 수 없고, 공자는 성인이라 할 수 없으며, 관중은 위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사람이 공과 이름을 세울 때 어찌 완전하기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몸과 이름이 모두 온전한 것이 가장 훌륭하며, 이름은 남이 모범이 될 만하지만 몸을 보존하지 못한 것이 그 다음이고, 이름은 욕되어도 몸만은 온전한 것이 가장 아래입니다.

 

P498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 (중략) 나라에 도가 시행되면 나아가서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물러나 숨어야 합니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덕이 있는 자를 만나기에 이롭다.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P499 이는 모두 최고에 이르렀을 때 본연의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모른 데서 생긴 재앙입니다.

 

P501 공을 이루고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재앙을 입었습니다. 이른바 펼 줄만 알고 굽힐 줄 모르며, 앞으로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 모르는 사람이지요.

 

P502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

 

P503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고,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P504 한비자가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 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진실로 옳은 말이다. (중략) 각국의 제후에게 유세하여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나라들의 힘이 약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중략)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중략)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P505 공자는 일찍이 은나라에 오진 이가 셋 있다고 했는데 이는 기자, 미자, 비간을 가리킨다. 비간도 주왕의 바르지 못한 행실을 간언했다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구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주왕에 의해 살해되어 심장이 꺼내졌다.

 

20.  악의열전

 

P507 촉나라 제갈량의 출사표와 비슷한 점이 매우 많은 것을 보면 이것이 출사표의 시초가 된 듯하다.

 

P515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공을 세우면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을 가진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까지 칭송을 받는다.

 

일을 잘 꾸민다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이루는 것은 아니며, 시작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무리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P516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21.  염파 인상여 열전

 

P521 이들의 정치적 영욕과 출세와 좌절은 한 나라의 세력의 강약, 성쇠의 변화를 반영학 있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P533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운다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P541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판단이 더딥니까? 대체로 천하 사람들은 시장에서 이익을 좇는 것처럼 사귑니다. 당신에게 권세가 있으면 따르고 권세가 없어지면 떠나갑니다. 이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인데 무엇을 원망하십니까?

 

P545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22.  전단열전

 

P547 사마천의 용병에 관한 의견 즉 싸움이란 정면에서 맞서 싸우고 기병으로 적의 허를 찔러 이기는 것이다.”라는 견해가 담겨있다.

 

P554 대체로 기이한 병법은 처음에는 처녀처럼 약하게 보여 적군이 (얕잡아 보고) 문을 열어 두게 하지만, 나중에는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날래져서 적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이는 전단의 용병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23.  노중련 추양열전

 

P557 전국시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소진이나 장의같이 권세를 끼고 이익을 좇은자와 노중련이나 추양처럼 권력과 부를 경시하고 명예를 높이 여긴 자이다.

 

사마천은 이 두 사람이 언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권력과 높은 신분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높이 평가한다.

 

P566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 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입니다.

 

P567 제가 듣건대 지혜로운 자는 때를 거슬러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겁내어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으며, 충성스러운 신하는 자기 한 몸을 앞세워 군주를 뒤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P569 작은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합니다.

 

P571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을 가볍게 내 맘대로 살리라!

 

P573 젊을 때부터 흰머리가 되도록 사귀었으면서도 새로 사귄 듯한 이가 있는가 하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도 옛날부터 사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입니다.

 

P575 여자는 예쁘든 못생겼든 궁중으로 들어가면 질투를 받고,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으로 들어가면 시샘을 받게 마련입니다. (중략)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들의 계획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음을 믿고 사사로이 붕당을 만들어 의지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홀로 몸을 세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P576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라도 녹일 수 있고, 헐뜯는 말이 쌓이고 쌓이면 뼈라도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P577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명월주와 야광벽을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는데 무엇 때문인가?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보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구불구불 뒤틀린 나무 뿌리일지라도 만승의 그릇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그 모양을 꾸미기 때문이다.

 

24.  굴원 가생 열전

 

P583 전국시대 이래 문학작품에는 당시 인간 운명의 극적인 성공과 실패라는 분위기로 인해 심각한 회의로 절망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있었다. 거기에는 인간사에 영원 불변하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P586 ‘이소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라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진흙 속에서 뒹굴다 더러워지자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씻어 내고, 먼지 쌓인 속세 밖으로 헤쳐 나와서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연꽃처럼) 깨끗하여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지조는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만 하다.

 

P590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거듭 생기고, 훌륭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충신이라는 이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이가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경>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이 물을 길어 갈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P5991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티끌을 떨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P602 만물은 변하며 진실로 쉼이 없다. 돌아 흘러서 옮겨 가고 또는 밀어서 돌아간다. 형체와 기운이 끊임없이 도니 변하고 진화하는 것 매미와 같네. 그 깊은 이치 끝이 없는데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

 

P603 재앙과 복이 어찌 꼬인 새끼줄과 다르랴! 천명이란 말할 수 없는 것 누구 그 끝을 알랴! 물은 부딪치면 빨라지고 화살은 힘을 받으면 멀리 가는구나. 만물은 돌고 돌아 서로 부딪치고 진동하며 변하네.

 

P607 ‘복조부를 읽으니 그는 삶과 죽음을 한가지로 보고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가볍게 여겼으니,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608 굴원은 농력 5 5일에 죽었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날을 기념하여 단오절을 만들었다.

 

25.  여불위 열전

 

P611 여불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이유는 그가 진시황의 친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대목이 이 편에 나오기 때문이다.

 

P615 영화를 누릴 때 터전을 닦아 놓아야지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고 사랑이 식은 뒤에는 비록 한마디 말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P618 진나라 왕은 나이가 어리므로 태후가 때때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불위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였다.

 

이 무렵 위나라에는 신릉군, 초나라에는 춘신군, 조나라에는 평원군,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선비를 존중하여 빈객 모시는 일을 두고 다투었다. 여불위는 진나라가 강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선비들을 불러 정성껏 대하자 빈객이 3000명에 이르렀다.

 

P619 음경이 큰 오애라는 사람을 몰래 찾아 사인으로 삼고, 때때로 음탕한 음악을 연주하며 노애의 음경에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달아서 걷게 하였다.

 

26.  자객열전

 

P623 <사기> 130편 중에서 인물을 묘사한 것이 112편이고, 그 중 쉰일곱 편이 비극적인 인물을 그린 것이다.

 

<사기>에서 특정 부류의 인물을 묶어 편명으로 삼은 것으로는 자객열전, 순리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 유협열전, 영행열전, 골계열전, 일자열전, 귀책열전, 화식열전 등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자객은 대부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보은 사상이 투철했다.

 

P629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공자 광은 발이 아픈 척하며 지하실로 들어가서 전제에게 뱃속에 비수를 감춘 구운 생선을 올리도록 하였다. 전제는 왕 앞에 이르자 생선의 배를 찢고 비수를 잡아 요왕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러자 왕의 양쪽 옆에 있던 사람들이 전제를 죽였다.

 

P630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단장한다고 했다.

 

P632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다.

 

P636 사람이 많으면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길 수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기면 말이 새어 나갈 것이며, 말이 새어 나가면 한나라 전체가 당신을 원수로 여길 텐데 어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P642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27.  이사열전

 

P599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으로 훗날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P661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P662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만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밀고 나갑니다.

 

P666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라고 합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P668 어떤 일이든 옛것을 본받지 않고 오랜 시일 이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P669 모든 문학과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 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으로 삼으십시오. 의약, 점복, 농사, 원예에 관한 책은 없애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배우고 싶은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면 됩니다.

 

시황제는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P671 시황제의 막내아들, 승상 이사, 조고 및 시황제가 아끼던 환관 대여섯 명만이 시황제가 죽은 사실을 알 뿐 다른 신하들은 몰랐다.

 

P672 형을 물러나게 하고 아우를 오르게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아버지의 조서를 받들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효성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자신의 재능이 보잘것없는데 억지로 남의 공로에 의지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세가지는 덕을 거스르는 일이므로 세상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을 테고 몸은 위태로우며 사직의 제사를 받들지 못합니다.

 

대체로 큰일을 행할 때는 작은 일을 돌아보지 않으며 큰 덕이 있는 사람은 일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고을마다 각기 제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으며, 백관들의 공은 다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을 돌아보다가 큰일을 잊어버리면 뒤에 반드시 재앙이 닥치고, 의심하며 주저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과감하게 행동하면 귀신도 피하고 뒷날 성공하게 됩니다.

 

P675 성인은 변하여 정해진 태도가 없으며, 변화에 따르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귀착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중략) 대체로 밖에서 안을 제어하는 것을 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어하는 것을 이라 합니다.

 

위와 아래가 마음을 합치면 길이 누릴 수 있으며, 안과 밖이 하나가 되면 일의 겉과 속이 없어집니다.

 

P679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P682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귀중하다는 것은 자기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피로하게 하고, 몸은 나그네가 머무는 집 같은 곳에 두고, 입은 문지기와 같은 음식을 먹고, 손은 노예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것은 어리석은 자가 힘쓰는 일이지 현명한 사람이 힘쓸 일이 아니다. 어진 사람이 천하를 소유하게 되면 오로지 천하를 자기에게 맞도록 할 뿐이다.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중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이른바 어진 사람은 반드시 천하를 평안하게 하여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지금 제 몸조차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P683 천하를 차지하고도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천하를 질곡으로 삼는 것이다.

 

P684 남이 나를 따르게 하면 나는 존귀해지고 남은 비천해지지만, 내가 남을 따르면 내가 비천해지고 남이 존귀해집니다. 그러므로 남을 따르는 자는 비천하고 남을 따르게 하는 자는 존중 받을 것입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지만 엄격한 가정에는 거스르는 종이 없다.

 

P685 곧게 높아진 것과 완만하게 높아진 것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근본 원인에는 힘쓰지 않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들을 망치는 근원을 일삼는다면 성인의 이치를 살피지 못하는 것입니다.

 

P690 신하의 권력이 그 군주의 권력과 비슷해지면 위태롭지 않은 나라가 없으며, 첩의 세력이 남편의 세력과 비슷하면 위태롭지 않은 집안이 없다.

 

28.  몽염열전

 

29.  장이 진여열전

 

P718 적이 많으면 힘은 흩어지고, 편이 많으면 군대는 강해집니다.

 

P725 공께서는 이 두 사람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시는군요. 저 무신과 장이와 진여는 말채찍을 흔드는 것만으로 조나라 성을 수십 개나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왕 노릇을 하고자 합니다.

 

30.  위표 팽월열전

 

P751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자들이지만 오직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때를 만나 자신들의 뜻을 펼쳐 보려고 했기 때문에 갇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31.  경포열전

 

P770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

 

32.  회음후열전

 

P784 천리 먼 곳에서 군사들의 식량을 보내면 수송이 어려워 병사들에게 주린 빛이 돌고,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어야 밥을 지을 수 있으면 군사들은 저녁밥을 배불리 먹어도 아침까지 가지 못한다.

 

P785 병력이 열 배가 되면 적을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

 

P788 병법에는 산과 언덕을 오른쪽으로 하여 등지고 물과 못을 앞으로 하여 왼쪽에 두라고 했는데 오늘 장군께서는 저희에게 도리어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면서 조나라를 무찌른 뒤 다 같이 모여 실컷 먹자라고 하시기에 저희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마침내 이겼습니다.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잖소?

 

P789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을 말할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경우가 있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미친 사람의 말도 가려서 듣는다라고 했습니다.

 

P790 군사를 잘 쓰는 사람은 이쪽의 단점을 가지고 적의 장점을 치지 않고, 이쪽의 장점을 가지고 적의 단점을 칩니다.

 

P797 무릇 남이 나를 깊이 믿는데 내가 그를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입니다.

 

귀하게 되느냐 천하게 되느냐는 골상에 달려 있고, 근심이 생기느냐 기쁨이 생기느냐는 얼굴 모양과 빛깔에 달려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력에 달려 있습니다.

 

P800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입는다고 들었습니다.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

 

우환이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P802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덥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

 

P803 무릇 형세가 신하 자리에 있으면서 군주를 떨게 하는 위세를 지니고 명성을 천하에 떨치고 있으니 제 생각에는 당신께서 위태롭습니다.

 

원래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조짐이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기틀이 됩니디.

 

대체로 나무를 하고 말을 먹이는 이는 만승의 천자가 될 만한 권위도 잃어버리고, 조그마한 봉록을 지키는 데 급급한 이는 경상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을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중략)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나라 용사 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의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지혜가 있더라고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P806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 적은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

 

33.  한신 노관 열전

 

P815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성이 다른 일곱 명을 왕으로 봉하여 봉건 할거 국면을 형성했지만 나중에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씨가 아닌데 왕이 된 자들을 멸망시키는 정책을 폈다.

 

P826 여후는 부녀자로서 오로지 성이 다른 왕과 큰 공을 세운 신하들을 죽이는 것을 일삼고 있다.

 

P831 ,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34.  전담열전

 

P833 전횡의 호걸다운 면모는 유방에게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에서 드러난다.

 

35.  번 역 등 관 열전

 

P845 이 편은 한나라 초기 개국공신이며 유방의 충성스런 장수였던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P869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가듯이 한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

 

3. 내가 저자라면

 

언젠가 꼭 읽어보려 했던 책이 <삼국지> <사기열전>이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춘추전국시대 조, , , , , , 초나라 지도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름, , 시호를 연결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도 쉽지 않다.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궁형이라는 치욕을 이겨낸 사마천이 <사기열전>에 쏟아 부은 열정과 노력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기열전>을 읽으며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석이 맨 뒤에 있거나 해당 페이지 아래에 있지 않고 각 이야기가 끝나는 뒤편에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책의 맨 뒤에 있으면 일일이 찾아 읽기에 불편함이 있고, 해당 페이지 아래에 있으면 전체적인 흐름을 끊는 경향이 있는데 주석을 각 장 뒤편에 삽입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둘째, 옮긴이가 각 장을 시작하기 전에 나름의 해제를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는 부분이 돋보인다. 해당 에피소드의 의의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제공되어 좋았다. 또한 각 장 안에 작은 이야기들의 소제목을 달아 놓았는데 이 또한 읽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들이 보완되면 더 좋을 것 같다.

 

첫째, 목차를 테마별로 구성해보면 어떨까 한다. 시대적 인물 구성보다는 특정 분류로 인물 편명을 만들면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옮긴이의 해제에 따르면 <사기열전 2>에는 순리, 유림, 혹리, 유협, 연행, 골계, 일자, 귀책, 화식열전이 있어 유사 직업군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1,2편의 목차를 정치가(충신/간신/유세의 달인), 학자(사상가, 교육자), 장수(전략가, 병법가), 예술가, 사업가 등으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

 

둘째, 사자성어를 정리해주면 좋을 것 같다. 백이숙제, 관포지교, 토사구팽, 계명구도 등등 유명한 사자성어가 <사기열전>에 다수 소개되는데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어 아쉽다.

 

셋째, 주석이 보다 쉽고 자세히 설명되었으면 좋겠다. 성과 씨의 차이나 견백동이에 대한 주석은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춘추전국시대나 제후, 공자, 척신 등 개념 정리도 간단히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옮긴이는 <사기열전>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준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인간 사회에는 대립과 갈등,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군상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사기열전>에서 만난 중국의 고대인들의 삶을 살펴보니 욕망으로 인해 출세가도를 달리고, 또 그 욕망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다양하지만 나에게 맞는 것은 아직 더 찾아야 할 듯싶다.  

 

신화의 세계에서 나와 역사의 웅덩이로 뛰어 들었다.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의 이동, 역사를 통해 나는 또 무엇을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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