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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10시 13분 등록

사기열전(史記列傳) 1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1. 저자에 대하여

 

성은 사마(司馬)이고, 이름은 천(遷)이다. 자는 자장(子長)이며 기원전 약 145년경인 무제의 통치시기에 한나라 용문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섬서성 한성시이다. 용문의 유력한 지주였던 아버지 사마담은 ‘사관’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사관이라는 가업을 회복하기 위해 살아갔다. 사마담은 기원전 138년 사마천이 여덟 살 되던 해 마침내 태사령이 된다. 태사령이 된 후 집안 대대로 사관의 직책을 계승하리라는 사명에 불타올라, 장남 사마천을 역사가로 키우기 위한 훈련에 돌입한다. 사마천은 10살 때부터 고대 경전을 암송하고, 열일곱 즈음 대유학자 동중서의 문하생이 되어 ‘춘추’ 등의 역사철학을 배웠고, 20대에는 중국 천하를 주유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역사가로 키워졌다. 20세 무렵에는 직접 현지를 답사하며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현지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들도 수집하였습니다. 22세 무렵 관직에 나가게 된 사마천은 황제의 비서에 해당하는 낭중이 되어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사마천의 나이 36살, 아버지 사마담은 태사령으로서 한나라 최초로 황제가 태산에 제를 올리는 봉선대제를 준비했으며, 아들 사마천은 낭중으로 황제의 지방순시를 호위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기구한 운명이랄까, 사마담은 이 봉선의식에 참관할 수가 없었다. 결정적 순간에 제외되는 바람에 번민하다 그만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장안에서 낙양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러 온 사마천에게 사마담은 유훈을 남긴다. “내가 죽은 뒤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되어, 내가 쓰고 싶어했던 논저를 잊지 말고 이루어 주기 바란다.” 공자의 ‘춘추’와 같은 역사서를 쓰기를 염원했던 아버지 사마담은 이 사명을 아들에게 넘기고 그렇게 허허롭게 떠났다. 아버지의 유훈은 사마천을 예정된 역사가에서 마침내 역사가가 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기원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역사서를 집필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사망했다.

  사마천.jpg

3년 뒤 관직을 세습하여 태사령이 되어 무제를 시종하면서 천제에 제사 드리는 봉선에 참여하기도 하고 역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금궤(石室金櫃)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면서 4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끝에 태초(太初) 원년(기원전 104년)에 사마천의 나이 42세에 정식으로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47살까지 사마천은 황제를 존숭하고 한나라의 영광을 예찬하며 황금빛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는 게 맞는 말일까. 태사령으로 황제에게 신임을 받던 사마천에게 일생일대의 비극적인 사건이 터진다. 비운의 패장이 된 친구 이릉을 변호하다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았다. 전말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99년 5월 무제는 대대적으로 흉노를 공격했다. 무제는 총애하던 이 부인의 오빠요, 대완(서역의 이족)을 정벌했던 이광리 장군에게 수만 군사를 주어 흉노 공격에 나선다. 그러나 이광리의 군사들은 전멸했고 이광리 혼자만 돌아왔다. 이후 무제는 기도위 이릉에게 보병 5000을 이끌고 흉노를 치게 했다. 이광리의 군사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적은 5000의 보병으로 흉노의 수만 기병을 용감하게 물리쳤으나, 결국 흉노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한다. 한나라 황실은 이릉이 전사하길 바랐으나 이릉은 흉노에게 투항하고 만다. 화가 난 무제는 사마천에게 의견을 물었다. 사마천은 항복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일이라며 이릉을 두둔했다. 상황이 불운했음을 알았던 사마천은 몸을 사리지 않고 직언을 올렸던 것이다. 무제는 황제 무고의 반역죄로 사마천을 감옥에 유폐시킨다. 1년이 지난 후, 이릉이 흉노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는 잘못된 보고가 들어와 무제는 또다시 격노하여, 이릉의 일가족은 몰살당하고 사마천은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때 한나라는 국고가 모자라는 상황. 50만전을 내면 사형을 면할 수 있는 법이 생겼다. 그러나 사마천은 가난했고, 사귀던 벗들은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으며, 황제의 측근 중 누구도 사마천을 옹호해주는 이가 없었다. 49세의 사마천은 사형을 당하거나 궁형(거세형벌)을 당할 기로에 서게 된다. 이 시대, 궁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죽는 게 훨씬 쉽고 떳떳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떳떳한 죽음보다는 궁형을 당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보존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사기’ 저술이라는 엄숙한 과업을 완수하지 않은 채 죽는 것은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해야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했고, 굴욕을 참아냈으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사마천은 한 글자 한 글자 죽간을 채워 나가며 분노를 풀어냈고, 한 편 한 편의 역사적 사건을 엮어내며 삶의 의미를 확인했다. 사마천은 오직 ‘사기’를 위해 숨을 쉬었고, 오직 ‘사기’ 안에서 생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제 사마천에게 역사 서술은 수많은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절대적인 일이 된 것이다.

 

사마천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기’를 저술했다.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했던 14년 동안 수많은 과거의 인물들이 살고 죽은 이유를 기록하고 전하면서 그 인물들의 원한을 풀어주었고, 동시에 자신도 해원했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가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가 감응한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억울함과 치욕을 알아줄, ‘사기’ 저술의 집념을 알아줄 또 다른 청운지사를 기다렸다. 사마천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사마천의 몸은 57세의 나이로 죽었지만, 사마천의 정신은 ‘사기’와 더불어 지금까지 불멸의 존재로서 살아있다.

 

사마천 무덤.jpg 

사마천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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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당

 

명나라 때의 백과사전 삼재도회에 실린 사마천.jpg 

명나라 때의 백과사전 삼재도회에 실린 사마천 

 

 

 

 

 

 

 

 

 

 

 

2. 내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책을 읽기 전에 전국시대 지도를 보면 좋다.

전국시대 지도 2.jpg

◎ 역자 서문

p6 예나 지금이나 전쟁만큼 큰 죄악은 없다.

 

◎ 해제

<사시(史詩) 역사를 담은 시 『사기』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p13 중국 고대 역사서의 세 가지 편찬 체제인 편년체(編年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기전체(紀傳體)가운데 기전체의 효시가 『사기』이다. 기전체는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먼저 시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행적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마천은 사료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역사의 발전적 흐름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주었기에, 이 책이 오늘날까지도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사기열전 1』을 주문하고, 두께가 얼만큼일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연구원 1학기에 웬만큼 두꺼운 책들을 다 접해봤기 때문에, 두께를 걱정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인터넷 주문으로 책을 한 권 사면 비닐 포장으로 온다. 그런데 『사기열전 1』은 박스에 포장되어 왔다. 포장을 뜯기도 전에 무겁다. 겁이 났다. 역시나 열어보니 두께에 기가 죽었다. 하지만 북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두께가 이해가 된다.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가 되려면 이정도는 되야지……. 무엇보다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그의 안목이 부럽다. 덧붙이자면 번역이 매끄럽게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 옛날 일이 정말 현실에도 적용가능하게 씌였다. 시대는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지혜, 진리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p14 그러나 이들 편명에서의 기록은 두 가지 내포된 의미가 있으니 선진 시대 각국의 ‘사관의 기록’ 이라는 의미와 한 대의 문장학이 그것이다. 물론 이 책의 서문격인 「태사공 자서」에 나와 있는 ‘태사공서(太史公書)’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p16 첫째, 발분(發憤)의식의 소산이다. 궁형을 당한 것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구차한 행위가 아니라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7

p17 둘째, 역사적 사실의 포폄(褒貶)과 직서(直書)이다. 이는 「태사공자서」에서도 드러나지만 공자(孔子)가 『춘추』를 서술한 방식에 바탕을 두고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여 미언대의(작은 말 속의 큰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p18 사실상 『사기』 130편 가운데 인물 전기로 구성된 것이 112편인데, 이중에서 57편이 비극적 인물의 이름으로 편명을 삼았다. 그리고 20여 편은 비극적인 인물로 표제를 삼지는 않았으나, 따져 보면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나머지 70여 편에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편에서 비운의 인물이 등장한다. 격동의 시대를 약 120여명이라는 비운의 인물을 통해 그려 냈으니 결국 사마천에게는 ‘비극’이야말로 아닌 게 아니라 시대의 표징이었던 셈이다.

 

p21 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유형에 입각해서 자신을 포함하여 당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런 근거를 그 이전의 경서(經書)와 제자서(諸子書)들 뿐 아니라 민간의 구전에서도 취하는 유연성을 보여 주었다.

 

p21~23 먼저 대략적인 상황을 주요 편명 순으로 살펴보자.

1) 사마천의 『사기』의 백미로서 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백이 열전」은 지조와 소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2) 「관안 열전」에는 사나이의 진정한 우정을 다룬 관포지교 고사가 담겨 있고,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안다는 관중의 정치관이 배어 있다.

3) 「사마 양저 열전」, 「손자 오기 열전」, 「오자서 열전」 : 전국 시대에 활약한 병법가들을 다룸

4) 「상군 열전」 : 우리는 법과 원칙의 소유자 상군 즉 상앙에게서 진정한 개혁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5) 「소진 열전」, 「장의 열전」은 합종과 연횡이라는 전략으로 천하를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의 처절한 두뇌 싸움을 보여주는 명편이다. 두 사람은 같은 문하에서 배웠지만 나중에 정치적 라이벌 관계가 된다.

6) 「맹상군 열전」 : 제후급 정치가들인 전국 4공자(맹상군, 평원군 우경, 위공자 무기, 춘신군 황헐)의 독특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7) 「전단 열전」 :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8) 「노중련 추양 열전」 :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

9) 「굴원 가생 열전」 :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

10) 「자객 열전」 : 형가를 비롯한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룸

11) 「이사 열전」 :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신의 위치에 달려 있다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이사의 이야기

12) 열전의 53권 「남월 열전」부터 순서대로 「동월 열전」, 「조선 열전」, 「서남이 열전」 등은 한나라와 변방 지역의 민족들 사이의 충둘과 화해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3) 「혹리 열전」 : 혹리 12명의 행적을 통해 한 무제의 정책의 무모함을 비판하면서 사마천은 법령이 늘수록 도둑이 느는 데는 이유가 있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 혹독한 법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4) 「유협 열전」 : 춘추 전국 시대를 주름잡은 ‘유협’의 세계를 다룸

15) 「영행 열전」 : 여색이나 남색을 통해 황제의 총애를 얻은 부류들을 다룸

16) 「골계 열전」 : 기지와 해학의 만담가요 풍자가인 골계들을 다룸. 그들의 외모와 지위는 별것 없지만 그들의 날카로운 현실 풍자가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줌.

 

p24 『사기 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잘 모르겠지만, 시대를 잘 타고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시대를 비껴가고 싶지 않고, 거스르고 싶지도 않다. 부조리한 시대라면 맞서겠지만, 시대보다 한발 앞서,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려나?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도를 먼저 보면 내용 이해가 훨씬 쉽다. 지리적으로 보면 초나라가 지정학적 위치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국을 통일한 나라는 진나라다. 진나라가 전국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배후엔 누가,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 진시황 뿐만 아니라 진시황의 최측근 이사, 그 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전을 통해 알아보자. 흥미진진>

 

1 백이 열전(伯夷列傳)

p59 천도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면서 인간사의 불공정한 여러 형태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천도의 기본은 권선징악이지만 사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아 착한 사람이 재앙을 입고 나쁜 사람이 복을 누리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마천은 공자가 백이와 숙제 두 사람에 대해 “인(仁)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다.”라고 한 칭찬을 의문시 한다. 백이와 숙제가 남긴 「채미가」의 내용이나, 이 두 사람이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죽은 것으로 볼 때 원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p60 사마천이 단순히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행적을 적었다기 보다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총괄적인 입장을 자신을 빗대어 쓴 것이다.

공자는 “인이란 사람다움이다.”,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단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왜 유가 경전에는 허유와 무광 등의 사적이 없을까?>

p61 순 임금과 우 임금 사이에 사악(요순 때 사방 제후들의 우두머리)과 열두 주의 목(牧)(각 주의 행정 장관)들이 다 함께 우를 추천하였으므로 시험 삼아 벼슬을 주고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맡겨 공적이 이루어진 다음에 군주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러한 절차를 밟는 까닭은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고 왕은 가장 높은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전해 주는 일이 이처럼 어려움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백이와 숙제는 정말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p63 저 서산(西山)에 올라

고사리를 뜯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神農), 우, 하나라 때는 홀연히 지나갔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아! 이제는 죽음뿐,

우리 운명도 다했구나!

 

이들은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 노래로 미루어 본다면 원망한 것인가? 원망하지 않은 것인가?

위에 밑줄 친 부분에서 원망이 느껴진다.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그리고 난 후 죽음 밖에 남지 않았다고, 우리 운명도 다했다고 한탄이 섞인 듯하다.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p65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며 즐겁게 살고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case by case인걸까? 안그런 부분도 있으니.......

 

<파리도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 길을 갈 수 있다>

p65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道)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p66 이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기의 뜻을 좇아서 행한다는 말이다.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연구원의 길은 ‘정신적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삶의 혁명을 꿈꾸다.’ 이다. 난 이 문장에 매료되어 지금의 길을 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책’이다. 글로 나를 표현하고, 글로 삶을 바꾸는 연구원에 길에 들어선 것이 기쁘다. 그리고 그 같은 길을 가는 팔팔이들과 서로 도모할 수 있어 좋다. 길, 방향, 뜻, 가치관 등이 같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결혼도 마찬가지겠지.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찌하여 (세속 사람들은) 그토록 부귀한 사람을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길까?

예나 지금이나.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한다.”

가의(한나라 문제 때의 정치가이자 문인)는 이렇게 말했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이름이 오래도록 후세에 기억되길 바랐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내 이름이 후세에 오래 기억되는 것에 초점 맞추기 보다 오늘, 내 삶이 내 이름을 빛나게 해주는 지,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초점 맞춰야겠다는 생각이다. 죽은 다음일이야 내가 연연해야 할 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 만물도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훌륭한 인물이 세상에 나오면 그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따른다는 뜻.

 

p68 각주12번) 군자에서 ‘군(君)’은 통치자를 뜻하고 ‘자(子)’는 아들을 뜻한다. 따라서 군자는 통치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뜻의 군자가 혈연 관계에 의해 통치 집단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넓혀지면서 귀족과 같은 뜻을 지닌 말로 쓰이게 되었다. 특히 공자 이래로 군자라는 말은 사회적 위치와 관련 없이 도덕적 품성이 높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2. 관․안 열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p71 관중(管仲) 이오는 영수 남쪽 사람이다. 그는 젊을 때 늘 포숙아와 사귀었는데, 포숙은 그의 현명함을 알아주었다. 관중은 곤궁하여 언제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끝까지 그를 잘 대해 주고 속인 일을 따지지 않았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복’ 임을 알게 되는 부분이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대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운]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자.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포숙이 되자.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

p73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六親)(아버지, 어머니, 형, 동생, 아내, 자식)이 굳게 결속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즉 예의(禮), 정의(義), 깨끗함, 부끄러움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수원에서 무 ㄹ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된다.”

관중은 정치를 하면서 재앙이 될 수 있는 일도 복이 되게 하고, 실패할 일도 돌이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p74 그래서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게 정치의 비책이다.” 라는 말이 생겨났다.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뜻을 드러낸다>

p74 안평중 영은 내나라 이유 사람으로 제나라 영공, 장공, 경공을 섬겼으며 아껴 쓰고 힘써 실행하여 제나라에서 중시되었다.

 

p75 월석보라는 어진 사람이 어쩌다가 죄인의 몸이 되었다. 안자는 밖에 나갔다가 길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안자는 자기 마차의 왼쪽 말을 풀어 보석금으로 내주고 월석보를 마차에 태워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 온 안자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안자가 내실에서] 한참 머물자 월석보는 떠날 뜻을 비추었다. 화들짝 놀란 안자는 옷과 모자를 바로하고 사과하며 말했다.

“제가 어질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어려울 때 구해 드렸습니다. 어찌 당신은 이토록 빨리 인연을 끊으려 하십니까?”

그러자 석보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듣건대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드러낸다고 합니다. 제가 죄인의 몸일 때 옥리들은 저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깨달은 바가 있어서 보석금을 내어 저를 구해 주었으니 이는 저를 알아준 것입니다. 저를 알아주면서도 예의가 없다면 진실로 죄인의 몸으로 있는 편이 낫습니다.”

 

p76 “안자라는 분은 키가 여섯 자도 채 못 되는데 몸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제후들에게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분이 외출하는 모습을 살펴보니 품은 뜻이 깊고 늘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키는 여덟 자나 되건만 겨우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도 아주 의기양양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첩이 헤어지자고 하는 까닭입니다.”

이 일이 있은 뒤 남편은 스스로 마음을 누르고 겸손해졌다. 안자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어보자 마부는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그래서 안자는 그를 추천하여 대부로 삼았다.

(마부의 아내의 현명함. 지혜로움. 그리고 그런 아내의 말을 알아들은 마부 또한 현명하다.)

 

p77 세상 사람들은 관중을 어진 신하라고들 하지만 공자는 그를 하찮게 여겼다. 어찌 주나라 왕실의 운명이 쇠미해진 상황에서 어진 환공을 도와 왕도로 천하를 다스리는 군자갇 ㅚ게 하지 안ㅇㅎ고 천하의 우두머리로서만 이름을 떨치게 하려고 했는가? 전하는 말에 [군주가] ‘잘한 점은 좇아 더 잘하게 하고 그 잘못된 점은 바로자아 주어야만 군주와 신하가 서로 친해질 수 있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관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

 

3. 노자․한비 열전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둔다>

p81 공자가 주나라에 가 머무를 때 노자에게 ‘예(禮)’를 묻자 노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려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p83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유가 학문을 내치고, 유가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역시 노자의 학문을 내쳤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정말 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노자는 하지 않는 것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관리가 되느니 더러운 시궁창에서 놀리라>

p84 초나라 위왕은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많은 예물을 주고 재상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왕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 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어찌 교제(郊祭)(고대 제왕이 해마다 동짓날에 도성의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올린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형명지학의 대가 신불해>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라>

p85 한비(韓非)는 한(韓)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형명과 법술(法術)의 학설을 좋아하였으나 그의 학문은 황로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각주- 법술 : ‘법’이란 회화나 문서에 나타난 군주의 명령으로서 일종의 성문법이라고 할 수 있고, ‘술’은 군주의 가슴속에 있는 것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릴 목적을 위해 아랫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킨다든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꾸짖고 벌주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법과 술을 더해 ‘법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특히 중앙집권적 통치하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한비자가 진시황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p86~91 그러나 한비는 유세의 어려움을 알고 「세난」편을 매우 자세하게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진나라에서 죽어 자신은 [정작 그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세난」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ㅅ아대방의 마음을 잘 팡가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 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때 유세자가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영화를 얻게 된다. 이러한 관계가 이어지면 유세는 성공한 것이다.

재상 이윤이 요리사가 되고, 백리해가 포로가 된 것은 모두 군주에게 등용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이면서도 이처럼 자기 몸을 수고롭게 하고 천박한 일을 겪은 뒤에 세상에 나왔다. 그러므로 재능 있는 인재라도 이러한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미지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군주가 그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지헤가 군주의 마음에 든다고 하여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를 짓는다고 하여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92 나는 다만 한비가 「세난」편을 짓고도 스스로는 재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플 뿐이다.

진시황의 최측근 이사에 의해 죽게 된 한비. 이사는 한비와 연합할 수 없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었겠지. 「세난」편을 짓고도 죽게 된 한비. 진나라 왕이 뒤늦게 후회하고 사람을 보냈지만 이미 죽어버렸다는 문장에서 나도 모르게 힘이 쭉 빠졌다. 뭔가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4. 사마 양저 열전

p97 전쟁만큼 큰 죄악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전쟁은 필요악이었다. 법가에서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통하여 전쟁을 없애는 ‘이전거전(以戰去戰)’ 이론을 제시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병가들도 어떻게든 승리하여 적을 소멸시키고 자신을 보존하는 일에 주요 관심을 두었다.

 

<약속은 생명과도 같다>

p99 사마 양저는 전완의 후예이다. 제나라 경공 때 진나라가 아읍과 견읍ㅇ르 치고 연나라가 황하 부근을 공격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완패하자 경공이 매우 걱정하므로 안영은 전양저를 추천하며 말했다.

 

p100 양저는 말했다. (양저와 장고의 대화 중)

“장수란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집을 잊고, 군영에 이르러 군령이 확정되면 친척들을 잊으며, 북을 치며 급히 나아가 공격할 때에는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금 적국이 깊숙이 쳐들어와 나라가 들끓고 병사들은 국경에서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음식을 드셔도 단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백성의 목숨이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거늘 송별회라는 말이 뭡니까?”

(양공은 장고의 목을 베어 죽였다.)

 

<병사들을 감동시킨 용병술>

p102 양저는 병사들의 막사, 우물, 아궁이, 먹거리를 비롯하여 문병하고 약을 챙겨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몸소 보살폈다. 또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재물과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풀고,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이 양식을 나누었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 병사들을 다시 순시하자 병든 병사들까지도 모두 앞 다투어 싸ㅇ무터로 나가기를 바랐다.

 

5. 손자․오기 열전

<군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에게는 죽음뿐이다>

p108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다.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지만, 군령이 이미 정확해졌는데도 군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사졸들의 죄이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노려라>

p111 전기는 손빈을 믿고 제나라 왕과 여러 공자에게 천 금을 건 내기를 했다. 경기가 시작되려 하자 손빈이 말했다.

“당신의 하급 말과 상대편의 상급 말을 겨루게 하고, 당신의 상급말과 상대편의 중급 말을 겨루게 하며, 당신의 중급 말과 상대편의 하급 말을 겨루게 하십시오.”

 

<아내를 명성과 바꾸다>

p114 오기는 위나라 사람으로 병사를 다루는 일을 좋아했다. 그는 일찍이 증자에게 배우고 노나라 군주를 섬겼다. 제나라 사람들이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여자이므로 의심을 품었다. 그러자 오기는 이름을 얻기 위해 자기 아내를 죽여 제나라 편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노나라는 마참내 그를 장군으로 임명했다. 오기는 병사들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노나라의 어떤 사람이 오기를 이렇게 비난했다.

“오기는 사람됨이 의심이 많고 잔인하다. (중략) 오기는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자기 팔을 깨물어 ‘저는 대신이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맹세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그 어머니가 죽었지만 오기는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증자는 오기를 경시하여 그와 관계를 끊었다.”

비정한 야심가 오기. 이극은 오기에 대해 탐욕스럽고 여색을 밝히지만 병사를 다루는 일만은 사마양저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나라의 보배는 험난한 지형이 아니라 임금의 덕행이다>

p116~117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에 있지 지형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예전의 삼묘씨(유묘씨)의 나라는 왼쪽에 동정호가 있고 오른쪽에 팽려호가 있지만 덕행과 신의를 닦지 않아서 하나라의 우 임금에게 멸망했습니다. 하나라의 걸왕이 살던 곳은 황하와 제수를 왼쪽에 끼고 태산과 화산이 그 오른쪽에 있으며 이궐(용문산)이 그 남쪽에 있고 양장이 그 북쪽에 있지만 어진 정치를 베풀지 않아 은나라의 탕임금에게 내쫓겼습니다. 또 은나라 주왕은 맹문산이 왼쪽에 있고 태행산이 오른쪽에 있으며 상산이 북쪽에 있고 황하가 남쪽으로 지나가지만 덕망 있는 정치를 하지 않아 무왕이 그를 죽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중요한 것은] 임금의 덕행이지 험난한 지형이 아닙니다. 만일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적이 될 것입니다.”

 

<남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유>

 

<죽은 시체 위에 엎드린 오기>

p121 옛말에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략은 실로 절묘했으나, 그에 앞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앙을 막지는 못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구나!

 

6. 오자서 열전

p123 오자서는 본래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고자 초나라를 등지고 오나라로 들어온 인물이다. 어찌 보면 사마천도 궁형을 받고 인고의 세월을 살았으니 오자서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사마천은 비분강개한 필치로 오자서를 위한 열전을 만들어 오자서야말로 작은 의를 버리고 큰 부끄러움을 씻었다고 칭찬했다.

 

<소인배의 참언을 믿고 친자식을 내친다>

p125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으로 운이다. 오운의 아버지는 오사이고, 형은 오상이다. 그의 조상 가운데 오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강직한 간언으로 초나라 장왕을 섬겨 이름이 높았다. 따라서 그 후손들은 초나라에서 이름 있는 가문이 되었다.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고 떠난다>

p127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내가 부르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운은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사로잡힐 줄 알고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p128 오상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자 오운이 말했다.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도망치는 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거짓으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그곳에 가면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죽게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그곳으로 간다면 원수를 갚을 길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병력을 빌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낫습니다. 함께 죽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오상이 말했다.

“나 역시 그곳으로 가더라도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나중에 원수도 갚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도리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가려고 한다.”

 

<때를 기다려라>

 

<오나라의 힘을 빌려 초나라를 깨뜨린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p135 “당신의 복수는 너무 지나친 것 같소. 나는 ‘사람이 많으면 한때 하늘도 이길 수 있지만,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깨뜨릴 수도 있다.’ 라고 들었소. 일찍이 평왕의 신하가 되어 평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니, 어찌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있겠소?”

그러자 오자서는 말했다.

“나를 대신해서 신포서에게 사과하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천리를 좇을 수 없었소.’라고 말해 주게.”

이 말을 듣고 신포서는 진나라로 달려가 초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진나라는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신포서는 진나라의 대궐 앞뜰에서 이레 밤낮을 쉬지 않고 소리 내어 울었다. 신포서를 가엾게 여긴 진나라 애공이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는 비록 도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나 이토록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으니 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

p138 “월나라는 뱃속에서 생긴 병처럼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월나라 왕의 황당한 거짓말을 믿고 제나라를 넘보고 있습니다. 설령 제나라를 쳐서 빼앗는다 해도 황폐한 땅이라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또 『서경』 「반경」편의 고에 ‘옳고 그른 것을 거스르고 공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목을 베어 이 땅에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상나라가 흥성하게 된 까닭입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제나라를 치려는 마음을 접어 두고 먼저 월나라를 처리하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성공하면 충신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p143 태사공은 말한다.

“원한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독은 정녕 심하구나!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어떠하겠는가? 옛날에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하찮은 땅강아지와 무엇이 달랐겠는가!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그 뜻이 참으로 슬프구나! 오자서는 장강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고, 또 길에서 빌어먹을 때도 마음속에 어찌 초나라의 수도 영을 잠깐인들 잊었겠는가? 그는 모든 고초를 견뎌 내어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백공도 만일 스스로 왕이 되려고만 하지 않았던들 그 공적 또한 이루 말하지 못했으리라!”

 

7. 중니 제자 열전

p145 유가의 창시자 공자는 주나라의 신분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과도기에 살았는데, 오랜 세월 제자들과 함께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봉건 제후들에게 유세하며 정치적 직책을 갈망 하였지만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정치가로서의 삶에는 실패했지만 무관(無冠)의 제왕으로 불릴 만큼 교사로서의 역할에서는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공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그의 나이 서른 살을 전후로 하여 제자를 모아 수업을 했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교육관을 ‘유교무류(有敎無類)’에 두었다.

 

<공자의 제자들과 공자가 존경한 사람들>

p147 공자는 “내 문하에서 학업에 힘서 육예에 통달한 사람은 일흔일곱 명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들은 모두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 덕행으로는 안연과 민자건과 염백우와 중궁이 있고, 정치로는 염유와 게로가 있으며, 언변으로는 재아와 자공이 있고, 문학으로는 자유와 자하가 특히 뛰어났다. 그러나 전손사는 생각이 치우친 데가 있고, 증삼은 어리석으며, 고시는 우직하고, 중유는 거친데가 있었다. 안회는 끼니를 자주 거를 만큼 가난하였으며, 단목사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재물만을 모았지만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했다.

나는 나중에 싸부께 뭐라고 일컬어 질까? 공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요즘 생활을 돌아봤다. 그리고 후에 나도 제자들을 길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제자는 이런 점이 좋고, 저 제자는 저런 점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한 인간의 장점, 강점, 좋은점을 알아봐주고, 그 재능이 더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쉬운일이 아닌만큼 값진 일이다.

 

<밥 한 그릇과 물 한바가지로 즐거워하는 안회>

p148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

이런 칭찬이라면 정말 달겠다.

 

<효성스러운 민자건>

 

<덕행은 훌륭하나 몹쓸 병에 걸린 염경>

p150 “하늘의 운명이구나! 이 사람이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운명이구나!”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으면 제물로 쓸 수 있다>

p151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재물로 쓰지 않으려고 하여도 어찌 산천의 신들이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사람의 성격에 따라 조언도 달라야 한다>

p151~152 계강자는 또 물었다.

“자로(子路)는 어진 사람 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염구와 같습니다.”

염구가 공자에게 물었다.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실천해야 한다.”

자로가 물었다.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아버지와 형이 살아 계신데 어찌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하겠느냐?”

자화가 공자의 대답이 다른 것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같은 질문에 달리 대답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좋은 말을 듣고 실행하지 못했는데 또 좋은 말을 들을까 두렵다>

p153 자로가 정치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백성이 해야 할 도리를 앞장서서 하고, 백성의 일을 위해 몸소 애쓰는 것이다.”

자로가 그 밖에 더 해야 될 것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하고 게으르지 않으면 된다.”

“군자는 의(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자로는 좋은 말을 한 가지 듣고 아직 실행하지 않았는데 또다시 좋은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 했다.

“자로의 학문은 지고한 경지에 올랐지만 아직 오묘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

 

<자식은 태어난 지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난다>

p157 이에 공자가 물었다.

“그렇게 하면 네 마음이 편하겠느냐?

“예”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것이 편하면 너는 그렇게 해라! 군자는 부모의 상을 입는 동안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듣기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재여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 년 상은 세상의 합의된 예의이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p158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종묘의 제사 그릇 같은 자공>

p159 자공은 가르침을 받은 뒤에 이렇게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물었다.

“어떤 그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호련(瑚璉)이다.”

(각주 : 종묘 제사 때 기장을 담던 귀중한 그릇으로, 하나라 때는 ‘호’라 부르고 은나라 때는 ‘련’이라 불렀다.)

 

p160 자공이 물었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한 번 움직여 세상의 판도를 새로 짠다>

p163 1000균(1균은 30근의 무게)의 무게도 1수(銖)나 1량(兩)의 작은 무게를 더하여 이루어집니다.

 

p164 용맹스러운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은 다른 나라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웁니다.

 

p165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가지는 일을 꾀하는 데 큰 걱정 거리입니다.

 

p168 이처럼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p169 자공은 또 싸게 사서 비게 파는 일을 좋아하여 때를 보아서 돈을 잘 굴렸다.

배워야 하는 지혜. 정마담이 생각났다. ^^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p169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자유가 말했다.

“전에 저는 선생님께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사람을 부리기 쉽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에 공자는 옆에 있던 제자들에게 말했다.

“언언의 말이 옳다. 내가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다.”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할 수 있다>

p170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서 다듬는다는 뜻이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p171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공자는 자하에게 말했다.

“너는 도에 힘쓰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명성을 좇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이 듣고 삼가면 실수가 적다>

p172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면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 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명망과 통달의 차이>

p173 “그것은(자장의 말 : 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고 집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통달이다.) 명망이지 통달이 아니다.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직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효성으로 이름을 떨친 증삼>

 

<사람은 말과 생김새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

p174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지우에게 실수하였다.”

 

<재능은 배어난데 몸담고 있는 곳이 작다>

p175 “안타깝다. 부제가 다스리는 곳이 너무 작구나! 다스리는 곳이 컸더라면 이상적인 정치를 펼칠 수 잇었을 텐데.”

 

<배우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p176 ‘나라에 도가 제대로 시행되는데도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다만 녹이나 먹고 있고, 나라에 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데도 벼슬자리에 연연하니 녹이나 먹고 있는 것이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이다.“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원헌의 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던 자장>

 

<흰 옥의 티는 갈 수있지만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

p178 “흰 옥의 티는 갈 수 있지만,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몇 차례 되풀이하여 읽자, 조카딸을 그에게 시집 보냈다.

 

<지조를 지킨 공석애와 낭만주의자 증점>

p178 증점은 자가 석이다. 공자를 가까이 모시고 있을 때 공자가 말했다.

“네 뜻을 말해 보아라.”

그러자 증점은 이렇게 말했다.

“봄옷이 새로 만들어지면 젊은이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에닐곱명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기우제를 지내던 누대)밑에서 바람을 쐰 다음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서 감탄했다.

“나도 너와 같이하고 싶구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다>

p179 “잘났든 못났든 저마다 제 자식을 위한다. 그러나 내 아들 공리가 죽었을 때도 내관만 쓰고 외곽은 쓰지 못했다. 내가 수레를 팔아서 아들의 외곽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은 내가 대부가 되어 수레 없이 걸어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역경』의 전수는 끊이지 않았다>

<말만 잘하는 자를 미워한다>

<겸손한 칠조개>

 

<모든 일은 천명에 의해 결정된다>

p182 “도가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도 천명이다. 자주 같은 인물이 그 천명을 어찌 할 수 있겠느냐? 내버려 두라.”

 

<어진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p183 자우가 한번은 군자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우가 다시 물었다.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음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이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예와 의를 좋아하면 사람들이 몰려온다>

p184 “번지는 소인이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만 한다면 사방의 백성이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올 텐데 농사짓는 법ㅇ르 배워 어디에 쓰겠는가?”

번지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를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를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얼굴이 닮았다고 하여 공자가 될 수는 없다>

<군자는 가난한 사람만 돕는다>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p190 각주(2) 삼태기를 멘 노인이 누구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당시 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임은 틀림없다. 그는 공자가 위나라에서 경쇠를 치자 “마음이 담겨 있구나, 저 경쇠소리에는”이라 하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일이다. 물이 깊으면 벗고 건너고, 얕으면 걷고 건너라고 했는데”라고 하며 공자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유세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8. 상군열전

<죽음의 문턱에 있는 자의 말은 믿을 수 없는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성공적인 유세를 할 수 있다>

<옛것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p199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달느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약 제도를 좇지 않았습니다.”

 

p200 위앙이 말했다.

“감룡의 의견은 속된 생각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옛 풍속에 안주하고 학자들은 자기가 배운 것에만 몰두합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관직에 있으면서 법을 지키게 할 수는 있지만 법 이외의 문제(변법)를 더불어 논의할 수는 없습니다. 하,은,주 삼대는 예악 제도가 서로 다르지만 천하에서 오아노릇하였고 오백(춘추 오패)은 종법 제도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예법의 통제를 받으며, 현명한 자는 법을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법에 얽매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 나라에 편하면 옛날 법을 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옛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제왕의 일을 이루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예법을 바꾸지 않았지만 멸망했습니다. 옛날 법을 반대한다고 해서 비난할 것도 아니고 옛날 예법을 따른다고 하여 칭찬할 것도 못 됩니다.”

 

<새로 만든 법은 믿음 속에서 꽃필 수 있다>

<법은 위에서부터 지켜야 한다>

<뱃속에 있는 질병을 없애라>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p206 조량이 대답했다.

“저는 구태여 사귀고 싶지 않습니다. 공자는 ‘어진 이를 추천하여 받드는 자는 번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불러 모아 왕 노릇을 하는 자는 몰락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어질지 못하기 때문에 감히 당신의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또 제가 듣건대 ‘자격이 없는 자가 그 지위에 있는 것을 지위를 탐한다고 하고, 자기가 누릴 명성이 아닌데 그 명성을 누리는 것을 이름을 탐한다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p207 “돌이켜 자기 마음 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疆)이라고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순 임금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천 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천 사람의 아부는 한 사람의 올바른 직언만 못합니다.”

 

p208 상군이 말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겉치레 말ㅇ느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p210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자는 멸망한다.’

 

p212 “상군은 타고난 성품이 잔인하고 덕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효공에게 벼슬을 얻고자 제왕의 도로 유세한 것을 보면 내용이 없고 화려한 말을 늘어놓은 것이지 마음속으로 하려던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9. 소진 열전

p215 앞부분은 소진이 게속 유세에 실패하여 실의에 빠진 모습과 뒷날 유세에 성공하여 득의한 모습을 생동감 있게 대비시킴으로써 문학적 색체를 더했다.

 

<새도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다>

p217 소진(蘇秦)은 동주(東周) 낙양(雒陽)사람으로 스승을 찾아 동족의 제나라로 가서 귀곡(鬼哭)선생에게 배웠다.

 

p218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소. 우리 나라는 다스리는 이치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천하를 통일 할 수 없소.”

 

<천리 밖의 근심을 버리고 백 리 안의 근심부터 해결하라>

<어찌 어두운 곳에서 큰일을 결정하랴?>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

p228 항간의 속담에 ‘차라리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싹이 돋아날 때 베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

p230 신은 월나라 왕 구천은 싸움에 지친 병사 3000명으로 오나라 왕 부차(夫差)를 간수에서 사로잡았고, 주나라 무왕은 병사 3000명과 전차 300대로 목야에서 은나라 주왕을 정복했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그들의 병사가 많아서 이긴 것이겠습니까?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위세를 십분 펼쳤을 뿐입니다.

 

p231 그들은 신하된 자로서 자기 군주에게 땅을 떼어 주고 다른 나라와 우의를 맺도록 요구하여 한때의 성공만을 구하려 들 뿐 그 뒤의 결과는 돌아보지 않는 자들입니다.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과장된 몸짓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라>

<우환이 닥친 뒤에는 걱정해도 소용없다>

p235 신이 듣건대(모든 일은)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해로운 일은) 일어나기 전에 대책을 세워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환이 닥친 뒤에 걱정하면 이미 늦습니다.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긴다>

p238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印綬)를 찰 수 있었을까?”

 

<원수를 버리고 든든한 친구를 얻어라>

p240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굶어 죽는 것과 똑같은 해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연나라는 비록 힘이 약하고 작지만 연나라 왕은 진나라 왕의 사위입니다. 왕께서는 연나라 성 열 개를 얻었으나 강대한 진나라와는 길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힘이 약한 연나라가 기러기 행렬처럼 앞장서고 강대한 진나라가 연나라의 뒤를 봐주며 쳐들어온다면 천하의 정예 병사를 불러들이는 격이니 그것은 오훼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p241 소진이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옛날에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했다고 합니다. / 이것이 이른바 원수를 없애고 돌처럼 단단한 친구를 얻는 길입니다.”

 

<충신만이 죄를 짓는가?>

p242 “~만일 지금 증삼(曾參)같은 효자, 백이(伯夷)같은 청렴한 인물, 미생같은 신의 있는 인물이 있다고 합시다. 이 세 사람을 찾아 왕을 섬기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p243 “증삼같이 효성을 다하는 자는 도리상 자기 부모 곁을 떠나 밖에서 하룻밤도 자지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어떻게 그에게 천 리 밖으로 와서 위기에 빠진 약소한 연나라의 국왕을 섬기도록 하실 수 있겠습니까? 백이처럼 청렴한 자는 의리를 지켜 고죽군의 후사가 되지 않았고, 무왕의 신하가 되는 것도 기꺼워하지 않아 봉읍을 받아 제후가 되지 않고 수양산 아래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청렴한 사람이 있다면 왕께서는 또 어떻게 이러한 사람을 천리 밖 제나라로 보내어 연나라 왕을 위한 일을 추진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미생처럼 신의 있는 자는 다리 밑에서 여인과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그 여인이 오지 않자 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은 채 다리 기둥을 껴안고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의 있는 자를 왕께서는 또 어떻게 천 리 밖으로 보내 제나라의 강한 병사를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른바 충성스럽고 신실하기 때문에 왕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p244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멀리 떠나갔는데, 그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사사로이 정을 통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돌아올 때가 되어 정부가 걱정을 하자, 아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독약 탄 술을 만들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흘이 지나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첩에게 독이 든 술을 가져다가 그에게 권하도록 하였습니다. 첩은 술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러면 주모가 내쫓길까 두렵고 말을 안 하자니 주인을 죽이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질렀습니다. 주인은 몹시 화를 내며 그녀에게 채찍을 쉰 대나 쳤습니다. 첩은 일부러 넘어져 술을 엎어서 위로는 주인을 살리고 아래로는 주모를 쫓겨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 맞는 것만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충성스럽고 신실하다고 해서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신의 허물은 불행하게도 이러한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을 속여 원수를 갚는다.>

<소진이 남긴 사업을 이은 소대와 소려>

p249 “하늘의 시운이 그 나라를 돕지 않으면 청제와 탁하가 있은들 어찌 그것으로 튼튼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힘이 없어지면 장성과 거방이 있은들 어찌 그것을 요새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주색 비단이 흰색 비단보다 열 배 비싸다>

p252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 배나 비싸고, 월나라 왕 구천은 일찍이 회계산으로 쫓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일입니다.

 

<정의로운 행동만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p260 소진이 보통 사람의 집에서 일어나 여섯 나라를 연합시켜 합종을 맺게 한 것은 그 지혜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시대 순서에 따라 그의 경력과 사적을 서술하여 유독 그만이 나쁜 평가를 듣지 않도록 하였다.

 

10. 장의 열전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한다>

p265 장의(張儀)는 위(魏)나라 사람이다.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세술(합종술과 연횡술)을 배웠는데, 소진은 스스로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p267 한편 소진은 조금 있다가 자기 사인(가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의는 천하에세 현명한 인물이니 나는 그를 뛰어넘을 수 없네. 지금은 운이 좋아 내가 먼저 등용되었을 뿐이지. 진나라의 실권을 잡아 휘두를 사람은 장의뿐일세.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등용되지 못했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세. 자네는 나 대신 은밀히 그를 도와주게.”

 

p268 그 뒤는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어 격문(檄文)을 써서 초나라 재상에게 알렸다.

지난날 내가 당신과 술을 마셨을 때 나는 당신 구슬을 훔치지 않았건만 당신은 나를 매질하였소. 이제 당신 나라를 잘 지키시오. 나는 당신 나라의 성읍을 훔칠 것이오.

 

<싸울 때는 명분과 실속을 모두 얻어야 한다>

p270 신은 나라를 잘살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땅을 넓히는 일에 힘쓰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힘쓰며, 왕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덕정(德政)을 널리 펼치는 일에 힘쓴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만 갖추어지면 왕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는 까닭>

<호랑이와 양은 적수가 못 된다>

p282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떼 편에 섰습니다.

 

p285 장의를 용서하고 검중을 얻는 것은 큰 이득이오. 한번 약속한 이상 그것을 어겨서는 안 되오.

 

<달콤한 말은 나라를 망친다>

p287 나라의 오랜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한순간의 달콤한 말을 듣는다면 이보다 더 남의 임금을 망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때의 이익에 끌려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는다>

p288 그러나 왕을 위하여 계책을 내는 자는 모두 한때의 이익에 끌려서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p289 비록 전쟁에서 이겼다는 명성은 얻었지만 실제로는 나라가 망했습니다. 이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제나라는 크고 노나라는 작았기 때문입니다.

 

<오른팔을 잘리면 싸울 수 없다>

p291 정말 오른팔을 잘리고 남과 싸우려 하고, 자기 쪽의 지원군도 없이 고립되어서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허우대는 어른, 생각은 어린아이>

<무왕과 틈이 벌어진 장의>

<사람 됨됨이는 그 주위 사람이 제대로 안다>

p298 “그것은 장의만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도 다 압니다. 예전에 오자서는 그 임금에게 충성하였기 때문에 온 천하가 그를 자기 신하로 삼으려고 서로 다투었고, 증삼은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였기 때문에 온 천하가 그를 자식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노비가 그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팔리면 좋은 노비입니다. 소박 맞고 쫓겨 온 여자가 그 마을에서 다시 결혼한다면 좋은 아내입니다. 지금 신이 자기 임금에게 충성스럽지 않다면 초나라도 어떻게 신을 충성스럽다고 여기겠습니까? 충성을 다해도 버림받으려 하는데 신이 초나라로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혜왕은 그 말을 옳다고 여기고 그 뒤부터 그를 잘 대우하였다.

 

<할 일 없이 술만 마신 서수>

<병들었을 때는 고향이 가장 그립다>

p301 “그대는 과인을 떠나 초나라에 가서도 과인을 생각하였소?”

진진이 되물었다.

“왕께서는 월나라 사람 장석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혜왕이 대답했다.

“듣지 못했소.”

진진은 이렇게 말했다.

“월나라 사람 장석은 초나라를 섬겨 집규가 되었는데 얼마 뒤에 병이 났습니다. 초나라 왕은 ‘장석은 본래 월나라의 미천한 사람이다. 지금은 초나라를 섬겨 집규가 되어 신분이 존귀하고 부유해졌지만 아직도 월나라를 생각하고 있을까?’ 라고 물었습니다. 중사(시종관)가 ‘대체로 사람이 고향을 새각하는 것은 병이 났을 때입니다. 그가 월나라를 생각한다면 월나라 말을 하고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초나라 말을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람을 시켜 가서 들어 보게 하였더니 월나라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신은 버림받고 쫓겨서 초나라로 갔지만 어찌 진나라 말을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보다 나은 자를 밟고 일어선다>

p305 “삼진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두 삼진 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11. 저리자․감무열전

p307 진나라 속담에 “힘은 임비요, 지헤는 저리자.‘라는 말이 있듯이 저리자는 동쪽의 여섯 나라 사이에 싸움을 붙여 진나라가 가만히 앉아서 그 이익을 챙기도록 하였다.

 

<지혜주머니라고 불린 저리자>

p309 저리자의 이름은 질이고 진나라 헤왕의 배다른 동생으로, 어머니는 한나라 사람이다. 그는 우스갯소리나 행동을 잘하고 지혜도 풍부하여 진나라 사람들이 지혜주머니라고 불렀다

 

<아들이 살인했다는 말을 듣고 북을 내던진 어머니>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수레를 뒤엎는다>

p317 짐승도 궁지로 몰리면 수레를 뒤엎는다고 합니다.

 

p318 “세상 사람들은 ‘존귀하게 되는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그 존귀함을 영원히 잃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남의 남는 빛으로 집안을 일으킨다>

p321 제가 듣건대 못사는 여자와 잘사는 여자가 함께 길쌈을 하였는데, 못사는 여자가 ‘나는 초를 살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당신의 촛불에는 남는 빛이 있으니 그 남는 빛을 나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당신의 밝음에 해를 끼치지 않고 나도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저는 곤궁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바야흐로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입니다. 제 아내와 자식은 진나라에 있습니다. 부디 당신의 남는 빛으로 그들을 구제해 주십시오.“

 

<너무 현명해도 재상이 못 된다>

<지혜는 나이와 관계없다>

p324 진시황 : 진나라 장양왕의 아들로 기원전 23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여섯 나라를 병합하고 북쪽으로는 흉노를 내쫓으며, 남쪽으로는 민과 월을 겸병하여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국가를 세웠다. 그는 군현제를 실시하여 온 나라를 서른 개 군으로 나누고, 각 군 아래에는 현을 두었다. 그리고 법률, 도량형, 화폐, 문자 등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공이 삼황을 덮고 덕은 오제보다 높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시황제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그는 분서갱유를 단행하고, 형벌ㅇ르 가혹하게 시행하며, 부역을 너무 무겁게 하여 백성을 고달프게 했다. 그가 죽은 뒤 진2세 호해가 제위를 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농민 봉기가 일어나 나라는 멸망하고 그도 죽었다.

 

12. 양후열전

<외척의 정치 참여>

p333 양후 위염은 진나라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의 동생이다. 그 조상은 초나라 사람으로 성은 미씨이다.

 

<천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p336 조나라 위나라가 나라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군사들은 강인하며 그 땅을 다른 제후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은 어려움을 참고 다른 나라에 땅을 내놓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송나라와 중산은 침략을 받고는 자주 다른 나라에 땅을 떼어 주었기 때문에 나라도 함께 멸망했습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조나라와 위나라를 본받고 송나라와 중산을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p337 주서에 ‘천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으니 이것은 요행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잃는게 없는 싸움을 하라>

<결국 내쫓기는 신세>

 

13. 백기 왕전 열전

p343 사마천은 백기와 왕전이 모두 용병에 뛰어났으므로 이들의 사적을 이 한 편에 묶어 놓음으로써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사마천은 이 편 끝에 <<초사>> <복거>의 “자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에도 긴 데가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새로운 뜻으로 풀이한다. 백기와 왕전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재능을 갖추어 천하를 무찔렀지만 진나라를 위해 천하를 지킬 수는 없었고, 심지어 자기 몸조차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말이다.

<마음을 잘 바꾸는 자는 난을 일으킨다>

p349 9월이 되자 조나라 군대는 식량을 보급받지 못한 지 사십육 일이나 되었으므로 내부에서 서로 죽여 살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나라 군대는 탈출하려고 네 부대를 만들어 진나라 보루를 네댓 번 공격했지만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장군 조괄은 직접 정예군을 이끌고 맨 앞에 나가 싸웠으나 진나라 군사가 쏜 하살에 맞아 죽었다. 마침내 조괄의 군사가 패배하니 병졸 40만 명이 무안군에게 항복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p353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세 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싸움에서 진다>

p353 형가 (각주 :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의 명령을 받고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진나라로 갔다. 형가는 태자와 헤어지면서 “바람 소리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라는 노래를 불러 배웅 나온 사람이 모두 눈을 부릅떴고 머리카락은 관을 찌를 듯 치솟았다고 한다. 그러나 형가는 비수로 진시황을 찌르지도 못하고 죽었다.

p358 태사공은 말한다.

“세상에 ‘자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에도 긴 데가 있다.(각주 : 굴원의 <<초사>> <복거>에 나오는데, 그가 참소를 당하여 점을 쳐 보니 이런 말이 나왔다. 이 말은 무슨 일을 처리할 때 장단점이 있음을 뜻하며, 백기와 왕전의 능력에 서로 장단점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백기는 적의 전력을 헤아려 날쌔게 대응하고 끊임없이 기이한 계책을 생각해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응후와의 사이에서 생긴 근심은 없애지 못했다. 왕전은 진나라 장군이 되어 여섯 나라를 평정했다. 당시 왕전은 노련한 장수가 되어 시황제조차도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진나라를 보필해서 덕을 세워 천하의 근본(인의를 베푸는 것)을 튼튼하게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시황제에게 아첨하여 편하게 있을 곳을 구하다가 늙어서 죽음에 이르렀다. 손자 왕이 때에 이르러 항우에게 사로잡힌 것도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4. 맹자 순경 열전

p361 이 편은 제목과는 달리 잡가들에 관한 열전이다. 사마천은 음양가와 도가의 학문이 사실상 근본이며 기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가의 위대한 두 스승 맹자와 순자의 사적에 관해서는 짧게 다루고 음양오행가와 도가에 대해서는 유가보다 상세하게 다루었다.

<사욕은 혼란의 시작이다>

p363 “나는 일찍이 <<맹자>>라는 책을 읽다가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고 ‘아!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라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 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시대 흐름에 들어맞지 않는 주장은 쓰이지 못한다>

p363~364 맹자는 학문의 이치를 깨우친 뒤 제나라 선왕을 섬기려고 했지만, 선왕이 자신의 주장을 실행하지 않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나라 혜왕도 입으로만 찬성하고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의 주장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실제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만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때였다.

그런데 맹자는 요 임금과 순 임금과 하, 은, 주 세 대 성왕들의 덕치만을 부르짖으므로 가는 곳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추씨 성을 가진 세 학자>

p365 그래서 음양의 소멸과 성장, 변화하는 이치와 기이한 변화를 깊이 관찰하여 <종시>와 <대성>편 등 십여 만 자를 지었다. (추연)

그는 먼저 반드시 [주변의] 작은 일을 살핀 뒤에 이것을 추론하고 확대시켜 무한한 곳까지 이르렀다. 시대를 살필 때도 먼저 현재부터 시작하여 태고의 황제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술하였는데, 이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대개는 세상의 흥함과 쇠함을 논하고, 이로부터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기 전의 멀고 혼돈스러워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시대까지 이른다.

p366 추연의 학설은 다 이런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 결론을 요약하면 반드시 인의와 절약과 검소, 군주와 신하, 위와 아래, 육친(부,모, 형, 제, 처, 자식) 사이의 일로 귀착되는데 그 시작은 너무 크고 넘친다. 왕후나 귀인들은 추연의 학설을 처음 들을 때는 몹시 놀라 감화되는 듯하나 그 뒤로 실행할 수는 없었다.

p367 이러한 일들이 어찌 사회 기풍에 영합하여 구차스럽게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려는 생각이 있어서였겠는가? 네모난 각목을 둥근 구멍에 아무리 넣으려고 한들 들어갈 리가 있겠는가?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춘 뒤에 바른 길로 가게 했다. (이윤, 백리해)

<양나라 혜왕이 순우곤을 만나 한마디도 듣지 못한 까닭>

p368 “그대는 순우 선생이 관중이나 안영도 따를 수 없는 인물이라고 칭찬했소. 그런데 과인은 그를 만나 말 한마디 얻어 듣지 못했소. 과인이 그와 말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오? 무슨 까닭이오?”

빈객이 순우곤에게 이 말을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전에 왕을 만났을 때 왕은 말을 쫓아가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왕이 음악에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래서 나는 말없이 있었소.”

p369 “아! 순우 선생은 정녕 성인이오. 순우 선생이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바쳤는데, 내가 그것을 타 보기 전에 마침 선생께서 오셨소. 선생이 두 번째 왔을 때는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바쳤는데, 사람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쪽으로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것은 사실이오.”

<전국시대 각 지역의 사상가들>

p370 “하늘을 말하는 추연, 용을 아로새긴 듯 문장을 꾸미는 추석, 고고가를 지지는 순우곤!”

(곡과는 수레의 기름을 담는 그릇으로 이것을 지지면 기름이 끊임없이 나온다. 순우곤의 지혜는 곡과를 지지면 나오는 기름처럼 끝이 없다는 뜻이다.)

이사는 일찍이 순경의 제자였는데 훗날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

p371 맹자에서 우자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의 책이 많이 있어 그들의 전기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15. 맹상군 열전

p375 사마천은 사공자 각자의 전을 만들어 전국시대에 각국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재를 초빙하던 모습과 정치적 싸움이 벌어진 면모 날카로운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다.

<사람의 운명은 어디로부터 받는가?>

p379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 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p380 제가 듣건대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궁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질질 끌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짧은 바지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하인들과 첩들은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고도 남아돌지만 선비들은 쌀겨나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쌓아 둔 것이 남아돌지만 더욱 많이 쌓아 두려고만 할 뿐 나라의 힘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은 잊고 계십니다. 저는 이 점이 이상합니다.

p380~381 맹상군은 신분이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과 똑같이 대우해 주었다. 맹상군은 손님과 앉아 이야기할 때 늘 병풍 뒤에 시사(기록하는 사람)를 두어 손님의 친척이 있는 곳을 묻고 그 내용을 적어 두도록 했다. 손님이 나가면 맹상군은 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그의 친척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선물을 주곤 했다.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위기를 벗어난다>

p381 소대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 저는 밖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 거야.’라고 말하자 흙 인형이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굳이 가려고 하시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은 흙 인형의 비웃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생긴대로 살아야지. 본래 태어난 모습대로, 자기가 가진 재능대로 살아야 태풍이 불어도, 비가 많이 와도, 시련이 닥쳐도 견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생긴대로 돌아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잘 적용시키면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모든 일에는 보답이 따른다>

<맹상군의 결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군주가 이익에 눈멀면 백성은 떠난다>

p393 풍환이 대답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술과 소를 많이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 갈 뿐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ㅂ다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은 의심이 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

p396 지난날 제나라 왕이 다른 나라의 비방으로 맹상군을 벼슬에서 쫓아내자 모든 빈객이 맹상군을 떠났다.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불러 다시 재상 자리에 앉히자 풍환이 빈객들을 맞아들이려고 했다. 빈객들이 이르게 전에 맹상군은 크게 한숨을 토하며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언제나 빈객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접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힘썼소. 빈객이 3000여 명이나 있었음은 선생도 아는 바요. 그러나 빈객들은 내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자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떠나가 나를 돌봐 주는 사람이 없었소. 이제 선생의 힘으로 다시 재상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다른 빈객들은 또 무슨 낯으로 나를 볼 수 있겠소. 만약 다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밷어 크게 욕을 보이겠소.”

p397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며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16. 평원군 우경 열전

p401 사마천은 평원군이 다른 사람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 이웃 나라에 명망을 떨친 점에서 ‘평원군은 혼탁한 세상에서 새가 하늘 높이 날듯이 재능과 지혜가 있는 훌륭한 공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애첩을 죽여 신의를 지킨다>

<세 치 혀가 군사 백만 명보다 강하다>

p406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에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삼 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모수가 말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p409 평원군은 합종을 결정짓고 조나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른 수는 많다면 천 명이 되겠고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하였다. 모 선생은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이나 대려 보다도 무겁게 만들었다.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그러고는 마침대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

<나라가 망하면 포로가 도리 수밖에 없다>

p410 그런데 당신의 기물과 종, 경 같은 악기는 그대로입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무너뜨린다면 당신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조나라가 안전할 수만 있다면 어찌 당신이 이런 것이 없음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지키지 못한다>

p417 옛말에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앉아서 진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면 진나라 군사는 애쓰지 않고 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조나라를 약하게 만듭니다. 더욱더 강해지는 진나라가 더욱더 약해지는 조나라 땅을 떼어 받는 일이니 진나라의 요구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왕의 땅은 끝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요구에 응하면 그 결과는 조나라의 멸망뿐입니다.”

p418 그러므로 그 말은 같지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도 바뀝니다.

p421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함께 일을 하면 이로운 것이 있을 때에는 큰 나라가 그 복을 받고, 일이 잘못되면 작은 나라가 그 화를 입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나라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비판했다. 세상에서 이것을 전하여 <<우씨춘추>>라고 한다.

 

17. 위공자 열전

<어진 사람을 얻으려면 정성을 다하라>

p427 공자는 사람됨이 어질고 선비들에게 예의로 대우했다. 선비가 어질든 그렇지 않든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예를 갖추어 사귀고, 자기가 부귀하다고 해서 교만하게 구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선비들은 사방 수천 리에서 앞을 다투어 몰려와 공자에게 몸을 의지하여 빈객이 3000명이나 되었다.

<숨어 사는 선비 후영과 주해>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 주지 말라>

p432 “내가 후영을 부족함 없이 대우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후영은 지금 내가 죽으러 길을 떠나는데도 헤어지는 인사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섭섭한 마음인데도, 마음이 불쾌한데도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부분이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후영은 왜 그럴까? 이럴줄 알았는데, 공자는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한다. 역시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은 다르다.)

공자는 다시 수레를 돌려 후영을 찾아가 물었다. 그러자 후영은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선비를 아껴 명성이 천하에 알려졌습니다.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하여 이렇다 할 계책도 없이 진나라 군대를 향해 뛰어들려고 하니, 이는 비유하자면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 주는 것과 같으니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찌 평소에 빈객을 기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저를 두텁게 대해 주셨지만 공자께서 죽을 길을 떠나는데도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자께서 원망하여 되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p434 “저는 시장에서 칼을 휘둘러 짐승을 잡는 백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께서 몸소 자주 찾아 주셨습니다. 일일이 답례하지 않은 까닭은 하찮은 예의 같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공자께서 위급한 처지에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제가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

<잊으면 안 되는 일과 잊어야 할 일>

p436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노름꾼과 술 파는 자라도 어질면 찾아가라>

p438 그런데 평원군은 사람을 사귀는 데 그저 호걸인 척하는 몸짓만 있을 뿐 참다운 선비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대량에 있을 적부터 줄곧 이 두 사람이 어질다고 들어 온 터라 조나라에 온 이래로 그들을 만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내가 좇아 사귀려고 해도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평원군은 그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니, 그는 사귈 만한 인물이 못 됩니다.”

<비방 한마디가 인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18. 춘신군 열전

p443 진나라는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면서 능력 있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고 어질지 못한 자는 내침으로써 서쪽 변방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위염, 범저, 채택 등이 떠나간 것을 보면 겉으로는 진나라 왕이 은혜로운 마음이 적고 지나간 은덕을 생각지 않은 듯하지만, 사실상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인재를 계속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못 이긴다>

p446 천하에 진나라와 초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 들리는 말로는 대왕께서 초나라를 치려고 한다는데 이것ㅇ느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면 힘이 약한 개가 그 기회를 틈타 이익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 더 낫습니다.

신은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을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라고 들었습니다.

p447 <<시경>>에 “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 라고 했고, <<역경>>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p448 <<시경>>에 “병사를 잘 다스리는 이는 멀리까지 가서 정벌하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또 <<시경>>에 “이리저리 날뛰는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 마음에 두고 있으면 내 마음으로 그걸 헤아릴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신은 “적은 용서하면 안 되고 때는 놓치면 안 된다.”라고 들었습니다.

<신하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p454 춘신군이 재상이 되어 초나라에 있을 때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고,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있으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었다.

<정확한 결단만이 몸을 보존할 수 있다>

p458 이원은 이미 자기 누이동생이 궁궐로 들어가 왕후가 되고 그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오거나 그 일로 점점 오만해질까 염려하여 남몰래 죽음을 각오한 용감한 병사들을 길러서 춘신군을 죽여 그의 입을 막아 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 중 많은 이가 이 일을 알고 있었다.

<복과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p459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던 복이 찾아올 수도 있고, 또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과 재앙이 찾아오는 세상에 살고 있고, 기대를 걸 수 없는 군주를 섬기고 계십니다. 어찌 재앙을 막아 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를 구해 두지 않으십니까?”

(예나 지금이나, 복과 불행은 인간에게 달린 것이 아닌 것 같다. 또, 우리가 생각했던 복이 불행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복이 될때도 있다. 복이 복인줄 알고, 불행이 불행인 줄 아는 것도 우리에겐 중요한 깨달음이 된다.)

p461 “내가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과 궁실을 보니 정말 웅장하고 화려했다. 처음에 춘신군이 진나라 소왕을 설득하고 몸을 던져 초나라 태자를 돌아오게 한 것은 얼마나 뛰어난 지혜였던가? 그런데 마지막에 이원에게 당한 일은 늙어서 사리 판단에 어두워진 탓이리라.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

 

19. 범저 채택 열전

p465 범저는 위나라 사람으로 자는 숙이다. 그는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위나라 왕을 섬기려고 했다. 그러나 가난하여 자기 능력으로는 활동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우선 위나라 중대부 수고를 섬겼다.

p466 위나라 사람 정안평이 이 소문을 듣고 범저를 데리고 달아나 숨어 살았다. 범저는 성과 이름을 바꿔 장록이라고 했다.

p468 그가 ‘진나라 왕의 나라는 달걀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지만 내 의견을 들으면 무사할 수 있는데 내 의견을 글로 전할 수는 없다.’라고 하기에 신이 그를 수레에 태워 데리고 왔습니다.

<제후의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

p469 신이 듣건대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면 고잉 있는 자는 반드시 상을 받고, 능력이 있는 자는 반드시 관직을 받을 수 있다. 공로가 큰 자는 그 봉록이 크고, 공이 많은 자는 그 관직이 높으며,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그 관직이 높다. 그러므로 능력이 없는 자는 감히 관직을 받지 못하고, 능력이 있는 자는 스스로 재능을 감출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옛말에도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 내린다.”라고 했습니다.

신이 들으니 “주나라에는 지액이 있고, 송나라에는 결록이 있으며, 양나라에는 현려가 있고, 초나라에는 화박이 있다. 이 네가지 보옥은 흙 속에서 나온 것으로 처음에는 뛰어난 장인들도 그것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결국은 천하에서 이름난 보물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대부의 집을 번창시킬 인재는 나라 안에서 찾고, 제후의 나라를 번창시킬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라고 들었습니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을 알고, 훌륭한 군주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밝습니다. 이로우면 행하고 해로우면 버리고 의심스러우면 좀더 시험해 봅니다. 이러한 점은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이 다시 태어나더라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p472 ‘태공망 여상’ (각주 : 은나라 말부터 주나라 초기 사람으로 본래 성은 강인데, 그 선친이 여에 봉해졌기 때문에 여를 성으로 삼았다. 강상이라고 하며 호는 태공망이다. 문왕이 위수 가에서 곧은 낚시로 고리를 낚고 있는 그를 만나 스승으로 삼았으며, 뒤에 태공망은 무왕을 도와 은나라 주왕을 쳐서 멸망시켜 주나라를 세우고 그 공으로 제나라의 제후가 되었다. 그는 낚시를 매우 즐겼으므로 오늘날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흔히 강태공이라 한다.

p473 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면 죽더라도 걱정하지 않으며, 떠도는 신세가 되어도 근심하지 않으며, 몸에 옷칠을 하여 문등병 환자처럼 되고 머리를 풀어헤쳐 미치광이처럼 된다 해도 신은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제같은 성인도 죽고, 삼왕 같은 어진 사람도 죽었으며, 오백 같은 현인도 죽고, 오획이나 임비 같은 힘센 장사도 죽고, 성형과 맹분과 왕경기와 하육 같은 용사도 죽었습니다. 죽음이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죽을몸, 죽음으로써 조금이라도 진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의 가장 큰 바람인데 또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내가 죽어도 좋을 만큼, 열중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옛 사람들에게 ‘국가, 임금’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백성들에게 나라의 의미는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기 열전>>에 나온 사람들에게 적어도 지금 쓰고 있는 부분만큼은 나라가 곧 자기의 목숨과 같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현대 사회에서 한 인간이 태어난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어떨까?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점에서 부럽기도하고, 국가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게 되는 부분이다.)

p474 다만 신이 두려워하는 바는 신이 죽은 뒤, 천하의 인사들이 신이 충성을 다하고도 죽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며 진나라로 가기를 달갑지 않게 여길까 하는 점입니다.

p475 용감한 진나라 병사와 많은 전차를 이용하면 제후들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로(전국시대에 한에서 생산되던 털이 검은 개)같은 명견을 몰아 절름발이 토끼를 잡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p478 진나라에게 한나라가 있다는 것은 나무에 좀벌레가 있고 사람의 내장에 병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천하에 아무런 일도 없으면 다행입니다만, 만약 일이 생기면 진나라의 걱정거리로는 한나라보다 더한 나라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한나라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진다>

p479 대체로 나랏일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자를 왕이라 하고, 사람에게 이익과 해를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 하며,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위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태후는 왕을 돌아보지 않고 나랏일을 마음대로 처리하고, 양후는 다른 나라로 사신을 보내면서도 왕께 보고하지 않으며, 화양군과 경양군은 멋대로 사람을 죽이고도 왕을 꺼리지 않고, 고릉군은 사람을 마음대로 나아가고 물러나게 하면서도 왕의 허락을 청하지 않습니다.

p480 신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안으로는 그 권위를 굳히고 밖으로는 그 권력을 무겁게 한다.’라고 들었습니다.

싸워서 이기고 쳐서 빼앗으며 이익은 도읍(양후의 봉토)으로 돌리고 손해는 제후에게 씌웁니다. 싸움에 지면 백성을 원망하고 화근을 나라 탓으로 돌립니다. 옛 시에도 ‘나무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 기둥을 해친다.’라고 했습니다. 수도가 지나치게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가 지나체게 존중되면 군주가 낮아집니다.

<머리카락을 뽑아 속죄해도 부족하다>

p484 “저는 당신께서 당신 힘으로 이처럼 출세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 다시는 천하의 글을 읽지도 않으며 천하의 일에 관여하지도 않겠습니다. 저의 죄는 솥에 삶아 죽어 마땅하지만 스스로 북쪽 오랑케 땅으로 물러가게 해 주십시오. 부디 살려 주십시오.”

범저가 말했다.

“네 죄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수고가 대답했다.

“제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 속죄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p489 “사람이란 본래 알기가 힘들지만 남의 됨됨이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는 남의 곤궁함을 긴급하게 여겨 공자를 의지하러 온 것입니다.

<군주가 어진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다>

p493 “어떻게 아직도 그 까닭을 모르십니까? 대체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은 차례로 할 일을 다하면 물러갑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신체가 건강하고 팔다리가 성하고 눈과 귀가 밝고 마음이 지혜로운 것이 선비의 바람 아니겠습니까?”

“인을 바탕으로 하여 의를 지키며 도를 시행하여 덕을 베푼다면 천하에 자기 뜻을 이루는 것이고, 천하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흠모하여 군주로 받들고자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변설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선비가 기대하는 바 아니겠습니까?”

p494 “부귀와 명예를 같이 누리며, 세상의 모든 일을 잘 처리하여 각기 제자리를 찾게 하고,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살아 하늘이 준 수명을 다 누리고, 천하 사람들이 그 전통을 물려받아 그의 사업을 지켜 영원토록 전해지게 하고, 이름과 실제 모습이 참되어 그 은덕이 천 리 먼 곳까지 미치며, 대대로 이를 칭송해서 끊이지 않게 하여 천지와 함꼐 시작과 끝을 같이 한다면 이야말로 도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성인이 말하듯 상서롭고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척 좋은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운명을 타고나거나, 자식이 이런 운명이기를 바라지 않을까?)

p495 선비란 본래 자기 몸을 죽여서 이름을 남기나니 정의를 위해서라면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소. 어찌 세 사람이 선비가 바라는 대상이 될 수 없겠소?

군주가 성스럽고 신하가 어진 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복입니다. 군주가 명철하고 신하가 정직한 것은 나라의 행복입니다. 아버지가 자애롭고 자식이 효성스러우며 남편이 성실하고 아내가 정숙한 것은 가정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비간은 충성스러워도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했고, 오자서는 지혜롭지만 오나라를 온전하게 하지 못했으며, 신생은 효성스러워도 진나라는 어지러웠습니다.

이처럼 모두 충신이고 효자이지만 나라가 망하고 집이 어지러워진 까닭은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군주와 현명한 아버지가 없어서 충신과 효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

p498 옛말에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바로 쇠약해져 떨어지는 것은 천지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시행되면 나아가서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물러나 숨어야 합니다. 성인이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덕이 있는 자를 만나기에 이롭다.’라고 말했고,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원한을 이미 다 갚았고 은혜도 이미 갚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고 싶던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물총새, 따오기, 코뿔소, 코끼리는 그들이 사는 곳이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하늘에서 내려준 수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잡혀 죽는 까닭은 먹이를 탐하는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소진과 지백의 지혜는 욕된 것을 피하고 피살될 위험을 멀리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죽은 까닭은 욕심에 빠져 그칠 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예의를 만들어 욕심을 누르고,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데도 한도를 두었고, 백성을 부리는 데도 농사철이 아닌 때를 골라 일을 시키는 등 제한을 두었습니다.생각은 지나치지 않고 행동은 교만하지 않으며 언제나 도를 지켜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이 그를 끊임없이 본받아 이어 갔던 것입니다.

p499 이는 모두 최고에 이르렀을 때 본연의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모른 데서 생긴 재앙입니다.

p500 오기는 초나라 도왕을 위하여 법률을 세우고 지나치게 무거운 대신의 권위를 낮추며, 능력 없는 관리를 파면시키고 쓸모없는 직위를 없애며, 필요하지 않은 관직을 줄이고 개인의 청탁을 막았습니다. 또 초나라 풍속을 하나로 통일시키며 백성이 유세하는 것을 금하고, 농부와 병사를 철저히 훈련시켜 남쪽으로는 양주의 월나라를 손에 넣고 북쪽으로는 진과 채를 병합시켜 연횡과 합종책을 깨뜨려서 유세를 일삼으며 다니는 선비들이 입을 열지 못하게 하고 당파 만드는 것을 금하며 백성을 격려하여 초나라의 정치를 안정시켰습니다. 병력은 천하를 떨게 하고, 위세는 제후들을 복종시켰습니다. 그러나 공적이 이루어진 뒤에는 결국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p501 앞에서 말한 네 사람은 공을 이루고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재앙을 입었습니다. 이른바 ‘펼 줄만 알고 굽힐 줄 모르며, 앞으로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 모르는 사람’이지요. 범려는 이러한 이치를 알아 초연하게 세상을 떠나 도주공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도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크게 걸어 단판에 승부를 내려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씩 걸어 천천히 승부를 내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신도 잘 아는 일입니다.

p502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 라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p503 <<역경>>에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고,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신은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 라고 들었소. 선생께서 다행이 나에게 말씀해 주셨으니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소.

p504 “한비자가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 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진실로 옳은 말이다. 범저와 채택은 세상에서 말하는 뛰어난 변사로서 어떤 경우에도 자유자재로 변론할 수 있는 유세가였다. 그러나 각국의 제후에게 유세하여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나라들의 힘이 약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두루 돌아다닌 끝에 진나라로 들어가자 잇달아 경상이 되고 공을 천하에 떨친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강하고 약한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 못지않는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잇었겠는가?

 

20. 악의 열전

<충신이 반역자가 되는 것은 하루 아침이다>

<군주와 신하의 의는 무엇인가>

p513 신이 듣기에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가깝다는 이유로 봉록을 주지 않고 공로가 많은 자에게 상을 주며, 능력 있는 사람에게 그에 맞는 일을 맡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재능을 살펴 관직을 주는 이는 공적을 이루는 군주이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사귀는 이는 이름을 남기는 선비입니다.

p515 신이 듣건대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공을 세우면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을 가진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까지 칭송을 받는다.”라고 합니다.

또 신이 듣건대 “일을 잘 꾸민다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이루는 것은 아니며, 시작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무리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합니다.

신이 듣건대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신은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군자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떠나라>

p518 한 집안에서 말썽이 있었다 하여 서로 정성을 다하지 않고 이웃에 일러바치는 것은 어쩐 일이오. 과인이 보기에 그대가 과인에게 간하지 않고 또 이웃 나라인 조나라로 달아난 이 두가지 일은 그대를 위해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소.

 

21. 염파 인상여 열전

<큰 나라끼라 사귀는 데는 법도가 있다>

p524 “신은 일찍이 왕께 죄를 짓고 남몰래 연나라로 달아나려는 계획을 세운 일이 있습니다. 그때 신의 사인 인상여가 말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연나라 왕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그래서 신은 ‘오아을 모시고 국경 부근에서 연나라 왕과 만난 일이 있소. 그때 연나라 왕이 가만히 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였소. 이 일로 연나라 왕을 알게 되었소.’ 라고 하였습니다. 인상여는 신에게 ‘조나라는 강하고 연나라는 약합니다. 게다가 당신께서는 조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여난라 왕께서 당신과 친구가 되어 사귀려고 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께서 연나라로 달아나면 연나라는 조나라를 두려워하여 반드시 당신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사로잡아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웃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고 부질(죄인을 죽이는 데 쓰는 도끼와 모탕)에 엎드려 처벌을 바라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행히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신이 인상여 계책대로 했더니 왕께서 다행히 신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은 인상여를 용감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사신으로 보낼 만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p526 신은 ‘일반 백성의 사귐에도 오히려 서로 속이지 않거늘, 하물며 큰 나라끼리 사귀는 데 그럴 수 있겠는가? 게다가 화씨벽 하나 때문에 강한 진나라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나라 왕은 닷새 동안 재계한 뒤 신을 사신으로 삼아 화씨벽을 받들게 하고, 진나라 조정에 삼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조나라 왕이 이렇게 하신 까닭은 큰 나라의 위엄을 존중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다하려고 한 것입니다.

<피를 뿌려서라도 군주의 위엄을 지킨다>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한다>

p532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세금이 공평하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쥐구멍 안의 싸움에서는 용감한 쥐가 이긴다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르다>

p538 “왕께서는 명성만 믿고 조괄을 쓰시려 하는데, 이는 거문고의 괘를 아교로 붙여서 고정시키고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을 그저 자기 아버지가 남긴 병법 책을 읽었을 뿐 사태 변화에 대처할 줄은 모릅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 괄을 장군으로 삼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는 파멸당할 것이오.”

<권세를 가진 자에게는 사람이 몰린다>

p542 “나는 조나라 군사로서 싸우고 싶다.”

염파는 결국 수춘에서 죽었다.

<죽음을 알면 용기가 솟는다>

p545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 주엥 어떤 이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2. 전단 열전

<수레바퀴 축의 쇠가 목숨을 구한다>

p549 전단은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수레바퀴 축의 양끝을 모조리 잘라 버리고 쇠를 덧붙여 튼튼하게 만들도록 했다. 얼마 뒤 연나라 군대가 안평을 쳐서 성을 함락시켜 제나라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달아났지만, 바퀴 축의 양 끝이 부러져 수레가 부서지는 바람에 모두 연나라 군대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오직 전단의 집안사람들만은 바퀴 축을 쇠로 싸 두었기 때문에 탈출하여 동쪽 즉묵으로 가서 몸을 보존할 수 있었다.

<기묘한 계책으로 적의 허를 찔러라>

p554 용병의 도는 정공법으로 싸우고, 기이한 계책으로 (허를 찔러)이기는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기이한 계책을 무궁무진하게 낸다. 기이한 계책과 정공법이 서로 어우러져 쓰이는 것은 마치 끝이 없는 둥근 고리 같다. 대체로 기이한 병법은 처음에는 처녀처럼 약하게 보여 적군이 (얕잡아 보고) 문을 열어 두게 하지만, 나중에는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날래져서 적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이는 전단의 용병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p555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조 있는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소. 제나라 왕이 내 간언을 듣지 않아서 벼슬을 그만두고 들에서 밭을 일구고 있지만, 나라는 이미 깨어져 망하였고 나는 나라를 보존시킬 수 없소. 그런데 지금 또 협박을 받아 당신의 장수가 된다면 걸왕을 도와 포악한 행동을 일삼는 것과 같을 것이오. 살아서 의로운 일을 못할 바에는 차라리 가마솥에서 삶겨 죽는 편이 낫소.”

 

23. 노중련, 추양 열전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

p559 노중련은 제나라 사람으로 독특하고도 획기적인 계책을 잘 쓰는 인물이었지만, 벼슬에 나갈 마음이 없어 고상한 절개를 지키며 살았다.

p563 “선생께서는 저 하인들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하인 열 명이 한 사람을 따르는 것은 어찌 힘이 그만 못하고 지혜가 모자라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주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p566 그러자 노중련이 웃으며 말했다.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 주며 다툼을 풀어 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입니다. 저는 이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평원군에게 인사하고 떠나가서는 평생토록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잠시의 부끄러움을 참고 이름을 길이 남겨라>

p567 제가 듣건대 지혜로운 자는 때를 거슬러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겁내어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으며, 충성스러운 신하는 자기 한 몸을 앞세워 군주를 뒤로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장군은 지금 사느냐 죽느냐, 영예냐 오욕이냐, 부귀냐 천함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부디 깊이 생각하여 속된 사람들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p569~570 또한 제가 듣건대 작은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관자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공자 규를 위해 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나라가 제후들 사이에서 위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자는 세 번 싸워 세 번 패한 부끄러움을 떨쳐 버리고 돌아와 노라나 왕과 계책을 상의했습니다. 제나라 환공이 천하 제후들을 모아 만나는 기회를 틈타 조자는 칼 한 자루의 힘만 믿고 단상으로 뛰어 올라 환공의 심장을 겨누었습니다. 그때 조자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차례 싸움에서 잃었던 땅을 하루아침에 되찾았습니다.

p571 이 두 사람은 작은 부끄러움과 작은 절개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고 후손을 끊어 공과 이름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잠시 개인적인 울분과 원한을 버리고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이름을 세웠으며, 원망에 사로잡힌 작은 절개를 버리고 대대로 전해질 수 있는 공을 세운 것입니다.

연나라 장군은 노중련의 편지를 읽고 사흘 동안 흐느껴 울며 망설이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가자니 연나라 왕과 틈이 생겨 죽을까 봐 두렵고, 제나라에 항복하자니 제나라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이고 사로잡았기 때문에 항복한 뒤에 치욕을 당할 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칼에 죽느니 차라리 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p571~572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을가볍게 내 맘대로 살리라!”

<여러 사람 입은 무쇠도 녹인다>

p572 신이 듣기로 충성된 사람은 군주에게 대가를 받지 않는 일이 없고, 진실한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은 언제나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빈말일 뿐입니다.

p573 지금 신은 충성과 정성을 다하여 마음속의 계책을 다 말씀드려 대왕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랐지만, 대왕 주위의 신하들이 밝지 못한 탓으로 오히려 옥리에게 심문ㅇ르 당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형가와 위 선생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연나라와 진나라는 그들의 참뜻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대왕꼐서는 깊이 살펴보십시오.

속담에 “젊을 때부터 흰머리가 되도록 사귀었으면서도 새로 사귄 듯한 이가 있는가 하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도 옛날부터 사귄것 같은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입니다.

p574 백규가 중산에서 공을 세웠을 때 중산의 어떤 사람이 위나라 문후에게 그를 비방하였지만, 문후는 오히려 밤에도 빛을 발하는 구슬을 백규에게 내렸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는 두 군주와 두 신하가 심장을 드러내고 간을 가르는 것처럼 가슴을 열고 서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근거도 없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겠습니까?”

p575 여자는 예쁘든 못생겼든 궁중으로 들어가면 질투를 받고,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으로 들어가면 시샘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바당 주지 않더라도 도의상 구차하게 조정에서 당파를 만들어 군주의 마음을 흔드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한쪽 말만 들으면 간사한 일이 생기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p576 여러 사람 입은 무쇠라도 녹일 수 있고, 헐뜯는 말이 쌓이고 쌓이면 뼈라도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p578 어진 임금이 세상을 다스리고 풍속을 바로잡을 때는 도고잉 돌림판으로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교화시킵니다.

즉 진시황은 곁에 있던 사람의 말만 듣다가 죽을 뻔하였지만 주나라 문왕은 까마귀가 한데 모여 앉듯이 우연히 여상을 등용하여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주나라 문왕은 속박하는 말 따위를 넘어서 어느 하나에 군한되지 않는 의견을 발휘하여 밝고 넓은 길을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p579 신이 듣건대 “의고나을 바르게 하고 조정에 들어온 사람은 이익을 위해 의로움을 더럽히지 않으며, 명예를 갈고 닦는 사람은 욕심 때문에 행실을 그르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태상공은 말한다.

“노중련은 지향하는 뜻이 대의에 맞지 않았지만 벼슬도 지위도 없는 처지에서 자신의 뜻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실천하며 제후들에게 굽히는 일이 없었으며, 당대에 자신의 언변을 떨치며 대신들의 권력을 꺾은 점이 훌륭하다. 추양은 말하는 태도가 공손하지는 않았지만 사물을 비유해 가며 그 실례를 하나하나 든 점에서 비장함이 있었고, 또 절개를 굽히지 않고 강직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이 열전에 덧붙였다.

 

24. 굴원 가생 열전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p585 굴원은 이름이 평이고 초나라 왕실과 성이 같다. 그는 초나라 회왕의 좌도로 있었는데,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기억력이 뛰어나며 잘 다스려질 때와 혼란스러울 때의 일에 밝고 글을 쓰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는 궁궐에 들어가서는 군주와 나랏일을 의논하여 명령을 내리고, 밖으로 나와서는 빈객을 맞이하며 제후들을 상대하였다. 회왕은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p586 ‘이소’란 ‘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라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굴원은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겼지만 헐뜯는 사람의 이간질로 곤궁해졌다고 할 수 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원이 <이소>를 지은 것은 이처럼 분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 글은 간결하고 그 문장은 미묘하며, 그 뜻은 고결하고 그 행동은 청렴하다. 그 문장은 사소한 것을 적었지만 담은 뜻은 매우 크며, 눈앞에 흔히 보이는 사물을 인용했지만 그 뜻은 높고 깊다. 그 뜻이 고결하므로 비유로 든 사물마다 향기를 뿜어 내고, 그 행동이 청렴하므로 죽을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흙 속에서 뒹굴다 더러워지자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씻어내고, 먼지 쌓인 속세 밖으로 헤쳐 나와서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연꽃처럼) 깨끗하여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지조는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 만하다.

<우물물이 맑아도 마시지 않으니 슬프다>

p590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거듭 생기고, 훌륭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충신이라는 이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이가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생긴 재앙이다. <<역경>>에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이 물을 길어 갈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 라고 하였다. 왕이 현명하지 않은데 어찌 복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p591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사마천이 자신의 삶을 굴원의 삶에 이입 시킨 부분인 것 같다.)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각주 : 여기서는 그 시대의 일을 아는 자를 가리킬 뿐 도덕적, 인격적 경지에 오른 인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이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에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지었다.

p593 흰 것 검다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하네.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닭과 꿩은 하늘을 나네. /옥과 돌을 뒤섞어/ 하나로 헤아리니, / 저들은 더러운 마음뿐이라/ 내 좋은 점을 알 수가 없지!

p594 슬픔 만났으나 절개 꺾지 않으리니/ 내 뜻 뒷날의 본보기가 되기 바라네.

p595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내 마음 말하지 않으리!

마음 진정하고 뜻을 넓히면/ 내 무엇 두려워하랴!

세상이 어지러워 나를 알지 못하니/ 내 마음 말하지 않으리.

죽음 피할 길 없음을 알기에/ 부디 슬퍼하지 말자.

<묘자를 신발 삼아 신어서야 되겠는가>

p597 그는 사람들이 각기 마음속으로 생각은 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아주 명확하게 대답했다.

p598 가생은 상수를 건널 때 부를 지어 굴원을 조문하였는데 그 문장을 이러하다

얼핏 굴원을 풍문에 들으니 / 스스로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하네. / 상수 흐르는 물에 부쳐/ 선생께 삼가 조의를 표하네. / 법도 없는 세상을 만나/ 그 몸을 던졌구나! / 아, 슬프다./ 좋지 못한 때를 만남이여!

<들새가 들어오고 주인이 나간다>

가생이 장사왕의 태부가 된지 삼 년쯤 되자 부엉이가 가생의 집으로날아 들어 방구석에 앉았다. 이때 부를 지어 스스로 위로했으니 그 문장을 이러하다.

p602 만물이 변하며/ 진실로 쉼이 없다./ 돌아 흘러서 옮겨 가고/ 또는 밀어서 돌아간다./ 형체와 기운이 끊임없이 도니/ 변하고 진화하는 것 매미와 같네. /그 깊은 이치 끝이 없는데/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

p604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낮추고 자기를 귀하다 하네. / 통달한 사람은 넓게 보고/ 무슨 물건이건 한결같이 보네./ 탐욕스러운 사람은 재물을 위하여 죽고/ 열사는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법. /권세를 뽐내는 자는 권세 때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삶에만 매달리지/ 이익에 유혹되고 가난에 쫓기는 무리는/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네./ 성인은 사물에 굽히지 않고/ 수많은 변화를 만나도 한결같다네./ 세속 일에 구애받는 사람은/ 우리 속에 갇힌 죄수 같도다./

진실한 사람은 담박하고 적막해서/ 홀로 도와 더불어 사는도다. /지혜와 형체를 버리고/ 초연히 죽은 듯이 하는구나./

흐름을 타면 흘러가고/ 모랫벌에 닿으면 멈춘다네. /몸을 자유롭게 천명에 맡기고/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네/ 살아 있으면 떠 있는 것 같고/ 죽으면 쉬는 것 같네/ 심연의 고요함처럼 담담하고/ 매이지 않은 배처럼 떠 있네.

p606 살아도 스스로 귀중히 여기지 않고/ 공허한 마음을 길러서 유유자적한다네./ 덕 있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고/ 천명을 알아 근심이 없으니/ 하찮은 일이야/ 어찌 걱정하겠는가!

p607 가생은 태부로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여 일 년 남짓 슬피 울다가 또한 죽었다. 이때 나이가 서른셋이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이소>, <천문>, <초혼>, <애영>을 읽어보니 그 내용이 슬펐다. 장사에 가서 굴원이 스스로 빠져 죽은 연못을 바라보고 일찍이 눈물을 떨구며 그의 사람 됨됨이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복조부>를 읽으니 그는 삶과 죽음을 한가지로 보고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가볍게 여겼으니,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5. 여불위 열전

<진귀한 재물은 사 둘만하다>

p615 “제가 듣건대 아름다운 얼굴로 남을 섬기는 자는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면 사랑도 시든다고 합니다.”

<한 글자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p617 자초는 여불위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일어나 여불위의 장수를 축하하면서 그녀를 달라고 했다. 여불위는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자기 집 재산을 다 기울여 자초를 위해 힘쓰고 있는 까닭은 진기한 재물을 낚으려는 것임을 떠올리고 마침내 그여자를 바쳤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몸임을 숨기고 만삭이 되어 정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자초는 마침내 그 여자를 부인으로 세웠다.

<거짓으로 얻은 명성은 물거품 같다>

p621 공자가 말한 ‘소문’이라는 것은 아마 여불위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소문 : 이 말은 <<논어>> <안연>편의 “소문이란 겉으로는 인덕을 좋아하는 듯하지만 실제 행동은 오히려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어진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면서도 그에 대한 의혹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관리가 될 때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하고, 집에 있을 때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한다.” 라는 구절에서 나온다. 이 말은 마융이 말한 바와 같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26. 자객 열전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p626 “약속을 어기면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제후들의 신뢰를 잃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땅을 돌려주시는 편이 낫습니다.”

<혈육을 죽이고 왕이 된다>

<충신은 지조를 위해 죽는다>

p630 “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단장한다고 했다.”

p631 “예물을 바치고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주인을 섬기는 것일세.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우 어렵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까닭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게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

p632 “신이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다.’라고 합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

p635 그처럼 어진 사람이 격분하여 원수를 쏘아보면서 나 같은 시골뜨기를 가까이하고 믿어주었으니, 내 어찌 가만히 있을쏘냐! 또 전날 그가 나를 필요로 하였으나 나는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이제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는 앞으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리라.

p636 사람이 많으면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길 수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생기면 말이 새어 나갈 것이며, 말이 새어 나가면 한나라 전체가 당신을 원수로 여길 텐데 어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p638 선비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섭정만 위대한 게 아니라 그 누이도 장한 여인이다. 섭정의 누이가 참고 견디는 성격이 아니라서 시신이 버려지고 해골이 드러나는 고통을 두려워 않고 천 리 험한 길을 달려와 이름을 나란히 하여 남매가 함께 한나라 시장 바닥에서 죽음을 맞을 줄 섭정이 미리 알았더라면 감히 엄중자에게 자신을 바치지는 않았으리라. 엄중자도 인물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용감한 선비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인물은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인다>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기를 던져 놓는다.

p642~643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새로 사귄 친구 한 명과 사귐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서 나라의 커다란 피해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원한을 쌓고 재앙을 만드는 일입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기란 가벼운 기러기 깃털 하나를 화로의 숯불 위에 놓아 태우는 것처럼 아주 손쉽습니다. 그러니 독수리나 매처럼 탐욕스럽고 사나운 진나라가 원망에 가득 차서 포악스럽게 노여워한다면 그 맹렬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연나라에 전광 선생이라는 분이 계신데 지혜가 깊고 용감하며 침착하니 더불어 상의할 만합니다.”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아야 성공한다>

p645 “내가 듣건대 나이 들고 덕 있는 사람은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품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태나께서는 내게 ‘우리가 말한 것은 나라의 큰일이니 선생께서는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태자가 나를 의심한 것입니다. 대체로 일을 행할 때 남에게 의심을 사는 것은 절개 있고 의협심 있는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자객은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27. 이사 열전

p659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으로 훗날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p661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그는 젊을 때 군에서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느 쥐들은 쌓아 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저는 때를 얻으면 꾸물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p662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만 큰 공을 이루는 사람은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밀고 나갑니다.”

“진나라가 상승세를 타고 제후들을 눌러 온 지 벌써 여섯 대(효공, 혜문왕, 무왕, 소왕, 효문왕, 장양왕)나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후들이 진나라에 복종하여 마치 진나라의 군이나 현 같습니다. 무릇 진나라의 강대함에 대왕의 현명함이라면 취사부가 솥단지 위에 앉은 먼지를 훔치듯 손쉽게 제후를 멸망시키고, 황제로서 대업을 이루어 천하를 통일하기에 충분합니다. 이것은 만 년에 한 번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 게으름을 피우고 서둘러 이루지 않으면 제후들이 다시 강대해져서 서로 모여 합종하기로 약속할 테고, 그렇게 되면 황제 같은 현명한 왕잉 있을지라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

<등용했으면 내치지 말라>

p666 그런데 지금 사람을 뽑아 쓰는 데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인물의 사람됨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지 않고 굽은지 곧은지를 말하지 않으며,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물리치고 빈객이면 내쫓으려 합니다. 그런즉 여색이나 음악이나 주옥은 소중히 여기되 사람은 가벼이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하에 군린하며 제후들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라고 합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이것이 오제와 삼왕에게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옛것으로 지금을 비평하지 말라>

p670 “아아!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구나.”

<남의 신하가 되는 것과 남을 신하로 삼는 것은 다르다>

p672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천하의 대권을 잡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공자와 저와 승상에게 달려 있으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또는 남을 지배하는 것과 남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어찌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p672~673 그래서 작은 일을 돌아보다가 큰일을 잊어버리면 뒤에 반드시 재앙이 닥치고, 의심하며 주저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과감하게 행동하면 귀신도 피하고 뒷날 성공하게 됩니다. 공자께서는 이 일을 단행하시기 바랍니다.

p673 “때가 때인 만큼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식량을 짊어지고 말을 달려도 때에 늦을까 염려됩니다.”

p675 “편안한 것을 위험으로 돌릴 수도 있고 위험한 것을 편안한 것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편안하고 위험한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승상을 성인의 지혜를 가진 분으로 존중하겠습니까?”

충신은 죽음을 피하려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효자는 부모를 섬기는 데 부지런히 힘쓰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된 자는 저마다 자기 직책을 지킬 따름이오. 당신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나에게 죄를 짓도록 할 셈이오?

p675~676 “제가 듣건대 성인은 변하여 정해진 태도가 없으며, 변화에 따르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귀착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사물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어찌 변하지 않는 고정된 법칙이 있겠습니까? 이제 천하의 대권은 호해에게 달려 있으며, 저는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체로 밖에서 안을 제어하는 것을 혹이라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어하는 것을 적이라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잎과 꽃이 떨어지고,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게 되면 만물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필연의 법칙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판단이 더디십니까?”

p679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이제 황제로서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귀로 듣고 싶고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즐기고, 종묘를 편안히 하고 많ㅇ느 백성을 즐겁게 하여 천하를 길이 소유하고, 타고난 내 수명을 누리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

<제 몸조차 이롭게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리랴>

p683 그래서 신불해(법가 계열에 속함)는 “천하를 차지하고도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천하를 질곡(차꼬와 수갑)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p687 “천자가 존귀한 까닭은 신하들은 소리만 들을 뿐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자는 스스로 짐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각주 - 짐 : 이 말은 본래 조짐, 즉 아직 사물이 제 모습을 나타내기 전의 상태를 가리켰다. 진나라 이전에는 주로 1인칭 대명사로 쓰이다가 시황제 때부터 천자의 자칭으로 사용되었다.)

p690 신이 듣건대 “신하의 권력이 그 군주의 권력과 비슷해지면 위태롭지 않은 나라가 없으며, 첩의 세력이 남편의 세력과 비슷하면 위태롭지 않은 집안이 없다.” 라고 합니다.

p692 “아,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군주를 위하여 무슨 계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옛날 하나라 걸왕은 관용봉을 죽이고, 은나라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이고,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총명하지 않았을까마는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충성을 다한 군주가 도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p693 대체로 옛날 훌륭한 왕들은 음식에 절제가 있었고, 수레나 물건에도 정해진 수가 있었으며, 궁실을 짓는 데도 한도가 있었다.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

p697 조고는 황제의 옥새를 꺼내어 찼지만 곁에 있던 신하 가운데 따르는 자가 없고, 궁전에 오르자 궁전이 세 번이나 무너지려고 하였다.

 

28. 몽염 열전

<충신은 대신들과 다투지 않는다>

p703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 한 뒤 몽염에게 명하여 군사 30만 명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융적을 쫓아 버리고 하남을 차지하여 장성을 쌓도록 했다. 그는 장성을 쌓으면서 지형과 산세의 기복에 따라 요새를 만들었는데 임조에서 요동까지 1만여 리나 되었다. 그러고 나서 몽염을 황하를 건너 양산 산맥을 차지하고 꾸불꾸불 북쪽으로 올라갔다. 공사를 위해 십 년 동안 군대를 국경 밖에 내놓았고, 그는 상군을 근거지로 주둔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지혜로는 군주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p705 조고가 큰 죄를 지었을 때 진나라 왕은 몽의에게 법에 따라 다스리도록 명령했다. 몽의는 법을 곡해하지 않고 조고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므로 환관 명부에서 그를 삭제하였다. 그러나 시황제는 조고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용서하고 그의 관직과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이게 화근이다.)

p707 신이 듣건대 ‘경솔한 생각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한 사람의 지혜로는 군주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라고 합니다. 충신을 죽이고 지조와 덕행이 없는 사람을 세우면 안으로는 신하들이 서로 믿지 않게 되고 밖으로는 전쟁을 하는 군사들의 마음이 흐트러질 테니 신은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711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북쪽 변방 지역에 갔다가 지름길로 돌아왔다. 길을 가면서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 쌓은 장성의 요새를 보니, 산악을 깎고 계곡을 메워 지름길을 통하게 했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가벼이 여긴 것이 분명하다. 진나라가 처음 제후를 멸망시켰을 때 천하의 민심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전쟁의 상처도 채 가라앉지 않았는데,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이러한 때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백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리랴.”

 

29. 장이 진여 열전

<목이 달아나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p715 장이는 대량 사람으로 젊을 때 위나라 공자 무기의 빈객이 된 적이 있다.

진여도 대량 사람으로 유가의 학문을 좋아하여 조나라의 고형이라는 곳에 자주 다녔다.

<명분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

p718 적이 많으면 힘은 흩어지고, 편이 많으면 군대는 강해집니다.

<이익 앞에서는 친구도 원수가 된다>

p730 “제가 듣건대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라고 합니다. 지금 진 장군께서 당신에게 장군의 인수를 주셨는데, 당신이 받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상서롭지 못하니 서둘러 받으십시오.”

<지조있는 신하가 왕을 구한다>

p734 장오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면서 말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시오? 선왕께서 나라를 잃으셨을 때 고조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고, 그 덕은 후손에까지 미쳤소. 터럭만큼 작은 것도 모두 고조의 힘에 의한 것이오. 부디 여러분은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마시오.”

p737 “인간이 마음으로 자신의 부모와 처자식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나는 삼족이 다 죽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어찌 왕과 내 가족을 바꿀 수 있습니까? 진실로 왕께서는 음모를 꾸미지 않았습니다. 우리끼리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관고는 끝까지 왕을 지켰다. 이런 충신이 어디있겠는가!)

“내가 몸에 성한 곳 하나 없으면서까지 죽지 않은 것은 장왕께서 반기를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 풀려났으니 내 임무는 다했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또 남의 신하로서 그 군주를 죽이려 하였다는 일믕르 가지고 무슨 얼굴로 다시 군주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설령 군주께서 나를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30. 위표 팽월 열전

<인생은 흰 망아기자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짧다>

p745 “인생은 흰 망아지가(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소. 지금 한나라 왕은 오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제후와 신하들을 노예처럼 꾸짖고 욕하며 위아래의 예절이 조금도 없소. 나는 그러한 꼴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소.”

<용 두 마리가 싸우면 기다려라>

p746 “지금은 용 두마리가 한참 싸우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 봅시다.”

p751 태사공은 말한다.

“위표와 팽월은 본디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지만 1000리 땅을 차지하고 남쪽을 바라보며 고라고 했다. 이들은 피를 밟고 승기를 타서 나날이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러나 반역할 마음을 품었다가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붙들려서 형벌을 받았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중간 정도 되는 재능을 가진 자도 이러한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거늘, 하물며 왕 노릇을 하던 자야 어떠하랴! 여기에는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뒤어난 자들이지만 오직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때를 만나 자신들의 뜻을 펼쳐 보려고 했기 때문에 갇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31. 경포열전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된다>

<팔짱만 끼고 앉아 어느 쪽이 이기는지 보면 안 된다>

p760 그런데 왕께서는 만 명의 대군을 가지고서 한 명도 회수를 건너게 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앉아 어느 쪽이 이기는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나라를 남에게 맡기셨다면서 진실로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왕께서는 신하라는 헛된 이름만 가지고 북쪽을 향하여 초나라를 섬긴다면 자신을 완전히 맡겨 버리려고 합니다. 신이 가만히 왕을 위하여 생각하건대 취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왕께서 초나라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한나라를 약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 어찌 썩은 선비를 쓰랴>

<왜 낮은 꼐책을 쓸까>

p767 “영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영포가 최상의 계책을 쓴다면 산동 땅은 한나라의 소유가 아닐 테고, 보통 계책을 쓴다면 승패는 알 수 없으며, 낮은 계책을 쓴다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구 누워 계셔도 될 것입니다.”

p768 “어째서 최상의 계책과 보통 계책을 버리고 낮은 계책을 쓸 것이라고 하오?”

영윤이 대답했다.

“영포는 본래 여산의 무리로서 자기 힘으로 만승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지 뒷날을 생각하고 백성 만대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낮은 계책을 쓸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나는 이부분에서 영윤이 예측의 정확성이 놀랍다. 현대 사회에서도 기업과 기업이 경쟁할 때 상대 기업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른 편 기업의 전략이 수정되고, 서로 경계하고 하는데, 내가 사장이라면 영윤같은 인재를 뽑을 것 같다. 영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현재 일어 나고 있는 일들의 정세를 잘 파악하며 예측하는 영포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32. 회음후 열전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간다>

p775 회음후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평민일 때에는 가난한 데다 방종하였으므로 추천을 받아 관리도 될 수 없고, 또 장사를 해서 살아갈 능력도 없어 늘 남을 따라다니며 먹고 살아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싫어하였다.

p776 “네가 비록 키는 커서 칼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모욕하며 말했다.

“네 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때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이 일로 해서 시장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한신이 이 때 왜 이랬을까? 답을 찾아보자.)

<소하가 달아난 한신을 쫓아간 까닭>

p777 한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우연히 등공 하우영과 눈이 마주쳤다. 한신이 말했다.

“주상께서는 천하를 차지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등공은 그의 말이 기특하고 모습이 장하다고 여겨 풀어 주고 베지 않았다.

p778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한신에 견줄 만한 인물을 없습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왕의 생각이 어느 쪽에 있는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p779 “왕께서는 본래 오만하여 예를 차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대장을 임명하는데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시니, 이것이 바로 한신을 떠나게 한 까닭입니다. 왕께서는 그를 대장으로 삼으시려면 좋은 날을 택하여 재계하고 단장(장수를 임명하는 곳)을 설치하여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천하는 마음을 얻는 자의 몫이다>

p780~781 항왕이 화를 내며 크 소리를 지르면 1000명이 모두 엎드리지만 어진 상수를 믿고 일을 맡기지 못하니 그저 보통 남자의 용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가 부드럽습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이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선뜻 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아녀자의 인일 뿐입니다.

<싸움에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하지 않는다>

p784 제가 듣건대 ‘천리 먼 곳에서 군사들의 식량을 보내면 수송이 어려워 병사들에게 주린 비이 돌고,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어야 밥을 징르 수 있으면 군사들은 저녁밥을 배불리 먹어도 아침까지 가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p787 한편 앞서 한신이 내보낸 기습병 2000명은 조나라 군사들이 성벽을 비워 놓고 전리품을 쫓는 틈을 엿보아 조나라의 성벽 안으로 달려 들어가 조나라 기를 모두 뽑아 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기 2000개를 꽂았다.

p788 이것도 병법이 있는데 여러분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오.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잖소? 내가 평소부터 사대부를 길들여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과 같으니, 그 형세가 죽을 땅에 두어 저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우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텐데 어떻게 이들을 쓸 수 있겠소?

p789 “제가 듣건대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을 말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지금 저는 싸움에서 지고 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포로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러한 큰일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한신이 말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현리 백리해가 우나라에 살 때는 우나라가 망하였으나, 진나라에 있자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다가 진나라에 가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군주가) 그를 등용했는지 등용하지 않았는지, 또 그의 말을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달렸을 뿐입니다. 만일 성안군이 당신의 계책을 들었떠라면 나 같은 사람은 이미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안군이 당신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광무군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경우가 있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미친 사람의 말도 가려서 듣는다.’라고 했습니다. 제 계책이 반드시 쓸 만하지는 않을지라도 성의를 다하겠습니다. 저 성안군은 백 번 싸워 백 번 이길 계책이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실수하여 군사가 호의 성 밑에서 깨지고 자신은 지수 가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p797 “내가 일찍이 항왕을 섬긴 적이 있지만 벼슬은 낭중에 지나지 않고 지위는 집극에 지나지 않으며, 생각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고 계획을 세워도 써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나라를 저버리고 한나라로 간 것입니다. 한나라 왕은 나에게 대장군의 인수를 주고 대군 수만명을 주었습니다. 자기 옷을 벗어 나에게 입히고 자기가 먹을 것을 나에게 먹이며, 생각을 말하면 들어주고 계책을 올리면 써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무릇 남이 나를 깊이 믿는데 내가 그를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입니다.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하여 항왕에게 거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p798 “귀하게 되느냐 천하게 되느냐는 골법에 달려 있고, 근심이 생기느냐 기쁨이 생기느냐는 얼굴 모양과 빛깔에 달려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것을 참고하여 판단하면 만의 하나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괴통의 관상법)

p800~801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입는다고 들었습니다. 당신계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p801 그러나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왕은 나를 정성껏 대접해 주었습니다. 자기 수레로 나를 태워 주고, 자기 옷을 나에게 입혀주며, 자기 먹을 것을 나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내가 듣건대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라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환이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p802 그래서 저는 당신께서 한나라 왕이 결코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역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

또 제가 듣건대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p803 “원래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조짐이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기틀이 됩니다. 진언을 잘못 받아들여 계책에 실패하고도 오래도록 편안한 이는 드뭅니다. 진언을 분멸하는 데 한두 가지도 실수하지 않으면 말로도 어지럽힐 수 없고, 계책이 처음과 끝을 잃지 않으면 교묘한 말로 분란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같이 작은 게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도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나라 용사 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훌륭한 활을 치운다>

p805 또 자기를 욕보인 젊은이들 가운데 자기를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게 하여 모욕을 주었던 자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로 삼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것이다.”

(그가 그렇게 했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오늘의 한신이 되었다는 말이겠지? 이 사람이야 말로 정말 대인배이다.)

p806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아녀자에게 속은 것도 운명이다>

p811 “내가 회음에 갔을 때 회음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한신은 평민일 때에도 그 뜻이 보통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그 어머니가 죽었을 때 가난해서 장례도 치를 수 없었지만 (결국) 높고 넓은 땅에 무덤을 만들어 그 주위에 집이 1만 호나 들어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내가 어머니의 무덤을 보니 정말로 그러했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33. 한신 노관 열전

<한나라 조정에 반기를 든 한신>

p817 한나라 왕 신은 원래 한나라 양왕의 첩의 손자로서 키가 여덟 자 다섯 치나 되었다.

p822 그러니 제가 한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앉은뱅이가 일어서기를 잊지 못하고 장님이 보기를 잊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형세로 보면 돌아갈 수 없을 듯합니다.

<배반과 투항을 일삼은 노관과 그의 족속들>

<빈객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변란의 조짐이다>

p830 12월에 고조가 직접 동원을 쳤지만 동원의 병사들은 항복하지 않고 고조에게 욕을 하였다. 나중에 동원이 항복하자 고조에게 욕한 병사들은 목을 베고, 욕하지 않은 병사들은 이마에 먹물을 넣는 형벌에 처하였다.

(욕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말조심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타이핑을 치면서 든 생각은 ‘소신’을 지키는 삶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 낫겠다 생각된다. 역시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

p831 태사공은 말한다

“일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지혜가 다하자 흉노로 달아났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않으랴!

그의 명성이 사실보다 지나쳤다. 그래서 주창이 그를 의심하여 심문까지 하게 되었고 잘못이 자못 많이 드러났다.

아,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34. 전담열전

<왕의 피를 물려받은 이가 왕이 되어야 한다>

<독사에게 물린 손은 잘라야 한다>

p837 “독사에게 손을 물리면 손을 자르고 발을 물리면 발을 자릅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자르지 않으면 몸뚱이마저 해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가, 전각, 전간은 초나라와 조나라에게 손이나 발 같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죽이지 않습니까? 또 진나라가 다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면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자들은 당연히 죽일 테고, 게다가 그 무덤까지 파헤칠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반란의 불씨가 된다>

<평민에서 일어나 번갈아 왕이 된 세 형제>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p842 “신은 폐하의 사신 역이기를 삶아 죽였습니다. 듣건대 지금 그의 동생 역상은 한나라 장군이 되었고 어진 인물이라고 하니, 신은 두려워 감히 조서를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평민이 되어 바다의 섬이나 지키며 살게 해 주십시오.”

p843 이 치욕스러운 마음은 정말로 참을 수 없소. 나는 남의 형을 삶아 죽였는데 앞으로 그 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같은 군주를 섬겨야 하오. 비록 그가 천자의 조서를 두려워하여 나를 괴롭히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어찌 스스로 마음 속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없겠소? 또한 폐하께서 나를 보고자 하시는 까닭은 내 얼굴을 한번 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소. 폐하께서는 낙양에 계시니 지금 내 목을 베어 삼십 리를 말로 달려가면 모습이 썩지 않아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35. 번.역.등.관 열전

<용맹스럽고 기개가 넘치는 번쾌>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리>

p850 “신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겠습니까? 패공께서는 먼저 관중으로 들어와 함양을 평정한 뒤 패상에서 병사들을 노숙시키며 왕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오늘에 이르러 소인배의 말만 듣고 패공과 틈을 만드셨습니다. 신은 이 일로 천하가 분열되고 사람들이 왕을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반역으로 몰려 위기에 처한 번쾌>

<노략질을 일삼던 역상>

<위증죄에 연루되어 옥살이한 하우영>

p859 하우영은 유방의 죄에 대한 위증죄로 연루되어 일 년 남짓 옥살이를 하고 매를 수백 대나 맞았다. 그러나 끝내 진술을 번복하지 않아 유방을 사건에서 벗어나게 했다

(의리에 대하여)

<비단을 팔던 관영>

p862 영음후 관영은 수양현에서 비단을 팔던 사람이다.

p869 태상공은 말한다

“내가 풍현과 패현으로 가서 진나라 때부터 살아온 그곳 노인들을 찾아 소하, 조참, 번쾌, 등공의 옛집과 그들의 평소 사람됨을 물어보았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가듯이 한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낼게 될 줄 알았겠는가? 나는 번타광과 교분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고조의 공신들이 처음 일어날 때 상황을 이와같이 들려주었다.

 

 

3. 내가 저자라면

『사기열전』은 ‘자기계발’ 스토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덕목이 있다면 ‘인내’다. 『사기열전』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굴욕적인 사건 앞에서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참는다. 그리고 그 굴욕적 사건을 잊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 다시 선다. 소진이 그랬고, 장의가 그랬다. 가랑이 사이로 기어갔던 이도 그랬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뭐 하나 의심받는 것 같거나,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속으로 서운해하고, 친한 사람한테는 큰소리를 내기도 하는 나를 보면, 난 큰 인물 되긴 어려울 것 같다. 이제부터 참으면 되려나? 내가 『사기열전』통해 배운 것은 미래를 더 큰 일을 위해 지금 겪는 것을 참아내는 인물됨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견디어낸 인물이다. 『사기열전』을 지으면서 그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이 ‘인내’가 아니었나 싶다.

사마천은 70편 속에서 (나는 35편까지만 읽었지만) 여러 인물들을 다뤘다. 70인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한 편에 적어도 2명, 많으면 4명까지도 다뤘다.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을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처신하는 사람들의 인물됨도 보여주었다. 『사기열전』은 그야말로 자기계발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국과 한국이 같은 문화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고, 시대도 2000년이 넘는 차이를 보이지만,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덕목들이 있는 것을 보면 현실에 맞게 잘 적용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물론 아닌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강의를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스를 아주 많이 주는 책이라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뼈대와 목차를 논하자면 사마천은 아주 분류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자신의 기준이 따라 순서를 배열하고, 짧막 짤막하게 스토리를 전개하며 핵심을 말해준다. 그리고 매 편마다 ‘태사공을 말한다.’로 끝맺음을 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김원중 교수가 각 편마다 앞에 줄거리나, 사마천의 생각들을 정리해 준 점은 도움이 많이 됐다. 35편을 일일이 다 논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시간을 내어 좀더 자세히 분석하고, 살펴본다면 사용할 수 있는 인용문들이 아주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였어도 인물들을 이렇게 배열하고, 뼈대를 구성하여 썼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시대에 카메라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마천이 책만 읽고 쓴 것이 아니라 여행을 다니며, 다 둘러보고 썼던 것이기에 더 생생할 수 있는 책인데, 시각적 효과를 높인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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