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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11시 0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BC145~BC85)

 

그는 주나라 역사가집안인 사마 가문가문의 후손으로 중국 용문에서 태어나 황하 북쪽과 용문산 남쪽 기슭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열살 때 옛날 문헌을 암송했으며, 스무살 때는 남쪽으로 장강과 회하를 유력하고 회계산에 올라 우 임금이 죽어서 들어갔다는 동굴을 탐험하고 순 임금이 매장된 구의산도 살펴 보았으며, 원수와 상수에 배를 띄우고 유람하였다. 그러다가 북쪽으로 문수와 사수를 건너 제나라와 노나라의 수도에서 학업을 닦고 공자가 남긴 풍속을 살펴보았으며, 추현과 역산에서는 향사를 살펴보기도 함. 양나라와 초나라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관직에 나가 낭중이 되어서 칙명을 받들어 서쪽으로 파와 촉 남쪽 지역을 징벌하고 남쪽으로는 공과 작과 곤명을 공략하고 돌아와서 다시 명을 받듬. 천문관, 역관, 역사가.

 

사기는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에 따라 집필. 무제의 통치하에서 중국의 발전이 절정기에 달해 그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해서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 겠다는 믿음.

중국 고대 오제 시대부터 한 무제때까지의 역사를 쓴 역사서임. 2세기까지 중국에서 나온 역사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집필도중 장수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고 사형선고를 받은 후 사기집필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궁형을 선택하여 살아남는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사기를 집필하게 시작하고 궁형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마음속에 맺힌 울분을 사기를 짓는 것으로 풀어냄.

 

<태사공 사마담의 유언>

 

우리 조상은 주나라 왕실의 태사였다. 일찍이 아주 먼 옛날 우 임금과 하 임금에게서 공명을 드러낸 이래로 천문에 관한 일을 주관해 왔다. 후세로 내려오면서 중도에 쇠락하더니 나에게서 끊어지고 마는 것인가? 너는 다시 태사가 되어 우리 조상이 하던 일을 이어야 한다. 지금 천자께서 천년의 대통을 이어받아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데도 내가 따라가지 못한 것은 분명 천명이로다! 천명이로다! 내가 죽거든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되어라, 태사가 되거든 내가 논하여 저술하려고 했던 바를 잊지 말아아. 무릇 효도란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며, 그 다음은 임금을 섬기는 것이고, 마지막은 자신을 내세우는 데 있다. 후세이 이름을 떨침으로써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으뜸이다. 세상 사람들이 주공을 칭송하는 것은 그가 문왕과 무왕의 덕을 찬양하여 노래하고 주남과 소남의 작풍을 선양하며 태왕과 왕계의 깊은 생각에 통달하여 공류에 미치고 후직을 받들었기 때문이다. 유왕과 여왕이후로는 제왕의 도리가 무너지고 예와 악이 쇠락하여 공자께서 옛 전적을 정리하고 없어졌던 것을 다시 일으켜 <시경> <서경>을 강론하고 <춘추>를 지었으니, 배우는 사람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본받는 것이다. 획린 이래로 지금까지 400여 년 동안 제후들은 서로 아우르려 하고 사관의 기록들을 내버려지고 끊어졌다. 이제 한나라가 흥기하여 천하가 하나로 통일되고, 현명한 군주와 어진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와 정의를 보고 죽는 선비가 나왔다. 그러나 내가 태사가 되고도 이들을 논하여 기록하지 못해 천하의 역사 문헌을 페기하였구나. 나는 이것이 매우 두렵다. 너는 이 점을 염두에 두거라.”

 

태사공이 세상을 떠난지 삼년만에 사마천은 태사령이 되어 사관의 기록과 석실, 금궤에 보관한 책들을 꺼내 모았다. 그로부터 오년 뒤가 태초원년이다. 11월에 명당을 세우고 모든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아버지 사마담은

漢한의  조정에서 太史令태사령을 지냄. 태사령이란 천문관측, 달력의 개편 국가 大事대사의 조정 儀禮의례의 기록등을 맡는 직책임. 그는 당도[천문학자]에게 천문에 관한 것을 배우고, 양하에게[주역]을 전수받고, 황자에게 도가의 견해를 배웠다. 건원과 원봉 사이에 벼슬을 하였다.

 

그는 학자들이 학문의 참뜻에 통달하지도 못하면서 스승을 배척하는 것을 우려하여 곧 육가[유가, 묵가, 도가, 법가, 음양가, 명가]의 핵심이 되는 가르침을 논의했다.

천하 사람들의 학설은 하나이건만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온갖 생각을 다하고, 같은 길로 귀착되면서 일부러 다르게 가려고 한다라고 하였듯이 저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덕가등은 이를 힘써 다스리려고 하는데 다만 그들이 내세우는 이론이 서로 길을 달리하여 어떤 것은 제대로 살폈고 어떤 것은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음양가의 학술은 지나치게 번잡하고 세세하며 금기하고 꺼리는 것이 많아 보통 사람들이 구속받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네 계절이 운행하는 큰 법칙을 밝힌 점만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유가의 학설은 너무 광범하여 요점을 잡아내기가 어려우므로 힘써 연구해 보았자 효과는 적다. 그러나 그들이 군신과 부자간의 예절을 마련한 것과 부부와 장유사이의 구별을 정한 것은 결코 바뀌어서는 안된다.

 

묵가는 지나치리 만큼 검소함을 내세워 따르기가 어렵다. 이로 인해 모두 따라 실천할 수는 없지만 그 근본은 튼튼히 하고 씀씀이를 절약해야 한다는 견해는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법가의 학설은 엄격하여 온정이 적지만 군신과 상하의 본분을 바르게 하자는 것은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명가는 사람들을 명분에 얽메이게 하고 간략하여 진실을 잃기 쉽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명분과 실질의 관계를 바르게 한 것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도가는 사람이 정신을 집중하게 하여 행동을 무형의 도에 들어맞게 하고 만물을 풍족하게 한다. 이 학술은 음양가의 천지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유가나 묵가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명가와 법가의 요점을 취하여 시대에 따라 더불어 옮겨가고, 만물에 호응하여 변하며, 풍속을 일으키고 일을 시행하니 적절하지 않는 것이 없다. 따라서 그 치지는 간략하여 요점을 파악하기 쉽고 일은 적게 해도 효과는 많다.

 

대체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정신이 있다는 것이며 기탁하는 것은 육신이거늘, 정신을 너무 사용하여 고갈시키고 육신을 너무 수고롭게 하여 황폐해지고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면 죽게 된다.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낼 수 없고 떨어진 것을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 성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중시했다. 이로 보아 정신이란 삶의 근본이며 육체는 삶의 도구이다. 먼저 그 정신을 안정시키지 않고 입으로는 나만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라고 말하니 무엇에 근거하여 실현할 것인가?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

 

오랜 분열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시킨 秦진제국은 강권통치에 바탕을 둔 급격한 통일책이 실패로 돌아가며 무너지고, 최후의 승자 漢한고조 유방은 진 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파란을 피하고 안정에 치중했다. 無爲무위를 중시하는 黃老황노사상이 前漢전한 초기를 특징짓는 이념이었다. 漢한의 7대 황제 武帝무제 劉徹유철은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했다. 무제는 흉노를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공격, 압박하고 서방 교통로를 확보했으며 국내제후의 권력을 사실상 소멸시키고 민간의 유력자들을 억압하며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이 국가 재정 위기를 초래하자 소금과 철에 대한 전매 제도를 시행하고 증세를 단행함으로써 백성의 부담이 무거워졌다. 무제는 절대적인 황제권을 확립시키면서 권력의 중앙 집중화를 꾀하고 유교를 국가공식이념으로 중시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법가사상에 바탕을 두어 통치했다.

 

사기가 후대에 미친 영향

 

그는 역사가로 뿐만 아니라 생동감있고 유연한 산문의 거장으로 초기 설화문학이나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대 이래로 사기는 줄곧 중국 역사서의 걸작으로 인정받으며 훗날 중국 역사서의 본보기가 됨. 또한 중국뿐만아니라 중국 문학적 전통의 영향을 받았던 여러 나라에 역사서의 모범으로 인식되어옴.

 

<사기의 구성>

 

본기 12편 천하를 다스린 왕조와 제왕들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기록[오제본기, 하본기, 진본기등]

10   제왕 및 제후들의 흥망을 보여 주는 각 시대의 연표[삼대세표, 십이제후연표등]

8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시대의 문화와 제도에 관한 기록[예서, 악서, 율서, 역서등]

세가 30편 천자를 모시는 제후들이 다스린 제후국들의 역사[제태공세가, .채세가등]

열전 70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인물들의 전기[백이열전, 손자.오기열전등]

 

나의 의견

 

한 역사가의 수십년에 걸친 역작을 잃는 것은 내게 기쁨이다. 집필동기와 과정의 어려움도 범상치않다. 고전이 왜 고전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70편에 이르는 열전을 읽는 일은 70명과 얽힌 수많은 인간사를 읽는 일이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행동의 동인을 읽어가는 일은 흥미로운데,,,,읽다 보니 정해져 있는 행동약식이 보인다. 물론 전쟁상황에서 번뜩이는 전략과 전술도 보인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유추해보는 행동심리학이랄까속고 속이는 속된말로 사기를 치는 것들도 보이고. 때론 타인은 모두 흙탕물에 있는데 본인만 1급수에서 사느라고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다. 전쟁과 돈 권모 술수 여자 배신과 음해 등등 그들이 살아간 세월과 내가 살아가는 세월이 뭐가 다른가. 단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람이니까 가능한 것의 극치를 경험하는 일이 의미있겠다.

 

참조 : 사기열전1.2 . 김원중옮김 민음사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1s0121b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7234&mobile&categoryId=20000108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61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2340&mobile&categoryId=999

http://blog. daum.net/print View.html? articlePrint_6993777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백이 열전

말세에는 모두 이익을 다투지만 오직 저들[백이와 숙제]만은 義를 지키느라 바빴다. 나라를 양보하고 굶어 죽으니 천하가 그들을 칭송했다.

 

일흔편의 열전 중 첫번째 편으로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인 백이와 숙제의 고매한 인품을 허유 무광과 대조 또는 대비 하면서 그려나감. 천도의 기본은 권선징학이지만 사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아 착한 사람이 재앙을 입고 나쁜 사람이 복을 누리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마천은 공자가 백이와 숙제 두 사람에 대해仁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다라고 한 칭찬을 의문시한다.

 

왜 유가 경전에는 허유와 무광 등의 사적이 없을까?

백이와 숙제는 정말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65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 평생을 호강하며 즐겁게 살고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21세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원전10세기경인듯한데 그때의 사회도 지금의 사회같이 공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꼭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65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道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이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기의 뜻을 좇아서 행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또한] .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66 가의[한나라 문제 때의 정치가이자 문인]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 만물도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은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공자라는)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위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일정한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명성이 묻혀 세상에 일컬어지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더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에 기대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자고로 사람은 스승이 필요하다. 속된말로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2 , 안열전

안자[]은 검소하고 이오[관중]은 사치스러웠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의 보좌로>패자가 되었고, 경공은 안자를 써서 나라를 잘 다스렸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관중과 안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자에게 소인으로 폄하된 관중은 관경중이락도 부른다. 출신이 보잘 것 없던 그가 재능을 펼치고 제나라의 뛰어난 재상이 된 것은 전적으로 포숙의 추천 덕분이다. 따라서 사마천은 사람을 알아보는 포숙의 능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안영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영공, 장공, 경공 등 세 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며 오십 년 동안 집정하면서 제나라를 중흥시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2인자행동 미학의 귀감을 보여 결단력과 슬기와 해학이 넘쳤고, 제갈공명이 극찬할 만큼 내치에도 뛰어났다. 그는 평생 동안 단 한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고 하며 삼십 년 동안 옷 한 벌로 생활할 만큼 검소했다. 그러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명재상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71 관중 왈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운>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추천하고 자신은 그의 아랫자리에 있었다. 포숙의 자손들은 대대로 제나라의 봉록을 받으며 봉읍지를 십여 대 동안 가졌으며 늘 이름 있는 대부의 집안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더 찬미하였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

 

73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아버지, 어머니, , 동생. 아내. 자식]이 굳게 결속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즉 예의, 정의, 깨끗함, 부끄러움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수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뜻을 드러낸다.

 

75 임금이 물으면 바르고 신중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을 때에는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였다. 임금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면 그 명령을 따르지만 올바르지 않을 경우에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3 노자.한비열전

이이[노자]는 무위로써 스스로 자연스럽게 변하고, 청정으로써 스스로 바르게 하였다. 한비는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형세와 이치를 따랐다.

도가와 법가의 학술 원류를 다루고 있음. 실제로 한나라 초기에 겉은 도가요 안은 법가이며 무제도 겉은 유가요 안은 법가였으니 진나라와 일관된 맥락을 보인다. 노자에 관한 사마쳔의 관점은 이러하다.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인으로 나이가 공자보다 많고 에 밝아 공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장자의 우언을 당시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는 탁월한 무기로 본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둔다

 

81 공자는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는 잘 난다는 것을 나는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나는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

 

관리가 되느니 더러운 시궁창에서 놀리라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왕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 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어찌 교제를 지냈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마라

 

한비는 <세난>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86-88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그러나 유세자가 상대방의 비밀을 들출 뜻이 없었지만 우연히 상대방의 비밀을 말한다면 유세자는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유세자가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고 교묘한 주장을 내세워 그 잘못을 들추어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 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몸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또 군주가 좋은 계책을 얻어 자기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몸이 위태로워진다.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때 유세자가 이것을 알게 되면 역시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을 멈추게 하면 또한 몸이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챦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하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하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유세자는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행위를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며, 군주와 같은 실패를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며 두둔해 주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 주어야 한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름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91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사마 양저 열전

옛날부터 제왕은 모두 <사마법>이 있었는데, 양저가 이것을 부연하여 밝혔다.

 

사마[군사업무를 책임짐]를 지낸 양저를 다룸. 사마 양저는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 대부로 재상 안영의 추천을 받아 장군에 임명. 이것은 자신의 신분에 비해 높은 자리를 부여 받은 것이었다. 당시 제나라는 군사적으로 매우 불리했는데 경공이 그와 군사 작전에 동행시킨 장고가 양저를 깔보고 송별연에 갔다가 약속 시간에 늦었다. 그러자 양저는 군율에 따라 장고를 참수하여 자신의 위엄을 세웠다. 그는 군대를 매우 엄정하게 지휘 감독하고 병법에 정통하였으며 싸움에도 용감했다. 전쟁만큼 큰 죄악은 없으나 춘추전국시대에 전쟁은 필요악이었다.

 

약속은 생명과도 같다

병사들을 감동시킨 용병술

 

5 손자.오기 열전

信과 廉과 仁과 勇이없으면 병법을 전하거나 검술을 논할 수 없으며, 道와 부합해야 안으로는 몸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변화에 순응할 수 있기에 군자는 덕을 기른다.

 

춘추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겸병전쟁이 계속 확대됨에 따라 각 제후국들이 전쟁에 동원하는 병력 수도 늘어나 수십만에 이를 정도였다. 이와 같은 새로운 상황이 펼쳐짐에 따라서 효율적인 전쟁을 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의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게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편은 세 명의 뛰어난 병법가 손무, 손빈, 오기의 이야기에 방연을 덧붙인 것이다.

손무의 병법은 일명 손자 열세편으로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병서일 뿐 아니라 정교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등으로 유명. 세계 군사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손빈은 위나라 장군 방연의 간계로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으나 제나라 장군 전기의 인정을 받아 그의 군사가 되어 두차례나 위나라를 격파. 오기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안목을 바탕으로 하여 용병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에게 배웠고 노나라에서 벼슬하여 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제나라와 싸워 크게 이겼으나 그다지 안정 받지 못하다가 위라나에서 중용되었다.

 

군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에게는 죽음뿐이다.

급소를 치면 빈틈을 노려라

아내를 명성과 바꾸다

나라의 보배는 험난한 지형이 아니라 임금의 덕행이다.

남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유

죽은 시체 위에 엎드린 오기.

 

121 옛말에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전략은 실로 절묘했으나, 그에 앞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앙을 막지는 못했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구나!

 

6 오자서 열전

오건[초나라 평왕의 태자]이 참소를 당하여 그 재앙이 태부 오사에게까지 미쳤다. 오상은 아버지를 구하려 했고, 오운은 오나라로 달아났다.

 

오자서는 춘추시대 오나라의 대부로 합려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뒤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며, 부차에게는 월나라와 화친을 맺지 말고 멸망시켜 뒤탈을 남기지 말라고 권유하였다.

 

소인배의 참언을 믿고 친자식을 내친다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고 떠난다

때를 기다려라

오나라의 힘을 빌려 초나라를 깨뜨린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

성공하면 충신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7 중니 제자 열전

공자는 문덕을 서술하고 제자들은 학문을 일으켜 모두 제후들의 스승이 되었다. 인을 숭상하고 의를 권장했다.

 

기원전 500년부터 250년에 이르는 기간은 제자백가의 전성시대이다. 당시 사상가들은 각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였고, 의기 투합하여 봉건 제후의 고문이 되거나 외교관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위대한 지적 전개와 성과는 문화적 진보를 가져왔다.

제자백가는 크가 유가, 도가, 묵가, 명가, 법가 등으로 구분된다. 특히 유가는 후세 중국 사상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지존의 지위를 자랑해 왔다. 유가의 창시자 공자는 주나라의 신분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과도기에 살았는데, 오랜 세월 제자들과 함께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봉건제후들에게 유세하며 정치적 직책을 갈망하였지만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공자의 제자들과 공자가 존경한 사람들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즐거워하는 안회

 

148 안연이 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자기가 사사로운 욕시미을 이기고 바른 禮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

벼슬에 나가게 되면 도를 실행하고 물러서면 조용히 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너 뿐이구나!”

안회라는 자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가 없습니다.”

 

효성스러운 민자건

덕행은 훌륭하나 몹쓸 병에 걸인 염경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으면 제물로 쓸 수 있다.

 

151 중궁의 아버지는 미천한 사람이었으나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제물로 쓰지 않으려고 하여도 어찌 산천의 신들이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사람의 성격에 따라 조언도 달라야 한다.

 

152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좋은 말을 듣고 실행하지 못했는데 또 좋은 말을 들을까 두렵다

 

152 중유는 자가 자로이고 노나라 변지역 사람이다. 공자보다 아홉 살 적다. 자로는 성격이 거칠고 용맹하며 뜻이 강하고 곧았다.

자로가 군자도 용맹을 좋아합니까?”
공자왈 군자는 의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

 

154 자로가 위나라 포지방의 대부가 되어 공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 때,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포 지방은 힘센 자가 많아 다스리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내 너에게 당부의 말을 하니 명심하거라. 몸가짐을 겸손하게 하면 그 지방의 힘센 자들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너그럽고 올바르면 그 곳 백성을 따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공손하고 바르게 정치를 하여 그 곳을 안정시키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군자를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

자식은 태어난 지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난다.

 

157 “부모의 상을 삼 년이나 치르는 것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군자가 삼 년간 예를 닦지 않는다면 예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삼 년 도안 음악을 팽기친다면 음악도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나면 묵은 곡식은 다 없어지고 햇곡식이 익고, 나무를 비벼 얻던 불씨도 한 해에 한 번 씩 바꿉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상도 일 년이면 됩니다. 이에 공자왈

그렇게 하면 네 마음이 편하겠느냐?”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것이 편하다면 너는 그렇게 해라. 군자는 부모의 상을 입는 동안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듣기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재여가 밖으로 나가자 이렇게 말했다.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 년상은 세상의 합의된 예의이다.

그 삼 년이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을 배우는 시기이다. 부모의 품에서 말이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158 하루는 재여가 낮잠을 잤다. 공자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한탄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종묘의 제사 그릇 같은 자공

 

자공이 물었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왈 괜챦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한 번 움직여 세상의 판도를 새로 짠다.

 

162 일반적으로 왕이 교만해지면 제멋대로 하고 신하들이 방자해지면 권력을 다투게 됩니다. 당신은 위로는 왕과 틈이 벌어지고 아래로는 대신들과 권력을 다투게 될 것입니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할 수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많이 듣고 사가면 실수가 적다

 

172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장은 이 말을 잊지 않기 위하여 자기 허리띠에 적어 두었다.

 

명망과 통달의 차이

 

자장은 공자에게 물었다. “선비는 어떠해야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되물었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슨 뜻이냐?”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고 집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명망이지 통달이 아니다.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효성으로 이름을 떨친 증삼

사람은 말과 생김새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재능은 빼어난데 몸담고 있는 곳이 작다

배우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공자가 죽은 뒤 원헌은 세상을 등지고 풀이 무성한 늪가에 숨어 살았다. 어느 날 위나라 재상으로 있던 자공이 말 네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호위병과 함께 원헌을 찾아왔다. 원헌은 낡아 빠진 관과 옷을 입고 그를 맞이하였다. 자공은 그이 초라한 행색을 부끄럽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 병이 들었습니까?” 원헌이 말했다.

내가 듣건데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자공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언짢게 떠났다.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던 자장

 

공야장이라면 사위로 삼을 만하다. 비록 그가 감옥에 갇힌 일이 있지만 그의 죄는 아니었다

그러고는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흰 옥의 티는 갈 수 있지만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

 

자용이 시경을 읽다가 흰 옥의 티는 갈 수 있지만,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몇 차례 되풀이하여 읽자 조카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지조를 지킨 공석애와 낭만주의자 증점

 

증점은 자가 석이다. 공자를 가까이 모시고 있을 때 공자가 말했다.

네 뜻을 말해 보아라’”

그러자 증점은 이렇게 말했다

봄옷이 새로 만들어지면 젊은이 대여섯 명과 어린아이 예닐 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밑에서 바람을 쐰 다음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서 감탄했다.

나도 너와 같이 하고 싶구나’” 나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다.

역경의 전수는 끊이지 않았다

말만 잘하는 자를 미워한다

겸손한 칠조개

모든 일은 천명에 의해 결정된다

어진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183 자우가 한번은 군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자우가 다시 물었다.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음 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예와 의를 좋아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번지가 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얼굴이 닮았다고 하여 공자가 될 수는 없다.

군자는 가난한 사람만 돕는다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8 상군 열전

상앙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서<치국의>법술을 밝혀 효공을 강대한 패자로 만들었으니 <진나라는>후세에도 그 법을 따랐다

 

상군은 중국 선진 시기 법가를 대표하는 정치가 상앙을 말한다. 상앙은 사회 개혁법을 통하여 봉건적인 옛 제도를 철저히 없애고 군주의 절대권력확립에 필요한 혁신적인 조치를 강구하였다. 그는 특히 귀족들의 세습적 특권을 박탈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절대군주의 존재를 위험시하는 지식인들의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사상논의를 엄금하도록 요청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강압적이고 전체주의적 조처로써 상앙은 진나라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부강하게 만들고 뒷날 천하를 법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 법가사상 자체가 지식인을 탄압하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상앙의 사상은 지식인과 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유교사회에서는 거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사마천도 그의 인물됨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자의 말은 믿을 수 있는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성공적인 유세를 할 수 있다.

예것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199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 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새로 만든 법은 믿음 속에서 꽃필 수 있다.

법은 위에서부터 지켜야 한다.

뱃속에 있는 질병을 없애라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207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聰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彊이라고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순 임금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210 당신의 파멸은 한 발을 들고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잠깐 사이에 다가올 것입니다.

 

9 소진 열전

 

천하는 <여섯 나라가>연횡하는 것과 秦나라의 탐욕을 걱정하였는데 소진이 제후들을 붙들어 주고 합종을 맹약함으로써 탐욕스럽고 강대한 진나라를 눌렀다.

 

<전국책>에서 자료를 취한 이 편은 합종가인 소진과 그의 두 동생 소대와 소려의 열전을 묶은 것이다.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다.

 

217 “주나라 사람들의 풍속에 따르면 농사를 주로 하고 물건을 만들고 장사에 힘써서 10분의 2의 이익을 올리는 것이 사람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본업을 버리고 입과 혀끝만을 놀리고 있으니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소진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슬퍼졌다. 그는 그길로 문을 걸어잠그고 방에 틀어박혀 책을 꺼내 두루 훑어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 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천 리 밖의 근심을 버리고 백 리 안의 근심부터 해결하라

어찌 어두운 곳에서 큰 일을 결정하랴?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

 

228 왕의 땅은 다함이 있지만 진나라의 탐욕스러운 요구는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싹이 돋아날 때 베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

 

231 대체로 신하 가운데 진나라를 섬기라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간사한 신하이지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닙니다. 그들은 신하된 자로서 자기 군주에게 땅을 떼어 주고 다른 나라와 우의를 맺도록 요구하여 한때의 성공만을 구하려 들 뿐 그 뒤의 결과는 돌아보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나라를 무너뜨려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고, 밖으로 강대한 세력에 기대 안으로 자기 군주를 위협하여 토지를 나누어 주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과장된 몸짓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라

우환이 닥친 뒤에는 걱정해도 소용없다.

 

237 마음은 달아 놓은 깃발처럼 흔들려 의지할 곳이 없었소.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긴다

원수를 버리고 든든한 친구를 얻어라

충신만이 죄를 짓는가?

사람을 속여 원수를 갚는다

자주색 비단이 흰색 비단보다 열 배 비싸다.

정의로운 행동만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258 진나라 왕이 남을 꾸짖는 말은 둥근 고리처럼 돌고 돌며,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나는 새처럼 재빠르므로 태후도 막을 수 없고 양후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259 태사공은 말한다.

소진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날렸으며, 그들의 술수는 권모와 변화에 뛰어난 것이었다. 소진이 제나라에서 반간[첩자를 이용하여 적의 내부를 이간시켜 자기 쪽이 승리하게 하는 것]의 혐의를 받고 죽으니 천하 사람은 모두 그를 비웃고 그 술수를 배우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세상에 퍼진 소진의 사적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많은데, 그것은 시대를 달리하는 사적을 모두 소진에게 끌어다 덧붙였기 때문일 것이다. 소진이 보통 사람의 집에서 일어나 여섯 나라를 연합시켜 합종을 맺게 한 것은 그 지혜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시대 순서에 땨라 그의 경력과 사적을 서술하여 유독 그만이 나쁜 평가를 듣지 않도록 하였다.”

 

10 장의 열전

여섯 나라는 이미 맹약을 하여 화친했으나, 장의는 주장[연횡설]을 밝힘으로써 제후들을 흩어지게 했다.

 

연횡가들의 전기로서 장의 진진 서수 세 사람의 사적을 수록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한다.

 

268 지난날 내가 당신과 술을 마셨을 때 나는 당신 구슬을 훔치지 않았건만 당신은 나를 매질하였소. 이제 당신 나라를 잘 지키시오. 나는 당신 나라의 성읍을 훔칠 것이오.

 

싸울 때는 명분과 실속을 모두 얻어야 한다

 

270 신이 듣건대 명분을 다투는 자는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을 다투는 자는 저잣거리에서 다툰다고 합니다.

 

신은 나라를 잘살게 만들고자 하늕 사람은 땅을 넓히는 일에 힘쓰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힘쓰며, 왕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덕정을 널리 펼치는 일에 힘쓴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만 갖추어지면 왕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

 

275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잘 살펴서 계책과 의논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은 잠시 휴가를 얻어 위나라를 떠나 있고 싶습니다.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는 까닭

호랑이와 양은 적수가 못된다

 

282 나라가 가난한데도 자주 전쟁을 일으킨다면 위험에 빠지고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은 병력이 부치면 싸워서는 안 되고, 식량이 부치면 오래 싸우지 마라

 

달콤한 말은 나라를 망친다.

 

287 나라의 오랜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한 순간의 달콤한 말을 듣는다면 이보다 더 남의 임금을 망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때의 이익에 끌려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는다.

 

288 왕을 위하여 계책을 내는 자는 모두 한때의 이익에 끌려서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289 비록 전쟁에서 이겼다는 명성은 얻었지만 실제로는 나라가 망했습니다.

 

오른팔을 잘리면 싸울 수 없다.

 

291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이 나는 땅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조나라의 오른팔을 잘라 버린 셈입니다.

 

허우대는 어른 생각은 어린아이

무왕과 틈이 벌어진 장의

사람 됨됨이는 그 주위 사람이 제대로 안다

할 일 없이 술만 마신 서수

병들었을 때는 고향이 가장 그립다

 

302 대체로 사람이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병이 났을 때입니다.

 

303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싸움을 벌인지 한 해가 넘도록 해결이 나지 않았다면 큰 나라는 타격을 입고 작은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자기보다 나는 자를 밟고 일어서다

 

305 태사공은 말한다. “三晉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웅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두 삼진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ㄷ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데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11 저리자.감무열전

진나라가 동쪽땅을 차지하여 제후들의 패자가 된 것은 저리자와 감무의 책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대표적인 종횡가의 면모를 보인 사람. 진시황이 여섯 나라를 통일하기까지 매우 큰 공을 세운 자로는 단연 저리자와 감무를 꼽을 수 있다.

 

지혜주머니라고 불린 저리자

아들이 살인했다는 말을 듣고 북을 내던진 어머니

 

314 옛날 효자로 유명한 증삼이 비읍에 있을 때 일입니다.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이름과 성이 똑 같은 자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상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뒤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역시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 또다시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하자 그 어머니는 베 짜던 북을 내던지고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진 증삼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나 그를 의심하자 정말인가 싶어 겁을 먹었습니다. 지금 신은 증삼처럼 어질지 못하고, 왕께서 신을 믿는 마음도 증삼의 어머니가 아들을 믿는 마음만 못합니다. 또한 신을 의심하는 자가 어디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신은 왕께서 북을 내던진 증삼의 어머니처럼 신을 의심하거나 두렵습니다.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수레를 뒤엎는다.

남의 남는 빛으로 집안을 일으킨다

 

321 제가 듣건데 못사는 여자와 잘사는 여자가 함께 길쌈을 하였는데, 못사는 여자가 나는 초를 살 돈이 없습니다.

 

12 양후 열전

황하와 화산을 장악하고 대량을 포위하여 제후들이 손을 잡고 진나라를 받들게 한 것은 위염의 공이다.

전국시대 중기 이후는 진나라가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제후들을 잠식해 나가던 때이다.

 

외척의 정치참여

운명은 정해져 있니 않다

 

433 땅을 조금 떼어 주는 대신 진나라로부터 인질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安眠島.  안면 반드시 속을 것입니다.

{주서에}천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요행과 자주 일어나는 이이 아님.

 

잃는 게 없는 싸움을 하라

결국 내쫓기는 신세

 

342 “양후는 소와의 친외삼촌이다. 진나라가 동쪽으로 땅을 넓히고 제후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한때 천하에서 제라 일컫고 천하의 제후들에게 서쪽을 향해 머리를 숙이게 한 것은 양후의 공적이다. 그러나 그는 부유하고 존귀함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범저 한 사람의 탄핵으로 신분이 꺾이고 권세를 빼앗겨 근심과 번민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왕족의 한 사람이 이렇거늘]하물며 [진나라에서 벼슬아치가 된]개격이야 어떻하겠는가?

 

13 백기.왕전열전

남쪽으로 <초나라의>언과 영을 함락시키고 북쪽으로 <조나라의>장평을 깨뜨리고 <마침내>한단을 포위한 것은 무안군 백기가 장수로 있을 때이고, 또 형[초나라]을 무찌르고 조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왕전의 계책이다.

백기는 전국시대 진나라의 유명한 장수로 공손기라고도 한다. 왕전은 진시황때 장수이다.

 

마음을 잘 바꾸는 자는 난을 일으킨다.

 

346 조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한나라와 가까워질 태고, 한나라와 조나라가 하나로 뭉치면 진나라에 대항할 수 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세 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싸움에서 진다.

 

386 “그렇지 않소. 진나라 왕은 포악하고 다른 사람을 믿지 않소. 그런데 지금 진나라 군사를 모두 나에게 맡겼소. 내가 자손을 위한 재산을 만들려고 많은 논밭과 정원과 연못을 요청함으로써 다르 뜻이 없음을 보여 스스로를 안전하게 하지 않는다면 진나라 왕은 가만히 앉아서 나를 의심할 것이오

 

387 “왕이는 진나라의 뛰어난 장수이다. 지금 강한 진나라 군대로 새로 일어난 조나라를 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의 객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무릇 세 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반드시 싸움에서 지게 되어. 반드시 싸움에서 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소?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쳐부순 것이 많아서 그 후손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오. 이제 왕이는 이미 세 대째 장군이 되었소.” 그 뒤 얼마 안 가서 항우가 조나라를 도와 진나라 군대를 쳐 왕이을 사로잡았다. 왕이의 군대는결국 제후에게 항복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세상에 자尺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寸에도 긴 데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백기는 적의 전력을 헤아려 날쌔게 대응하고 끊임없이 기이한 계책을 생각해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응후와의 사이에서 생긴 근심은 없애지 못했다. 왕전은 진나라 장군이 되어 여섯 나라를 평정했다. 당시 왕전은 노련한 장수가 되어 시황제조차도 그를 스승으로 받아들여싸. 그러나 진나라를 보필해서 덕을 세워 천하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시황제에게 아첨하여 편하게 있을 곳을 구하다가 늙어서 죽음에 이르렀다. 손자왕이 때에 이르러 항우에게 사로잡힌 것도 마땅하지 않았는가. 그는 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4 맹자.순경 열전

<맹자는>유가와 묵가의 유문[전해오는 문헌]을 섭렵하고 예의의 기강을 밝혔으며, 양나라 혜왕이 이익을 추구하는 단서를 끊었다. <순경은>지난날의 흥망을 열거했다.

 

잡가들의 열전. 사마천은 음양가와 도가의 학문이 사실상 근본이며 기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가의 위대한 두 스승 맹자와 순자의 사적에 관해서는 짧게 다루고 음양오행가와 도가에 대해서는 유가보다 상세하게 다루었다.

 

사욕은 혼란의 시작이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맹자>라는 책을 읽다가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고 !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라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시대 흐름에 들어맞지 않는 주장은 쓰이지 못한다.

 

367 네모난 각목을 둥근 구멍에 아무리 넣으려고 한들 들어갈 리가 있겠는가?

 

양나라 혜왕이 순우곤을 만나 한마디도 듣지 못한 까닭

 

추연을 비롯한 제나라의 직하선생들은 저마다 글을 써서 어지러운 나라를 다스리는 문제를 말하으로써 당시 군주에게 등용되기를 원했다.

 

368 “그대는 순우 선생이 관중이나 안영도 따를 수 없는 인물이라고 칭찬했소. 그런데 과인은 그를 만나 말 한마디 얻어 듣지 못했소. 과인이 그와 말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오? 무슨 까닭이오?

빈객이 순우곤에게 이 말을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고, 내가 전에 왕을 만났을 때 왕은 말을 쫓아가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왕이 음악에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래서 나는 말없이 있었소.”

빈객이 이 말을 왕에게 자세히 보고하니 왕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 순우 선생은 정녕 성인이오. 순우 선생이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바쳤는데, 내가 그것을 타 보기 전에 마침 선생께서 오셨소. 선생이 두 번째 왔을 때는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바쳤는데 사람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쪽으로 정신이 쏠려 있었소. 그것은 사실이오.”

그 뒤 순우곤은 혜왕을 만나 한 번 입을 열자 사흘 밤낮을 이어서 말했는데도 혜왕은 피곤한 줄을 몰랐다.

 

전국시대 각 지역의 사상가들

15 맹상군 열전

빈객을 좋아하고 선비들을 반갑게 맞았으므로 사람들은 설땅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제나라를 위하여 초나라와 위나라의 침략을 막았다.

 

맹상군은 제나라 종실 대신인 전영의 서자로 빈객과 선비들을 좋아하였다. 그는 명성과 이익만을 좇았을 뿐이므로 인물 됨됨이는 볼 것이 없다.

 

사람의 운명은 어디로부터 받는가?

 

378 그러자 전영이 문의 어머니에게 고함을 쳤다.

내 너에게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 감히 키운 것은 무엇 때문이냐?” 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 대신 말했다.

아버님께서 5월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엇있지까?”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이 또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붙너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전영이 말했다. “그만 하거라그뒤 얼마 지나서 문은 한가한 틈을 타 아버지 전영에게 물었다.

………..

아버님께서는 정권을 잡고 제나라 재상이 되어 지금까지 위왕, 선왕 민왕을 섬겼습니다. 그 동안 제나라 땅은 넓어지지 않았는데 아버님 자신은 천만 금이나 되는 부를 쌓았으며, 그러고도 문하에는 어진 사람 한 명 볼수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궁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질질 끌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짧은 바지하나 재대로 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하인들과 첨들을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고도 남아돌지만 선비들은 쌀겨나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쌓아 둔 것이 남아돌지만 더욱 많이 쌓아 두려고만 할 뿐 나라의 힘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은 잊고 계십니다. 저는 이 점이 이상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전영은 문을 높이 사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빈객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그러자 빈객이 날로 불어나고 문의 이름이 제후들에게 알려졌다. 제후들이 모두 사자를 시켜 설공 전영에게 문을 후계자로 삼도록 청하자 전영이 이를 허락했다.. 전영이 죽자 시호를 정곽군이라 했다. 문이 아버지를 이러 설 땅의 영주가 되니 이 사람이 바로 맹상군이다.

맹상군이 설 땅에 있으면서 제후들의 빈객을 불러 모으자, 죄를 짓고 도망친 자까지 모두 그 문하로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집의 재산을 기울여서 그들을 정성껏 대우하자 천하의 인물이 거의 다 모여들어 빈객이 수천 명이나 되었다. 맹상군은 신분이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하결같이 자신과 똑같이 대우해 주었다. 맹상군은 손님과 앉아 이야기할 때 늘 병풍 뒤에 시사[기록하는 사람들]를 두어 손님의 친척이 있는 곳을 묻고 그 내용을 적어 두도록 했다. 손님이 나가면 맹상군은 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그의 친척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선물을 주곤 해싿. 하루는 맹상군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참을 대접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불빛을 가린 탓에 방안이 어두웠다. 손님은 자신의 음식이 맹상군의 것과 다른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어둡게 한 줄 알고 기분이 상해서 식사를 하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 맹상군이 일어서서 몸소 자신의 밥그릇을 들어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은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 때문에 선비들이 맹상군에게 많이 모여 들었다. 맹상군이 손님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잘 대우하므로 저마다 맹상군과 친하다고 생각하였다.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위기를 벗어나다

 

오늘 아침 저는 밖에서 이곳으로 오늘 길에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 거야.’라고 말하자 흙 인형이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지만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굳이 가려고 하시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가면 당신은 흙 인형의 비웃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383 처음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두사람이 그를 구하였다. 그 뒤 빈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 속 깊이 맹상군을 따르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보답이 따른다.

맹상군의 결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군주가 이익에 눈멀면 백성은 떠난다.

 

393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 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은 의심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

 

397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꾸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런 원리를 아십니까?”

맹상군이 대답했다. “어리석어 선생이 말하는 바를 잘 모르겠소풍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는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늘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맹상군은 두번 절하고 말했다. “삼가 말씀대로 하겠소. 선생의 말씀을 들은 이상 그 가르침을 받들어 따르겠고.”

 

16 평원군.우경열전

<조나라의>평원군은 풍정과 서로 권모를 다투고 초나라로 가서 한단의 포위를 풀고<조나라의>군주를 다시 제후가 되게 했다.

 

평원군과 우경 두 사람의 열전을 합쳐놓은 것. 평원군은 전국시대의 네공자 중에서 비교적 평범한 인물이다. 우경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진나라를 섬기다 조나라를 섬기다 하는 지조 없는 잉ㄹ부 빈객과는 달리 끝까지 합종을 지키며 진나라에 대항하고 조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애첩을 죽여 신의를 지킨다

세 치 혀가 군사 백만 명보다 강하다

나라가 망하면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지키지 못한다

 

416 진나라가 제아무리 공격을 잘한다 해도 여섯 현을 빼앗아 갈 수는 없을 테고, 조나라가 잘 지킬 수 없을지라도 현 여섯 개를 다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417 옛말에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앉아서 진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면 진나라 군사는 애쓰지 않고 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조나라를 약하게 만듭니다. 더욱더 강해지는 진나라가 더욱더 약해지는 조나라 당을 떼어 받는 일이니 진나라의 요구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왕의 땅은 끝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요구에 응하면 그 결과는 조나라의 멸망뿐입니다.

 

421 이익에 사로 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

 

17 위공자 열전

부귀한 몸으로서 빈천한 선비에게 몸을 낮추고 어진 선비로서 하찮은 사람에게 굽히는 일은 오직 신릉군만이 할 수 있다.

 

신릉군 무기는 전국시대 네 공자 중 가장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서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는데 이는 그가 선비를 대하는 남다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신릉군열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진 사람을 얻으려면 정성을 다하라

 

427 공자는 사람됨이 어질고 선비들에게 예의로 대우했다. 선비가 어질든 그렇지 않든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예를 갖추어 사귀고, 자기가 부귀하다고 해서 교만하게 구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선비들은 사방 수천 리에서 앞을 다투어 몰려와 공자에게 몸을 의지하여 빈객이 3000명이나 되었다. 그 무렵 제후들은 공자가 어질고 빈객이 많음을 알고 섣불리 위나라를 공격하려 하지 않은 지 십여 년이나 되었다.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 주지 말라

 

431 내가 스스로 공자와 인척 관계를 맺은 까닭은 공자가 의를 중하게 여겨 다른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면 망설이지 않고 구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잊으면 안 되는 일과 잊어야 할 일

 

436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잇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노름꾼과 술 파는 자라도 어질면 찾아가라

비방 한마디가 인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18 춘신군 열전

몸을 던져 가면서 군주를 따라 마침내 강한 진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유세객들을 시켜 남쪽 초나라로 달아나게 한 것은 황헐의 충의였다.

 

춘신군 황헐은 네 공자 중 한사람으로 변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황헐은 국력이 쇠약해져 가던 경양왕 때에 진나라 소왕에게 글을 올려 곤경에 빠진 초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도와주도록 하였다. 뒤에는 진나라에 볼모로 갔다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태자를 귀국시킴으로써 초나라의 대통을 잇게 하였는데, 이 태자가 바로 초나라 고열왕이다.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못 이긴다

 

446 신은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라고 들었습니다.

 

447 <시경>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라고 했고 <역경>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신하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정확한 결단만이 몸을 보존할 수 있다

복과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461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 범저, 채택 열전

위제[위나라 재상]에게 받은 치욕을 참아내고 강한 진나라에서 신임을 받아 위세를 떨쳤으며, 어진 사람을 추천하여 자리를 양보한 사람이 둘 있다.

 

범저는 위나라 사람이고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이들은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다가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다.

 

군주가 의심하면 잠시 떠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제후의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

 

470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을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 내린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을 알고, 훌륭한 군주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밝습니다.

 

480 옛 시에도나무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 기둥을 해친다라고 했습니다. 수도가 지나치게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가 지나치게 존중되면 군주가 낮아집니다.

 

머릿카락을 뽑아 속죄해도 부족하다

 

499 어느 날 소왕이 조정에 나와 한숨을 쉬자 응후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신이 듣건대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군주가 욕을 보면 신하는 죽는다라고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조정에 나와 근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신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이니 신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군주가 어진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다

 

493 대체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은 차례로 할 일을 다하면 물러갑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신체가 건강하고 팔다리가 성하고 눈과 귀가 밝고 마음이 지햬로운 것이 선비의 바람 아니겠습니까?

 

495 군주가 성스럽고 신하가 어진 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복입니다. 군주가 명철하고 신하가 정직한 것은 나라의 행복입니다. 아버지가 자애롭고 자식이 효성스러우며 남편이 성실하고 아내가 정숙한 것은 가정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비간은 충성스러워도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했고, 오자서는 지혜롭지만 오나라를 온전하게 하지 못했으며 신생은 효성스러워도 진나라는 어지러웠습니다.

이처럼 모두 충신이고 효자이지만 나라가 망하고 집이 어리러워진 까닭은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군주와 현명한 아버지가 없어서 충신과 효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

 

501 펼 줄만 알고 굽힐 줄 모르며 앞으로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 모르는 사람이지요.

 

502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저 네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 당신은 어찌 그것을 이어 받으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되돌려 어진 사람에게 물려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 밑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지 않습니까?

 

503 나도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라고 들었서

 

20 악의 열전

장수가 되어 계책을 실천하고, 다섯 나라의 군사를 연합하여 약한 연나라를 위해 강한 제나라

애 원수를 갚아 그 선군의 치욕을 씻었다.

 

악의는 전국시대의 저명한 군사가로 알려져 있으나 위나라에서 태어나고 조나라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위나라를 거쳐 연나라로 갔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종종 지조가 없다고 비난을 받는다

 

충신이 반역자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이다

군주와 신하의 의는 무엇인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떠나라

 

21 염파. 인상여 열전

<인상여는>강한 진나라에서는 자기 생각을 펼치고, 염파에게는 몸을 굽혀 그 군주를 위함으로써 한결같이 제후의 존경을 받았다.

 

전국시대의 수많은 전쟁은 대부분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염파 인상여 조사 이목등 네사람은 조나라를 더욱 강성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충성을 다했다.

 

큰 나라끼리 사귀는 데는 법도가 있다

피를 뿌려서라도 군주의 위엄을 지킨다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한다

세금이 공평하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쥐구멍 안의 싸움에서는 용감한 쥐가 이긴다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르다

권세를 가진 자에게는 사람이 몰린다

죽음을 알면 용기가 솟는다

 

 

22 전단 열전

제나라 민왕은 <수도>임치를 잃고 거읍으로 달아났지만, 전단은 즉묵을 굳게 지키며 기겁을 깨뜨

려 달아나게 함으로써 드디어 제나라의 사직을 보존하였다.

전단은 전국시대의 기인. 전단이 적과 싸우면서 보여준 지혜와 계책은 손자병법에서 취한 것이다.

 

수레바퀴 축의 쇠가 목숨을 구한다

기묘한 계책으로 적의 허를 찔러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23 노중련. 추양열전

궤변을 늘어놓아 <진나라에>포위된 성의 근심을 풀고, 작위나 봉록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뜻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즐겼다.

 

고상한 품성으로 이름을 남긴 전국시대의 노중련과 굴원을 중심으로 하여 한대의 추양과 가생까지 다루고 있음.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

잠시의 부끄러움을 참고 이름을 길이 남겨라

여러 사람 입은 무쇠도 녹인다

 

 

24 굴원. 가생열전

문장을 지어 풍자하여 간언하고 유사한 비유를 들어 義 논한 것으로는 <이소>가 있다.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애국시인 굴원과 서한 초기에 유명했던 정치가 가생의 충성심과 전제 정권하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모습을 애틋한 필치로 적었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우물물이 맑아도 마시지 않으니 슬프다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모자를 신발 삼아 신어서야 되겠는가

들새가 들어오고 주인이 나간다

 

25 여불위 열전

<진나라의>자초와 우호 관계를 맺고 제후들이 다투어 진나라를 섬기도록 하였다.

 

여불위는 전기색채가 풍부한 역사 인물이다. 그는 한나라의 큰 상인으로 여러 제후국을 주유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진귀한 재물은 사 둘 만하다

한 글자도 더하거나 뺄 순 없다

거짓으로 얻은 명성은 물거품 같다

 

 

26 자객 열전

조말의 비수로 노나라는 잃었던 땅을 되찾고, 제나라는 <제후들에게>그 신의를 밝혔다. 예양은 의를 지켜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한 다섯 자객의 활약상 즉 노나라 조말이 제나라 환공을 위협하고 오나라 전제가 오나라 왕 요를 찌르고 진나나 예양이 조나라 양자를 찌르려하고 지의 섭정이 한나라 재상 협루를 찌르고 연나라 형가가 진나라 왕 정을 찌르려던 상황을 적고 있다.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혈육을 죽이고 왕이 된다

충신은 지조를 위해 죽는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

인물은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인다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기를 던져 놓는다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아야 성공한다

자객은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27 이사 열전

그 계획을 분명히 하고 시대의 추이에 따라 진나라를 추존하여 <진나라가>海內를 통일하도록 한 것은 전적으로 이사의 힘이었다.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으로 훗날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이사라는 역사적 인물의 사적에 관한 고찰을 통해 진나라가 흥하고 망한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661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그러고는 순경에게로 가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의 기술을 배웠다. 그는 공부를 끝마치자 초나라 왕은 섬길 만한 인물이 옷 되고, 여섯 나라는 모두 약소하여 섬겨서 공을 세울 만한 나라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는 순경에게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저는 때를 얻으면 꾸물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만승의 제후들이 바햐흐로 서로 다투고 있는 때여서 유세가들이 정치를 도맡고 있습니다. 또 진나라 왕은 천하를 집어 삼치고 帝제라고 일컬으며 다스리려 합니다. 이는 지위나 관직이 없는 선비가 능력을 펼칠 때이며 유세가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등용했으면 내치지 말라

옛것으로 지금을 비평하지 말라

남의 신하가 되는 것과 남을 신하로 삼는 것은 다르다

 

679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이제 황제로서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귀로 듣고 싶고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즐기고, 종묘를 편안히 하고 많은 백성을 즐겁게 하여 천하를 길이 소유하고, 타고난 내 수명을 누리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

 

제 몸조차 이롭게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리랴

 

684 남이 나를 따르게 하면 나는 존귀해지고 남은 비천해지지만, 내가 남을 따르면 내가 비천해지고 남이 존귀해집니다. 그러므로 남을 따르는 자는 비천하고 남을 따르게 하는 자는 존중받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옛날에 현명한 사람을 존중한 까닭은 그 사람이 존귀했기 때문이고, 못난 사람을 미워한 까닭은 그 사람이 미천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

 

28 몽염 열전

진나라를 위해 땅을 개척하고 인구를 늘려 북쪽으로는 흉노를 무찌르고, 황하를 따라 요새를 만

들었으며, 산에 의지하여 방비를 튼튼히 함으로써 유중현을 건설했다.

 

진나라가 통일된 뒤, 몽염은 흉노를 압박하고 십여 년간 북방을 지키면서 만리장성을 쌓아 진시황에게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몽염의 집안 사람들은 대대로 진나라 장수로서 진나라 건국 때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충신은 대신들과 다투지 않는다

한 사람의 지혜로는 군주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29 장이.진여 열전

조나라를 평정하고 상산에 요새를 만들어 하내를 넓히고 초나라의 권세를 약화시켜 한나라 왕의 신의를 천하에 드러냈다.

 

전국시대 말기의 유생으로서 서로 친밀한 정을 나눈 사이이다. 진나라 말기에 두 사람은 대의를 명분으로 일어난 진섭 밑에 들어가 조나라의 장상을 새로 세웠다. 그러나 진나라와 한나라의 복잡한 정치적, 군사적 대립 속에서 두 사람은 친구에서 원수라는 비극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장이는 한나라로 가고 진여는 조나라와 초나라를 도왔다.

 

목이 달아나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명분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

이익 앞에서는 친구도 원수가 된다

지조있는 신하가 왕을 구한다

 

30 위표. 팽월 열전

위표는 西河와 상당의 군사를 거두어<한나라 왕을>따라 팽성에 이르렀다. 팽월을 양나라를 침략하여 항우를 괴롭혔다.

 

용 두마리가 싸울 땐 기다려야 하듯 위표와 팽월은 진나라 말기의 빠른 변화 속에서 여유롭게 처신했다. 이들은 한나라를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모두 쏟아 항우에게 대항했고 공적을 세웠다. 당시 팽월은 초나라와 한나라 사리에 벌어진 전쟁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 인물로서, 양나라 지역에서 여러 차례 항황에게 반기를 들고 초나라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여 항왕을 불안하게 하였다. 이들은 결국 왕이 되었다가 한 시대의 호걸답게 죽었다.

 

인생은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짧다

 

745 역생이 위표를 찾아가 설득하였으나, 위표는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흰 망아지가 [작은문]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소. 지금 한나라 왕은 오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제후와 신하들을 노예처럼 꾸짖고 욕하며 위아래의 예절이 조금도 없고. 나는 그러한 꼴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소.” 이 말을 듣도 한나라 왕은 한신을 보내 치게 하여 하동에서 위표를 사로잡아서 역마로 형양에 보내고, 위표의 나라를 군으로 만들었다. 한나라 왕은 위표에게 형양을 지키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초나라가 형양을 포위하여 위급해지자 주가는 마침내 위표를 죽이고 말았다.

 

용 두마리가 싸우면 기다려라

 

31 경포 열전

<경포가>회남 땅을 가지고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돌아가니, 한나라는 그를 이용하여<초나라의>대사마 주은을 맞아들여 마침내 항우를 垓下에서 무찔렀다.

 

경포는 본래 이름이 영포인데 다른 사람의 죄에 연좌되어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당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된다

팔짱만 끼고 앉아 어느 쪽이 이기는지 보면 안 된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 어찌 썩은 선비를 쓰랴

왜 낮은 계책을 쓸까

 

768 영윤이 대답했다.

영포는 본래 여산의 무리로서 자기 힘으로 만승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지 뒷날을 생각하고 백성 만대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낮은 계책을 쓸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770 태사공 왈

영포의 조상은 <춘추>에 초나라가 영과 육을 멸망시켰다. 라고 되어 있는 영씨로서 고요의 후예가 아닐까? 몸에 형벌을 받고서도 어떻게 빨리 일어났을까?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

…DNA의 문제일까?

 

32 회음후 열전

초나라 군대가 경과 삭 사이에서 <한나라를>압박할 때 한신은 위나라와 조나라를 점령하고, 연나라와 제나라를 평정하여 천하의 3분의2를 차지하게 함으로써 항우를 멸망시켰다.

 

작위를 편명으로 삼은 것으로 한나라 초기의 뛰어난 군사가로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한신의 전기이다.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간다

 

775 회음후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평민일 때에는 가난한 데다 방종하였으므로 추천을 받아 괸리도 될 수 없고, 또 장사를 해서 살아갈 능력도 없어 늘 남을 따라다니며 먹고 살아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싫엉하였다. 일찍이 회음의 속현인 하향의 남창 정장의 집에서 여러 번 얻어먹은 일이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는 한신을 귀챦게 여겨,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불속에서 먹어 치우고는 식사 시간에 맞춰 한신이 가도 밥을 차려 주지 않았다. 한신도 그 뜻을 알고는 화가 나서 끝내 절교하고 발길을 끊었다.

눈물나게 서글픈 이야기다.

 

776 회음의 백성 중에서 한신을 업신여기는 한 젊은이가 한신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키는 커서 칼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모욕하며 말했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때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이 일로 해서 시장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777 어느날 법을 어겨 목을 베이는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같이 처형되는 열세 명의 목이 잘리고 한신의 차례가 되었다. 한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우연히 등공 하후영과 눈이 마주쳤다. 한신이 말했다.

주상께서는 천하를 차지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등공은 그의 말이 기특하고 모습이 장하다고 여겨 풀어 주고 베지 않았다.

 

천하는 마음을 얻는 자의 몫이다.

싸움에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하지 않는다

 

789 제가 듣건대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을 말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한신이 말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현인 백리해가 우나라에 살 때는 우나라가 망하였으나, 진나라에 있자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다가 진나라에 가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군주가]그를 등용했는지 등용하지 않았는지, 또 그의 말을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달렸을 뿐입니다. 만일 성안군이 당신의 계책을 들었더라면 나 같은 사람은 이미 포로가 되었을 겁니다. 성안군이 당신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803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난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나라 용사 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훌륭한 활을 치운다

 

806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아녀자에게 속은 것도 운명이다

 

33 한신. 노관 열전

초나라오 한나라의 공과 낙 사이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한 왕 신은 한나라를 위해 영천을 평정하고 노관은 항우의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주나라 초기 제후로 봉해진 인물은 대부분 조상의 음덕과 선행의 영향을 받았지만(사마천의 생각) 한나라 초기 제후들은 민간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일어나 자기 역량에 따라 세력을 구축한 차이가 있었다.

 

한나라 조정에 반기를 든 한신

배반과 투항을 일삼은 노관과 그의 족속들

 

824 “당신이 연나라에서 중용된 까닭은 오랑캐 사정에 밝기 때문이고, 연나라가 오래 존속되고 있는 까닭은 제후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키며 서로 군대를 합쳐 승패가 정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빈객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변란의 조짐이다

 

831 태사공 왈

한신과 노관은 본래 대대로 덕을 쌓고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권모술수로 벼슬을 얻고 간사함으로 공을 이루었다. 한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만났으므로 땅을 갈라 받고 남쪽을 바라보며 孤라고 일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 안으로는 지나치게 강해지고 커졌다는 의심을 받았고, 나라 밖으로는 흉노를 원조자로 믿기 기댔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조정과 멀어지고 자신들까지 위태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일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지혜가 다하자 흉노롤 달아났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않으랴!

 

,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34 전담 열전

제후들이 항왕을 배반했지만, 오직 제나라만이 성양에서 항우와 싸웠다. 한나라 군대가 그 틈을 타서 사잇길로 팽성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전담과 그의 사촌 동생 전영 및 전횡이 진나라 말기에 번갈아 왕이 되었다가 패망하는 과정. 즉 유방이 제나라를 평정하는 과정을 주로 언급.

 

왕의 피를 물려받은 이가 왕이 되어야 한다

독사에게 물린 손은 잘라야 한다.

837 “독사에게 손을 물리면 손을 자르고 발을 물리면 발을 자릅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자르지 않으면 몸뚱이마저 해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가, 전각, 전간은 초나라와 조나라에게 손이나 발 같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죽이지 않습니까? 또 진나라가 다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면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자들은 당연히 죽일 테고, 게다가 그 무덤까지 파헤칠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반란의 불씨가 된다.

평민에서 일어나 번갈아 왕이 된 세 형제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35 .역 열전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워 공을 세우고 돌아와 보고하는 데에는 번쾌와 역상이 유능하였다. 채찍을 들어 병마를 지휘한 공이 있고, 또 한나라 왕과 더불어 위기를 벗어난 적도 있었다.

 

한나라 초기 개국공신이며 유방의 충성스러운 장수였던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의 행적을 서술.이들은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과 한나라 초기 정권을 굳건히 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들로서, 모두 미천한 출신으로 시대 변화에 편승하여 영웅이 되었다.

 

용맹스럽고 기개가 넘치는 번쾌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리

 

849 항우가 그를 보고 물었다.

이자는 누군가?

장량이 대답했다.

패공의 참승 번쾌입니다.

항우는 말했다.

장사로구나.

그러고는 큰 술잔에 술을 따라 주고 돼지 다리 하나를 내려 주었다. 번쾌는 술을 마신 뒤 칼을 뽑아 고기를 잘라서 먹어 치웠다.

항우가 물었다.

더 마실 수 있겠소?

번쾌가 말했다.

신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겠습니까?

 

반역으로 몰려 위기에 처한 번쾌

노략질을 일삼던 역상

위증죄로 옥살이하던 하후영

비단을 팔던 관영

감동적인 장절

 

한비는 <세난>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86-88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그러나 유세자가 상대방의 비밀을 들출 뜻이 없었지만 우연히 상대방의 비밀을 말한다면 유세자는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유세자가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고 교묘한 주장을 내세워 그 잘못을 들추어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 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몸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또 군주가 좋은 계책을 얻어 자기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몸이 위태로워진다.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때 유세자가 이것을 알게 되면 역시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을 멈추게 하면 또한 몸이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챦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하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하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유세자는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행위를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며, 군주와 같은 실패를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며 두둔해 주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 주어야 한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 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름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권력을 가진 자와 참모의 관계.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관계를 본다. CEO와 그 보좌진들의 관계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

 

397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꾸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런 원리를 아십니까?”

맹상군이 대답했다. “어리석어 선생이 말하는 바를 잘 모르겠소풍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는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늘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맹상군은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삼가 말씀대로 하겠소. 선생의 말씀을 들은 이상 그 가르침을 받들어 따르겠고.”

세상의 이치다.절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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