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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 01시 39분 등록

<사기 열전 > 사마천 지음/김원중 옮김, 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백 세대가 지난다 해도 사관(史官)은 그 법을 바꿀 수 없고 학자는 그 책을 버릴 수 없다.

육경(六經)이 나온 이후로 이 책이 있었을 뿐이다.” – 정초(鄭憔, 1104~1162)

역사가의 절창(絶唱) “ - 노신 (魯迅) (1881~1936)

역사학계의 태조대왕 “, “역사학의 조물주“ – 양계초 (梁啓超) (1873~1929),

 

사마천(司馬遷)과 그의 필생의 역작 <사기>에 대한 당대 중국의 석학들의 예찬이다. 저자가 죽은 후 수세기가 지나서야 그와 <사기>에 대한 재평가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찬탄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생전에 그가 말한 것처럼 무당이나 점쟁이에 가깝고 악사나 배우 등과 같은 보 잘 것 없는 태사(太史)라는 직업에, 패장인 이릉(李陵)변호하다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을 당해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말이다.  

 

생애

 

사마천은(기원전 145? ~ 기원전 90?) 중국의 하양 북쪽 용문龍門 (지금의 섬서성 陝西省 한성시 漢城市)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 년도를 놓고 중국 학계에선 기원전 145년 설과 기원전 135년 설로 논란이 많았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출생 년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에선 기원전 145년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사마천의 가계는 주나라 이후 대대로 태사(太史)를 가업으로 해온 집안으로 사마천 또한 이를 업으로 삼았다. 그의 생애를 간단히 살펴본다.

 

고향 용문에서 19세까지 황하 서쪽과 용문산 남쪽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치고 열 살에 고문을 배운다.

19, 태사령(정부의 문서를 보관하거나 제사를 관장하는 관직)이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을 따라 장안근처 무릉으로 옮긴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견문을 넓힌다.

20세에서 23세까지 약 2/3년여 걸쳐 중국 천하를 여행하고 각지의 유적지 방문한다.

28, 낭중 (郎中)이 되어 처음 벼슬 시작하고 당대 유명한 유학자인 동중서 (董仲舒)로부터 학문을 익힌다.

35, 한무제의 명을 받아 서남이 西南夷 (지금의 사천성, 귀주성, 운남성) 지방을 시찰한다.

36,아버지 사마담은 천자가 거행한 봉선의식(封禪儀式)참가하지 못해 그만 화병이 들어 죽는다.

아들에게 자기의 뒤를 이어 태사령이 되라는 유언 남긴다.

38, 아버지의 유지 받들어 태사령이 되고 <사기> 집필 위한 답사 여행 기록 및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42,<사기> 집필 시작하고 한 해가 1월부터 시작되는 태초력 (太初曆) 완성한다.

47, 이릉 사건 발생, 옥에 갇힌다

48, 궁형 (宮刑)에 처해지고 옥중에서 <사기> 집필 계속한다

50, 대사면으로 출옥되어 중서령(中書令)이 된다

55~56, 친구 임안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이 무렵 <사기>를 완성한다. 사망한 시기도 이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마천의 아내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일설에 따르면 사마천의 유골을 고향으로 가져와 안장하고 무덤가에 영춘화를 심었다는 유천낭이 있고, 양씨 성을 가진 아내도 있다고 한다.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었다. 외손자 양운은 <사기>가 세상에 드러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 여행

 

사마천은 20세 때, 아버지의 권유로 중국 천하를 여행했다. 이는 역사서를 쓰기 위해서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지론 때문이었다.

 

2~3년 걸친 사마천의 중국 여행 경로는 동북쪽으로 내몽골 자치구, 동북3(길림성吉林省,흑룡강성 黑龍江省, 요녕성 遼寧省 ), 서쪽으로는 신강성 新疆省 위구르 자치구, 서남쪽으로는 감숙성 甘肅省 일부와 서장성 西藏省 (티베트 자치구), 동쪽으로는 광서성 廣西省 일부를 제외한 오늘날의 중국 영토의 전 지역을 포함한 대장정이었다. 당시 한나라의 영토가 한반도의 약 16배나 되는 긴 여정이었다. <사기열전> 마지막 70 <태사공자서 太史公自序>에 저자는 그의 여행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20세 때에 사마천은 남쪽 지방을 주유하였다. 우선 長江, 淮水를 돌아보고, 회계산에 올라가 禹穴 (우임금을 장사 지냈다는 동굴)을 탐험했다. 이어서 九疑山 (순임금을 안장한 곳)을 방문했고, 沅水湘水에서 배를 탔다. 그 곳에서 북상하여 汶水泗水를 건너 제나라와 노나라 도읍에서 학업을 닦고, 공자가 남긴 발자취를 접해보았다. 땅과 땅에서는 鄕射禮를 배웠다. , , 彭城등에서는 고생하며 여행을 하다가 이윽고 양나라와 초나라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

 

여행을 통해 얻은 현장기록은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예를 들어, 한나라 장군 한신의 전기를 다룬 회음후열전 (淮陰候列傳)에서 사마천은 한신의 고향인 회음을 직접 답사했다. 거기서 한신이 평민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과하지욕 (下之辱), 가랑이 밑을 기어가며 치욕을 참고 훗날을 기약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사기>에는 총 18 (열전 9편 포함) 에 걸쳐 사마천이 여행 답사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열전의 주인공이 활동했던 사적 탐방은 사마천의 세상과 인생을 보는 식견 및 역사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렸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릉 李陵 사건

 

사마천의 운명을 바꾼, 이릉 사건의 전말은 <사기>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대신, 친구인 임안 任安 에게 보내는 편지(보임소경서 報任少卿書)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저는 이릉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입장과 성격이 달랐기 때문에 함께 술을 마시며 친밀하게 지낸 적도 없습니다….., 이릉이 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폐하께서는 음식도 드시지 못하고,, 중신들은 걱정하며 어쩔 줄 몰랐습니다. 폐하의 괴로운 심정을 알아차린 저는 천한 제 지위도 잊은 채 폐하를 위로해 드리고자 아뢰었습니다. 저는 이릉의 공적을 아뢰었습니다. 저는 폐하의 생각을 넓혀드리고, 신하들의 비방을 막고자 했습니다. …., 그러나 제 논지가 명확하지 못해서 폐하를 납득시키지 못했습니다.오히려 이릉를 두둔하고 최고 사령관인 한무제의 처남 李廣利를 비방했다는 오해를 받았습니다.저는 감옥에 갇혔고 결국 제 충성심을 밝히지 못한 채 폐하를 기만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 저는 거세되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 저는 불행히도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형제도 없이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제가 새삼스럽게 처자 때문에 살려 한다고 공께서 생각하십니까? …., 제가 비록 목숨을 아끼는 비겁한 자라고 해도 거취만은 분별할 줄 압니다. 어찌 치욕 속에 죄인 노릇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천한 노복과 하녀들도 자결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제가 그 도리를 모르겠습니까? 치욕을 당하면서도 참고 살아가는 까닭은 제 마음 속의 숙원을 이루지 못한 채 죽어 문장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  (보임소경서)

                             

편지를 보고 몇 가지 정황을 추정해 본다.

 

첫째, 친하지도 않은 이릉을 굳이 변호한 것은 사마천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정의감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이릉이 흉노와의 전투에 중과부적의 숫적 열세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음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패전을 이유로 신하들이 이릉을 비방하는 것을 사마천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에게도 문제의 소지는 있어 보인다.

<보임소경서>에서 그는 저는 말을 잘 못하는 바람에 이런 화를 당해 고향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라고 말한다.  천자를 위로하기 위해 충성심에서 한 말인데 상대방이 오해했다면 사마천이 명확히 의사전달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갑작스럽게 천자의 질문을 받으니 당황을 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생각이 정돈되지 않은 채 말이 나왔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또한 역학적인 권력구조를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순수한 의도로 했더라도 모두 다 이릉을 성토하는 자리에서 그를 변호한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분도 불쾌한 천자의 마음에 불을 집히고 만 것이다.  

 

둘째, 사마천의 직위가 사관이라는 말직인데, 감히 천자한테 자신의 생각을 진언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설령, 폐하가 사마천의 의견을 구하였더라도 이릉을 대놓고 두둔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마천은 당시 <사기>를 집필 중에 있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의 사례를 통해,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 그리고 상대방과의 친밀도에 따라 말을 가려서 해야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한비의  <세난>편에 유세의 방법과 유세자가 주의할 사항이 있는데도 말이다.

 

궁형

 

궁형은 고환까지 잘라냈다고 한다. 소변이 나오는 요도밖에 없으니 제거 직후, 소변 배출을 용이하게 거위의 털을 박아 넣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요독증에 걸려 죽기 때문이었다.

그런 치욕스런 궁형을 감수하며 목숨을 부지한 것은 <사기>의 완성 때문이었다.

 

궁형을 당한 후 <사기>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사마천은 하루에도 아홉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가만히 집에 앉아 있으면 멍하니 무엇인가를 잊은 듯 어처구니가 없고 자꾸만 부끄러워 언제나 등골에 땀이 흘러 옷을 적신다고 했다. 살아갈 확실한 이유가 있어 사마천은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기> 집필을 완수한 후 곧 죽고 만다. 살아야 할 이유가 더 이상 없기에..

 

<사기>에 대하여

 

<사기>는 원래 <태사공서>였다. 아버지인 태사공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라 한다.  그 후 <태사공기>, <태사공> ,<태사기>를 거쳐 기원후 약 150여 년 경부터 <사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는데 102 종의 서적과 자료를 참고했으며 주요 서적으로 6경과 제자백가서를 참고 했다고 한다. 사마천의 치밀한 준비과정과 집념이 느껴진다.

 

<사기>는 약 2100여 년 전에 기전체로 쓰여진 최초의 역사서다. 그 이전에는 연대별로 발생사건을 순서 별로 기술하는 편년체 형식이었다. 공자의 <춘추>가 대표적이다.

기전체는 제왕의 즉위 연대에 따라 사건을 기술하는 본기 本紀, 영웅, 호걸, 간웅, 선비, 도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다른 열전 列傳, 그리고 시대의 상황을 읽을 수 있는 표 , , 등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서를 말한다.

 

<사기>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권력자, 제왕, 영웅, 호걸, 간웅, 건달, 자객, 점쟁이 등 온갖 부류의 인간 군상의 삶을 총망라한다. 130, 글자수는 52 6500 자에 달한다. 저자는 이 방대한 글자를 나무를 얇게 자른 목간에 일일이 붓으로 써내려 가,마침내는 14년에 걸쳐 <사기>를 완성한다.

 

130편은 상고시대의 오제 五帝로부터 하..주의 3, 춘추전국시대, 진 왕조를 거쳐 한 무제까지의 2000년의 통사를 다룬다. 국가, 제후, 그리고 인간의 흥망성쇠가 담 겨져 있다.

<사기>는 본기, , 세가, 열전으로 나뉜다. ‘본기’ 12편은 황제에 대한 기록이다. ‘’ 10편은 연표다. 어느 해에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인명을 배열하고 연도별 관직 임명과 파면, 좌천 등을 기록했다.  ’ 8편은 국가 제도와 문물에 관한 논문이다. ‘세가’ 30편은 황제를 보필했던 인물, 즉 제후에 관한 내용이다. ‘열전’ 70편은 유명 인물만을 다루지 않고 모든 사람에 관한 기록이다.  <사기>는 대화체를 사용하여 역사서를 살아있게 한다. 2000여 년 전의 인물들을 다시 현재에 불러온다. 이러한 생동감은 저자가 6번의 중국여행을 하면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보고 들을 것을 토대로 사실과 가까이 썼다.

 

사마천은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슬픔과 치욕, 그리고 불행의 한계는 끝이 없음을 보여 준다. 당대의 한무제의 시기를 비판하고 풍자한 < 사기열전>은 사마천 사후 수세기 동안 금서로 분류되었다. 기존의 편년체 위주의 역사서를 거부하고 기전체를 시도하고, 그리고 영웅과 호걸이 아닌 일반 평민, 불량배, 자객들이 열전의 주인공이 되는 역사서가 당대에 제대로 평가 받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사마천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를 완성한 것은 아버지의 유지 수용도 있지만,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나름대로의 말을 남기고자, 즉 자신의 사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그의 투철한 역사인식과 사명감의 발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서적

<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백과사전, 사기> 사마천 지음,

           엮은이: 무라야마 마코토 외

 -<난세에 답하다,사마천의 인간탐구> 김영수 지음, 알마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김영수 지음, 창해

-<사기를 탄생시킨 사마천의 여행> 후지타 가쓰히사 지음, 주혜란 옮김, 이른 아침

 

 

2.     마음을 무찌르는 문구 유첨 참조

 

 

3.     저자 라면  

 

 , 이것이 내가 받아야 할 벌인가? 이렇게 몸이 망가지고 말았구나 “.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후 이렇게 탄식했다. 그러면서 시련을 딛고 위대한 작품을 저술한 역사 속의 인물들을 떠올렸다.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은 후 <춘추 春秋>, 굴원은 추방당한 후 <이소 離騷>를 지었으며, 손빈 孫臏은 다리가 잘린 뒤에 <손자병법>을 편찬했음을 상기했다. 시련과 역경을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만인을 위한 명저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사기>의 백미인 <열전> 은 이렇게 하여 탄생했으며 <사기>를 불후의 명저 반열에 올리는 역할을 했다.

 

 책의 주제와 내용

 

<열전 列傳> 70 (태사공자서 70편 제외시 69)은 주나라 붕괴 후 50개 제후국의 난립 속에 최후로 남은 진, , , , , ,조나라 등 7개 국가의 흥망성쇠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70편의 마지막 편 <태사공 자서>에서 사마천은 정의롭고 행동하고 기개 넘치게 남에게 억눌리지 않으며 세상살이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떨친 사람들의 일들을 내용으로 열전을 지었다고 했다. 따라서, 제후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인물 군상들이 열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역사의 변방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졌다. 이는 저자의 인간애, 성실과 정의를 소중히 생각하는 그의 가치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자객열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 오해, 증오, 배반 등을 다룬다. 그러면서 인간의 정신과 인간관계에 주목한다. 이는 그가 2000년의 역사 연구를 통해 얻은 통찰이다. 그가 받았던 궁형에서 더욱 그것을 느꼈는지 모른다.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상

 

<백이열전> - 하늘의 도리를 따라야 하는가?

 

법을 어기고 나쁜 것을 일삼는 사람은 호강스럽게 살고, 공정하게 살려는 사람은 재앙을 만나는 현실에 사마천은 천도와 운명에 강한 회의감을 나타낸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세상에 태어나 흔적 없이 사라진 재능 있고 덕망 있는 인물들을 찾아 널리 알린다는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진흙 속의 진주는 그것을 알아보는 식견 있는 사람에 의해 발굴되지 못하면 영원히 잊혀지는 현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자서 열전> - 복수는 운명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오자서의 파란 만장한 일생에 관한 얘기다. 오자서는 아버지를 죽인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 채찍질 300번을 하는 분풀이를 한다. 궁형 당한 사마천의 복수심을 대변해 준다.  

 

<위공자 열전> -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

 

유능한 인재를 우대하며 국익을 중시한 신릉군을 높이 평가한다. 신분이 낮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예를 갖춰 대하고 교만하지 않은 신릉군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굴원 가생열전 > - 충성스런 신하의 억울한 죽음

 

성품이 강직하고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굴원은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로 참소를 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이른다. 사마천은 굴원이 빠져 죽은 연못을 바라보고 침통한 심정을 드러낸다. 사마천의 억울함이 굴원의 삶에 투영된 열전이다.

 

< 회음후 열전> - 교만이 부른 화

 

한신이 초.한 전투에서 빛나는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토사구팽당한 것에 사마천은 동정과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당시 군주인 유방을 위협할 정도로 한신의 공이 높아지자 한신은 자만에 빠졌다. 2인자로서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천자의 권위를 위협해 화를 부르고 결국엔 반역의 죄로 멸족을 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내가 받은 영향

 

<사기열전 >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제왕, 제후만이 아니라 그 뒤안길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조연으로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정의와 선 뿐만 아니라 악, 폭력, 시기, 질투, 모함 등도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하늘의 도리란 무엇인가? 법을 어기고 나쁜 일을 일삼는 사람이 잘 살고 잘 풀리는 것이 현실이다. 미련하게 착하고 성실하고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손해와 피해를 보는 것이 2000년 전이나 오늘 날이나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행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도리에 회의를 가질 필요도 없다.. 맹목적으로 법을 지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어리석음에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어리석음은 탐욕과 분노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책의 특징

 

인간의 도리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 옳고 옳지 않은가?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충신과 간신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어 보인다,

가치는 항상 바뀐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자신이 정확히 어떠한 위치에 있는 가를 파악한 다음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이 삶의 지혜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수많은 사료를 정리하여 등장하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대부분 대화체로 작성하여 역사서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열전을 시대순으로 배열하여 기술하였다.

 

행간의 뜻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몇 번의 정독을 해야 전체적으로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선점/보완점

 

등장인물들이 주나라부터 시작해 전국 칠웅을 포함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시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인물과 사건, 그리고 시기가 분산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흐름과 정황을 이해하는데 쉽지가 않다. <열전>을 읽을 때 <사기>을 구성하는 본기, , 서 등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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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19:24:37 *.11.178.163

사기 열전이 시대순으로 엮어졌나요? 저는 중간에 비슷한 일을 한 사람들(유세객, 자객, ...)들이 짝으로 앞뒤로 씌여 있어 시대순이란 생각을 잊고, 사마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인물을 앞에 배치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음 그리고, 저는 재용님의 생각에 반대하는 게 또 있는데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태사공은 말한다'에 나누어 담지 않았나 합니다. 사마천의 문헌조사, 답사를 바탕으로 그 인물에 관련된 사건과 경과를 쓸 때조차 사가의 시각이 담겼을 텐데... '태사공은 말한다'라고 써서, 저는 그렇게 봤어요. 앞서 기술한 것은 태사공의 관점으로 다시 읽어야 하나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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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22:19:27 *.131.89.170

Jeiwai님이 뽑은 마음을 무찌르는 문구들을 보다가 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정한 어떤 사람에 대해서 눈을 번뜩인다거나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격언이나 알려진 일화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일거란 짐작을 해봅니다. 열전에 나온 다양한 사람들의 그 사람 특유의 성격이나 그 사람이 처한 상황, 기억할 만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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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22:55:25 *.50.96.158

잘 보신 것 같아요. 사기열전은 아마도 몇번을 읽어야  귀에 들릴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뱉어내는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더군요. 생동감있게 개성있게 묘사하는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을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한번 더 읽을 때는 새롭게 와닿는 문구가 있을 거예요.  자주 댓글 부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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