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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mpo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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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 05시 00분 등록

<북리뷰 3-1주차>

 

2013.06.30.

: 서 은 경

 

 

 

              (No. 12)

 

 

          사마천 [사기열전1.] 민음사   (2013)

 

 

                                          사마천의 사기표지.jpg 

 

 

                                               @ 200711 @

 

 

 

 

                                                                                        * * *

  

사마 형,

세간의 사람들이 당신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의 뼈아픈 상처,

궁형에 대해 늘 언급을 하오.

 

궁형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대가 쓴 역사서 <사기>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둥

온통 그 가혹했던 형벌에 초점을 맞추어

그대의 저술 이유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소.

 

또한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사기>를 썼다고도

뭇 사람들은 말을 하지요.

 

 

 

하지만 내 생각

좀 다르오.

 

  그대의 <사기 열전>을 읽으면서 나는

궁형의 상처보다

아버지의 간절한 유언보다

더 더욱 절실하게

그대가 <사기>를 쓴 동력'을 발견하오.

 

 

 

그것은

그대의 좋은 세상에 대한 열망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발로 뛰어 취재하고

탐구하리만큼 강했던

학문에 대한 열정 호기심이외다.

 또한

그대의 빼어난 언어적 재능

그대가 <사기>를 안 쓰고는 못 배기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오.

 

 

 

그런데 사마 형.

<사기열전>을 정말 혼자서 답사하고

자료정리하고 다 많은 것을

 다 쓴 것이오?

 

혹시 그대를 따르며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무리는 없었오?

  

같은 종류의 빛서로 비추어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정치가 가의의 말

그대가 인용하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궁금하오.

그대와 함께 어울린 같은 종류의 빛,

그대를 따르는 제자나 

힘이 되는  연구 집단이

없었는 지...

 

그런 울타리 없이

오랜 세월을 홀로 그 고독한 작업을 했다면

정말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소. 

 

사마 형, 

내 지금 당장 그대에게 달려가 

고량주 한잔 따르며 

그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구려.

 

 

 

 

 

                                                                               *  *   *

 

 

 

 

1. 작가 소개

 

 

 

사마천.jpg 

사마천 (기원전 145년?~90?)

 

 

 

 

 

어린 시절, 청년기

 

수도 장안에 들어서자....

10살 꼬마 사마천은 약간 긴장한 듯, 아버지 사마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장안 거리는 수레와 마차들이 넘쳐났다. 길 양쪽에는 물건을 교환하는 사람들로 분주하였고, 어른들 사이를 요리조리 곡예 하듯 쫓아다니며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간간히 비단 옷 입은 지체 높은 분들을 태운 마차가 그의 옆을 지나갔다. 그럴 때면, 사마천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의 표정,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마천아. 여기가 바로 장안이란다.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세상구경도 하고 글공부도 하자꾸나.”

 

 

장안에서 마천은 아버지의 소개로 경학 대사인 동중서공안국에게 고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도 장안은, 마천의 고향인 용문(지금의 섬서성 한성시)에 비하여 집도 크고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다. 수도 장안은 10살 소년 마천의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안은 진나라 때 수도가 된 이래, 특히 당나라 시절에는 국제도시로 큰 번영을 누렸던 중국의 고대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현재 중국의 서안이 바로 장안이다. 마천은 장안에서 동북쪽으로 2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골마을, 용문 출신이었다. 마천은 이후, 고향에 돌아가 19세까지 줄곧 고향 용문에 살았지만 늘 마천의 마음속에는 수도 장안과 중국 땅 전역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리하여 마천은 20세 되는 해, 중국 전역을 돌아보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기원전 11828세가 되는 나이에 녹봉 300석을 받는 낭중이라는 벼슬을 처음으로 시작한다. 당시 낭중은 재주가 있는 인재를 우선 선발했다가 자리가 나면 임명하는 예비 관료였다.

 

그리고 이후, 30대 중반까지는 그에 관한 별다른 역사 기록이 없다. 아마도 이 시기는 주로 학업에 전념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벼슬을 지내는 동안 그는, 한무제를 모시고 온 나라를 순행하는 여행 기회를 얻게 된다. 탐구심이 많았던 마천에게는 발 길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역사 탐구의 장소였다. 그는 어디가든지 고적을 탐방하였으며 자료를 수집했다.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과 유언

 

마천이 고적 탐방과 자료 수집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이유는 그의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이 컸다. 사마담은 정부의 문서를 보관하거나 제사를 관장하는 관직인 태사령을 지냈다. 본인 스스로도 역사책을 쓰고 싶어 했던 사마담아들에게도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길러주었다.

 

마천은 35세 되던 해 한무제의 명을 받아 서남 지방의 민정을 시찰과 문물을 관찰하는 임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산동성 태산에서 열리는 봉선제 참가하기 위해 길을 재촉하던 중 그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는다. 사마천은 아버지께로 급히 달려갔다.

 

 

마천아, 이 아비의 과업을 이어서 반드시 태사령이 되어다오.

<춘추(春秋)>이래로 공백이 남아 있는 4백 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여라.”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다.

그리고 유언에 따라 가업을 잇고 천고에 길이 남을 역사서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삼년상을 마친 뒤 사마천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기원전 108 38세의 나이 태사령에 올랐다.

이로써 필생의 역작인 <사기>를 편찬 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마련되었다.

 

(계속)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역자서문

 

[5]

세계인의 고전 <사기>는 사마천이 사관인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에 따르고자 궁형의 치욕을 딛고 저술한 통사체 역사서로서, 전설의 황제시대부터 한 무제 때까지 2000을 아우르고 있다.  

---> 사마천이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기는 했지만, 단지 유언을 따르고자 역사서를 썼을까? 그는 분명,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인간에 대한 흥미가 깊은 어린 시절을 보내었을 거 같다. 사마천은 다중지능 중 어떤 것이 뛰어났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자.

 

<사기>중에서도 <열전> 70권은 주나라 붕괴 후 등장한 50개 제후국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전국칠웅 戰國七雄秦, , , , , , 의 흥망성쇠를 주축으로 하며,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6] 

공자나 맹자가 지나친 이상주의를 설파하여 제후들의 외면을 받고 끝내 세상을 벼슬 한자리를 얻는데 실패했다면, 이들과 달리 세 치 혀 하나만으로 출세하여 천하를 제 손안에 굴리고 쥐락펴락한 세객도 있다. 설득의 귀재였던 책략가 소진6국이 동맹하여 진의 동방진출을 막자는 합종책을 제안하여 십오 년간 6국의 재상을 역임했다. 또한 진나라 장의6국의 동맹을 허물고 개별적으로 진나라와 횡적인 동맹을 구축하는 연횡책으로 대응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 공자의 사상은 지나친 이상주의로 공자 생존 당시에는 외면 받았다고 한다. 설득의 귀재 소진, 장의는 세치혀로 출세하였다는데... 그렇다면 그가 죽고 최근까지 그의 사상이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7]

왕도정치를 주장한 맹자를 비롯하여 유가로 대변되는 공자의 제자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성현의 말씀에 귀 기울이자는 주장을 폈다. 묵자는 전쟁 대비용 성을 구축하여 전비를 절감하자고 외친 평화주의자였다. 한 술 더 떠서 도가 일파는 전쟁을 반대하고 무위자연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에는 시대가 각박했고 혼돈에 차 있었다.

---> 열띤 토론과 의견, 주장들이 나오는 혼돈의 시대에는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서 그저 신의 뜻을 따르며 지켜볼 뿐이다. 국정원 파문과 선거조작이 밝혀진 요즘은 혼돈의 시대다. .사람들은 더 많은 토론과 공감으로 방향성을 잘 찾아가야한다.

 

<사기열전>은 이와 같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온갖 인물 군상의 결정체이다.

 

 

해제

 

[11]

<사기> 130편은 상고시대부터 사마천이 살던 한 무제 때까지의 중국 역사를 다룬다. 여기에는 중국인들이 사이四夷라고 불렀던 주변 이민족의 역사가 포함된다. 이 책은 중국 역사의 전법典範으로 일컬어지며,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기본기12, 10, 8, 세가30, 열전70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가>는 제왕보다 낮은 위치인 봉건 제후들의 나라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후들 외에 황제의 친척과 공훈을 세운 신하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무관의 제왕인 공자와 왕을 칭한 지 6개월 만에 망한 진섭이 포함되어 있는 점이 이채롭다.

 

<열전>은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의 전기를 주로 수록하고 있는데, 신분을 초월한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다.

 

 

@사시史時역사를 담은 시<사기>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13]

중국 고대 역사서의 세 가지 편찬 체제인 편년체, 기사본말체, 기전체 가운데 기전체의 효 시가 <사기>이다. 기전체는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먼저 시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행적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마천은 자신이 기술하고자 하는 시대의 사회 구조와 그 내부의 발전상, 인물과 사건 및 제도 등 그 사회가 가진 제반 현실에 역사적 해석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사마천은 통사를 쓰면서도 자신의 시대인 한 대를 다루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사료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역사의 발전적 흐름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주었기에, 이 책이 오늘날까지도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 시대에 대한 역사적 해석, 자기시대에 대한 평가, 사료 해석에 충실... 사마천은 역사 사기를 혼자서 썼을까? 팀을 이뤄서 조사하고 정리하고 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사마천이 <사기>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16]

첫째, 발분_發憤의식의 소산이다.

궁형을 당한 것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구차한 행위가 아니라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 자신의 처지를 백이와 숙제의 입장과 비교, 오비디우스가 엑티온과 자신을 비교한 것과 비슷., 치욕 견딘 세인들인 관중, 오자서, 경포에 특별의미 부여

 

[17]

둘째, 역사적 사실의 포폄褒貶과 직서直書이다.

이는 그의 <태사공자서>에서도 드러나지만 공자가 <춘추>를 서술한 방식에 바탕을 두고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여 미언대의微言大義(작은 말 속의 큰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태사령이라는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순수하게 개인의 자격으로 저술에 임하였다.

 

절대 권력자의 영토확장 야욕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상고문헌은 전적으로 경전에 기댔고, 당대 자료는 대체로 문헌 검증과 현지 답사 여행 등을 통한 체험에서 나왔다. <사기열전>32권의 {회음후 열전}의 경우.....한신의 고향을 방문했고 마을 사람들이 제공한 소재를 토대로 한신을 새로운 각도에서 그렸다.

---> 사마천이 혼자서 이 작업을 했을까? 함께 일하는 그룹이 있지 않았을까?

 

<사기> 130편 가운데 인물 전기로 구성된 것은 112편인데, 이중에서 57편이 비극적인 인물의 이름으로 편명을 삼았다. 그리고 20여 편은 비극적인 인물로 표제를 삼지는 않았으나, 따져 보면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나머지 70여편에도.....

---> 사마천 자신이 한이 많아서 비극적인 것에 끌리었구나.

격동의 시대를 120여명이라는 비운의 인물을 통해 그려 냈으니 결국 사마천에게는 비극이야말로 아닌 게 아니라 시대의 표징이었던 셈이다.

 

 

[20] (사기, 구성의 장점)

<사기 열전>은 서술에 있어 인물의 비중을 고려하여 안배한 흔적이 두드러진다. 독자에게 극적인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대립되는 인물을 같은 편에 놓은 경우도 많다. 또한 유림, 혹리, 자객, 유협, 골계 등 유사한 직업군을 한데 묶어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열전이란 말을 풀이할 때 ''이 배열이나 서술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은 본래 경전의 주석을 가리키는 말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구두로 전해진 것을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전기biography로 받아들여져 왔다. 사마천은 전기를 개인의 역사로 확대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라고 하면 아무래도 주인공의 삶을 모두 기재해야 하는데 사기 열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실도 더러 있다.

 

또한 사마천은 자신이 입수한 문헌 가운데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먼저 고르고 거기에 평가를 더했다. 독자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화를 입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21]

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유형에 입각해서 자신을 포함하여 당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런 근거를 그 이전의 경사(經書)와 제자서(諸子書)들 뿐 아니라 민간의 구전에서도 취하는 유연성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기열전>독특한 인물의 선택, 서술 방식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작에서 출발한다.

 ---> 이 점은 대단히 혁명적인 관점이다. 서양역사가의 역사서술 방식과 동양사가의 서술방식을 비교해 보고 싶어진다.

 

[24]

<사기열전>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사기열전> 생명력 넘치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본위의 역사를 읽게 만든 작가의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인물들을 현재에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역사의 순간에 들어가 묘사하라!. 역사의 현장 속으로... 조선의 3 여인네, 역사학자 강용권, 사토 쇼닌, 안병직.

 

[25]

일반 역사서와 달리 <사기열전>에 적잖은 주관적 서술이 보이는데, 사마천 자신의 사료 비판 능력과 어우러져 탄탄한 역사 서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사마천의 혼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기열전>의 서술 방식에는 냉정한 이성과 처절한 열정을 갖고 살아간 시대적 거장들의 숨결이 행간마다 녹아있다

 

게다가 <사기>가 구십 년 늦게 나온 반고의 <한서>와 달리 도가와 병가, 잡가 등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여 한나라의 국가 이념인 유학에 배치된다는 점도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배척되는 요인이 되었다.

 

[26]

<사기>가 소외의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었다. 도가적 분위기가 강한 당대부터 관리 임용 과목에 들어가면서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27]

요컨대, 개인적으로 기록한 역사 <사기>가 후대에 24()의 필두로 거론되게 된 것은 중국 전설 시대부터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한 무제까지 이르는 유일한 통사체 역사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다. 기전체라는 형식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의 정확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절대 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 즉 사마천의 역사를 보는 태도가 다른 역사서와 아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사기 문학서로서 색채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 백이 열전

 

[59]

천도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면서 인간사의 불공정한 여러 형태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천도의 기본은 권선징악이지만 사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아 착한 사람이 재앙을 입고 나쁜 사람이 복을 누리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마천은 공자가 백이와 숙제 두 사람에 대해 인 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다라고 한 칭찬을 의문시한다.

 

백이와 숙제가 남긴 <채미가>의 내용이나, 이 두 사람이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죽은 것으로 볼 때 원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60]

사마천이 단순히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행적을 적었다기보다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총괄적인 입장을 자신을 빗대어 쓴 것이다.

 

[60]

은 공자에 의해 최고 원리로 제기된 이래 유가 사상의 중심 개념이 되었다. ‘개념은 물론 공자 전에도 쓰였고, [논어]에서도 똑같은 뜻으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공자인이란 사람다움이다.”,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 이 이다. ”단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로부터 보면 은 인간의 본질을 가리키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의 실천방법으로 ’, ‘’, ‘’, ‘’, ‘’, ‘을 제시했다.

 

 

@ 왜 유가 경전에는 허유와 무광 등의 사적이 없을까?

 

[61]

(요임금은 순에게 순임금은 우에게 군주자리를 넘겨주기에 앞서) 시험 삼아 벼슬을 주고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맡겨 공적이 이루어진 다음에 정치를 맡겼다. 이러한 절차를 밟는 까닭은 천하의 소중한 그릇이고 왕은 가장 높은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전해 주는 일이 이처럼 어려움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 왕을 하는데 현대의 인턴쉽 과정을 거쳤네.

 

요 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자....달아나 숨어버렸다. 하나라 때는 변수와 무광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세상 사람의] 추앙을 받을까?

 

절개와 의리가 봅시 고결한 인물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경><서경>의 문장에는 그들에 관한 대략적인 기록조차 없으니 무슨 까닭일까?

 

@ 백이와 숙제는 정말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63]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

아아! 이제는 죽음뿐,

우리 운명도 대했구나!

 

이 노래로 미루어 본다면 원망한 것인가? 원망하지 않은 것인가?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64] (감동 구절)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며 즐겁게 살고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 사마여.. 나도 그대와 같은 의문에 요즘 기분이 허탈하오. 나쁜 이와 착한 이를 댓구 구절로 설명하되 착한 이에 대한 언급이 아주 시적이다. 댓구를 사용하고 묘사를 사용한 사마의 문체가 참으로 좋구나. 작가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도 그러한 댓구와 묘사가 녹아 있다.

 

 

@파리도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 길을 갈 수 있다

 

[66]

공자 왈

 

"부귀를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겠다."

 

사마 왈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찌하여 [세속 사람들은] 그토록 부귀한 사람을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길까?

---> 사마는 인용문을 삽입하여 내용을 논하면서 군데군데 자신의 의문점을 집어넣으며 이야기한다.

 

가의(한 문제 때 정치가/문인) (감동구절)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 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 만물도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 서로 win win하여 일어난다. 칼럼 쓸 때, 강용권 선생 이야기에 인용할 것.

 

 

사마천 왈

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은 학문을 배우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공자라는)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67]

바위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일정한 대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명성이 묻혀 세상에 일컬어지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더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에 기대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 끼리끼리 알아주는 사람끼리 모여야 한다. 비슷한 재능끼리 모여서 더욱 창조성을 발휘하듯이 자신을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 모임, 그룹을 찾아가라.

 

[67]

()임금, 하우씨 부락의 우두머리이며 하나라 창시자이다. 그는 곤이 치수에 실패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 십 년 만에 홍수를 다스려 민심을 얻었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농사시기에 최상의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그 당시 이미 군대, 형벌, 관리, 감옥 등이 있어 중국 초기 국가의 탄생으로 보인다.

 

 

2. 관 안 열전

 

[69]

안영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영공, 장공, 경공, 등 세 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며 오십 년 동안 집정하면서 제나라를 중흥시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2인자 행동 미학의 귀감을 보여 결단력과 슬기와 해학이 넘쳤고, 제갈공명이 극찬할 만큼 내치에도 뛰어났다. 그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고 하며 삼십 년 동안 옷 한 벌로 생활할 만큼 검소했다. 그러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명재상이다.

 

@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71] (관중과 포숙)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운]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

[73]

관중 왈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이 굳게 결속하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네 가지 강령四維즉 예의, 정의, 깨끗함, 부끄러움 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수원水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백성이 바라는 것은 그대로 들어주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은 그들의 뜻대로 없애 주었다.

 

[74]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게 정치의 비책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관중이 죽은 뒤 백여 년이 지나 안영이 등장했다.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뜻을 드러낸다

[75]

안영은 제나라 재상....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이 물으면 바르고 신중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을 때에는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였다. 임금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면 그 명령을 따르지만 올바르지 않을 경우에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석보 왈 to 안영

제가 듣건대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제가 죄인의 몸일 때 옥리들은 저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깨달은 바가 있어서 보석금을 내어 저를 구해 주었으니 이는 저를 알아준 것입니다. 저를 알아주면서도 예의가 없다면 진실로 죄인의 몸으로 있는 편이 낫습니다.”

 

[76]

안자(안영)마부 아내 왈

안자라는 분은 키가 여섯 자도 채 못 되는데 몸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제후들에게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분이 외출하는 모습을 살펴보니 품은 뜻이 깊고 늘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키는 여덟 자나 되건만 겨우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도 아주 의기양양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첩이 헤어지자고 하는 까닭입니다.”

 

[77]

사마천 왈

(안자의 마음가짐은)....왕에게 간언할 때는 왕의 얼굴빛에 조금도 구애 받지 않았으니, 이것은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라는 마음가짐이었으리라! 오늘날 안자가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

 ---> 사마천의 인물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참으로 재미있구나. 그는 많은 사료를 참고하였고 또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시각도 예리하며 또한 문장의 귀재다.

 

[78]

폐도(覇道)를 가볍게 보고 권모술수와 무력을 숭상하는 것으로서 王道와 상반되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제후국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은 것도 제후들이 대부분 패도를 숭상하였기 때문이다.

 

 

3. 노자 한비 열전

 

[79]

노자에 관한 사마천의 관점은 이러하다.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인으로 나이가 공자보다 많고 에 밝아 공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장자의 우언을 당시 유가와 무가를 공격하는 탁월한 무기로 본다. 이러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흔히 도가 사상 또는 노장 사상이라고 한다. 도가 사상은 끊임없는 전쟁과 불안정 및 권력과 지위 다툼으로부터 벗어나 은둔과 도피를 일삼는 철학이다. 그래서 도가 사상은 군주 권력의 전제정치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저항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둔다

[81]

공자와 노자의 대화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공자 to 제자들

"새는 잘 난다는 것을 나는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나는 알며,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

 

[83]

노자는 하지 않는 것無爲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것. 저절로 하게 하는 것.

 

 

@ 관리가 되느니 더러운 시궁창에서 놀리라

 

장자몽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이다. 그는 일찍이 몽 지방의 칠원이라는 곳에서 벼슬아치 노릇을 했고 양혜왕, 제선왕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는 학문이 넓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 학문의 요체는 노자의 말에서 시작하여 노자의 학설로 돌아간다.

 

[84]

장자(장주) to 초나라 사신

천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재상이라는 벼슬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교제郊祭 고대 제왕이 해마다 동짓날에 도성의 남쪽 교외에서 하늘에 올린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몸집이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더 이상 나를 욕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 형명지학의 대가 신불해

[85]

신불해의 학문은 황제와 노자에 근본을 두고 형명을 내세웠다.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라

 

한비는 형명과 법술의 학설을 좋아하였으나 그의 학문은 황로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 황제와 노자에 근본을 둚.

 

[86]

한비 왈

유학자는 글로 나라의 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협객은 힘으로 나라의 금령을 어긴다고 생각하였다. 군주는 나라가 편안할 때에는 이름 있는 유학자를 아끼고 위급할 때에는 갑옷 입고 투구 쓴 무사를 등용한다. 그러므로 지금 이 나라에서 녹을 주어 기르는 자는 위급할 때에는 쓸 수 없는 자이고, 위급할 때에 쓰이는 사람은 평소 녹을 주어 기른 자가 아니다.

 

[87] (주목 문구)

유세의 어려움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 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여 공을 세우더라도 군주는 그 덕을 잊을 것이며,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몸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군주가 좋은 계책을 얻어 자기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몸이 위태로워진다.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때 유세자가 이것을 알게 되면 역시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가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을 멈추게 하면 또한 몸이 위태로워진다.

 

[88]

그러므로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니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 (87~88p) 권력에 대하는 자세, 참으로 눈물나는 한비자의 깨달음이다. 권력 밑에 있을 때의 처세술. 직장에서 상사 모시기. ㅋㅋ

 

[91]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든다고 하여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를 짓는다고 하여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 미자하(위나라 사람)--복숭아, 수레

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4]

황제

전설 속의 인물로 성은 공손이고 호는 헌원씨. 중원 각 부족의 공동조상, 중국인의 조상. 당시 궁실, 수레, , 음악, 문자, 의학 등을 창조하고 발명.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칭찬하여 온갖 물건 만들 수 있는 자라고 하고 제왕의 형상을 부여. 황제는 노자와 함께 자연을 숭상하였으며 합쳐서 황로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이란 회화나 문서에 나타난 군주의 명령으로서 일종의 성문법이라고 할 수 있고, ’은 군주의 가슴속에 있는 것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릴 목적을 위해 아랫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킨다든지 잘못한 일이 있으며 꾸짖고 벌주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법과 술을 더해 '법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특히 중앙집권적 통치하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한비자가 진시황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4. 사마 양저 열전

 

 

@약속은 생명과도 같다

 

{} 양저와 장고 이야기

 

@ 병사들을 감동시킨 용병술

[102]

양저는 병사들의 막사, 우물, 아궁이, 먹거리를 비롯하여 문병하고 약을 챙겨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몸소 보살폈다. 또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재물과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풀고,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이 양식을 나누었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 병사들을 다시 순시하자 병든 병사들까지도 모두 앞 다투어 싸움터로 나가기를 바랐다.

 

5. 손자 오기 열전

 

@군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에게는 죽음뿐이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노려라

[111]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오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 아내를 명성과 바꾸다

 

@ 나라의 보배는 험난한 지형이 아니라 임금의 덕행이다

[117]

이렇게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중요한 것은] 임금의 덕행이지 험난한 지형이 아닙니다. 만일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적이 될 것입니다.

 

@ 남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유

@ 죽은 시체 위에 엎드린 오기]

 

[121]

태사공 왈

옛말에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구나!“

 

 

6. 오자서 열전

 

[123]

오자서는 본래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고자 초나라를 등지고 오나라로 들어온 인물이다 어찌 보면 사마천도 궁형을 받고 인고의 세월을 살았으니 오자서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사마천은 비분강개한 필치로 오자서를 위한 열전을 만들어 오자서야말로 작은 의를 버리고 큰 부끄러움을 씻었다고 칭찬했다.

 

 

@ 소인배의 참언을 믿고 친자식을 내친다

@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고 떠난다

@ 때를 기다려라

@ 오나라의 힘을 빌려 초나라를 깨뜨린다

@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

[138]

오자서 왈 to 오나라 왕

<서경> <반경>편의 ()옳고 그른 것을 거스르고 공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목을 베어 이 땅에 악의 씨가 자리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140]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라."

---> 왕은 그의 죽음을 헛되이 여겼지만, 백성들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구나. 자신의 의견이 옳다 생각하면 굽히지 않는 절개. 슬프지만 멋진 모습이다.

 

@ 성공하면 충신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143]

태사공 왈

원한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독은 정녕 심하구나!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어떠하겠는가? 옛날에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하찮은 땅강아지와 무엇이 달랐겠는가!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그 뜻이 참으로 슬프구나!

 

오자서는 장강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고, 또 길에서 빌어먹을 때도 마음속에 어찌 초나라의 수도 영을 잠깐인들 잊었겠는가? 그는 모든 고초를 견뎌 내어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백공도 만일 스스로 왕이 되려고만 하지 않았던들 그 공적 또한 이루 말하지 못했으리라!"

---> 사마천의 오자서에 대한 감정이입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분노 에너지를 큰 뜻으로 사용한 예. 사마천처럼

 

 

7. 중니 제자 열전

 

[145]

공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그의 나이 서른 살을 전후로 하여 제자를 모아 수업을 했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교육관을 유교무류에 두었다.

 

@ 공자의 제자들과 공자가 존경한 사람들

@ 밥 한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즐거워하는 안회

[148]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

 

"벼슬에 나가게 되면 도를 실행하고 물러나면 조용히 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너뿐이구나!"

 

@ 효성스런운 민자건

@ 덕행은 훌륭하나 몹쓸 병에 걸린 염경

 

@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으면 제물로 쓸 수 있다

[150]

중궁(염옹)이 정치하는 법을 묻자 공자는 "문밖을 나서서는 귀중한 손님을 대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 신중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대신들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 사람의 성격에 따라 조언도 달라야 한다

 [152]

자화가 공자의 대답이 다른 것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같은 질문에 달리 대답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 좋은 말을 듣고 실행하지 못했는데 또 좋은 말을 들을까 두렵다

[153]

공자 왈 to 자로

"군자는 의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

 

@자식은 태어난 자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나다

[157]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 년상은 세상의 합일된 예의이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종묘의 제사 그릇 같은 자공

 [160]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 한 번 움직여 세상의 판도를 새로 짠다

[161] 

제가 듣기에 나라 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강한 적을 공격하고, 나라 밖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약한 적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165]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 세가지는 일을 꾀하는 데 큰 걱정거리입니다.

 

[168]

이처럼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169]

자유 왈

"전에 저는 선생님께 군자가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사람을 부리기 쉽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 할 수 있다

 [170]

자하는 이렇게 물었다.

'아름다운 눈의 맑게 갠 움직임이여, 아름다운 눈이 가진 흑백의 선명함이여, 흰 바탕으로써 아름다움을 이루었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서 다듬는다는 뜻이다."

 

이 대답에 자하는 또 물었다.

"()가 나중이라는 말씀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경>을 말할 만하구나."

 

 

@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 많이 듣고 삼가면 실수가 적다

[171]

공자 왈 to 자장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을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172]

공자 왈 to 자장

말이 참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럽다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참되지 못하고 믿음에 없으며 행동이 착실하지 못하고 조심스럽지 않다면 비록 자기 고향일지라도 행세할 수 없을 것이다.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고 수레에 탔을 때에는 그것이 수레의 가로 막대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한 뒤에야 행세할 수 있을 것이다

 

@명망과 통달의 차이

[173] 

공자 왈 to 자장

자장 왈 (통달...)

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지고 집에서도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명망이지 통달이 아니다.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망 있는 사람은 겉으로는 어진 척하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어긋나면서도 그러한 것에 물들어 조금도 의심 없이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된다.“

---> 수신제가 치국평천하가 통달을 말하는 것인 듯.

 

@효성으로 이름을 떨친 증삼

 

@ 사람은 말과 생김새로만 평가하면 안된다

[174]

공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 재능은 빼어난데 몸담고 있는 곳이 작다

 

@ 배우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176]

원헌 왈 to 자공(위나라 재상)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자공이 몹시 부끄러워하며 언짢게 떠났다.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 억울하게 감옥에 같혔던 자장

@ 흰 옥의 티는 갈 수 있지만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

@ 지조를 지킨 공석애와 낭만주의 자 증점

@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다

@ <역경>의 전수는 끊이지 않았다

 

@ 말만 잘하는 자를 미워한다

[181]

자로가 되물었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는데, 어찌 꼭 글 읽는 것만을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꾸짖었다. "그래서 나는 말만 잘하는 자를 미워한다."

 

@ 겸손한 칠조개

@ 모든 일은 천명에 의해 결정된다

 

@ 어진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182]

공자 왈

어진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러자 자우가 다시 물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을 실천하기란 어려운데 그것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느냐?”

 

"마음 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 예와 의를 좋아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184] 

번지는 소인이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만 한다면 사방의 백성이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올 텐데 농사짓는 법을 배워 어디에 쓰겠는가?”

 

번지가 ()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 얼굴이 닮았다고 하여 공자가 될 수는 없다

@ 군자는 가난한 사람만 돕는다

 

@ 신화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187]

공자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숨기는 것이 예이다.

---> 이 부분은 한비자와 같은 의견이네. 군신유의. 지금시대에는 이것이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하다. 과거와 현대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

 

 

8. 상군열전

 

@ 죽음의 문턱에 있는 자의 말은 믿을 수 없는가

@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성공적인 유세를 할 수 있다

@ 옛 것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 새로 만든 법은 믿음 속에서 꽃 필 수 있다

 

@ 법은 위에서부터 지켜야 한다

[203]

위앙 왈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태자처벌 요망. 태부로 있던 공자 건의 목을 베고 태사 공손고의 이마에 글자 새기는 형벌)

그 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 뱃 속에 있는 질병을 없애라

 

@ 사람의 마음을 잃은 자는 망한다

[207]

조량 왈 to 상군(진나라 재상)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이라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하였다.

 

[208]

상군 왈

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선생께서 진정으로 하루 종일 바른말을 해 줄 수만 있다면 나에게 약이 될 것입니다.

 

[211]

상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212]

태사공 왈

상군은 타고난 성품이 잔인하고 덕이 없는 사람이다.”

 

 

9. 소진 열전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다

[217]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 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 선비의 능력을 발휘하여 뜻을 펼치면 명성과 영화가 돌아온다는 말이 뒤집혀서? 주객전도?? 나라 팔아먹은 소진, 반역의 신하! 진나라 상대하여 합종에 성공하여 나라를 구했지만....

 

@ 천리 밖의 근심을 버리고 백 리 안의 근심부터 해결하라

@ 어찌 어두운 곳에서 큰 일을 결정하랴

@ 닭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라

 

@ 싹이 돋아날 때 베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

[231]

소진 왈

<주서_周書>에서는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 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과장된 몸짓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라

@ 우환이 닥친 뒤에는 걱정해도 소용없다

@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긴다

 

@ 원수를 버리고 든든한 친구를 얻어라

[240]

소진 왈 to 제나라 왕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烏喙)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굶어 죽는 것과 똑같은 해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41]

신이 듣건대 옛날에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했다고 합니다.

 

연나라는 이유 없이 성 열 개를 돌려받게 되면 틀림없이 기뻐할 테고, 진나라 왕도 자기 때문에 연나라의 성 열 개가 되돌려졌음을 알면 또한 틀림없이 좋아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원수를 없애고 돌처럼 단단한 친구를 얻는 길입니다. 연나라와 진나라가 모두 제나라를 한편으로 여긴다면 이 세상에서 감히 왕의 호령을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빈말로 진나라를 따르게 하고 성 열 개로 천하를 얻는 것이니 패왕의 사업이라 하겠습니다.“

 

@ 충신만이 죄를 짓는가

[242]

신이 듣건대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행동하고, 나아가 이루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합니다.

 

@ 사람을 속여 원수를 갚는다

 

@ 소진이 남긴 사업을 이은 소대와 소려

[249]

교만한 군주는 반드시 이()를 좋아하고 멸망하는 나라의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한다고 합니다.

 

@ 자주색 비단이 흰색 비단보다 열 배 비싸다 (감동구절)

[252]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 배나 비싸고, 월나라 왕 구천은 일찍이 회계산으로 쫓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일입니다.

 ---> 화를 복으로 만든 경우. 흰색 비단을 여러 가지 활용 방도 연구하여 더욱 빛나게.... 좋은 계책 요망

 

@ 정의로운 행동만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10. 장의 열전

 

장의는 연횡파의 대표인물

 

@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한다

[267]

소진 왈

나는 그(장의)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세. 자네(사인)는 나 대신 은밀히 그를 도와주게.

 

@ 싸울 때는 명분과 실속을 모두 얻어야 한다 

[270]

사마조 왈

신은 나라를 잘 살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땅을 넓히는 일에 힘쓰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힘쓰며, 왕업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덕정(德政)을 널리 펼치는 일에 힘쓴다고 들었습니다. 세가지 조건만 갖추어지면 왕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

[275]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는,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는 까닭 

 

@ 호랑이와 양은 적수가 못된다

[282]

천하의 제후 가운데 남보다 늦게 복종하는 자는 먼저 망할 것입니다. 합종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양떼를 몰아 사나운 호랑이를 공격하는 꼴과 다르지 않습니다.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왕께서는 사나운 호랑이와 손잡지 않고 양떼 편에 섰습니다. 신은 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달콤한 말은 나라를 망친다

@ 한 때의 이익에 끌려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는다

@ 오른팔을 잘리면 싸울 수 없다

@ 허우대는 어른, 생각은 어린아이

[294]

연나라 왕 왈

과인은 미개한 벽지에 살고 있는 탓에 허우대는 다 큰 어른이지만 생각은 어린아이나 다름없소, 게다가 올바른 계책을 얻기에는 주위 여론이 부족하였소.

 

@ 진나라 무왕과 틈이 벌어진 장의

@ 사람 됨됨이는 그 주위 사람이 제대로 안다

@ 할 일 없이 술만 마신 서수

 

@ 별 들었을 때는 고향이 그립다.

@ 자기 보다 나은 자를 밟고 일어선다

 

[305]

태사공 왈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12. 양후 열전

 

[331]

진나라 무왕이 죽고 소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선태 후가 섭정, 선태 후의 동생 양후가 실권을 휘둘렀다.

 

양후의 공과 권력이 커져 가면서 범저의 비방을 받고 소왕과 사이가 멀어지더니 결국 울분에 차 살다가 죽었다. 그래서 사마천은 논찬 부분에서 인생 무상을 언급한다.

 

[342]

태사공 왈

(양후)는 부유하고 존귀함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범저 한 사람의 탄핵으로 신분이 꺾이고 권세를 빼앗겨 근심과 번민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왕족의 한 사람이 이렇거늘] 하물며 [진나라에서 벼슬아치가 된] 객경이야 어떠하겠는가?

---> 인생 무상이지라...

 

 

14. 맹자 순경 열전

[361]

사마천은 음양가와 도가의 학문이 사실상 근본이며 기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가의 위대한 두 스승 맹자와 순자의 사적에 관해서는 짧게 다루고 음양오행가와 도가에 대해서는 유가보다 상세하게 다루었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 한 무제가 尊儒의 기치를 내건 지 백여 년이 지났으나 조정에서도 맹자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을 사마천이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런 면에서 황로사상의 면모가 엿보인다.

 

@ 사욕은 혼란의 시작이다

[363]

태사공 왈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 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15. 맹상군 열전

 

[375]

맹상군은 제나라 종실 대신인 전영의 서자로 빈객과 선비들을 좋아하였다. 그는 명성과 이익만 좇았을 뿐이므로 인물 됨됨이는 볼 것이 없다.

 

맹상군이 선비를 우대하는 모습에 대해서만은 꽤 우호적이다.

 

@ 사람의 운명은 어디로부터 받는가

 

[380]

제나라 땅은 넓어지지 않았는데 아버지 자신은 천만 금이나 되는 부를 쌓았으며, 그러고도 문하에는 어진 사람 한 명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쌓아 둔 것이 남아돌지만 더욱 많이 쌓아 두려고만 할 뿐 나라의 힘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은 잊고 계십니다.

 

@ 군주가 이익에 눈멀면 백성은 떠난다

 

[393]

풍환 왈 to 맹산군

술과 소를 많이 마련하지 않고는 돈을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뿐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 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16. 맹원군 우경 열전

 

[401]

사마천은 구차한 삶을 감추고 발분하여 글을 지었기 때문에 우경을 기록한 부분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편은 지나치리만큼 찬미하는 내용을 일관하고 있다.

 

 

[421]

태사공 왈

 

평원군운 풍정의 그릇된 말에 빠져 조나라 장평의 사십여 만 병사를 산 채로 매장되게 하고 한단을 거의 멸망시킬 뻔 했다. 우경이 사태를 헤아리고 상황을 추측하여 조나라를 위해 꾀한 계책들은 얼마나 주도 면밀했던가!

 

 

18. 춘신군 열전

 

[442]

춘신군 황헐은 네 공자 중 한사람으로 변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진나라는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면서 능력 있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고 어질지 못한 자는 내침으로써 서쪽 변방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인재를 계속 받아들였기 때문이.

 

 

[447] 

<시경>"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라고 했고, <역경>에서는 "여유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24. 굴원 가생 열전 (감동장)

 

[582]

전국시대 이래 문학작품에는 당시 인간 운명의 극적인 성공과 실패라는 분위기로 인해 심각한 회의와 절망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 있다. 거기에는 인간사에 영원불변하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요즘 우리시대의 모습과 닮아있다.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늘 변화하는 것이다. 회의와 절망을 넘어 설 대안은? 모든 것은 공한 것이니...

 

이 편은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애국 시인 굴원서한 초기에 유명했던 정치가 가생의 충성심과 전제 정권하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모습을 애틋한 필치로 적고 있다.

 

 

@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586]

굴원의 <이소>

 

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는 뜻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 요즘이 그러하다. 근본을 돌아보며 세상과 자신을 통찰하는... 멘붕 탈피를 위한.

 

문장은 사소한 것을 적었지만 담은 뜻은 매우 크며, 눈앞에 흔히 보이는 사물을 인용했지만 그 뜻은 높고 깊다. 그 뜻이 고결하므로 비유로든 사물마다 향기를 뿜어내고, 그 행동이 청렴하므로 죽을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흙 속에서 뒹굴다 더러워지자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씻어 내고, 먼지 쌓은 속세 밖으로 헤쳐 나와서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연꽃처럼 깨끗하여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지조는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 만하다.

---> 굴원을 칭찬하는 이 글의 문장이 정말 멋지다. 한문으로 운율이 맞아 떨어지며 쓰여진 한편의 한시. 굴원도 사마천도 정말 멋진 문장가다.

 

@ 우물물이 맑아도 마시지 않으니 슬프다.

---> 감동 캡빵 문장.... 혼탁한 세상, 맑고 곧으나 쓰임이 없이 있어야 하는....

@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591]

굴원 왈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 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굴원 왈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 나는 왜 굴원의 이 말들이 내게 와서 꽂히는 걸까? 너무 깨끗하고 결백하게 사는 것은 스스로에게 혹독한 고통을 주기도 하는데....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는 나의 성향 때문인가? 사마천에게서, 굴원에게서 위로를 받는구나..... 오늘.

 

그리고 나서 <회사>라는 부를 지었다.

 

<회사> {592~596p}

 

@ 모자를 신발 삶아 신어서야 되겠는가

@ 들새가 들어오고 주인이 나간다

 

 

25. 여불위 열전

 

[611] 

여불위는 전기(傳奇) 색채가 풍부한 역사 인물이다.

 

그는 진나라의 상국이 되어 진나라 통일 사업에 큰 공을 세웠으며, 불후의 명작 <여씨춘추>를 짓기도 했다. 여불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이유는 그가 진시황의 친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대목이 이 편에 나오기 때문이다.

 

 

26. 자객 열전 (싸움묘사 작렬)

 

[623]

이 편은 특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유형이 비슷한 인물들의 활동을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사마천 특유의 집필 태도를 보여준다.

 

춘추전국시대의 자객은 대부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보은 사상이 투철하였다.

 

다섯 자객 가운데 연나라 태자 단에게 인정받은 형가,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진시황에게 도전, 폭력에 반대하는 정신도 가장 강하다.

 

사마천은 형가독자들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듯이 생동감 있게 그렸다.

 

 

@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 혈육을 죽이고 왕이 된다

[629]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공자 광은 발이 아픈 척하며 지하실로 들어가서 전제에게 뱃속에 비수를 감춘 구운 생선을 올리도록 하였다. 전제는 왕 앞에 이르자 생선의 배를 찢고 비수를 잡아 요왕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였다. 이렇게 하여 왕을 모시고 온 신하들이 크게 소란을 피우자, 공자 광은 숨겨 두었던 병사들을 내보내 요왕의 무리를 쳐서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합려이다.

 

 

@ 충신은 지조를 위해 죽는다

[629] 

예양은 지백을 섬겼다.

 

조양자는 지백의 후손까지 죽여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게다가 지백에 대한 원망이 너무 큰 나머지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큰 술잔으로 썼다.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

[636]

섭정이 곧장 들어가 계단을 뛰어 올라 협루를 찔러 죽이니 주위에 있던 부하들은 크게 혼란스러웠다. 섭정이 고함을 지르며 쳐 죽인 사람만 수십 명이나 되었다. 그런 뒤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죽었다.

 ---> 마치 그 장면을 보는 듯이 묘사해 놓았다.

 

[637]

일찍이 엄중자는 제 동생의 인물됨을 살펴 알고는 곤궁하고 천한 지위에 있는 그와 사귀었으니 그 은택이 매우 두텁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선비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섭정은 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27. 이사 열전 (묘사 작렬)

 

[659]

이사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으로 훗날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기승전결의 구조로 되어 있는 이 편에서는 이사라는 역사적 인물의 사적에 관한 고찰을 통해 진나라가 흥하고 망한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사마천은 호해의 어리석고 무능함과 조고의 음험한 속셈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이사의 이중성을 드러내는가 하면 진나라 통치 계층의 추악한 정권 쟁탈전을 부각시켰다.

 

 

@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622]

) 관청 변소 쥐 vs 곡식창고 쥐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667]

진나라는 땅을 한자도 남에게 봉해 주는 일이 없고 황제의 자제를 세워 왕으로 삼는 일도 없으며 공신을 제후로 삼지 않았다. 이는 뒷날 내란의 근심거리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 옛 것으로 지금을 비평하지 말라

 

[668]

이사의 글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 흑백을 가려 천하에 오직 황제 한 분만이 있도록 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사로이 학문하는 자들은 서로 모여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허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칙이 내려졌다는 말을 들으면 각자 자기가 배운 학설에 근거하여 그것을 비판하고, 집으로 들어가서는 마음속으로 헐뜯고 밖으로 나와서는 길거리에서 논합니다. 그들은 군주를 비방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겨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어 비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금지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이루어질 테니 금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경,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 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 사 년 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성 쌓은 일을 하는 죄수로 삼으십시오. 의약, 점복, 농사, 원예 관한 책은 없애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배우고 싶은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면 됩니다.

---> 분서갱유가 청원되는 장면이구나. 오호, 통재라...

 

 

31. 경포 열전

 

[753]

경포는 본래 이름이 영포인데 다른 사람의 죄에 연좌되어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당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팔짱만 끼고 앉아 어느 쪽이 이기는 지 보면 안된다

 

[759]

수하 왈 to 태재

왕께서 나를 만나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초나라는 강하고 한나라를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자로 왔으니 왕을 뵙도록 해 주십시오. 만일 제 말이 옳다면 그것은 왕께서 듣고 싶어 하실 것이고, 제 말이 옳지 않다면 저와 스무 명을 회남의 시장에서 부질의 형벌에 처하여 왕께서 한나라를 등지고 초나라와 한편임을 밝히시면 됩니다.”

 

@ 왜 낮은 계책을 쓸까

 

[770]

태사공 왈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

 

32. 회음후 열전

 

[811]

태사공 왈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33. 한신 노관 열전

 

[815]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성이 다른 일곱 명을 왕으로 봉하여 봉건 할거 국면을 형성했지만, 나중에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씨가 아닌데 왕이 된 자들을 멸망시키는 정책을 폈다. 그래서 이때 제후들은 조정의 꺼림이나 의심을 많이 받았고 잦은 반란도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한신과 노관도 공을 세워 봉해졌고 고조와 친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음에도, 당시 상황은 그들이 한나라를 떠나 반역의 기로 치닫게 만들었다.

 

한신과 노관, 유방을 좇아 싸워 승진하였다가 흉노에 투항하여 죽는 과정, 그들의 후손이 번창하는 모습, 천하의 재능 있는 선비들을 불러 모아 명성을 떨친 진희가 의심을 받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절대 권력의 틈을 비집고 사회의 이목을 끌어 보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 절대 권력, 권력의 힘이란 정말로 무섭다. 권력 앞에 좌지우지 되는 사람들. 전제왕권 시대가 아닌 지금에도 권력은 여전히 힘이 세고 세상은 권력자의 손에 휘둘리고 있다.

 

 

35. 번 역 등 관 열전

[845]

특히 사마천은 여기서 번쾌의 손자 타과의 전언을 근거로 하여 서술함으로써 역사를 기록뿐 아니라 현장 체험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으로 파악하였다.

 ---> 혼자 답사를 나갔을까? 아니면 그와 함께 연구하는 조수들이 있었을까? 역사 기술의 탄탄한 구성과 풍부한 사료, 이야기 묘사가 참으로 좋다.

 

[869]

태사공 왈

내가 풍현과 패현으로 가서 진나라 때부터 살아온 그곳 노인들을 찾아 소하, 조참, 번쾌, 등공의 옛집과 그들의 평소 사람됨을 물어보았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를 가듯이 한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

 

나는 번타광과 교분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고조의 공신들이 처음 일어날 때 상황을 이와 같이 들려주었다.

---> 한나라 사람인 사마천이 진나라 시절 사건과 사람을 취재하여 역사로 쓰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대한민국 사람이 일제강점기의 사건, 조선시대에 산 사람들 등을 찾아 역사를 쓰는 것과 같다. 바로 현대사를 쓰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던 삶이 바로 우리네의 현대사이며, 우리는 그것들을 잘 인터뷰하고 기록해야 한다.

 

역사학계에서도 그렇지만, 개인인 나 역시 나의 부모, 조부모의 삶과 역사에 관심 갖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삶이 바로 나로 연결되기 때문에.

 

 

 

 

 

 

* * *

 

3. 책 소개와 평가 

 

(1) 목차와 전체적인 뼈대

 

역자 서문

해제

차례

일러두기

 

1. 백이 열전 

2. ·안 열전 

3. 노자·한비 열전 

4. 사마·양저 열전 

5. 손자·오기 열전 

6. 오자서 열전 

7. 중니 제자 열전 

8. 상군 열전 

9. 소진 열전 

10. 장의 열전 

11. 저리자·감무 열전 

12. 양후 열전 

13. 백기·왕전 열전 

14. 맹자·순경 열전 

15. 맹상군 열전 

16. 평원군·우경 열전 

17. 위공자 열전 

18. 춘신군 열전 

19. 범저·채택 열전 

20. 악의 열전 

21. 염파·인상여 열전 

22. 전단 열전 

23. 노중련·추양 열전 

24. 굴원·가생 열전 

25. 여불위 열전 

26. 자객 열전 

27. 이사 열전 

28. 몽염 열전 

29. 장이·진여 열전 

30. 위표·팽월 열전 

31. 경포 열전 

32. 회음후 열전 

33. 한신·노관 열전 

34. 전담 열전 

35. ···관 열전 

 

1권 찾아보기

 

 

이 책은 사기 열전(列傳) 70편 중 35편으로 구성돼 있다.

 

<열전>''은 배열이나 서술의 의미한다. 은 전기biography라고 할 수 있다. <열전>이란 시대순으로 배열한 역사적 인물들의 전기를 기록하는 역사서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을 통해 주나라 붕괴 후 등장한 50개 제후국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전국칠웅(戰國七雄秦), , , , , 의 흥망성쇠를 주축으로 하여, 그와 관련한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열전에는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의 전기는 물론이고 신분을 초월하여 인간사에 교훈이 될 만한 인물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보통 전기라고 하면 역사적 인물의 삶을 시간 순으로 구성해서 보여준다. 그런데 <사기열전>은 통상적으로 행해지는 시간 순 열거 기술 방식에 다양한 구성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

 

사마천은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먼저 골라 배치하거나 서로 대립되는 인물을 같은 편놓았다. 또한 유림, 혹리, 자객, 유협, 골계 등의 유사한 직업군을 한데 묶어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역사적 메시지 전달의 극적인 효과를 더하였다.

 

 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유형에 입각해서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였다. 그는 옛 역사서인 경사(經書)와 제자서(諸子書)들 뿐 아니라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사기열전>의 뼈대와 서술 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지난한 이야기라는 데서 출발한다.

 

 

 

 

(2) 감동적인 장과 절

 

*

<사기열전>의 첫 시작, {1} 백이 열전은 참으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사마천은 인간사의 불공정한 여러 형태에 회의를 품고 이 책을 읽는 학자들, 정치가, 선비들, 후손들에 한 마디 툭 던진다.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하늘의 도인가?”

 

 

[64p]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며 즐겁게 살고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나 역시 요즘 들어서 이러한 의문이 들어 기분이 허탈하던 차였다. 그런데 2000 년 전 사마천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그가 쓴 <사기열전>은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생명력을 자랑한다.

 

또한 나는 그의 서술 기법이 참 마음에 든다.

나쁜 이착한 이댓구법을 이용하여 설명하되 착한 이에 대한 언급은 아주 시적이다.

댓구를 사용하고 묘사를 사용하는 그의 문체는 보다 강렬하게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계속해서 그는 말한다.

 

파리도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 길을 갈 수 있다.”

 

 

[66p]

 

공자 왈

 

"부귀를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겠다."

 

사마 왈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찌하여 세속 사람들은 그토록 부귀한 사람을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길까?”

 

가의(한 문제 때 정치가/문인)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 그날의 삶에 매달린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 만물도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나는 이 구절에서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야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또한 큰 스승(천리마)

그 뜻을 따르는 무리(파리)가 모여야 함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비슷한 경우로, 재능도 비슷한 재능을 가진 아이집단을 구성해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보다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

 전국시대 전제 정권 하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시인 굴원의 모습을 다룬 {24} 굴원 가생 열전참으로 애틋하다.

혼탁한 세상에서 맑아서 쓰임이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어부와 대화를 나누는 굴원의 이야기는 사마천 자신의 삶,

1장의 백이와 숙제의 삶과도 일맥상통한다.

 

 

 

[586p]

 

우물물이 맑아도 마시지 않으니 슬프다.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591]

굴원 왈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 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굴원 왈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나 역시 이 인물의 질문에 감정이입이 된다. 사마천의 표현력과 핵심을 찌르는 통찰, 이야기 전개 방식은 참으로 세련되었다.

사마천은 각 장마다 어떤 인물의 예를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거의 모든 인물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 준다.

 

 

 

 

 

(3) 내가저자라면

 

나는 사마천이 인물 대비, 비슷한 군상들 모음, 중요 내용만 부각 등등을 활용하여 역사 서술의 극적인 묘미를 더한 것에 감탄하였다. 2000년 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지금의 내가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는 탄탄한 구성은 그가 얼마나 이 책의 구성을 놓고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이 방대하고 역사적 시대 또한 워낙 넓어서 잠시 정신 줄 놓는 순간, 전국시대의 중원에서 나는 길을 잃고 만다. 특히, 춘추 전국시대는 워낙 많은 나라들이 이해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하고 이 나라 저 나라로, 인물들의 이동도 심하여 내용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 아니, 이 책을 한번 읽고 잘 정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2000년 인간사를 무시(?)하는 오만 방자함일 거다.

 

내가 이 책의 편집자라면 시대적 연표를 기본으로 한, 나라별 인물표를 만들어 첨부하고 싶다. 그리고 시대적 역사 사료 그림, 중국 해당 지역의 사진 등도 책의 앞부분에 넣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면 어떻까 생각한다. <사기>는 방대한 책이다. 열전을 보기 위해서 본기나 표, 서 등을 함께 찾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일반 독자가 이 모든 것을 찾아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책 각 장의 초입마다에 있는 각 열전에 대한 해석과 도움말은 참으로 친절하다. 그리고 각주 역시 꼼꼼하여 세세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통사적 관점에서 연대순, 나라순에 따른 사건과 인물 배열표만이라도 더한다면 <사기열전>을 읽는데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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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2 10:09:34 *.50.65.2

은경이 북리뷰는 보기에 눈에 딱 들어오게해.

나도 은경이를 보면서

벤치마킹해야 겠네, 

가르침을 주고 서로 배우는 우리는 행복한 사우라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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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3 00:39:15 *.58.97.22
미경, 그대가 있어 행복하오
파리(나)도 천리마(사부)에 붙으면 멀리 달릴수 있고. 또 오미경을 만났으니 비슷한. 빛의 어우러짐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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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3 15:19:29 *.11.178.163
사마천.... '사마'가 성이고 '천'이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이야기 책 중에서 수호지인지 삼국지인지 잘 생각은 안나는데...'사마중달'이란 사람이 있어서 '사마'라는 성씨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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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4 01:14:59 *.58.97.22

선배님. 맞네요.

사마 천.. 사마가 성이에요...

분명 그렇게 배우고 알고 있다가 

이 글 쓸 때 잠시 긴가 민가 했네요...

그래서 그냥 제가 부르고 싶은데로.....'마천'... '사형'...^^

 

고쳐야 겠어요...

천.. 사마형... 

 

늘  챙겨서 읽어주시고....캄솨합니다~!

사부님보다(?)  더 꼼꼼히 코멘트 챙겨주시는 사부님 닮은 정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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