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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2일 09시 57분 등록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두번 읽기]


두번 읽기에서 새롭게 와 닿은 문구는 밑줄로 표시, 나의 해석 부분은 보라색으로 표시

추가적인 내용(사기 2권 등)파란색으로 표시

 

역자서문

<6> 춘추 전국 시대에는 전쟁이 필요악이었다.

 

<7> [사기 열전]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온갖 인물 군상의 결정체

 

<8> 편작의 명언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사람을 살려낼 뿐이다.” 라든지 질병은 징후가 나타날 때 고쳐야 한다.” 혹은 사람들은 다병을 걱정하고, 의사는 의술이 적음을 걱정한다.” 등은 오늘의 의학도들에게도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9> 나는 기본적으로 번역은 원전의 뜻을 자구 하나하나 따져 가며 번역하고 난 다음 그에 수반되는 전고나 논의의 근거를 찾아 다시 그것을 원전의 문맥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주는 독자가 원전을 읽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원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ð  역자 김원중 교수는 번역자로서 유념하고 견지해야 할 번역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해제

<11-12> [사기] [본기本紀] 12, [] 10, [] 8, [세가 世家]30, [열전] 70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기]는 오제五帝부터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천하에 권력을 행사하던 왕조나 군주들의 사적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이고,

[]는 각 시대의 연표로서 역사 발전의 다섯 단계를 나타낸다. 다섯 칸으로 나누어 각 칸의 맨 앞에는 연원을 기록하고, 그 아래 칸에 내용을 다룬다. 각 편마다 서문이 있어 그 []에 다루어진 역사에 대한 논평을 간략하게 싣고 있다.

[]는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천문학 등과 같은 전장제도를 기록하고 있어서 한 편의 문화사나 제도사의 성격을 갖는다.

[세가]는 제왕보다 낮은 위치인 봉건 제후들의 나라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후들 외에 황제의 친척과 공훈을 세운 신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열전]은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의 전기를 주로 수록하고 있는데, 신분을 초월한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13> [사기] 이전의 중국의 역사서는 매년 매달 매일의 역사적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취했으니, [춘추] [서경] 등 거의 모든 역사서가 유사한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중국 고대 역사서의 세 가지 편찬 체제인 편년체, 기사본말체, 기전체 가운데 기전체의 효시가 [사기]이다. 기전체는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먼저 시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행적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마천은 사료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역사의 발전적 흐름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주었기에, 이 책이 오늘날까지도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14> [사기]라는 명칭은 사마천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다. 사마천이 세상을 떠난 뒤 [태사공서] 또는 [태사공기]로 불렸는데, [태사공기]의 약칭이 바로 [사기]이다. 위나라 건안 연간에 순열이 지은 [한기]라는 책의 권 30태사공사마천사기라는 말이 나와 정식으로 사기라는 말이 태사공서라는 명칭을 대체하게 되었다.

 

<15> 사마천이 낙양에서 아버지와 만났을 때, 아버지가 그의 손을 잡고서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고 당부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친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금궤에서 수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면서 4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끝에 태초 원년 기원전 104년에 정식으로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20> 사마천은 전기를 개인의 역사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사마천 [열전]에서 인물에 대해 나열식으로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 그 인물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특징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21> 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유형에 입각해서 자신을 포함하여 당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런 근거를 그 이전의 경서와 제자서들 뿐 아니라 민간의 구전에서도 취하는 유연성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기 열전]의 독특한 인물의 선택, 서술 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ð  사마천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반영하여 서술하였다.  

 

<24> [사기 열전]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준다.

ð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면 삶의 up & down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다양한 인생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옳게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삶인가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24-25> [사기 열전]은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세계관과 인생관 위에 개인적인 비극을 역사 의식으로 승화시켜, 시대를 살다 간 인물을 조망해 나갔기 때문이다.

 

<25> [사기]는 세상에 나오고도 오랫동안 왕실과 역사가들에게 소외된 채 몇 세기를 보내야 했다. 더욱이 한 문제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아버지 경제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신랄하게 비판한 것을 두고 매우 노여워하며 이 두 본기를 폐기하도록 했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무제의 영토 확장 정책에 대한 사마천의 신랄한 비판은 [사기] [봉선서], [평준서] 등을 비롯하여 열전 곳곳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게다가 [사기]가 구십 년 늦게 나온 반고의 [한서]와 달리, 도가와 병가, 잡가 등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여 한나라의 국가 이념인 유학에 배치된다는 점도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배척되는 요인이 되었다.

 

<27> 개인적으로 기록한 역사 [사기]가 후대에 24사의 필두로 거론되게 된 것은 중국 전설 시대부터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한무제까지 이르는 유일한 통사체 역사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이다. 또 기전체라는 형식에 바탕을 둔 역사 서술의 정확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절대 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 현실과 인간에 대한 성찰 즉 사마천의 역사를 보는 태도가 다른 역사서와 아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사기]가 문학서로서의 색채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ð  역사는 그 역사를 기록하고 남기는 역사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왜곡될 수 있다. 역사가가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집필한다고 해도 그 역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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