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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2일 01시 3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jpg

사마천

(궁형으로 거세당하여 그의 초상화엔 수염이 없다. ㅠㅠ)


사마천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그의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마천은 주나라 역사가 집안인 사마 가문에 아들이 태어난다. 태사령이었던 사마담은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역사가가 되길 바랐다. 부친은 그가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이것저것 가르쳤고, 사마천도 그런 아버지의 교육방침이 싫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역사가로 자라났다. 그의 시대 풍조에 얽매이지 않고 호기심 많은 기질과도 잘 맞았다. 스무 살에 낭중 관직에 오르고서도 그는 중국 곳곳을 여행했다.

 

사마천이 서른 여섯살이었던 기원전 110, 무제가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했다. 태산에서 천자가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큰 제사인 만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강력하지 않은 이상 거행할 수 없는 의식.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큰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 사마담은 이를 분하게 여기다가 화병으로 죽었다. 그는 죽을 때 아들 사마천에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부탁을 한다. 내 생전부터 편찬하던 역사서를 완성해다오. 그는 그 유언에 따라 10년에 걸쳐 사기의 집필에 착수했다.

 

그러나 하늘은 그가 얼마나 굳은 의지를 가지고 역사를 편찬하는지 증명하기를 원했다. 그래서한 가지 사건을 일으킨다. 기원전 99년 무제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던 장군 이릉이 패전을 하여 포로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릉은 사마천의 친구였다. 무제는 이 비보에 진노하여, 이릉의 처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중신 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모두들 이릉을 비난하고는 이릉의 가족들을 모두 능지처참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친구였던 이릉의 충절과 용감함을  두둔했다. 무제의 노여움은 이릉에게서 사마천으로 옮겨갔다.

 

사마천은 태사령의 직책에서 파면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사마천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사형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을 받고 풀려나는 일이었다. 사마천은 돈이 없었다. 죽음, 아니면 사내의 남근을 잘라야 한다. 사형 전날, 캄캄한 감옥 속에서 사마천은 죽기로 결심한다.

 

사내 대장부, 구차하게 살아남느니 깨끗한 죽음을 달게 받겠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나는 나의 생각을 밝혔고, 그에 대해 떳떳하다. 남은 삶에 대한 미련도 없다.

 

그러나 미련이란 단어가 떠올랐을 때 그의 마음 속에 있던 아버지의 유언이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유언이 기억난다. 눈만 감으면 눈 앞에 선하다. 병상에서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지. 천아, 아비가 죽기 전에 네게 간곡히 부탁할 것이 있다. 네가 나의 생전부터 편찬하던 역사서를 완성해다오. 네게 가르쳤고, 네가 발로 얻은 역사의 장면들을 빠짐없이 모아 역사서를 만들어다오.

 

나는 정말 미련이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이루겠다는 꿈도 다 포기하고 편안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역사서를 쓰기 위해 답사를 다녔던 그 많은 땅들, 발로 뛰어 얻은 역사적 사건들, 수 많은 이야기, 백이숙제, 오자서, 공자의 제자들, 관중과 포숙아, 한신, 손자와 오기, 맹상군, 맹자, 순경, 백기, 염파, 인상여, 여불위 모두들 내가 써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인간의 온갖 내장들이 전부 쏟아져 나오는 문장들, 온갖 인간상들그것들을 전부 놓고 갈 수 있을까.

 

아니, 아니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내가 태어난 것은 그 문장들을 쓰기 위함이었다. 죽음도 명예롭지만,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서 다 쓰고 갈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궁형을 받느니, 죽는다는 사회 풍조였으나, 사마천은 궁형을 받아들였다. 남근을 거세하고 목숨을 얻은 사마천은 아버지 대부터 편찬중이던 역사서 《사기》의 편찬을 완성한다.

 

사기열전에는 사마천의 개성이 두드러지고 구속이나 틀에 매이지 않는 작자 특유의 자유로움이넘쳐 흐른다. 그의 사기 백 삼십권은 중국 최초 임금인 황제에서 무제에 이르는 역사를 인물별로 나누어 썼고, 사회 지배층 뿐만 아니라 자객, 광대, 의사와 상인들 까지 넣는 파격적인 소재를 잡아내었다.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무척 획기적이다.

 

 

2.             가슴을 무찔러 들어오는 글귀

66. [공자] 공자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할 것이다. 또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 행할 것이다.”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세상 모든 것에는 고유한 쓰임이 있다. 세상이 흐려진 때에야 깨끗하고 맑은 것이 필요해지는 법이다. 부귀가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좋아하는 것을 좇아 하면 따라오는 것이란다. 과연 그럴까? 나는 내 전인생을 걸쳐 이것이 진짜인지 실험해 보고 싶다. 정말 부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인지. 혹은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게 되는지. 아주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71. [관중과 포숙아] 내가 가난하게 살았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인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왕의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왔던]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런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추천하고 자신은 그의 아랫자리에 있었다. 포숙의 자손들은 대대로 제나라의 봉록을 받으며 봉읍지를 10여 대 동안 가졌으며, 항상 이름 있는 대부의 집안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더 찬미하였다.

>>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포숙의 모성애와 같은 태도를 배울점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관중의 처신과 의사결정이 부러웠다. 전혀 다른 시대, 전혀 다른 맥락의 일을 하고 있지만 사람을 대하고 그를 설득하여 일을 운영하는 것은 마음에 두고 따를만 하다.

 

73. 그는 이해를 분명하게 따지고, 득실을 재는 데 신중히 하였다. 예를 들면, 제나라 환공은 부인 소희가 뱃놀이하는 중에 배를 흔들어 놀라게 한 죄를 물어 그녀를 모국인 남쪽 채나라로 내쳤는데, 채나라에서 그녀를 다시 시집보내자 화가 나서 채나라를 친 일이 있었다. 그때 관중은 채나라와 거리상 가까운 초나라를 함께 쳐서, 주나라 황실에 포모(술거르는 제사 용품)를 바치지 않은 것을 나무랐다. 또 환공이 북쪽의 산융을 치려 하자, 관중은 이 기회에 연나라를 쳐서 그들의 조상인 소공의 어진 정치를 다시 실행하도록 했다. 또 가에서 제후들을 만나 맹세할 때, 환공이 노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기로 한 노나라 장수 조말과의 약속을 어기려고 하자, 관중은 이 약속을 지켜 신의를 세우도록 하였다. 이 일로 해서 제후들은 제나라로 귀의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는 곳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비책이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77. 안자는 제나라 장공이 대부 최저의 반역으로 죽었을 때, 그 시신 앞에 엎드려 소리 높여 울고 군신의 예를 다하고 떠나 버렸다. 이것을 어찌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용기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왕에게 간언할 때는 왕의 얼굴빛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았으니, 이것은 조정에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는 마음가짐이었으리라. 오늘날 안자가 살아 잇다면, 나는 그를 위해서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

86. [한비의 세난편]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나의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나의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나의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하려고 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한다.

89.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과거의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유세자는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며, 군주와 같은 실패를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며 두둔해 주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덮어 주어야 한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런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의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군주의 신임을 얻고 의심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89. 재상 이윤이 요리사가 되고 백리해가 포로가 되었던 것은 모두 군주에게 등용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이었으면서도 이처럼 자신의 몸을 수고롭게 하고 천박한 일을 겪은 후에 세상에 나왔다. 그러므로 재능 있는 인재라도 이러한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

송나라에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집의 토담이 비에 무너져내렸다. 그의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담을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그의 이웃집 주인 역시 아들과 똑같이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과연 많은 재물을 잃었다. 부자는 자기 아들은 매우 똑똑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이웃집 주인은 의심했다.

90. [미자하] 예전에 미자하라는 사람이 위나라 군주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법에 군주의 수레를 타는 자는 월형(다리를 자르는 형벌)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 뒤에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나자, 어떤 사람이 밤에 미자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미자하는 군주의 명령이라고 속여 군주의 수레를 타고 대궐 문을 빠져나갔다. 군주는 이 일을 듣고 미자하를 어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해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까지 감수하다니!”

또 미자하가 군주와 과수원에 갔다가 복숭아를 먹어 보니 맛이 달았다.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군주에게 바치자 군주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를 끔찍이 위하는구나. 제 입맛을 참고 이토록 나를 생각하다니.”

그 뒤 미자하는 고운 얼굴빛이 사라져 군주의 총애를 잃고 군주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 그러자 군주는 이렇게 말했다. “이자는 예전에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였다.”

비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91.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해를 가보았다. 바닥이 고운 진흙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사해는 바닥을 볼 수 없다. 또한 머드팩이 좋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흙을 한 움큼씩 떠 몸에 바르기 때문에 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수 없다. 걸어가다가는 보통 바닷물보다 10배나 짠 물에 풍덩 빠지기 십상이다. 사람의 무의식도 이렇게 생겼다. 그것은 어두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지만 그 안의 바닥은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용의 역린을 건들이지 말라. 그곳은 바로 깊은 웅덩이이니, 아주 짠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혀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102. 양저는 병사들의 막사, 우물, 아궁이, 먹거리를 비롯하여 문병하고 약을 챙겨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몸소 보살폈다. 또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재물과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풀고,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이 양식을 나누었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 병사들을 다시 순시하자 병사들까지도 모두 앞다투어 싸움터로 나가기를 바랐다.

110. 손빈은 예전에 방연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공부를 마치고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혜왕의 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재능이 손빈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손빈을 불렀다. 방연은 손빈이 도착하자, 그가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두려워하고 시기하여 죄를 뒤집어씌웠다. 방연은 손빈의 두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글자를 새겨 숨어 살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

그 뒤 제나라 사자가 위나라로 갔을 때, 손빈은 형벌을 받은 몸이므로 몰래 제나라 사자를 만나 설득했다. 제나라 사자는 손빈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겨서 몰래 수레에 태워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 장군 전기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빈객으로 예우해 주었다.

111.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지금 위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으니, 날쌘 정예 병사들은 틀림없이 모두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고 쇠약하고 지친 자들만 나라 안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병사들을 이끌고 빨리 위나라의 수도 대량으로 쳐들어가 중요한 길목을 차지하고 텅 빈 곳을 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틀림없이 조나라 공격을 멈추고 자기 나라를 구하러 들어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한 번 움직여 조나라의 포위망을 풀어 주고 위나라를 황폐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손빈의 계책을 따르니 위나라는 정말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물러낫다. 제나라 군대는 계릉에서 위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112.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삼진의 위나라 병사들은 원래 사납고 용감하며 제나라를 무시하고 제나라 군사들을 겁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그 형세를 잘 이용하여 유리하게 이끌어 나갑니다. 병법에승리를 좇아 백 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상장군을 잃게 되고, 승리를 좇아 오십 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겨우 절반만 목적지에 이른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땅에 들어서면 첫날에는 아궁이 10만 개를 만들게 하고, 다음 날에는 아궁이 5만 개를 만들게 하며, 또 그 다음 날에는 아궁이 3만 개를 만들게 하십시오.”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뒤쫓은지 사흘째가 되자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일찍이 제나라 군사가 겁쟁인 줄 알고 있었지만 우리 땅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달아난 병사가 절반을 넘는구나.”

그러고는 그의 보병들은 따로 남겨 둔 채 날쌘 정예 부대만을 이끌고 이틀 길을 하루 만에 달려 급히 뒤쫓았다. 손자가 방연의 추격 속도를 헤아려 보니 저녁 무렵이면 위나라의 마릉에 이를 것 같았다. 마릉은 길이 좁은 데다가 길 양쪽으로 험한 산이 많아 병사들을 매복시키기에 좋았다. 손빈은 길 옆에 있던 큰 나무의 껍질을 벗겨 내고 흰 부분에 이렇게 써 놓았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고는 제나라 군사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을 골라 쇠뇌 1만 개를 준비시켜 길 양쪽에 매복시키고 이렇게 말했다. “밤에 불빛이 보이면 일제히 쏘도록 하라.”

방연은 정말 밤이 되어서 껍질을 벗겨 놓은 나무 밑에 이르렀다. 그는 흰 부분에 씌어 있는 글씨를 발견하고는 불을 밝혀 비추어 보았다. 방연이 그 글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들은 한꺼번에 수많은 쇠뇌를 쏘아 댔다. 위나라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방연은 자신의 지혜가 다하고 싸움에서 진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어린애 같은 놈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만들었구나.”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제나라 군대는 승리의 기세를 몰아 위나라 군대를 전멸시키고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손빈은 이 일로 해서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병법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 손빈은 침착했다. 누군가 나의 무릎뼈를 자르고 얼굴에 글씨를 세겼다면 나는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복수를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손빈은 침착했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수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성격이 무르다는 것을 알고 복수같은 것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겠다. 나를 더 공고히 하고 어제의 나보다 더 완성된 나를 빚어내 보이겠다. 


117. 오기는 서하 태수가 되자 명성이 훨씬 높아졌다. 그런데 위나라에서는 재상 직책을 마련하고 전문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오기는 기분이 언짢아져 전문에게 말했다.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보고 싶은데 어떻소?”

이에 전문이 대답했다.

_좋지요.

오기가 물었다.

_삼군의 장군이 되어 병사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하고, 적국이 감히 우리를 도모하지 못하게 한 점에서 나를 당신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소?

전문이 대답했다.

_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_모든 관리를 다스리고 온 백성을 화합시키고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운 점에서는 나와 당신 중 누가 더 뛰어나오?

전문이 대답했다.

_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또다시 물었다.

_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들이 감히 동쪽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는 나와 당신중에서 누가 낫소?

그러자 전문은 이번에도 이렇게 대답했다.

_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_이 세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전문이 대답했다.

_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백성은 그분을 믿지 못하고 잇소. 이런 때에 재상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아니면 내게 맡기겠소?

오기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_당신에게 맡기겠소.

전문이 말했다.

_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이오.

오기는 그제야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20. 초나라의 도왕은 평소 오기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있었으므로 그가 초나라에 오자마자 재상에 임명했다. 오기는 법령을 확실하고도 세밀하게 만들고, 긴요하지 않은 관직을 없애며, 왕실과 촌수가 먼 촌수의 왕족들의 봉록을 없애 거기서 얻은 재원으로 군사를 길렀다. 그가 내세우는 정치의 핵심은 병력을 강화시켜 합종이나 연횡을 주장하는 유세객들을 물리치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남쪽으로는 백월을 평정하고, 북쪽으로는 진과 채를 초나라 땅이 되도록 하였으며, 삼진을 물리치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쳤다. 제후들은 초나라가 점점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예전에 초나라 왕족이던 자들은 한결같이 오기를 죽일 기회만을 엿보았다. 왕족과 대신들은 도왕의 죽음을 계기로 난을 일으켜 오기를 공격했다. 오기는 달아나다가 도왕의 시신 위에 엎어졌다.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가 화살을 쏘아 오기를 죽이자 도왕의 시신에도 화살이 꽂혔다. 도왕의 장례식이 끝나고 태자가 즉위하자, 영윤에게 오기를 죽이려고 왕의 시신에까지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하였다. 오기를 쏘아 죽인 일에 연루되어 일족이 모두 죽은 자는 칠십여집안에 이르렀다.

121.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략은 실로 절묘했으나, 그에 앞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앙을 막지는 못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일이구나!

128. [오자서 열전]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고 떠난다

_너희가 오면 네 아버지를 살려 주겠지만 오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오상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자 오운이 말했다.

_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도망치는 자가 있으면 뒷날의 근심거리가 될까봐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거짓으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그곳에 가면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죽게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그곳으로 간다면 원수를 갚을 길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병력을 빌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낫습니다. 함께 죽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오상이 말했다.

_나 역시 그곳으로 가더라도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나중에 원수도 갚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가려고 한다.

그러고는 오운에게 또 말했다.

_너는 달아나거라. 너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 죽음을 맞이하겠다.

 이렇게 해서 오상이 스스로 앞으로 나가 붙잡히자, 사자는 오자서 마저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오자서가 활을 당겨 사자를 겨누었으므로 사자는 감히 달려들지 못하였다. 오자서는 태자 건이 있는 송나라로 도망쳐 그를 섬겼다. 오사는 오자서가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_초나라 군주와 신하들은 머지않아 전란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오상이 초나라에 도착하자, 초나라에서는 오사와 오상을 모두 죽였다.

130. 오자서는 승과 헤어져 혼자 도망치다가 뒤쫓아 오는 자가 바짝 따라와 거의 붙잡힐 지경에 이르렀다. 오자서가 장강에 이르렀을 때, 마침 장강에서 배를 타고 있던 한 어부가 오자서가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고 그를 건네주었다. 오자서는 강을 건너고 나자 갖고 있던 칼을 풀어 어부에게 주며 말했다. “이 칼은 백 금의 가치는 될 테니 이것을 당신에게 드리지요.”

그러자 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법에 오자서 당신을 잡는 자에게는 좁쌀 5만 석과 집규(작위 이름으로 봉국의 군주 격임)라는 벼슬을 준다고 했습니다. (내게 욕심이 있었다면) 어찌 이까짓 백 금의 칼이 문제이겠습니까?”

어부는 끝내 칼을 받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누구도 나를 도와줄 의무 같은 것은 없는 절박한 상황에 오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다. 어딘가 혼자 갔을 때 무척 아팠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부축해주고 간병해주었다. 손을 잡아주고 따뜻하게 입혀주고 약을 먹여주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오자서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나를 사람이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134. 해는 저물고 갈길은 멀다

처음에 오자서는 신포서와 친하게 지냈는데, 오자서가 달아나면서 신포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_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엎고 말것이오.

그러자 신포서는 이렇게 응수했다.

_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킬 것이오.

오나라 병사들이 영에 들어갔을 때 오자서는 소왕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잡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한 뒤에야 그만 두었다. 산속으로 달아났던 신포서는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_당신의 복수는 너무 지나친 것 같소. 나는 사람이 많으면 한때 하늘도 이길 수 있지만,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깨뜨릴 수도 있다라고 들었소. 일찍이 평왕의 신하가 되어 평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니, 어찌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있겠소?

그러자 오자서는 말했다.

_나를 대신해서 신포서에게 사과하고 해는 저물고 갈길은 멀어 천리를 좇을 수 없었소라고 말해주게.

 이 말을 듣고 신포서는 진나라로 달려가 초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진나라는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신포서는 지나라의 대궐 앞뜰에서 이레 밤낮을 쉬지 않고 소리 내어 울었다. 신포서를 가엾게 여긴 진나라 애공이 이렇게 말했다.

_초나라는 비록 도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나 이토록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으니 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고는 전차 500대를 보내 초나라를 도와 오나라를 공격하여 6월에 직에서 오나라 병사를 무찔렀다.

 한편 오나라 왕 합려가 초나라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소왕을 찾고 있는 동안 합려의 동생 부개가 도망쳐 와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합려는 초나라를 포기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와 부개를 공격하였다. 부개는 싸움에서 져 초나라로 쫓겨 달아났다. 초나라 소왕은 오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것을 알고는 서둘러 영으로 돌아와 부개를 당계에 봉하고 당계씨라고 불렀다. 초나라는 다시 오나라와 싸워 이겼다. 오나라 왕은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150. [중니, 제자 열전]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곧으면 제물로 쓸 수 있다.

문밖을 나서서는 귀중한 손님을 대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제사를 받들듯이 신중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대신들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52.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실천해야 한다.”

자로가 물었다.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아버지와 형이 살아 계신데 어찌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하겠느냐?”

자화가 공자의 대답의 다른 것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같은 질문에 달리 대답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152. [자로] 그는 한때 공자를 업신여기며 포악한 짓을 했다. 그러나 공자가 예의를다해 조금씩 바른길로 이끌어 주자, 나중에는 유자의 옷을 입고 예물을 올리고 공자의 문인들을 통해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160. 자공이 물었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183. 자우가 한번은 군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우가 다시 물었다. “근심하지 않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음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238-239. 이렇게 하여 여섯 나라는 합종하여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고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였다.

소진은 북쪽으로 조나라 왕에게 일의 경과를 보고하러 가는 길에 낙양을 지나게 되었다. 기마와 짐을 실은 수레를 비롯하여 제후들마다 소진을 모실 사자를 보내 주어 전송하는 자가 매우 많아 국왕의 행차에 견줄 만하였다. 주나라 현왕은 이런 소문을 듣고 두려워 [소진이 지나가는] 길을 쓸도록 하고 교외까지 사람을 보내 맞아 위로하게 하였다. 소진의 형제와 아내와 형수가 곁눈으로 볼 뿐 감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하니 소진이 웃으면서 형수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전에는 오만하더니 지금은 공손합니까?”

형수는 몸을 굽혀 기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며 말했다. “계자(소진)의 지위가 귀하고 재물이 매우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면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을까?”

당시 소진은 천 금을 풀어 일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전에 소진은 연나라로 갈 때 다른 사람에게 백 전을 빌려 노자로 삼은 일이 있었는데 부귀해지자 백 금으로 갚았으며, 전날 은혜를 입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보답하였다. 그 하인 가운데 유독 한 사람만 보답을 받지 못하였는데, 그가 소진 앞으로 나와 스스로 그 사실을 말하니 소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았다. 너는 나를 따라 연나라로 갔을 때 역수가에서 여러 차례 나를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그때 나는 매우 곤란한 처지라서 너를 깊이 원망했다. 그래서 너에 대한 보답을 맨 뒤로 미루었을 뿐이다. 너에게도 이제 보답하겠다.”

 

265-266. 장의는 학업을 마치자 유세하러 제후들을 찾아갔다. 장의는 일찍이 초나라 재상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초나라 재상이 구슬을 잃어버렸다. 재상의 문하 사람들은 장의를 의심하고 이렇게 말했다. “장의는 가난하고 행실이 좋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그자가 재상의 구슬을 훔쳤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모두 함께 장의를 붙들어 수백 번 매질을 했으나, 장의가 구슬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풀어 주었다.

장의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이 글을 읽어 유세하지 않았던들 어찌 이런 수모를 겪었겠습니까?”

그러자 장의는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내 혓바닥이 아직 붙어 있는지 보아 주시오.”

장의의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혀는 붙어 있네요.”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됐소.”

>> 장의의 혀는 나의 손가락일까? 손가락은 붙어 있네요. 그럼 됐어요.   


266-267. 장의는 곧바로 조나라로 가서 이름을 말하고 소진에게 만나 주기를 청하였다. 소진은 문지기에게 그를 들여보내지도 말고 돌아가지도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한 지 며칠이 지나서야 장의는 소진을 만날 수 있었다. 소진은 장의를 마루 아래에 앉게 하고 하인이나 첩이 먹는 형편없는 음식을 내주었다. 그러고는 그의 잘못을 하나하나 들추어내면서 꾸짖었다. “어찌 자네같이 재능을 가진 자가 이처럼 어렵고 부끄러운 처지가 되었는가? 내 어찌 자네를 왕에게 추천하여 부귀하게 만들 수 없겠나? 그러나 자네는 거두어서 쓸 만한 인물이 아니네.”

소진은 장의의 부탁을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장의는 이곳에 올 때에는 옛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로 생각하였는데 도리어 모욕을 당하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장의는 제후들 가운데 섬길 만한 자는 없지만 진나라라면 조나라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내 진나라로 들어갔다.

한편 소진은 조금 있다가 자기 사인(가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의는 천하에서 현명한 인물이니 나는 그를 뛰어넘을 수 없네. 지금은 운이 좋아 내가 먼저 등용되었을 뿐이지. 진나라의 실권을 잡아 휘두를 사람은 장의뿐일세.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등용되지 못했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세. 자네는 나 대신 은밀히 그를 도와주게.”

그즞 조나라 왕에게 금과 폐백과 수레와 말을 청하였다. 그러고는 사인을 시켜 장의를 몰래 뒤따라가 그와 함께 먹고 자면서 차츰 친해지면 그에게 필요한 수레와 말과 금을 주어서 돕게 하고, 장의가 쓰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제공해 주되 소진이 시킨 일임은 말하지 않도록 했다. 장의는 마침내 진나라 혜왕을 만날 수 있었다. 혜왕은 그를 객경으로 삼고 함께 제후들을 칠 일을 의논했다.

 

268. 그 뒤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어 격문을 써서 초나라 재상에게 알렸다. - 지난날 내가 당신과 술을 마셨을 때 나는 당신 구슬을 훔치지 않았건만 당신은 나를 매질하였소. 이제 당신 나라를 잘 지키시오. 나는 당신 나라의 성읍을 훔칠 것이오.

>> 테이큰이 생각난다.  


378-379. 전영에게는 아들이 사십여 명 있었다. 그중 천한 첩이 낳은 문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5 5일에 태어났다. 처음에 전영은 첩에게 아이를 키우지 말라고 했지만 첩은 몰래 거두어 길렀다. 문이 장성하자 그 어머니는 문의 형제들을 통해 문과 전영을 만나게 했다. 그러자 전영이 문의 어머니에게 고함을 쳤다. “내 너에게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 감히 키운 것은 무엇 때문이냐?”

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 대신 말했다. “아버님께서 5월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이 또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전영이 말했다. “그만 하거라.”

 

380. “제가 듣건데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궁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질질 끌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짧은 바지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하인들과 첩들은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고도 남아돌지만 선비들은 쌀겨나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쌓아 둔 것이 남아돌지만 더욱 많이 쌓아 두려고만 할 뿐 나라의 힘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은 잊고 계십니다. 저는 이 점이 이상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전영은 문을 높이 사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빈객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그러자 빈객이 날로 불어나고 문의 이름이 제후들에게 알려졌다.

 

380-381. 맹상군이 설 땅에 있으면서 제후들의 빈객을 불러 모으자, 죄를 짓고 도망친 자까지 모두 그 문하로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집의 재산을 기울여서 그들을 정성껏 대우하자 천하의 인물이 거의 다 모여들어 빈객이 수천 명이나 되었다. 맹상군은 신분이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과 똑같이 대우해 주었다. 맹상군은 손님과 앉아 이야기할 때 늘 병풍 뒤에 시사(기록하는 사람)를 두어 손님의 친척이 있는 곳을 묻고 그 내용을 적어 두도록 했다. 손님이 나가면 맹상군은 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그의 친척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선물을 주곤 했다.

하루는 맹상군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참을 대접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불빛을 가린 탓에 방안이 어두웠다. 손님은 자신의 음식이 맹상군의 것과 다른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어둡게 한 줄 알고 기분이 상해서 식사를 하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 맹상군이 일어서서 몸소 자신의 밥그릇을 들어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은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 때문에 선비들이 맹상군에게 많이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손님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잘 대우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맹상군과 친하다고 생각하였다.

 

382-384.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던 생각을 그만두고, 그를 가두고 계략을 짜내 죽이려고 했다. 이에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소왕이 아끼는 첩에게 가서 풀어 주기를 청하도록 했다. 소왕의 첩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맹상군이 가지고 있는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로 만든 가죽옷을 갖고 싶습니다.”

이때 맹상군은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로 만든 가죽옷을 한 벌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값은 천 금이나 되고 천하에 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진나라에 와서 소왕에게 이미 바쳤고 또 다른 옷은 없었다. 맹상군은 고민에 싸여 빈객들에게 널리 그 대책을 물었지만 시원하게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맨 아랫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개 흉내를 내어 좀도둑질을 하던 자가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우 가죽옷을 구해 올 수 있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그는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궐의 창고 속으로 들어가 전날 소왕에게 바쳤던 여우 가죽옷을 훔쳐 돌아왔다. 맹상군이 이것을 진나라 소왕의 첩에게 바치니, 소왕의 첩이 맹상군을 위해 소왕에게 말하자 소왕은 맹상군을 풀어 주었다.

맹상군은 풀려나자 바로 말을 몰아 달아났다. 국경 통행증을 위조하고 이름과 성을 바꾸어 국경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함곡관에 다다랐다. 진나라 소왕은 뒤늦게 맹상군을 풀어준 것을 후회하고 그를 찾았으나 이미 달아난 뒤이므로 사람을 시켜 말을 달려 그를 뒤쫓게 했다.

한편 맹상군은 함곡관까지 왔지만 국경의 법으로는 첫닭이 울어야만 객들을 내보내게 되어 있었다. 맹상군은 뒤쫓아 오는 자들이 닥칠까 봐 어쩔 줄을 몰랐다. 빈객 가운데 맨 끝자리에 앉은 자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내자 근처의 닭들이 다 울었다. 그래서 통행증을 보이고 함곡관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정말로 맹상군을 뒤쫓던 진나라 사람들이 국경에 이르렀으나 맹상군이 이미 빠져나간 뒤이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두 사람이 그를 구하였다. 그 뒤 빈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속 깊이 맹상군을 따르게 되었다.

 

396-398. 지난날 제나라 왕이 다른 나라의 비방으로 맹상군을 벼슬에서 쫓아내자 모든 빈객이 맹상군을 떠났다.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불러 다시 재상 자리에 앉히자 풍환이 빈객들을 맞아들이려고 했다. 빈객들이 이르기 전에 맹상군은 크게 한숨을 토하며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언제나 빈객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접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힘썼소. 빈객이 3000여 명이나 있었음은 선생도 아는 바요. 그러나 빈객들은 내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자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떠나가 나를 돌봐 주는 사람이 없었소. 이제 선생의 힘으로 다시 재상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다른 빈객들은 또 무슨 낯으로 나를 볼 수 있겠소. 만약 다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을 보이겠소.”

풍환은 이 말을 듣자 말고삐를 매어 놓고 수레에서 내려와 절을 했다.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려와 마주 절하고 말했다. “선생께서는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오?”

풍환이 대답했다.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런 원리를 아십니까?”

맹상군이 대답했다. “어리석어 선생이 말하는 바를 잘 모르겠소.”

풍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맹상군은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삼가 말씀대로 하겠소. 선생의 말씀을 들은 이상 그 가르침을 받들어 따르겠소.”

>> 나의 오른쪽 머리에는 계산기가 하나 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이득에서 나의 손해를 빼본다. 내가 계산기에 관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에도 계산기는 차르륵 자기가 해야할 일을 한다. 아침마다 1050원을 내고 지하철을 타는 일에 계산기는 무심하다. 월 9만원을 내고 데이터 걱정없이 폰을 쓰는 일에 계산기는 무심하다. 그러나 친구에게 커피 한잔 쏘는 일에 계산기는 신경질적으로 버튼을 탁탁 거린다. 잘해줘서 예쁠 것 없는 사람에게 선심을 쓰는 일에 계산기는 신경질적이다. 그건 손해라는 것이다.  

 풍환의 말을 들어보니, 아마 계산기는 나에게만 달려있는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오른쪽 머리에 모두 하나씩 달려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고 좋아해주는 것을 나의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 베풀면 그만큼의 온정과 인정을 받길 바란다. 그리고 나의 기대와 상대의 베품은 늘 차이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이 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나에게서 득만 보고 가는 사람도 더러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이 나를 챙겨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인거다.  

 때로 나도 모르게 계산기를 아예 저리 치워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아주 풍요롭고 넓은 마음으로 내 옆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한다. 그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아주 진귀한 경험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에게 찾아오는 아주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그렇게 맞이해주고 싶다.

 


403. 평원군 조승은 조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공자들 중에서 승이 가장 어질고 빈객을 좋아하여 그 밑으로 모여든 빈객이 대략 수천 명이나 되었다.

403-404. 평원군의 집 누각은 민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었다. 평원군의 애첩이 누각에서 민가에 사는 절름발이가 절뚝거리며 물을 긷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큰소리로 웃었다. 그 다음 날 절름발이가 평원군의 집 문 앞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이 선비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선비들이 천 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는 것은 당신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고 첩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하기 때무입니다. 저는 불행히 다리를 절뚝거리고 등이 굽는 병이 있는데 당신 첩이 저를 내려다보고 비웃었습니다. 원컨데 저를 비웃은 자의 목을 베어 주십시오.”

평원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소.”

그러나 평원군은 절름발이가 돌아가자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놈 좀 보게, 한 번 웃었다는 이유로 내 애첩을 죽이라고 하니 너무하지 않은가?”

평원군은 끝내 첩을 죽이지 않았다. 그 뒤 일 년 남짓한 사이에 빈객과 문하, 사인들이 조금씩 떠나가더니 떠난 자가 절반이 넘었다. 평원군은 이를 이상히 여겨 말했다. “나는 여러분을 예우하는 데 크게 실수한 적이 없거늘 어째서 떠나가는 자가 이처럼 많소?”

문하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당신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자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비들은 당신이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하찮게 여기는 인물로 생각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평원군은 절름발이를 비웃은 애첩이 목을 베고, 직접 문 앞까지 가서 절름발이에게 그 목을 내 주면서 사과했다. 그 뒤 문하에 다시 선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513-516. (보연왕서) 신은 재능이 없어 왕명을 받들어 모시지 못하고 좌우 신하들의 마음을 따르지 못하여 선왕의 현명하심을 해치고 대왕의 높으신 덕을 해칠까 두려워 조나라로 도망왔습니다. 지금 왕께서 사신을 보내 신의 죄를 여러 차례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신은 왕을 모시는 신하들이 선왕께서 신을 총애하신 까닭을 살피지 못하고, 또 신이 선왕을 섬긴 뜻을 명백히 하지 못할까 두려워 감히 글로 대답합니다.

신이 듣기에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가깝다는 이유로 봉록을 주지 않고 공로가 많은 자에게 상을 주며, 능력 있는 사람에게 그에 맞는 일을 맡긴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재능을 살펴 관직을 주는 이는 공적을 이루는 군주이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사귀는 이는 이름을 남기는 선비입니다. 신이 선왕께서 하신 일을 살펴보니 이 세상 군주들보다 높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위나라의 사신이라는 신분을 빌려 연나라로 갔던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외람되게 신을 뽑아 빈객들 틈에 끼게 하고 신하들의 위사리에 서게 했으며, 종실의 군신들과 상의할 것도 없이 신을 아경으로 삼았습니다. 신은 속으로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명에 따라 가름침을 받는다면 다행히 큰 허물은 없으리라는 생각에 사양하지 않고 명령에 따랐습니다.

선왕께서는 신에게나는 제나라에 원한이 많아 매우 화가 치민다. 그래서 우리 연나라의 힘이 약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제나라를 치려 한다.”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은제나라는 일찍이 환공이 세상을 제패한 업적이 있으며, 전쟁에서 언제나 이긴 나라이므로 무기와 장비가 잘 갖춰져 있고 싸움에도 익숙합니다. 왕께서 제나라를 치시려거든 반드시 천하 제후들과 함께 이 일을 꾀하셔야 합니다. 천하 제후들과 함께 꾀하려면 조나라와 맹약을 맺는 게 가장 좋습니다. 또한 회수 북쪽의 옛 송나라 땅은 초나라와 위나라가 탐내는 땅입니다. 조나라가 만약 이 일에 가담하기로 허락하고 네 나라가 동맹을 맺어 친다면 제나라를 크게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왕께서는 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고 부절을 마련하여 신을 남쪽 조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습니다. 신은 돌아와 보고를 마친 뒤 병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쳤습니다.

하늘의 도가 무심치 않고 선왕이 영명하신 덕택에 황하 북쪽의 모든 지역이 선왕에게 복종했으므로 그곳 병사를 제수 가로 모이도록 했습니다. 제수 가의 군사는 명령을 받고 제나라를 쳐서 크게 깨뜨리고 날랜 병졸과 정예 군대가 멀리 적을 뒤쫓아 제나라 수도 임치에 이르자, 제나라 왕은 거로 달아나 겨우 몸만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제나라의 주옥과 수레와 무기와 진기한 그릇 등은 다 거두어서 연나라로 들여왔습니다. 제나라에서 가져온 기물을 영대에 진열하고 대려는 원영에 전시하였으며, 옛날에 제나라에 빼앗겼던 솥은 역실로 되찾아 오고, 연나라 수도 계구에는 제나라의 문수 가에서 생산되는 대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오백 이래로 선왕보다 더 큰 공적을 세운 분은 없었습니다. 선왕께서는 만족스러워하시며 땅을 떼어 신을 봉하여 작은 나라의 제후에 비길 만한 지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신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잘 모르지만 왕의 명령을 받들고 가르침을 받으면 다행히 큰 허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여 명을 받고 사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이 듣건데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공을 세우면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을 가진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까지 칭송을 받는다.”라고 합니다. 선왕께서는 원한을 갚고 치욕을 씻어 전차 만 대를 가진 강한 제나라를 평정하여 800년 동안 쌓아 두었던 보물과 진기한 그릇을 빼앗아 오셨고, 임종하시는 날까지도 가르침이 아직 시들지 않았습니다. 정사를 맡은 신하는 그 법령을 바르게 닦고 적서를 신중히 지키게 하여 이를 하인들이에까지 미치게 한 것은 모두 후세에 교훈이 될만합니다.

또 신이 듣건데일을 잘 꾸민다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이루는 것은 아니며, 시작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무리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합니다. 옛날에 오자서의 의견이 오나라 왕 합려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오나라 왕은 멀리 초나라 수도 영까지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부차는 자서의 의견이 그르다 하고 그에게 칼을 내려 죽게 하고, 그 시신을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양자강에 띄웠습니다. 오나라 왕 부차는 선왕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 가면 공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자서의 시신을 양자강에 가라앉히고도 후회할 줄을 몰랐습니다. 자서도 두 군주의 기량의 다름을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양자강에 던져지는 처지가 되도록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의 경우에는 재앙을 벗어나 공을 세워 선왕께서 남기신 공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신은 모욕스러운 비방으로 선왕의 명성을 떨어뜨릴까 봐 가장 두렵습니다. 이미 연나라를 버리고 조나라로 가는 큰 죄를 지었는데, 또 연나라가 지친 틈을 타 조나라를 위하여 연나라를 쳐서 연나라에게 앞서 저지른 죄를 요행으로 면해 보려는 것은 도의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이 듣건데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랑믜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신은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군자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다만 왕을 모시는 신하들이 주위 사람들의 말을 가까이하여 멀리 내쳐진 신의 행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할까 염려되어 감히 글을 올려 말씀드립니다. 부디 군왕께서 신의 뜻을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531-533. 조나라 왕이 상여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고 상경으로 삼아 상여의 지위가 염파보다 높아졌다. 염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나라 장군이 되어 성의 요새나 들에서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인상여는 겨우 혀와 입만을 놀렸을 뿐인데 지위가 나보다 높다. 또 상여는 본래 미천한 출신이니, 나는 부끄러워서 차마 그의 밑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내가 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리라.”

상여는 이 말을 듣고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상여는 조회가 있을 때마다 늘 병을 핑계 삼아 염파와 서열을 다투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출할 때도 멀리 염파가 보이면 수레를 끌어 숨어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사인이 모두 이렇게 간하였다. “저희가 친척을 떠나와서 나리를 섬기는 까닭은 오직 나리의 높은 뜻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리께서는 염파와 같은 서열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리는 염파가 나리에 대한 나쁜 말을 퍼뜨리고 다니는데도 그가 두려워 피하시며 지나치게 겁을 내십니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인데, 하물며 장군이나 재상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못난 저희는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인상여는 그들을 완강하게 말리며 말했다.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나라 왕 가운데 누가 더 무섭소?”

사인들이 대답했다. “염 장군이 진나라 왕에 못 미칩니다.”

상여가 말했다.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데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비천한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가 있는 친구를 하나 만나게 된다면 아주 멋질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534. 평원군의 집에서 조세를 내지 않으려고 하자, 법에 따라 평원군의 집에서 일을 보는 사람 아홉을 죽였다. 평원군이 화가 나서 조사를 죽이려고 하자, 조사는 그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조나라의 귀공자(왕족)입니다. 지금 당신 집에서 나라에 바치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내팽개쳐 둔다면 국법이 손상될 것입니다. 국법이 손상되면 나라가 쇠약해질 테고 나라가 쇠약해지면 제후들이 병사를 일으켜 쳐들어올 것이며, 제후들이 병사를 일으켜 쳐들어오면 조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께서 어떻게 이와 같은 부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 같은 귀한 분이 국법이 정한 대로 나라에 의무를 다하면 위아래가 공평해질 테고 위아래가 공평해지면 나라가 강해질 것이며, 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는 튼튼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국왕의 일족이니 그 누가 공자를 하찮게 보겠습니까?”

>> 상황의 반대급부로서 자기를 바라보면 자기가 상한다. 상황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세우지 않으면 전체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써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나를 내던지는, 혹은 나를 버린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나를 가장 즐겁게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게 한다. 

 

538-539. 일찍이 그는 아버지 조사와 함께 군사적인 일을 토론한 적이 있는데, 조사는 그를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조사는 그가 잘한다고 하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조사에게 그 까닭을 묻자 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가 괄을 장군으로 삼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틀림없이 조나라 군대는 파멸당할 것이오.”

조괄이 떠나려고 할 때, 그 어머니는 왕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말했다. “제 아들을 장군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왕이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조괄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전에 제가 조괄의 아버지를 모실 때, 그 무렵 제 아들의 아버지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먹여 살리는 이가 수십 명이고, 벗이 된 사람은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왕이나 종실에서 상으로 내려준 물품은 모두 군대의 벼슬아치나 사대부에게 주고, 출전 명령을 받으면 그날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아들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어 동쪽을 향해 앉아서 부하들의 인사를 받게 되었지만 군대의 벼슬아치 가운데 누구 하나 제 아들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이가 없습니다. 왕께서 내려 주신 돈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와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 날마다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릅니다. 부디 왕께서는 제 아들을 보내지 마십시오.”

>>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 내어놓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더 자주 찾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공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545. 태사공은 말한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 중에 어떤 이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585.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585-586. 굴원은 왕이 다른 사람들이 말을 듣는 데 밝지 못하고 헐뜯고 아첨하는 말이 군주의 밝음을 가로막으며, 흉악하고 비뚤어진 말이 공정함을 해치고, 단아하고 올곧은 사람이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근심하며 깊이 사색에 잠겨 [이소]를 지었다.

586. ‘이소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라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굴원은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겼지만 헐뜯는 사람의 이간질로 곤궁해졌다고 할 수 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원이 [이소]를 지은 것은 이처럼 분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591.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591-592.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데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595. 사람이 태어날 때 받은 천명은

제각기 돌아갈 곳이 있구나.

마음 진정하고 뜻을 넓히면

내 무엇 두려워하랴!

늘 상심하고 슬퍼하여

깊이 탄식하며 한숨을 쉬네.

세상이 어지러워 나를 알지 못하니

내 마음 말하지 않으리.

 

597. 가생그는 사람들이 각기 마음속으로 생각은 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아주 명확하게 대답했다.

 

602. 만물은 변하며

진실로 쉼이 없다.

602. 형체와 기운이 끊임없이 도니

변하고 진화하는 것 매미와 같네.

그 깊은 이치 끝이 없는데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

 

613-614. 자초는 진나라 태자의 많은 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제후 나라의 볼모이므로 수레와 말과 재물이 넉넉하지 않고 생활이 어려워 실의에 빠져 있었다. 여불위가 한단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이 진귀한 재물은 사 둘 만하다.”

그리고 자초를 찾아가서 말했다. “나는 당신의 가문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자 자초는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 당신 가문을 크게 만든 뒤에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 주시오.”

여불위가 말했다. “당신이 모르는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자초는 그 말뜻을 깨닫고 안으로 불러들여 마주앉아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와 뜻이 통하는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처럼 마주쳤다가 운명처럼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사람을 사귀어 곁에 두는 것의 시작은 조그만 단서들을 놓치지 않는 것에 있다.  


618-619. 진시황이 차츰 장년이 되어 가도 태후는 음란한 행동을 그치지 않았다. 여불위는 그것이 발각되어 자기에게 재앙이 미칠까 두려워 음경이 큰 노애라는 사람을 몰래 찾아 사인으로 삼고, 때때로 음탕한 음악을 연주하며 노애의 음경에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달아서 걷게 하였다. 태후가 그 소문을 듣게 하여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고 한 것이다. 태후는 소문을 듣자 정말로 사람들 몰래 그를 얻고 싶어하였다. 이에 여불위는 노애를 바치고, 사람을 시켜 그를 부죄(남자의 성기를 제거하는 형벌)에 처하도록 허위로 고발하였다. 여불위는 또 태후에게 은밀히 이렇게 말했다. “거짓으로 부형을 받게 하여 부릴 수 있게 되면 급사중(궁궐에서 급사 일을 하는 관리)으로 삼으십시오.”

태후는 부형을 맡은 관리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판결을 위조케 하고, 그의 수염과 눈썹을 봅아 환관으로 만들어 마침내 태후의 시중을 둘게 하였다. 태후는 사사로이 그와 정을 통하면서 몹시 사랑하였다. 그러다가 아이를 가지게 되자 태후는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까 봐 두려워 거짓으로 점을 치고 이때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궁궐을 옮겨 옹 땅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게 했다. 노애는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녔고 태후는 그에게 매우 많은 상을 내렸으며, 모든 일은 노애가 결정했다. 이로써 노애의 사인은 수천 명이 되고, 벼슬을 얻기 위해 노애의 사인이 된 자도 1000여 명이 되었다.

>>이 부분을 읽는데 미노스왕과 파시파에가 떠올랐다. 나라의 기강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나라가 존속되기 어렵다. 

 연애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떳떳하고 진심을 다해 극진히 상대를 만나지 않으면 그 관계는 더 이상 생산적인 관계가 되기 힘들다. 여기서 생산적이라는 것은 양적 생산이 아닌 질적 생산을 의미한다. 상대의 존재로 인해 내가 더 확장되고 유연해질 수 있음을 배울 수 있는 관계가 좋은 관계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토대로 해야지만 생활과 일을 튼튼하게 가꿀수 있다. 

 

650-651. 형가가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자, 태자는 그가 시간을 끈다고 여기며 혹시 마음이 바뀌어 후회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래서 거듭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날짜가 벌써 다하였습니다. 형경께서는 무슨 다른 뜻이 있습니까? 저는 진무양을 먼저 보냈으면 합니다.”

형가는 성을 내며 태자를 꾸짖었다. “태자께서는 어찌 무양을 보낸다고 하십니까!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입니다. 비수 한 자루를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진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 머무르고 있는 것은 제 길벗을 기다려 함께 떠나기 위함입니다. 지금 태자께서 꾸물댄다고 하시니 하직하고 떠나겠습니다.”

마침내 형가는 출발했다.

태자와 이 일을 알고 있는 빈객들이 모두 흰색 옷과 모자를 쓰고 형가를 배웅하였다. 역수 가에 이르러 도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여행길에 올랐다.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는 여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변치의 소리를 내자,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떨구며 울었다. 형가는 앞으로 나아가며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소리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다시 우성으로 노래하니 그 소리가 강개하여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고, 머리카락이 관을 찌를 듯 치솟았다. 이렇게 형가는 수레를 타고 떠났는데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나는 형가가 거사를 도모하러 떠나면서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 형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마음을 다잡고 떠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고 있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665-667.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이름난 옥을 손에 넣고, 수씨의 진주와 화씨의 구슬을 가졌으며, 명월주를 차고 명검 태아를 지니고, 섬리의 준마를 타며, 취봉의 기를 세우고 영타의 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보물은 하나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데 폐하께서 그것들을 좋아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는 것이라야 한다면 야광주로 조정을 꾸밀 수 없고, 코뿔소 뿔이나 상아로 만든 물건을 가지고 즐길 수 없을 것입니다. 정나라와 위나라의 미인은 후궁에 들어올 수 없고, 결제라는 준마가 바깥 마구간을 채울 수 없으며, 강남의 금과 주석은 쓸 수 없고, 서촉의 단청(안료)으로 채색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후궁을 장식하고 희첩을 꾸며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난 것이라야 된다면 완주의 비녀, 부기의 귀걸이, 아호의 옷, 금수의 장식도 폐하 앞에 나타나지 못하며, 세상의 풍속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답게 차린 조나라의 여인은 폐하 곁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물동이를 치고 부를 두드리며 쟁을 퉁기고 넓적다리를 치면서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참다운 진나라의 음악입니다. , , 상간, , , , 상은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물동이를 치며 부를 두들기는 것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어지러운 세상] 음악을 연주하며, 쟁을 퉁기는 것을 물리치고 소와 우의 음악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당장 마음을 즐겁게 하고 보기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을 뽑아 쓰는 데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인물의 사람됨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지 않고 굽은지 곧은지를 말하지 않으며,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물리치고 빈객이면 내쫓으려 합니다. 그런즉 여색이나 음악이나 주옥은 소중히 여기되 사람은 가벼이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하에 군림하며 제후들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이 듣건대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라고 합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이것이 오제와 삼왕에게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는 백성을 버려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을 물리쳐 제후를 도와 공적을 세우게 하고, 천하의 선비를 물러나 감히 서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며 발을 묶어 진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도적에게 군사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식량을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대체로 진나라에서 나지 않은 물건 가운데 보배로운 것이 많으며,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재 가운데 충성스러운 인물이 많습니다. 지금 빈객을 내쫓아 적국을 이롭게 하고 나라 박으로 제후들에게 원한을 사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라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곁에는 빈객이 많은가? 나는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는가? 극진하게 대접하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였는가? 나는 그릇이 넓은 사람 곁에 가면 내 마음도 저절로 편안해짐을 경험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자의 곁을 지키려 할 뿐, 내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669-670. 이유가 휴가를 얻어 함양으로 돌아왔을 때 이사가 집에서 술자리를 열었다. 온갖 관직에 있는 우두머리가 모두 나와 장수를 기원하였으므로 그의 대문 앞과 뜰에는 수레와 말이 수천 대나 되었다. 이사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아!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나는 상채에서 태어난 평민이며 시골 마을의 백성일 뿐인데, 주상께서는 내가 아둔하고 재능이 없는 줄고 모르고 뽑아서 오늘날 이 지위까지 오르게 하셨다.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구나.”


692. “아,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군주를 위하여 무슨 계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옛날 하나라 걸왕은 관용봉을 죽이고, 은나라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이고,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총명하지 않았을까마는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충성을 다한 군주가 도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내 지혜는 세 사람만 못하고 2세 황제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 부차보다도 더하니 내가 충성하였기 때문에 죽는 것은 당연하다. 장차 2세 황제의 다스림이 어찌 어지럽지 않으랴!

지난날 그는 자기 형제를 죽이고 스스로 섰으며, 충신을 죽이고 미천한 사람을 존중하며, 아방궁을 짓느라 천하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내가 간언하지 않은 게 아니라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로 옛날 훌륭한 왕들은 음식에 절제가 있었고, 수레나 물건에도 정해진 수가 있었으며, 궁실을 짓는 데도 한도가 있었다. 명령을 내려 어떤 일을 하는 경우에도 비용만 들고 백성에게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은 금하여 오랫동안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형제에게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고도 그 허물을 반성할 줄 모르고, 충신을 죽이고도 다가올 재앙을 생각하지 않으며, 궁궐을 크게 짓느라 천하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며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이 세 가지 나쁜 일이 실행되니 천하의 백성은 복종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반역자가 벌써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는데도 2세 황제는 아직 깨닫지 못하며 조고를 보좌로 삼고 있으니, 나는 반드시 도적이 함양에 들어오고 고라니와 사슴이 조정에서 노는 꼴을 보게 되겠구나.”


696. 이사가 죽고 2세 황제가 조고를 중승상으로 삼자, 크든 작든 모든 일은 조고가 결정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을 알고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2세 황제가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사슴이지?”

좌우에 있던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입니다.”

2세 황제는 놀라서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태복(점을 치는 관리)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698. 태사공은 말한다. “이사는 여염집에서 태어나 제후들에게 유세하다가 진나라로 들어가서 진나라 왕을 섬겼다. 열국 사이에 틈이 생긴 기회를 타서 시황제를 도와 마침내 진나라의 제업을 이루게 했다. 이사는 삼공의 지위에 올랐으므로 높은 자리에 등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는 육경의 근본 뜻을 잘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여 군주의 결점을 메워 주려 힘쓰지 않고, 높은 작위와 봉록을 누리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고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 했으니 때가 너무 늦었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룰 만하였을 것이다.”


803-804. 대체로 나무를 하고 말을 먹이는 이는 만승의 천자가 될 만한 권위도 잃어버리고, 조그마한 봉록을 지키는 데 급급한 이는 경상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나라 용사 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이 지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849. 항우는 병사들에게 술자리를 열어 주었다. 아부는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패공을 죽이기 위해 항장(항우의 동족 사람으로 그 무렵 부장이었음)에게 연회석에서 칼춤을 추다가 패공을 찌르라고 명령하였지만, 위급한 순간마다 항백이 자기 어깨로 패공을 가려 주었다. 그때 패공과 장량만 군영 안으로 들어와 연회에 참석했고 번쾌는 군영 밖에 있었다. 번쾌는 상황이 긴급하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철 방패를 들고 군영 문 앞으로 가서 안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군영의 보초가 번쾌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번쾌는 방패로 그를 밀어젖히고 들어가 장막 아래에 섰다. 항우가 그를 보고 물었다. “이자는 누군가?”

장량이 대답했다. “패공의 참승 번쾌입니다.”

항우는 말했다. “장사로구나.”

그러고는 큰 술잔에 술을 따라 주고 돼지 다리 하나를 내려 주었다. 번쾌는 술을 마신 뒤 칼을 뽑아 고기를 잘라서 먹어 치웠다. 항우가 물었다. “더 마실 수 있겠소?”

번쾌가 말했다. “신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겠습니까? 패공께서는 먼저 관중으로 들어와 함양을 평정한 뒤 패상에서 병사들을 노숙시키며 왕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오늘에 이르러 소인배의 말만 듣고 패공과 틈을 만드셨습니다. 신은 이 일로 천하가 분열되고 사람들이 왕을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항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패공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번쾌를 손짓으로 불러내어 그 자리를 떠났다. 군영을 벗어나자 패공은 수레를 그대로 남겨 둔 채 혼자 말에 올라타고 번쾌 등 네 사람은 걸어서 그 뒤를 따랐다. 패공은 산 아래 샛길을 따라 군영으로 돌아온 뒤 장량을 시켜 항우에게 사과하도록 하였다. 항우도 이것으로 마음이 흡족하여 패공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이날 번쾌가 군영으로 달려 들어가 항우를 꾸짖지 않았다면 패공은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어릴 때 부모님은 맞벌이였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도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낮에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집에 있는 책들을 꺼내 읽어보곤 했는데, 그 중 좋아했던 책 중에 하나가 고우영의 십팔사략이었다. 나는 그 때 그게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재미로 읽어보았다. 또한 어떤 부분들은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시리즈물은 우리 집에 있는 거의 유일한 만화책이며 아주 재미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외울 정도로 읽곤 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 반가웠다. 오자서며 백이숙제는 아주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했다. 게다가 문장문장을 읽을 때마다 고우영 작가가 연출해놓은 씬들이 눈앞을 휙휙 지나가 책이 쉽게 읽혔다. 사마천의 원본으로 낯익은 이야기들을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내가 이 책에서 살려야 하는 좋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풍부한 예시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여준다. 소설 등 이야기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등장 인물 소개이다. 이것은 간결하고 재미있다. 또한 이야기가 굴러가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면 그 다음 장면의 즐거운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사기는 그런 것을 오히려 사건의 진행을 통해 직접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훨씬 글이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같은 기분까지 준다. 이런 생동감은 반드시 살려야 할 사기의 특징이다.

둘째, 마지막 동시대의 여러 인물을 평가하되, 객관적인 기준보다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균형을 갖추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객관성을 잃어버린 역사를 대표적으로 삼국지를 들 수 있다. 어느 저자가 썼느냐에 따라 각 인물의 평가가 갈린다. 이것은 역사를 읽는 후대에게 있는 그대로의 것을 전달해주기 어려운 부분이다. 사마천의 사기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 평가에 대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발로 쓴다. 역사는 Fact의 연속이며 사건의 집합이다. 역사서를 읽는 것은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보는 것만 못하니, 반드시 책을 읽고 그 지역의 여행이 필요하다. 사마천도 이런 방식으로 사기를 저술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기의 저력을 뒷받침하는 가장 훌륭한 글쓰기 방식이다.

보완점 하나는 사기 책에 당시 대륙 지도가 필요하다. 사기 등은 한 권만 단독으로 읽어서는 그 뜻을 전부 알거나 기억하기 어렵다. 각 나라의 시대별 지도와 기세가 어떻게 퍼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해당 사례들의 현대적 적용을 각각 달아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진, 장의 진진의 사례나 공자의 제자들의 사례는 아래 풀이나 현대적 적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적지 않아서는 그대로 활용하기 어렵고 너무 길다. 그저 재미있는 전략 이야기일 뿐이다.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의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사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포악하고 잔인한 오기조차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재상 자리에 오른 전문의 이야기이다. 가끔 어렸을 적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학교가 즐거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친구도 적고 말도 많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가끔은 반에서 좀 찌질이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보거나 부당함에 대항하려 했던 적은 없었다. 그냥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십 년이 지나고 나서 그 때의 나를 위한 변명 같은 것을 스스로 해보곤 한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이랄까. 나는 전문의 이런 대답이 오기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자신도 지켜내 매우 통쾌했다. 그 때 내가 전문을 알았더라면, 그 때의 고민을 풀기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말했더라면, 조금 배짱이 두둑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일 갈 회사를 두려워 한다.

 

오기는 서하 태수가 되자 명성이 훨씬 높아졌다. 그런데 위나라에서는 재상 직책을 마련하고 전문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오기는 기분이 언짢아져 전문에게 말했다.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보고 싶은데 어떻소?”

이에 전문이 대답했다.

_좋지요.

오기가 물었다.

_삼군의 장군이 되어 병사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하고, 적국이 감히 우리를 도모하지 못하게 한 점에서 나를 당신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소?

전문이 대답했다.

_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_모든 관리를 다스리고 온 백성을 화합시키고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운 점에서는 나와 당신 중 누가 더 뛰어나오?

전문이 대답했다.

_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또다시 물었다.

_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들이 감히 동쪽으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는 나와 당신중에서 누가 낫소?

그러자 전문은 이번에도 이렇게 대답했다.

_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_이 세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전문이 대답했다.

_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백성은 그분을 믿지 못하고 잇소. 이런 때에 재상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아니면 내게 맡기겠소?

오기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_당신에게 맡기겠소.

전문이 말했다.

_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이오.

오기는 그제야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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