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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1일 11시 4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 고운기

 

鴨錄春深渚草鮮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白沙鷗鷺等閑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忽驚柔櫓一聲遠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날으네

何處漁舟客到烟 어느 곳 고깃밴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이 시는 일연 스님이 전진의 승려 순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이야기를 적은 후 덧붙여 쓴 찬 시이다. 시인이기도 한 고운기 교수는 이 시 한편으로 ‘삼국유사’와 일연에 매료되었고 이는 이후 20여년을 한결같이 ‘삼국유사’ 연구에 바치게 한 추동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보면 누군가의 시 한편, 글 한편이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에서 문장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삼국유사’ ‘일연’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삼국유사’ ‘길 위의 삼국유사’등 삼국유사와 관련된 책자들을 꾸준히 발간해온 저자는 ‘삼국유사’와 일연에 빠져 한 젊은 날의 결심들을 결국 그대로 이루어냈다.

집념의 사나이, 고운기. 그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1961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한 그는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고교 시절에는 필사본 시집을 직접 만들 만큼 문재를 가졌던 그는 1983, 대학교 3학년 말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후 <나는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등 세 권의 시집을 선보인 중견 시인이기도 한 그는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런데 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왜 역사서인 ‘삼국유사’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고운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제 전공은 문학이고 그 중에서도 고전문학이에요. 그 중에서도 고전시가를 했고, 고전 시가 중에서 향가였어요. 그 동안 향가에 대한 논문이 숱하게 나왔지만 향가에 대해 새롭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향가 14수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를 공부하게 됐어요. 삼국유사 전체를 이해하면 향가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부의 범위를 삼국유사 전체로 넓혔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궁금해진 것이 삼국유사라는 책보다 일연이라는 사람, 작가의 그 의도가 더 궁금했어요. 일연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생애를 살았고 그 생애 속에서 삼국유사가 어떻게 해서 나왔던가 하는 것 말이죠 “

 

시인의 감성으로 접근했던 향가 한편에 매료되고, 향가가 빼곡히 들어있는 삼국유사를 통해 일연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매료됨으로써 결국 그가 현재 얻은 것은 ‘삼국유사’라는 역사서의 전문가라는 타이틀이다.

 

그는 ‘삼국유사’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삼국유사를 통해 일연은 우리 민족의 자주의식을 드러내려고 했죠. 고려도 중국에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민중들에게 희미하게나마 민족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삼국유사> 20세기 한국의 선험적인 시대인 13세기의 시대적 상황으로 20세기의 민족적 위기 극복에 적잖은 거울이 되었습니다."

 

이런 ‘삼국유사’ 속 이야기를 <우리들이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에서 그만의 요리법으로 맛나게 풀어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일연 스님과 마치 허물 없는 친구가 된 듯 아웅다웅 하는 모습이 재미나다. 가령 그가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을 풀이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연에 대해 불평하는 장면들을 만나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 ‘삼국사기’의 본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해 놓고, 정작 거기 없는 내용을 추가해 놓은 것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 일연이 제시한 출전을 찾아가 확인해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만큼 그는 700여년을 사이에 두고 ‘삼국유사’의 작가인 노스님 일연에게 인간적인 이해와 존경,애정으로 가까이 다가서 있는 듯 하다.

 

우리 나라의 역사서를 접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고 어떤 것들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있어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바로 이점을 간파하고 주목 받아야 할 역사서 중 하나인 삼국유사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다양한 가설을 덧붙여 쉽고 재미난 해설서 한 권으로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그의 이러한 노력들은 해설자 안목에서 해석한, 갇힌 메시지가 아니라 독자에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선에서 이해를 돕고 있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로 인해 대중은 우리 고유의 역사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가치 있는 그의 20여년의 투자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들어가며

2. 우리가 이 책을 실제대로 올바로 알고 있는지, 그 세계에 한번쯤은 깊이 빠져 본 경험이 있는지, 문제는 거기 있다
4.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대표되는 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은 사대로 요약된다.

4. 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해석했던 ‘삼국사기’의 역사 기술은 이쯤(무인집권 시기) 와서 힘을 잃게 된다.
5.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

기이 (紀異)

17.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자 각고면려(刻苦勉勵)한 곰 부족에게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23.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24.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24.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다.

25. 무인정권이 내세웠던 ‘새로운 질서’라는 대의 명분에 상당한 힘이 실렸다…(중략)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35.
한반도에 건설된 나라들의 구성원이 딱히 어느 한 곳 출신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한민족이라 하지만 사실 여러 경로를 통해 여러 부족들이 한반도로 흘러 들어왔음을 보여 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
43.
난생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
56.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68. 무당의 탄생 내력을 담은 이야기는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와 사촌간처럼 가깝다. 그것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데에서 연유한다.

68. 신라 불교가 토착적인 신앙과 만나는 장면은 앞으로 자주 소개되겠지만, 그것이 곧 왕실과 국가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호국불교로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눈여겨볼 만하다.
69.
일연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초반부 곧 남해왕부터 지증왕까지에서 왕의 이름과 관련된 부분을 여기 한곳에 모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대체로 일연은 ‘삼국사기’를 인용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여기저기서 발췌하여 한 문장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
78.
하늘과 땅이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92. 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98.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
118.
일연이 박제상 이야기를 가져온 원본은 반드시 ‘삼국사기’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묘사가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박제상에게 초점을 맞추되, 보다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묘사를 추구했던 의도가 드러나 보인다
.
119.
전쟁은 적개심을 필요로 한다
.
120.
설화 문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유형 중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 소개가 되는 야래자 설화가 있다
.
121.
자칫 몰래한 사랑의 불륜성 시비에 휘말릴 이런 이야기를 일연은 서슴없이 ‘삼국유사’안에 거둬들이고 있다. 그것은 다시 ‘기이’편의 ‘무왕’조와 ‘후백제와 견훤’조에서 거듭 반복된다
.
132.
옛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보다는 귀신과 조금 더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귀신을 항상 같이 지내는 존재로 여기며 위하기도 했다가, 어르고 달래며 하인처럼 부리기도 했다
.
134.
대체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닌 내적 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조화(造化).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귀신을 마음대로 부린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쩌면 귀신의 세계를 한 손에 움켜쥔 듯한 이 이야기(도화녀와 비형랑)가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
140.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
144.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 데서 더욱 커진다
.
150.
신라의 경우, 비록 수용이 늦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철저히 자기화 되어 정착되었으므로, 생경한 외래 사조에 휘둘리지 않았다.

151. (원광이 세운 화랑의 세속오계)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 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것을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160.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
184. (
죽음을 앞두고 화장을 명하며 쓴 문무왕의 조서)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꼴배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방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만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228.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는 말은 원문에서 ‘중구삭금’이라 표현되어 있다. ‘중구’란 곧 오늘날의 여론, 또는 민중의 소리라고나 할까?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신물의 가공할 위세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229.
정치란 예나 이제나 같은 모양이고, 그것이 핍진한 현실임을 누군들 부인하랴
.
241.
월명사의 죽은 누이를 위한 ‘제망매가’

생사의 갈림길 /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 “나는 갑니다” 말도 / 못하고서 갔는가 /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 한가지에 나고 / 가는 곳은 모르겠네 / ,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 도 닦아 기다리리
253.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인 것이 쿠테타다.
269.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대체로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
270.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옳은 충고란 쇠귀에 경읽기도 아니다.

272. 대개 ‘기이’편에서 조의 제목은 왕,나라이름,사건을 중심으로 붙여진다. 그런데 ‘이른 눈’이라는 제목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일찍 눈이 내렸다는 제재도 묶은 것이다. 게다가 한 왕대의 일이 아니라 여러 왕대에 걸쳐있다. 같은 제재를 여러 군데서 찾아 한 자리에 묶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메시지를 표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객관적 사실만 나열시켜 놓고, 읽는 이에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일종의 상징적 기술임을 알 수 있다.
284.
일연은 역사적으로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
287.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 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 졌을 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
288.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
293.
배를 타고 가던 일행이 풍랑을 만나자, 일종의 제비뽑기로 희생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요나 이야기와 닮았다. 물론 배를 타는 계기는 다르지만, 배를 탄 본디 목적과 다른 행로를 밟게 된 이 사람이 결국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비슷하다
.
297.
신라 멸망의 상징으로 포석정 연회를 든다. 마치 박정희의 마지막 만찬처럼
.
302.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교체라면, 어느 개인의 사유물처럼 정권을 휘둘러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것에 비길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 왕조 사회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백성의 힘이다
.
303.
조선조에 들어 김부식은 사대주의에서도 민족적 주체성에서도 모두 공격을 받았다. 완벽한 중국 중심에 빠져든 한편의 유학자들은 그를 얼치기 사대주의자 정도로 보았고, 실학의 바탕에서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보려 했던 다른 한편의 유학자들은 민족의 주체성을 모르는 지식인 정도로 보았다
.
304.
일연은 오히려 올바른 김부식 팬이었다. 좋은 부분을 인용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엿보이고, 좋지 않은 부분을 놓고 비판한다거나 굳이 자기관점에서 해석하지도 않았다.

304. 자신이 비록 승려지만, 불교의 말폐를 지적하는 것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이면서 불교가 살아날 길이기도 했다.
307.
일연의 수고와 노력으로 그나마 우리가 알게 되는 삼국시대의 살아 있는 역사를 고마워하면서도 아쉬움은 분명 있다. 그것은 일연이 삼국의 다른 두 축을 이루는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에 어찌 그다지 인색했는가다. 다만 시조 왕의 사적을 잠깐 언급한 다음, 나머지는 신라에 비해 옹색하기 그지 없다.

307. 고구려의 전성기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중국에 떳떳한 적이 드물었으며, 일본의 초기 왕실이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상정했을 때 그 아쉬움은 커진다.
327.
맹랑하기 그지 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
337.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나 전파되기 마련이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야기가 서로 비슷한 경우마저 있기도 하다
.

흥법 (興法)

392-393.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을 찬미하는 일연의 시 한 수)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나르네 / 어느 곳 고깃밴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394. 순례자의 길은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402. 일연은 삼국의 역사에서 신라를 중심에 두었다. 왜 그랬는지 그 기준은 ‘삼국사기’와 비슷할 터이나, 한가지 추가한다면 불교역사주의적 의식이 작용했다는 점도 앞서 지적했다. 신라의 불교는 신라 한 나라에만 그치지 않는 한국 불교의 화두다. 한국의 불교라는 강물은 신라에서 물꼬를 터서 흘러 나왔다. 일연은 그 점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04-405 (‘촉향분예불결사문’에서 인용한 순교의 흰 꽃 이차돈)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 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내 뜻이 남을 이롭게 하는 데 있는데, 어찌 죄없는 이를 죽이리요. 네가 비록 공덕을 쌓고자 하나 내가 죄를 피하는 게 낫지.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솟구칠 마음을 가지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도 파도를 헤쳐 나갈 기세를 품는다 했지.

411. (이차돈의 죽음을 노래한 일연의 시)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탑상 (塔像)
417. 황룡사는 예 경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신라의 한 가운데였고, 지리상으로만이 아닌, 마음 속에서는 신라인의 상상하는 세계 한 가운데였다. 그러기에 경주를 여행하는 사람은 황룡사 터에 한 번쯤 서서 그 분지에 지상낙원을 이루고 살았던 서라벌 천 년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444.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54.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의지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닐까.
456.
한 시인이 쓴 ‘절’

내 마음 오늘 / 절에 가서 절을 한다. /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 온기가 없어 차가운 /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 덧없음만 항상 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 내 마음 오늘 / 절하며 간다.
476. (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하는 말에서)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 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496.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
504.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邯鄲之夢)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끊는 솥단지 앞에서 따듯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사는 온갖 영고성쇠(榮枯盛衰)가 한솥밥 끊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507. (조신의 꿈에서, 연을 맺고 40년을 산 아내의 마지막 말)

“고운 얼굴 아름다운 미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芝蘭)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꼴입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 걸림돌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쌓일 뿐, 지난날의 기쁨은 적이 근심과 고통으로 자리를 내주었군요… (중략) 그러나 가고 말고 사람의 뜻대로 안 될 일이요. 헤어짐과 만남 또한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쯤에서 헤어지자 합니다.

508. (인각사 앞 일연의 시비)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의해 (義解)

513. 기록자가 자기 시대의 이념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 주지 못한 점, ‘삼국사기’는 거기서도 비판 받을 여지가 있다.

513. 불교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다. 무릇 2천 년을 바라보는 오랜 역사에다, 거기 누벼진 사연이 많기도 많아, 불교야말로 이성으로만 받아들이는 어떤 형식으로서가 아닌 우리들 심성 깊숙이 내린 튼튼한 뿌리다.
515. (
원광) 본디 유학과 도학을 배웠으나 좀더 깊은 공부를 위해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쪽 진나라에 왔다가 불교를 만난다. “평소 세상의 경전에는 익숙해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불교 공부를 하자 도리어 썩은 풀 같았다. 헛되이 유교를 공부하는 것이 실로 생애의 두려움으로 다가와” 드디어 출가한다
.
518. (
원광의 꿈에 나타나 신이 하는 말
)
자리(自利)만 행하고 이타(利他)의 공이 없으면, 지금에는 높은 이름을 떨치지 못할 것이요, 나중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오
.
530.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
537.
화엄경에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는 대목을 가지고 무애(無碍)라 이름 짓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시켰다.

538. 고고한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였을까?
541. (
‘말을 못하던 사복’조에 나오는 원효와 사복의 대화
)
원효더러 보살수계를 해달라 했다. 시신 앞에서 축원하였다.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사복이 “글이 번거롭군요”하더니, 고쳐서 말했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
551. (의상과 당나라에 가던 길을 돌아서며 원효가 하는 말)

지난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라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551.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 원효

567.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하다” ? 의상의 저술에 대한 일연의 평
572. (‘인도로 간 여러 스님들’ 조를 읽고 부르는 순례자의 노래)

용문(龍門)엔 폭포조차 끊기고 말았으며 /정구(井口)에 뱀이 서린 듯 얼음이 얼었다

불을 들고 땅 끝에 올라 노래부르리 /어떻게 저 파밀고원 넘어 가리오 573p


신주 (神呪)
604.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놀라워 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동이라 했다.

604. 더 극적이어서 가치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평범한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감통 (感通)

633. (‘광덕과 엄장’조에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는 우리와 닮아 있다.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644. (김현과 처녀 호랑이와의 사랑에 대한 일연의 시)

꽃다운 잎에선 대신 죽겠노라 한마디

의리의 소중함 몇 가지로 들어 죽음도 가벼이

수풀 아래서 몸을 내놓았네, 떨어지는 꽃처럼.

656.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 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670.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

피은 (避隱)

672. 세상과의 절연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에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그런 길을 가는 사람들에겐 뭔가 곡절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673. 불교적 인식의 숨음과 드러남을 이해하자면 보다 복잡한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686.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686. (‘연회가 이름을 감추다.그리고 문수점’조에 붙인 일연의 찬)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지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효선 (孝善)
690. 어머니에 대한 일연의 향념은 신앙 그 자체이다.
699.
복을 빌어 받되 받은 다음에는 제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704. 일연이 삼국유사에 신라 향가 14수를 실어놓은 것에 대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우리 고대 가요 중에 그 정형성을 최초로 획득했으며 지극히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한 이 시가 장르에 대해, 비록 편린으로나마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 오직 ‘삼국유사’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향가 하나에 머물지 않고 10세기 이전의 시가에 대해서 그렇다. 책 한 권에 실린 단 14수가 천 년의 시가사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711. 향가의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 파랑가’
열어 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일연, 혼미 속의 출구
725. 순수 불교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일연의 태도에서 우리는 괴승의 요소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점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선각자적 태도를 발견한다.
728.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
733.
이른바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선승의 눈에 비친 시대상은 한마디로 파탄과 혼란 그 자체였다.. (중략) 새롭게 서야 할 질서, 그것을 일연은 불교 안에서부터 보았던 것은 아닐까?..(중략)..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하여야 하는 일이다
.
734.
본질 앞에서 방편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
741.
일연은 종교와 문학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 승려였다
.

 

 

3. 내가 저자라면

국사책보고 놀란 가슴 삼국유사보고 놀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두꺼운 분량에 한번 놀랐다. 또 역사 관련 책이라는 생각에 학창시절 국사책처럼 줄줄줄 왕들의 연대기가 쏟아지고 그 속에서 헤매는 게 아닌가 싶어 약간의 두려움까지 가졌다. 게다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부끄럽게도 여태껏 중국의 ‘삼국지’는 두 차례나 읽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역사서 어느 것 하나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뒤늦게 이를 접하는 마음이 무척 부끄럽기도 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놀라움, 두려움, 부끄러운 감정들과 함께 익히 들어온 유명 역사서로서의 기대감까지 뒤섞여 집어 들기 전부터 무척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역사 초보의 콤플렉스 극복서

저자 고운기가 풀어낸 삼국유사는 읽기 전의 우려들을 깨끗이 날려버릴 만큼 어떤 소설 속 이야기보다 흥미진진했으며 감동과 재치가 넘쳤다. 책장을 덮어야 한다는 일말의 아쉬움까지 남기면서 말이다. , 그리스 로마 신화, 해리포터 못지 않은 몽환적이고도 달콤하며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이 책은 반드시 한번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이 책이 매력적일 수 있었던 힘은 ‘삼국유사’를 20여년간 연구해 온 고운기 교수의 땀방울 덕이지 않나 싶다. 원전인 ‘삼국유사’ 140여편의 방대한 이야기를 때로는 절을 달리해 가며 40개 항목으로 재 분류 해 전체 흐름에 맞게 자연스럽게 재 구성한 것은 아주 적절해 보이며 이야기 전달에 효율적이었다.

‘삼국유사’ 속 이름만 익숙했던 왕들의 이야기는 저자의 독특한 이야기 도입과 함께 인물과 상황이 재현 되어 생생함과 실재감을 안겨준다. 또한 ‘삼국사기’와의 꼼꼼한 비교 및 다양한 사료들을 그러모아 성실하게 기술한 점은 이 책을 탄탄한 학문적 성과로까지 연결시키며 신뢰감을 더해 준다. 이렇게나 매력적인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가 학창 시절엔 암기만 해야 하는 딱딱한 교과목의 하나로 밖에 의미를 가질 수 없었는지 다시금 우리 나라 교육 방식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들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의 경우 특히 삼국유사속의 기이편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 나선 이거 다 뻥 아니야! 말이 돼?’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 소재와 전개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는 저자 고운기 교수의 충실한 해설과 배경 설명을 곁들여 읽음으로써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이해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얘기한 대로 사회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모든 종류의 마술을 그에게 바쳐버리지요.”로서 함께 이해 되는 것이다.

즉 ‘삼국유사’ 속 신화 혹은 설화가 하나의 나라에 적용이 되면 어떤 의미와 위엄, 가치를 갖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현대의 복잡다단하고 너무 빠르게 변하는 변화 속에선 단지 ‘나’와 내 눈 앞에 현존하는 ‘실재’에 대한 생각으로 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다. 하지만 삼국유사를 읽음으로써 뒤로 한 발짝 물러서 ‘한국인’ 으로서의 뿌리 혹은 정체성에 대한 자각, 삶을 한걸음 떨어져 보게 되는 현재 이전의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왜 ‘삼국유사’를 읽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각자 스스로 얻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원본 그대로였다면 시도도 못해볼 어려운 고서를 마음과 머리로 가뿐히 이해할 수 있도록 꼼꼼한 해석과 적절한 설명으로 ‘삼국유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달콤하게 살아 보자!

한편 고조선 시대로부터 반만년이 지난 현재의 후손인 내가 저자가 살려놓은 ‘삼국유사’를 읽어 나가는 기분은 경이로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인생의 무상을 느끼게도 한 시간들이었다. 그 시기에도 현재와 다를 바 없는 사랑, 배신, 탐욕, 질투, 야망, 충성, 복수, 후회, 고독, 잔혹성 등 인간의 모든 본성들이 여지없이 나타나는데 반만년 역사에서는 그들도 결국 ‘찰나’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현재가 전부인 것처럼 힘들게도 사는 우리도 먼 훗날에는 우리 선조들처럼 ‘찰나’의 모습으로 묻혀갈 것이다.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면서 인생 살아감에 있어 너무 사사로운 것에 연연해 하지 말자라는 비움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이렇게 주어진 순간을 아쉽지만 달콤하고 또 진실되게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이 들기도 한다.


 

시집이자 여행서’로서의 가치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삼국유사’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역과 장소들의 현재를 사진과 DVD부록으로 두루 담아 내용의 충실성을 더한 것이다. 이 정도의 분량과 자료를 만들기 위해 저자와 사진 작가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에 정성을 쏟았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분량이 많은 만큼 세심한 편집과 구성으로 최선을 다한 정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 책은 단순 역사 해설서에 그치지 않고 틈틈이 옆에 두고 한 토막씩 계속 들춰보아도 좋을 만큼 시집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삼국유사’ 속 아름다운 옛 향가를 충실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디론가 떠날 곳을 찾고 있다면 이 책에 실린 생생한 사진 중 맘에 드는 역사적 장소를 골라 알찬 여행을 계획해도 좋을 훌륭한 여행서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
1. ‘
삼국유사140편중 선별된 1/3만 다루고 있어 삼국유사내용에 목마른 독자에게는 좀 아쉬울 수 있다. 나머지 2/3에 대해서도 다루어 주기를 바란다면 저자는 또 다시 20년을 바쳐야 할까
?

2. 책의 부피에 대한 고려도 있었겠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왠지 저자 고운기 교수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맺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 특히 책의 말미에는 다음 장이 찢어지고 사라진 것처럼 불쑥 끝나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물론 이는 편집상의 문제일 것이다.

3. 역사서를 해설하는 만큼 연대기를 충실히 구성해 첨부해 놓았더라면 싶다. 책을 읽으며 나오는 수많은 년도와 왕들의 이름을 보며 선,후를 헤아리는데 많은 공력이 들게 된다. 잘 정리된 연대기표 한 장만 있었다면 그런 수고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4. ‘삼국유사’의 특성상 불교 용어가 굉장히 많아 사전을 따라 찾아보며 읽어봐야 하는 약간의 부담이 있다.(특히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간단하게나마 불교용어를 정리해서 뒤쪽에 실어 주었다면 책의 후반부의 불교 관련 이야기들을 더욱 손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덮으며 13세기 말 몽골 침입의 혼란한 시기에도 민족적 자존감과 확립 및 위로라는 대의를 가지고 열성을 다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의 집념과 열정에, 또 시대를 초월한 20세기에 그 ‘삼국유사’의 가치를 알아보고 선택, 폭넓은 고증 작업을 거쳐 우리에게 의미를 되살려 준 저자 고운기 교수에게 존경을 듬뿍 담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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