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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8일 16시 4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 고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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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운기는 1961 12 15일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에서 국문학 석/박사를 마쳤다. 1999년에는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문학부에 방문 연구원으로 3,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연구원 2년의 기간을 거쳐 2007년에 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객원교수로 1년 재직하고,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학생이었던,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을 하게 된다. 그 동안 삼국유사 관련 연구서로 <일연을 묻는다>,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삼국사기 열전>을 냈다.

 

그는 평생의 작업으로 스토리텔링 삼국유사시리즈로 15권의 책을 기획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 문화 연구는 많은 데 비해 정작 텍스트로 연구한 경우는 드물다며 삼국유사에 천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뛰어난 현장감각으로 길 위의 책이라고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높이 평가하는 저자는 그도 역시 일연과 같이 삼국유사의 현장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고 생생한 모습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책에 있는 수많은 사진들과 사진의 설명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그는 주어진 자료에만 얽매이지 않고 역사의 왜곡이 아닌- 상상력의 발휘를 통해 고전이 재탄생 되기를 바란다.

 

<저자 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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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년에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출가를 한 일연은 현장감각과 정치감각, 균형감각 등 세 가지 감각이 탁월한 역사가였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기 위해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애썼다. 이런 현장감각은 지배층뿐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담아냈다. 일연이 살았던 13세기는 몽고의 침략 등으로 혼란스럽고 백성들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때 일연은 위안의 읽을거리로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곳곳에는 단군신화를 비롯한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권력에 맞선 창조적 삶의 지속으로서의 정치-를 그렸다. 또한 일연은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이 극심히 교차한 신라 사회를 바라보면서 경우에 따라 불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일연의 균형감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에서 만난 두 저자

이 책에서 만난 두 사람, 일연과 고운기는 왠지 닮은 구석이 많다. 고집스럽게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책을 써 내려 간점, 직접 발로 뛰며 사료를 수집하고 현장검증을 했던 일연과 삼국유사에 나오는 역사적 현장을 직접 다니며 기록의 조각을 맞추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고운기. 일연의 삼국사기에 대한 비판의식과 애국심, 그리고 권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상적 사회를 꿈꾸는 그의 바람이 삼국유사를 세상에 남기게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만난 여자레슬러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본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이야기 등 왠지 <삼국유사>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을 것만 같은 소재를 가지고 와서 아주 매끄럽게 삼국유사와 연결시키고 있는 고운기 저자를 보며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경험과 수백년 전 이땅에서 살아간 과거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신 뿐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그 스토리에 빠져들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저자 고운기가 앞으로 만들어 낼 스토리텔링 삼국유사시리즈가 어떤 모습으로 삼국유사를 재해석 해서 나타날지 굉장히 기대된다.

 

<참고자료>

1.     네이버 인물검색

2.     [저자와 차한잔] – 동아일보 http://tln.kr/59kjf

3.     Ritachang.tistory.com/tag/고운기

4.     Blog.daum.net/bookmorning/43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차이점)

5.     한양대 문화 컨텐츠학과 블로그(고운기 교수님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hyucontents?Redirect=Log&logNo=125070171

6.     일연사진출처

http://www2.mhj21.com/sub_read.html?uid=18775&section=sc120

~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차이점

 

 

삼국사기

삼국유사

저 자

 

고려 17대 왕 인종의 지시에 의해 김부식을 중심으로 정부에서 편찬한 사서(정사)

일연

개인 편찬 사서

(야사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 마치 폄하하는 것 같아서)

저술시기

 

1145(인종 23) 무렵

고려 중기로 귀족사회의 전성기

1285년경. 고려 충렬 왕(7~9)

원나라(몽고) 간섭기 

규 모

50 9 - 본기·지·표·열전으로 구성됨

5 - 9 144항목

배경 및

편찬동기

 

"사대부가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 중국 사서는 우리나라 사실을 간략히 적었고, 《고기(古記)》는 내용이 졸렬하므로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규범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고 있다“

 

민심수습, 왕권강화, 유교정치 재확립 

고려후기 무신의 난(1165년경), 몽고(1231.원나라)의 침략(30년 전쟁)등 억압에 의한 문화적 위기의식에서 당시의 기록과 역사를 정리, 혼란한 사회의 자각과 반성을 위하여.

 

단군의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는 한국고대사의 체계를 세우고자 저술

범 위

 

철저하게 고구려, 신라, 백제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물론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 조선, 부여, 가야, 발해 등 주변 사까지 기록

기술

방식

 

왕조를 중심으로 시대순으로 기술한 삼국(고구려, 백제,신라)의 역사서(정사)

본기, 열전, 잡지, 열전 등으로 구분하는 정사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 연대나 인물보다 사건에 중점을 두어 그 원인,경과, 결과 등의 관계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

(사건마다의 발단과 결과를 실증적으로 서술)

사 관

보수적 유교사관 - 국가에서 펴낸 관찬 사서로서 합리적인 유교적 관점에서 쓰여졌다.

자주적, 불교중심적 사관  

특 징

삼국의 역사를 신라중심으로 기술.

 

검증을 거치지 않은 신화적인 내용들은 가급적 배제되었다.

왕명에 의해(인종) 휘하 문관들과 함께 작성했기 때문에 체재나 문장이 정제됨.

 

문화적 사대주의라고 혹평 받기도 하지만 사실(史實) 위주로 편찬 한다는 중국의 역사편찬 방법에 충실 하여 고대의 역사서에 흔히 거론되고 있는 비합리성· 비현실성이 배제 되고 대신 유교적 윤리관을 바탕으로 합리성· 객관성을 중시

 

삼한(마한,변한, 진한)과 가야, 발해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고조선, 신라, 불교중심 서술

역사와 설화가 혼재된 기록물

 

일연(스님) 혼자 작성했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비해 체재나 문장은 미흡함.  

삼국사기에 비해 역사적 사실의 정확도가 부분적으로 낮음.

 

삼국사기가 빠뜨린 내용들을 소중하게 담아 소개 우리 역사의 시조인 단군과 고조선을 처음 기술, 기자조선, 위만 조선, 가락국 소개, 향가14를 실어 고대 시가의 모습을 전해주는 계기

 

일연이 나눈 제목만으로 140가지에 가까운 이야기가 실려있다.

 

승려의 신분을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삼국시대 그 밑바닥의 정서를 전해주고 있다.

 

설화등 신비롭고 기이한 이야기가 많음

 

삼국역사 전반에 관한 사서로 편찬 된 것이 아니다

삼국의 불교사 전반을 포함하지 못했다.

 

내 용

삼국시대부터 다룬 왕조 중심의 정사

 

(1) 본기(28) : 정치·천재지변·전쟁·외

     교등 4 항으로 분류 삼국의 각 나라

     역대 왕들의 재위 기간 동안 있었던 

    일 들를 기록

 

(2) 연표(3) : 삼국의 연대와 중국의

     연대를 대조 하는 연표

 

(3) 잡지 : 삼국의 제사와 음악,복장,

     레나 말 등의 탈것 집 등에 대해 기

     . 신라제도의 해설에 치중하였고,

     특히 지리지에 가장 큰 비중

 

(4) 열전(10) : 삼국의 위국충절 인물

     (88)나열

 

 

 

단군, 고조선등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부터 서술, 설화중심 삼국(고구려,신라, 백제)의 이야기와 불교문화 서술

 

(1)왕가 : 중국과 신라, 고려(고구려를 뜻함),

백제, 가락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견훤의 후고구려/후백제도 수록

 

(2)기이(신기한 이야기) : 2개로 구분되어 있

    .

 (36)-여러 고대국가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와 신화, 전설, 신앙등에 관

     한 이야기의 이야기 수록.

 (25)–통일신라시대 문무왕 이후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까지의 신라왕조 기사와 백제, 후백제, 가락국에 관한 이야기

 

(3) 흥법(7) : 삼국에 전래되는 불교의 과정

     과 융성 그리고 그것에 공헌한 인물과 고

     승들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

(4) 탑상(30) :탑과 불상, 범종, 사찰 등의

     유래

(5) 의해(14) : 승려들의 행적과 설화

(6) 신주 : 승려들이 병을 치유하거나 귀신을

     아내는 등 기이한 술법을 행한 이야기로

     구성

(7) 감통(10) : 불교와 영적 감응을 받은 일

     반인들의 경험을 다룬 이야기 

(8) 피은(10) : 뛰어난 승려들과 은둔승려들

     의 이야기

(9) 효선(5) : 불교적 선행과 효행을 실천한 인물들의 미담이 기록 되 있다.

 

가 치

우리말 고대사의 큰 줄기를 오늘날에 전함.

 

한국 고대사의 소중한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이 인정 됨.

 

지리지(地理志)는 옛말 연구에 도움이 되고, 열전은 고대 문학의 윤곽을 알아보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각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가 오늘날 각지에서 발굴,출토되는 유적이나 유물들에 의해서 속속 증명되고 있음.

 

 

단군을 나라의 시조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하고 반만년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고조선의 존재를 명확히 해주는 중요한 기록

 

삼국 외에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 조선 등에 대한 기록(단군과 고조선을 이해하는데 결정적 역할)

 

가락국(가야)에 대한 기록

 

향가 14 수가 실려 있는 등 우리 고대 문학사의 실증(實證)에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우리 고대 가요 중에 그 정형성을 최초로 획득. 천 년의 시가 사를 떠 받치고 있다. 이 자료가 없었다면 우리 시가의 한 시대를 송두리째 잃어 버리고 논의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을 것 이다.

 

오늘날 한국 고대의 역사, 지리, 문학, 종교,언어, 민속, 고고학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

 

단군설화를 비롯하여 고대 신화와 설화의 보고.

 

불교의 유물 유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데 필요한 기본 문헌. 불교의 미술 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 된 문헌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할 역사책

 

두 책의

공통점

책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고려 이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신라에 비해 고구려 백제에 대한 자료는 매우 빈약하다.

 

 

 

2. 내가 저자라면

1)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

- 아름다운 사진들 : 저자가 도입부분에서도 스스로 만족했듯이 각각의 사연이 있는 사진들과 그에 대한 해석들은 왠지 역사의 현장에 내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읽는 내내 굉장히 설레었다.

 

- 이야기와 해석 : ‘들어가며에서 저자가 밝힌대로 이 책은 삼국유사라는 책의 본문을 읽으며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야기의 시대적 상황 등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을 해 주고 있어서, 이런 방식은 삼국유사를 처음 읽는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야기 시작 : 이야기와 관련한 필자 개인의 경험담을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경험담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연결이 되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럽다. 조금의 연관성-예를 들면, 세오녀 이야기에서 히미코라는 이름의 레슬러와 전설의 히미코-을 이야기 소재로 쓰는 능력 등은 때로 감탄을 자아낸다.

 

-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과 판단을 솔직하게 표현 : ‘오늘날의 민속학자가 따로 없다’,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첫발치고는 통도 크다등 글의 중간에 드러나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을 표현한 것을 보면 왠지 인간미가 느껴져서 재미있다. 그 부분만 보면 역사해설서가 아니라 한편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문답식 : 필자는 전달하고 하는 메시지를 문답식으로 많이 이끌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뒤에 일연이 붓끝에 왜 힘을 얻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얘기하고 있다. 이는 글쓴이의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정확한 정보전달의 노력 : ‘늦은 나이에 출가를 했다거나,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많은 공을 세웠다는 기본 줄거리는 같되, 이렇듯 세세한 부분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일연은 이런 점 때문에 두 기록을 나란히 인용하면서, 분명히 정할 수 없어 두 가지를 다 둔다고 하였다. p517’ 이런 부분에서 일연이 최대한 정학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이는 책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2)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

- 삼국유사 원문에 대한 아쉬움 : 이 책도 삼국유사에 들어가 있는 이야기들을 쓰고 그에 대한 해석을 한 책이다. 특히 저자 고운기의 선택에 따라 삼국유사를 설명하고 있어서, 생략된 부분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왠지 삼국유사 원문을 한 번 읽어보고(물론 읽어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삼국유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 더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 인문학적 소양과 정말 거리가 멀었던 나의 초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언어영역과 역사를 정말 싫어했었는데, 이번에 삼국유사를 읽으며 그 당시 문제에 나왔던 여러 가지 문학작품과 역사적 인물들을 다시 보니 무척 반갑고 새로웠다. 이런 책을 한 권쯤은 읽어보고 공부를 했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더불어 성적도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 신라에 편향된 삼국 이야기 : 아무래도 책은 지은이의 관심사를 반영하게 마련이지만, 일연의 관심사가 너무 뚜렷하게 신라나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편중되어 있어서 삼국중에 백제나 고구려 개인적으로는 특히 고구려를 좀 알고 싶었는데- 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3) 내가 저자라면

<내가 일연이라면>

삼국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골고루 할 수는 없겠지만,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자료들도 좀 더 수집하기 위해 시간을 썼을 것 같다. 특히, 고구려나 백제가 불교를 먼저 받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라만큼 꽃 피울 수 없었는지에 대한, 시대적 배경이나 각 나라의 특징들을 분석해서 썼을 것 같다. 아마 분석해 보면, 그 안에 고구려, 백제 각 나라의 문화, 풍습, 사회적 규율 등 종교와 밀접한-그리고 일상생활과도 밀접한- 다양하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고운기라면>

지금은 40개의 이야기를 나열해 놓았다. 삼국유사 전체 조목 수 140여개를 <삼국유사>의 순서대로 40개의 제목으로 분류하여 기술하였다. 대부분 원문과 같은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성질의 것끼리 묶느라 순서를 무시한 부분도 있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기이편의 경우에는 비슷한 성격의 글끼리 조금 더 세분화 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들을 엮고 순서를 바꾸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왕가편은 빠뜨리지 않고 꼭 집어 넣고 싶다.

현재 목차

바꾼 목차

[기이(紀異)]

1.이 땅의 첫 나라

2.고구려와 북방계

3.신라와 남방계

4.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5.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6.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7.밤에 찾아오는 손님

8.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9.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10.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11.권력의 끝

12.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13.첫 성전환증 환자

14.왕이 되는 자

15.나라가 망하는 징조

16.지는 해 뜨는 해

17.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18.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19.견훤, 비운의 영웅

20.신비의 왕조, 가야

 

[흥법]

21.불교로 보는 역사

22.순교의 흰 꽃 이차돈

 

[탑상]

23.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24.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25.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26.노힐부득과 달달박박

27.낙산사의 힘

 

[의해]

28.운문사 이야기

29.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30.의상, 화엄의 마루

31.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32.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신주]

33.밀교의 한 자락

 

[감통]

34.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35.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36.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피은]

37.숨어 사는 이의 멋

 

[효선]

38.불교가 보는 효도

 

39.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40.일연, 혼미 속의 출구

[왕가]

 

[기이(紀異)]

<삼국시대의 나라이야기>

1.이 땅의 첫 나라

2.고구려와 북방계

3.신라와 남방계

6.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8.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17.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20.신비의 왕조, 가야

 

<삼국시대의 흥망성쇠>

4.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10.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11.권력의 끝

14.왕이 되는 자

15.나라가 망하는 징조

16.지는 해 뜨는 해

 

<삼국시대의 인물이야기>

5.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7.밤에 찾아오는 손님

9.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12.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13.첫 성전환증 환자

18.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19.견훤, 비운의 영웅

 

[흥법]

21.불교로 보는 역사

22.순교의 흰 꽃 이차돈

 

[탑상]

23.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24.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25.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26.노힐부득과 달달박박

27.낙산사의 힘

 

[의해]

28.운문사 이야기

29.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30.의상, 화엄의 마루

31.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32.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신주]

33.밀교의 한 자락

 

[감통]

34.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35.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36.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피은]

37.숨어 사는 이의 멋

 

[효선]

38.불교가 보는 효도

 

39.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40.일연, 혼미 속의 출구

 

 

3. 나를 무찔러 드는 글귀

<들어가며>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의 사에 있다는 점.

문자에 대한 자신감, 이는 저술을 감발시키는 촉진제다. p3

한문이라는 문자 수단의 이입은 그 문화를 송두리째 가지고 들어왔고, 특히 중국에서 만들어져 하나의 전범을 이루고 있었던 사마천의 <사기>는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새로운 분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대표되는 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은 사대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념의 틀은 우리에게서 다시 만들어져야 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p4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선배들이야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고 한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 주는 데 반해,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 중심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신라 말부터 유입된 선종은 사고의 혁신을 불교 안에서 먼저 이루어 사회로 퍼져나가게 했다. p5

 

[기이(紀異)]

1.이 땅의 첫 나라(보급판에서 발췌해서 페이지가 다를 수 있음)

1) 뿌리를 찾았던 첫 세대의 상징

처음 기준은 누구의 생각인가? 그것이 맨 처음이 되어야 한다고 본 그 관점과 의식은 어떻게 생겨났던가? 설령 처음 이야기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실로는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다른 부분부터 시작했다가 뒤 어디쯤에서 슬며시 끼어 넣을 수도 있다. p34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늘 큰 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3세기의 일연 같은 이는 그 점을 간파했던 사람이다. p35

 

2) 세 부분으로 된 고조선

짤막한 기사지만 나라가 세워진 시기, 도읍지, 첫 왕 등 주요 사항이 모두 들어 있다. p36

무슨 이유로 사람 사는 세상에 내려오고 싶어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추구한 궁극의 이상은 한마디로 잘 나타나 있다.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곧 홍익인간이다. p37

여기서 곰과 호랑이가 단순한 동물이 아닌, 그것들로 상징되는 어느 부족이라는 인류학적 해석이 덧붙여진다.

단군은 그렇듯 현명한 곰 부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이 땅의 첫 왕이 되었다. p39

사실 건국 연대보다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이 땅에 세워진 첫 나라의 이름이요. 이후 우리 역사에서 이만큼 자주 국호로 애용된 이름이 없다. p40

 

3)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대개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거기에 책 전체의 집필 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는 그러한 상징이다.

단군신화는 건국 신화다. 이 땅에서 첫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처음 환웅이 신단수에 내려왔을 때 그곳에는 이미 사람 사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묶어 나라를 이룩하고 다스리는 제도가 없었을 뿐이다.

è  이것은 기독교의 창세기도 왠지 마찬가지일 것 같다.

건국이냐 창세냐 구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네 관념의 소산이고, 그것은 특히 서양식 사고방식 아래서 그렇다. 지난 날 지구가 빙하기를 통해 몇 차례 뒤집어졌음은 이미 과학적 상식에 속한다. 단순히 현재 살고 있는 인류만을 기준으로 창세를 말하기가 조금 우습지 않은가? p42

 

4) 조선은 어디로 갔을까

일연의 단군에 대한 관심은 신화로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단군조선. 위만조선 등의 존재를 무시하고서, 이 땅에서 생겨나고 없어진 나라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p43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보여 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p44

 

5) 13세기의 시대적 분위기

이 시기에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 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한다.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p45

 

6) 위만조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실 지금까지 위만조선조는 <기이> 편의 두 번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마냥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했다.

약간의 추측이 가능하다면 일연은,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 아래,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의 후계로 여겼으리라 생각한다. p48

 

7)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

그런데 두 조를 잇대어 놓으니 단군조선 부분이 보완되면서, 조선이라는 국호의 공통성 아래 어떤 끈이 분명해 보인다.

중국 쪽 역사서에서 조선에 관한 기사를 모두 찾아보고, 그것을 일연 나름대로 정리해 크게 두 개의 제목을 써서 정리한 것인데, 일관성과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조와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1

 

2.     고구려와 북방계(보급판에서 발췌해서 페이지가 다를 수 있음)

1)     한반도의 전국시대와 삼국의 정립

분명 삼국으로 정립되기 전에 비록 왕권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나, 한 단위를 이루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서고 지고 했는데 말이다. p53

 

2)     북방계의 시작, 부여

3)     동명왕 기사, 사기와 유사의 차이점.

4)     동명성왕의 위대한 탄생

난생 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p59

역시 <삼국사기>에서 인용하는 두 가지 삽화다. 앞선 삽화가 주몽의 뛰어난 지혜를 말하고 있다면, 뒤는 하늘의 도움까지 함께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한마디로 완벽히 갖춰진 조건이다. p60

 

5)     북방계의 다른 흐름, 백제의 성립

<백제본기>에도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었다는 말이 나오지만, 일연은 이 부분마저 삭제했다. 이 같은 삭제 때문에 갑자기 태자가 등장한 것처럼 되었는데, 비류와 온조가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다 함은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p63

 

6)     북방계 이동의 끝

다만 이 시기에 부족간의 이동은 끊이지 않았고, 좀더 우세한 세력과 기술을 가진 쪽으로 균형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p64

è  우세한 세력과 기술을 가진 쪽으로 균형이 움직이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다 똑같나보다.

3.     신라와 남방계(보급판에서 발췌해서 페이지가 다를 수 있음)

1)   남방 문화 속의 신라

중국 사람들이 진의 난리를 견디지 못해 동쪽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한의 동쪽에 자리를 잡고 진한과 더불어 섞여 살다가, 이때 와서 점차 번성해졌기 때문에 마한이 꺼려했다. p65

 

2)   신라 여섯 부족은 또 다른 오리지널

그러나 <삼국사기>가 여섯 부족을 조선의 유민이라 한 데 반해 일연은 여섯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되도록 이성적 판단에 맞아 들어가는 것을 추구했던 <삼국사기>의 세계와 일연 사이에 놓이는 차이점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p66

여섯 부족도 결국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주요 구성원이었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나 일연은 앞서 본 진한조를 실어 그 같은 가능성을 일단 차단해 놓고 있었다. 이것이 <삼국사기><삼국유사>의 다른 관점이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p68

 

3)   혁거세의 탄생과 신라 건국

4)   혁거세 탄생, 또 하나의 이야기

일연은 앞서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조의 혁거세, 알영부인 탄생 이야기와 선도산 신모의 이야기를 하나로 붙여 보려는 것일까? 어느 정도 그런 의도가 보인다. p71

어떤 이는 서술 성모가 낳은 바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선도 성모를 찬양하는 중국 사람의 시에, ‘어진 이를 낳아 나라를 열었네라는 말이 이것이다. 계룡이 상서로움을 드러내 알영을 낳았다는 것도 서술 성모가 나타낸 바가 아닐까? p72

 

5)   선도산 신모에서 나타나는 신라 왕실의 성격

지리산 성모천왕 전승은 무당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이를 무조 신화라 한다.

성거산의 여신 전승은 고려 왕족을 성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p73

삼국의 건국 신화 가운데 신라 쪽이 유독 무조 신화나, 민간 전승의 신모 신화에 가까운 것은 왕실의 성격이 곧 거기에 기반을 두었다는 강한 증거다. 물론 고구려나 백제의 초기 왕실 또한 제정일치적인 성격을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그것에 비하면 약하다. p74

대체로 일연은 <삼국사기>를 인용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여기저기서 발췌하여 한 문장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p75

 

4.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1)     시골 출신의 벼락 출세

탈해는 무척 복잡하고 신비한 인간이다. 그 출생 과정부터 한 남자의 생애는 파란만장을 예고하고도 남았다. 물론 밑바닥에서 시작한 인생이 평탄할 수만 있겠는가? p70

그에 관한 이야기의 이면에서 우리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신라 왕실의 고민과, 한 인간이 가진 본인의 욕망의 그림자를 읽게 된다. 온갖 신격화로 치장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거둬내면 더욱 그렇다. p72

 

2)     치아 많은 이가 된 왕 자리

여덟 단계의 성골을 가졌는데,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 왕위에 올랐지요. p75

정말 간사스런 꾀다. 실제 자기 것을 꾀를 내어 다시 찾았다면 지혜스럽다 하겠으나, 남의 것을 빼앗은 것과 마찬가지니, 이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우리의 탈해의 인간성을 그다지 탐탁하게 볼 수 없다.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탈해가 호공에게 우리 집이 본디 대장간을 했다는 말을 가지고 풀어본다면, 탈해의 출신지가 야철술 곧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한 곳이고, 선진된 문물을 가진 이 집단이 신라 중심지로 이동했다는 증거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p78

 

3)     탈해왕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내기에서 진 탈해는 항복하고 물러선다. 그것은 깨끗해 보이지만, 물러서면서 하는 말이 항복의 변명치곤 공손함이 지나칠 정도다. p81

è  항복의 변명치곤 공손함이 지나칠 정도라는 말이, 얼마 전 물건을 사고 환불 과정에서 끓어 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공손하게 메일을 써서 보냈던 내가 생각난다.

 

4)     탈해왕의 고민

탈해는 여섯 부족의 신임을 얻기에 그 근본이 너무 약했다.

그런 어려움을 물리치는 데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나마 그가 타고난 재주에다 출중한 지략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다.

탈해가 일본과 우호조약을 맺는 것은 그들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해소하고 자신의 후원자를 얻는 이중의 효과가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다 탈해는 박씨의 세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썼다.

그들에 대한 어떤 대우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상 탈해 자신에게 외척인 박씨들이 서울에 모여 있지 못하게 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p83

 

5.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보급판에서 발췌해서 페이지가 다를 수 있음)

1)     일본의 여자 프로레슬러 히미코

2)     고대 일본의 여왕 히미코

이씨는 당시 역사 기록자들이 그 같은 인물의 모델로 히미코를 택한 것 같고, 거기에 묻히다보니 히미코에 관한 기록이 일본의 역사서에서 희미해졌다고 덧붙였다.

오래도록 남성에 복종하며 살아온 일본의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기의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상징적인 인물이 여왕 히미코라는 것이다.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여들면 곤란하다. p79

그러나 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p80

 

3)     히미코와 같은 시대의 연오랑 세오녀

히미코가 사신을 보낸 것은 바로 이 왕 때, 세오녀가 일본으로 갔다는 아달라왕 4년에서 16년 뒤다. 일본에 가서 자리잡은 세오녀는 히미코가 되어, 금의환향하듯 자랑스레 본국에 사람을 보냈다고 추정할 만하다. p81

이렇게 혼란스럽고 빈약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료가 미비한 탓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신라 초기의 왕실이 그만큼 안정되어 있지 못함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시기의 기록을 여기저기서 다와 한 줄로 꿰기란 위험한 일이다. p82

 

4)     해와 달을 섬긴 사람들의 이야기

승려 생활을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이라고 한다. 일연 또한 거기서 예외일 수 없었고,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13세기의 혼란스런 고려 사회가 그 삶을 더욱 모질게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또한 그의 이 같은 관심과 실천 속에 모아진 것으로 본다. 그런 이야기일수록 일연의 붓끝은 힘을 얻는다.

è  자료 수집은 아는 것이고, 이로 인해 생기는 자신감은 그것들을 바탕으로 쓰는 글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고대 삶의 모습을 지금까지 충실히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고대인이 지녔을 사유방식의 틀을 읽는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 없듯 해와 달이 빛을 잃으면 쓸모 없는 물건이 된다.

본다는 것은 그 정령ㅇ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이는 곧 변방의 작은 왕은 아니다고 붙여 놓았다. 정치적으로만, 자연 현상의 사실로만 보지 말라는 주문일 것이다. p84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p85

 

5)     아름다운 설화 속의 정령

신라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유독 토착 신앙에 강했다는 말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한다.

아마테라스가 동굴에서 나오도록 온갖 방법이 동원되는 이야기가 그 뒤를 잇는데, 아마테라스 자신이 해이고, 그 해가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p85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가 이제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역사시대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위치하고 있는 설화라는 점, 게다가 훨씬 자연스럽게 의인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면 다르다.

정령의 존재를 알고 서둘러 따라온 신라 사람들을 우리의 아리따운 정령들은 맨손 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우리 설화의 기본적인 구조다.

일연은 귀비고, 영일현, 도기야의 작명 내력을 밝히며 끝을 맺는다.

눈여겨보면 알겠지만, 이는 일연 자신이 직접 답사한 곳의 이야기를 적을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종결법이다. p86

 

6.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1)     일본어와 비슷하게 들리는 한국어

세계 어느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두 나라의 말은 서로가 가장 비슷해 독자적인 어족을 형성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비슷하게 들리는 두 나라 말 가운데서도 우리의 경상도 방언과 일본어는 더 닮았다. p106

왜의 잦은 침공을 받은 신라로서는 비록 그 때마다 물리쳤다고는 해도 늘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셈이었고, 그런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숙원이었다. p107

 

2)     일본에 간 신라 왕자 천일창

신라를 괴롭혔던 왜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왜는 친교를 하고, 어떤 왜는 침공을 했다. p107

 

3)     박제상 사건으로 터진 감정의 폭발

고대 왕권 국가를 구축해 낸 왜가 백제와 교린 관계를 맺게 되자 신라는 협공의 위기에 빠졌다. p109

물론 박제상의 장렬한 죽음에다 양쪽 모두 초점을 맞추었다는 데에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그 죽음은 신라와 일본의 오랜 갈등 속에 빚어진 가장 비극적이며 상징적인 사건이다. 박제성이 첩보원 같은 신분으로 일본에 들어가고, 왕자를 구출한 다음 모진 고문을 받으며 끝내 목숨을 잃는 사건의 전말, 거기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 쪽에 있다. p110

좀체 흥분하지 않는 일연의 붓끝이 여기서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p111

 

4)     박제상, 그 빛나는 충혼의 인물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p111

나라의 일이며 충성이 중한들, 목숨을 내놓은 값은 무엇으로 갚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116

 

5)     일본에 대한 적개심

<삼국유사> [기이]편은 왕의 재위 순대로 엮었다. 그러면서 그 왕대에 일어난 일이나 특이한 사람을 하나 소개하고, 그것에 제목을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가장 특징적인 사건을 하나로 한 왕대의 성격을 나타내 버리는 것이다. 일연의 특이한 기술 방법이다.

신라 왕실 내부의 갈등이 아닌 왜의 비인도적인 처사 쪽에 더 치중한 일연의 기술에서 우리는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p118

전쟁은 적개심을 필요로 한다.

일연의 이 같은 기술을, 단순히 일본의 적으로 만들자는 협소한 목적에 마감시켜서는 곤란하다.

일연의 눈은 보다 더 크고 궁극적인 데로 향하여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도 걸리게 했다는 점만 유의하기로 하자. p119

 

7.     밤에 찾아오는 손님(보급판에서 발췌해서 페이지가 다를 수 있음)

1)     야래자 설화의 전통

승려의 신분을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삼국시대 그 밑바닥의 정서를 전해 줁 점. 우리는 지금 <삼국유사>의 편찬자 일연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다.

설화문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유형 중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 소재가 되는 야래자 설화가 있다.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남녀 관계에서 남자 쪽을 가리킨다. 남자는 당대의 영웅이거나 기이한 인물이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밤에만 남몰래 찾아 들어야 할 운명이다. p87

자칫 몰래한 사랑의 불륜성 시비에 휘말릴 이런 이야기를 일연은 서슴없이 <삼국유사>안에 거둬들이고 있다.

한편 견훤의 탄생 설화는, 가까운 일본의 백제 영향권 아래의 지역에서 유포된 설화와 매우 비슷한 점을 보여, 설화를 통한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데도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p88

 

2)     복사꽃처럼 어여쁜 여자

문제는 이여자가 이미 혼인을 한 유부녀였다는 점이다. 진지왕은 그런데도 불러들여 관계를 가지려 하였으니, 음탕함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죽음이라도 흔연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인데, 그토록 당당한 모습을 지닌 여자도 아름답지만, 한마디 농담으로 계면쩍은 분위기를 수습한 왕이 그대로 여자를 보내 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p90

 

3)     사람을 돕는 귀신

4)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밤손님

이야기의 구조는 앞의 견훤 탄생담과 너무나도 닮았고, 이 같은 이야기는 오키나와에서도 발견된다. p96

견훤 탄생담 같은 야래자 설화가 견훤 이전에도 한반도에 퍼져 있었고, 그 증거는 앞서 도화녀의 이야기에서 나타나거니와, 그 같은 이야기의 틀은 도래인들에 의해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p97

 

8.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1)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원광은 일찍부터 중국에 유학학좌 했으나 길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에 들어가 도를 배우는 일은 본디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바다와 육지가 가로막고 있어 제 힘으로 통과하지 못하고 있을 뿐. p139

혜현이 중국에 유학한 승려도 아니었는데도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은 백제가 일찍부터 빈번한 교류를 통해 제 나라 불교의 수준을 높여 놓았고, 중국 유학이나 여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후진국이 어떻게 삼국을 통일하는 최후의 승리자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p140

è  왠지 주변에서 흔히 얘기하는 너무 젊어서 성공하는 것보다는 젊어서 고생하고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 말년을 편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2)     불교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 내고

표면적으로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승려와 궁주를 처단한 슬기로운 왕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넓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전의 분수승으로 대표되는 불교에 대한 고위 관료들의 적대감이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p143

 

3)     토착 신앙, 불교 그리고 화랑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아상(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

화랑제도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그 같은 모범을 보인 국선이 있었다는 것은 곧 그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뿐만 아니라, 신라로서는 하나의 행운이었다. p149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늦었기에 오히려 선진적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점만 적어 두기로 하자. p150

 

4)     외교가 중요하다는 사실

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려야 했던 신라다. p153

세 나라는 얼키고 설키는 원근의 관계를 되풀이했다.

진흥왕이 구사한 외교적 수왕으로, 이후 신라가 삼국 통일까지 걸어가면서 변함 없이 지켰던 어떤 대원칙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와 일본이 가까워지면서 신라로서는 협공을 받는 입장이 되었는데, 거기서 고구려까지 적이 된다면 그야말로 포위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백제나 일본과는 오랫동안 좋지 않은 관계였다. 이제 그런 관계를 개선하기보다 고구려와 가까워지는 것이 더 쉽고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법하다.

백제는 친하자고 말을 걸어와도 껄끄럽고, 고구려는 가끔 쳐들어와도 치명적일 것 없었다. 지리적으로 볼 때 백제의 침공은 수도 경주의 안위와 직결되지만, 고구려는 변방에서 변죽만 울리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신라로서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당나라와의 거리가 멀다는 점이 이득이었다. 일단 침공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도 없고, 당나라와 화친하면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할 수 있다는 이중의 장점을 가지게 되었다. p157

선덕왕이 여성이기에 좀더 부드럽게 당나라와의 교류를 이어 나갈 수 있었겠다 싶다. p158

è  현실에서도 영업 등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분야에서 여성의 위력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예전 남자인 왕이 대부분인 시절에 여성이 왕이 됨으로써 여성 특유의 감수성가 친화력이 외교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확실이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9.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보급판에서 발췌해서 페이지가 다를 수 있음)

1)     추억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2)     통일의 운명을 타고난 사나이

전체적으로 환생 설화로 불교가 가진 인연의 법칙에 따른 구조이고, 다른 예가 <삼국유사> 안에서도 더러 보인다고 하나, 왠지 불교적으로만 보기에는 괴이하기 짝이 없다. 김유신을 구해 준 세 군데 호국신은 신라의 민간 신앙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일연이 보이고자 한 김유신의 생애에서 가장 큰 특색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김유신은 호국신이 지켜 주는 존재이고, 삼국 통일의 선봉에 설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암시하자는 것일까?

 

3)     꿈을 사서 얻은 행운

두 사람의 만남은 곧 신라의 삼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루어 내는 드라마의 시작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문희라는, 두 사람을 굳게 묶어 주는 제3의 인물이 매우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한다. p103

오줌싸개 지도를 그린 아침이면 채이고 소금이나 얻으러 다닌 이야기야, 산천을 적시는 영웅들의 오줌과는 격이 다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안 가득 오줌을 누었다는 여자들의 꿈이 왜 좋은 것인지, 그리고 비단 치마로 값을 치르고 꿈을 샀기에 김춘추 같은 귀공자나 중국의 황제를 가까이 하게 될 기회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사실을 더 그럴 듯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배경에 깔리면 그 사실은 더 힘을 얻는 법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야합을 한 것까지는 순조로웠으나 결혼에는 한 가지 장애가 놓여 있었다.춘추와 문희의 신분  때문이었다. p106

 

4)     민족의 결혼

5)     진골의 탄생

처남 매제간으로 맺어진 김춘추와 김유신 콤비는 이후 거칠 것 없이 자신들의 뜻을 펼쳐 간다. 김춘추가 왕실 내에서 강력한 입지를 굳혀 가는 동안 김유신은 군부를 장악한다. 특히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외교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p108

김춘추는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 법민, 인문 등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나라에 보내 그곳의 주요 인사들과 안면을 익히게 하였다.

그때까지는 두 집안이 모두 왕족이어야만 왕이 되는 신라 왕실에서, 이제 한쪽만이어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든 것이다. 사실 진골은 편협한 신라 왕실이 한층 더 개방적으로 나가는 데 크게 공헌한 제도이기도 하다. p109

 

6)     화려한 무대 뒤의 여인

힘으로 안 되면 지략으로, 지략으로 모자라면 신술을 써서라도 주어진 일을 해내고야 마는 그(김유신)였다. p110

두 남자 뒤에 숨은 한 여인의 그림자는 그만큼 짙어만 간다. 물론 이 여인은 문희다. 화려한 것을 받쳐줘야 하기에 속으로 인고하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p112

동생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까? 일은 제가 벌여 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 p113

è  문희라는 여인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녀는 두 남자들이 그렇게 일을 벌여서 그녀의 인생이 흘러가는 사이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10.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1)     문무왕 법민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벌인 통일 전쟁이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만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문무왕 법민은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 낸 사람이다. p179

 

2)     사천왕사로 지켜 낸 땅

뇌물은 그 옛날부터 필요악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신라가 당나라와 벌이고 있는 신경전이 얼마나 심했던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p183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 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살아서는 사천왕사를 지어 나라를 지킨 문무왕은 죽어서는 용으로 태어나 그 일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p185

금당 아래의 동쪽에 구멍을 낸 감은사, 용더러 다니라는 통로를 만들어 준 것이라니,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즐겁고 소중한 느낌이 가득해진다. 부자간의 짝짜꿍이 잘 맞아도 이렇게 잘 맞을 수 없다. p186

 

3)     더할 수 없는 선물, 만파식적

상징의 핵심은 고장난명이었다고 해야 할까? 천하를 상서롭게 다스리고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런 소망의 결정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배인지 모른다. p189

 

4)     만파식적은 어디로 갔을까?

벼슬이 높아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면 한 글자씩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이 있다. p195

 

11.   권력의 끝

1)     토사구팽 그 비정한 원칙

권력을 잡은 자의 마무리 과정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한마디에 쓸쓸한 제 인생을 깊은 한숨과 함께 무상한 세월로 돌려보냈다.

권불십년이라, 거기서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p196

 

2)     김씨 성을 가진 첫 왕

마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어느 후손의 끈질긴 조상 찾기처럼 말이다. p200

 

3)     김유신과 미추왕

자세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큰 업적이 없다는 것의 반증이겠는데, 그런 그가 죽은 다음에 일어난 두 가지 이적으로 그의 영향력이 사실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뿐이다.

석씨인 유례왕 때 이서국의 침입을 혼령의 힘으로 막았다는 이야기는, 미추왕에 대한 미화로도 해석된다. 죽은 김씨가 살아 있는 박씨보다 낫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p202

 

4)     효소왕대의 죽지랑

김유신가의 몰락은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서서히 진행되지만 토사구팽의 비정함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p204

세간을 떠나 승려가 되는 경우는 차라리 점잖은 은거이기에 무상한 세상의 인정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거니와, 한편에서는 그들이 지닌 재주를 파는 광대에 버금갈 예인이나, 급기야 귀족 부인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한 남창이 되었다는 데에서, 우리들의 눈은 실상 당혹을 넘어 경악에 어지럽다.

è  이 부분은 정말 쇼킹하다. 최고의 대우를 받는 화랑에서 바닥의 남창으로의 전락이라니. 당시 이런 상황이 되었던 이들은 과연 제정신이었을까? 지금으로 말하면 우울증 등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 같다.

화랑 가운데 우두머리는 실권을 잃은 종이 호랑이로, 무리들은 주인을 잃은 초량한 신세로 이리저리 내쳐졌다. 철저한 토사구팽이다. p205

득오가 새롤운 자리에 전출되어 임지에 가서 일하는데, 옛 상관으로서 죽지랑이 면회를 갔던 일 정도, 거기서 좀더 나간다면 비뚤어진 관리가 사람 속을 썩인 일 정도로 보면 그만일 수 있는 일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일화의 내면에는 한낱 종이호랑이로 변해 버린 화랑 출신들의 쓸쓸한 노년이 숨어 있다. p210

더욱이 은퇴한 노장군이 옛 부하를 찾아와 위문이나 하자는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런 광경이 조금은 안돼 보였을까, 하급관리 두 사람이 뇌물을 먹여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 신라 계급제 사회가 고착되어 병통을 보이는 후기에 이르면 급기야 육두품들의 반발로 나라가 바뀌게도 되지만, 효소왕 때라면 아직 제도와 기강이 튼튼한 전성기였다.

화백제도가 진흥왕 때를 지나며 유명무실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거나, 진흥왕 이후 득세하는 왕실 세력에 대한 견제력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p212

 

5)     임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12.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1)     왕비를 둘 두었던 왕

<삼국유사>의 맨 처음에 실린 왕력편에는 왕과 왕의 부모 그리고 왕비가 비교적 소상히 적혀 있다. p214

3대에 걸쳐 그들은 나란히 첫 왕비를 대궐에서 내보내고 있다. ‘출궁이라 표현된 이런 사건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2)     3대에 걸친 출궁 사건

3대의 출궁사건은 진골 세력들 사이에 벌어진 끊임없는 권력 투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공을 다투는 이는 많고, 새로운 통일 국가의 이념은 아직 잡히지 않은 몸집만 비대해진 신라의 허둥대는 모습이다.

신문왕 즉위년에서 시작해 혜공왕 폐위에 이르는 동안 그치지 않은 반역의 칼날, 그것은 김춘추직계 후손의 쓸쓸한 종막을 불러 왔다. p219

 

3)     왕의 이혼 위자료는 얼마?

4)     꽃과 여인 그리고 사랑의 노래

성덕왕이 왕으로서 덕을 베풀기 힘쓰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수로부인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느 여인과는 다른 특이한 매력을 풍긴다. 그것은 약간 공주병에 걸린 듯한 푼수 끼가 보이면서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강한 개성 때문이다. p223

 

5)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는 말은 원문에서 중구삭금이라 표현되어 있다. ‘중구란 곧 오늘날의 여론, 또는 민중의 소리라고 할까?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산물의 가공할 위세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p228

 

6)     동해 바다 그리고 국도7호선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역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p233

 

13.   첫 성전환증 환자

1)     일연이 그리는 경덕왕의 존재

경덕왕을 전후로 한 왕대에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게 읽힌다.

실명한 딸을 위해 향가를 지어 간곡히 기도하는 희명, 자기 손바닥을 뚫어 새끼줄에 꿰고는 필사적으로 염불하는 욱면이 그 시대 사람인가하면 땅 속에서 사방불을 캐내고, 황룡사에 종을 만들어 건 이가 경덕왕이다. p234

 

2)     아들을 바랐던 왕

비록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한들 아들을 얻겠다는 경덕왕의 비원은 차라리 비극에 가깝다. p237

 

3)     재앙을 극복하는 길

승려가 된 것은, 통일 후의 화랑들이 신분 변화를 보이는 예 가운데 한다ㅏ.

화랑이 향가를 지어 부르는 주 작가층이었다는 사실과, 승려가 된 다음 굳이 인도식 염불을 외우지 않고도 승려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다. p240

 

4)     죽은 누이를 위해 부르는 노래

아홉번째 줄에서 감탄사를 길게 뺀 다음에 흩어진 감정을 추스린다. 이는 향가라는 시의 형식이 가진 특장이기도 하다.

향가가 종종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켰다는 기록을 일부러 적어 넣고 있다. p242

 

5)     최후의 시도

왕과 신하 곧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이 백성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부모처럼 자애로운 존재라는 설정은 미덥기만 하다. p247

혜공왕이 태자 시절에는 부녀자들의 놀이를 하였고, 비단 주머니를 차기 좋아하였다는 것이다. “장성하자 음악과 여색에 빠져들어, 돌아다니며 노는 것을 절제하지 않았다.” p249

 

14.   왕이 되는 자

1)     야심가의 등장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인 것이 쿠데타다. p253

 

2)     왕이 되느냐 죽느냐

어차피 왕위를 다투는 마당에 결과는 왕이 되거나 죽거나 어느 하나로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는 길을 찾는 수밖에, 여삼의 해몽이란 결국 살길을 찾으라는 말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북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는 왕위를 바라는 자가 해야 할 조상에 대한 알림 곧 고유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p255

 

3)     꼼꼼하면서도 과감했던 왕

왕이 한 선의의 거짓말은 국보로 지키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지만, 거절하되 어떤 다른 외교적 분쟁이 야기되지 않도록 섬세히 배려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p257

직접 그들의 뒤를 쫓아가 잔치를 베풀어 회유하면서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 극형까지 내릴 수 있다는 단호함을 동시에 보여 준다.

경전을 읽고 공부해 그 성취도에 따라 상중하의 3급으로 나누어 관직에 임명하는 이 제도는, 나중 고려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행한 과거제의 출발이나 다름없다.

è  이는 어쩌면 성적순으로 행복을 매기고 있는 현대모습의 출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체제가 기득권 층의 자기 이익에 따라 흘러가다 보니, 관직에 있는 자들은 무능해질 뿐이어서, 왕은 제도의 혁신 없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역시 기득권 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란 차라리 새로운 나라를 열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 p261

 

4)     왕이 되는 자의 금도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p262

 

5)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때로 까닭을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 사람이요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다. p266

뱀을 이불 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p267

왕으로서 큰 정치를 하라는 뜻에서 대도곡’,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며 정치를 하라는 뜻에서 문군곡일리라 p268

 

15.   나라가 망하는 징조

1)     달도 차면 기운다

백성이야 어차피 어떤 나라가 서도 백성, 제 정권 지키자고 혈안이 된 자들에게 당하는 백성의 희생을 우리는 진정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p271

 

2)     이른 눈으로 상징한 것

3)     권력다툼 속에 인재는 죽고

염장은 한때 장보고와 같은 편으로 신무왕의 반란을 도운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장보고를 죽이는 일에 앞장선다. 거기에 입신양명을 꿈꾸는 자의 야심 밖에는 아무런 목적도 보이지 않는다.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p277

 

4)     빛나는 조연 처용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을 베풀자 곧 보답하는 선물을 주고 있다. 거기에 음악과 무용까지 등장하니, 사실 이런 구조는 오늘날에도 굿에서 하는 차례와 매우 닮았다. p280

 

5)     나라가 망하는 징조

기왕의 기이한 사건을 한층 극적으로 전하려는 데서 일연의 태도에 더 매력을 느낀다.

기미를 보아 사리를 판단하는 법이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사람이 세상에 사는 한 언제든 잘 되고 잘못되는 징조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p286

 

16.   지는 해 뜨는 해

1)     마지막 희생자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들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 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졌을 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도 못했다. p287

정작 노가바를 누가 지었는가 알려 하기보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문장을이라고 단박에 지목하여 철창에 집어넣은 그 사회의 꽉 막힌 위정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p289

 

2)     준비되는 새 나라

거타지가 쏜 화살은 곧 이 세상의 부조리를 향하여 날아가 박히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가? p293

 

3)     김부대왕이라는 칭호

4)     비운의 왕자

위태롭기가 이 같으니 판세를 보아도 보전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미 강해지지도 못하거니와 약해질 것도 없어. 무고한 백성들의 살이 으깨지는 것만은 내 차마 할 수 없구나. p301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교체라면, 어느 개인의 사유물처럼 정권을 휘둘러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것에 비길 수 없다. p302

 

17.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1)     아쉬운 백제의 역사

일연이 삼국의 다른 두축을 이루는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에 어찌 그다지 인색했는가다. 다만 시조 왕의 사적을 잠깐 언급한 다음, 나머지는 신라에 비해 오색하기 그지 없다. p307

 

2)     백제 고도의 대표는 부여가 아니다

3)     따뜻했을 것 같은 백제의 풍속

복수로 후보자를 올리고 그 가운데 적임자를 골라낸다는, 민주적 절차의 한 단면을 읽는다. p313

 

4)     곤지왕자로부터 시작하는 백제와 일본의 왕계

그들이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당대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p315

 

5)     백제가 어떻게 일본 왕실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6)     일본의 독립선엉

백제가 망할 무렵, 일본의 구원군은 적시에 도착하지 않았고, 그렇게 늦장 부리다가 싸우려는 시늉만 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종주국 백제의 멸망 후 7, 국호의 변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백제에 대한 일본 왕실의 독립 선언으로 보인다. p325

 

18.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1)     맹랑한 눈에 맹랑한 자가 보인다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è  나는 맹랑한 사람인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 이것이 내게서 나올 수 있는가?? 때때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생각의 틀에 갇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서동이 쓴 방법은 노래를 통한 조성이었다. 노래에는 그 같은 힘이 있다. 민요에서는 그것을 참요 곧 예언의 노래 일종으로 보는데,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 시절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사실이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일의 흐름을 바꿔 놓기 십상이다. p327

è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 현대 마케팅 용어로는 바이럴 마케팅이 되겠다. 이런걸 보면 신기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은 정말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다.

 

2)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

영웅은 자기가 타고난 비범한 재주로 고난을 극복해 낸다. 서동은 이웃 나라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으로 그 첫발을 내딛고 있다. 첫발치고는 통도 크다. p330

서동은 비범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지만 귀하고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공주는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완전한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다. p332

 

3)     서동과 무왕 그 아슬아슬한 연결

박대 받았던 자식이 오히려 어버이를 더 챙긴다는 말은 요즈음도 하지 않는가? p336

 

4)     미륵보살 쟁탈전 속의 선화공주

불교의 백제화는 신라인의 자기화에 못지 않다.

미륵보살은 누구인가? 부처님 당시에 생존했던 미륵보살은 부처님에 의해 미래불로 지정 받았다. p342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p343

자동차도 인터넷도 없었던 그 시대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과 사상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말해준다. p345

 

19.   견훤, 비운의 영웅

1)     백제 땅에서 나온 마지막 왕

2)     3대에 걸친 물고 물리는 불화

지위는 낮지만 걸출하게 생긴 사내와 정을 통한 부잣집 딸, 부모들은 소문을 두려워하여 한 재산 들려 주고 먼 곳으로 데리고 떠나 살게 하는 어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것 말이다. p350

아들이 아버지에게 끝없이 반항하다 망한 견훤 집안 3대다. 식민지 치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이념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다 망해 버리는 집안을 그린 염상섭의 소설 삼대는 이미 천여 년 전을 무대로 삼아도 통할 이야기다. p351

 

3)     호랑이가 키운 아이

일연은 이 대목에서 견훤이 우리 태조 임금과 친한 척했어도 속으로는 상극이었다고 넌지시 한쪽 편을 들어 주고 있다.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4)     편지로 싸운 한 판

싸움터의 칼바람이 스산하게 묻어 있는, 그러면서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붓 놀림은, 그대로 칼 없이 겨루는 한판이다. p354

토끼와 사냥개가 둘 다 지치면 마침내 놀림을 받게 되고, 조개와 황새가 서로 버티다 보면 또한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p356

중국의 고사들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자기를 합리화하는 글 솜씨는 찬란하다. p358

 

5)     가엾은 완산 아이

이 노래에서 가엾은 완산 아이가 뜻하는 바는 참으로 여러 가지다. (……)견훤일 수도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나 아들 신걸 아니면 죽은 아들 금강일 수도 있다.

짤막한 노래 하나 등장시켜, 견훤의 말년을 실감나게 그린 일연다운 솜씨를 또 한번 느낄 수 있다. p360

반역을 당한 자는 비참하지만 반역자가 아들인 경우엔 슬픔은 이중으로 겹쳐오고, 급기야 천륜을 팽개친 불구대천의 원수 삼기가 어디에도 없을 지경을 만들어 낸다. p361

왕건은 자기에게 오는 이를 누구도 말리지 않은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자식을 원수로 여겨 죽이지 못하는 것을 분통해 하고, 치사한 목슴부지하다 등장이 나서 제 명을 재촉한 사람의 생이다. p363

 

20.   신비의 왕조, 가야

1)     인멸된 가야사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찌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고, 무너지지 않은 무덤이 있겠는가. p369

 

2)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노래 속에 내려온 왕

자식을 많이 낳고, 농사가 잘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p372

 

3)     왕의 밀월 여행은 4일간?

가야 사람들은 질박하고 검소하게 살기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그만큼 작은 나라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로왕은 어진 임금이었다. 백성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무리한 토목 사업은 애초에 벌이지 않았다. 새로 궁궐을 지으면서도 농사가 한가한 틈을 기다렸다. p372

 

4)     바사석탑으로 풀어 보는 왕후의 정체

먼 뱃길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서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향해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찬란한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가 있다. 그 길을 지켜 주는 석탑 p378

이 나라 최초의 국제 결혼은 그렇게 문제도 화제도 많다.

 

5)     슬픈 수로왕의 그림자

왕은 늘 베개 위에서 홀아비의 슬픔을 노래하며 오랫동안 탄식하였다. 결국 왕후가 죽고 꼭 10년이 지난 서력 199 3 23일 죽었다. p379

일본의 학자들은 자기네 기록을 가지고 입맛에 맞게 해석한 것이다.

사료가 부족한 쪽만 억울할 일이다. 거기서 우리는 김부식이 원망스러운 것이고, 일연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p384

 

21.   불교로 보는 역사

1)     흥법 편의 성격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것을 다루는 일연의 태도는 뭔가 자신감에 차 있다. 보고 들은 것과 몸소 체험한 것이 일체를 이루는 부분이기에 그랬으리라. p385

 

2)     이 땅에 처음 온 승려 순도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도교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없고, 그것이 고구려 사회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갔을망정, 멸망의 빌미가 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p389

 

3)     백제에 이른 마라난타

4)     상상력, 사실 이상의 사실

5)     큰 나무의 인고

종교를 처음 전할 때 의술이 따라다닌 것은 동서의 고금을 두고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p396

신라 불교는 처음부터 순교자를 부르고 있었다.

 

6)     완고한 신라 사회 속에 뿌린 불교의 씨

고구려와 백제의 이야기에는 단지 승려만이 등ㅈ아하는 것과 달리, 신라의 이 이야기에서 평신도인 여자의 존재는 이채롭다. p398

그러나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

신불이 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스런 상황에서 꿋꿋한 믿음을 지킨 그녀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에서 볼 수 없는 신라 불교의 독특한 면이면서, 완고한 신라 사회에 뿌린 불교의 첫 씨앗이었다. p399

 

22.   순교의 흰 꽃 이차돉

1)     법흥왕 이전에 불교는 없었는가

비록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할지라도, 그 뿌려진 씨앗이 아주 말라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퍼지지 않았으며, 나라에서 인정하지도 않는데, 민간에서는 조심스럽게 신불의 분위기가 만들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p400

이로 본다면 여인네들이 먼저 불교에 적극적이었으며, 거기에 어떤 형태로나마 승려가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p401

 

2)     이차돈에 대한 일연의 관심

일연은 삼국의 역사에서 신라를 중심에 두었다.

한 가지 추가한다면 불교역사주의적 의식이 작용했다는 점도 앞서 지적했다. 신라의 불교는 신라 한나라에만 그치지 않는 한국 불교의 화두다. p402

 

3)     순교자의 마음

오늘 우리는 사실을 따지는 것이 중요할까, 사실이 무엇이건 거기 실린 순교한 자의 마음을 고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까?

 

4)     아도의 본마음을 이룬 성자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p411

 

5)     그 후, 백제와 고구려의 불교

 

23.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1)     황룡사의 돌무더기

너의 등을 덮여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년을 기다렸단다. p417

 

2)     황룡사는 어떤 절이었는가?

3)     인도의 아육왕도 이루지 못했던 일

오직 인연 있는 땅에서만 가능하다면 신라는 바로 그런 인연을 갖춘 곳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배어 있다. p424

 

4)     정말 아육왕이 보낸 것일까?

아쇼카는 콤플렉스가 많은 왕이었다. 못생긴 얼굴에 형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죄책감마저 가득했다. 그것은 이상한 형태로 뻗어 나와 결국 가상 지옥을 만들어 놓고 잘생긴 사람을 들여보내 죽이는 해괴한 짓을 저질렀다. p425

순도의 불상도 장륙존상도 모두 없어져 버린 지금, 한반도라는 작은 공간에 함께 머물렀던 세계 불교 문화의 두 중심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리워할 뿐이다.

 

5)     황룡사 구층탑의 경우

어쨌거나 신라를 가운데 두고 ,중국과 인도의 불교 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 잘이p 모인 곳이 황룡사다. p434

 

6)     그 안타까운 최후

해도 사람도 모두 떠나고 이제 황룡사 터에는 달과 나 뿐이다. 흙을 밟았다가 돌에 올라섰다가 하며 어슬렁거리는 내가 떠나면 달만 남는다. 아니다. 황룡사 장륙불상도 구층탑도 모두 사람이 이룬 일이니 사람이 남아 있는 셈이다. p435

 

24.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1)     일연과 오대산 그리고 문수보살

청소년기의 우러정사 경험과 장년기의 문수보살 체험, 이것이 오대산의 문수 신앙을 <삼국유사>에 남기고 싶은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     중국의 오대산과 한국의 오대산

문수보살을 흔히 출가의 보살이라 한다.

곧 선재의 출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길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누구든 수행의 첫 길은 문수보살로부터 시작한다. p440

 

3)     오대산과 오만 진신이 된 까닭

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p444

 

4)     눈물의 태자

그렇게 태백 산맥을 한 번 넘어서면 폐에 가득한 먼지가 깨끗이 씻어나가는 듯하다. p452

 

5)     학의 깃털이 가르쳐 준 것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p454

 

25.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1)     금대암에서 보낸 하룻밤

마음이 찾아갈 정처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만 상처만 커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p458

그저 떠오르는 대로 이 생각 저생각 마음대로 하며, 절까지 이어진 호젓한 길을 홀로 걷는 것만 것 즐거움을 드물다. 걷다보면 절이 나오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나오며 700년 전 이 길을 걸었을 일연을 가끔 떠올린다. p457

 

2)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와 안식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한 이들의 위로와 안식을 주기는 민장사의 관음보살에 얽힌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3)     중생사에 얽힌 이야기

4)     고려까지 이어지는 중생사의 이야기

불성은 대체로 마음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법이다. 그 불성은 어떤 지식보다 나으며, 때로 기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니, 무엇이 값어치 있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5)     일연의 생애와 그 반영으로서<삼국유사>

어머니에 대한 어던 향념이 <삼국유사>에 더러더러 묻어 잠겨 있음을 찾아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p469

정작 누가 총을 쏘았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양쪽 모두 열렬히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신은 무엇을 가르치길래 그토록 매몰찬 짓들을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p471

è  각각의 신을 이기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26.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1)     흰 달이 비추는 산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p473

 

2)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사람

실제로 신라시대에는 이 같은 재가승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p475

도를 이루려면 이만한 결단력 정도야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저절로 시켜서 된 것이지 억지가 끼여들 수 없다. p475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p476

 

3)     저물 무렵에 나타난 아리따운 여인

이곳은 여자가 와서 더럽힐 곳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지요.

수행자의 초심을 흔들지 않으려는 박박의 태도도 뜻이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부득의 태도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박박의 교조적 외통수와 부득의 현실적 융통성이라고나 할까? p479

 

4)     밤부터 아침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여자는 부녀자의 몸으로 나타난 섭화자라 할 만하다.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p481

 

5)     발톱 하나 칠하지 못한 만큼의 차이

6)     시로 완성되는 <삼국유사>

이기심은 독선만 키울뿐이요 자비심이란 찾을 수 없게 된다.

참 보살행이란 중생의 곤고한 처지에 동참한다는 것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p485

일연이 쓴 찬시 속에서 이런 절묘한 표현을 얻는다. 또한 편찬자로서 모아 놓은 시들, 곧 향가, 한시, 민요 등은 모두 일정한 문학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살이의 고통이 무엇이며 역사의 바른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하고, 그것은 뜻밖에도 그가 쓴 찬이나, 인용해 놓은 다른 시와 민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p486

 

27.   낙산사의 힘

1)     담으로 쌓아서라도 지켜야 할 곳

2)     진신의 친견담과 조신

낙산사로 인하여 나타난 두 분의 큰 성인인 관음보살과 정취보살의 이야기다. 관음보살과 정취 보살은 흔히 아미타보살의 좌우에 놓이므로 이를 합쳐 아미타 삼존이라 한다. p490

 

3)     의상과 원효의 거리

의상의 본디 목적은 진신을 직접 뵙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7일간 재를 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진신을 뵙고, 그로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명령받는다. 참으로 치밀하고 정성들인 노력 후에 얻은 만남이다. p495

서답이란 여인네들이 월경을 할 때 입는 속옷이다.

그런 뜻밖의 만남이 곧 보살과의 만남임을 영원히 모르고 지났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매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è  필자가 이런 내용을 책에서 3번 이상 언급하고 있다.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인가보다.

 

4)     어머니,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그가 수행한, 오늘날 우리가 선종이라 부르는 불교의 한 방식은 당대에 이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종 초기 중국 쪽 사정과 마찬가지로 신라 땅에서도 금기시 되거나 폄하 받기 일쑤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의 가 때를 기다리며 깊은 산골로 숨은 곳이 바로 진전사다. p499

아홉 살에 어머니를 떠나 구도의 길을 걸어간 사람, 일연에게는 귀 하나가 없는 사미승의 이야기가 그렇게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한 귀가 잘린 채 먼 이역에서 고국의 스님을 만나 고향에 돌아가거든 자기 어머니를 찾아가 달라고 말하는 소년은 정취보살이기에 앞서 일연 자신인지도 모른다. p502

 

5)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의 꿈

고운 얼굴 아름다운 미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꼴입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 걸림돌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쌓일 뿐, 지난날의 기쁨은 적어 근심과 고통으로 자리를 내주었군요. p507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p508

 

28.   운문사 이야기

1)     의해편에 들인 공력

승전의 애초 목적이 고승들의 전기를 엮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승의 전기를 쓰려면 먼저 편찬자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적어도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선배 승려들에 대해 인간적 친밀감이 작용할 터다. p509

일연은 직접적으로 승려의 생애와 관련된 기사의 제목을 같은 방식으로 매겼음을 알 수 있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참고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죄다 동원했다는 느낌, 인용과 자기 기술간의 매끄러운 연결 등은 다른 편에서 볼 수 없는 점이다.

우리는 <삼국사기>열전에 승려가 단 한 사람도 채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그다지 거론하지 않는다. 원효도 의상도 없다. 아마 일연에게는 이것이 못내 아쉬운 한 가지였으리라.

기록자가 자기 시대의 이념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주지 못한 점, <삼국사기>는 거기서도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의해편의 여러 기록들은 <삼국사기>의 이런 단점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도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p513

 

2)     원광부터 시작한 까닭

그같이 누벼진 사연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좋은 승려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p513

일연은 그 선두에 원광을 두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가 중국에 유학하여 불교의 진수를 체득해 온 해동의 처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p514

 

3)     원광과 신

자리만 행하고 이타의 공이 없으면, 지금에는 높은 이름을 떨치지 못할 것이오.

신은 자세히 중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p518

이 이야기는 신라의 불교 신앙이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민간 신앙과 어떻게 결합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할 것이다.

그런 그가 생경한 외국 이론으로 무장하여 어려운 말로 떠들지 않고 이 땅의 토착 신앙과 만나고 있다. 일연은 그런 원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광을 신라의 원광으로 고스란히 그려낸 이 대목을 읽는 일이란 참으로 신난다.  p521

 

4)     세속오계와 운문사

기실 원광은 오늘날의 일반인들에게 세속오계를 지은 승려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p521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 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남의 신하가 된 몸이란 곧 현실 정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임을 가리킨다. 그들이 승려와 똑 같은 계를 지니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기란 어렵다는 점을 원광은 이미 알고 있었다. p522

지금은 용이 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뱀을 이무기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아직 어린 용을 이무기라고 불렀던 것일까? p525

 

5)     운문사, 그 아름다운 이름

운문은 구름의 문, 아마도 운수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인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p527

 

29.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1)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 원효

일연은 원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은 사람이라고. p530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에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p533

 

2)     일연이 가장 잘 알았던 사람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 낳은 아들이 설총이다. <삼국유사>에서도 나면서 영리하고 밝아 경전과 역사에 널리 통해 신라의 열 분 현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말을 가지고 중국과 우리 나라의 세간 풍물과 이름을 통하게 하였으며, 육경과 문학을 뜻풀이하였다. p536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배우들이 노는 도구란 일반 민중들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 것이었으니, 거기에 빌려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우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p537

농사꾼에다 하급 기술자, 나아가 저 짐승들에게까지 부처님의 이름이 퍼졌다는 이 놀라운 광경, 그것은 원효가 만들어 낸 절묘한 전파 방법 덕이었다.

고고한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었을까?

 

3)     바보 같은 원효

아마도 1,400여년 전 어느 여름날, 그 개천 어디쯤에서 내기를 했을 혜공과 원효 두 스님이, 지금이라도 장난을 치면서 나타날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똥을 눈 원효가 머쓱하게 서 있을 표정과, 껄껄거리며 한바탕 웃음소리와 함께 절로 올라가는 혜공의 뒷모습.

태어나지 말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죽고 남이 괴롭구나. p540-541

지혜로운 호랑이를 지혜로운 숲 속에다 몯음이 마땅치 아니한가?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p543

 

4)     문 닫힌 분황사에서 추억하는 원효

우디가 하급 관리들이 쓰는 문서 작성용의 간단한 표기법이라면, 향찰은 시를 적을 수 있을 만큼 섬세해진 언어다. p545

그들의 치열했던 한 시대를 생각하는 시인의 심상은 비관으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숙명으로 수놓아진다. p548

 

30.   의상, 화엄의 마루

1)     해골바가지도 무섭지 않은 사람

원효가 감성적이라면 의상은 이성적이다. 귀신 따위로 마음을 흩뜨릴 사람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부터 원효와 의상은 서로 가는 길이 분명히 달라졌다. p552

 

2)     의상이 중국에 간 해에 걸린 수수께끼

3)     의상도 이미 의상이었다

이순의 나이를 맞은 큰스님 지엄의 눈에 의상은 준비된 큰 재목이었다. 그에게 부지런히 화엄의 묘의를 가르쳤다는 그 다음 구절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p556

바라건대 상인께서는 지난날의 인연을 버리지 마시고, 여러 가지 가야할 길 가운데 바른 길을 보여 주십시오. p560

 

4)     의상이 화엄을 전하다.

사찰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특히 화엄의 오묘한 진리를 펼치는 데 그의 생애를 전부 바쳤던 것 같다. 일연이 그의 전기를 쓰며, ‘의상이 화엄을 전하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리라.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p564

 

5)     종남산과 태백산이 똑같은 봄

국난을 구하고, 부석사 같은 큰절을 지으며 화엄종을 전한 의상의 활동은 실로 눈부시다. 불도를 닦기로 맹서한 이후 그는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원칙대로 정진한 사람으로 보인다. p568

 

31.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1)     인도에 대한 상념

인도의 자연과 인도인의 성품에서 강렬하게 인상을 받는 그 천연스러움 또는 한가로움 같은 것이다. p569

다큐멘터리 사진의 그 투박함으로 가급적 현장을 현장 그대로 잡아낸 한 장 한장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버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 데서 생긴 모짐이다.

진실로 두려워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2)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3)     인도로 간 여러 스님들

아리나발마는 돌아오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절에서 죽는다. p576

 

4)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일연이 이 조에 부친 찬은 추도시에 가깝다. ‘자신을 잊고 불법에 따르는이들의 위대했던 개척 정신을 추모해 마지않고 있다. p577

끝없는 사막 길에 외롭게 순례하는 승려는 마치 망망대해에 뜬 조각배와 같을 것이다. 그것을 달이 떠가는 것에 이중으로 비유를 했다. 달은 때때로 극락왕생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의탁되는 비유물이기도 하다.

구름은 승려들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비유물이다.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용기도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 맥없이 스러진다. 그러나 그것을 마다 않았던 순례자들을, 일연은 아름답고도 슬프게 추도하는 것이다. p580

 

32.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1)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계보

2)     두 가지로 실린 진표의 전기

3)     일연이 지닌 점철 신앙에 대한 애착

삼베를 붙들고 황금을 버린다는 말은 <중아함경>에 나오는 비유다.

좋은 것을 보고도 취하지 않는 바보스런 사람을 비유한 이야기다.

 

4)     두 번째 전기에서 구체화되는 미륵보살

5)     뼈를 묻은 자리에 솟아난 소나무

진표는 금산사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무릇 그의 바램은 온 세상을 교화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금산사에서 첫번째 목표를 이루었으니 이제 세상으로 더 널리 나가려 했던 것이다. p593

무릇 미륵 신앙이란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되는 법이다. 그들의 어려운 삶 속에 동참하는 데서 이 신앙의 진수가 드러난다.

제 몸을 버리는 용맹스런 정진과 참회, 그것이야말로 진표가 한 수행의 핵심 아니던가? p596

 

6)     심지가 스승을 잇다.

 

33.   밀교의 한 자락

1)     어떤 사람이 승려가 되었는가.

출가는 그 번뇌로부터의 떠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자체가 슬픔이다.

시구렁창 같은 세속일지라도 거기서 뒹구는 것이 세상살이의 즐거움일까. 그러기에 출가는 번뇌로부터의 결별이면서도 오히려 슬프게 다가오는 것일까? 출가한 이는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라는 선입견이 우리에게는 있다. p603

 

2)     신라의 밀교 승려

누구나 쉽게 보이는 세계 속의 불교가 현교라면 깊이 숨어 은미한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불교가 밀교일 것이다. p605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3)     첫 밀교 승려 밀본

신통력을 미끼로 헛된 이름을 팔거나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것은 밀표의 본령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주자는 것이다. p612

 

4)     혜통과 용의 질긴 싸움

환생담은 물론 기본적으로 불교적 발상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불교적인 요소만이 아닌 민간 신앙의 그것도 함께 들어 있다. p616

 

5)     명랑의 신인종

명랑이 이 때 썼던 비법이 문두루였던 것도 앞서 소개한 바 있다. 결국 그가 신인종의 창시자가 되었다는 대목은 신라에서 밀교가 공인되고 조직화되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p619

노골적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나선 조선조의 정치 이념에 따라 한국의 불교사는 잠시 주춤한다. p620

 

34.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1)     불교적 정신이 바탕 된 사회

여기 나오는 승려나 신도들은 고승이라기보다 다소 평범한 사람들이다.

감통편의 이야기들은 신라 사회가 불교를 받아들인 다음 민간 대중들에게까지 얼마만큼 체화되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p621

구차한 설명을 붙일 것도 없다. 원체 감동스러운 모습은 우리에게 바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p623

이름 없이 살다간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불교를 매개로 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p623

 

2)     욱면이 염불해서 서방정토로 가다.

거창하게 모임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근엄한 예불을 올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p627

계집종의 성불에 자극을 받은 귀진은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적어도 그것은 껍데기가 아닌 진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신라 사회의 힘이다. p628

 

3)     광덕과 엄장

아마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기야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과 현실의 삶에 고단하게 매인 사람은 마지막의 자리가 서로 멀다. p632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회한과 눈물로 범벅된 엄장은 원효 스님에게 달려가 간절히 깨우침에 필요한 가르침을 물었다고 한다. p633

 

4)     선율이 살아 돌아오다.

이야기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상황을 묘사하여 보다 절박하고 애특한 모습이 드러난다. p635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절의 재산을 몰래 훔친 여자의 부모, 저승의 일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곧 욕심 가득한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우리는 욕심이 화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p636

 

35.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1)     절과 호랑이

2)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봄바람과 함께 사랑도 오는 것일까? p640

처녀 호랑이는 제 마음에 맞는 한 남자를 만났으되, 식구들이 모두 당해야 할 재앙 앞에 혼자 목숨을 버려 막기로 다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제 목숨 살리자고 꼬리를 떨어뜨리며 도망가는 다른 형제들과 얼마나 다른지. p642

 

3)     이어지는 신도징의 이야기

4)     호랑이는 호랑이의 굴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해쳤으나, 좋은 처방으로 잘 이끌어 주어서 그 사람들을 치료했다. 짐승이라도 인자한 마음씀이 저와 같으니, 이제 사람이면서 짐승만 못한 이들은 어찌하리. p651

탑돌이의 공력으로 부처님이 보낸 호랑이를 만났다는 식으로 말이다. 한갓 짐승이 할 일이 아니요, 세상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말이다.

 

36.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1)     다시,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도 만남은 만남이라고, 나는 설명했다. 그 만남을 뒤에라도 만남인 줄 알면 그렇다.

오히려 그런 만남이 우리에게는 더 많고, 또 소중하지 않은가? p657

è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들이 정말 많고 소중하다. 만나고 난 한참 후에야 그것이 만남인줄 알기도 한다. 나는 때론 이론 만남에 욕심이 더해져 스치는 인연들도 계속 붙잡아 두려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관계 역시도 욕심이 과하면 그로 인해 소중한 만남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2)     바위 속으로 숨은 뜻

바위를 믿는 것은 우리에게는 민간 신앙의 정통이다. p657

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성시키라는 조각가의 배려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마애불을 그린 신라 사람들을 그렇게 넉넉한 품을 가진 전무가연 해주지 않아도 된다. 그들의 실력이 사실 소박한 대로 그 정도였고,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소중히 여길 뿐이어도 좋다. p659

 

3)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세상

4)     경흥이 우연히 성인을 만나다.

5)     저무는 사회 속의 고민

그 본연의 신분이 승려이므로 스스로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다른 관료들처럼 위엄차게 행차하는 풍경은 도저히 덕이 되지 못할 일이요,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고 무릇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그런 데 바탕을 두고 있다면, 진정한 구도자의 길과 사표가 되는 데서 멀어지는 것이리라.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연은 이런 자기 시대에 경흥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다. 비단 주고 승직을 사고, 남몰래 여자를 두고 세속의 삶에 빠진 자들이 들끓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법을 섬기면서 그 폐단을 알지 못했다. 마을마다 탑이 즐비하게 서고, 여러 백성들이 중의 옷을 입고 숨자, 군대와 농업은 점차 줄어들어 나라가 나날이 쇠약해졌다. 어찌 어지러워 망하지 않으리오. p668

헛된 권위만 살았을 뿐 책임 의식이 없으므로 자기에게 좋은 것만 택하고 힘든 일은 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p670

 

37.   숨어 사는 이의 멋

1)     숨어 사는 것의 뜻

조선조 이후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이 확립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도회지에 산재한 절들이 차례로 문을 닫는가 하면, 전란을 겪으면서 불탄다든지 그 피해가 산지가람보다 더 심한데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라도 중건에 손을 대지 못했다. p671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p672

 

2)     혜현이 고요함을 구하다

헛된 명성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p674

 

3)     낭지와 포산의 두 성인

일연이 아직 젊은 시절부터, 자기가 머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메모해 두었던 듯하다. 이것이 <삼국유사>찬술의 재료가 되었는데, 여기서 그 결정적인 증거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는 일연이 곳곳에서 머물 때마다 써 둔 메모들의 집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양손 스트레이트에 나가떨어진 연회

변재천녀는 불교에서 보이는 최고의 여신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여신이지만 불교에 들어와서 사람의 온갖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흰 옷을 입고 흰 연꽃 위에 앉아 비파를 오른 속으로 퉁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p686

 

38.   불교가 보는 효도

1)     효심의 결정편

<삼국유사>가 불교문화사적 역사와 설화의 모음이라고 한다면 모르되, 승전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책이거나 거기에는 그 책만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 <삼국유사>의 이념이 불교일 뿐이다. p688

어머니의 일생은 외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일연의 향념은 신앙 그 자체다. p690

 

2)     뭔가 이상하다느 생각?

한편으로는 고려장이라고 하는 인습이 생겨난 다음부터,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강퍅해지는데 대한 경계를 이 이야기를 통해 저했다고 볼 수도 있다.

 

3)     두 세상을 산 사람

4)     진정 스님, 일연의 초상화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걱정하는 눈물겨운 광겅이다.

 

39.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1)     향가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하나

재래 신앙과 불교 신앙이 조화하여 신라인의 독특하고 탁월한 불교 문화를 창출해 낸 것이다. 이것은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읽지 않고 고급하된 문화로 옮겨 갔음을 말한다. 향가는 그 같은 특성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p704

아마도 신라인들은 그들의 고유 정서, 이것을 담아 낼 그릇으로서 우리만의 표기 수단을 했던 것 같고, ‘찬길기파랑가, 제망매가. 원완생가같은 절창의 노래를 얻어냈다.

좋은 시인은 좋은 시를 쓰리고 하지만 좋은 시를 알아볼 줄도 안다. 일연은 본명 그런 시인이었다.

 

2)     어떻게 무엇을 노래하였는가?

첫째, 작가에 대한 문제이다. 현존하는 향가의 작가는 화랑이거나 화랑 출신의 승려 도는 승려가 압도적으로 많다.

신라의 통일 이후 상당수 화랑들이 승려가 되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승려와 화랑이 일치되는 부분에서 대다수 향가는 나온다. p709

둘째 향가의 내용에 대한 문제이다. 지금 전해지는 향가는 대체적으로 불교적인 사상이나 정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향가는 서정시이다. 개인의 일상이 개인의 정서 속에서 부딪혀 형상화되어 있다. p709

기실 향가는 일상사의 개인이 부르는 고진한 노래다.

시는 현세의 문제 속에 있으면서, 현세에 안주하지 않는 초월성을 가진다.

다만 같은 화랑 출신이라 해도 관계에 나가 화려하게 출세한 이들은 여기서 제외되며, 현세에서 박탈된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 그들은 그 박탈감 속에서 오히려 현세 이상의 어떤 것을 보고 노래하는 것이다. p710

 

3)     향가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노래의 서두에서 기파랑을 찬양하면서, 하늘의 흰 구름과 땅의 백사장이 가진 개결함을 위 아래로 바탕에 깔고, 거기에 달빛의 은은함을 쏘아 묘사해 낸 솜씨는 일품이다. p711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이것은 곧 신라 사회를 이룩한 미의 근본이다. p712

 

4)     노동요의 원조, ‘공덕가

온 백성들이 힘을 모아 벌이는 사업은 곧 즐거운 잔치로 변한다. 거기에 양지는 당대 불교가 추구한 이념을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였다. p714

 

5)     충성심과 이기주의의 사이, 신충의 원가

신충은 말년에 이르러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세속의 명예와 권력이 좋다고는 하나 인생의 무상함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으랴 p720

 

6)     깨달음의 더할 데 없는 경지, 영재의 우적가

영재는 이 노래를 지어 그들을 조용히 타이른다. 나는 무기 따위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대들도 즐거운 법을 듣는다면 모두 나처럼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재물이 지옥에 가는 근본임을 알고, 바야흐로 깊은 산중으로 피해 가서 일생을 보내려 하는데, 어떻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 p722

 

40.   일연, 혼미 속의 출구

1)     괴승 시비

(누라카야 사이덴, 일본의 불교사학자)가 제기한 문제점은 세가지다. 일연이 시대의 사조에 빠졌다는 것, 사상과 신앙 모두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가지산문의 현풍을 떨처기에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무엇을 가지고 이런 평가를 내렸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2)     일연의 생애

그러나 우리는 일연을 그 생애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 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p728

 

3)     본질 앞에서 수정해야 할 방편

책의 서문에서 일연은, 쉰하나 되던 해윤산 길상암에 주석하여 한가한 시간을 얻자, 평소 꿈꾸어 오던 일을 했다고 적고 있다. p729

모든 기존의 질서는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무너져 버린 다음이었다. 새롭게 서야할 질서, 그것을 일연은 불교 안에서부터 보았던 것은 아닐까?

본질의 문제, 그 앞에서 일연은 기존의 방편을 부수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하여야 하는 일이다. p733

본질 앞에서 방편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멀리 목우화상을 이었다는 말의 함의이다. p734

 

4)     표면적 전범과 이면적 전범

내외적으로 불어닥쳤던 거대한 변화의 조류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사고방식의 해체를 가져왔는데, <삼국유사>는 그 같이 변화된 모습을 담는 그릇이었다. p734

제왕이 일어나려 할 때에, 부명에 맞는다든지 도록을 받는다든지, 반드시 남과는 다른 것이 나타난 다음 큰 변화를 타고 큰 틀을 잡아 나라를 일으킨다. p736

우리나라 삼국의 시조가 신이한 데서 출발했음은 무엇이 괴이한 일이랴고 반문한다. 자존의 극치이다. p738

 

5)     혼미 속에서 찾는 출구

게다가 승려의 신분이라 해서 불교적이거나 점잖은 편의 작품만 고른 것이 아니요, 비록 적은 편수이긴 하나 매우 다양한 모습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한층 제고된다. p738

산문과 달리 운문은 내용과 함께 형식이 중요하므로 형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조건인 문자 체계의 성립은 필수적이었다.

재래신앙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던 사회 중심부에 외래의 불교가 파고 들어오는데 신라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거기에 종속되지 않았다. 재래 신앙과 불교 신앙의 조화아래 신라인의 독특하고 탁월한 불교 문화를 창출해 낸 것이다. p739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 간 일연은 종교와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 승려였다.

그 자신이 원효 스타일의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보였을 터다.

가치 있는 것과 나아갈 향방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실천한 일연의 생애가 막을 내리고, 이어 조선의 건국이 다가오지만, 그것은 견고한 중국 중심 보수주의로의 회귀였다.

è  이건 마치 현재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다. 노무현 정권에서 MB정권으로 바뀌었을 때의 그런 상황 말이다. 당시 얼마나 암울한 기분이었을지 왠지 일연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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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옵
2011.05.09 17:41:13 *.35.224.204
천둥과 벼락이 치면서 비오는................책덮고 푹 자기 좋은 시간이다......고생이 많군.....ㅎㅎㅎㅎ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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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5.16 12:19:32 *.18.66.16
쭌님.. ㅋㅋ.. 책덮고 푹 자기 좋은 시간.. ㅎㅎ.. 비 엄청 오는 날이었나봐요.. (이제서야 봤네요 댓글을.;;) 항상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해요.~!!
쿄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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