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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9일 00시 22분 등록

1.‘저자에 대하여’

고운기.jpg

고운기

 고운기는 삼국유사 전문가로 불린다. 700년전에 쓰인 역사책 한 권을 붙잡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에서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연구한 뒤 연세대 국문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저자는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2001) 등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답게 이 책에서도 적절한 상상력을 가미하고 있다. 그는 “‘삼국유사’를 방금 따낸 과일이나 방금 캐낸 채소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방부제를 친 통조림이라면 요리하기에는 통조림보다 싱싱한 과일이나 야채가 더 좋은 재료 아닐까요. ‘삼국유사’는 시대마다 좋은 요리사를 만나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일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삼국유사는 불교 이야기 일색이어서 포교서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배경이고 무대일 뿐,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사람의 향기 가득한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라고 말하는 저자는 “한국이 커지고,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 유사만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고 말하며 ‘삼국유사’를 “한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책”으로 꼽는다.

 그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 문화 연구는 많은데 비해 정적 텍스트로 연구한 경우는 드물다”며 ‘삼국유사’에 천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삼국유사’를 ‘길 위의 책’이라고 하며 일연의 현장감을 높이 평가했다. 그도 일연처럼 책을 쓰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일연에 관해 남아 있는 문자 기록은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 남아 있는 비문(碑文)이 유일하다. 생몰연대와 주요 활동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연이란 인물을 입체적, 복합적으로 알기 위한 자료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일연의 고향인 경북 경산시 등 그의 행적을 따라가며 지리적 요소를 알아본 뒤 구비 전승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역사에 살을 붙여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신화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 18세기경에 와서야 정립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죠. 우리의 ‘삼국유사’도 계속 진보해야 합니다. ‘삼국유사’가 좀 더 친근하고 보편적으로 된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저자가 있기에 우리는 서양의 문학이나 미술작품을 이해하려면 그 바탕에 깔린 그리스-로마 신화를 알아야 하듯이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 민족 안에 흐르는 정서를 알 수 있게 되고 그로인해 나무랄 데 없이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느끼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연(一然, 1206~1289)

 일연은 칭키스칸이 몽골족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해에 태어나, 최씨 무인정권과 몽골의 고려 침입을 함께 겪는 모진 세월을 살았다. 14세에 출가하여 78세 때는 국사(國師)가 된 고승이었는데, 곧바로 인각사(麟角寺)로 은퇴하여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삼국유사]는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나라를 이루었던 이 땅의 민중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수많은 일화를 적절히 정리하여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일연은 역사를 왕 중심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민이나 지체가 낮은 스님도 이야기의 중심이라면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는데, 이것이 곧 일연의 세계관이기도 하였다. 일연은 생활이 묻어 있는 이야기이고, 민족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는 자료인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을 재발견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일연과 삼국유사

 유사(遺事)는 ‘잃어버린 사실’ 또는 ‘남겨진 사실’이라는 뜻이다. 김부식이 이미 왕명을 받고 역대에 전승되어 내려온 사료를 집대성해 정사(正史)인 삼국사기를 편찬 했으므로, 또 하나의 역사를 편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일연은 그 책에 만족하지 않았다. 김부식의 눈에 들지 않아 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다, 일연이 보기에는 그 남겨진, 또는 버림받은 이야기에 삼국시대 조상들의 세계 인식이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삼국 이전의 이야기를 단군신화나 동명신화 같은 신화 형식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일연이 찾아낸 유사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가 삭발한 진전사를 비롯해 승과에 급제한 뒤 참선했던 비슬산, 오어사, 인흥사, 입적한 인각사 등이 모두 ‘삼국유사’의 현장이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삼국유사’를 집필했지만, 이 집필을 위해 한평생 유사를 수집했던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그가 찾아다녔던 절의 문헌전승과 구비전승들이 자주 인용되는데, 이러한 자료들은 일연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없어졌을, 당대 역사가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던 부스러기들이였다.

고운기가 본 일연

 고운기는 “‘삼국유사’를 ‘길 위의 책’이라고 하며 일연의 현장감을 높이 평가한다. “일연은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또한 이런 현장 감각으로 지배층뿐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담아냈습니다. 봉건시대의 역사가가 민중의 생활사를 담은 역사서를 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죠.”라고 말하고 있다.
 일연은 정치적 감각도 돋보이는 인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일연이 살았던 13세기는 몽골의 침략 등으로 백성들이 피폐한 삶을 살았다”며 그는 공포의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에게 주는 ‘위안의 읽을거리’로 책을 썼다“고 평가한다. 일연은 ‘삼국유사’ 곳곳에서 단군신화를 비롯한 이상적 정치의 모습을 그렸다. 저자는 일연이 ‘권력으로서의 정치’가 아닌, ‘권력에 맞선 창조적 삶의 지속으로서의 정치’를 그렸다고 말하고 있다.

양진
 
그의 공시적인 직업은 웹 컨설턴트다. <왕의 남자>, <질투는 나의 힘>, <영어 완전정복> ,<우리 형>, <아는 여자>, <연애의 목적> 등 유쾌발랄한 홈페이지가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부에서 활동했다. 연세대에 입학해서도 사진동아리 ‘연영회’에 가입해 민속·전통 문화 관련 사진을 찍어 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유적지를 찾아 전국을 누비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91년부터 학교 선배인 고운기씨와 함께 <삼국유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사진을 찍은 결과물이 고운기 씨의 글에 고루 스며들어 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매력적인 피사체가 존재하는데, 양진 씨가 유독 유적지 사진에 매료된 이유가 뭘까? 그는 ‘한결같음’을 가장 큰 미덕으로 꼽았다.
 
“유적지는 제가 언제 가더라도 늘 그 자리에 있어요. 한결같지요. 물론 사라지거나 변하는 곳도 있지만요. 사람보다 경치를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똑같은 풍경이라도 비오는 날, 안개 낀 날의 느낌이 다르고, 갈 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달라져요. 그런 다채로움도 매력이죠.”
 
지금 찾아가는 유적지의 화려했던 모습은 대개 기록으로 밖에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터에서만 느껴지는 생기를 즐긴다. 빈 공간을 채워 주는 자연에 외경심을 느끼며, 바로 그 자리를 콕 찍을 수 있었던 옛 사람들의 혜안에 놀라워한다. 그는 자신의 사진에 그런 생명의 기운을 담고 싶다. 고 한다.


[참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03740 http://news.donga.com/3/all/20101023/32067647/1
http://blog.daum.net/musebalcony/798660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208819
http://blog.daum.net/lim4388/11436192
네이버케스트 인물과 역사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기이(紀異)
이 땅의 첫 나라
 
그렇다면 ‘처음 기준’은 누구의 생각인가? 그것이 맨 처음이 되어야 한다고 본 그 관점과 의식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설령 처음 이야기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실로는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다른 부분부터 시작했다가 뒤 어디쯤에서 슬며시 끼어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연은 그런 편법을 쓰지 않았다. [11]

사실 『삼국사기』는 한반도에서 살았던 지식인층이 중국으로부터 문자와 그와 관련된 여러 문화를 전수 받은 다음, 이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고급스런 저작물에 관한한 적어도 학문을 구사하는 데에서 중국의 본토박이 못지않았다. 거기에 역사의 의미와 역사서 저술의 방법까지 습득하는 것이었으니, 세련된 솜씨로 자국의 역사서를 내는 데 하등 지장이 없었다. 『삼국사기』는 체제나 내용에서 그렇게 태어났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다음 모든 자료를 없애 버렸다는 김부식의 행동 저 편에는 이 같은 의식이 잠재해있었을 것이다.[22]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향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23]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좋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 이었다. [23]
 
→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없어지고 그 틀만 남아버리면 아무리 좋은 것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구려와 북방계
 
난생 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 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43]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영웅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대체로 이 같은 유형으로 지어지는데, 아마도 그 원조는 주몽의 이야기가 아닐까? [45]
 
→ 캠벨의 이야기들이 다시금 생각나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도 영웅이야기의 시작이 비슷하다는 것은 한 뿌리에서 모든 것들이 퍼져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제의 지배층이 우세한 세력을 형성한 끝에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는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에 설명하겠거니와, 일본으로 건너한 백제계는 그 선조들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다시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고구려에서 시작한 북방계 이동의 끝으로 보인다. [52]

신라계와 남방계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앞서 환웅과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가 직접 왕이 된다든지 왕이 될 아들을 낳는 것으로 북방계 민족과 나라의 출발을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57]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정말로 간사스런 꾀다. 실제 자기 것을 꾀를 내어 다시 찾았다면 지혜스럽다고 하겠으나, 남의 것을 빼앗은 것과 마찬가지니, 이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탈해의 인간성을 그다지 탐탁하게 볼 수 없다. 주몽이 동부여 왕실의 좋은 말을 차지하려 썼던 꾀보다도 더 심하다.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78]
→ 신화가 나와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로 다가 온다면 설화는 그럴 법 하다로 다가온다. 세계 곳곳에 있는 이런 설화 이야기들은 한데로 모아보면 정말 지구촌이라는 말이 몸으로 다가 올 수 있을 것 같다.

머나 먼 이역(異域), 아니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올라 와 입신양명(立身揚名)한 탈해. 우리는 여기서 탈해가 비록 왕위에 오르고 그 후 손들어 석(昔)씨 성으로 몇 차례 더 왕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기존의 세력에 둘러싸여 늘 불안해했던 것 같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권력의 자리란 차지하기도 이어 나가기도 어려운 것인가? 탈해의 고민이 깊었음은 분명하다. [86]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어들면 곤란하다. 이런 주장들이 대체로 처음에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는다는 그럴 듯하면서 거창한 명제 아래 시작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대목에 이르면 김일 선수 박치기를 보듯이 흥분하고, 흥분하다 보면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란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살아 있는 역사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92]
→ 과거에 침략을 너무 많이 받아 왔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적 바탕에는 열등감이 깔려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특히나 일본하면 더욱 민감해 지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열등감을 잘 이용해서 지금보다 나아지려는 쪽으로 돌리게 할 수 있다면 유익하게지만 그것을 단순히 분노하고 배척하는데만 사용한다면 스스로를 찌질하게 만들 뿐 남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그런 쇼나 각본으로 비유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프로레슬링을 진짜 격투리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은 재미요 남은 것은 공허감이지 않았던가? 역사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92]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사람으로 바뀐 이 같은 이야기 구조는 『삼국유사』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이 곰이 사람으로 바뀌는 단군 신화에서 시작하여 호랑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바뀌는 김현(金現)의 전설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지만,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 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 [101]

 문득 그 정령은 먼 다른 나라로 갔다. 그런데 정령의 존재를 알고 서둘러 따라온 신라 사람들을 우리의 아리따운 정령들은 맨손 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우리 설화의 기본적인 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수천 년을 이 땅에 자리 잡고 살아온 우리네 사람들의 심성이기도 한다. [102]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112]

밤에 찾아오는 손님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 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 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120]
→ 뭐든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큰 사람들 또한 그들이 잘나기만 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닌 내적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造化)다.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만 있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쩌면 귀신의 세계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듯 한 이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 [134]
→ 그럼 귀신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것은 영향력을 미치지 않고 싶다는 것일까? 즉, 귀신의 세계와 떨어져 살고 싶은 것이 정말 원하는 것이지 않을까한다.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140]

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려야 했던 신라다.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153]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신라의 전반기가 박제상과 이차돈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면, 그 중반기가 김유신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61]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꼴 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방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184]

권력의 끝

화랑은 바로 전쟁 영웅 그들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신라 통일의 8할’은 화랑이 차지해 마땅하다. 그런 그들이 예인이며 남창이라니?

믿지 못할 일이지만 통일 이후 화랑 출신들이 걸어갔던 쇠락의 길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한편 수긍이 가기도 한다. 화랑 가운데 우두머리는 실권을 잃은 종이호랑이로, 무리들은 주인을 잃은 처량한 신세로 이리저리 내쳐졌다. 철저한 토사구팽이다. [205]

가 버린 봄을 돌이키자니 울고 싶을 따름이다. 더불어 심신을 수련하고, 죽을 각오로 누비고 다니던 전당의 피비린내와 말없는 산천이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님 그리는 마음은 다북쑥 구렁에서 잠을 자야하는 현실의 고단함, 또는 이 생을 마치고 돌아가면 한줌 흙 위에 피어날 풀과 꽃들만도 못한 무상함 앞에서 슬픔만 더할 뿐이다. [213]
→ 이때의 화랑들을 생각하면 정말 인생의 덧없음이 무엇인지 느껴진다. 나라를 위해 온 몸 바쳐 일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더할 수 없이 쓸쓸한 말년뿐이었다. 문득 지금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씁쓸해진다.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 꽃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은 노래이다. 손에 잡은 암소도 놓고 그렇게 정중히 꽃을 바치는 노인의 태도야말로 헌신하는 자의 상징이다. 꽃을 탐내는 여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모름지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 바꾸는 사랑이라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226]

꽃을 사랑하는 여자 수로부인, 그리고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천연덕스럽게 요구하던 여자 수로부인, 그가 잡혀 들어간 바다 속은 바닷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발을 굴러야 할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정반대였다. 용이 데리고 나오지 않았으면 부인이 자원해 살겠다고도 했을 법하다. [232]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233]
→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들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첫 성전환증 환자

일견 평범해 보이는 표현의 내면의 속 깊은 울림이 있다. 구태여 요란을 떨지 않는 것이 진정성에 가까운 법이다.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바람 끝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241]

삶의 고통은 죽음이라는 운명적 환경이 만들어 준 것, 도 닦는 사람이라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도 속절없는 인간의 생애를 비유한 솜씨가 비상하기만 하다. 바람은 다름 아닌 ‘이른 바람’ 이다. 아마도 이 대목이 시의 핵심이리라.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 형 아우가 정해지지만, 죽는 데는 순서가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한들, 이다지 이르게 찾아온 죽음에 비록 생사를 넘어서려는 구도자에게라 할지라도 심금을 울릴 일 아니겠는가. [242]

왕이 되는 자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란 차라리 새로운 나라를 열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 같은 예를 고려조에 와서 공민왕, 조선조에 와서 영·정조 같은 이에게서 다시 확인한다. 신라의 원성왕은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왕이었다. [261]

그 자신이 아무리 덕을 갖추었다 한들, 이미 시대가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 빠졌는데, 늘 행운만 따르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살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이 뒷받쳐 주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을 향해 간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소용돌이의 중심에 던져진 사람은 그 세계관이 비극적이다. 경문왕이야말로 그런 비극적 세계관의 주인공이다.
→ 스스로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결국 세상을 벗어나서는 소용이 없는 일인가 보다. 한편으론 사람이 잘 나봐야 얼마나 잘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뱀을 이불 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267]

나라가 망하는 징조

한 집안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듯이, 나라도 흥하고 망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을지언정,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대체로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과학적 증명이나 운수소관을 따지기가 거기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269]

무릇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려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인 이가 여기 무당 하나뿐일까? 딴에는 정직하고자 애쓴 보람 없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고 말았지만, 어련히 그렇게 진행될 일에 토를 단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소귀에 경 읽기도 아니다. [270]

여기서 우리는 일연의 기술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신라 헌강왕대는 사치가 극성했지만 바야흐로 기울어 가는 시기였다. 그 같은 사회는 필연코 성적으로도 문란하기 마련, 엄연한 유부녀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이 장면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처용의 노래와 춤은 그 같은 비극 앞에서 체념한 것일까, 에둘러 꾸짖는 것일까?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삼국유사』다. [284]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무슨 신나는 일이라고 장황히 적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기미(機微)를 보아 사리(事理)를 판단하는 법이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사람이 세상에 사는 한 언제든 잘 되고 잘못되는 징조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거기서 기미를 읽어내라는 간절한 충정으로 보인다. [286]
→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자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말을 들을 준비가 안 된 자들로만 가득차 있다는 것이 더 슬픈 일이다.

지는 해 뜨는 해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아쉬워한들 무엇하랴.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있는 인재마저 죽이는 상황이 반복될 때, 거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멸망을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을 뿐이다. [288]

억울한 일을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박에 하늘이라도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간절해도, 끝내 가슴에 묻어야 할 답답한 현실이 엄연하지 않던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는 아니요, 다만 그 말대로 이뤄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쪽이다. [289]
→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근래 몇 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보면 사필귀정, 세옹지마 이런 말들이 다 무의미해 보인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야 경순왕의 결정이 옳았다. 김부식도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마지막 사론에서 “만약 죽을힘을 다해 싸워 태조의 군사에 저항하다가 힘이 부치고 세력이 다했다면, 왕족이 몰살당하고 피해는 무고한 백성들에게까지 미쳤을 것이다” 고 결론을 내린다.

나 또한 앞서 비슷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교체라면, 어느 개인의 사유물처럼 정권을 휘둘러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것에 비길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 왕조 사회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백성의 힘이다.

그러나 정녕 아쉬움이 있다. 태자의 이 간절한 한마디, ‘천 년 사직’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실리(實理)에만 매달리지 못하는 어떤 다른 논리 아닌 논리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물론 그런 느낌일 뿐이다. [302]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여러 역사학자들이 마치 사금을 모으듯, 고구려와 백제의 잃어버린 역사를 여기저기 역사서에서 그러모아 짜깁기를 해놓고 있지만, 그것이 시원스레 당시를 재현해 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정녕 충분한 자료가 갖추어졌다면, 고구려에 관련해서는 대륙 중국과의 밀고 당기는 과정을 백제데 관련해서는 이웃 일본과의 교류를 자세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고구려의 전성기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중국에 떳떳한 적이 드물었으며, 일본의 초기 왕실이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상정했을 때 그 아쉬움은 커진다. [307]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27]

서동이 쓴 방법은 노래를 통한 여론 조성이었다. 노래에는 그 같은 힘이 있다. 민요에서는 그것을 참요(讖謠) 곧 예언의 노래 일종으로 보는데,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 시절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사실이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일의 흐름을 바꿔놓기 십상이다. [327]

서동은 비범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지만 귀하고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공주를 꾀어내는 꾀도 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후천적인 교육의 중요성은 여기서 발휘된다. 공주는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완전한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다. [333]

거기에 제3의 조력자(助力者)로 지명법사가 등장한다. 그의 도움은 서동과 공주 두 사람만의 조화에서 공주의 부모까지 아우르는 화해로 확대되고, 왕이 되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이런 것들의 조화가 빚어내는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여기서 등장인물을 적절하게 배역시킨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334]

대체적으로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343]

견훤, 비운의 영웅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견훤은 제 힘만 믿고 오만스럽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는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어담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능숙했다. [353]

절정의 순간에 보낸 견훤의 편지와, 예봉을 피해 가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왕건이 보낸 답장에서 우리는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싸움터의 칼바람이 스산하게 묻어 있는, 그러면서 기(氣)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붓놀림은, 그대로 칼 없이 겨루는 한판이다. [354]

반역을 당한 자는 비참하지만, 반역자가 아들인 경우엔 슬픔은 이중으로 겹쳐오고, 급기야 천륜을 팽개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삼기에 어디에도 없을 지경을 만들어 낸다. [261]

신비의 왕조, 가야

먼 뱃길을 지켜 주는 수호신은로서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항해(航海)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찬란한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苦海)가 있다. 그 길을 지켜주는 석탑.

절에는 어느 곳에나 석탑을 세운다. 그 탑의 의미가 여러 가지나, 절을 고해에 떠가는 배로 비유한다면 탑은 여기 왕후가 싣고 왔다는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378]

흥법(興法)

불교로 보는 역사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 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394]

순교의 흰 꽃 이차돈

이미 몸을 버리기로 한 순교자의 절개는 눈물겹거니와, 이를 말리는 왕의 애정 또한 깊다. ‘살을 베어 저울로 단다’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시비왕이 고행을 할 때였다. 메추라기가 매에게 쫓겨 시비왕의 품으로 들어왔다. 왕은 메추라기도 살려야겠고 매도 굶길 수 없으므로, 자기 살을 메추라기의 몸만큼 베어서 저울에 달아 매에게 먹였다. 정녕 법흥왕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406]

오늘 우리는 사실을 따지는 것이 중요할까, 사실이 무엇인지 거기 실린 순교한 자의 마음을 고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까? [407]
→어차피 먼 과거의 일에 대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건이 그 시대의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현재에 그것을 대입해 보아 어떤 것을 유념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주는 것이 역사의 역할이 아닐까?

탑상(塔像)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근 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어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417]

그것은 힘만으로 공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태자의 말이 함축된 의미에다, 오직 인연 있는 땅에서만 가능하다면 신라는 바로 그런 인연을 갖춘 곳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배어있다. [424]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 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44]

눈에 대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으로 보이게 했다는 학의 깃털은 곧 그를 출가로 이끄는 방편이었다. 그리고 그 깃털의 진짜 주인은 오대산의 다섯 성중이요, 그 가운데서도 문수보살이었으리라. 처음부터 그에게는 문수보살의 계도(啓導)가 걸려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데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454]
→ 내가 뭔가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만큼 나는 지치게 되는 것 같다. 차라리 그 의도를 비우고 나의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연을 만나게 될 때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더욱이 거기에서 자신은 죽더라도 새끼들은 지키겠다는 어미 꿩의 애타는 모습이 충원공의 마음을 흔들었다.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은 매의 모습이 더욱 감동적으로 겹쳐졌을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이 모두 놀라웠다.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짐승이며, 욕심을 내자면 한없을 인간으로도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장면 장면들이다. 꿩이나 그 새끼 몇 마리를 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린 어떤 메커니즘이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그런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470]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2000년 가을, 중동의 예루살렘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다시 벌어졌었다. 그 현장을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에 눈길이 머물렀던 사람들은 날아오는 총탄을 두려워 떨고 있는 한 소년과 소년을 지키려고 온몸으로 막고 있는 아버지, 그러나 사격을 중지해 달라는 아버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에 총을 맞고 아버지의 품에서 숨져가는 소년을 보았을 것이다.

그 두려운 눈빛을 보고도 총을 쏜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정작 누가 총을 쏘았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양쪽 모두 열렬히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신은 무엇을 가르치길래 그토록 매몰찬 짓들을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굴정현의 꿩 모자가 마치 소년 부자의 이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 꿩 식구들을 살린 조상을 가진 후손은로 우리는 그나마 착한 사람들일까. [471]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나는 마음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473]
→ 그 원칙이 무엇이길래 저버리지 못했던 것일까? 나를 지탱해 주리라 믿었던 것이기에 진정으로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이 내 눈앞에 제 발로 찾아왔을 때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겠지.

자비롭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성격을 가진 이가 관음보살이다. [481]

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쫓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 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을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 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헌신인지도 모른다. [481]

낙산사의 힘

그가 관음보살인줄 알았건 몰랐건 만나기는 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에서 박박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까. 만났으면서도 만난 줄 몰랐을 뿐이다. 그런 뜻밖의 만남이 곧 보살과의 만남임을 영원히 모르고 지났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 어떤 큰 사건으로 인한 큰 깨달음을 통해서만 삶의 전환점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듯 꼭 큰 인물이 아니어도 우리들 삶에 조력자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열린 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을 넓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의상이 치밀하고 정성스럽게 진신을 만나는 과정은 하나의 전범을 보여 주지만, 세상에 사는 보통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같은 경지에 오르기도 어렵고, 그럴 계기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에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나는 이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 한 만남’이라 명명하였다. 이런 만남은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다. [497]

굴산사가 있는 지금의 명주군 구정면 학산리는 다름 아닌 범일의 고향이었다. 여기 재궁마을의 우물가 한 바위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여자는 표주박에 해가 담긴 물을 마시고 와서 잉태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범일이다.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499]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허망할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508]

의해(義解)

운문사 이야기

운문은 구름의 문, 아마도 운수(雲水)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인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527]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려나

내가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를 터인데

자루 빠진 도끼라는 비유야말로 얼마나 기이한지, 여성을 상징함과 아울러 본디 자루가 있었음을, 그러니까 지금 혼자되어 사는 여성임을 동시에 말한다. 이미 이 노래 속에는 어느 특정한 인물이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라면 파계를 무슨 자랑으로나 여기는 덜된 승려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하늘 괴는 기둥을 만들리라는 두 번째 줄에서 우리는 그가 진 속뜻을 짐작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원효의 품격을 지켜 주자는 사람들의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전설은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전승자 사이에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535]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537]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배우들이 노는 도구란 일반 민중들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 것이었으니, 거기에 빌려 어려운 불교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537]

“지난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든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551]

의상, 화엄의 마루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으면, 비록 풀이 가득 덮인 언덕에 금을 그어 ‘이게 성곽이다’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감히 함부로 넘지 못할 것이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지 못하면, 아무리 장성이 있더라도 재해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563]

솥 안의 국맛은 한 점의 고기로도 충분하다. [567]

국난을 극복하고, 부석사 같은 큰절을 지으며 화엄종을 전한 의상의 활동은 실로 눈부시다. 불도(佛徒)를 닦기로 맹서한 이후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원칙대로 정진한 사람으로 보인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부처의 화신이라고 했다. 일연이 의상을 법사라고 부른 까닭도 이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법사란 말속에는 의상의 교조적 신앙 태도가 함의된다. [568]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나는 거기서 참으로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모진 것과 다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벼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데서 생긴 모짐이다. 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571]
→ 삶의 매 순간을 그것이 어떠한 상황이든에 상관없이 진실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순례자의 마음인들 범인의 그것에 조금이나 가까운 것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수구초심(首丘初心) 하나일까? 혜초는 다른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 고향은 하늘 끝 북쪽 땅 한 모서리 서쪽은 남의 나라

남천축 해 떠도 기러기 한 마리 없어 누가 내 집으로 돌아가리

기러기 발목에 편지를 묶어 날렸다는 고사가 있거니와, 그런 기러기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 서는 막막한 심정이 잘도 그려져 있다. [576]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전쟁이 끝나고 어수선한 시점이다. 호남 출신의 스승은 충청 출신의 제자를 키우고, 다시 그는 영남 출신의 제자를 키우는 이 3대. 이 3대를 묶었던 것은 『점찰경』과 간자(簡子)지만,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을까? 민족과 전쟁과 화합-이런 말들이 내 머리 속에는 오가고 있다. [582]

신주(神呪)

밀교의 한 자락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 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했다. [604]

평범한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자(尊者)들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의 출가자들 속에 연면히 내려오는 출가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04]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607]

감통(感通)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그런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분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 사회의 고갱이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첫 번째 스트리퍼’라고, 나는 이 대목을 농담처럼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 농담 속의 진담을 아는 사람은 다 알리라. [623]

거창하게 모임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근엄한 예불을 올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껍데기 미타 신앙이 가진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자는 목적이라기보다, 제 육신을 잊고 끝내 버리고만 욱면이라는, ‘평안한 시기의 부유한 층’의 계집종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627]

계집종의 성불에 자극을 받은 귀진은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적어도 그것은 껍데기가 아닌 진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신라 사회의 힘이다. [628]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은 약속한 바가 있었다. 광덕이 그 약속을 지키는 사이 엄장은 한눈을 팔았다. 아미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기야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과 현실의 삶에 고단하게 매인 사람은 마지막의 자리가 서로 멀다, 그러나 엄장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내였다. 늦게나마 생각을 바꾸고 성실히 수행하여 마침내는 친구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광덕과 엄장의 성불은 한결같이 여자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앞서 소개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서처럼 위 예의 여자도 관음보살의 현신이다. [632]

역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633]

절의 재산을 몰래 훔친 여자의 부모, 저승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은 곧 욕심 가득한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선율의 환생은 그런 그들에 대한 경계이지만, 사실 살아 돌아와 저승의 일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욕심이 화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636]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산 속에서 세 오빠 악한 짓 견딜 수 없어

꽃다운 잎에서 대신 죽겠노라 한마디

의리의 소중함 몇 가지로 들어 죽음도 가벼이

수풀 아래서 몸을 내놓았네, 떨어지는 꽃처럼. [644]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게 슬며시 다가온다. 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656]

그렇다면 누가 그 성인을 만나는가? 의상 스님과 같이 치밀하고 정성스런 사람이 만날 것이며 효소왕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가에서 외치듯이 기도하는 무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말한다. “하늘나라에 이르거든 하느님은 저들을 모른다 할 것이다.” 그리고 첨언하지 않았는가, 골방에 숨어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 하느님은 다가올 것이라고. [656]

그러나 우연히 스치는 듯 한 만남도 만남은 만남이라고, 나는 설명했다. 그 만남은 뒤에라도 만남인 줄 알면 그렇다. 효소왕은 그것을 알았기에 부랴부랴 그 뒤를 쫓아갔다. 다시는 그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절을 짓고 공양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그런 만남이 우리에게는 더 많고, 또 소중하지 않을까? [657]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670]
→ 시대마다 성인이 나타나지 않는 때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냐로 인해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도 있도록 드러날 수 있고 아니면 오히려 배척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우리는 과연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피은(避隱)

숨어 사는 이의 멋

“스님, 어디 가시오?”

“나라에서 분이 넘치게도 벼슬을 주려 하기에 피하는 것이올시다.”

“여기서 팔면 되지 뭐 멀리까지 가며 수고하시오. 스님은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으시는 구먼.”

연회는 그 말이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듣지 않았다.

주먹을 날리기 이전의 잽이다. 잽은 적당한 거리를 재기 위한 첫 손질이 아닌가. 그 다음에 날아올 정타를 연회는 아직 모른다. 사실 왕이 한번 자리를 주겠다고 하면 어디를 가 있은들 안 찾아오겠느냐, 네 몸값 올리려는 짓이나 마찬가지지 뭐, 하는 듯 한 노인의 말이다. 숨는다는 것은 오리려 잘난 체 하는 데 불과하다. 연회는 거기서 자신도 모르는 제 속마음을 들켰기에 불쾌했는지 모른다.

이제 날아오는 레프트 스트레이트.

몇 리쯤 더 갔는데, 시냇가에서 할머니 한 사람을 만났다.

“스님, 어디 가시오?”

연회는 앞에서처럼 대답했다.

“앞서 사람을 만나셨나요?”

“한 노인이 나타나 저를 매우 욕보였지요. 화가 나서 오는 길이랍니다.”

“그 분이 문수대성이신데······. 어찌 그 말을 듣지 않으셨소?”

한 방에 연회가 휘청한다. 평범한 노인네였다면 모르되, 문수보살이 하신 말씀이라면 거기에 분명 뜻이 있다. 연회로서야 비로소 제 속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연회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고 송구스러워, 곧 노인이 있던 곳으로 돌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뉘우치듯 말했다.

“성자의 말씀을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래서 돌아왔나이다. 시냇가의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신가요?”

“변재천녀일세.”

이어지는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 방이다. 연회의 두 눈에 불빛이 번쩍였을 것이다. 연회는 무언가에 들떠 있었다. 그런 그를 무상의 도 앞에 쓰러뜨리는 문수보살과 변재천녀의 합동 작전은, 연회로서야 아프지 그지없었겠지만, 읽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연회 스님, 까불더니만 정통으로 맞았군. 그리고 그 미소 뒤에 다가오는 깨달음. [684]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686]

효선(孝善)

불교가 보는 효도

삼뇌는 소·양·돼지를 일컫는다. 칠정은 일곱 개의 솥에다 각각 음식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것이므로 이 둘을 합치면 그지없는 진수성찬이다. 그런 진수성찬으로 대접은 받은들, 이들이 수련에 들어도 이르는 것만 못하다는 어머니의 확고한 신념과, 남의 집 문 앞에서 걸식을 해도 좋다는 각오, 그것이 진정을 진정이게 한다.

어쩌면 참된 효도가 무엇이겠냐는 일연의 질문을 담고 있는 진정의 이야기, 여덟 살에 어머니 곁을 떠나, 그 어머니가 70년을 홀로 사시도록 이 세상에서 외롭게 해 드렸던 자신의 삶에 대한 답변이지 않았을까? [703]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시는 현세의 문제 속에 있으면서, 현세에 안주하지 않는 초월성을 가진다. 신라시대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화랑 밖에 없다. 다만 같은 화랑 출신이라 해도 관계(官界)에 나가 화려하게 출세한 이들은 여기에 제외되며, 현세에서 박탈된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 그들은 그 박탈감 속에서 오히려 현세 이상의 어떤 것을 보고 노래하는 것이다. [710]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이것은 곧 신라 사회를 이룩한 미의 근본이다. 저 불국사 석굴암의 부처님이 남자로 보기에는 부드럽고 여자로 보기에는 위의(威儀)가 넘친다는 평처럼, 이 나라를 일으키고 지킨 조상들은 두 가지를 조화시켜 깊은 미의식을 창조해 냈다. [712]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日遠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이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 된 것은

강호(强豪)님,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兵器)를 마다하고

즐길 법일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그마한 선업(善業)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720]

영재는 이 노래를 지어 그들을 조용히 타이른다. 나는 무기 따위를 두려워 않는 사람인데, 그대들(해독시에는 ‘강호’라는 표현을 썼다)도 즐거이 법을 듣는다면 모두 나처럼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도 자랑할 일은 못 된다. 마음의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볼 수 없다는 첫 대목이나, 조그마한 선업을 행하고 자랑이나 늘어놓으랴는 마지막 대목을 음미해야 한다. 도의 큰길은 여전히 어려운 법이다.

노래를 듣고 감동한 도적들은 비단 두 필을 내놓는다. 영재는 웃으며 말한다.

“재물이 지옥에 가는 근본임을 알고, 바야흐로 깊은 산중으로 피해가서 일생을 보내려 하는데, 어떻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

노래 한 곳에도 감동하는 도적들이나, 한 구비 너머 두 구비까지 내다보는 영재의 깨달음이나, 모두 놀라운 경지에 있다. [722]

일연, 혼미 속의 출구

우리는 일연을 그 생애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 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비록 작은 나라로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그는 민족의 자존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그것을 그는 불교적 인식 세계에서 불국토(佛國土) 사상으로 이었으면, 만년에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에 거처하면서 정리한 『삼국유사』에 여실히 표현해 놓았다. [728]

신라 사회는 고대 삼국시대에서도 중국의 문물을 가장 늦게 받아들였지만 가장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 재래 신앙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던 사회 중심부에 외래의 불교가 파고 들어오는데 신라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거기에 종속되지 않았다. 재래 신앙과 불교 신앙의 조화아래 신라인의 독특하고 탁월한 불교문화를 창출해 낸 것이다. 이것은 신라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급화된 문화로 옮겨 갔음을 말한다. 향가는 신라 문화의 그 같은 특성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739]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지금처럼 자가용은 없었기에 기차며, 버스며 시간에 맞추어 닥치는 대로 타고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차가 없으면 무작정 걸으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7백 년 전으로 돌아가 일연도 걸었을 그 때 그 길을 그려보기도 했고, 탑만 남은 빈 터에 절을 일으켰다가 허물기도 수 없이 했다. [743]

다시 읽는 『삼국유사』에서 찾아낸 소중한 한 가지, ‘사랑’을 담아내고 싶었다.

황룡사 터를 배경으로 하얀 별빛과 노란 가로등 불빛에 처연히 빛나던 분황사 당간지주에 서린 원효의 고독한 사랑, 점점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부석사 석등에 묻어 있는, 온갖 번뇌에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켜 내는 의상의 순결한 사랑. 몸통만 남은 꺼진 불상을 위해 촛불을 밝히는 촌노의 손끝에 실린 욱면의 순박한 사랑. 낭산 너머로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먼발치에서 까치발로 서성대는 익모초에 담긴 지귀의 짝사랑.

이런저런 사랑을 찾아다니다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초롱초롱한 아이들과 아내는 내가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내가 찍어온 평범한 사진에도 무한대의 감동을 보이며 힘을 실어 주는 것도 아내와 딸의 몫이었다. [744]


3. ‘내가 저자라면’

 저자가 “일반인들이 ‘삼국유사’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에 맞게 기술된 해설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140여개 조목으로 나누어진 ‘삼국유사’를 40개 항목으로 재분류해 이해를 도왔습니다.” 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삼국유사 해설서이다. 저자는 내용을 단순히 한글로 풀어 낸 것이 아니라, 삼국유사의 이해에 필요한 각종 이야깃거리를 추가로 내놓고 있고, 사진작가 양진씨의 컬러사진과 신라왕위 계승도 등이 도표와 함께하고 있어 책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삼국유사’는 다른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대사의 여러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화와 설화를 품고 있다.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부터 원효대사의 일화, 피리로 풍랑을 일으켜 왜구를 혼내주었다는 만파식적, 귀신과 여우들을 부려 다리를 건설한 비형랑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이것이 800년 전 태어난 일연이 쓴 ‘삼국유사’가 여전히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그 안의 역사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모로 해석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우리가 삼국유사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는 이유가 되어 준다.
예를 들면,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편에서와 같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에서 수동적인 읽기가 아닌 능동적인 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고, ‘운문사 이야기’에서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시대의 이념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주지 못한 점을 들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적절한 이유를 들어 비판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효와 혜공 스님의 장난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부분들은 책 읽는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게 해주고, ‘감통’ 편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감동이 불교를 매개로 진하게 펼쳐지고 있는데, 주인공들은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삼국유사 뒤편에서 따뜻하고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하마터면 흘려버릴 이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에 저자는 특별한 감동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도 책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상당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가는데 있어 지루하지 않다.

저자는 삼국유사의 현장을 20여년동안 찾아다니면서 일연의 흔적을 찾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통하여 말하고 싶었던 것을 읽어내려고 애썼기에 삼국유사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민족의 정체성은 정체성대로, 가슴으로 반드시 느껴야하는 민중들의 평범하지만 소박한 감동은 감동대로 맘껏 느낄 수 있도록 해설을 자세히 하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서를 읽을 때는 적힌 내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당시의 현실과 맞춰서 어느 정도 현실성 있는 해석을 유추해 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 어렵긴 하지만 다양한 해석을 상상해 낸다면 역사는 재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은 역사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삶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의 답사라고 말해주고 있고 여러 가지 상상들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역사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게 해준다.

보완점이라기보다 추가가 되면 어떨까 하는 부분은 물론 책에 실린 곳을 모두 가 볼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 땅에 사는 우리가 꼭 한 번쯤은 가서 우리 선조들의 정취를 느껴봐야 할 곳을 뽑아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곳에 가서 꼭 봐야 할 것들에 대해 부연설명해 주는 챕터를 넣어준다면 좀 더 쉽게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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