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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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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1일 08시 39분 등록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三國遺事)

* 일연(一然) 지음,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 2002.04.10

1. ‘13세기, 자주적 한반도(저자에 대하여)

■ 일연 (1206~1289)

일연.JPG

一然

 

그가 태어난 해는 몽골이 대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천자의 나라, 중국이 자신들이 오랑캐라 부르던 원나라, 몽골에 복속되는 장면을 목도하고 몽골이 한반도로 내려와 국가를 위태롭게 하던 때였다. 그야말로 천지가 뒤바뀌고 바다가 엎어지는 시대적 전환기였다.

안으로는 최씨 무인 정권이 들어섰고 불교가 국교로 인정되던 때였으니 유교적 고리타분함으로 쓰러져가는 제국인 중국을 마냥 천자의 나라로 우러르지는 않았을 터, 대등한 힘의 외교가 동아시아에 펼쳐지던 때였다.

 

이러한 때 일연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내용인 즉, 단군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땅의 처음과 왕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그야말로 遺事였다. 오랜 사대주의를 끊어내는 자주적 역사가 한 나라의 國師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13세기 한반도의 가장 진보적이자 자주적인 사람이었으며 그가 국사였던 점은 그 나라의 국력을 넘어선 훌륭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 지금의 경산)에서 태어났고 속명은 견명(見明)이다.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했다. 이어 지금의 대구광역시 아래 비슬산(琵瑟山)의 보당암(寶幢庵)으로 옮겨 수년 동안 머무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에 몰두하였다.

 

"생계(生界), 즉 현상적인 세계는 줄지아니하고 불계(佛界), 즉 본질적인 세계는 늘지 아니한다(生界不滅 佛界不增)."는 구절을 참구(參究)하다가 깨달음을 얻어서 "오늘 곧 삼계(三界)가 꿈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가 작은 털끝만큼의 거리낌도 없음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의 나이 44세 때인 1249년 남해의 정림사(定練寺)로 옮겨 주지 노릇을 하는데 이 때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라는 저서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1277(충렬왕 3)부터는 충렬왕의 명에 따라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1281년까지 살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이때에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왕이 그를 국사로 임명하고 곁에 두려 하지만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1289년 그의 나이 84세를 일기로 죽게 되는데 6월에 병이 들자 7 7일 왕에게 올릴 글을 쓰고, 8일 새벽 선상(禪床)에 앉아 제자들과 선문답(禪間答)을 나눈 뒤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입적하였다고 한다.

 

연대 별 요약

1219년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됨

1227년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하여 장원인 상상과(上上科)에 급제

1236년 나라에서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승계(僧階)

1237년 다시 선사(禪師)를 더함

1259년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 받음

1264년 인홍사 주지가 되어 후학들을 지도

1282년 국존(國尊)으로 책봉됨 원경충조(圖經沖照)라는 호

 

고운기

고운기.JPG  

그는 대학의 교수다.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삼국시대의 아름다운 일들을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는 우리나라에서는 몇 되지 않는 대중을 위한 역사학 평론가다. 교수라는 직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질박하다.  반면, 사물을 보는 그의 눈은 매섭다. 그 눈에서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에 투영된 모든 의도들은 한 올도 걸치지 못한 채 벗겨 지고 농락 당한다.

 

그는 삼국유사에 빠져 사는삼국유사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학원 박사 과정 이후 줄곧 삼국유사에 천착해 살았고 2009년부터는 이른바스토리텔링 삼국유사시리즈에 몰두,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을 펴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국문학자이면서 삼국유사라는 역사서에 흠뻑 젖어 사는 독특한 학자인 것이다.

 

그는 시인이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는 삼국유사라는 깊고 폭넓은 문학적 자산을 머금고 시를 쓴다. 500년 전의 일을 오늘로 만유인력 의 힘을 빌려 끌어와 글을 쓴다. 그의 시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올린다.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나를 뒤덮는 밤의 어둠 속에서/ 어떤 신이든/ 내게 불굴의 영혼을 주심을 감사하노라(중략)/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삼국시대지도.JPG

초기 삼국시대

 

2. ‘三國遺事(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대표되는 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은 사대로 요약된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문화에 압도당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념의 틀은 우리에게서 다시 만들어져야 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p. 4)

 

Ü 들어가는 말부터 묵직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책, 기대 된다. 일연이 천착한 문제는 바로 이런 큰 틀 안에서의 stance를 알고 싶어한 것 같다.

 

□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선비들이야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고 한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 주는 데 반해,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 중심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p. 5)

 

Ü 일연 받은 시대적, 신분적 어드벤티지다. 이로써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작품이라는 말이 힘을 받는다.

 

이 땅의 첫 나라

 

□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3세기의 일연 같은 이는 그 점을 간파했던 사람이다. (p. 12)

 

Ü 눈치의 문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발목을 잡았구나. 나라도 어쩌지 못하는 이 눈치의 외교학이 이 땅의 문화가 되어 버렸다. 눈치보고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 우리네 민간 신앙에서 3 7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한 데서 자주 쓰이고 꺼린다는 것은 민간 신앙적 의식에서 특별히 조심한다는 의미로 풀이 될 수 있다. (p. 17)

 

□ 단군신화는 창세신화인가 아니면 건국 신화인가.

세상이 아니라 나라다. (p. 21)

 

Ü 세상은 있었으나 나라가 없었다는 얘기겠다. 나라가 있었으되 위정자들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았을 수 도 있겠다. 이어서 저자는 의미 있는 말을 한다.

 

□ 지난 날 지구가 빙하기를 통해 몇 차례 뒤집어졌음은 이미 과학적 상식에 속한다. 단순히 현재 살고 있는 인류만을 기준으로 창세를 말하기가 조금은 우습지 않은가?

공동체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제어하는 힘이 하늘에서 왔다는 정당성을 설명하면 그만이다. 단군신화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p. 22)

 

Ü 역사도 민족도 사회도 어깨에 있는 힘 좀 빼고 바라보자. 멋진 시각이다.

 

13세기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 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때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가 힘을 잃는 대신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다. 삼국유사는 그 변화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는다. (p. 24)

 

Ü 삼국유사의 역사적 스탠스다.

 

□ 고구려인의 기개를 한껏 살리면서 고주몽의 생애를 장황히 읊은 이규보, 시로 쓴 이 나라의 역사 제왕운기의 이승휴, 그런 이들이 줄을 잇는 13세기였다. (p. 25)

 

Ü 사회적 자산이 임계치를 향해 간다.

 

□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p. 34)

 

□ 난생 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p. 43)

 

Ü 이 문장 이후 그 의식을 설명하는 듯 했으나 저자는 그냥 지나쳤다. 그 리추얼을 생각해보면 비로소 세워진 국가라는 통치체계는 기존의 공동체가 지니고 있던 부락, 촌락 개념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이겠다. 구성원의 수도 대규모이며 전쟁과 먹고 사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정치화 시키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야말로 리더쉽이 도마에 오르게 될 것이겠고 정당성이나 지지기반이 부족한 리더는 쉽게 배척될 수 있지 않았겠는가. 난생 신화는 신격을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민심이반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위정자의 장치로 보인다. 맞는가. 모를 일이다.

 

□ 이들은 나중에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오간, 마려, 등의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 대 따르는 백성들이 많았다. (p. 48)

 

Ü 북방계 나라, 부여, 고구려, 백제 중 백제 건국의 모습이다.

 

□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백성들이 매우 기뻐했다 하여 나라 이름을 고쳐 백제라 했다. 이것이 곧 백제의 탄생이다. (p. 49)

 

□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는 그 선조들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다시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고구려에서 시작한 북방계 이동의 끝으로 보인다. (p. 52)

 

□ 삼국 사기가 여섯 부족을 조선의 유민이라 한 데 반해 일연은 여섯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되도록 이성적 판단에 맞아 들어가는 것을 추구했던 삼국사기의 세계와 일연 사이에 놓이는 차이점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p. 54)

 

Ü 遺事인 이유다.

 

□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을까? (p. 56~57)

 

Ü 민족 사학도 좋지만 일연은 오리지널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있었던 듯 하다. 난생의 개념과 같은 선민적 기술이겠다. 나는 이런 오리지널, 민족, 혈통 같은 단어가 왠지 조금 위태롭게 느껴진다. 난생의 연상 단어는 독보적, 때 뭍지 않은, 순수, 선민, 순혈, 수태고지, 민족, 배타, 전쟁, 폭력

 

□ 박혁거세가 태어나던 날 알영정이라는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서는 옆구리로 계집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곳의 이름을 따서 알영부인이라고 했다. 이 계집아이는 열세 살이 되던 해 신라의 왕후가 된다. (p. 58, 사진 설명)

 

Ü 인간이 세멜레가 헤라의 계략으로 제우스의 광배에 불타 죽고 난 뒤 뱃속의 아이를 제우스가 품어 허벅지로 낳은 것이 디오니소스다.

 

□ 서연산은 선도산의 다른 이름이다. 이 산은 지금 경주 서쪽에 자리잡은 높이가 380m로 나지막하지만 예로부터 경주의 진산이요 사람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불리었다. (p. 63)

 

Ü 조셉 캠벨은 성지라는 개념에 대해 자신의 책 신화의 힘’ 173페이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어서, 세계의 중심에 있는 성스러운 산이라고 한 것은 사우드 다코타에 있는 하아네이 봉우리입니다. 블랙엘크는 그러나 그런 산은 도처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신화적 깨달음입니다. 세계의 중심에 있는 산은 ‘axis mundi’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개인주의 라고 번역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면 중심은 언제나 다른 사람 안에서 우리와 마주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바로 신화적인 홀로 서기입니다. 우리가 곧 중심에 있는 산이고 이 중심에 있는 산은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

 

□ 치아 많은 이가 되는 왕 자리? 그래서 왕도 닛금이라 불렀다는 이 기이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석탈해는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사정이 있었는가.

아마도 그런 사정이 있다면 탈해는 다음을 기약했으리라. 왕의 사위까지 되었지만 탈해로서는 서라벌이 아직도 남의 동네다. 뭔가 자신의 기반을 확실히 닦은 다음 굳건한 위치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례왕은 왕위에 올라 34년을 살았다. 탈해로서는 다음 차례를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다. (p. 73~74)

 

Ü 탈해, 기다려 쟁취하는 자. 정점을 위한 둘러 가는 자. 달콤함을 위해 지금의 쓴 맛을 견디는 자.

 

□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다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p. 78)

 

□ 머나 먼 이역, 아니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올라 와 입신양명한 탈해. 우리는 여기서 탈해가 비록 왕위에 오르고 그 후손들이 석씨 성으로 몇 차례 더 왕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기존의 세력에 둘러싸여 늘 불안해 했던 것 같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권력의 자리란 차지하기도 이어 나가기도 어려운 것인가. 탈해의 고민이 깊었음은 분명하다. (p. 86)

 

Ü 저자는 탈해에 대한 연민이 깊다.

석탈해란 이름은 늑대와 춤을형식을 사용하자면 괘짝 열고 태어나쯤 되겠다.

 

□ 연오랑과 세오녀는 부부다. 어느 날 해초 따던 연오를 바위가 태워 일본으로 간다. 일본에서 그는 왕이 되고 그 바위가 다시 세오녀를 태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비가 된다. 이때 신라는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 사신이 건너가 복귀를 청하자 연오는 왕비가 짠 비단을 주고는 그것을 가지고 제사 지내라 하고 그 말에 따라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예전처럼 보였다. (p. 93~94)

 

□ 연오와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이었다. (해와 달 격의 존재) 그들이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의미로만 풀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일연도 주석을 통해 일본제기를 살펴보면 앞뒤로 신라 사람이 왕이 된 적이 없다. 이는 곧 변방의 작은 왕이요 진짜 왕은 아니다고 붙여 놓았다. 정치적으로만 자연 현상이 사실로만 보지 말라는 주문일 것이다.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p. 99~100)

 

□ 이는 일연 자신이 직접 답사한 곳의 이야기를 적을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종결법이다. (p. 102)

 

Ü 결국 땀이 없는 결실은 없었다. 부지런히 다녔고 다닌대로 거두었다. 인간에게 살던 곳을 떠나 여행 한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 박제상이 첩보원 같은 신분으로 일본에 들어가고 왕자를 구출한 다음 모진 고문을 받으며 끝내 목숨을 잃는 사건의 전말, 거기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 쪽에 있다. 실성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일연의 기술에서 그것은 더 명료해진다. 좀체 흥분하지 않는 일연의 붓끝이 여기서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p. 110~111)

 

Ü 근데 의문이 생긴다. 일본은 왜 볼모 미해에 집착했는가. 미해를 볼모로 취하는 것이 전쟁 억제력을 가졌던 것 일까. 아니면 전쟁 당위성을 부여했던 것 일까.

 

□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p. 111)

 

Ü 사기열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 전쟁은 적개심을 필요로 한다. 비록 고려가 자원하여 벌인 것이 아닌, 몽고의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먹기 식이었다고는 하나 전쟁은 전쟁이었다. (P. 119)

 

Ü 이 무렵 쓰여진 삼국유사에 일본이 우호적으로 나올 리 없다.

 

□ 드러내 놓고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을 받아들인 여자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은 낳게 된다. 그리하여 야래자 곧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낳게 하는 데서 일차 역할이 끝난다. (P. 120~121)

 

Ü 신화적 얼개다.

 

□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끼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P. 137)

 

□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 데서 더욱 커진다. 불교가 먼 나라에서 전래된 이방 종교가 아니라 이미 전세에 인연을 마련한 우리 종교하고 생각한 신라인들의 본지수적 불국토 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밑바탕이었다. (P. 144)

 

□ 신라의 경우, 비록 수용이 늦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철저히 자기화 되어 정착되었으므로 생경한 외래 사조에 휘둘리지 않았다. (P. 150)

 

□ 승려의 입장으로 실생활에 필요한 인륜 법칙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본디 불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것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신라 불교다. (P. 152)

 

□ 신라는 당시 중국과의 외교에 있어서, 일단 침공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도 없고 당나라와 화친하면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할 수 있다는 이중의 장점을 가지게 되었다. 신라의 외교는 본격화 된다. (P. 157)

 

Ü 오래 전부터 이 땅은 이렇게 국정운영에 있어서 대국의 눈치가 없이는 제대로 된 운영이 불가했던 모양이다. 뼈아프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눈치를 문화적 유산으로 물려 받아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불거져 나온다.

 

처음에 당나라 태종이 붉은 색, 자주 색, 흰 색의 세 가지 색깔로 된 모란을 그린 그림과 그 씨앗을 세 되 보내 주었다. 왕이 꽃을 그린 그림을 보더니

이 꽃은 분명 향기가 없을 것이오

하고 뜰에 씨앗을 심어라 하였다. 꽃이 피고 열매 맺기까지 기다려보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는 곧 당나라 황제가 내가 배우자 없이 지냄을 놀린 것이다. (P. 158)

 

Ü 당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인가. 개그 외교가 가능한 때다.

 

□ 일제시대 최재서가 그린 김유신의 모습이란 바로 망국민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번민에 찬 지식인이다. (P. 169)

 

Ü 가야 망국민에다 이민 4세의 신분적 제약, 김유신의 콤플렉스. 그래서 김유신은 더욱 여동생 문희를 춘추에게 들이댔던 모양이다. 그의 의도는 결국 역사적 성공으로 이끈다. 김유신은 신라의 군부를 장악하고 춘추는 당나라와의 외교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통일 국가는 이들 듀엣의 합작품이다.

 

□ 춘추와의 관계로 문희의 임신을 확인한 유신은 동생 문희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해프닝을 벌인다. 결국 공식 결혼으로 이어지게 한다. 동생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 리 없다. 일은 제가 벌여 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 (P. 177)

 

□ 사신 :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오

라고 하더니, 덕요산의 절을 바라보며 들어가지 않았다. 신라 사람들이 황금 1,000냥을 주자, 사자가 돌아가서 이렇게 아뢰었다.

사신 : 신라에서 천왕사를 창건하고 새절에서 황제의 장수를 빌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P. 183)

 

Ü 나당연합이 삼국을 통일한 뒤 신라와 당은 동상이몽을 했고 견제와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문무왕은 위와 같이 능수능란한 외교로 이 땅을 지켜낸다. 쪽팔리기도 하고 그래야 하나 싶고

 

□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꼴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방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P. 184)

 

Ü 통일 왕국의 체제를 새로 만드는 것, 세 나라의 융합을 꾀하는 것, 당나라를 물리치는 것, 왜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 이 땅의 외교적 문제가 가장 극심한 때 문무는 모든 고민을 떠맡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상 고민 혼자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 문무왕 :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신하들 :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문무왕 :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 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P. 185)

 

□ 문무왕과 신문왕 그리고 감은사와 대왕암. 이견대의 관계가 명백히 나타난다. 금당 아래의 동쪽에 구멍을 낸 감은사. 용더러 다니라는 통로를 만들어 준 것이라니,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즐겁고 소중한 느낌이 가득해진다. 부자간의 짝짜꿍이 잘 맞아도 이렇게 잘 맞을 수 없다. 또한 감은사 탑은 아마도 한반도에 남은 절의 탑 가운데 이만큼 기품 있고 의젓한 것이 없으리라. (P. 186~187)

 

□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재인지 모른다. 일연은 마지막에 이렇게 첨가한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 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이었다.’ (P. 189)

 

□ 전쟁이 끝나 시대가 안정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다른 데로 흘러갔다. 그 가운데 가장 걸리는 존재가 전쟁 영웅들이었다. 그들은 전쟁 때에 절대적이면서 평화가 돌아오면 껄끄럽기만 하다. 토사구팽의 칼은 바로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P. 204~205)

 

Ü 깊은인생(구본형 저)에는 전쟁영웅 윈스터 처칠의 평화시 행보를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 영웅은 전쟁이 끝난 후 총선에서 패배했다. 영국인들은 그를 평화 시의 인물, 실무형의 지도자로 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전쟁 영웅인 그는 버려진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정치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불굴의 인물은 1951년 두 번째 총리에 올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 영웅의 토사구팽은 자연스러운 일인 모양이다.  

 

□ 모죽지랑가

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기 어찌 이루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으리. (P. 213)

 

Ü 화랑, 또 다른 그들의 아픔에 연민을 던진다.

 

□ 그것은 약간 공주병에 걸린 듯한 푼수 끼가 보이면서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강한 개성 때문이다. (P. 223)

 

Ü 수로 부인의 등장이다. 나는 수로부인이 대가야 초대 왕, 수로왕의 부인인 줄 알았다. 이제 고쳐 알았으니 갈무리하자.

 

□ 헌화가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P. 226)

 

Ü 자기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사랑과 바꾸려는 최고의 남자다. 그런데 노인이다. 울긋불긋한 근육에 잔뜩 기대했지만 모자를 벗으니 대머리가 보이는 가슴 아픈 장면인가.

 

□ 해가 (海歌)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그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슬러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끌어내 구워서 먹을 테다. (P. 228)

 

Ü 구지가 정말 흡사하다.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구지가로부터 해가까지 사이에는 이미 700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그렇듯 긴 세월을 두고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불리는 노래가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해가는 신가에서 민요로 넘어오는 중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P. 229)

 

□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P. 233)

 

Ü 국도 7호선 변에 그곳은 과연 어느 곳일까. 생의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는 수로부인은 인류사적으로 삶의 모델로 삶을 만하다.

 

□ 비록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한들 아들을 얻겠다는 경덕왕의 비원은 차라리 비극에 가깝다. (P. 237)

 

Ü 유전적 한계를 타고난 생물의 비극이다. 꼭 자기 DNA를 전달해야만 하는가. 그리 프로그램 되어져 있는 것, 그것을 깨어내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 또한 죽음에 이르는 걸 알지만 태양전차를 타고야 마는 파에톤의 비극이며 자신의 최후를 알고도 하늘로 가야 하는 이카루스의 비극이다. 그것을 두 눈으로 목도해야 만 했던 다이달로스의 비극이다.

 

□ 제망매가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월명사-

 

□ 안민가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다사로운 어머니

백성은 어린 아이라고

하실진대, 백성이 다사로움을 알도다

구물구물 살아가는 물생

이들을 먹이고 다스리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

하실진대, 이 나라 보전될 것을 알도다

,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하리니 (P. 246~247)

-충담사-

 

□ 그러나 가벼이 움직일 수 없다.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인 것이 쿠데타다. 그런데 마침 같은 집안의 김양상이 상대등이 되었다. 경신은 그를 부추겨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양상은 얼굴 마담 역할이었을 뿐이다. (P. 253)

 

□ 독서삼품과 : 경전을 읽고 공부해 그 성취도에 따라 상중하의 3급으로 나누어 관직에 임명하는 제도, 나중 고려시대 과거제의 모태 (P. 261)

 

Ü 무너지는 신라의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마지막 불꽃이다.

 

□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갈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이 뒷받쳐 주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을 향해 간다. (P. 267)

 

Ü 신라 경문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의 아들 혜공왕은 친족에 의해 살해 당한다.

 

□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보다 실로 더 억울한 일은 따로 있다. 백성이야 어차피 어떤 나라가 서도 백성, 제 정권 지키자고 혈안이 된 자들에게 당하는 백성의 희생을 우리는 진정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P. 271)

 

□ 시절은 봄이오고 여름이 왔으되 어지러운 세상은 뜻밖에 펄펄 휘날리는 눈 속에 잠겨 간다. (P. 272)

 

Ü 망조의 징후를 보는 일연의 시선은 착찹하다.

 

□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P. 277)

 

Ü 정치 소용돌이 속에 희생양이 되어 죽임을 당하는 장보고는 신라의 망조다. 징조치고는 명징하다.

 

□ 처용가

서울의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인가

본디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감을 어찌하리 (P. 280~281)

 

Ü 무력한 신라 말기의 모습이다.

 

□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P. 284)

 

□ 제54대 경명왕 때인 정명 5년은 무인년 인데, 사천왕사의 벽화에 그려진 개가 짖었다. 3일간이나 경전을 읽어 겨우 물리쳤으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또 짖었다.

오방신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고 벽에 그려진 개가 뜨락으로 나와 달리다가 벽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P. 285~286)

 

Ü 개가 짖는다. 개도 짖는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다.

 

□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들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 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졌을 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도 못했다. 원성왕의 독서삼품과가 실패로 돌아간 데서 우리는 그 같은 현상을 목격한 바 있다. (P. 287)

 

Ü 수용과 다양성의 결핍,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국가, 조직, 단체를 불문한 망국의 근거다.

 

□ 수도인 경주가 통일된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었던 것도 한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P. 287)

 

Ü 북쪽으로 속리와 조령에 하늘재라는 주간선도로가 있었지만 너무 높다. 서쪽을 잇는 지리와 덕유는 너무 깊다.

 

□ 귀국한 다음 거타지는 꽃가지를 꺼내 여자로 변하게 하고 함께 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의 낱낱을 쓰기에 지쳤을 즈음에 그 자신에게나 읽는 이에게나 한 가닥 희망 곧 새 나라 탄생의 빛을 실어 주려는 일연의 붓끝이 보이는 듯하다. (P. 294)

 

Ü 거타지는 고려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다.

 

□ 신라는 사라졌고 새 나라가 섰다. 하지만 농사짓고 고기잡으며 살아가는 백성들이야 어느 왕이 통치하건 별반 상관없는 일이다. 눈비 피할 집 한 채 있고, 자식들과 하루 세끼 밥먹고 지내는 데 불편함만 없다면 말이다. (P. 303, 사진설명)

 

Ü 위정자는 거창한 정책이 필요 없다. 위의 말은 정치하는 사람의 궁긍적인 목표를 명징하게 설명했다.

 

□ 이미 신라가 강토를 바치고 나라가 없어진 다음이었다. 아간 신회는 외직을 끝내고 돌아와 허물어진 도성을 바라보며 서리리같은 탄식을 하다 노래를 지었다. 노래는 없어져 알 수 없다. (P. 305)

 

□ 기원전 660년 이후 일본은 아이누족 같은 선주민과 한반도에서 온 이주민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먼저 구주지방부터 마을을 만들고 점점 동쪽으로 넓혀 가는 매우 완만한 일본열도 개발의 역사가 진행된다. (P. 315)

 

□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가지고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 문제로 비화해서는 곤란하다. 일본 특히 왕실의 뿌리가 한반도라고 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거나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하는 따위의 생각은 참으로 난센스다.

그들은 먹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당대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P. 315)

 

Ü 맞는 말이다. 

 

□ 고구려가 중국 본토와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여야 하고 신라는 일찍 북방 정책으로 영토를 확장해 가는 쪽의 방향을 잡았을 때 고구려와 신라로부터 협공을 당해야 했던 백제가 갈 길은 자명했다. 일본이다. 그러므로 바로 코앞의 한반도 국가 가운데 왕실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일본을 개척한 백제야말로 일본열도에서 우위를 잡는 데 적임자였다. (P. 323)

 

Ü 이주와 장거리 외교의 달인. 백제.

 

□ 맹랑하기 그지 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P. 327)

 

□ 하루는 왕이 세 딸을 모아 놓고 누구의 덕으로 행복하게 사느냐고 물었다. 위의 두 딸은 아버지 덕이라고 말했으나 막내딸은 자기가 타고난 복이라고 말해, 화가 난 왕에게 버림을 받았다. 공주는 가난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가난한 남자는 돈의 가치를 공주에게서 배워 결국 두 사람은 큰 부자가 된다. 왕은 막내 딸의 말이 맞았음을 알았다. (P. 336~337)

 

Ü 이거 리어왕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다. 진평왕의 선화공주와 리어왕의 코델리아.

 

리어 왕 : 언니들 것보다 더욱 비옥한 셋째 영토를 받기 위하여 너는 무어라 말하겠느냐?

코델리아 : 아무 할 말도 없습니다.

리어 왕 : 아무 할 말이 없어?

코델리아 : ,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리어 왕 : 할 말이 없으면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것이니, 다시 말해 봐라.

코델리아 : 불행하게도, 저는 제 마음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으로서의 저의 본분이옵니다. 그것뿐이옵니다.

 

□ 대소 인민의 차등이 없고 남녀간에 대소변을 보고자 하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가 보고 나면 문득 도로 합쳐지며 껍질 없는 찹쌀이 저절로 달리는데 지극히 향기롭고 아름다워 먹으면 병이 없다. 금은 진보와 차거, 마뇌, 진주, 호박 등 각종 보배가 땅에 흩어져 있으나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고 가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집어 들고 서로 이렇게 말한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물건 때문에 서로 해치고 옥에 갇혀 무수한 고니를 받았다 하는데 지금은 기왓장이나 돌과 같아서 아무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 (P. 342)

 

Ü 멋진 세상이다. 미륵세상을 이야기하는 인민들이다. 황석영은 장길산의 말미를 바로 이 미륵으로 마감한다. 아직 누워있는 운주사 와불이 일어서길 나도 기원해본다. 이 멋진 세상에 스스로 살리라.

 

□ 미륵보살은 누구인가? (P. 343)

 

Ü 미륵은 자비라는 뜻인데 구원을 유보하면서까지 현생에 남을 것을 요구한 보살이다. 캠벨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보살은 시간(결코 끝나지 않는)이 끝나는 순간까지 앞서서 잔잔한 영원의 강으로 뛰어들겠다는 각오로 열반의 문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은 겁()과 찰나의 구별에 대한 자각을 표상한다. 합리적인 마음에 의해 자각된 이 구별은 한 쌍의 대립물을 초월한 마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 안에서 용해되어 버린다. 이때 체득되는 것은 찰나와 영원이 같은 경험에 대한 두 가지 측면들 즉 동일의 비이원적이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층면들이라는 사실이다. 즉 영원의 보석이 탄생과 죽음의 연화 속에 들어 있다는 옴 마니 밧메 훔인 것이다.’

 

□ 묘법연화경 (P. 344)

 

Ü 또한 캠벨은 이와 같이 말했다.

 

옴 마니 밧메 훔(妙法蓮花, 연화 속에 보석이 있다)도 그 보살을 향한 것이다. 인간에게 알려진 신들 가운데 관세음보살만큼 많은 기도를 가납하는 신도 없을 것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즉 그는 인간으로 이 땅에 살다가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이 순간만 넘어서면 이름 붙여지고 경계 지어진 우주의 헛된 망상을 초월한 공의 무량 세계가 열린다)에 이를 작파해 버리고 모든 중생을 정각에 이르게 한 연후에야 공에 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 견훤이 우리 태조 임금과 친한 척했어도 속으로는 상극이었다. (P. 352)

 

□ 싸움터의 칼바람이 스산하게 묻어 있는 그러면서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붓 놀림은 그대로 칼 없이 겨루는 한 판이다. 먼저 견훤이 보낸 편지

 

이 달에는 좌장 군 김락이 미리사 앞에서 해골을 햇볕에 쬐었소. 죽이고 얻은 것이 많으며 쫓아가 사로 잡은 것도 적지 않음을 보아, 강약이 이와 같으니 우리의 승패도 알 수가 있을 것이오. 내가 바라는 것은 평양의 누각에 활을 걸고 패강의 물을 말에게 먹이는 것이오. (P. 355)

 

Ü 그 기상은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

 

□ 가엾은 완산 아이가

아비를 잃고 눈물 흘리네. (P. 360)

 

Ü 견훤은 아들 신검으로부터 사실상의 쿠데타를 당한 뒤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를 피해 의아하게도 견훤은 숙적 왕건에게로 간다. 기이하게 또 왕건은 그를 극진히 대접한다. 대인배.

 

□ 만어산은 옛 자성산이다. 또 아야사산이라고도 한다. 그 곁에는 가라국이 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해변으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거니와 그이가 바로 수로왕이다. (P. 365)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찌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고 무너지지 않는 무덤이 있겠는가?” (P. 369)

 

Ü 모든 역사서의 주제이자 결론이다. 시간이 그리 시킨다.

 

□ 가야는 고대 한반도의 남부를 설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 곳은 완충지였다. 신라와 백제가 그로 인해 힘의 균형을 이루었고 일본열도에서 몰려온 또는 몰려갈 다수의 사람들에게 생활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가야의 역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일연의 손에 의해 거둬들여진 이 짧은 기록 하나가 전부다. (P. 369)

 

Ü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 하늘 :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가야 사람들 : 우리들이 있습니다.

하늘 :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

가야 사람들 : 구지봉입니다.

하늘 : 이 곳에 내려가 나라를 새롭게 하고 임금이 되라. 그리고 흙을 파면서 이렇게 노래하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을 테다 (P. 370)

 

Ü 이 노래를 부르고 얼마 뒤 하늘에서 줄이 내려왔는데 보자기를 열어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맨 처음 알을 깨고 나는 이가 수로왕이다.

 

□ 이 탑의 생김새는 네모나게 4면의 5, 게다가 붉은 색 반점을 가진 부드러운 돌로 만들어졌다.고 일연은 기록한다. 일연은 분명 이 탑을 보았다. (P. 378)

 

Ü 인도의 허황옥이 가져온 뱃길을 지켜주는 수호신 탑이다. 고해의 길을 지켜주는 석탑, 인생의 파도를 잠재우는 진리.

 

□ 이 나라 최초의 국제 결혼 (P. 379)

 

Ü 김수로 & 허황옥

 

□ 일연은 고대 삼국의 역사를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불교를 받아들여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가 나라의 흥망성쇠와 곧바로 연결된다는 생각이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록 뒤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그 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운 신라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나라라고 보는 것이다. (P. 386)

 

Ü 조심스러운 가칭, 일연의 불교역사주의

 

□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날으네

어느 곳 고깃밴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Ü 순도, 한반도에 처음 불교를 소개한 중국인, 이른 손님이라 한 표현대로 그는 순교 당한다.

 

□ 신라 불교는 처음부터 순교자를 부르고 있었다. (P. 398)

 

□ 이에 왕은 짐짓 위의를 갖추고 동서로는 풍도를 남북으로는 상장을 벌려 놓고 여러 신하들을 불러들여 물었다.

법흥왕 : 그대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일부러 늦추려 하는가?

이에 왕은 얼버무리는 신하들 앞에서 공사를 맡은 사인 이차돈을 불러와 곧바로 목을 베었다. (p. 406)

 

Ü 순교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허술하고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차돈 그의 피는 강토를 적시고 불교는 그 피 위로 정념이 되어 흘러 들어가게 된다.

 

□ 개자추가 허벅지 살을 베었다 한들 이 엄청난 절개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요. 홍연이 배를 갈랐다 한들 이 장렬함과는 견주지 못할 것이다. 이가 곧 임금의 믿음에 의지해 힘써 아도의 본 마음을 이룬 성자이다. (p. 409)

 

Ü 일연은 이차돈이 아도의 순교를 이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일연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p. 411)

 

□ 그러기에 경주를 여행하는 사람은 비록 지금은 허허벌판일지라도 황룡사 터에 한 번쯤은 서 보아야 한다. 거기서 남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능선이나 명활산성으로 구획된 동쪽의 방벽이나 천마총으로부터 시작하는 서쪽의 고분군을 한눈에 넣어 보아야 한다. 그 분지에 지상의 낙원을 이루고 살았던 서라벌 천 년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p. 417)

 

Ü 꼭 한번 그 벌판에 서보리라 다짐한다.

 

□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근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p. 417)

 

Ü ~~~~!

 

□ 티끌 세상이 도리어 진향 되네만

향화 드릴 인연이야 우리 나라가 으뜸이었던 게지

아육왕이 손대기 어려워 보냈겠나

필시, 월성 옛터 제자리 찾아온 것이니 (p. 424)

 

Ü 황룡사의 장륙존상을 두고 일연이 지은 찬시다. 지금은 없다. 있더라도 이런 말은 하지 못했을 거다.

 

□ 과연 얼마만한 건축 기술을 가졌기에 20층 아파트 높이의 탑을 세울 수 있었을까?

 

□ 백제의 기술자를 불러오자 해서 아비지라는 이름난 기술자를 정중히 초청했다. (p. 433)

 

Ü 그랬구나 이미 그때는 백제에는 미륵사라는 절이 황룡사의 규모와 다투었다.

 

□ 어쨌거나 신라를 가운데 두고 중국과 인도의 불교 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곳이 황룡사다. (p. 434)

 

□ 구층탑은 고종 16년 겨울, 몽고와의 전쟁통에 탑과 절 그리고 장륙존상과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탔다. 1228년 이라면 일연의 나이 23세 때이고 전쟁이란 바로 몽고의 2차 침입을 말한다. (p. 435)

 

Ü 아깝고 무상하다.

 

□ 그런데 문수보살은 그가 죽은 다음 동북방의 나라에 봉우리가 다섯 개인 산, 청량산이라 부르는 거기에 머물 것이라고 예언했다.

중국인들은 문수보살이 예언한 산이 바로 산서성의 오대산을 가리킨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오대산은 바로 이 같은 배경을 가진 오대산이 그대로 넘어온 것이다. (p. 441)

 

□ 승려 : 무슨 일로 그렇게 멍하니 계시는가?

자장 : 꿈에 4구 게를 받았으나 산스크리트어라 해석하지 못하고 있소이다.

승려 : 이와 같이 법성을 풀어주고는 이것은 본디 우리 스승 석가모니께서 쓰신 도구들이오. 그대가 잘 지키시오.’

그대 나라의 북쪽 명주 경계에 오대산이 있소. 1만명의 문수보살이 거기에 늘 계시지. 그대는 가서 뵙도록 하시오.

 

말을 마치자 승려는 보이지 않았다. 용이 나타나 재를 올리고 공양하였더니 알려 주었다.

지난 번 게를 번역해 주던 승려가 곧 문수진신입니다.’ (p. 442~444)

 

Ü 번역한 게는 이렇다. ‘모든 법을 알았다. 본디 성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이와 같이 법성을 풀면 곧 노사나불을 보게 되리라. ‘

 

□ 지금도 월정사에 가면 금당 자리에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이 있다. 대적광전은 바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금당에 붙이는 이름이다. (p. 445)

 

Ü 합천의 해인사와 양산의 통도사가 그러하다.

 

내 마음 오늘 / 절에 가서 절을 한다 /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

온기가 없어 차가운 /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

내 마음 오늘 / 절하며 간다 (p. 456)

 

Ü 지난 여름, 녹색으로 발광하던 나뭇잎 하나가 어제, 제 앞으로 떨어졌다. 한참을 바라 보았지. 누런 그 잎에서 봄에 이 잎을 틔우려 솟아 올랐을 새순이 포개어졌어. 신이 시키는 일이라 여겼지.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이 어찌나 푸르던지. 내가 돌아갈 시간 너머로 기적 같은 오늘이 떡, 하니 가로막고 있는 것을 그때서야 알아차렸어.

 

□ 무릎이 헐도록 / 두 손바닥 모아 / 천수관음 앞에 / 빌고 빌어 두노라

일천 개 손 일천 개 눈 /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

둘 없는 내라 / 한 개사 적이 헐어 주시려는가 / , 나에게 끼치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p. 459)

 

Ü 눈 먼 여섯 살 자기 딸의 눈을 뜨게 해 달라며 비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 자신들이 믿어마지 않는 어떤 절대자에 대한 꾸밈없는 흠모는 이런 기적을 낳게 한다. 일연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 같은 세계 속에서 살았음을 우리에게 조용히 전해 주고 있을 뿐이다. (p. 466)

 

Ü 나는 백 년 후가 궁금한 것 만큼 백 년 전이 궁금하다. 나는 일연이 살던 그 호방한 세계가 궁금하다.

 

□ 불성은 대체로 마음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법이다. 그 불성은 어떤 지식보다 나으며 때로 기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니 무엇이 값어치 있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p. 469)

 

□ 문득 한 사람이 매를 날려 꿩을 쫓게 하는 것을 보았다. 꿩은 금악향으로 날아 지나가더니 자취가 없었다. 매의 방울 소리를 듣고 찾아갔다. 굴정현의 관청 북쪽에 있는 우물가에 이르자 매가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안에 있는데 온통 핏빛이었다.

꿩은 두 날개를 펼쳐 두 마리 새끼를 감싸고 있었다. 매도 불쌍히 여기는지 잡지 않는 모양이었다. (p. 470)

 

Ü 이어서 저자의 감회가 이어진다.

 

□ 나는 이 대목이 모두 놀라웠다.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짐승이며 욕심을 내자면 한없을 인간으로도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장면 장면들이다. 꿩이나 그 새끼 몇 마리를 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린 어떤 메커니즘이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그런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p. 471)

 

□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에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되었다. (p. 473)

 

Ü 아주 간략한 요약이다. 자세하게 알아보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 대하여

 

□ 출가한 절에 한 여인이 찾아온다.

 

가다 보니 해는 떨어지고 온 산이 저물어

길은 끊어지고 마을은 멀어 사방이 막혔다오

오늘 밤 몸을 맡겨 암자 아래 자려 하니

자비로운 스님께선 화내지 마세요.

 

□ 박박은 절이란 깨끗이 지키는 것을 일삼는 곳이오. 그대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빨리 떠나시고 이 곳에 머물지 마시오라고 그 답게 거절한다.

부득은 우선 묻기부터 한다. 그대는 어디서부터 밤을 헤치고 오시는 것이오? (p. 477)

 

□ 박박의 교조적 외통수와 부득의 현실적 융통성이라고나 할까 (p. 479)

 

□ 골짜기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리

남창에 자리 나니 머물다 가오

밤 깊어 백팔 염주 염불도 깊어만 가는데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의 잠 깰까 두려워라. (p. 485)

 

Ü 고해를 건너지 않고는 도에 이를 수 없는데 그 고해를 원천 봉쇄하여 선험적 기회를 제거하고 도에 이르려는 박박, 고통을 견뎌가며 극복되는 과정에서 도의 내성을 쌓아가는 부득. 양물을 자른 사람을 굳이 비유하자면 박박이요 성욕 등의 각종의 혼란을 곁에 두고 극복하는 자는 부득이다. 누가 깊겠는가. 그나저나 우리말 부득이 하게는 이 부득에서 나온 것 같다.

 

□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나는 이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 명명하였다. (p. 497)

 

Ü 내 삶도 이렇게 명징하게 정의 되었으면 한다.

 

□ 무릎을 칠 일, 거기서 애석해 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분위기 원효는 그렇게 인간답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의상이건 원효이건 어떤 하나의 삶의 방식대로 살다 간 무수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모델일 뿐이다. (p. 498)

 

□ 한 귀가 잘린 채 먼 이역에서 고국의 스님을 만나 고향에 돌아가거든 자기 어머니를 찾아가 달라고 말하는 소년은 청취보살이기에 앞서 일연 자신인지 모른다. 어머니를 떠나 머나 먼 강원도 산골에 와 있는 소년 일연의 마음이 그랬을 터이니 말이다. ‘아 어머니, 저 먼 나라를 아십니까?' (p. 504)

 

Ü 어머니라는 말에 나는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어머니는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한단지몽(邯鄲之夢) :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끊는 솥단지 앞에서 따뜻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 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끊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p. 505)

 

□ 희미한 등불만 빛을 토하는데 밤은 완연 깊어 있었다. 아침이 되어 수염이며 귀밑머리가 하얗게 샌 것을 알게 되었다. 망망히 세상사는 뜻이 없어지고 이미 수고로운 인생에 지쳐 마치 백년 고생을 다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마음이 얼음 녹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잠잠히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참회하는 마음 끝이 없었다. (p. 507)

 

Ü , 흐르는 눈물을 어찌해야 하나. 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남이 이리도 부질이 없는 사태인데..

 

□ 군위 인각사 앞에 일연 시비를 세운 것은 지난 1985, 거기 이 시가 새겨졌다.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루려고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p. 508)

 

평소 세상의 경전에는 익숙해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불교 공부를 하자 도리어 썩은 풀 같았다. 헛되이 유교를 공부하는 것이 실로 생애의 두려움으로 다가와드디어 출가한다. (p. 515)

 

Ü 원광은 운문사 창건 설화의 중심 승려다. 그는 이렇게 출가한다.

 

□ 신 : 바다와 육지 길로 오가는 일은 어떻든가?

법사 : 신의 크신 은혜를 입어 평안히 이르렀나이다.

: 내 또한 법사에게 계를 주고 싶은데

법사 : 신의 진짜 모습을 뵐 수 있을는지요?

: 법사가 만약 내 모습을 보고 싶거든 아침에 동쪽 하늘가를 보라.

법사는 다음날 그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커다란 팔이 구름을 뚫고 하늘가에 닿아 있었다. 그 날 밤 신이 와서 말했다.

: 법사는 내 팔을 보았는가?

법사 :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기이하고 뜻밖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비장산이라 부른다.

비록 이런 몸을 가졌더라도 무상의 고통은 벗어나지 못하오. 그래서 내가 어느 달 어느 날에 그 고개에서 몸을 버리리니, 법사는 와서 영원히 가는 혼을 송별해 주시오.’

약속한 날을 기다렸다가 가서 보았다. 거기에 한 늙은 여우가 검기는 옻칠을 한 것 같은데 헉헉거리며 숨을 쉬지 못하다가 얼마 있지 않아 죽었다. (p. 519)

 

□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 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p. 522)

 

Ü 세속오계는 원광이 그에게 찾아온 귀산과 추항이라는 사람에게 내린다. 그들이 원광을 찾아 간 곳은 가슬갑이라는 곳, 지금의 청도군 운문사가 있는 바로 옆 자리다. 작갑사, 지금의 운문사다.

 

□ 육재일과 봄과 여름에 죽이지 않는 것, 이는 때를 가림이다. 기르는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과 자잘한 동물 곧 한 번 저미지도 못할 것을 죽이지 않는 것, 이는 대상을 가림이다. 이 또한 오직 필요한 만큼만 하고 너무 많이 죽이지 말아야 하리니, 이것이 세속에서 좋은 계이다.

육재일이란 한 달에 여섯 번 있는 재일로 8, 14, 15, 23, 29, 30일을 가리킨다. (p. 523)

 

□ 운문사는 일연이 속한 가지산파의 절이었다.

자신이 거처했을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 편찬의 첫 발을 내디딘 곳으로서 운문사는 일연에게 다른 어느 절보다 깊이 각인되어 있다.

운문은 구름의 문, 아마도 운수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인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p. 527)

 

Ü 내가 자주 들리고 좋아하는 절이기도 하다.

 

□ 춘원 이광수의 원효

원효는 신라가 낳은 가장 큰 사람이오 고승이오 성승이다. 그의 대승기신론소와 화엄경소는 불교가 전하는 동안 전할 것이다. 원효는 세계적 위인이다. 그러나 원효는 요석공주로 하여 파계하야 설총을 낳았다. 그는 어찌하여서 파계를 하였던가. 성승의 파계 그것은 큰 사건이다. 오늘날까지 해답 못 된 문제다. 인성의 근저에 관련된 문제다. 나는 이 (중략) 인간으로서의 고로와 성자로서의 수행을 그려보고 싶다. (p. 531)

 

Ü 일연은 원효의 생애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은 사람’. 카잔차키스가 겹쳐진다.

 

□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면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 (p. 533)

 

Ü 이 용기는 인류가 가진 높은 차원의 용기다.

 

□ 원효는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p. 537)

 

Ü 있는 것이면서도 없는 것, 없지만 있는 것. 불교는 늘 이와 같은 변증법의 고리를 물고 들어가야 하는 과정이겠다. 그 과정에 원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들여 놓았다.

 

□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죽었다. 그 때 원횬ㄴ 고선사에서 지내고 있엇다. 원효가 그를 보고 예를 갖춰 맞았다. 사복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하였다.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전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소.

함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떤가요?’

좋다.’

그래서 함께 집에 이르렀다. 원효더러 보살 수계를 해달라 했다. 시신 앞에서 축원하였다.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사복이 글이 번거롭군요하더니 고쳐서 말했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 (p. 541)

 

Ü 나는 이 같은 비약과 역설이 좋다.

 

□ 한마디로 말하면 원효는 이 나라 불교의 첫 새벽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불교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p. 545)

 

Ü 그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지만 바보가 아니었다.

 

□ 지난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p. 551)

 

□ 의상은 이에 열군데 사찰에 가르침을 전햇다. 부석사, 비마라사, 해인사, 옥천사, 범어사, 화엄사. (p. 564)

 

Ü 내 자주 가는 사찰이 모두 의상의 법문처였구나.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차디찬 눈은 얼음과 엉기어 붙었고

찬바람은 땅을 가르도록 매섭다.

넓은 바다 얼어서 단을 이루고

강은 낭떠러지를 깎아만 간다.

 

용문에 폭포조차 끊기고 말았으며

정구엔 뱀이 서린 듯 얼음이 얼었다

불을 들고 땅 끝에 올라 노래부르리

어떻게 저 파밀고원 넘어 가리오 (p. 572~573)

 

Ü 이 부분은 마치 나의 히말라야 카라반을 위한 노래 같다. 다음은 또 어떤가.

 

□ 천축 길 하늘 너머 만첩 산인데

가련타 순례자들 힘써 오르네

외로운 배 달빛 타고 몇 번이나 떠나갔건만

이제껏 구름 따라 한 석장 돌아옴을 보지 못했네 (p. 580)

 

□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은 대지의 태, 곧 땅 속에 묻어 있는 어떤 것이다. 땅이 지닌 덕을 의인화하였다고도 하는데 지장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과 함께, 죽은 이들의 구제자가 된다. 특히 죽은 이들을 천도하기 위해서는 이 보살에게 빌어야 한다. (p. 587)

 

□ 부처님의 뜻이 그대에게 있는 것이구먼. 그대가 모시고 가라. (p. 598)

 

Ü 심지와 영심의 이야기

 

□ 지금 동화사 첨당 뒤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 바로 그 곳이다. 라고 간자가 떨어진 자리를 밝혀 두고 있다.

샘은 없었다. 절에서 만난 스님은 수도가 들어오자 샘은 빨래터로 전락했고 얼마 안 잇어서 그나마 절 안팎에 콘크리트 포장을 하면서 묻어 버렸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설명했다.

없던 것도 만들어 놓을 바에 있는 것마저 없애 버린 처사가 너무 무작스러워 속으로 점찰법회 자리에 웬 약사여래람? 이렇게 중얼거리며 산을 내려온 적이 있었다. (p. 601~602)

 

Ü 아연실색이다. 땡중이다.

 

□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했다. (p. 604)

 

Ü 무엇이 뼈를 새끼가 있는 곳으로 인도 했을까. , 생의 고해여

 

□ 누구나 쉽게 보이는 세계 속의 불교가 현교라면 깊이 숨어 은미한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불교가 밀교일 것이다. (p. 605)

 

□ 혜통 : 내가 하는 것을 보아라 (이내 병의 목에다 한 획을 그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각자 자기 목을 쳐다 보아라. (모두 목을 보니 붉은 획이 그어져 있었다. 서로 보며 놀라는데 또 소리쳤다)

만약 병목을 자르면 마땅히 너희 목도 잘릴 것이다. 어떠냐? (p. 614)

 

Ü 이거 굉장히 흥미진진한 영화 장면 같다.

 

□ 산 복숭아 시냇가 살구가 울타리에 비쳤는데

오솔길에 봄이 깊자 양쪽 언덕에 꽃이 피었네

그대가 우연히 수달을 잡았던 인연으로

나쁜 용은 서울 밖으로 멀리 쫓게 되었네 (p. 617)

 

□ 불교를 배척하고 나선 조선조의 정치 이념에 따라 한국의 불교사는 잠시 주춤한다. 그런데 이 때 집중적으로 탄압을 받은 쪽이 밀교나 점찰법회 같은 것이다. 일연도 이 같은 부류로 나눠지고 그에 따라 일연에 대한 관심이나 사적이 인멸되지 않았나 추측하는 것이다. (p. 620)

 

Ü 그리스인 이야기를 펴냈던 andre Bonnard와 같이

 

□ 제 40대 애장왕 때였다. 승려 정수는 황룡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겨울철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 저물 무렵 삼랑사에서 돌아오다 천암사를 지나는데 문밖의 한 여자 거지가 아이를 낳고 언 채 누워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벌거벗은 채 제 절로 달려 갔다.

거적때기로 몸을 덮고 밤을 지새웠다. (p. 623)

 

Ü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정수라는 스님이 있던 그 시대의 풍경은 이리도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사람이 주인인 세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 그런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분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한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 사회의 고갱이였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p. 623)

 

□ 미륵신앙과 대칭되는 점에서 있는 미타 신앙의 정토왕생 신앙은 현세에 복락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그것을 내세에까지 가져가고 싶은 마음의 소산으로 나타난다. (p. 625)

 

Ü 계급 편의적 신앙으로 여겨진다. 있는 놈들 환장했겠는데.

 

□ 계집종의 성불에 자극을 받은 귀진은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적어도 그것은 껍데기가 아닌 진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신라 사회의 힘이다 (p. 628)

 

Ü 욱면 처자의 이야기를 두고 하는 저자의 말이다.

 

□ 원왕생가

달아 이제

서방까지 가시거든

무량수 부처님 앞에

일러 주게 아뢰어 주시게

다짐 깊으신 세존 우러러

두 손 모두어 비옵나니

원왕생, 왕생을 바랍니다.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 아뢰어 주시게

, 이몸 버려 두시고

마흔여덟 가지

큰 소원 이루실까. (p. 630)

 

Ü 광덕과 엄장의 이야기, 광덕이 죽고 엄장은 광덕의 아내를 취하려 하지만 광덕의 아내의 깊은 믿음의 힘으로 그 일을 곧 반성하게 된다. 원왕생가는 광덕이 지은 시다.

 

□ 이런 나 아니고 누구를 극락왕생 시키겠느냐는 광덕의 으름장. (p. 633)

 

Ü 같은 책 459페이지에 눈 먼 아이를 고치려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광덕의 마음이 같다.

 

무릎이 헐도록 / 두 손바닥 모아 / 천수관음 앞에 / 빌고 빌어 두노라

일천 개 손 일천 개 눈 /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

둘 없는 내라 / 한 개사 적이 헐어 주시려는가 / , 나에게 끼치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 선율은 망덕사 사는 승려다. 갑자기 저승에 불려가게 되지만 입국심사에서 할 일이 남은 사람으로 분류해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귀중한 경전사업을 마치고 오라는 것이다. (p. 633)

 

Ü 캠벨이 보았던 보살의 개념이다. 다시 한번 더 인용한다. 다만 자발적이지 않은 것이 차이다.

 

옴 마니 밧메 훔(妙法蓮花, 연화 속에 보석이 있다)도 그 보살을 향한 것이다. 인간에게 알려진 신들 가운데 관세음보살만큼 많은 기도를 가납하는 신도 없을 것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즉 그는 인간으로 이 땅에 살다가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이 순간만 넘어서면 이름 붙여지고 경계 지어진 우주의 헛된 망상을 초월한 공의 무량 세계가 열린다)에 이를 작파해 버리고 모든 중생을 정각에 이르게 한 연후에야 공에 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 산 속에서 세 오빠 악한 짓 견딜 수 없어

꽃다운 입에선 대신 죽겠노라 한마디

의리의 소중함 몇 가지로 들어 죽음도 가벼이

수풀 아래서 몸을 내놓았네, 떨어지는 꽃처럼. (p. 644)

 

□ 벼슬길에 나서는 일 매복에게 부끄럽더니

세 해를 살아 맹광을 부끄럽게 하였구나

도타운 정은 어디에 비길까

시냇가에 노니는 원앙새로다.

 

Ü 박봉에 살림을 사는 아내에게 보내는 남편, 신도징의 시다.

 

□ 부부의 정 깊으나

산중에 둔 뜻 깊어만 가고

세월이 변하거든 백년가약 그 마음

두려웠네, 저버릴까봐 (p. 648~649)

 

Ü 아내의 답시다. 사실 상 아내는 호랑이 분화된 존재다.

 

□ 효소왕 6, 낙성회, 말석에 초라한 차림의 승려 한 사람, 왕은 언짢았으나 그에게 공양 베푸는 것도 자비심을 과시할 기회라 여겨 한자리 마련한다.

: 어디 가서 임금이 손수 베푼 음식을 먹었다 하지 말게

초라한 스님 : 임금께서도 진신석가께 공양하였다고 말씀하지 마소서. (p. 656)

 

Ü 이 멋진 대구를 보아라. 감탄이 나온다.

 

□ 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성시키라는 조각각의 배려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p. 659)

 

Ü 미완성의 완전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p. 670)

 

Ü 지금은 그 말미인지 모른다.

 

□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p. 672)

 

□ 도가 행해지는 사회 : 대동사회, 그렇지 않은 사회 : 소강사회 (p. 672)

 

Ü 예기에 나오는 말이겠다.

 

□ 노인 : 스님, 어디 가시오?

연회스님 : 나라에서 분에 넘치게도 벼슬을 주려 하기에 피하는 것이올시다.

노인 : 여기서 팔면 되지 뭐 멀리까지 가며 수고하시오. 스님은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으시는 구먼

 

몇 리쯤 더 갔는데 시냇가에서 할머니 한 사람을 만났다.

 

할머니 : 스님 어디 가시오?

연회 : 나라에서 분에 넘치게도 벼슬을 주려 하기에 피하는 것이올시다.

할머니 : 앞서 사람을 만나셨나요?

연회 : 한 노인이 나타나 저를 매우 욕보였지요. 화가 나서 오는 길이랍니다.

할머니 : 그 분이 문수대성이신데어찌 그 말을 듣지 않으셨소?

 

깜짝 놀란 연회는 송구스러워 곧 노인이 있던 곳으로 돌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뉘우치듯 말했다.

 

연회 : 성자의 말씀을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래서 돌아왔나이다. 시냇가의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신가요?

노인(문수대성) : 변재천녀일세. (p. 684~685)

 

Ü 꺄아아악!

 

□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p. 686)

 

□ 여덟 살에 어머니 곁을 떠나 그 어머니가 70년을 홀로 사시도록 이 세상에서는 외롭게만 해 드렸던 자신의 삶에 대한 답변이지 않을까? (p. 703)

 

향가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열어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모 덮을 화랑이여 (p. 711)

 

□ 신충의 원가

좋은 잣은 / 가을이 와도 쉬 지지 않는다네

너 어찌 있겠느냐 / 우러르던 낯이 계셨는데

달 그림자는 옛 못에 / 흐르는 물결을 애처로워 하는구나

모습은 바라보지만 / 세상 모두 아쉽기만 할 뿐 (후구는 잃어버림)

 

신충은 신라 효성왕 때 사람이다. 그는 왕이 아직 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을 무렵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어느 날 잣나무 잎이 우거진 그늘 아래서 둘은 바둑을 두었다. 왕자가 말하기를

내 장차 왕위에 오르거든 그대를 잊지 않겠소. 내 이 잣나무에 대고 맹세하리다.’ (p. 719)

 

Ü 그때 그 약조를 잊어버린 왕에게 신충이 쓴 향가다. 이 노래를 부른 뒤 그 잣나무가 말라버렸고 왕은 반성하며 신충을 등용했다고 한다.

 

□ 영재의 우적가

제 마음의  /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 달이 난 것을 알고 /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 된 것은 강호 님 /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를 마다하고 / 즐길 법일랑 듣고 있는데  / 아아, 조그마한 선업은  / 아직 턱도 없습니다.

 

그가 늘그막에 숨어살고자 지리산을 찾아 고개를 넘을 때 도적을 만났다. 도적을 보고 오히려 영재가 태연하여 도적들이 의아했다. 그가 조용이 타이르며 도적에게 읊은 시다.

노래를 듣고 감동한 도적들은 비단 두 필을 내놓는다. 영재는 웃으며 말한다.

 

재물이 지옥에 가는 근본임을 알고 바야흐로 깊은 산중으로 피해가서 일생을 보내려 하는데 어떻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

 

노래 한 곡에도 감동하는 도적들이나 한 구비 너머 두 구비까지 내다보는 영재의 깨달음이나 모두 놀라운 경지다. (p. 721~722)

 

Ü 도적질을 해도 이런 도적이 되어야 할 터

 

□ 중통 신유년 임금의 부름을 받고 강화 서울로 가서 선월사에 주석하고 개당하여 멀리 목우화상을 이었다.

 

목우화상은 지눌을 가리키는데 지눌은 사자산문에서 출발하였지만 일연은 그 것이 사자산문 또한 정당하다고 보았기에 산문의 같고 다름을 의식하지 않았던 듯하다. 본질 앞에서 방편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멀리 목우화상을 이었다는 말의 함의이다. (p. 732)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 간 일연은 종교와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인 승려였다. 그가 삼국유사에서 원효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기술하고 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p. 741)

 

 

3. ‘()적 이야기의 역사적 가치(내가 저자라면)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사실에 입각한 역사학자가 아니라 제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국문학자였다. 삼국유사는 저자 필치로 다시 살아 난 듯 했다. 읽어가는 중간 중간 일연에게 감탄하고 그 사회와 그 문화에 감동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우연히 생겨난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수천 년 이어져 온 문화적 결과와 습속을 공유하는 세계임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 하나로 이 책은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거창한 역사적 사실을 열거해 놓는 것은 학자적 우월감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 사실을 버릴 때는 버려야 이야기로써의 생명은 살아날 수 있다. 그것이 오히려 훗날 역사를 보는 사람에게 더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일연은 역사를 역사이게 한 사람이며 이 나라 모든 역사학자는 승려 일연에게 얼마간 부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다.

 

책의 구성은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의 순서를 배반하지 않고 따랐다. 역자 고운기는 역자임과 동시에 삼국유사를 새로 각색한 또 하나의 저자임을 생각할 때 나는 고운기의 전개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기이 : 주로 건국 설화가 주된 바탕으로 되어 있다.

흥법 : 불교가 국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탑상 : 주요 사찰의 창건 설화가 이야기의 주다.

의해 : 의상과 원효 이야기가 많다.

신주 : 밀교를 말한다.

감통 :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피은 : 숨어 사는 이의 멋을 노래한다.

효선 : 불교 관점의 효도를 말한다.

 

저자는 삼국유사의 순서에 따라 중요한 부분이나 자신이 느낀 감동적인 부분을 발췌하여 그에 대한 원문을 소개하고 배후 설명과 자신의 감정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좋다. 책의 제목이 어쨌건 삼국유사이기 때문에 원문에 충실하고 순서 또한 배열을 지켜간 것은 좋은 선택인 듯하다. 다만 과거의 이야기가 주된 주제로 삼되 현재의 그 절() 또는 그 장소에 대한 해석과 현대인의 시각을 좀더 강한 필치와 많은 분량을 싫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동화서 창건 설화 중 샘에 대한 지금의 스님이 한 말, 수도가 들어와 결국 샘을 매워버렸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하지만 현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현주소를 알 수 있어서 반향이 있었다. 내가 구성을 한다면 삼국유사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는 비유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애 할 것 같다.

 

컬러 사진의 적절한 배치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칫 지루해 질 수도 있는 주제를 보기 좋게 하여 독자들을 환기시킨다. 사진 설명 또한 재미있고 의미가 있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확실히 책은 글로만 이루어지기보다는 사진이나 설명 자료가 첨부되어야 빠른 이해와 가독성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연대와 관련하여 여러 왕들의 계보가 혼란스러웠는데 어느 역사서이건 왕들의 연대가 깔끔한 왕조는 없겠으나 비슷한 이름과 유사한 사건들이 잦아서 그네들의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간간히 가계도를 넣어 이해를 돕고 있으나 내가 구성한다면 잊을 만 하면 한번 씩 알려주어서 책을 끝까지 따라올 수 있도록 도울 것 같다.

 

아래 글은 스승님께서 지난 해 3 7기 연구원들의 입학을 축하하며 경주에서 말씀하셨던 이야기인데 일연의 뜻이 자신에게 연결하여 작가적 삶을 살아는 메시지다. 말미에 붙여 리뷰를 마친다. 홈페이지에도 잘 나와 있다.

 

일연 스님은 1206년에 태어나 84세에 입적했으니 13세기를 가득 살다갔다어려서 광주 무량사에서 공부하다 14살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우리가 속초 연구원 여행을 갔을 때 다녀왔던 진전사는 신라말부터 시작된 불교의 사상 혁명인 선종의 아홉 선문(禪門) 중 가지산문에 속해 있었다출가하여 스물 두 살에 승과에 합격한 이래  나라의 국사가 되고 입적할 때 까지 승려의 몸으로 평생을 살았다마지막 몇 년을 군위의 인각사에 머물며 어머니를 돌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삼국유사의 집필에 전념하였다. 인각사(麟角寺)는 그리하여 일연이 마지막 머문 곳이 되었다.

스님의 이름은 처음 견명(見明)이었다가 출가 후 회연(晦然)이라 지었다. ''는 그믐달이다. 어둡다. 처음 '밝다'는 뜻을 쓰다가 승려가 된 후 '어둡다'는 의미를 자신의 인생 속으로 데려왔다. 이윽고 만년에 이르러 일연(一然)이란 이름으로 밝고 어두움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사상은 '하나와 여럿'을 다루는 것이다하나는 근원을 찾는 것이다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원리에 이르는 것이다여럿은 하나 속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다루는 것이다. 하나에 집착하면 결국 종교로 가 모든 원리의 제 1 원인으로 신을 상정하게 된다. 여럿에 집착하면 결국 예술에 이르게 된다. 하나가 무수한 개체로 나누어져 존재하는 형상이 예술이다. 하나를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아 무수한 진실의 일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의 한쪽 끝이 종교라면 그 반대 쪽 끝은 예술이다. 그러니 삶은 종교와 예술의 사이에서 살아지는 것이리라.

하나와 여럿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로 삶 속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살게 된다. '' '우리'도 결국 하나와 여럿의 관계다. 세상은 무수한 나로 이루어져 있다인류의 수만큼 모두 다른 인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무수한 인생을 묶어 주는 하나의 질서가 있다. 인류는 하나의 종이고, 그것은 동질의 특성을 공유한다. 신화는 인류의 무의식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는 인간의 개별적 사례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 준다. 문학은 우리의 상상과 꿈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 준다. 그리고 철학은 세계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이해하려는 인간 정신의 사유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은 2개의 근본 사실, 하나(동일성)와 여럿(차이성)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표면적으로 다르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통의 하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현상에 공통되는 제 1의 원인(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결국 만물은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마도 이 깨달음이 만년의 일연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가 아닐까 ?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라. 내가 곧 우리이고 우리가 곧 나다. 이 작동의 원리를 잊지마라. 홀로 공부하면 어렵지만 함께 하면 쉬울 것이다. 하나가 쓰러지면 일으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떼거지로 몰려 이룰 수 없는 것도 있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떠나지 마라. 이 구체성, 이 개별성, 이 특별함을 갖지 못하면 인생은 이야기를 가질 수 없다.  나의 이야기가 없다면 인류에 공헌할 수 없다.

7기 연구원들은 여러 분야를 조금씩 맛보기 시작할 것이다. 신화도 읽고, 역사책도 몇 권 보고, 개인들의 이야기도 들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사유하는 지도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될 것이다. 커리큘럼 속에 여러 좋은 책들을 보게 만든 것은 다양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 번 읽기를 시도하여 깊게 들여다 보라함은 하나를 찾아보기 위함이다. 여름 여행이 지나고 나면 끊임없이 물어라.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고,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와 여럿의 개념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아라. 여러 분야를 냄새 맡다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조금 깊게 파보아라. 그리고 그 깊게 판 곳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써라. 조금 깊게 판 곳, 그것이 바로 너희가 쓰게 될 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책이 되지 못하면 공부를 시작한 첫 2년이 잘 정리될 수 없다. 배움은 끝이 없고 정신에는 이정표를 세우기 어렵다. 쓰지 않고는 지금 까지 내가 다다른 정신의 지평을 알 수 없다. 나는 광활한 세계 속에서 다시 미아가 되고 말 것이다. 책을 써 낸다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지 알겠느냐 ? 내가 지금 있는 곳의 풍광을 묘사하고 어디에 있는 지 추측하고 어디로 갈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부한다.

"글로 만든 삶의 혁명" 을 이루어라

우리는 작가다. 작가는 글을 통해 나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 내가 쓴 책은 진짜일까 ?
   -
내 삶으로 만든 책이라면 진짜다

* 우리가 우리를 얼마나 스스로 도울 수 있을까 ?
  -
연구원이라는 것, 선생과 동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평생 동지라는 것은

  
내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
우리가 얼마나 이 세상을 도울 수 있을까
?
   -
우리가 쓴 책이 누군가 삶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우리는 세상에 기여한 것이다

함께 한 시간들을 기억해라. 그 표정과 눈빛과 웃음을 기억해라. 좋은 말을 기억하고, 어깨에 얹혔던 손길을 기억해라. 함께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 가라. 배움만큼 기쁜 놀이가 없으며, 함께 사는 것 보다 웃음이 많은 것이 없다. 진평왕능에서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놀았던 것을 기억해라. 봄날 벚꽃길 사이를 길게 걸어 웃음을 나누었던 일을 기억해라. 배고파 정신없이 먹었던 풋나물 점심을 기억해라. 특별한 하루가 곧 그대들의 삶이다.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가져라.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을 기억해라. 인색하지 마라. 졸렬해 지지도 마라. 서로에게 최상의 것을 주어라.

스님이 간지 오래 되었으나 찾아간 사람의 마음 속에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절은 그 이름 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무너지고 불타고 사라졌지만 책은 남았다. 삼국유사를 읽을 때는 이 날 우리가 지나왔던 그 풍광을 기억해라. 책은 언제고 살아나 읽는 이의 죽은 심장을 뛰게 만드니 그리하여 다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이미 시작했다. 시작하는 순간 이미 작가임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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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id: 깔리여신
2012.09.16 00:27:17 *.85.249.182

재용! 내가 저자라면 정말 잘썼다.

이 밤에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세심한 들여다보기와  치밀한 글쓰기가 돋보인다.

기대한다. 기대된다. 앞으로 나올 너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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