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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1일 16시 16분 등록
두 바퀴로 세상을 굴린다는 것.JPG

마흔 살 팔월의 달력 어느 날.

“이번 여름휴가 기간 동안 나 자전거 연습해서 탈거다.”

호기 있게 던진 나의 말에 마늘님 왈.

“흥, 어이구 잘도 타겠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인지 모르게 구입해 놓은 자전거가 녹이선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대답이었겠지만 그 말에 나는 오기가 생겼다.

“두고 봐. 꼭 탈거야.”

 

부끄럽게도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자전거를 몰아본 경험이 없었다.

그럴 욕심도 없었고.

‘타지 않는데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잖아.’

그런데 경기도 분당 탄천으로 이사를 온후 이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아침 운동을 위해서 걷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자전거를 타고 씽씽 지나가는 이들이 무척이나 부럽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서서히 심적 동요가 일어난 얼마 후.

‘나도 한번 자전거를 타봐?’

그런데 그것이 마음만큼 쉽지는 않았다.

원체 운동신경이 없는 나에게는 남들이 우습게볼 그것 하나도 안전지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작정을 하였다.

‘그래. 이번 휴가를 반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전거를 배워 봐야지. 그래서 남들처럼 탄천 도로를 훨훨 달려 보아야지.’

 

그런데 이런. 독하게 마음먹은 첫날. 무거운 자전거를 낑낑 끌며 아파트 1층에 도달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지. 타지도 못하는데 비가 오면 더욱 위험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이튿날 새벽녘 다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깜깜한 새벽에 나간 이유는 아무래도 남들 보기에 민망하였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라. 아이들도 다타는 자전거를 이날 이때까지 다큰 어른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이제부터 시작이야.’

마음을 먹고 안장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어라. 왜이리 높은 거야.’

어쩔 수 없었다. 한발을 땅에 어렵사리 지탱하고 나머지 발을 페달위에 올려놓고 힘껏 내달렸으나 역시 예상대로 길바닥에 나둥그러졌다.

‘이런 XXX.'

진짜 쪽팔렸다. 혹시 누군가 있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다행히 아무도 보는 이는 없었다.

다시 페달을 밟아 보았다. 뒤뚱뒤뚱.

‘근데 자전거는 원래 이렇게 무거운 건가. 이런 자전거를 애들은 어떻게 타지.’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시 넘어지기 바빴으니까.

이렇게 두 시간여를 연습하고 있노라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신데렐라가 그러했듯이 이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엉덩이며 삭신이 욱신거리는 것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모습을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어딜 다녀온 거야.”

기지개를 펴고 나오는 마눌 님이 땀에 절어 들어오는 나에게 건네는 한마디.

“이야기 했잖아. 자전거 연습한다고.”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뜬다.

“진짜? 난 그냥 빈말인줄 알았는데.”

이런. 같이 사는 사람마저 나의 말을 믿지 않다니.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게 나의 책임인걸.

마흔이 되기 이전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부담감 아래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일을 시도 하였다가 중도에 그만 두었던가. 그러니 신뢰심을 주지 못했을 수밖에.

더욱 타야할 명분이 생겼다.

‘그래 내가 꼭 자전거를 잘 타서 펄펄 나는 모습을 기필코 보여 주리라.’

 

둘째 날 연습. 뒤뚱거리는 것은 여전하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내친김에 어렵사리 아파트 밖까지 몰고 나가 보았다.

달빛 내려오는 새벽 혼자 자전거를 모는 기분은 묘했다.

신문 돌리는 아저씨와 우유 배달하시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꼭두새벽부터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많구나.

 

드디어 작정한 삼일 째다. 자전거를 끌고 드디어 탄천으로 나갔다.

많은 분들이 하이킹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나도 그들 대열 꽁무니에 동참 하였다.

그런데 이런~ 조금 가자마자 다른 자전거와 접촉 사고가 일어났다.

황당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한 감정이 먼저 앞섰다.

‘애들도 쉽게 타는 자전거를 너는 늦은 나이에 이틀씩이나 연습하고도 그렇게 못하냐.’

자동차처럼 초보 운전이라고 써 붙이고 다녀야 되는 건지.

남들이 보지 않는 공터에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조금씩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자신감이 일어나 내달렸다.

바람이 일렁이는 가운데 나는 기분 좋게 달리고 있었다.

야호!

푸른 산이 지나고 기다란 건물들을 뒤로 하였다.

걸어서 산책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맛. 쾌감이라고 설명을 하여야 하나.

아! 이래서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을 하는구나 라는 감정을 몸으로 직접 겪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첫시험을 치른 아이가 100점 맞은 것을 자랑하듯이 나도 자랑스럽게 기세등등하게 집으로 향했다.

“나. 탄천을 자전거로 달렸다!”

하지만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거짓말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자전거는 무슨 자전거.”

이렇게 못 믿다니. 내가 이렇게 신뢰심을 못주었다니.

한주가 지난 후 나의 진실은 증명 되었고 함께 탄천을 돌았다.

 

늦게나마 배운 자전거는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으로 자리하였다.

새롭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적잖은 만족감으로 자리 잡게 해주었다.

가슴으로 닥치는 풍경에 정면으로 부닥쳐 순수한 나의 두발의 에너지로 페달을 밟노라면 희열감과 짜릿한 기분이 일어난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나 스스로의 몰입으로 페달을 밟다보면 똑같이 일어나는 환경의 테두리에서도 색다른 감정과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두 바퀴로 세상을 굴린다는 것.

그리고 가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간다는 것.

그것은 세발자전거 어린 시절의 또 다른 추억이다.

 

IP *.117.1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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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8.21 22:55:57 *.143.156.74
아이구 이런, 선배님이 분당 사셨었네요.
저는 판교 쪽에 사는데 오늘 저녁에 아이들과 율동공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왔답니다.
아이 자전거를 빌려 달려보니 루까에서의 자전거 탈 때 맞은 바람이 생각나더군요.
아무래도 자전거 한 대 장만할까봐요. ^ ^
저도 두 바퀴로 세상을 굴려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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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11.08.25 05:57:36 *.117.112.48
루까에서의 자전거의 달림. 저도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이역만리 유럽에서 색다른 경험 이었으니까요.
충전된 에너지로 다시한번 으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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