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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속박이 되어 살았던 적이 있다.
몇 시 몇 분 몇 초의 정해진 틀 속에 한 달과 주간 일일의 계획과 리스트를 설정하고 그것을 다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시급과 중요성으로 구분을 하여 지켜 나갔다.
바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을 하고 나아가려면 이런 계획성 있는 활동은 당연하다는 생각 속에서 나를 끝없이 채찍질하고 담금질 해나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드노라면 스스로의 쾌감이 밀려 들어왔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내가 설정한 꿈과 비전이 꼭 달성 되리라는 희망이 부풀어 올라왔다.
행복 하였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하였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끈기가 있다고 하였다.
나는 우쭐 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다른 것에 대한 우월감을 가졌다.
상상 속에 있던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는 날.
대단한 기대감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한정된 공간 틈바구니 속에서의 일상의 탈출은 신선했다.
그곳은 당연히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그 무엇이 가슴을 뛰게 하였다.
우리보다 앞선 그네들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 이었다.
나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관광지와 유적 보다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우월한 성공 인자를 찾기 위해 작디작은 눈을 둥그레 뛰며 관찰 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무언가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치열한 삶의 현장은 보이질 않았다.
그저 보이는 것은 삶의 느릿느릿한 정지된 풍경들.
곳곳에 산재한 형형색색의 카페들 속에서 그들은 차 한 잔을 시켜놓고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고 간간이 책을 읽고 시간을 마냥 뒤로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의 날림에 바람의 스침을 흘리며, 뜨거움에 눈부신 태양의 존재를 느끼며, 세상 돌아가는 변화와는 상관없다는 듯 일상의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저게 뭐야.
찬란했던 선조들의 문명의 흔적과는 너무나 대비되어 보이는 그네들의 일상에 나는 혼돈감이 일어났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딴판이잖아.
잠깐.
내가 기대했던 게 무엇이었지.
부지런함을 그렸었니.
치열한 경쟁의 현장을 보길 원했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며 쌍코피 터지는 근면성을 기대했었니.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잘 모르지만 의문의 질문 속에 그렇게 약속된 시간은 흘러갔다.
어쩌면 그들의 핏줄 속에는 비어있음의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들의 근원 속에는 여유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의 시간이다.
나는 다시 <모던 타임즈> 영화 속의 찰리 채플린이 되어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게 사는 삶일까.
주어진 일을 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보람된 삶일까.
당연하다는 논리의 회의 속에 다이어리를 덮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뒤로하고 싶었다.
시계를 풀었다.
<모모>처럼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둥지속의 날개>의 주인공처럼 반복되는 아침 출근길 어느 뻐꾸기시계 앞에서 일상에서의 일탈을 감행하는 용기 있는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자그마한 시늉을 해보았다.
항시 긴장되어 있는 어깨의 근육을 풀었다.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조급함의 마음을 잠시라도 쉬게 하고 싶었다.
무언가 읽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뒤로하고 버스와 기차에서 창밖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지나간다.
시간도, 나이도, 삶도.
덧없음이 아닌 흘러간다.
그리고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