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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스포츠라고 하는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가 대구에서 개최 되고 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스타급 선수들이 몰려와 달구벌의 안마당을 축제의 분위기로 물들고 있는 것이다.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를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하나의 마음으로 합쳐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TV에서 방영되는 이런 방송의 중요도 관계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겹쳐지거나 결방 될 때 아쉬워하는 분들의 목소리도 있어 그에 따른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번쯤은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휴일 벌어지는 가족들 간의 리모컨 전쟁을.
“지금 야구 경기 하니까 조용히 방안에 들어가 공부해.”
“아빠는……. 만화하는 시간인데.”
“여보. 내가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봐야 하는데.”
최근 7080 세대의 단면을 조명하여 대박을 일으킨 “써니”라는 영화의 도입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배경은 병원. 병상에 있는 친정어머니와 딸의 역할로 나온 유호정이 대화하는 가운데 TV에서 아침 드라마 장면이 나왔다. 그러자 주위의 환자분과 가족 분들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사단이 일어난다. 예측 못한 스토리의 반전에 손뼉을 치고 언성을 지르거나 황당해하는 표정 등이.
“워떡혀 워떡혀.”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저런 때려죽일 놈이 다있나. 하여튼 남자들이란…….”
반면 이런 반응들 속에 적응이 안 되는 그룹이 있다. 바로 남성들이다.
“도대체 저런 질질 짜는 드라마가 무어 그리 재미있다는 거야.”
“결말이 빤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드라마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솔직히 나도 그러했다. 재미 하나도 없는 드라마에 빠져있는 그녀들이 할 일 없어 보이기도 하였고. 그런데 직업상 혹은 마눌 님과의 공감대의 일치를 위해라는 이유와 함께 마흔 살이 넘어가는 나이에 있어 한번 두 번 보다보니 거기에 묘한 매력과 중독성이 있었다. 무언가 빠져드는 그 무엇이 말이다.
1. 남성 프로그램의 향연(饗宴)
통계적이긴 하지만 남성들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대등소이하다.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속의 수사반장과 동물의 왕국. 그리고 시사 프로, 스포츠, 뉴스, 날씨 등. 종류는 다르지만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결론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수사반장 - 사람이 죽었다 죽지 않았다, 범인이 잡혔다 잡히지 않았다의 확고한 권선징악
동물의 왕국 - 먹이사슬의 경쟁 아프리카 초원 위에서 사자가 사슴을 잡았다 혹은 놓쳤다
스포츠 -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다 졌다,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었다 못 넣었다
뉴스 - 대형 사고가 났다 안 났다, 쓰나미가 덮쳐 많은 재해와 인명 피해가 났다
시사 프로 - 개인들의 치열한 논쟁 끝에 말발이 센 어느 패널의 우세 속에 성패가 결정
날씨 - 내일 어느 권역에 비가 온다 그렇지 않다
느끼겠는가. 남성들은 확실한 사건 종말을 원한다. 이기든 지든 명백한 확인 사살을 요구하는데 거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빠른 구조 전개와 명확성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연식이 오래된 남자와 여자의 대화 한 장면이다.
“자기야, 301호 아줌마 알지.”
“알아. 그런데 왜?”
“그 아줌마가 있잖아. 난리가 났데.”
“엊저녁 밤에 시끄러운 게 그 집이었던 모양이지.”
“얘기 들어봐.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왜? 그 여자가 얻어맞았니.”
“아니. 술 먹고 들어와서…….”
“깨부쉈구나.”
“아니, 그게 아니고…….”
“아! 바람을 피운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니까. 남편이 새벽녘에…….”
“참 사람 답답하게 하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야. 집안이 콩가루가 되었단 말이야 아니면…….”
남자는 정보전달 처리 과정에서 수신시 시간적인 전개에 따른 흐름 보다는 분명한 결론을 서두에서 먼저 원하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중간에 여러 복선을 깔고 이리 틀고 저리 틀며 똬리를 트는 드라마 자체를 보는 것을 태생적으로 즐기지 않을뿐더러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2. 드라마 제전(祭典)
알콩달콩 깨냄새가 폴폴 나는 결혼한 지 2년차된 합법화된(?) 신혼부부의 이야기 이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아내는 천생 여자의 스타일인 감성적이고 새침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되어갈 무렵 남편이 보기에 아내의 행동중 못마땅한 일이 눈에 뜨이기 시작 하였다. 그것은 아내의 과도한 TV 시청 건이었다. 한번 두 번은 봐주어도 계속 이것이 이어지자 드디어 복장이 터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집안에서 무엇 하자는 건지. 왜 허구한 날 TV만 끼고 사는 건지.’
아침 식사시간. 바쁜 출근길 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작정을 하고 말을 꺼내었다.
“자기야, TV볼 시간에 생산적으로 책을 읽든지 아니면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남편은 자신의 이런 마음 씀씀이에 아내가 흡족해 할 줄 알았다.
“자기가 퇴근하고 들어와 뉴스 보는 것 하고 내가 좋아하는 프로 시청하는 것이 뭐가 달라?”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알 수 있는 뉴스 프로그램과 허접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저런 것들과 비교를 할 수 있는 건지. 그래도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 했으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하지만 늦은 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변함이 없었다. 뭐하자는 건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난 남편의 분에 넘치는 감정적인 한마디.
“TV 안 꺼?”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사례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닥치는 현실 상황인 것이다. 0월 0일. 지방 출장을 마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노스탤지어의 향수가 묻어나는 아파트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이런. 반기기는 고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벌써 자나요. 지금 몇 신데?”
열쇠를 들이밀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이런~ 코고는 마눌 님의 목소리가 아닌 TV의 생생한 드라마의 대사 소리만 낭랑하다.
“남편이 들어오는데 지금 뭐하는 짓인고.”
울분에찬 목소리로 버럭 한마디를 내뱉으니,
“미안, 지금 중요한 장면이 나와서 벨소리를 못 들었어.”
너무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녀 앞에 나는 할 말을 잊어 버렸다. 도대체 여자들은 왜 이렇게 사소한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일까.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하였다. 방법은 하나. 알기 위해서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수밖에. 그런데……. 신기하다. 그곳에 우리가 사는 인간군상들 축소판이 네모난 상자 안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대개의 드라마는 단편이 아닌 연작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고정적인 젊고 잘생긴 현빈, 권상우를 닮은 남자 배우와 쭉쭉빵빵인 여자 주인공과 함께 약방에 감초처럼 양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중견배우들이 주변에 포진이 된다. 남성적인 색채의 선이 굵은 대하드라마가 아닌 이상 대개의 여성 시청자들을 겨냥한 드라마는 사랑의 테마를 화제의 중점으로 둔다.
사랑! 정말 머리 아픈 명제이다. 인간이 존재한 오래전부터의 만고불변의 테마이긴 하지만 이 사랑이란 단어를 들으면 남자들은 대개 머리 뚜껑 사이로 스팀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한사람과 살기에도 복잡다단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랑의 명제를 다시금 드라마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그것이 남자들에게는 어쩌면 귀찮고 머리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여러 중간 중간에 돌발변수의 미로가 등장한다. 오래전 잊혔던 첫사랑이 등장하기도 하고, 결혼생활이 시들해질 즈음 나를 버리고 간 이제는 유부남이 되어버린 그놈과 우연히 조우하여 불륜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하고, 풋사랑 시절 낳았던 아이가 등장하여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기도 한다.
정말 소설책에나 등장할 만한 이런 인간 군상의 요소들이 고스란히 브라운관 화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남성의 휘황찬란한 이성적인 머리 구조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이 꼬이고 꼬인 드라마에 여자들은 열광을 한다. 진심으로 유치찬란한 이 사랑이라는 무념무상의 존재에 정말로 환장을 한다. 환호를 보낸다. 박수를 친다. 공감을 한다.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격동의 감정이 몰아치고 나면 갑자기 전화기를 집어 들고 번호를 누른다.
“똘이 엄마. 드라마 봤어.”
“그래. 어쩜 그럴 수가 있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 맞아 맞아. 그런데 그 남자 너무 멋있지 않니. 아휴. 살 떨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지. 한편의 영화를 찍고 있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지는 가운데 상황을 지켜 보다보면 별XX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밥 먹고 정말 쓸데없는 짓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남편들이 오죽하면 끊었던 담배를 다시 집어 들고 베란다로 향할까 하는 연민이 드는 것이다. 저 시간에 다른 일을 하든 아니면 퍼질러 잠이나 자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내가 변해갔다.
주인공 및 주변 등장인물들이 가공의 소재와 허구일수도 있지만 이것도 엄연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냄새가 났다. 더구나 좋은 것은 침대위에 앉아 편하게 시청을 즐기다 보면 아내와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저런 때려죽일 놈이 있나. 아! 갑자기 생각나네. 자기야. 왜 우리 회사에 이부장 있지.”
“눈매가 쪽 찢어지고 마른 몸매에 성깔 더럽게 보이는 이부장 말이야.”
“그래. 그 이부장이 꼭 저런 스타일이야. 올 때 갈 때 성격 다르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안하고 빈둥거리다가 프로젝트 마감 기한이 다가오면 직사하게 밑에 직원들 야근 시키는…….”
“어머 그래.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어쩐지 느낌이 안 좋더라니.”
드라마의 세상위에 현실의 세상이 오버랩 되면서 대화는 자연히 회사, 거래처와의 갈등, 직원들 간의 스트레스 등으로 승화가 되고 발전이 된다. 술을 먹지 않아도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것이다.
공감대의 한 시간. 이것은 어쩌면 부부생활에서 아름다운 풍경일수 있다.
서로간의 관계에서 대화가 되고 함께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놀라운 여성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열심히 시청을 하다가 중요한 장면이 나오는 순간 꼭 배가 아픈 경우가 있다.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갔다 오면 이야기 해줘.”
당부를 하고 시원한 볼일을 서둘러 끝내고 와서 묻는다.
“어떻게 되었니?”
“나중에 이야기 해줄 테니까 먼저봐.”
그런데 내가 누구인가. 궁금한 것은 그냥 못 지나가는 대한민국 남성의 표본 아닌가.
“어떻게 되었냐니까?”
나의 이런 애정 공세에 마눌 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중요한 장면이니까. 그냥봐.”
이런. 내가 그냥 물러날 수 없지.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적어도 세 번은 찔러 봐야 하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남자의 저 대사는 뭐냐고?”
그러다 보채는 나를 돌아보며 앙칼진 눈망울로 한마디를 하는 마눌 님의 기세에 나는 깨갱 꼬리를 내렸다.
“허참. 그냥 보라니까. 애도 아니고.”
여성은 흐름이 끊기더라도 그 과정을 유추하여 연결해 내는 탁월한 본능적인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중간에 공백이 있으면 도저히 스토리를 이해 못하는 남성에 비해, 전화를 받으면서도 저녁 준비를 하면서도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와중에서도 택배 물건을 수령 하면서도 그 구조를 장악하고 창조해 낸다.
“도저히 이해 못하겠는데 저 장면은 왜 그래?”
나의 이런 의문에 마눌 님은 상황 종료가 되고나자 시원한 대답을 해준다. 신기하다. 어쩜 저렇게 해석을 잘해내지.
최근 방송에서는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에서는 여성 경영자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단순히 남녀 비율 평등을 맞히기 위한 지시는 아닐 것이다. 21세기 감성적인 창조경영을 위해 여성의 능력이 더욱 요구되어 진다는 인지를 한 탓이리라. 그 비밀의 하나가 바로 드라마 이다.
뻔한 결말의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는 정글의 비즈니스 세계. 그곳엔 절대 지존이면서도 경쟁자들에게 위상을 위협 받는 사자와 음흉하고 약삭빠른 하이에나, 동급의 강자 표범, 수면 밑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먹이를 기다리는 악어, 저돌적인 코뿔소 동물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여러 돌발 변수의 상황이 수시로 일어난다. 그런 격변의 시장에서 명쾌한 결말을 좋아하는 남성들과, 여러 상황이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현장의 간접 및 대리 경험을 하고 온 여성들과의 매운 싸움이 벌어진다.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을 요구하는 오랜 전투에서 신맛, 쓴맛, 짠맛의 드라마를 통해 공감대 페이소스에 단련이 되어있는 그녀들과의 일전이.
바주카포와 대공포로 큰 것 하나를 오로지 명중시키기 위해 쓰라린 일상 전투의 결과, 폐부 깊숙이 박힌 총탄의 흔적을 애꿎은 담배와 술로써 하룻밤을 지새우며, 눈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다음날 사우나로부터의 업무를 시작하는 그들.
작디작은 칼빈 소총 한 자루를 챙겼지만 치밀한 계획 속에 끈질기고 연속적인 작은 총탄의 이어짐으로, 결국은 원하는 치명상의 결과를 입히고 화장실과 찻집에서의 건전한 뒷담화를 통해, 카타르시스의 전우애로 반목 끝에 화합을 하며 뭉치는 그녀들과의 게임은 어떻게 계속 이어질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