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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7일 13시 49분 등록

응애 79 -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하늘엔 아직 반달이 남아있군요. 마치 먹다 둔 치즈 케익과 같습니다. 다시 커피 한잔을 내려놓고 친구를 생각합니다. 

어느 날, 선생질을 하고 있던 친구와 대판 싸웠습니다. 아니 싸웠다기 보다는 그 친구가 너무 흥분을 하기에 내가 그만 꼬랑지를 말아 감아 버렸습니다. 스승과 제자를 말하다가 그녀가 말했습니다. “과연 내가 감히 학생들을 ‘제자’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스승인가?” 그녀가 너무 흥분을 해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니 나는 선생도 아니면서 마치 내가 모든 스승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매를 맞는 듯한 느낌이 나더군요. 실제로 그녀는 학생들에게 매우 잘합니다. 면접을 보러가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옷을 사 입혀가며 준비시키키도 하고 참담한 집안 사정을 들으면 함께 울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날 그렇게 열을 낸 이유는 광화문 네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촛불을 들고 있었던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마음 안에서 이상과 현실이 뜻대로 정리되지 않아 갈등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고 이해했습니다.  

지금 나는 오직 한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기쁘게 시작한 연구원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20쪽 미스토리를 쓸 때 나는 이제 날은 저물고 길은 어두워져 지금 여기, 내 인생의 마지막 간이역에서  일어나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라고 썼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성실하게 우직하게 잘 걸어온 듯 합니다. 비록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지 못해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한데 어울려 마침내 “좋은 인생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 마지막 고비 또한 유쾌하게 정리하고 가야 하는 길이겠지요. 

추석은 한 해동안 뜨고 지던 달이 차고 기울고 또 다시 차 올라와 최고의 달을 보여주는 날입니다. 그러니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 이렇게 잘 살고 있음을 축하하고 즐기는 시간이지요. 그리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모든 조상들과 우주의 인연들에게 감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껏 그렇게 해왔고 비록 절망 속에 있었을 때라도 밝고 환하게 떠오르는 달을 보며 희망을 이야기하고는 해 왔었지요. 그러나 추석을 며칠 앞둔 지금 나는 조금 슬퍼하고 있어요. 여기 저기 나의 친구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해요. 오랜 스승같은 내 친구는 “그건 네 영역 밖에 있는 일이다” 라고 정리를 해 주었지만 나는 아직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빈손으로 보름달을 받아서 친구의 집까지 가져다주어야 할까 봅니다. 

오늘 아침엔 여기저기 메일을 써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한 곳만 바라보고 정신없이 걷다가보니 참 많은 것을 놓치고 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들 각자는 본질적으로 고독을 느끼며 궁극적으로는 무력함을 느낀다.” 고 실존철학자들이 위로해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아침 내 젊은 친구의 짐을 등에 지고가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K의 글이 당연히 올라와야 하는 시간에 보이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나는 그가 쓰는 글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짐작컨대 그는 매우 젊고 매우 열정적이어서 그의 성격이 곧 그의 운명이 될 것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희생제단에 바쳐서 자기의 꿈을 이루려던 이 사람이 지금 혼자서 삶의 무게 때문에 끙끙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포기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디언들은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커피잔이 다 비워졌습니다. 이제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강한 여운을 남겨 한번씩 내가 걸어가는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직업이 선생인 내 친구에게도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연쇄를 확인하는 것이 곧 자기의 발견입니다.“  우이 신영복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며 곧 떠오를 보름달 속에 그대의 얼굴도 담아두고 싶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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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9.07 15:22:53 *.246.78.6
ㅜㅜ.. 좌슨생님. 보고싶어요..ㅜㅜ..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인디언의 말. 가슴 깊이 새길게요.

친구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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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범
2011.09.07 17:06:37 *.69.159.155
나도 미나 보고싶다.
그리고 보름달도 보고 싶다.
송편 두개를 등을 맞대고 붙여보면...보름달 같아지겠지....
나는 다만 송편을 등에 지고 친구집에 가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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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2011.09.07 17:36:29 *.146.26.24
어쩜,  이글을 읽는데 좌쌤이랑 대화할 때 쌤의 톤으로 읽게 되네요.
말투랑 글투랑 참 많이 닮았어요. 달을 닮은 좌쌤..
요즘 코는 잘 지내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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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범
2011.09.08 07:43:29 *.69.159.155
아니, 새벽같이 다 어딜 가버린걸까요?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집에 아무도 없습니다.
에잇, 나도 나가야겠습니다.
말투 글투 화투 치러 ......코는 잘데리고요. 우산도 잘 가지고요. 댕겨올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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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9.08 17:44:00 *.163.164.176
많이 부족하지요.
선생님이 알려주신 글귀처럼 그의 짐을 같이 지는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사랑이 마음처럼 전달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는 잠시 등짐 중 하나를 내려놓고 다시 오르막 길을 오르고 있는듯합니다.
나중에 내려와서 꼭 그 등짐을 다시 가져갈 사람이라는 것을 
짧은 시간이지만 저는 알듯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에게 아무런 말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마무리하시고자 희망하셨던 글은 잘 써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선생님, 건강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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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1.09.08 23:06:20 *.69.159.155
그래 그래...마음이 많이 쓰이겠지.....
그걸 아직은 편안하게 다 풀어놓지도 못하겠지.... .....

그나저나 난 아무래도 공부체질이 아니고 바람체질인가봐
도서관에 있으면 눈 아프고 배 아프고...코막히고 다리도 아파 죽겠다가.
 밤늦게 도서관 문을 나서면 시원한 바람 불지 구름 잔잔하지 나뭇잎 흔들거리지.... 이럴 때 숨통이 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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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11.09.10 23:06:31 *.117.112.106
류시화 님의 <지구별 여행자>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말게.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서 나타나 그대에게 배움을 주고,
  그대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안내자 들이야."

연구원을 통하여 그리고 5기라는 인연을 통해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과정동안 모범을 보여 주셨고 저에게는 좋은 피드백으로 성장케 해주셨지요.
또한 여행지를 통해 선생님의 따뜻함과 배려심을 체험케도 하셨고요.
앞으로 또다른 안내자로써 선생님과 저는 어떤 만남을 가지게 될까요.
한가위를 앞두고 마음속 두둥실 떠오르는 환한 보름달을 향해 선생님의 건강과 평화를 빌어 봅니다.
좋은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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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1.09.12 11:20:01 *.69.159.155
승호씨 차례 잘 지냈어요?
그대의 글을 읽으며 잠시 숙연해졌어요.
토스카나 버스 속에선 그렇게 장난꾸러기 였는데.....
진지 모드로 칭찬하고 또 존중해주니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감사해요.
난 보나와 승호에게서 성가정의 모델을 보고있는 것 같아서 참 좋아요.
둥근달 밝은달에게 소원을 빌때 그대 가정의 평화도 함께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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