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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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가들을 아는가? 그들은 성취 욕구가 강하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기를 즐긴다. 주목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남들이 마다하는 일은 그들에게 기회를 의미한다. 경쟁의 순간, 그들의 피는 뜨겁게 끓어올라 질주의 신호를 만들어낸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파우스트적 거래도 불사하는 자, 인정받지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확신하는 자, 전장에서의 승리가 그 무엇보다 짜릿하고 가치 있다 생각하는 자, 나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Why are you so serious?’ 외국인 동료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나는 대답했다. ‘I am always serious about work.’ 일은 나에게 성공과 영화를 가져다 줄 귀인이었다. 일에 대해서 진지하고 심각할 것, 그것은 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경쟁의 순간, 피가 끓어 오른다. 이겨봐야 스티커 하나 정도 얻을 수 있을 뿐인데도 문제가 끝나기도 전에 오른손이 번쩍 들린다. 남들은 답을 알아도 눈치나 보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벌떡 일어나 답을 외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짜릿함은 더 해진다. 경쟁의 순간, 나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직장 생활 할 때 나에게 휴식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퇴근 후나 주말, 연휴 때면 나는 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자칫 과도하게 움직였다가 에너지를 소진해 내일의 업무에 차질이 있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휴식은 주로 ‘잠’을 의미했다. 취미도 없었다. 일 이외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취미란 것이 왜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남는다면 내일 할 일을 구상하거나 못다한 일을 하는 편이 더 생산적이라 생각했다.
나, 인정받고 싶은 자의 휴식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무엇이든 하고 있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안식년인 지금도 여전히 바쁘다. 안식년을 시작하면서 정한 10개의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는 형국이다. 너무나도 열심히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쉬고(?) 있는 나. 나의 휴식에는 이제 취미들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바느질을 하고 붓글씨를 쓰면서 나는 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재미와 성취감을 느낀다. 내가 취미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인지 미처 몰랐다. 취미가 생활에 활력이 되고 향기가 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처럼 바쁘게 생활하고 있지만 과거의 나와는 세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은 좀처럼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에서의 하루하루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하는 전투가 매일 계속되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기진맥진했다.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일을 해내어도 생생한 풋고추같이 아삭하다. 또 하나는 조급증이 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에서는 최단시간에 최대의 성과가 필요했다. 그래서 항상 조급했다. 한 발 먼저 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경쟁자들의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란 신념 하나만 붙잡고 있으면 된다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숨어 있던 유머 감각이 살아났다. 조직에서 나는 항상 심각하고 우울했다. 지치고 조급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젠 하루가 즐겁다. 생생함과 느긋함이 함께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지치거나 조급하지 않으며 유머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결론은 나왔다. 좋아서 하는 일을 한다면 그 과정을
즐기며 지치지 않으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정을 즐긴다면 성과는 분명 나올 것이다. 그 성과는 남과의 경쟁에서가 아닌 나와의 경주의 결과이니 그 자체로 기뻐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나와 같은 인간은 항상 ‘균형’이란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건강과 가족을 등한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빅터 프랭클이 우리에게 말했듯이 이상적인 삶은 두려움 속에서 치즈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행 자체가 목적인 라비린스와 더욱 비슷할 것이다. – 다니엘
핑크 <새로운 미래가 온다> 중에서
B. A. L. A. N. C. E.
일곱 글자를 마음에 새기며 나의 라비린스를 천천히 거닐어 본다.
삶의 여정을 즐기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