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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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tring Beans]는 양갱이 '매주 월요일에 전하는 사진에세이'입니다. 여행기 형식이 될 수도 있고, 일상을 담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점은 사진이 보조가 되는 글이 아니라 사진 중심의 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최소한 사진과 글이 함께 가는 사진에세이가 될 것입니다. 거기에 저만의 독특한 시각을 더해 깊게 사색하는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삼국유사에 관한 책을 쓰는 고운기님은 "상상은 시간이라든가 구조라든가 어떤 기제에 실릴 경우 사실 이상의 사실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렵게 느껴지지요? 이 말이 무슨 말일까요? 뭔가 있어보여 밑줄을 쳐놓기는 했지만 '삼국유사'를 다읽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되더군요. 저 나름대로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 서서 객관적 사실을 보면서도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어떨 땐 천 년전에 만들어진 석탑 앞에서서 그 탑이 만들어진 시대로 돌아가기도 하고, 때론 수억년 동안 철썩거림을 멈추지 않았을 파도 앞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인류 이전의 시대를 상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고, 그것에 더해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이 '사실 이상의 사실'로서 경험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요. 그 경험은 초월의 느낌, 감동스런 떨림과 함께 오기에 강렬하기까지 합니다. 이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집에서 한 시간도 채 안걸리는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를 찾아 갔습니다. 해안사구는 겨울철 강한 북서풍에 의해 바닷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육지쪽으로 퇴적되어 구릉을 형성한 곳을 말합니다. 신두리의 해안사구는 길이가 3km가 넘고, 폭은 0.5~1.3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큽니다. 이 모래언덕은 내륙과 해안의 완충공간 역할을 하며, 사구 안쪽으로는 자연스럽게 습지가 형성되어 독특한 동식물이 살게됩니다.
가장 먼저 만나 곳은 신두리 사구 바로 직전의 '두웅습지'였습니다. 이곳은 해안 사구의 배후 습지로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이기도 하고 수심이 2~3m나 되는 호수도 있습니다. 배후 습지란 육지에서 흘러온 지표수나 지하수가 모래언덕에 막혀 바로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습지와 호수를 형성한 곳을 말합니다. 두웅습지를 거닐며 오랜 세월 모래가 쌓여 언덕을 이루고 다시 물이 고여 습지가 되고 호수가 되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알아챌 수 없게 천천히 습지와 호수로 변했겠지요. 또 기후의 변화와 인간에 의해 서서히 변해가겠지요. 지금은 그곳에 육지와 물, 중간지대에 사는 부들이나 갈대, 원추리들이 싹을 틔우고 물 속에 사는 애기마름, 연꽃이 자라났습니다. 게다가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와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도 산다지요. 안타깝게도 제가 확인한 동물은 어망에 잡혀있는 황소개구리 뿐이었지만요.
[신두리, 두웅습지, 2011]
두웅습지에서 벗어나와 바닷가 쪽으로 향했습니다. 사구의 아랫쪽은 길게 팬션 단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곳도 예전에는 길다란 모래언덕이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되어 이제는 어느정도 개발이 제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곳곳에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남쪽 어딘가에는 골프장이 건설된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어수선한 팬션단지가 끝나면 모래언덕을 만나게 됩니다. 초입에 차를 세우고 습지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갑니다. 순간 만나게 되는 광활한 초원과 멀리 보이는 소나무 숲, 그리고 습지 안의 자그마한 웅덩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런 감탄과 경이의 느낌을 위해서라도 이곳 사구와 습지는 보호되어야 마땅합니다.
[신두리 사구1, 2011]
습지와 바다 사이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 생긴 산책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좌우를 살펴보면 사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겨울철 바닷바람에 모래언덕이 생기고, 그 모래언덕에 자연스럽게 식물들이 자리잡으면서 완충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전국최대의 해당화 군락지가 있으며, 사구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이제 바닷가 쪽으로 내려오면 신두리 해수욕장입니다. 3km 정도되는 기다란 모래사장이 펼쳐져있고 어느덧 해가 지고 있습니다.
[신두리 사구2, 2011]
이렇게 산책하고나니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풀향기들이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모래 사장엔 게들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구멍들과 모래 알갱이들이 뭉쳐 있습니다. 그 작은 건축물들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쥐똥만한 것도 있고 쌀알만한 것도 있습니다. 색깔도 여러가지고 모양도 다 다릅니다.
그렇게 알갱이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 갑자기 글 첫머리에서 말했던 '사실 이상의 사실' 이라는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래 알갱이 흔적들은 '사실'이고, '사실 이상의 사실'은 이것이 밀물이 들어오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며, 또한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었죠. 추상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제게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머리가 번쩍거렸죠. 이것은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을 쓴 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가 어느 해변에서 느꼈던 하나된 느낌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프라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사실 이상의 사실'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실 이상의 사실'을 알아차리는 마음의 힘을 발휘하며 살 때, 우리는 마음 속에 꿈틀대는 에너지를 느끼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게 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천지해인天地海人'입니다. 괜시리 후회와 원망의 마음도 울컥 솟아 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지금'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만, 그말은 너무도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연속되지 않은 지금 뿐이라면 인생이 무슨 의미일까요? 깨어있음은 무엇을 위해서 일까요? 차라리 지금 여기서 전체를, 시간으로 따지면 영원을 느끼고 살고 싶습니다.
첫 이야기에서 신두리를 돌아보며 '사실 이상의 사실'을 체험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삶에서 이런 순간들을 자주 만들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대부분의 하루가 습관적이고 권태로울지라도요. 앞으로 꾸준히 다양한 사진과 사진이야기로 쌓아 나가겠습니다. 추석날 아침. 당진에서 [Monday, String Beans]를 보내는 '양갱'이었습니다.
천지간에 바다와 사람이있다
신 앞에 내가 선 것이다
어떻게 태어난 나인데...
눈시울이 뜨겁다
문득,
지금이 아니라 영원을
사실 그 이상을
살고
싶다
[신두리1, 2011]
[신두리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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