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 조회 수 2407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추석이 지나고 일주일 후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엄마의 생일이다. 올해 엄마 생일은 동생들이 없어서 좀 썰렁하다. 생일에 접어드는 12시 엄마와 함께 마실 맥주와 미역국을 사간다. 그런데 집에 갔더니, 엄마가 이미 본인의 생일을 위한 미역국을 끓여놓으셨다. 그것도 아주 큰 솥에 몇 일간 먹을 수 있는 양으로 말이다. 백수지만 엄마에게 무엇을 선물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는 그녀. 엄마는 그녀보다 먼저 고민하는 그녀를 위해 이야기를 하신다.
“엄마는 현금이 좋아.”
현금이야 드리면 당연히 좋아하시겠지만, 얼마 전 엄마가 입을 속옷이 없다는 얘기를 기억하고 있던 그녀. 그래서 이번 생일에는 엄마가 좋아하실만한 예쁜 꽃분홍색의 속옷 세트를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생일 오후에 평소 그녀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속옷 매장에 들렀다. 찬찬히 둘러보니 다행히 엄마가 좋아하실만한 이쁜 핫핑크의 속옷이 눈에 들어온다. 백수인 그녀에게 거금이긴 하지만, 선물을 받고 좋아하실 엄마를 생각하며 당당하게 결제를 하고 선물 박스를 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매장을 나선다. 주말이라 카페에서 책을 읽고 숙제를 열심히 한 후에 집으로 향한다. 저녁에는 미국에 가 있는 동생과 영상 통화를 하기로 했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고, 밀려 있던 집안일도 좀 하고, 동생이 일어날 시간 즘에 전화를 해서 동생을 깨운다. 스카이프로 영상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같이 살 때는 동생 잔소리에 괴로워하던 그녀였지만, 막상 떨어져 살고 나니 함께 살 때보다 전화통화로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 간지 한 달만에 인터넷이 연결되어서 오랜만에 동생의 얼굴을 보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든다. 말도 잘 안 통하고, 공부하느라 힘들텐데 동생 얼굴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엄마 생일이 다음날 인줄 알고 있던 동생에게 오늘이 엄마 생일이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엄마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얼마 전에 이사한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동생. 햇빛이 아주 잘 들어올 것 같은 커다란 창문과 새하얀 침대, 책상과 책장이 깔끔한 동생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집에 함께 있을 때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옷방도 따로 있다. 하우스 메이트가 나간 후에는 주방과 거실도 보여주는데, 혼자 살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싶다. 집안을 둘러 본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니가 그렇게 바라던대로 집 어지를 사람도 없고, 혼자 살기에 딱이네. 이제 환경은 다 갖춰졌으니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겠네? 그지??”
왠지 그 말을 듣는데, 동생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평소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동생이 미국에 간 뒤로 얘기할 사람이 없어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화통화를 통해서 이미 들어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내게는 애써 밝고, 모든 것에 만족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모국어를 쓰는 한국에서도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말도 잘 안 통하는 미국에서는 오죽 힘들까.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는 동생이 새삼 대견스럽다. 3시간 정도 동생과 그 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실컷 하고, 통화를 끊기 전에 동생과 함께 엄마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엄마가 좋아하신다. 역시 통화를 끊기 전에 동생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언니 옷 정리했어?” “아니 아직” “으이구~~ 도대체 언제 정리 할래??” 그러자 엄마가 옆에서 한마디 하신다. “냅둬. 지가 필요하면 하겠지~~” 역시 그녀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건 엄마밖에 없다 싶다.
자정이 다 돼서 전화를 끊고, 엄마는 피곤했는지 금새 곯아 떨어지신다. 저녁 먹은 그릇들을 치우는데, 왠지 맘이 찡하다. 사실 여동생이 한국에 있는 동안에 엄마를 챙기는 것도, 집안 살림에 신경을 써온 것도 동생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맏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신경을 거의 쓰지 않고 살았다. 동생이 ‘엄마가 주말에도 일 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제 엄마 나이도 적지 않은 나이라고. 언니도 이제 좀 안정적으로 좀 살지?’라는 잔소리들도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로만 여기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동생마저 외국으로 나가버리고 엄마랑 둘만 남고, 엄마가 일하는 모습이며, 매달 나가는 관리비며,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 정말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든다. 엄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엄마에게도 지금 그녀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선물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제 50대 중반에 이른 엄마의 생일.. 얼마 전 미스토리를 쓰기 위해 찾았던 젊은 시절의 엄마 사진을 보며, ‘그래. 엄마도 이렇게 젊었을 때가 있었지.
나이가 들수록 여유로워져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시간을 노동하고 있는 엄마. 그 동안은 애들 셋 키우느라 그랬지만, 이제 엄마도 일 그만두고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사실 때가 되었지.’ 왠지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늘 언니가 더 큰 사고 칠까봐 걱정하던 동생, 백수인 본인이 더 힘들거라며 잔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던 엄마. 새삼 일방적인 배려를 받아 온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동생들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조금 더 기댈 수 있는 언니, 누나 그리고 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 다시 작성했던 인생의 10대 풍광을 동생들에게 메일로 보내며 ‘나 이렇게 당신들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그 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다. 물론 그녀가 꿈꾸는 미래를 공유하기 이전에 더 많은 배려와 사랑을 평소에 보여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워낙 감정 표현에 서툰 그녀라 쉽지는 않겠지만, 감정표현이라는 것도 조금씩 연습을 하다보면 자연스러워질 날이 오겠지. 그렇게 오래간만에 가족들 생각을 하며 어렵게 잠이 든다.
3주간 열심히 놀고, 드디어 새로운 회사로 처음 출근 하는 날이다.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 한시간이 넘는 거리에 결국 출근 시간보다 2분 정도 지각을 했다. 사무실에 들어 가서 이미 출근을 한 직원분들이랑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다행히 사장님이 출근 전이다. 출근 길에 사장님인 선배에게 미리 문자를 보냈다. “선배, 이따가 출근해서 잠깐 얘기할 시간 되요? 얘기할게 있는데.” 그래서 30분 정도 개별 미팅을 했다. 그녀가 지금 입사지원을 해 둔 회사가 있으며, 그 회사가 결정되면 다음 달에 나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 외국에 나갈 계획이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다른 회사에 대해서는 여기서 일하는 게 낫다고 얘기하지만, 다행히 나간다고 했을 때 많이 실망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내년에 해외에 나갈 계획이라고 하니, 원래 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맡길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영업하면서 돈 좀 벌어서 나가라고 얘기해 준다. 그리고 사업 확장하려는 분야가 다행히 그녀가 이미 연초에 일을 했던 할인쿠폰과 소셜커머스 관련 사업이라 시장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선배가 모르고 있었던 정보가 꽤 있다. 순간 ‘뭐야. 사업을 시작하려면 정보를 많이 알아봤어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녀다. 그래도 선배가 사업 수완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전 직장의 사장님들과 달리 그리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고, 사장님과 본부장님들이 미팅을 하는 동안 그녀의 자리에서 선배가 던져준 회사 관련 자료들을 읽는다. 다 읽고 나서도 회의가 끝나지 않아, 컴퓨터를 켜고 회사 관련 자료들을 좀 찾아본다. 그런데 왠지 시간이 흐를수록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불안하지만, 일단은 믿어보기로 생각을 고쳐 먹으려고 애쓰지만, 쉽지는 않다. 계속 100% 인센티브 제도인 회사에서 일을 했던 그녀였기에, 이제는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에 다니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던 그녀였기에, 더욱 마음이 심란한 모양이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던 중, 회의가 끝나고 본부장님이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정신을 다시 차린다. 영업관련 교육이 시작됐다. 교육을 받으니, 생각보다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회사에 와서 아이템을 들었을 때, 본능적으로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이전에 했던 영업들보다 더 쉬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두 시간 정도 교육을 받고, 첫날은 일찍 퇴근을 했다. 그 동안 놀다가 갑자기 아침부터 출근을 하고 긴장을 해서인지 집에 가는 길에 피곤함이 몰려든다. 동네 카페에 가서 책을 좀 볼까 하다가, 곧장 집으로 갔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방에 누워 책을 펼쳐 들었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눈이 절로 감긴다. 전날 출근의 긴장감에 회사에 대한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해서인지 오래간만에 아주 깊이 잠이 들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잠에서 깨어 핸드폰 시계를 보니, 알람 울리기 10분 전이다. 백수 생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잠든 그녀. 다시 눈을 뜨니, 40분이 훌쩍 지났다. 동네에 사는 선배랑 출근을 같이 하기로 해서, 몇 시까지 역으로 가면 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오늘은 다시 지하철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 씻고,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어제 첫 출근길보다는 발걸음이 조금 가볍다. 회사에 도착하니 오늘 첫 출근을 하기로 한 새로운 영업 사원이 이미 도착해 있다. 또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컴퓨터를 켰다. 오전 미팅 시간은 또 기다림의 연속이다. 옆에 앉은 새 영업사원에게 살갑게 한마디 말을 걸어 볼 법도 한데, 왠지 내키지 않는 그녀다. 회의가 끝난 후 새 영업사원과 다시 교육을 받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으며 유쾌하게 한마디씩 하기도 하면서, 회사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오후 교육을 간단히 끝내고, 본부장님과 셋이서 영업을 나가보기로 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상점들 몇 군데를 둘러 보니, 브랜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무작정 내치는 사장님들이 많지는 않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더 영업이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시간 남짓의 적은 시간이었지만, 셋이서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얘기도 하니 본부장님도 꽤 재미있는 사람이고, 새로 합류한 영업사원과도 친밀감이 좀 생겼다. 사무실로 돌아와 앞으로 영업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퇴근을 했다. 전날보다 조금 더 여유가 생겨서인지, 오래간만인 회사생활에 다시 적응을 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고, 조용히 책을 읽는다. 3주라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또 다시 시작된 퇴근 길의 여유로운 차 한잔과 책 한 권이 그녀에게 또 다른 활력을 넣어 준다.
그녀의 감정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스럽게 변하곤 한다. 특히 요즘 먹고 살 걱정에 이틀에 한번 꼴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뭐 그렇다고 불면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워도 2-3시간씩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곤 한다. 덕분에 동화책이나 어느 영화에서 봤던 장면에서처럼 잠 못 이루는 밤에 울타리를 넘는 양의 수를 세면 잠이 오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밤에 양의 숫자를 세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고민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지는 법을 터득하고 나니 그나마 밤새 잠을 설치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잠을 설치는 밤이 지나고 나면 유난히 새벽 일찍 눈이 번쩍 뜨인다. 오늘도 역시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잠에서 깼다. 조금이라도 더 자보겠다며 뒤척여 보지만, 이미 잠에서 깬 엄마가 밖에서 움직이는 소리와 불빛에 잠이 오지 않는다. 엄마가 나가려는 찰나 ‘엄마!!’하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더니, 엄마는 잘 됐다며 동생에게 보낼 짐을 가지고 가자고 하신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커다란 박스 두 개와 엄마의 가방이 든 카트를 끌고 주차장까지 내려간다. 오래간만에 마시는 새벽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와 그 동안 겹겹이 쌓아 둔 폐 속의 노폐물들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아침이다. 엄마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카트를 다시 끌고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가지고 밖에 나와 탁탁 털었다. 기분이 한껏 더 상쾌해진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부엌으로 나와 엄마가 남겨둔 밥으로 회사에 가지고 갈 도시락을 싸고, 남은 밥에 계란, 김치와 몇 가지 밑반찬을 꺼내어 오래간만에 밥다운 밥을 차려 먹는다. 이제 회사 출근하기까지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그 동안 미뤄두었던 영어책과 이탈리아어책을 꺼내 든다. 영어 강의 동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이탈리아어 책을 보니 두 시간도 금방 지나가버린다.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함에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회사에 갈 준비를 한다. 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신 아침.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몹쓸 감정변화가 또 그녀를 찾아왔다. 책을 읽을까, 이탈리아어 공부를 할까 하다가, 급격히 나빠진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하기 위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이렇게 그녀의 감정의 하루에도 몇 번씩 별 다른 이유도 없는데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한다. 왜 그럴까?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 보지만, 정말 별 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이란 대답으로 항상 마무리. 예전에 처음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했던 때, 의대를 다니고 있던 친구에게 ‘나 불면증인가봐’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그 때 친구 왈,
‘뭔가 잠을 잘 못 자는 이유가 있어? 커피를 많이 마셨거나, 고민이 있거나?’
‘글쎄… 요즘 이런저런 고민이 좀 있긴 하지.’
‘잠을 못 자는 이유가 있으면 불면증이 아니야. 별 다른 이유 없이 잠을 못 자면, 그게 불면증이지.’
갑자기 몇 년 전에 했던 이 대화가 생각난다.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 것, 조울증인가? 별 다른 이유 없이 이런 거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사람들에게 연락도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만나지도 않으려고 한다. 괜히 내 기분 때문에 상대방 기분까지 나빠질까봐 미안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애써 상대방에게 기분을 맞추어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기분이 울적할 때는 기분이 좋아지거나 그 순간 내게 힘이 되는 음악을 듣곤 한다. 시간이 있으면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기도 하고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 보내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오늘도 버스를 타는 20여분의 시간 동안 음악도 듣고 바깥 풍경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어쩌면 기분이 갑자기 나빠지는 것은 그녀에게 스스로가 무언가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라는 몸의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좀 나아진 기분으로 지하철에서는 다시 이탈리아 공부를 한다. 이탈리아어를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듣기만 하다가, 이제는 좀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녀. 그래서 하루에 한 과씩 아침에 책을 통해 공부를 하고, 출근 길에는 반복하면서 혼자서 예문도 만들어 보면서 하루에 하나씩 그녀의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계획은 성공적인듯하다. 그 동안 그렇게 외워지지도 않던 이탈리아 문법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독학도 나름 나쁘지 않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 공부해 가고, 주말에 andrea를 만나면 혼자 공부하면서 모르거나 헷갈렸던 부분들을 물어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실 공부를 너무 오래간만에 하는 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됐었는데, 하다 보니 방법이 생기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내년 이맘 때쯤, 이탈리아어로 대화가 가능해지는 그날을 상상하니 갑자기 기분이 막 좋아진다. 그녀가 이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있는 동물은 절대 아니지만, 고독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동물이긴 한 것 같다. 오늘도 그녀는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 시간, 연례행사인 동아리 가을 연주회를 앞두고 신입생들이 연주할 곡을 정하기 위한 테스트가 있는 날이다. 올해는 마침 연주회 날 연구원 수업이 있어 참석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연주회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겸 후배들 얼굴을 오래간만에 보기 위해 퇴근 길에 학교로 향한다. 그녀가 동아리 가을 연주회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난다. 때 되면 직장 생활을 하는 선배들이 양 손 가득 먹을 거리를 사서 동아리방에 찾아오곤 했다. 와서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도 지켜보고, 연습하는데 조언도 종종 해 주고, 연습이 끝나면 술도 한잔 사주곤 했던 선배들. 워낙 재학생 시절에 선배들의 보은을 많이 받아, 얇은 지갑이지만 음료수 하나와 과자를 사 들고 동아리방을 찾았다. 동아리방에 도착해 보니 신입생들보다는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 더 많이 보인다. 올해 신입생 5명 중, 두 명만이 초조한 마음으로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다. 점점 치열해지는 취업시장에 뛰어 들기 위해 요즘은 신입생 때부터 동아리나 학생회 등 각종 활동보다는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동아리 신입회원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동아리 방 앞에 의자를 놓고, 선배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후배들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입생들의 팬플룻 연주곡을 듣는다. 한 명은 신입생답게 그리 세련된 연주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팬플룻 연습을 막 시작했던 그녀의 신입생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 나도 저렇게 버벅대면서 연주할 때가 있었지… 신선하다.’ 또 다른 한 명의 신입생은 생각보다 연주를 꽤 잘 한다. 늦게 동아리에 들어와서 연습할 시간도 많지 않았고, 테스트곡을 5일 전에 받았다는데, 악보를 외워서 연주를 하는 것이 신통방통하다. ‘어느 기수나 저런 에이스급 연주자가 있는 법이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아직 호흡도 고르지 않고 연주도 버벅대는 후배가 한달 뒤 연주회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더 기대가 되는 그녀이다. 신입생이 너무 적어, 민망하다며 회장도 테스트에 함께 한다. 우뢰와 같은 박수로 작은 연주회가 마무리 된다. 팬플룻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호흡을 늘리기 위해 풀턴 연습을 조금 더 하고, 함께 했던 선배, 후배들과 함께 술을 한잔 하기 위해 장소를 이동한다. 보통 이런 술자리가 있으면 선배들 중에 가장 높은 기수의 선배가 술을 사곤 했던지라, 백수라이프를 꽤 긴 시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마음이 왠지 불안하다. 그녀보다 한 기수가 위인 선배가 있지만, 오랜 시간 공부를 하느라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던 학생 신분의 선배였던 것이다. ‘돈을 빌려서라도 애들 술을 사줘야 하나, 어쩌지…’라는 고민으로 거의 6년 만에 본 선배와도 후배들과의 대화와 술자리를 충분히 즐기고 있지 못하는 그녀다. 그저 이 술자리가 가시방석이다. 다행히 얼마 전 회계사가 되어 잘 나가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후배가 와서 계산할 때 그 후배에게 계산을 하라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그녀이지만, 여전히 뭔가 선배들에게 수도 없이 받아 먹은 술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도 근거도 없는 강박 관념에 괴롭기만하다. 결국 안절부절하는 마음으로 술자리를 파하고 일어나 잘 나가는 후배 등을 툭툭 치며 ‘니가 계산해라. 누나가 내일 돈 보내줄게.’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내심 2차를 기대했던 재학생들은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마음이 불편한 그녀다.
그렇다. 그녀에게는 간혹 이렇게 이상한 강박들이 그녀를 찾아와 괴롭힌다. 왠지 후배들에게 항상 잘 나가는 모습, 술 값도 척척 내 줄 수 있는 그런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말이다. ‘내가 잘 나가고 있다’ 혹은 ‘찌질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강박은 후배들에게뿐만 아니라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인지도 모른다. 집까지 가는 길에 태워주겠다는 선배의 제안도 뿌리치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에 그녀는 그녀를 괴롭히는 이 감정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하고 생각한다. 어릴 적의 그녀의 모습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녀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 여느 가정처럼 행복한 모습만을 꿈꾸며 정작 내가 속해 있던 집안 모습을 애써 부정하면서 마냥 행복하게만 보였던 친구들을 보며 항상 열등감을 느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진짜 그녀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던 그녀다. 그렇게 잘 포장되어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반응을 내심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그것에서 오는 묘한 쾌감을 꽤 오랜 시간 즐겨왔고 그 보여지는 모습이 진짜 그녀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쾌감이 한 때 찾아오는 그런 기분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아버지께서 돌아 가신 이후에 그녀는 솔직한 그녀의 모습을 주변 이들에게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깊은 무의식에는 여전히 남들에게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강박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특히 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강박이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났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는 동생과의 술자리에서 쿨하게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는 얇은 지갑과 남은 영수증을 보며 ‘내가 왜 그랬지?’하고 후회를 하곤 한다. 아마 이번에도 그녀의 지갑에 신용카드가 있었다면, 그녀가 술값을 계산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번 괴로워하고, 그 괴로움의 뿌리를 한번 찾고 나니, 그 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녀의 모습 그대로를 지인들에게 보여주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못 견디게 힘든 감정을 한번 겪고 나니, 상상보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감정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길게 쓰는건. 매일매일(까지는 사실 좀 힘들고) 이틀에 한번꼴로는 일상들에서 하나둘씩 끄집어 내어 쓰려고 노력중입니다. 다행히 저의 일상들에서 적는거라 매일 쓸거리들이 생기더라구요.!!! 한주 한주 지나면서 동기들이 해준 코멘트들을 담아 하나씩 적용시키는 것도 해 보고, 조금 더 깊이 써보기도 하고, 여러가지 시도들을 해 보려 합니당..
아아아.. 긴게 맘에 드신다고 하니.. 이거 더 길게 써야하나?? ㅋㅋㅋ.. 이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계속 저를 더 담아보려고 애쓰겠습니다~!!! 감사해요 싸부님!!!!^^

그냥 매일매일 일기 쓰는 기분이랄까?? 일상에서 그냥 스쳐 지나버렸던 작은 하나의 감정들, 순간들을 캐치해서 '오늘은 이걸 써봐야겠다, 이렇게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게 잼있는 것 같아요. 동기들 글 보면서 하나둘씩 추가해보는 것도 좋고, 오라버니가 주는 코멘트들을 적용시켜보는 것도. 일기쓰는 기분인것 같기도 하고,
소제목 한번 붙여 볼게요. 촛점이 잘 맞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맞춰서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당~~ 날아올라~~

이번 직장도 벌써 때려쳐 버렸는데.;;; 대신 그 전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구직활동 중입니다. 오늘도 벌써 4개의 입사지원서를 썼다는.... 넘 걱정마세요.. 잘 살고 있어요. 나름.. ㅎㅎㅎ..
나름 배울 것들을 잘 터득하고 있어요!! 히히.. (항상 '나름'이라는게 문제가 되려나....;;;;)
고마워용 언니~~~!!!!^^ 항상 막내에, 땡칠이들, 가족들 챙기느라 바쁜데, 저라도 얼른 걱정을 덜어드려야할텐데 말입니다...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