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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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태양이 폭포수처럼 내리쬐고, 차오르는 숨은 턱에 찬다. 땅을 일구는 일꾼에게 주어진 하루는 일군 고랑의 면적만큼만 가치로 환산된다. 한쪽 발에는 사슬이 묶여 있고, 사슬은 앞으로도 어쩌지 못할 상징처럼 마음조차 묶어두고 있다. 가슴팍으로 흐르는 땀 줄기를 바람이 식힌다. 바람이 불어 오는 언덕너머의 세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때, 부는 바람을 따라 백마를 탄 기사가 태양을 등지고 우뚝 선다. 그리고는 칼을 휘둘러 발목에 묶인 사슬을 끊는다. "너는 자유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달리기 시작한다. 심장이 뛴다. 벅찬 가슴은 달리기 때문인지, 언덕 너머의 세상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얼마 가지 않아 다리에 힘이 빠진다. 털썩 주저 앉는다.
스스로 답할 수 없는 물음이 길을 막아 선다. "어디로 간단 말이냐….?"
모든 직장인들은 자유를 꿈꾼다. 그런데 문득 직장인들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한 여름 시원한 바람처럼 잡을 수 없지만 팍팍한 삶에 동경이 되어 일상을 위로하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것일까, 로또'가 당첨되면 마음껏 떠날 세계여행처럼 언젠가는 나에게도 주어질 우연한 축복으로서 구원일까, 아니면 참고 참고 또 참고 울지 않으며 걸어간 길의 끄트머리에서 극적으로 해후하는 기쁨의 대상인가. 어쨌건 자유는 '내 마음 별과 같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직장인들의 마음 속에서 반짝이는 북극성과 같이 존재임에 틀림없다.
나도 삼십대 중반이 지나면서 이런 자유에 대한 동경이 커졌다. 1~2년 정도의 자유가 주어지면 나는 내가 원하는 무엇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은 그리 멀리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한시적 자유(自由)'를 목적으로 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1~2년의 자유를 위해서 돈을 모았고 삶을 단순화했다. '자유'라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자장에 흡수되어 3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원하는 그런 환경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떠났고 자유를 얻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많은 일들로 부터 해방되었다. '직장인'이라는 되풀이되고 주어지는 시간의 정형을 벗어나 자율(自律)이라는 메트로놈으로 나의 시간을 조율하게 된 거다. 처음 맞이한 자유의 느낌은 깨끗한 새 노트 같았다. 스물네 장으로 만들어진 하루라는 깨끗한 종이를 두 손에 공손히 받아 든 그런 느낌이었다.
그 후로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매일 한 권의 새 노트를 선물 받고 원하는 내용들로 하루를 쓰고 있다.
하지만 요즘 나의 자유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뭔가 허전하고 막막하다. 1년 6개월 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나를 살피고 살아갈 자유를 모색했지만 삶을 지탱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다. '한시적 자유'를 '지속 가능한 자유'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있다. 서두에 어설프게 적은 이야기는 내가 최근에 모닝페이지에 기록한 내용의 일부이다. 아마도 나에게 기회처럼 다가온 지금의 자유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 듯하다.
'지속 가능한 자유'는 '자립(自立)'에 있다. 그리고 '자립(自立)'은 준비와 노력을 전제로 한다.
지난 시간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꿈꿨던 자유는 동경으로서의 자유였다.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살다가 운이 좋다면 나에게도 한번쯤은 있을 수 있는 것, 그런 날은 주어지는 것으로서 막연한 바램이었다. 매일 자유롭기를 원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자유와 자립을 위해서 고민하고 삶의 부분으로서 모색하지 않은 것이 아쉬운 요즘이다.
내 앞머리가 무성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요,
뒷머리가 대머리인 것은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 잡게 함이며,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은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내가 앞에 있을 때 정확히 판단하라는 이유이며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 같이 결단하라는 이유이다.
내 이름은 카이로스(Kairos) … 바로 '기회'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그리스 신화 속 카이로스 석상에 붙은 이야기이다.
나에게 다가온 기회를 확실히 알아보고 앞 머리채를 휘어잡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부단히 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부단히 준비한 뒤 결정적 순간에 용기를 내어 결단하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기회라는 괴물이 얼굴을 가리고 날개 달린 듯 도망간다 해도 이것만은 진리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고 그 기회를 만나서는 용기를 내어 결단이라는 칼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무심코 지나가는 뒷대머리 괴물을 긴가민가 바라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직장인에게 자유라는 난해한 과제는 철옹성처럼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지만, 오직 준비된 용자에게만은 길은 터준다는 것이 카이로스가 던지는 가르침이 아닐까.
나는 자유를 지탱할 컨텐츠를 모색하고 있다. 자립할 수 있는 내 안의 무엇 하나를 찾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어찌 보면 자유라는 것을 그저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해석했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정의하는 자유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움켜쥔 자유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자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한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일정기간 다시 직장이라는 울타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한다. 아니면 찰스 핸디가 말한 포트폴리오 인생처럼 이런 저런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꿈과 일상의 조화를 맞추어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직장으로 돌아가건, 포트폴리오의 삶으로 구성하건 그것은 '자유'를 준비하는 연속선 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근래에 맛본 자유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좀더 시행착오를 거치고, 더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고 해도 그것은 생의 목적으로써 충분히 맛있는 삶이다.
비록 오늘 탐색하고 있는 자유가 허전함과 막막함이라는 한계를 태생처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자유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내가 원하지 않는 자유는 어떤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코끼리와 벼룩>의 저자 찰스 핸디는 자신이 벼룩으로 살게 된 경험과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사십대 중반에 이르러 여러 가지 역할과 직장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내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그는 자유에 대해서도 "행복이라는 저울대에서 무게를 달아본다면 거기에는 일말의 의심도 있을 수가 없다. 자유는 그 어떤 것보다도 무겁고 그래서 늘 이기는 것이다." 라고 강조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수 있는 힘은 사슬을 끊는 기사의 칼끝에 있지 않다. 매일 매일 어찌어찌 살겠다고 자신의 삶을 준비하는 카이로스의 칼끝에 달려있다. 준비되지 않은 자유는 영원할 수 없고, 꿈만 꾸는 자유는 무용(無用)하다.
여기에 무용(無用)한 자유를 맛본 토끼 이야기가 있다. 혹시 오늘 내가 꿈꾸는 자유가 실험실 토끼가 느끼는 자유 같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한 야생 토끼가 포획되어 국립보건원 실험실로 이송되었다. 실험실로 간 토끼는 실험실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끼와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야생토끼가 우리에 자물쇠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탈출하여 자유를 얻으려고 했다. 그러고는 실험실 토끼에서 같이 가자고 했다. 실험실 토끼는 바깥에 나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야생 토끼가 한번 해보자고 설득하는 데 넘어갔다.
일단 바깥으로 나오자 야생토끼가 말했다. "세 번째로 멋진 곳을 보여줄게."
그러고는 실험실 토끼를 데리고 양상추가 가득한 곳으로 데려갔다. 둘이 배가 차도록 먹고 나서 야생 토끼가 말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멋진 곳을 보여줄게." 그리고는 당근이 가득한 곳으로 데려갔다.
배가 가득 차도록 당근을 먹고 나자 야생 토끼가 말했다. "이번에는 최고로 좋은 곳을 보여줄게."
그러고는 암토끼가 가득한 사육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천국이었다. 그들은 밤새 쉬지 않고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새벽녘이 되자 실험실 토끼가 실험실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왜? 양상추가 가득한 곳까지 보여줬는데 뭣 때문에 실험실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야?"
실험실 토끼가 대답했다.
"실험실에서는 당근도 주고 담배도 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