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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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다. 새롭게 출근 한 회사의 업무가 이전 회사에서 했던 영업과 유사한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그 전과 같은 열정을 가질 수가 없다. 전처럼 자신 있게 영업을 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잠을 못 자고 있던 새벽에 아는 선배에게 온 문자가 생각난다.
“요즘 뭐하니? 일은? 홍대 주점에서 아직도 일해? 다른 일은 안 하고?”
“다른 선배네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못하겠다고 얘기할까 고민중이에요. 알바는 그만뒀어요.”
“왜? 못해?”
“그냥. 별로 하고 싶지가 않네요.”
“거기서도 영업?”
“네”
“뭐 하고 싶은데?”
“글쎄요. 지금은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 일 자체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가 않아요.”
“흠……. 너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정규직이나 사무직을 알아봐. 규모가 큰 회사면 좋겠지만, 중소기업도 괜찮은데 많으니. 채용 사이트를 검색해 봄도 괜찮을 듯.”
“네 고마워요 선배.^^ 한번 검색 해 볼게요.”
그렇다. ‘일 자체’에 쏟을 에너지가 생겨나질 않았다.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어서 에너지를 얻어다가 회사에 쏟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100% 인센티브라는 것도 그녀에게는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돈도 벌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계속 그녀의 머리 속에 그려져 떠나가질 않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미나야.”
“선배, 주말인데 뭐해요?”
“어, 지금 결혼식 가는 길이야.”
“아. 그렇구나. 저 할 얘기가 좀 있는데, 결혼식 갔다 오는 길에 차 한잔 해요. 저는 학교 가는 길이니까 학교 앞에 있는 카페에 있을 게요.”
“무슨 할 말?”
“아니, 그게 저. 아무래도 일을 못할 것 같아요.”
“아, 그래? 그래 그럼 이따가 결혼식 갔다가 전화할게.”
전화로 얘기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만나서 그녀의 상태와 상황을 좀 더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녁에 갑자기 사촌오빠가 온다고 해서 결국 선배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하진 못했지만, 그녀는 선배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뭐 안 맞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 해주는 선배 덕분에 마음이 편하다. 사촌오빠와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한 후에 집에 들어왔더니 엄마가 주무시지 않고 깨어 계신다. 낮에 동생이랑 통화를 하면서 내가 내년에 이탈리아에 갈 거라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랬더니 동생이 가서 뭐해서 돈 벌거냐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걱정하는 동생에게 엄마는,
“니네는 아직 젊으니까, 젊을 때 이것저것 많이 해봐야지. 실패해도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젊을 때 많이 시도해 보지 않으면, 엄마처럼 나이 50이 돼서 별 볼을 없는 일만 하고, 고생할거야. 알아서 잘 할 테니 걱정 마~”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항상 찰스핸디의 잠재력에 대해 강하고 변함없는 믿음을 주었던 그의 아내엘리자베스가 생각난다. 찰스핸디는 ‘누군가 자신의 잠재력을 그렇게 믿어준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믿음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진정 이 말이 공감되는 그녀다. 끊임없이 그녀의 잠재력을 믿어주는 엄마가 있기에 그녀는 다시 3주만에 다시 들어간 회사를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만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날부터 다시 그녀에게 맞는,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의 문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드려보겠다고 결심을 한다.
월요일 아침. 다시 백수로 돌아온 그녀. 새벽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한창 출근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잠에서 깼다. 여느 때와 같이 영어 동영상을 보며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어제 결심한대로 공부를 끝내고 바로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그 동안 자주 보지 않았던 채용 정보 사이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반기 공채가 시작 되어서 그런지 엄청난 양의 기업의 구직광고가 올라와 있다. 우선 얼마 전에 친구가 추천해 주었던 대학교 교직원 자리가 있는지 찾아본다. 생각보다 몇 개의 대학에서 다양한 포지션의 직원을 찾고 있다. 두 세개 정도 일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 학교의 입사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써 보는 자기소개서라서 그런지 잘 쓰여지지가 않는다. 지원서 양식도 각기 다르고, 써야 할 내용도 다르다. 지원하는 직무도 달라서, 같은 내용도 다르게 써야 하기에 이건 뭐 자기소개서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안 된다. 어렵사리 대학 행정업무 지원서를 써서 보내고, 기업들 중에 괜찮은 곳들이 있는지 또 다시 살펴 본다. 얼마 전에 수시 모집으로 넣었다가 연락이 없는 회사의 공채가 떴다. IT 계열의 회사라 그런지 그녀가 신입으로 들어갈 만한 분야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그간 그녀가 영업을 하면서 쌓아 온 재무컨설팅의 노하우가 도움이 될 만한 분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소설을 써 내려가기 위해 이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적힌 브로셔를 보는데, 이 회사! 얼마 전에 읽은 다니엘 핑크의 책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봤던 글귀가 떠오른다. ‘의미, 목적, 깊이 있는 인생 경험의 추구, 어떻게 표현하든 이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에이브러험 매슬로가 말한 고차원적 욕구와 빅터 프랭클이 추구한 삶의 의미가 자신에게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적합한 일에 종사해야 한다.’ (다니엘 핑크, <새로운 미래가 온다> p236) 이탈리아 여행 전후로 계속해서 고민했던 ‘나는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 건가?’라는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저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에서 일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긴 했지만,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기왕이면 그녀의 욕구와 그녀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에 종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민이 시작되면 그녀는 소크라테스가 스스로에게 자주 했던 “왜?”라는 질문을 그녀 자신에게도 던지곤 한다. 질문을 서너번, 계속 던지다 보면 결국 이런 생각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무의식적인 동기까지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 회사에서 일 하고 싶은 것인가?’ 이 회사에서 일하면 그녀의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는 영업을 하면서 충분히 영업을 할 서비스나 상품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 회사의 서비스나 상품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회사의 창립자에 대한 믿음, 그리고 브로셔에서 나타난 회사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믿음과 기대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쓰는 내내 왠지 함께 ‘여기서 일하면 정말 재미있게 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신나게 입사지원서를 쓰고 마지막으로 ‘최종 입사 지원’ 버튼을 꾹 눌렀다. 오늘이 서류접수 마감날이라서 몰려드는 입사지원서들 틈에서 그녀의 입사지원서가 잘 읽혀질지 조금 불안하기는 하다.
오늘은 세 군데만 넣고 이제 책 읽으러 가야지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그녀가 관심 가지고 있던 회사가 하나 더 보였다. 무심코 눌렀는데, 이게 왠일인가???? 그녀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파일럿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보인다. 그 동안 조종 훈련생을 뽑지 않았던 회사인데, 조종 훈련생을 선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채용 공고란에 있는 입사지원 기준에 ‘토익 시험 800점 이상’이란다. 일반적인 직장에 지원하기로 결심한 그녀였기에 얼마 전 토익 시험을 거의 6년만에 치르긴 했으나, 점수가 800점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는 사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다시 생겨서 지금 다시 시험을 본다면 800점 가까이 갈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기에 그냥 입사지원을 해 보기로 했다. 정말 간절한 마음을 듬뿍 담아 자기소개서를 쓰고 영어점수는 800이라고 거짓말을 해 버렸다. 내심 양심에 찔려서 자기 소개서에 영어점수는 허위로 적었다고 써 버렸다. 그냥 거짓말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지원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그녀다. 점수 때문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지원을 해보고 떨어지는 게 미련이 덜 남을 것 같다. 이 일이 천직이라면 하늘이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어 본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한번 보자고 얘기했던 친구가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을 했다. 4달 전에 잠깐 얼굴을 보고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못 본 사이에 친구에게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나 보다. 다른 친구를 통해 어찌 살고 있는지 대충 얘기를 들어서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먼저 연락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오후에 보기로 한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나 잠이 안와…. 시간 되면 일찍 와라. 3일째 잠을 못 자고 있어.ㅜㅜ 와서 좀 놀아줘”
이런.. 하루 밤도 잠을 못 자면 힘든데, 3일 연속 못 잔 친구가 안쓰러워 알았다고 답장을 하고선 씻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친구 집에 간지 오래 돼서 잘 찾아 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동네에 도착하니 옛날 기억을 더듬어 친구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친구는 씻지도 않은 채 집에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지난 3개월간 있었던 일들을 폭풍 같이 쏟아 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슬슬 배가 고파지는 그녀. 다른 친구를 하나 더 불러서 밥을 먹고, 차 한잔 하자고 집을 나선다.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진 친구의 집 근처를 배회하다가 완전 그림 같은 카페를 발견!!! 그녀에게 이런 조용하고 운치 있는 카페를 발견하는 기쁨은 뭐랄까?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과 비슷하다. 울창한 나무들이 드리워져 있고,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는 야외 테이블에 셋이서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선 셋이서 또 폭풍 같은 수다의 시간들.
불어오는 바람에 카페 곳곳에 카메라를 갖다 대며 사진을 찍어본다. 수다를 떨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기분이 참 묘하다. 친구의 말마따나 ‘잉여인간들’이다. 사실 ‘사회에서 쓸모 없는’이란 의미를 가진 이 단어가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잉여인간이란 단어가 그녀에게는 그리 나쁜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름 먹고 살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잉여 인간들이다. 각자가 꿈꾸는 삶의 모습들도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한 명은 다시 영어 강의를 시작해서 왠만한 대기업CEO들을 가르치는 영어 선생님이고, 다른 한 명은 온라인마케팅 쪽에서 꽤 잘 나가던 사람이고, 또 한 명은 영업의 늪에서 빠져 나와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열심히 취업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 뿐, 그녀들 역시 꿈이 있다. 단지 지금은 그 꿈을 펼치기 위해 한 걸음 쉬었다 가는 것일 뿐. 이런저런 생각이 또 그녀의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던 중, 슬슬 배가 고파온다. 친구들과 뭘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이 두 여자가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다며, 근처에 맛있는 치킨 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 한잔에 치킨을 먹어치운다. 술이 많이 약해졌는지, 맥주를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어질한 그녀. 또 다시 자리를 옮겨 카페로 향했다.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더니, 온 몸에 기운이 쫙 빠진다. 한 시간 남짓 친구들의 연기놀이를 보면서 한참을 깔깔대며 웃다 보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집에 가자며 친구들을 재촉한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많이 아쉬워하긴 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이런 수다 떠는 시간을 아까워했을 그녀이지만, 이제는 함께 웃고 떠들며 있는 모습, 없는 모습을 모두 다 보여 줄 수 있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마지막 카페에서 한 친구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신치야, 너는 영업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 두는 걸 너무 연습해서인지 이제는 그것이 니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 이제는 조금 니 속에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 물론 그런 거리두기가 가능했기 때문에 니가 그렇게 영업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렇다. 사실 그녀는 영업을 하면서 지인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고객이 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녀와 인간적인 관계를 갖게 되는 모든 사람들과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사람을 만나는 것’ 이것은 어쩌면 그녀가 영업을 시작하기 전, 아주 어릴 적부터 그녀의 몸에 체득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동생이 둘이나 있는 맏이로써 그녀가 부모님에게 어린애처럼 굴었던 적은 사실 많지 않았다. 어릴 적 그녀가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애어른 같다’는 말이었다.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부려 본적이 없어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쉽게 밖으로 표현할 줄을 몰랐다. 사랑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해 첫사랑에게 차여버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분노, 기쁨, 슬픔 등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혼자서 삭혀 버리다 보니, 그녀의 주변에 늘 사람이 많긴 했지만, 항상 외로운 그녀였다. 그래서 ‘풍요 속 빈곤’이라는 단어가 마치 그녀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단어로 느껴지곤 했다. 왠지 외롭고 힘들어서 맥주 한잔 하고 싶을 때,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뒤져보지만 막상 편하게 전화해서 술 한잔하자고 얘기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운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외로움과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의 말처럼 ‘그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 부리기도 하고, 좋으면 좋다고, 마구 오버액션도 취해보고, 외롭다고 징징거려 보기도 하고 말이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표현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것 역시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라고 말이다.
얼마 전, 라디오를 듣다가 모 방송사에서 ‘라디오 디제이 오디션’을 한다는 광고를 들었다. 이 광고를 듣자마자,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때는 십여년전으로 그녀가 중학생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한창 ‘박소현의 러브레터’의 애청자였던 그녀. 지금처럼 인터넷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려면, 직접 엽서나 편지를 써서 보내거나 팩스를 보냈어야 했는데, 다행히 그녀의 집에는 팩스가 있었다. 그래서 매일 라디오를 들으며 이것저것 사연을 많이 보내곤 했었다. 덕분에 라디오에서 의류 상품권, 공연티켓 등 선물 받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윈엠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직접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그녀. 라디오 디제이가 되어 보겠다며, 아는 지인들 몇 명을 청취자로 끌어들이고, 매일 저녁 그녀만의 라디오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음악도 틀어주고, 음악 중간중간에 멘트도 하면서 라디오 디제이 흉내를 곧잘 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너 뭐하냐? 공부나 할 것이지. 무슨 쓸데 없는 짓이냐’고 버럭 화를 내는 것이 라디오 멘트로 흘러 들어가면서 그녀의 디제이 놀이는 끝나 버리고 말았다.
문득, 잊고 있던 어린 날의 이 기억이 떠오르며, 그녀는 ‘라디오 디제이에 한번 도전해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생각하면, 곧장 실행에 옮기는 그녀였기에 라디오 디제이 오디션을 모집하는 공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자기소개 1분짜리 파일과 자유 양식의 2분짜리 디제이 멘트를 녹음한 파일을 제출하면 오디션에 참가할 수가 있다. 메모장을 열어 멘트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음성을 녹음했다. 녹음한 파일을 들으면서 멘트를 수정하고, 또 녹음하기를 반복해 드디어 1분짜리 자기소개파일과 2분짜리 디제이파일이 완성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 참가신청을 했다. 보름 후에나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준비하는 내내 왠지 설레는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 그녀다.
대학 졸업 이후에 잠깐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고 거의 5년만에 다시 구직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왠지 5년 전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지금껏 해 온 일들을 모두 잊은 채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려는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일들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설레임과 즐거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졸업한 학과나 해왔던 사회생활에 얽매이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또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새로운 기회들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입사지원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떨림도 왠지 신선하다.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아님 말고!’라는 생각이 사실 더 큰 것 같다. 어딜 가든 그녀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과 환경이 주어지면 거침없이 뛰어 들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도, 잘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행인 것은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오랜 시간 했던 ‘영업’이란 직종 자체가 그녀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영업을 하되, 영업을 하는 아이템이나 서비스, 그리고 그것을 제공하는 회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영업을 하기란 쉽지가 않음을 라이브스팟 영업과 일주일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모 대기업의 적립카드 가맹점 모집을 하는 영업을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그녀가 라임팩토리에서 일한 3개월간 경험한 ‘업무과소’의 상황 역시 그녀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당시에 회사에 출근해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회사에 내가 필요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었다. 출근해서 청소하고, 거래명세서를 정리한 이후에 퇴근 시간까지 그녀에게 남겨진 시간이 시간낭비이자 삶의 낭비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확실히 어떤 일을 하더라도 ‘최소한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일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확실했으므로, 그녀가 구직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가이드 라인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천직’이라는 직감이 아직 그녀를 찾아 오지는 않았기에, 그녀가 지원한 10군데의 직종이 전부 달랐다는 것이다. 사실 그녀가 ‘천직’을 직감적으로 찾아내어 하나의 직종으로만 원서를 낸다면 새로운 일을 구할 확률이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반대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단 ‘절대 할 수 없는 일’의 기준이 있으니 그 기준들을 피해서 마음이 가는 일들을 찾아보고, 그것들 중에 그녀의 천직이 있다면, 그곳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보기로 했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긴 했으나, 점점 커피 한잔 사 마실 수 없는 경제 상황은 그녀를 여유로운 마음으로만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때 마침,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전화가 와서 한 주만 더 나와서 일을 해 줄 수 없겠냐고 하신다. ‘아르바이트를 절대 다시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그녀이지만, 찰스 핸디의 말처럼 고상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허드레 일’이라도 소득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거절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사치였다. 그렇게 주말에 다시 출근을 했다. 이틀 간 4시간씩 또 다시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일을 하고 2주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도 그녀의 마음도 그저 무겁기만 하다. 사장님이 주신 돈을 주머니에 넣고,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다. 아까 넣어 둔 돈을 꺼내 지갑에 넣으려는데, 8만원이어야 하는 돈이 3만원 뿐이다. 아뿔사! 핸드폰을 꺼내면서 5만원짜리를 흘린 모양이다. 걸어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보지만, 그녀가 흘렸을 5만원권 지폐는 보이지를 않는다. 한창 사람이 많을 홍대 거리에 다른 누군가가 이미 주워간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녀는 웃음이 나온다. 몇 일이라도 살아보겠다고 그렇게 하기 싫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그렇게 어이 없이 잃어버렸으니, 화가 나고, 눈물이 날 법도 한데, 어이없는 웃음이 날 뿐이다. 평소 찾지도 않던 신에게 묻는다. ‘신은 도대체 나를 어느 바닥까지 보여주시려고 이러는 건가요?’ 더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인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보험 영업을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쉽게 생각했던 그녀에게 ‘돈이라는 게 결코 쉽게 벌리고, 쉽게 쓰면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이렇게라도 깨닫게 해 주고 싶으신 신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냐며 정말 신이 옆에 있다면 온갖 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탔더니, 그제서야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내려온다. 이제는 신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내가 왜 그 돈을 거기다 넣었을까. 뒷주머니에 넣었어야 하는데, 혹은 지갑에 바로 넣었어야 하는데’ ‘계좌로 받을걸.’ 온갖 후회가 그제서야 밀려든다. 5만원이면 몇 일을 살 수 있는 돈이냐며.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틀간의 수고를 고스란히 날려버리고 나니, 백수인 그녀의 상황이 더 없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집에 도착해 엄마가 사 둔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래도 3만원은 남아 있지 않냐며,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잠이 든다.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것도 좋지만 시행착오는 줄이려면 내가 원하는게 뭔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도 필요한것 같아.
그리고 정말 직장을 잡고 싶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
헤드헌터같은 전문가에게 너의 커리어 전략과 계획에 대해서 조언을 들어보고 구직활동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그만둔다는 이야기는 절대 전화로 하지마라. 만나서 눈 내리깔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박카스라도 건네야 나중에 만나도 민망하지 않다. 정말 마지막으로 돈은 꼭 지갑에 넣어라. 주머니에 넣어두면 빠지기 쉽다.
너무 잔소리를 많이 했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