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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9일 12시 53분 등록

신이 자신의 역할을 세상에서 다 수행할 수 없기에 어머니란 존재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그 이름은 되뇌기만 하여도 왠지 모를 아련한 추억과 떨림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때론 그 이름이 누구에게는 절절한 외로움과 사무침의 회한으로 가슴 가득 떠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두들 소망한다. 그 존재가 희미한 기억속의 뒤안길로만 남지 않기를.

그럼에도 그것이 후회로써 그친다.

 

한 어머니가 있었다.

누구나 그러했듯 어린 시절 수줍음과 꿈이 많던 소녀였다.

특유의 저음 가수인 ‘안개낀 장충단 공원’을 노래하는 배호 가수를 좋아 하였고, 음악과 영화를 사랑 하였고 노래도 곧잘 불렀었다.

그런 그녀가 중매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났고 로맨스를 느껴보지도 못한 채 결혼을 하였다.

남자는 민족의 비극으로 인한 이북에서 월남한 이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하나씩을 낳고 오년 후 다시 늦둥이 사내아이를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출산을 하였다.

무던히도 더운 여름날 태어난 그 아이는 뭐가 그리 힘들고 아팠는지 팍팍한 살림살이하기도 바쁜 마당에 마냥 밤늦도록 울어대기만 하였다.

그런 가운데 위암으로 투병생활 하던 남편은 부처님 오시기 하루 전일 그 아이 나이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화장된 곱디고운 차가운 백색의 유골은 작은 아버지라는 분의 손에 의해 한강에다 뿌려졌다.

무덤을 만들면 힘든 일이 있을 적마다 찾아갈 형수가 염려 되어서라는 이유 하나로.

그날은 무던히도 비가 내렸었다. 하염없이 바닥으로, 절망으로 치닫는 그녀에게, 철없는 그 아이에게.

막내 아이를 무작정 등에다 들쳐 업은 그녀는 쏟아지며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예배당의 빨간 불빛을 찾아 들어간 그녀는 마냥 십자가상을 바라보고 절망하였다.

왜, 왜,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남편을…….

 

살아야 했다. 아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일부러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찾아야 했다.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했다. 삼남매를 이끌고 홀로 일터를 찾아다니는 그녀에게 누구의 따뜻한 환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찾아갈 곳은 오직 마음속 아련한 고향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아무런 기술과 금전이 없는 그녀가 할 일은 없었다.

무일푼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악착같이 하였다.

살벌하게 내리쬐는 뙤약볕에도 시리디 시린 한겨울에도 그녀는 돈을 벌러 나갔다.

삼남매의 눈망울이 그녀 자신을 옭아매는 억 겹의 끈이었지만 때론 그것이 그녀의 희망이요 삶의 이유였다.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 받지 않기 위해 그녀는 이를 악물고 생존의 세상 한복판에서 하루하루 전투를 벌여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손님이기에 당연히 그가 원하는 장소로 나가야 했고 여관방에 들어간 그녀를 맞이한 것은 서슬 퍼런 칼이었다.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고 병실로 찾아간 자식들을 맞이한 것은 코뼈가 부러지고 퉁퉁 부은 얼굴에 마취에 절어 누워 있는 그녀였다.

무서웠다. 평소 바라보던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손짓하여 부르는 그녀에게로 아이는 가질 않았다. 딴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날이 지났다.

달빛도 없는 늦은 밤. 바람이 찼다. 가슴도 찼다.

누군가 찾아왔다. 잠옷 바람으로 경황없이 나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삼촌이란 분이 찾아와 방문을 대못으로 박기 시작했다.

망치로 세차게 내려치는 소리.

무서웠다.

쾅하고 계속 내려치는 그것이 마음 끝까지 들어찼다.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옹알이 뿐이었다. 겁 많은 소년 이었기에.

영문을 몰랐지만 함께 살아야 한다는 그 소리에 책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꼬이고 꼬인 골목길은 끝이 없었다.

어머니의 소식을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해 주는 이가 없었다.

한 참후 보이지 않던 그녀가 돌아왔다.

말이 없었다. 싸늘한 침묵과 냉기만이 흘렀다.

오직 하나의 반응.

몸져 누워있던 그녀였지만 TV 뉴스시간에 출연하는 대머리 대통령만 나오면 고개를 돌렸고 전원 버튼을 껐었다.

 

민주화라는 나팔을 부는 시기에 대학에 입학한 아이는 세상의 넓음을 실감 하였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쓰레기 인간 말종들만 다녀온다는 삼청교육대에 그해 다녀온 것을.

무엇 때문일까.

어떤 이유였을까.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 나쁜 일을 한 것일까.

왜 죄 없는 사람을 잡아갔을까.

세상은 불공평 하다는 것을 알았고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실감 하였다.

그러자 아이는 한없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나.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주고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자조적인 느낌을 어머니에게 투영하였고, 세상에 대한 투쟁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반항의 발로로 치달았다.

현재의 현실 모든 것이 불만이 되었고 못마땅해졌다.

그녀의 행위가 진정 누구를 위한 돈벌이 이었는지를 자문하게 되었다.

정말 자식들을 위해서 이었는지 아니면 자식들을 통한 자신의 대리만족과 기대심리의 보상적 행위 이었는지.

그때의 모든 부모가 그러했겠지만 물질적으로만 충족시키려 했던 어머니,

사랑을 갈구 하였고 따뜻한 품을 원하였으나 돈을 벌여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밖으로만 나다녔던 그녀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현실들을 가슴으로는 받아 들여야 했으나 차가운 머리가 허락하질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세월도 흘렀다.

아이도 이젠 하얀 머리카락이 늘어갔고 그녀도 살아갈 끝자락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아이는 여전히 철이 없고 그녀는 아픈 다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존한 채, 오늘도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자식들을 위해서 세상으로 나간다.

자신의 덧없는 팔자를 한탄하며 한 많은 삶을 그래도 부둥켜안고 절뚝거리며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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