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 조회 수 2104
- 댓글 수 4
- 추천 수 0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당신을 선택 하였습니다.
아니, 내가 당신에게 선택 되었다는 의미가 맞을 수도 있겠군요.
성당에서 만난 그저 그런 만남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청년 기금 마련 행사인데 초 한 자루 사줄 수 있을까요.
하나의 초는 그녀에게 구입 되었습니다.
하나의 초는 불이 붙었습니다.
그 불은 사랑의 인연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보답으로 나는 전통 찻집에서 녹차 한잔을 대접 했습니다.
그 녹차 한잔은 다시 곡차 한잔으로 이어졌습니다.
허름한 뒷골목 어슴푸레한 전등 불빛아래 취기가 오른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위에 별과별이 부딪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의 행로를 향해 갈 때도 있지만 이탈이 되어 예기치 않는 만남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우주의 아름다운 역사입니다.
하지만 그 만남이 어긋나고 아픈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길과 나의 길이 다름에 깊고 깊은 찻집에서 우린 한참을 울었습니다.
왜그리도 서러웠던 지요.
평범하게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인연을 맺는다는 것에는 아픔이 동반되어 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고 꿈꾸던 길을 선택하고 모질게 나아갔지만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법이기에, 나는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 몰라 항상 그렇듯 그분에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새롭게 다시 만난 그녀는 예전 그녀와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제는 연애 감정이 아닌 동반자로써의 묵직한 느낌이 와 닿는 동시에 책임감이라는 부담까지 다가왔으니까요.
스물아홉 끝 무렵 푸른 내 청춘 그녀의 하얀 웨딩드레스로 우리는 시작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든 터전을 떠나 새롭고 낯선 먼 대도시로 왔습니다.
봉천동 여덟 평 반지하 전셋집에서의 신혼살림.
좁디좁은 방이지만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지만 우리는 행복 했습니다.
낯선 이방인이었던 그녀의 살이 닿고 그녀의 마음이 다가올 때 나의 가슴은 뛰었습니다.
이게 결혼 생활이구나. 내 인생 이런 찬란한 날도 있구나.
박봉 속에서 넉넉하지 많은 않은 삶이었지만 기쁨의 일상 이었습니다.
삶이 그렇듯 우리의 행복에도 어느 순간 조금은 짙은 그림자가 찾아 왔습니다.
그녀의 아픔, 그녀의 울음, 그녀의 상처가 그녀를 옭아 메었습니다.
그 옭아맴은 어깨동무의 역할을 다짐하는 저로서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기도를 하였습니다.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지만 사람의 소원과 그분께서 안배 하시는 점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아니, 우리의 소원과 노력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휴일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룹 콘서트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십대들이 좋아하는 콘서트를 가는 게 조금은 어색하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대상이기에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였습니다.
공연 당일. 그녀는 소풍을 가는 듯합니다.
들뜬 마음에 발걸음도 연애시절 당시로 돌아간 듯합니다.
공연이 시작 되었습니다.
화려한 무대 조명과 대형 스피커에서 뿜어내는 음악 속에 미소와 들뜬 마음으로 어깨를 들썩 거리는 그녀를 보노라니 우리의 시간들이 떠올려 집니다.
첫 만남, 말을 놓자던 그날, 희뿌연 전봇대 앞에서 쿵쾅거리는 마음이 터져버린 어설픈 첫 키스, 고단한 나날들과 아픔, 그리고 이제는 사십대 중반에 서서 어울려 가는 부부의 뒷모습.
좋아하는걸 보니 마음이 조금 그렇습니다.
평소 잘해주지 못함에 지리한 아픔이 옵니다.
아직도 나는 그녀에게서 처음 만날 때의 향내를 느낍니다.
그녀의 체취와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를 기운 나게 합니다.
유치하다고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철딱서니 학교를 아직 졸업하지 못한 나는 새록새록 감정이 다시 솟아오릅니다.
언제까지 이 감정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도 그녀를 바라봅니다.
부끄럽게도 여느 부부들처럼 다정하게 밀어를 속삭이지는 못하지만 그녀를 조용히 올려다봅니다.
햇살이 들어오는 우리 집 안방 벽에는 그때의 모습 둘만의 사진 액자가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전시되어 있을 겁니다.
모든 이가 아닌 나만의 줄리엣.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