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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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병원 응급실에서 다급하게 느껴지는 전화가 왔다.
"오**씨 아시는 사이시죠?" "예, 장모님이신데요" "**병원 응급실입니다. 119로 실려오셨구요. 의식이 없으십니다..."
급박한 어조에서 장모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응급조치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것 같았다. 회사 사무실이었지만, 난 흐느껴 울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장모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서울과 당진 사이를 수박을 메고 왔다갔다 하실 정도로 건강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길에서 쓰러지셨다니. 10년 넘게 지내며 마치 친어머니처럼 느껴왔던 터였을까, 쌓인 추억과 함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마흔에 딸을 하나 낳고, 그 딸이 결혼하자 홀로 사시며 외로우셨을 어머님에 대한 미안함이 솟구쳤다. 당진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5년전 10월 어느날이었다.
2006.12.20 2006.12.31
위의 사진들은 어머님이 계셨다는 확실한 증거다. 어머님을 기억나게 하는 사진들을 찾아보며 상념에 빠진다. 아직도 살아계신듯 그곳에 계신 모습을 보며, 과거가 현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미안함과 애틋함, 다시 만나는 기쁨이 얽혀 복잡한 감정이 일어난다.
사진은 찍힌 대상과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로 남는다. 그림은 아무리 진짜 같이 보여도 그것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이 사진과 그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나 기념사진일지라도 시간이 누적돼 세월이 흐르면 그 자체만으로도 당사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특별한 것이든 무의미한 것이든, 잘찍었든 못찍었든 간에 사진으로 남겨진 것은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감동이 누적된다. '남는건 사진 뿐'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삶의 특별한 순간이나 여행을 가면 반드시 사진을 남기려고 한다. 잡을 수 없는 실재를 붙잡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진을 찍어 남겨도 시간과 대상을 붙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존재에 대한 증거는 있는데, 어머님은 지금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2008.9.14
2009.10.15

2009.8.16
#.
부모로서 매일 보는 아기의 성장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겨진 예전의 사진을 보면 아이의 성장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할머니의 등에서 손가락을 빨던 조그맣던 녀석이 어느덧 그 분의 영정 앞에 서있다. 그리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 여름날 분수대를 놀이터 삼아 뛰어 놀 줄도 알고, 이제는 업기에도 부담스러운 덩치가 되었다. 매 순간 찍어 남기는 아이의 사진에서도 실재 내 아이의 지금은 없다. 과거의 모습 뿐이다. 어머님은 사진으로 남아 계시다. 이젠 다른 어디서도 그분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찍는 순간 과거가 되어 버리는 사진들. 그래서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1915~1980)는 사진을 '시간의 죽음'이라고 얘기했나 보다.
그런데 사진이 죽음을 표현하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것을 역설적으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말했듯이 "저장된 파일은 무의미" 하다. 언젠가 저 책을 읽고 저 음악을 들으리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지금 책을 읽고, 지금 음악을 듣고, 지금 사진을 찍는 것이 실재가 아닐까?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사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물을 끓이면서 그 순간의 무게감을 느끼고, 오감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번 주어진 내 인생을 잘 살고 싶다는 것이다.
자크 아탈리는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미래의 트랜드로 이야기한다. 그냥 시간이 아니라 '좋은' 시간이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이 매순간 의미를 찾는 시대가 되었다. 역사를 통해 권리를 지닌 개인을 발견하게 되고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우린 먼지같이 의미 없는 존재에서 고귀한 주체가 된 것이다. 내가 삶을 행복하게 느낄 때 세상이 행복해지고, 내가 누군가 한 존재를 살릴 때 우주가 되살아나는 신비로운 세계가 모두에게 시작되었다. 일단 그렇게 믿도록 하자.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지 않은가.
오는 10월15일은 돌아가신 어머님의 기일이다. 우린 그분의 육체가 묻히신 곳으로 짧은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이번엔 삼각대를 가져가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를 남길 생각이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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