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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0일 19시 15분 등록

장미 3. 만일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하루의 시작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우선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놓고 푸른 하늘을 보러 달려 나갈 것 같다, 그리고 기쁠때나 슬플때나 많은 위로를 주었던 산책길의 그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싶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나와 이 세상에서 진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지혜로 남은 사람을 축복해 줄 것이다.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을 기억하지는 말자. 

이전에 나는 매일 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할까를 제 1순위로 걱정하며 살았다. 그런데 정말 죽음이 문 앞에 다가오니... 정리 따위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고요하게 평화롭게 앉아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지나간 순간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매일 매일 숙제에 밀려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살지 못했던 내 인생은 이제 죽어도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차라리 이제야 쉴 수 있겠구나...하는 안도감에 좀 기쁠지도 모르겠다. 지상에서 내가 이룬 것, 지상에서 내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 마음에 남은 사랑, 마음에 남은 불편함...이 모든 것에서 해방 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먼저 가는 자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히 자신의 잣대로 평가를 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 평가에서나마 자유로울 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나도 제법 남의 평판을 두려워하며 살았구나...하는 회한이 밀려온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일생 나를 괴롭혔다. 나는 본래 다른 사람의 의도를 맞추어 살기를 바라기보다는 내 마음이 가는데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기운은 그 틀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틀에 정답을 쓰지도 못했다. 이제 내 생애 마지막 날에는 드디어 그 틀을 뛰어넘어 자유 선언을 하고 싶다. 나를 위해 땅을 파지 말 것이며 나를 위해 향을 사르지 말아라. 차라리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나를 떠나보내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먼저 가서 전망이 좋은 자리를 잡아두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 자랑을 할테다. 나는 논설문처럼 인생을 살았다고...그러나 내 생애 마지막 날은 정말 시처럼 살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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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2011.10.10 22:37:41 *.143.156.74
저는 매일 정리하느라 분주히 살았는데 마지막 날에도 주변을 말끔이 정리하고 떠나고 싶네요.
제 책들(앞으로 나올 거니까)과 유품들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도 정해놓고 싶고요.
논설문처럼 인생을 살았지만 마지막 날은 시처럼 살았다.
아, 제 인생도 그리될것 같네요.
좌샘, 참 멋쟁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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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범
2011.10.12 09:26:04 *.69.159.123
에궁, 재경
정리의 달인이 죽어가는 범해의 기를 팍팍 죽여놓는구낭. ㅋㅋ
숙제 다하면 그대의 자문을 받아
나도 정리 좀 하고 살아볼께.. 우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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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0.11 18:54:17 *.166.205.132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치네요~
아 정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할텐데...
뭔노무 걱정이 이리 많은지..ㅋ
일단 잘 놀아야지요~
안동하회마을에서의 회후를 고대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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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1.10.18 11:00:41 *.69.159.123
10월 14일은 임재범의 생일이고
10월 15일은 우리 딸의 생일이고
10월 16일은 오스카 와일드의 생일이고.....

가톨릭 교회안의 성인들은 승천한 날을 축일로 삼아 그분들의 삶을 기리고 있지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딸은 생일이 바로 아빌라의 데레사라는 성인의 축일이기에 세례명을 따라 지은 거예요.

가족여행을 선물로 주고가신 그대의 장모님은 참, 사랑이 많고 지혜로우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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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0.14 19:52:32 *.111.51.110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좌샘의 책이 생각났었는데...
어떤 책일까? 읽고 싶다는...

날라간 댖글이 아쉽네요~ㅋ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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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2011.10.12 09:30:26 *.69.159.123
그대의 사진 일기가 나를 감응시켰어요.
욜심히 댓글 달았는데...어디로 쓸려가버렸나... 없네

장모님 기일이 이번 주말이군요.
해맑으신 표정이 심성도 참 고운 분이셨을 것 같아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아름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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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10.11 20:38:48 *.163.164.178
선생님의 글 냄새가 나네요.
더불어 이탈리아에서 안치환의 '행복'이라는 시를 읽어주셨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제가 감해 짐작해보면 선생님은 수필..같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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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범
2011.10.12 09:34:10 *.69.159.123
그래, 외로운 늑대여
대한민국엔 한집 걸러 한집에 수필가가 살고
또 한집 걸러 한집에 시인이 산다고 할만큼 많은 시와 수필책이 나온다고 하네요. ㅋㅋ

근데 우체국에 가서 행복한 편지를 쓰는 사람은 유치환 선생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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