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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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3. 만일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하루의 시작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우선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놓고 푸른 하늘을 보러 달려 나갈 것 같다, 그리고 기쁠때나 슬플때나 많은 위로를 주었던 산책길의 그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싶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나와 이 세상에서 진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지혜로 남은 사람을 축복해 줄 것이다.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을 기억하지는 말자.
이전에 나는 매일 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할까를 제 1순위로 걱정하며 살았다. 그런데 정말 죽음이 문 앞에 다가오니... 정리 따위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고요하게 평화롭게 앉아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지나간 순간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매일 매일 숙제에 밀려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살지 못했던 내 인생은 이제 죽어도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차라리 이제야 쉴 수 있겠구나...하는 안도감에 좀 기쁠지도 모르겠다. 지상에서 내가 이룬 것, 지상에서 내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 마음에 남은 사랑, 마음에 남은 불편함...이 모든 것에서 해방 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먼저 가는 자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히 자신의 잣대로 평가를 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 평가에서나마 자유로울 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나도 제법 남의 평판을 두려워하며 살았구나...하는 회한이 밀려온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일생 나를 괴롭혔다. 나는 본래 다른 사람의 의도를 맞추어 살기를 바라기보다는 내 마음이 가는데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기운은 그 틀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틀에 정답을 쓰지도 못했다. 이제 내 생애 마지막 날에는 드디어 그 틀을 뛰어넘어 자유 선언을 하고 싶다. 나를 위해 땅을 파지 말 것이며 나를 위해 향을 사르지 말아라. 차라리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나를 떠나보내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먼저 가서 전망이 좋은 자리를 잡아두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 자랑을 할테다. 나는 논설문처럼 인생을 살았다고...그러나 내 생애 마지막 날은 정말 시처럼 살았다고 말이다.